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하나님(11) 마음을 변화시키시는 성령님
본문: 에스겔 36:26-27
우리 성도님들은 '개구리와 전갈' 이야기를 읽었거나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어느 날, 전갈이 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그러나 전갈은 헤엄칠 수 없었기에 개구리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개구리야, 나를 등에 태우고 강을 건너게 해줘. 너만 믿을 수 있어." 개구리는 전갈의 본성을 알고 있었기에 망설였습니다. "너는 전갈이잖아! 네가 날 쏘면 우리는 둘 다 강물에 빠져 죽을 거야." 전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말도 안 돼! 내가 널 쏘면 나도 죽을 텐데, 왜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겠니? 너를 해치지 않을 거야." 개구리는 전갈의 말을 믿고 등을 내어주었습니다. 전갈을 등에 태운 채 강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강의 중간쯤에 도달했을 때, 전갈은 갑자기 개구리를 쏘았습니다. 개구리는 독에 중독되며 절규했습니다. "왜 그랬어? 너도 이제 죽게 될 텐데!" 전갈은 슬픈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미안해... 하지만 그게 내 본성이야." 인간에게는 본성을 담고 있는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은 이것이라고 실체를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존재합니다. 마음을 다루는 심리학이나 철학에서 인간 존재의 핵심을 마음으로 봅니다. 심리학은 과학적, 실증적 방법을 사용하여 뇌와 행동 간의 관계를 연구하고 철학은 논리와 추론으로 마음의 본질과 의미를 탐구합니다. 일반적으로 심리학자들 모두가 동의하는 '마음'의 정의란 없지만 감각, 지각및 지(知),정(情),의(義)가 움직이는 자리로서 심리적 과정을 마음과 결부시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특징은 첫째, 정신적인 마음은 물리적인 것과는 달리 내적으로 경험되는 것이어서 외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둘째, 마음은 행동을 설명하는 이론적 구성개념입니다. 이론적 구성개념이란 그것을 직접 관찰하여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으나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개념을 말합니다. 셋째, 마음은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나타내는가를 보여주는 표상입니다. 사람의 의식을 무의식, 잠재 의식, 표면 의식으로 나누어 무의식에 믿음 체계가 있고 잠재 의식에 감정 체계가 표면의식에 생각 패턴이 있는데 이렇게 구성된 것을 마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은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근원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중심기관이며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통로입니다. 마음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장소이고 인간의 전인격의 핵심이 되는 생명이 있는 힘의 원천의 자리입니다. 이 마음은 타락 전 마음과 타락 후 마음, 거듭난 후 마음이 다르게 됩니다. 타락 전 인간의 마음은 지(知),정(情),의(義)의 상태를 기뻐하였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지정해 주신 위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즐거워 하였습니다. 인간의 생각과 삶에서도 무질서하지 않았으며 욕망 때문에 자신의 분수를 잊어버리는 일도 없었습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없는 상태로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마음입니다. 그러나 타락 후 인간의 마음은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그로부터 아담과 하와는 물론 모든 인간들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창조의 질서를 파괴하며 살아가는 일을 고통스럽게 생각하게되었습니다. 이러한 불행은 모두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타락하기 전 가지고 있었던 내면의 질서와 창조세계의 질서는 파괴되었고 지성은 불안하게 되었으며, 인간은 우둔한 마음 가운데 스스로 교만해지게 되었습니다. 정서는 하나님을 바르게 느끼지 못하는 불행한 상태가 되어 마음은 점점 더 절망적인 상태로 부패하고 사악하게 되었습니다. 타락 후의 인간관계는 서로에 대한 수용과 사랑이 아닌 거부와 정죄,의심과 책임 전가가 주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마는"(렘17:9-10)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인간의 마음에 내재된 변하지 않는 본성은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2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새 영을 너희 속에 두며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여기에서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무의식의 믿음 체계가 하나님을 부정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14:1절과 시편 53:1절에서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라고 말씀하는 것이니다.
