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하나님(6) 인생길을 변화시키시는 성령님
사도행전 16장 6-10
20세기 미국 최고의 국민 시인으로, 퓰리처상을 4번이나 받은 로버트 프로스트 대표적인 시 <가지 않은 길>이 있습니다. 아마 한 번쯤 다 읽어 보았을 것입니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이 시인이 말한 것처럼 누구나 인생은 한 번 사는 길이고 저마다 하나밖에 없는 인생길을 걸어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걸어가는 인생길을 가는데 인생길의 끝에서 후회 없는 행복한 인생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8:14,16)라고 말씀하고 있씁니다.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잘못된 길로 가는 우리 인생길을 어떻게 변화시켜 주십니까?
1.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인생길을 막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시아는 흑해와 지중해 사이에 위치한 소아시아 즉 오늘날은 튀르키예(터키)가 있는 지역을 말합니다. 신약시대에는 로마의 영토였습니다. 그런데 성령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6절) 그는 주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성령께서는 그의 계획을 막으셨습니다. 이때 성령께서 바울에게 어떤 방법으로 이곳에 가지 못하도록 지시하셨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오늘 말씀을 보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도록 막으신 것입니다. 내적 충동을 일으키셨을 수도 있고, 외적인 정황이 그런 판단을 하도록 한 것일 수도 있고, 환상을 통해서(9) 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전에 언급된 선지자 실라(15:32)를 통해서 성령님께서 성령 하나님의 뜻을 알릴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분명한 것은 그 길이 아니라고 계속 외적인 환경의 압력으로 막았을 것입니다. 7절에 보십시오.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씁니다. 소아시아에 있는 부르기아와 갈라디아 지역에서도, 무시아에서도, 비두니아에서도 아무리 애쓰써도 안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애쓰다”는 말은 최선을 다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과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수많은 변수를 통해 이루어지는 일어난 환경을 통해 그 길을 막는 것입니다. 세상 일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길이 막힐 때 그것이 끈기를 가지고 계속해서 나가야 할 길인지, 아니면 멈추고 다른 길을 가야하는 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을 보면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 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을 가는지 내가 원하여 가는 길인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인지, 내 뜻을 이루는 길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사탄의 유혹에 이끌려 가는 길인지 성령 하나님에 의해 이끌려 가는 길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디모세 후서 1장 14절에서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라고 합니다. 말씀을 떠난 비성경적, 비인격, 비도덕, 비양심적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그 길은 성령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아닙니다. 바울이 전도 여행을 떠날 때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해어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행13:2)라고 했습니다. 바울을 보낼 때 그냥 마음대로 보낸 것이 아닙니다. 행13장 4절을 보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으로 행하라(갈5:16)”라고 했는데 성령을 좇아 행하지 않는 것은 계속 막으면 멈춰야 합니다. 성령으로 인도되는 것인지(갈5:18), 성령님과 함께 하는 길인지(갈5:25), 성령님으로 사는 길인지(갈5:25)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와 통제 아래 온전하고 계속적으로 가는 길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의 사역은 거룩한 사역이고, 성령 하나님의 사역은 인격적인 사역이며, 초논리적, 초인성적이긴 하지만 비논리적, 비양심적, 비이성적 사역이 아니며, 성령 하나님읜 지혜의 영이시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역이며, 성령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역입니다. 인도는 도덕적 결정을 하도록 해 주시는 지시와 교훈으로서 인도가 있고 하나님의 섭리의 인도로 사람이 일정한 길로 갈 수 밖에 없도록 모든 생의 세력들을 하나님께서 조정하시는 것입니다. 도덕적 인도를 아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섭리적 인도는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발전소를 만들기 위해 강에 댐을 쌓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어부로 살기 위해 힘을 쓰면 망하는 것입니다. 코닥 (Kodak)은 한때 세계 사진 필름 시장을 장악했던 회사였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는 환경 변화에 적응을 못하여 결국 2012년 파산 보호 신청을 했습니다. 노키아는 한때 세계 최대의 휴대폰 제조사였으나, 스마트폰 혁명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몰락하였습니다.
