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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하나님(12) 인생의 관점을 변화시키시는 성령님(사도행전13:1-3)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9480 추천수:3 218.147.218.173
2024-12-01 12:53:14

성령 하나님(12) 인생의 관점을 변화시키시는 성령님

사도행전13:1-3

 

제가 11번에 걸쳐 우리를 변화시키는 성령 하나님에 대하여 설교했습니다. 사람은 알 때 변화되고, 욕구가 있을 때 변화되며, 사랑할 때 변화가 됩니다. 담배를 피우면 폐암이 걸린다라는 사실을 알면 담배를 끊게 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안다고 다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알면 변화가 일어날 확률이 높아집니다. 무엇인가 절실히 필요한 욕구가 생기면 변화됩니다. 어릴 때 질병으로 죽는 부모님을 보며 의사가 되어야 하겠다는 절실한 욕구가 생기면 컴퓨터 게임만 즐기던 아이들이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더 강력한 변화는 사랑할 때 일어납니다. 누구가를 사랑하면 강력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령 하나님을 우리가 알고 성령 하나님의 소원을 따르려고 하고 성령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에게 강력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성령님의 뜻도 모르고 성령 하나님의 소원에 무관심하고 성령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운명을 변화시켜 주시고, 성품을, 능력을, 신체 이미지를, 생활 습관을, 인생길을, 삶의 목적을, 삶의 우선순위를, 신념을, 성향을, 마음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인생의 관점 즉 세계관도 변화시켜 주십니다. 오늘은 마지막 12번째로 인생의 관점을 변화시키시는 성령님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세계관을 변화시켜 주시는 성령님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인생의 관점 즉 세계관을 가지고 삽니다. 일반적으로 세계관이라는 말은 이 세계를 바라보는 눈(world-view)입니다. “자는 볼 관자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삶에 대한 시각, 삶을 위한 시각으로 저마다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세상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식의 틀 즉 프레임이라고도 말합니다. 월터스라는 학자는 세계관을 한 사람이 사물들에 대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신념들의 포괄적인 틀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세계를 인식하는 틀이 관점 즉 세계관입니다. 빨간색 안경을 쓰면 모든 것이 빨갛게 파란색 안경을 쓰면 모든 것이 파랗게 보이는 것처럼 어떤 세계관을 갖느냐에 따라 세상은 달리 보입니다. 모든 것은 물질에 불과하다는 유물론적 세계관을 가지면 모든 것은 하나의 물질로 보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진화되었다는 진화론적 세계관을 가지면 모든 것을 진화의 관점으로 보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세계관을 가지도록 변화시켜 주실까요?

오늘 본문은 세계관이 완전히 변화된 사람들의 공동체인 당시 세계 제 3의 도시 안디옥 교회에서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바나바와 사울이 선교사로 파송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 교회는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함을 받은 교회입니다. 다민족으로 구성된 교회로 세계 선교의 중심이 된 교회입니다. 오늘 이루어진 이 사건은 단순한 교회 내부의 일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이 교회를 통해 새로운 세계관으로 변화시키시는 역사적 전환점을 보여줍니다. 성령님은 안디옥 교회 성도들의 마음과 시야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주었습니다. 어떻게 변화시켜 주었습니까?

 

1. 성령 하나님께서 인생의 관점을 무신론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복음적 유신론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여기서 섬기다는 말은 유대교적 금식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봉사한다는 의미와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는 주는 퀴리오의 번역으로 성자 예수님을 지칭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 예배드리고 있음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안디옥 교회 선지자와 교사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며 금식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성령 하나님께서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우라고 합니다. 선교를 위해 파송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금식하며 주님께 예배드리는 가운데 성령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단순히 인간의 계획으로 움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계획을 중심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무신론의 관점으로 보면 우연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 목적이 있음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그들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유신론적 관점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한 것입니까? 성령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세상에는 무신론자와 유신론자들이 있습니다. 무신론자들 중에는 강한 무신론들이 있습니다. 리차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같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신의 존재를 확신하고 단호하게 부정하는 자들입니다.

약한 무신론자들은 신의 존재를 믿을 만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불가지론들은 토마스 헉슬리이 신의 존재 여부를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회의론자들은 데카르츠처럼 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고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 자들입니다.