여기서 ‘너희’는 이스라엘 사람을 말하고, 오늘날 모든 자연인인 인간을 말합니다. ‘굳은 마음’은 문자적으로 “돌과 같은 마음”을 뜻합니다. ‘굳은’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에벤’은 ‘돌’을 뜻하는 명사 ‘에벤’의 여성 단수형에 정관사 ‘하’가 결합된 것으로, 돌 같은 이 굳어진 의지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도무지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무감각한 영적 상태를 말합니다(출15:16). 싸늘하고, 무감각하며, 완고하고 생기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2장 4절을 보면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는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돌처럼 굳어진 마음은 죄로 인해 영적 감각을 잃어버린 상태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 반항하고 거부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에 무감각하고 변화에 대해 저항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자기 방어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로 나타납니다. 생명이 씨앗이 자랄 수 없는 마음입니다. 여기서 ‘마음(레브)’는 삿 16:25에서는 인간의 감정의 자리로 제시되고, 왕상3:9에서는 사리를 판별할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의 자리로 제시되며, 욥27:6에서는 사람의 윤리적 양심의 자리로 제시되었습니다. 영(루아흐)는 창 41:8에서는 꿈을 꾼 바로의 번민하는 마음을 묘사하는 단어로 사용되었고 수 2:11에서는 여리고 성 사람들이 이스라엘 군대가 쳐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정신을 잃었다는 표현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의 용례에서 ‘마음(레브)’과 ‘영(루아흐)’이라는 단어가 본문에서처럼 한 문장에서 함께 사용된 경우에는 서로 별개의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기보다는 지· 정· 의를 포괄하는 장소이자 인성과 인격이라는 인간의 내면을 총칭하는 관용적 표현으로 사용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18장 31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타락한 마음을 말합니다. 이런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에스겔 14장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그 마음에 우상을 들이며”라고 말씀합니다. 마음 속에 하나님이 앉아야 할 자리에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각종 우상을 모시는 것입니다. 에스겔 33장 31절을 보겠습니다.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우리 인간의 마음이 본래 악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선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을 정도로 선하게 창조하였지만 아담과 하와이 타락으로 결국 인간은 죄악 가운데 출생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17장 9절에서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라고 선포하십니다. 창세기 6장 보면 아담으로 인해서 이 세상에 죄가 들어 후에 노아시대 때 사람들에 대해서 창세기 6장 5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노아 홍수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창세기 8장 21절에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 7장 21-23절에서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마음)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인간 스스로 왕으로 사는 인간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마음에 없는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에베소서 2장 2-3절에서 정확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찾아서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마음이 사탄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사탄이 무엇을 통해 지배합니까? 내적으로는 육체의 욕심입니다. 외적으로는 세상 풍조입니다. 그러니 마음의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늘 불안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염려하는 마음과 혼돈된 마음과 질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분노와 절망감과 압박감과 정욕, 혹은 냉소주의에 시달리는 마음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일상의 삶은 평안이 없고 긴장되고 나날이 공허하며 타인과의 교제도 자연스럽지 못하게 됩니다. 삶의 문제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빈약한 자아개념, 나쁜 태도, 왜곡된 생각, 비참함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날 수 있으며, 많은 건강의 문제도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근심과 강퍅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일을 잊어버리고 무시하며 나쁜 행동을 하도록 하는 부정적인 마음은 근심과 시기로 인하여 자신의 마음뿐 만 아니라 육신의 건강을 해롭게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모시기 싫어하는 마음은 인간의 생각과 감정, 행동, 말 그리고 육체까지 전체적인 모든 영역에 근원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요즈음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마음 치유, 마음 챙김 등의 훈련을 하는데 이 마음을 심리 치료나 마음 챙김 훈련으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람 마음 변화시킬 수 없다고 절망하고 사람 고쳐 쓰지 못한다고 낙심하는 것입니다. 40년만에 50년 만에 동창회 나가 친구들 만난 사람들은 마음 잘 바꾸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했을 것입니다. 독일에서의 13년간의 유학생활을 포함해 30년째 심리학을 공부했다고 하는 김정운 교수는 사람은 절대 안변한다고 단언합니다. 130년이 된 현대 심리학은 “모든 문제의 원인은 너 자신”이라는 명제로 출발하여 콤플렉스, 우울, 불안, 성격 장애가 너 자신에게 있다고 성공 처세서들은 바꾸라고 하는데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예를 듭니다. 그는 욱하는 성격있답니다. 나는 운전하다가 담배꽁초를 창밖으로 버리는 인간들을 절대 용서 못하여 끝까지 쫓아간답니다. 거친 욕이 오가고 “너, 내려” 어쩌고 하면서 멱살잡이까지 간답니다.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라 결국 자신만 망신당하고 집에 가 상처받은 자존심에 어쩔 줄 몰라 하면 아내가 ‘당신은 그런 일을 아예 시작하질 말아야지,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가고, 결국 당신만 손해 보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럼 지구 평화는 어떻게 되느냐’고 웅얼거리면 아내는 자신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복사본을 내민다고 합니다. 고2 때 담임선생님은 그 성격에 대하여 ‘성실하고 과묵한 성격이나 쉽게 격함.’이라고 써 있답니다. 