방향이 잘못되면 최선을 다하면 다 할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열정보다 방향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속도보다 각도가 더 중요합니다. 끈기도 중요하지만 끊기도 중요합니다. <끈기보다 끊기(유영만 저)>라는 책에 지난 1000년간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탐험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어니스트 섀클턴 이야기가 나옵니다. 1914년 8월, 섀클턴과 대원 27명은 영국 정부 후원 아래 세계 최초로 남극대륙 횡단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6개월 후인 1915년 1월, 목적지를 불과 150킬로미터 앞두고 탐험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탐험선은 떠다니는 얼음덩이에 갇혀 옴짝달싹못하게 되고, 탐험대는 숨통을 조이는 추위, 그보다 더욱 소름 끼치는 절망과 맞부딪히게 되었습니다.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왔습니다. 5월 초 마지막 해가 사라지고 79일 암흑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들은 얼음에 갇힌 배에서 열 달이나 버텼습니다. 여름이 오자 얼음이 녹으며 부서진 배는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섀클턴이 대원들에게 외쳤습니다. “살아남는 데 필요한 것만 빼고 모든 물건을 버려라! 각자 소지품은 일인당 907그램으로 제한 하겠다.” 대원들은 섀클턴의 명령에도 우왕좌왕했습니다.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포기하고 또 포기해도 2파운드 이내로 맞출 수 없었습니다. 그들을 지켜보던 섀클턴이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그것은 섀클턴이 애지중지하던 금으로 만들어진 담배 케이스였습니다. 저자는 바로 지금 항복 선언을 하라고 합니다. 욕심에 졌음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섀클턴이 항복을 선언하지 않고 좌초한 배를 구하려고 끝내 매달렸다면, 그와 탐험대원 27명 모두가 목숨을 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재난의 성격에 대해 우리는 빨리 정의를 내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 상태에서 극복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인지. 그래서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면, 우리는 속히 백기를 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머뭇거리면 유혹이 다가오는데 조금만 버티면 끝날 것같지만 욕심 때문에 머뭇거리다가 악순환의 고리에 말려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은 그 분야의 문외한이거나 바보라서 눈 뜨고 당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과 집착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성공 경험도, 미련도, 체면도, 날은 관습도 버리라는 것입니다. 끈기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끊어야 할 때 끊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끊지 못하고 멈추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고 방향을 돌리지 못하는 것은 인간은 현상 유지 성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안정적이고 익숙해진 상태를 고수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새로운 것을 선택하면 기존에 누렸던 이익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손실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든 몰입 상승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투자한 시간, 노력, 돈이 아까워 이것을 회수하기 위해 더 힘을 쓰는 매몰비용효과 때문에 쉽게 포기하거나 결단하여 끊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업을 하면서 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게 됩니다. 조그만 더하면 될 것같은 데라고 생각하며 결국 최악의 상황까지 가버리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이 일이 있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15장 36-41절을 보면 바나바와 마가 문제로 심히 다투로 갈라섰습니다. 1차 전도 여행 때 마가가 어렵다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 2차 전도 여행을 하는데 바나바가 자기의 친척인 마가를 데리고 갈려고 합니다. 그러자 바울은 함께 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주장하다 서로 갈라섰습니다. 바울은 보란 듯이 열심히 전도하여 효과를 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옳음을 입증하고 싶어 열심을 내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뜻 보다 자기 뜻을 들어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 영광을 드러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 전하는 수고보다는 편하고 익숙한 곳에서 바나바와 마가보다 큰 성과를 내고 싶은 경쟁적인 욕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어떻게 합니까? 7절 보세요.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같이 성령 충만한 사람도 잘 분별하지 못하고 성령 하나님께서 막으시는데도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 자기 계획을 밀고 나가려고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그 길은 아니다. 그 일은 아니다. 그 사람은 아니다. 그 사업은 아니다. 그 생각은 아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때 즉각 “예”라고 인생의 방향을 바꾸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 길에서 가장 성공하고 형통한 길은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길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막고 있다는 판단이 들면 즉각 멈추고, 끊어버리고, 미련없이 비우고 성령 하나님이 이끄시는 방향으로 인생길을 바꾸어야 합니다.
계속 그 길로 가면 그 길은 어떤 길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까?