유신론자 가운데는 이스람, 유대교와 같은 유일신론 자, 고대 그리스, 로마, 힌두교 등과 같은 다신론자, 사머니즘과 같이 신은 우주 모든 것에 내제해 있다는 범신론자, 존 로크, 토마스 제퍼슨처럼 신이 세상을 창조했지만 더 이상 우주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탈신론자 등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디에 속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까?

안디옥 교회 교회들의 세계관을 성령 하나님은 어떻게 변화시켜 주었을까요? 인격적인 하나님과 교제하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예배하며 예수님이 세상을 섭리하시는 주인이라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복음적 유신론 세계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절에서 안디옥 교회의 구성원을 누구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까? 바나바, 니게르라 하는 시몬, 구례네 사람 루기오,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사울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 교인이 그들만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1120-2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믿어 주께 돌아왔습니다. 131절에서 소개한 사람은 안디옥 교회의 의사를 결정하는 대표적인 사람일 것입니다.

바나바는 유대인입니다. 바나바의 본명은 요셉이며, 그는 구브로(사이프러스) 출신의 레위 사람으로 소개됩니다(4:36). 유대인으로서 그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율법을 배우며 자랐을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그의 세계관은 이미 유일신 신앙을 바탕으로 한 유신론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세계관으로 변화되었습니다. 1124절에서 바나바를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세 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착한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 믿음 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착한 사람이 되고 믿음 충만한 사람이 됩니다. 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었습니까? 사도행전 433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때 은혜를 받아 바나바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3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자신의 밭을 팔아 사도들에게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세계관이 달라진 것입니다. 인생을 보는 관점이 달라진 것입니다. 바나바는 성령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예수님을 믿는 신앙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고, 복음 전파에 헌신하며 자신의 재산을 팔아 교회에 헌납하기까지 했습니다(사도행전 4:37). 이는 단순히 종교적 율법주의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세계관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고린도전서 123절에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했는데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예수님의 사람이 되어 세계관이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바울은 어떤 사람입니까? 골수 유대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자를 결박하여 처형하러 가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세계관이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사도행전 920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곧 여러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행전 9:20)" 그는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복음적 유신론으로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부정하던 세계관에서,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복음적 유신론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이후 자신의 삶을 온전히 예수님의 사역에 헌신하게 됩니다.

바울은 아테네에서 다신론적이거나 무신론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는 "알지 못하는 신"에게 드린 제단을 가리키며, 그들에게 참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사도행전 1724-25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그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강조하며, 무신론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관점으로 살 것을 말씀합니다. 전통적 유신론에서 복음적 유신론으로 변화되어 성령님의 인도하심 아래 초대교회의 부흥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의 변화된 세계관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 데 그치지 않고, 복음을 중심으로 한 헌신적 삶으로 이어졌습니다.

 

흑인 니게르라고 하는 시므온은 아프리카 출신의 개종자일 것입니다. 구레네 사람 루기오, 갈릴리 지방의 통치자인 헤롯의 젖 동생 마나엔이 있습니다. 이들은 무신론자였지만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유신론자로 변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구체적으로 이론적 무신론자였는지, 불가지론적 무신론자였는지, 이신론적 무신론자였는지, 적대적 무신론자였는지, 실천적 무신론자였는지는 알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이 충만이 임하고 수많은 지역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그 후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것을 분명합니다. 요즈음 말하면 직업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출신 지역도 출신 나라도 다른 사람들입니다. 피부도 다릅니다. 사회적 신분도 다릅니다. 부자였던 바나바가 있습니다. 그런 반면 권력있는 자도 있었습니다. 바리새인 출신 사울도 있습니다. 다 다릅니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는 성령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웠다는 사실입니다.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주를 섬겨 금식했다는 것은 단순한 의식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드리고, 그분께 헌신하며, 공동체를 섬기고, 기도와 금식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도 복음적 세계관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무신론적 세계관, 유물론적 세계관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연과 인간을 창조하였습니다. 진화론을 주장하는 자들은 시간x 우연x 비인격적 힘에 의해 자연이 만들어졌고 인간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며 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결국 인간의 영성을 제거시켜 버렸습니다. 칼 막스의 유물론은 인간을 물질로 전락시켰습니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욕구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든 존귀한 자입니다.

