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하나님(9) 신념을 변화시키는 성령님
사도행전9:17-22
오늘 제가 주보에 “신념(信念)의 힘”이라는 글을 써 놓았는데 신념은 대단한 힘이 있습니다. 신념은 단순한 생각 이상의 것으로, 삶의 방향과 목적을 결정짓고, 어려움 속에서도 사람을 이끄는 원동력이 됩니다. 신념은 동기 부여의 힘이 있습니다. 신념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신념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제공하는 힘이 있습니다. 신념은 삶에 방향성과 의미를 부여합니다. 신념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이 있습니다. 신념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람을 지탱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신념은 행동의 변화를 이끄는 힘이 있습니다. 신념이 바뀌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며,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생이 바뀝니다. 제가 미 해군 제 7 함대 사령관 ‘로젠버그’ 중장 이야기를 써 놓았는데 그는 암에 걸려 군대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네 번이나 암 수술을 받았지만, 의사는 최후통첩을 내렸습니다. “당신은 앞으로 석 달밖에 살 수 없습니다.” 그는 마지막 남은 석 달이라는 값진 시간을 결코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군인으로서 최선을 다했던 그때만큼 열정적으로 살았던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곧 국회와 백악관으로 달려가 다시 현역 군인으로 복무하게 해 달라고 청원했습니다. 대통령은 그가 다시 해군 장교로 복무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그는 해군에 복귀하자 예전보다 더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했고, 몸을 아껴도 얼마 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해, 사병의 일까지 자진해서 맡아 해냈습니다. 그렇게 석 달이 지났지만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여섯 달이 지나도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숨이 붙어 있는 한 내가 맡은 일을 완수한다.’ 라고 다짐하며, 동료나 부하의 만류를 뿌리치고 임무에 매진했습니다. 3년이 지나도 그는 죽지 않고 오히려 암 증세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의사와 주변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는 결국 죽지 않고 승진하여 무적 함대로 세계에 용맹을 떨친 미 해군 제 7 함대 사령관이 되었습니다. ‘신념의 힘’이 그런 위대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신념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념은 힘의 원천입니다. 강력한 신념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잘못된 신념을 자신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 피해를 줍니다.
요즈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이슬람 나라와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에 가장 큰 피해를 주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무식한데 잘못된 신념을 가진 사람입니다. 더 무서운 사람은 잘못된 신념을 가진 사람이 큰 힘을 소유할 때입니다. 잘못된 신념이 세상을 지옥처럼 만듭니다. 지도자들의 잘못된 민족주의의 신념, 정권 유지에 대한 잘못된 신념, 국가의 영토 확장에 대한 잘못된 신념 등이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습니다. 역사에서 커다란 비극은 대개 신념이 부족한 데서 온 게 아니라 잘못된 신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나치 독일을 이끌면서 제 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었고, 6백만 명 이상의 유대인을 학살하였습니다. 왜 그는 그런 일을 하였겠습니까? 잘못된 신념 때문입니다. 히틀러는 아리아인, 특히 독일인이 우월하다는 인종적 우월주의 신념을 가졌습니다. 그는 독일인을 ‘순수하고 우월한 민족’으로 보고, 다른 인종, 특히 유대인과 슬라브인은 열등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반유대주의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독일 사회의 문제의 원인으로 삼았으며, 그들을 ‘독일을 해치는 해충’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독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며 이들을 사회에서 제거하려 했습니다.
공산주의 이론을 만든 마르크스는 사적 소유 철폐와 계급 없는 사회에 대한 비현실적 신념으로 인류에게 엄청난 불행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모든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계급을 철폐하여 불평등 없는 사회를 이루겠다는 비현실적 신념을 소련에서 스탈린이 받아들였습니다. 스탈린은 공산주의 혁명을 완성하기 위해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습니다. 공산주의를 전 세계에 확산시켜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정치 지도자와 군인, 지식인, 예술가 등을 반역자로 몰아 100만 명 이상을 처형하였습니다. 백성에게 자신을 소련의 아버지이자 구세주로 숭배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전 세계를 대립과 갈등 구조로 만들었고 결국 소련은 몰락되고 말았습니다.