그때나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이나 그는 하나도 안 변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에 내재된 본성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2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여기서 “내 영”은 26절에 나오는 새 영과는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을 말합니다(37:14; 39:29). 성령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마음을 어떻게 합니까? 26절을 보십시오. 네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둘째,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셋째, 굳는 마을 제거하고, 넷째,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미래에 은혜로 주실 약속입니다. 내면의 근본적인 변화를 성령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11장 19절에도 동일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새’로 번역된 ‘하다쉬’라는 형용사는 이전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성질의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죄악된 상태와는 완전히 다른 정결한 상태를 말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본질적 상태를 말합니다. 구약에서 인간의 마음(레브)는 생각, 의지, 감정, 도덕적 판단 그리고 영적 중심을 나타냅니다. 생각과 계획의 자리로 지적 기능(창6:5), 결단과 선택의 자리로 의지적 기능(신30:14),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자리로 영적 기능(신6:5)을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상태가 인간의 전 생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헬라어로 마음(카르디아)는 단순히 육체적 심장을 넘어서 사람의 내적 존재 전부를 말합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라고 말씀하시는데 믿음과 영적 결단은 마음에서 이루어지는데 영적 상태의 중심이 마음입니다. 뿐만 아니라 도덕적 판단의 중심도 마음입니다(마15:19). 인간의 전인격적 중심이 마음입니다. 전도서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 마음은 타락한 마음을 대체하는 새로운 내적 상태를 말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죄로 인해 완전히 부패했습니다(예레미야 17:9). 이를 치료하거나 고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기에 하나님은 새로운 마음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새 영(루하흐)은 마음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서 ‘육신’에 해당하는 ‘바사르’와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새 영을 너희 속에 둔다는 말은 우리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인간의 의지와 감정과 생각의 자리인 동시에 생명의 원천을 말하는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모든 더러운 것들과 가증스러운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순결한 심령, 즉 새롭게 정화된 심령으로 변화시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굳은 마음을 제거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부드러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사르’는 ‘살’을 뜻하므로, ‘살 같은 부드러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살같이 부드럽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 반응하며 순종하는 유연성을 말합니다. 그들의 죄악으로 향하던 성향이 바뀌어 이제는 하나님께 향하게 될 것입니다. ‘주다’라는 의미의 동사 ‘나탄’이 세 번이나 사용되어 회복의 역사를 이루시는 주체는 성령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포로 귀환 후에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언약 백성으로서의 삶은 그들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성령 하나님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무엇을 말씀하겠습니까?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환상을 통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37장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누구를 통해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까? 37장 24절을 보십시오. 내 종 다윗입니다. 한 목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왕이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26절을 보십시오. 화평의 언약을 세원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 종 다윗, 한 목자, 화평의 언약을 하시는 분이 누구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무엘하 7장 12-16절에서 다윗의 후손 가운데 영원한 왕이 나올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9:6-7에서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나셨고... 그가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 위에 앉아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다스릴 것이라."라고 예언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을 그래도 성취되었습니다(마1:1; 롬1:3; 눅1:32-33; 계22:16). 사도행전 13장 22-23절을 찾아 읽겠습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이 사실을 누가 믿게 만들어 주십니까?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 하나님이 예수님을 증언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에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성령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올바르게 이해하게 해 주십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14)”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야 구원에 이르는데(롬10:9-10)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셨으면 재림할 것이는 것을 마음으로 믿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 말씀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모시기를 싫어하는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2:16)고 말씀하고 있
다.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은 자신의 마음의 권위를 성령님께 두
고 성경 안에서 해답을 찾을 때 생명으로 향할 수 있고,새로운 마음으로 그
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수 있다.
마음 챙김이나 수양이나 외적인 자기 계발을 통해서는 결코 새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실 때, 참된 회복과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3. 그렇다면 왜 성령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우리 마음에 계십니까?