예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1-3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이 사실을 믿습니까? 교회 내에서 안 믿는 것이 아니라 덜 믿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로마서 1136절에서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이 사실을 믿습니까? 복음적 유신론 세계관을 가질 때 세상과 만물이 어디로부터 왔으며 왜 존재하며 어떻게 진행되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어디로부터 왔다 어디로 가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 죽음 후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1:15-17절에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히브리서 1:2-3절에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요한계시록 4:11절에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성경은 예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명확히 증거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스승이나 선지자가 아닌,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성부 하나님과 성령님과 함께 삼위일체로서 창조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 중심의 복음적 유신론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세계관으로 우리를 바꾸어 주십니다. 복음적 유신론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2. 성령 하나님께서 인생의 관점을 인본주의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복음적 신본주의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성령 하나님은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 교회를 부흥시킨 주인공들입니다. 이들이 있어야 교회가 더 부흥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교육관도 세우고, 선교관도 세우고, 복지관도, 무덤터도 만들고 유명 교회가 되어 자부심을 갖는 멋진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기업을 다니는 것을 자부심을 가지듯, 대형 교회에 다니는 자부심을 가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주인공인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보낸다는 것인 인간의 필요와 관점을 중심으로 하는 인본주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필요와 관점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인본주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중심으로 사는 신본주의적 관점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인본주의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고전적 인본주의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중심으로 인간의 인성과 도덕적 능력을 강조합니다. 르네상스 인본주의는 중세의 신학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사고를 강조하며, 인간의 가치와 잠재력을 재조명했습니다. 근대 인본주의는 인간의 이성과 과학적 사고를 강조하며, 종교적 신념 없이 인간의 경험과 합리성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세속적 인본주의는 종교적 믿음 없이 인간의 이성과 도덕적 판단을 중심으로 하는 인본주의입니다. 인권, 과학적 탐구,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며 종교적 신념을 배제합니다. 진화론적 인본주의는 인간이 진화의 산물로서 지적 존재로 발전했으며, 이 진화를 통해 더 나은 인간 사회와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신본주의도 종류가 있습니다.

이슬람 신본주의가 있습니다. 이슬람은 알라가 모든 것의 중심이며, 인간 존재와 도덕적 판단은 알라의 뜻과 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봅니다. 유대교 신본주의는 야훼가 우주와 인간의 중심이며, 모든 삶과 도덕은 하나님의 계시와 율법에 기반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범신론적 신본주의는 신이 우주와 동일하다고 보는 시각으로, 신과 자연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뉴에이지 운동 명상하는 사람들이 이런 입장을 취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져야 관점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복음적 신본주의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진리를 따르는 신본주의입니다.

어떤 인본주의든 인본주의 세계관은 인간이 중심입니다. 인간의 이성과 능력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인간의 가치와 자율성, 독립성이 중시됩니다.

복음적 신본주의 세계관은 하나님이 중심입니다.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이며, 인간의 존재와 목적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의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하나님을 의존하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인본주의 세계관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성과 합리성을 가진 존재로, 스스로의 힘으로 발전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봅니다.

복음적 신본주의 세계관은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존재로서,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지만 죄로 인해 타락한 상태에 있다고 봅니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으며,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필요합니다.

도덕과 윤리에 대하여 인본주의 세계관은 도덕과 윤리는 인간의 이성과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형성됩니다. 도덕적 판단은 주로 인간의 행복과 이익을 기준으로 합니다.

복음적 신본주의 세계관은 도덕과 윤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에 따라 결정됩니다. 도덕적 판단은 하나님이 제시한 계명과 교훈을 기준으로 하며, 신의 뜻을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적과 의미에 대하여 인본주의 세계관은 인간의 삶의 의미는 개인의 경험, 성취, 자아실현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목적은 개인의 행복과 만족을 추구하는 데 있습니다.

복음적 신본주의 세계관은 인간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과의 관계를 통해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고, 그분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인본주의 자들인 에덴 동산에서처럼 하나님을 추방하고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인간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면 자유와 평등 박애, 행복을 실현할 줄 믿었습니다. 그러나 문명은 발달되었지만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 휴머니즘 세계관을 가지는 사람들이 만든 세상은 어떻게 되었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남용으로 살상 무기는 공포, 인간의 탐욕으로 환경 심각하게 파괴되어 인류의 생존은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은 더욱 심각해 지고 있습니다. 인간 중심의 세계관은 인간의 이성과 능력을 강조하지만, 이를 인종, 성별, 경제적 지위 등의 차별을 합리화하는 데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1등만이 살아 남는 세상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전쟁과 갈등은 점점더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을 받고 복음적 신본주의 세계관을 갖은 사람들을 통해 어떻게 변화되고 있습니까? 사도행전 교회를 보십시오.