캄보디아 폴 포트는 극단적 공산주의 신념을 바탕으로 철저히 농업 중심의 유토피아를 만들겠다며 도시 인구를 강제로 시골로 이주시켰습니다. 순수한 농업 사회 건설, 지식인에 대한 불신, 자급자족 경제, 폭력을 통한 혁명이라는 잘못된 신념에 의해 당시 캄보디아 인구 약 25%인 약 200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습니다. 지식인, 교육자, 의사, 과거 정부 관계자, 심지어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까지 “국가를 파괴하는 적”으로 간주하여 조직적으로 제거했습니다.
중국에서는 마오쩌둥이 문화 대혁명으로 수백만 명이 투옥, 고문, 처형되거나 자살에 이르렀습니다. 지식인, 예술가, 작가, 교사들은 “자산 계급의 사상적 부패”로 규정되어 투옥, 고문, 죽음을 당했고 "구사상, 구문화, 구풍습, 구습관"을 타파하라는 구호에 따라 불교 사찰, 유교적 건축물, 전통 예술품이 대거 파괴되었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잘못된 주체사상의 신념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과 투옥, 처형을 당했고, 6.25라는 비극을 겪었으며 1990년 중반의 기근으로 당시 북한 인구의 10-15%인 300만명 이상이 희생당하였습니다. 잘못된 신념은 이렇게 무섭게 자신과 타인과 공동체에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파멸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이렇게 수많은 피해를 주는 잘못된 신념을 가진 사람이 나옵니다. 9장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사울이라는 사람입니다.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사람을 적대시하며 악마화하여 제거해 버리는 것입니다. 마치 중국 문화 대혁명의 때 홍위병과 같은 사람입니다.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즈와 같은 사람입니다. 독일의 나치당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잘못된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처형하려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위협하고 결박하고 고문하고 처형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1. 이런 잘못된 신념으로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사람마다 다 신념이 있고 신념은 무의식 속에 있어 자동 사고를 만들어 내고 자동적인 감정과 자동적인 행동을 하게 합니다. 아주 쉬운 예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통령 투표를 할 때 자기 신념에 따라 투표합니다. 그런데 경상도 지역에 사는 사람은 항상 같은 번호의 당을 찍어 주고 전라도 지역에 사는 사람들 역시 항상 같은 번호의 당을 찍어 줍니다. “어떤 당은 찍어 주면 안 된다”라는 신념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의식 가운데 “내가 만약 이것을 한다면 무슨 일이 생길 것인가?, 내가 이렇게 해서는 안되지? 나는 이렇게 해야 해” 등과 같은 자동 사고를 하고 투표를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 선거라는 상황이 생깁니다. 그런데 신념에 따라 “나는 이 당에 투표해야 지”라는 자동적 사고가 생깁니다. 그러면 자기가 원하는 당에는 호감을 가지고 원하지 않는 당에는 불쾌감을 가집니다. 신념에 따라 정서 즉 감정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경상도 말만 들어도 싫고 어떤 사람은 전라도 말만 들어도 싫은 것입니다. 그리고 투표장에 가서 그 신념에 따라 투표라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신념을 통해 생각이 만들어지고 생각은 감정과 기분을 만들며, 그 감정과 기분은 행동과 결과를 만드는 것입니다. 뿌리가 같은 나무는 항상 같은 열매를 맺듯 신념이라는 자신도 모르게 평생 그런 삶을 살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 신념은 무의식 가운데 숨어 있기 때문에 잘 모릅니다. 자동적 사고를 하나로 모아보면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움직이는 핵심 신념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핵심 신념(Core Beliefs)은 개인이 자신, 타인, 세상에 대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근본적이고 깊이 자리 잡은 신념을 말합니다. 이러한 신념은 개인의 가치관, 사고 방식, 행동 양식에 깊이 영향을 미치며, 특히 어려운 상황에서 사람들의 감정적 반응과 행동 패턴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핵심 신념은 흔히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어 깨닫기가 쉽지 않으며, 습관처럼 굳어져서 변화를 꾀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신념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싫어하며 잡아 죽이려고 했는데 이런 핵심 신념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빌립보서 3장 5-6절을 보면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며,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라고 했습니다. 그는 유대인으로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유대인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교적 신념을 가지게 되니까 기독교인을 적대하는 것입니다. 자동 사고가 생긴 것입니다. 그 사고가 무의식 깊이 뿌리를 박아 예수 믿는 사람을 볼 때 자신의 생존에 유익하지 않다고 보는 것입니다. 타도의 대상,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데 적대적 세력으로 보는 것입니다. 히틀러도, 마르크스도, 마오쩌둥, 폴 포트, 김일성도 잘못된 핵심 신념을 가졌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것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핵심 신념이란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아주 기본적인 신념입니다. 세상을 보는 안경과 같은 것입니다. 빨간 안경을 쓰면 모든 것이 빨갛게 보이는 것입니다. 어떤 핵심 신념을 가지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핵심 신념은 우리 자신과 현실을 보는 렌즈입니다.