잠언 14장 12절에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그래서 성령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의 인생 길에 장애물을 놓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가세 하는 것입니다. 계속 그 길로 가면 고비용을 치루어야 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악한 도시 니느웨로 가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명령하셨지만, 이를 거부하고 정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도망가려 했습니다. 그 결과, 그가 탄 배는 큰 폭풍을 만나고, 요나는 바다에 던져져 큰 물고기에게 삼켜지는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교만으로 하나님의 권고를 거부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왕의 지위를 잃고 7년 동안 짐승처럼 살게 됩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계속 자기가 원하는 길을 가다가 왕위를 잃고 자신과 자식까지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삼손은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힘을 가졌지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그 힘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길을 걷다 결국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혀 두 눈을 잃고 노예가 되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거부하며 계속 힘을 다하여 가려고 하는 땅이 부르기아와 갈라디아 땅입니까? 무시아, 비두니아 땅입니까? 빨리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인생길을 바꾸어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을 이루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후회없고 행복한 인생길을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로마서 8장 14절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요한복음 16장 13절에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믿습니까? 성령님은 진리로 우리를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계획을 분별하게 도와주십니다.
성령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에 맞기 않는 길을 가는 우리의 앞길을 어떻게 변경시켜 주십니까?
2. 성령 하나님은 구체적인 말씀으로 인생길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바울은 성령님께서 자신의 앞길을 막으니까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습니다. 이제 소아시아를 벗어나려고 유럽 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라는 생생한 환상을 봅니다.
"환상"은 헬라어로 "호라마"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흔히 비전이라고 합니다. 신약성경에 이 단어는 12번 나오는데 10번이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이 환상을 단순한 환상이 아닙니다. “마게도냐로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는 바울의 인생길을 변경시켜주는 구체적인 지시가 있는 말씀이 들어 있는 환상입니다.
하나님은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겔36:27)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성경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도록 이끌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계시의 방법에는 자연 계시와 특별 계시가 있습니다. 자연 계시는 이성과 양심과 역사적 상황을 통하여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특별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특별 계시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기록된 성경,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 꿈과 환상, 기적과 표적 등이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전적으로 인생길이 바뀐 사람입니다. 바울(원래 이름은 사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박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리새인으로서 율법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받은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단으로 여겼고, 그리스도인들을 감옥에 가두거나 박해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있었습니다. 그때 빛 가운데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라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인생길로 바뀐 삶을 산 사람입니다. 사람이 인생길을 바꾸려면 판단 기준이 필요합니다. 길을 알려 주는 나침판, 등대, 북극성 같은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특별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부름을 받아 복음을 전하다 바울은 지금 유럽에 갈 마음이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아시아 전도를 막으시고 유럽 전도를 하라고 환상과 말씀을 통해 앞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마게도냐(그리스)는 유럽의 관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었습니다(행1:8). 그러나 제자들의 마음은 예수님 마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스데반 사건을 통하여 박해를 받게 만들어 안디옥에 복음이 전해지게 하였습니다. 이제 안디옥 교회를 중심으로 지중해 연안 소아시에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15장에서 무슨 사건이 벌어졌습니까? 마가 문제로 바나바와 바울이 다투게 됩니다. 그렇게도 협력자로 복음을 잘 전하던 사람들이 사소한 문제로 다투게 되어 서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하나님께서 본문에서 부르시는 것입니다. 유럽을 향하라는 것입니다. 선교 제 3의 전환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눈을 열어 보라는 것입니다. 너를 처음 부를 때 이방인과 임금들을 위해 불렀는데 사명의 땅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2천년 전에 바울을 유럽으로 싣고 온 배는 유럽에 부강함을 운반해 준 황금선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게르만 민족을 야만인으로 남겨 놓지 않았습니다. 슬라브 민족을 침략자로 영국을 바이킹의 후손으로 남겨 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동진이 아니라 선진하는 것이었습니다. 문명이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를 거쳐 독일, 영국, 미국, 아시아로 서진한 것이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복음이 예루살렘, 안디옥, 마게도냐, 로마를 거쳐 영국, 미국, 아시아로 서진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상황으로만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된 말씀으로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은 환상과 말씀을 통해 새로운 길을 제시하십니다. 우리는 한 치 앞도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을 통해 우리의 인생길을 인도하십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6)”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을 이끄는 빛과 같습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말씀으로 우리 앞길을 환하게 비추어 줍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길을 알 수 있으며, 삶의 다양한 상황 속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인도받습니다.
사도행전 10장 9-16절에 보면 베드로는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라는 말씀을 들었지만 여전히 이방인에게로 가는 길을 기피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베드로가 기도하는 중에 환상 가운데 유대인들이 먹지 못하는 짐승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일어나 잡아 먹으라고 하십니다. 베드로가 속되고 깨끗하지 않아 그럴 수 없다고 말하자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세 번이나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길의 방향을 변경합니다. 지옥의 땔감처럼 생각했던 원수같은 로마 군인 고넬료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의 가족들에게 세례를 줍니다.