 

 

3. 성령 하나님께서 인생의 관점을 상대주의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복음적 절대주의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님의 말씀을 듣고, 바나바와 사울을 안수하여 파송합니다(3). 4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성령의 보내심 앞에 절대적으로 순종합니다. 이는 그들이 자신의 판단과 기준이 아닌, 성령님의 절대적인 말씀에 순종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상대적인 기준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진리에 따라 행동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상대주의적 세계관이 아니라 복음적 절대주의 세계관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상대주의 세계관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도덕적 상대주의는 도덕적 가치와 윤리 원칙이 문화나 사회, 개인의 신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어떤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거나 그르다는 판단이 보편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일부 문화에서는 다처제도 인정되어야 하고, 동성 결혼도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상대주의는 진리나 지식이 절대적이지 않으며, 개인이나 사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이해된다고 주장합니다.

문화적 상대주의는 한 문화의 관점이나 행동이 다른 문화와 비교할 때 다를 수 있지만, 그 문화 내에서는 고유한 가치와 규범에 따라 이해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종교 다원주의 관점 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혼합주의, 상대주의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동성 결혼, 차별 금지법, 젠더 성혁명, 트렌스 젠더, 트렌스 에이지 등을 외치며 상대성과 다양성을 존중해달라고 합니다. 남편과 아내를 바꿀 자유를 달라는 것입니다. 왜 간통죄를 만들어 재미없게 살게 만드냐는 것입니다. 어느 동갑내기가 결혼을 하여 인생을 재미있게 살자고 여행 충만했답니다. 기회만 있으면 여행타령하며 스위스, 프랑스...등 다녔답니다. 남편이 유럽에 가니 남편은 길거리의 여인이 자기 아내보다 났게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혼하지 않고 살았는데 60세가 되어 동갑내기 부부가 친구들과 함께 생일파티를 하고 있었답니다. 파티가 끝나갈 무렵 천사가 나타나더니 부부에게 생일 축하한다며 무엇이든지 소원을 말하면 생일 선물로 주겠다고 했답니다. 부인이 말했답니다. "천사님 제 소원은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세계 일주를 하는 것입니다. 세계일주 할 수 있는 비행기표를 주십시오." 그 말이 끝나자 팔락거리며 세계일주 비행기 표 두 장이 부인 앞에 떨어졌답니다. 남편에게 천사가 물었습니다. "그대 소원은 무엇인가 내가 들어 주겠노라" 그러자 그 남편은 "천사님 저는 늙은 마누라가 실증이 났사옵니다. 저보다 30세 젊은 예쁘고 팔팔한 아내를 주십시오. 30세 젊은 아내와 사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천사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소원을 원하고 있구나. 그러나 네가 그토록 원하니 네 소원을 들어 주겠노라." 그 말이 끝나자마자 60세 남편이 90세 된 영감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90세 된 영감 곁에는 60세 된 젊고 팽팽한 아내가 서 있었습니다. 천사가 떠나며 하는 말은 "잘 먹고 잘 살도록 하여라"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절대주의에도 도덕적 절대주의, 진리의 절대주의, 형이상학적 절대주의, 법적 절대주의 등 다양한 세계관이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제주로 믿으면 복음적 절대주의를 가지게 합니다. 예수님이 옳다고 하면 그것이 옳은 것이고 예수님이 옳지 않다고 하면 그것을 옳지 않다고 분명한 기준을 세우고 사는 복음적 절대주의 세계관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진리의 본성에 대하여 상대주의는 진리는 상황이나 개인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며, 문화, 사회, 역사적 배경에 따라 변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진리는 개인이나 문화마다 다를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복음적 절대주의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 고정된 것이며, 모든 상황과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진리는 객관적이며, 특정한 기준이나 원칙에 의해 정의됩니다. 따라서, 복음적 절대주의는 진리가 모든 사람과 문화에 동일하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씀하며 진리의 기준을 제공하며, 하나님은 절대적인 진리의 원천으로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4:6에서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진리를 보편적이고 변하지 않는 것으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도덕적, 윤리적 기준과 진리가 인간의 관점이나 문화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7:17에서 예수님은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소서. 당신의 말씀은 진리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의 기준임을 의미합니다. 진리가 자유케 한다고 했는데 진리 안에서 인간은 참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존 칼빈은 성경은 자연인의 안목을 고치는 안경이라고 했습니다. 레슬리 뉴비긴 성경은 우리가 그것만을 바라보야야 할 책이 아니라 성경은 그것을 통해 보아야 할 책 즉 안경이다. 죄로 마음이 어두워진 우리의 눈과 의식으로써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세계를 의식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절대적 세계관을 제공하는 성경을 통해서 세상을 보고 걷고 행하여야 합니다.