그런데 이런 신념은 어떻게 생겨나겠습니까?
신념은 반복되는 경험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 형성됩니다. 신념은 자신의 경험, 학습, 사회적 영향에 의해 형성됩니다. 신념은 12,13세 때까지 형성되어 그것이 자동적 사고를 만들어 평생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부모가 어릴 때부터 “너는 우리 집에서 가장 쓸모 없는 인간이야”라고 말하면 자신은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신념을 가지게 됩니다. 부모가 어릴 때부터 “전라도 사람은 나쁜 사람들이다”라고 가르치면 전라도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사는 환경과 경험이 자신의 신념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부모가 어릴 때부터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라고 가르치면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학교에 가서 계속적으로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라는 말을 계속 배우게 되면 “인간은 동물과 같은 존재”라는 인간에 대한 핵심 신념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동기에 부모와 관계 속에서 18개 정도의 신념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아주 잘못된 강력한 부정적 신념은 다섯 가지 정도라고 합니다. 첫째, 정서적 결핍의 신념으로 “내 욕구는 채워지지 않을 거야”이고 둘째, 결함과 수치심에 관련된 신념으로 “내 진짜 모습을 알면 다 날 싫어할거야” 셋째는 불신과 학대의 신념으로 “누구도 믿을 수 없어”이며, 넷째, 버림받음의 신념으로 “나는 결국 혼자 남겨질 거야”이고 다섯째, 사회적 소외의 신념으로 “잘 소속되지 못할거야”라고 합니다. 이런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살면 학교 생활도, 결혼생활도, 직장 생활도 행복하지 못하고 성공적으로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2. 잘못된 핵심 신념을 누가 변화시켜 주십니까?
성장하면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변화를 시켜줍니다. 그러나 한계가 있습니다. 한번 형성된 신념을 잘 변화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잘못된 신념을 인정하고 자신의 잘못된 신념을 발견하기도 어렵고 설령 발견했다하더라도 인정하지 않으며 인정하더라도 이미 습관화 된 신념이기 때문에 쉽게 변화되지 않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세월 가지고 있었던 바울의 잘못된 핵심 신념을 누가 변화시켜 주었습니까?
17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라는 말씀입니다. 깨닫게 하실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간을 변화시키시는 성령 하나님이 잘못된 핵심 신념을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그가 가졌던 예수님에 대한 핵심 신념은 무엇이었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박해의 대상일 뿐입니다. 사도행전 26장 9절에 의하면 “나도 내 생각에 나사렛 예수를 대적하여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 결심하였으니”라고 말합니다. 대적해야 할 나사렛 예수에 불과한 것입니다. 나사렛 출신의 인간 예수로 제거의 대상입니다. 자신의 신념을 펼치는데 방해하는 적대자일 뿐입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자신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는 적대자라는 신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필요없는 사람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예수님을 자신의 삶에서 은퇴시켜 버렸습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을 받으니까 예수님에 대한 핵심 신념이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2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2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예수님은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메시아, 구원주라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1장 4절에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념이 완전히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잘못된 신념, 잘못된 핵심 신념을 바른 믿음, 올바른 핵심 믿음으로 성령 하나님께서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신념의 근거는 자신과 자신의 경험에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라는 믿음은 배워서, 경험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에 근거한 핵심 신념이 참으로 능력있는 신념, 자신과 이웃과 세상을 위해 참으로 좋은 신념인 것입니다.