아나니아도 바울에게 접근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신자들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를 환상 중에 불러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고 구체적으로 알려 주십니다. 아니니아는 말씀을 듣고 인생의 길을 바울에게 향하여 갔고 바울에게 안수하여 눈을 뜨게 하여 바울로 하여금 새로운 인생길, 복음을 전하는 길로 가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가야할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계시를 통해 알려 주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인생길을 말씀을 통해 변경시켜 주십니다.
다양하지만 분명한 것은 각자 가야할 인생길을 분명하게 성령 하나님은 계시를 통해 알려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때 내 길이 아니라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우리의 인생길을 변경해야 합니다. 모세는 가나안으로 가기를 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느보산으로 인도하셨고 느보산의 비스가산에서 생을 마치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다시스로 가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니느웨로 인도하셨습니다. 리빙스턴은 주님 앞에 헌신할 초기에 중국 대륙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계획했지만, 환상을 보고 아프리카로 갔다고 합니다. 윌리암 케리는 폴리네시아에 가기로 했던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인도로 갔고, 미국의 선교사 아도니람 저드슨 역시 인도로 가려고 계획하였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미얀마로 갔다고 합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계획하는 앞길을 막음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로운 길을 보여줌으로 우리의 앞길을 변경해 주십니다.
이때 하나님은 바울은 어떻게 반응함으로 인생 길이 변화되었습니까?
3.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심으로 인생길을 변화시켜 주십니다.
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다”
바울이 환상을 보았을 때 즉각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습니다. 6절에서는 성령이 아시나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했을 때 그때도 아시아에서 전하기를 힘을 다해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달라졌습니다.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을 다해 애를 씁니다. 비전이 달라진 것입니다. 방향이 달라진 것입니다. 가야할 길이 달라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나아가니까 어떤 일이 이루어졌습니까?
14절에 보십시오. 그곳에 가니 누가 있습니까? 준비된 사람 루디아가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최초의 신자 자주장수 루디아가 있습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만난 한 사람 로마의 간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 사람들을 통해 유럽 문화를 바꿀 빌립보 교회가 세워집니다. 아시아 전도가 막히고, 안 풀리고, 꼬이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성령이 막고, 예수의 영이 막고, 동역자와 싸우고 선교는 되지 않고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바나바 말을 듣지 않아 이런 일이 생겼구나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고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지만, 그 길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 길이 사명을 이루는 길이고, 그 길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고 그 길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라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이 원하는 길로 인생길이 바뀌면 성령님께서 원하는 열매가 우리 인생길에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 열매는 세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생명의 열매입니다. 둘째는 인격의 열매입니다. 셋째는 사역의 열매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변화시켜준 길을 걸어가면 그 삶의 과정에서 결과에서 이런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인생길을 바꾸어 유럽에 가서 복음을 전함으로 유럽에서 천년동안 기독교가 흥왕하게 되었습니다. 유럽에서 기독교가 타락하자 신대륙으로 미국에서 흥왕했던 복음이 우리나라까지 왔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생명의 열매가 맺힌 것입니다. 사역의 열매가 맺힌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가장 선한 방향으로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서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이것은 단순한 권면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성령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며, 그분의 방법과 방향에 따라 우리의 발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선교에 중요한 역할을 한 가문은 언더우드 가문입니다. 언더우드 1세 원두우 목사는 1885년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전도에 대한 열정이 있었고 다양한 사회사업을 통한 구령사업하였습니다. 심혈을 기울인 성경번역 및 문서 사역, 인재를 양성한 교육 사업을 하였습니다. 연세대를 세웠고 새문안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2세 원한경 박사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연희전문학교로 돌아와 교육학을 가르쳤으며, 제3대 교장을 지냈습니다. 원한경 박사는 1951년 6·25전쟁의 와중에서 심장병으로 한국에서 사망했고 부인은 1949년 공산당의 테러로 절명하였습니다. 3세인 원일한 박사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 해군에 재입대, 한국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대위로 전역했지만 위기에 빠진 한국을 위해서 다시 군에 입대한 것입니다. 그는 인천상륙작전에도 참가했으며, UN군 정전협상 수석 통역장교를 맡아 정전 협정의 전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언더우드가 이 암울한 한국 땅에 왜 왔겠습니까? 환상을 본 것입니다. 비전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는 애초에 인도 선교사를 지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1882년과 1883년에 걸치는 겨울, 동경의 메이지 학원의 앨트먼 목사가 마침내 문호를 개방한 은자의 나라(the Hermit Kingdom)에 관한 보고를 들었을 때, 단 한 사람도 단 한 교회도 한국을 위해 나서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때 그의 마음속에 “왜 너 자신이 가지 않느냐?”는 마음 속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 한국 땅의 선교사로 자원하여 한국을 변화시키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 대표적인 시 <가지 않은 길>에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언젠가 우리의 인생길의 마지막이 올 것입니다. 후회 없는 인생길을 걷기 위해 어떤 인생길을 걸어가겠습니까?