27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여기서 “두어(나탄)”라는 말씀을 주목하여야 합니다. 문법적으로 미완료 형으로 성부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믿는 자 마음속에 내주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 하나님을 너의 마음 속에 강권적으로 두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루아흐’는 1인칭 대명사와 함께 사용되므로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며 본문을 메시아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내용입니다(사42:1; 44:3;59:21;욜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욜2:28)”라고 말씀해 주었는데 신약에서 주도적 사역을 하실 성령 하나님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보조적 사역을 하실 때 성령 하나님에 대한 소개를 보면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내면으로 임하는 일은 특별한 목적이 있을 때에만 이루어졌습니다. 민 11 :25를 보면 모세가 세운 칠십 인의 장로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에 그들이 일시적으로 예언을 하였으며, 삼상 16: 13을 보면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았을 때에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였으며, 삿 6:34을 보면 기드온이 이방 족속들과 싸우기 위해 사사로 세워졌을 때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백성이 장로나 왕이나 사사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온전하게 감당하게 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혹은 정기적으로 임하였던 것입니다. 사울은 왕이 될 때 성령 충만하였지만(삼상10:6,10)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불순종했을 때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삼상 16:14)."라고 했습니다. 삼손도 마찬가지입니다(삿16:20).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의 서원을 통해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불레셋 사람들을 물리쳤지만(사사기 13:25, 14:6) 나실인의 서원을 깨트리고 여인의 유혹에 넘어가 성령의 능력을 잃고, 불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혀 비참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에스겔 10장 18-19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로 인한 하나님의 영의 떠났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가운데서 떠나 성읍 동쪽 산에 머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본 절에서는 포로 생활을 끝내고 이스라엘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의 내면에 하나님의 영이 계속적으로 머물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37:14을 보면 하나님의 영이 임함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고 다시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이 없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 16-17에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거슬려 의도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고 성령 하나님을 근심하게 할 수 있습니다(살전5:19; 엡4:30). 그럴 때 로마서 8장 26절에서는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성령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함께 하십니까? 우리 말에서는 번역을 하지 않았지만 ... 때문에, ...하기 위하여라는 히브리어 “아쉐르”라는 말이 두어 다음에 있습니다. 즉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게 하고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기 위해 성령 하나님이 내주 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문법적으로 살펴보면 ‘너희로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에서 ‘행하게(하라크)’는 미완료형으로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을 의미하고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순종할 것을 말씀합니다. 미래의 행동이나 지속적 상태를 나타내며, 하나님의 약속이 장차 이루어질 것을 강조합니다.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에서 ‘지켜(솨마르)는 미완료형으로 ’가다, 걷가, 인도하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행하다(아싸)는 완료형으로 ’만들다, 달성하다, 성취하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의 힘에 의해 말씀을 지키고 행한다는 말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포로 생활하기 전까지 율례를 행하는 것이나 규례를 지켜 행하는 것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께서 앞으로 율례를 행하게 하고 규례를 지키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믿음 없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켜 굳은 마음 대신 부드러운 마음으로 채우시고 자신의 영을 부어주셔서 결국 하나님의 규례와 율례를 지키는 백성으로 살게 만드시겠다는 말씀힙니다. ‘율례(호크)’ ‘규례(미쉬파트)는 하나님의 율법을 총칭하는 의미로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율법은 입법적 의미가 강조할 때 규례는 율법의 시행과 그에 따른 판단이라는 사법적 의미가 강조할 때 사용하였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 임재하시어, 구원의 확신과 변화를 가져올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시며, 하나님과 친밀함과 영적 열매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서 예수님은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진리의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진리를 깨닫고 순종하도록 도우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영적인 말씀을 이해하도록 하십니다. 성령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과 말씀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성령은 말씀을 주시고, 말씀을 통해 일하시며, 우리가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고 따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 있고 역사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성령의 사역을 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서 사탄의 지배를 받아 외적으로는 세상 풍습과 내적으로는 육체의 욕심에 따라 산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을 따르면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죄와 싸운다고 우리 마음이 바꾸어지지 않습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세상 풍습에서도 자유로워지는 것은 성령 충만을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합니다. 술 충만, 쾌락 충만, 물질 충만, 권력 충만, 명예 충만, 탐욕 충만으로 살면 영적 전쟁에서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령 충만으로 살아야 시대를 분별하며 세대를 본받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마음이 변화되면 신념 체계, 믿음의 체계가 바꾸어 집니다. 감정의 체계가 바꾸어지고 행동의 체계가 바꾸어집니다. 마음이 변화되면 인생이 변화됩니다. 마음이 변화되면 인격이 변화되고 성품이 변화되고 능력이 변화되고 죽음 후 영원이 변화가 됩니다. 내 마음 타인도 내 스스로 변화시킬 수 없지만 성령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마음이 강퍅했던 바울도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변화되어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부인하고 도망하였던 베드로도 성령 충만받고 마음이 변화되어 능력있는 설교자로 수많은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였습니다. 방탕한 삶을 살면서 이교 사상에 심취했던 어거스틴도 성령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변화시켜 시대적인 신학자로 사용하였습니다. 노예선의 선장이고 노예무역에 가담했던 존 뉴턴도 성령 체험을 하고 마음이 변화되어 노예 운동을 반대하며 나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찬송가를 지었습니다. 젊은 시절 방황하던 빌리 그래함은 부흥 집회에서 성령의 강한 임재를 경험한 후 복음 전도자로 헌신했습니다. 아무리 해도 변화되지 않는 우리와 우리 자녀들도 얼마든지 성령 하나님께서 마음을 변화시키실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너희에게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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