 

도덕과 윤리에 대하여 상대주의는 도덕과 윤리의 기준은 문화, 사회, 개인의 경험과 가치에 따라 다릅니다. ‘도덕은 상대적이다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적 절대주의는 도덕과 윤리는 보편적이고 고정된 기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도덕적 원칙은 문화나 상황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제 멋대로 살라고 하는 상대주의적 세계관이 좋은 것같지만 결국 세상을 어떻게 만들었습니다. 차별 금지법을 만들어 학교에서 기도도 못하게 하고 선생님에게 전도의 권리도 빼앗고 동성 결혼과 안락사, 낙태를 합법화하여 세상이 더 좋아졌습니까?

도덕적 혼란과 윤리적 붕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폭력, 범죄, 부패가 증가하며,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태도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분열과 갈등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기준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사회적 합의가 어려워졌습니다. 공동체의 통합이 약화되고, 개인주의와 집단 이기주의가 확산되어 정치적 갈등은 더 심화되고 있습니다. 진리와 정의가 상대적이라고 여겨지면 법과 윤리의 공정성이 약화되어 사회적 불평등과 부당한 처우가 발생해도 "문화적 차이""개인적 판단"으로 정당화합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절대적 기준이 없으므로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거나 변명하며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전쟁 범죄, 환경 파괴, 인권 침해가 정당화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가 보편적 가치로 존중받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가치가 변질되어 인신매매, 강제 노동, 아동 착취 등 비인간적 행위가 상대적 기준으로 정당화되고 극단적 개인주의가 세상을 지배합니다. 환경 문제를 "필요한 희생"으로 간주하여 지구 온난화, 대기오염, 생물 멸종 등의 위기가 초래됩니다. 무엇보다 진리추구를 포기해 버린 사람이 많아집니다. 진리와 지식이 상대적이라고 믿으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하지 않습니다. 모든 의견과 가치가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극단적 다원주의는 무질서와 혼란을 초래합니다. 이런 상대주의 세계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야 가능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미국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 3795명 청소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11명 중 1명 절대적 진리에 대한 믿음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누구로부터 가장 큰 신앙 생활의 영향을 받는가를 물어보니까 80% 이상이 부모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부모의 세계관이 중요합니다. 아더 홈스 인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거룩한 사명이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바른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야 우리 자녀가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와 우리 사회가 무신론적 세계관에서 복음적 유신론적 세계관으로 변화되고 인본주의적 세계관에서 복음적 신본주의 세계관으로, 상대주의적 세계관에서 복음적 절대주의적 세계관으로 변화됩니다.

 

복음적 절대주의 관점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세상이 어떻게 변했습니까? 1348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절대 진리인 복음이 선포되니까 그 진리를 듣고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은 다 믿습니다. 절대 진리인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지고 그 공동체가 어떻게 변합니까? 사도행전 93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공동체의 평안함이 이루어지고, 든든히 섬가며, 주를 경외할 뿐 아니라 성령의 위로와 성장의 축복이 있는 공동체가 됩니다.

 

사도행전 13:1-3의 사건은 성령 하나님께서 교회의 세계관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역사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람들, 성령의 지시에 따라 순종하는 사람들이 지도자였고 교인들이었습니다. 성령님은 무신론에서 유신론으로, 인본주의에서 신본주의로, 상대주의에서 절대주의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십니다. 오늘 우리도 성령님께 우리의 마음을 열어, 성령 하나님이 원하시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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