바로 눈 앞의 이익과 편리, 쾌락만 보고 인생길을 걷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말 의식을 가지고 예수님 앞에 설 그 날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무엇인가를 질문하며 매일 걸으시길 바랍니다. 올해 100살 생일을 맞이한 지미 카터 대통령은 성령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자신의 삶을 길을 끝없이 교정받으며 살았다고 합니다.
올해 지미 카터 대통령은 100세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미국 대통령 최초로 100세 생일을 맞이한 대통령입니다. 카터 전 대통령의 손자 제이슨 카터는 할아버지의 생일에 “모든 사람이 100살까지 사는 것은 아니”라며 “누군가가 100살까지 살면서 그 시간을 많은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데 사용했다면 그의 생일은 축하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현직에 있을 때 오일 쇼크, 이란 인질 사태 해결 실패 등으로 ‘20세기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받았습니다. 대통령에서 물러날 당시 그의 지지율은 약 13퍼센트였습니다. 워터게이트 추문으로 유명한 리처드 닉슨이 쫓겨날 당시 지지율이 24퍼센트였습니다. 언론인이자 대통령학 연구자 네이슨 밀러 역시 저서 <미국 최악의 대통령 10인>에서 지미 카터를 1위로 꼽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미 카터가 끊임없이 성령 하나님께서 교정해 주시는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인 줄을 몰랐습니다. 지금 카터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가장 성공한 전직 대통령으로 큰 찬사와 존경을 받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카터센터를 만들어 인권 증진 활동을 벌였습니다. 아프리카의 전염병 퇴치를 위해서도 뛰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에도 참여해 여러 나라에서 집짓기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평화 활동을 지원했습니다. 분쟁 지역을 찾아 나섰습니다. 1994년에는 한반도 위기가 전쟁 발발 직전까지 치닫자, 남한의 김영삼 대통령과 북한의 김일성 주석을 각각 만나 평화를 끌어냈습니다. 그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인생길이 그런 평가를 받은 비결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그는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노년에 암에 걸렸습니다. 피부암이 간암으로 간암이 뇌종양으로 전이가 되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수술을 앞두고 "간에서 종양 떼냈는 데 뇌에서 4개가 또 나왔네…멋지게 살았으니 후회 없어 이젠 하나님께 맡겨야지, 허허"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결국, 완치되었습니다. 그는 18세에 주일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마라나타 교회 신자로 30년 동안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암 투병 중에서도 성경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6살인 손자 제레미가 돌연사하였습니다. 주일 새벽 충격에 싸였지만, 그날 역시 성경을 교인들에게 가르쳤습니다. 평생 교회에 지각 한 번 하지 않았는데 그가 그날 25분 늦게 교회에 가서 성경 공부를 시키고 예배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지미 카터의 위즈덤(지미 카터 저)>라는 책에서 “눈에 보이는 상황이 아무리 심각할지라도 이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계획을 갖고 계시며 지금도 모든 일을 주관하십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크리스천의 인생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모험의 삶’으로 묘사합니다. 대공황 시절 조지아 주 플레인스의 농장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을 돌이켜 보면 주님은 내 생각과 전혀 다른 길로 나를 인도하셨다고 말합니다. 십 년 뒤는 말할 것도 없고 내일 당장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실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며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하나님 앞에 나가서 “주님, 오늘은 저를 어디로 인도하십니까?라고 질문하라고 합니다.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인생길이 최선의 인생길이고, 후회 없는 인생길이며, 가장 적합한 인생길이며, 가장 행복한 인생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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