바울은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게 된다는 것입니까?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없느니라.” 성령님께서 예수님에 대한 핵심 믿음을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3장 5절에서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핵심 신념이 바뀌는 것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잘못된 핵심 신념이 있다하여도 성령 충만을 받으면 얼마든지 변경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전해 준 것보다, 학교에서 알려준 것보다 더 능력있는 성령 하나님께서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우리의 핵심 신념을 완벽하게 변화시켜 주십니다.
에스겔 36장 26-27절에서는 “또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고 새 영을 너희 속에 두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구절은 성령이 우리의 내면을 새롭게 하여, 굳은 마음과 잘못된 신념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새로운 마음과 신념을 심어준다는 의미입니다. 성령의 임재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따를 수 있는 믿음과 신념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령 하나님으로 새사람을 입으면 지식에 까지 새로워집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로새서 3: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2:10)” 예수님께서도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여 죽음으로부터 자유한다는 핵심 신념을 가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를 용서해 주어 우리가 죄로부터 자유함을 받았다는 핵심 신념을 가지게 합니다. 아무도 내 소망을 들어주지 않아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도 응답을 해 주신다는 핵심 신념을 가지게 합니다. 어떤 상황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며 인도하신다는 핵심 신념을 가지게 합니다. 많은 실패를 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는 합력하여 승리하게 하신다는 핵심 신념을 가지게 합니다.
3. 잘못된 핵심 신념을 성령 하나님은 어떤게 변화시켜 주십니까?
잘못된 핵심 신념은 바른 핵심 신념으로 바꾸어야 할 범주는 보통 세 가지가 있습니다. 각 범주는 개인의 감정과 삶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 타인에 대한 신념, 세상에 대한 신념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바울의 신념을 어떻게 바꾸어 주었습니까?
첫째는 자기 자신에 대한 핵심 신념을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사람마다 다 개인의 자아 개념을 형성하는 신념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예전에 딸만 낳은 집에서 계속 딸이 태어나면 “딸 그만”이라는 이름을 짓는 집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런 아이들은 “자신은 태어나지 말아야 했다”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또는 "나는 부족하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등과 같은 핵심 신념을 가지게 됩니다. 열등적 자아 개념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빌3:5)”라고 말할 정도로 우월적 자아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최고라는 엘리트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 하나님이 어떻게 바꾸어 주십니까?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라고 고백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15:10)”라고 고백합니다. 자아에 대한 신념은 자기 효능감, 자기 존중감, 소속감과 정체성으로 되어 있는데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라고 말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2-13)”라고 말합니다. 수많은 어려움과 장애물이 있었지만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자신의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핵심 신념을 가진 것입니다. 자신의 경험이나 이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신념입니다. 말씀대로 믿고 말씀에 근거한 신념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하여 자신의 과거나 자신의 능력, 타인의 말, 부모의 말에 기반하는 핵심 신념을 가지지 말고 성령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핵심 신념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조엘 오스틴 목사의 저서 <잘 되는 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오스틴의 친구가 말기 암에 걸렸는데 의사들이 다 포기했답니다. 하루는 집에서 요양을 하는데 네 살배기 아들이 성경책을 들고 나왔답니다. 글을 못 읽는 아이가 성경을 펼치고 손가락을 대며 “아빠, 뭐라고 쓰였는지 읽어 달라” 말했답니다. 요한복음 11장 4절을 가리키고 있기에 그가 읽어주었답니다.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그런데 그 순간 그는 질문하였답니다. “네 살배기 아들이 죽음을 앞두고 절망에 빠진 자신에게 성경을 펼쳐 손가락으로 이 구절을 가리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말씀을 자신에게 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답니다. 그는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라는 구절을 자신에게 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답니다. 그 결과 절망적인 말기 암에서 고침을 받게 되었답니다.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또다른 책 <긍정의 힘>라는 책을 보면 어머니에 대한 간증이 나옵니다.
그의 어머니는 1981년 간암으로 몇 주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전에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이 누구보다 건강했답니다. 현대의학으로 포기하고 집에 돌아왔답니다. 온 가족은 어머니의 생명을 구해 달리고 하나님께 기도드렸답니다. 그의 어머니는 불평이나 원망, 패배의 말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과 입에 두고 믿음 충만한 말을 했답니다. ‘나는 죽지 않고 살 거야. 나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선포할거야.’ 그의 어머니는 가장 좋아하시는 치유의 말씀을 3O~40개 정도 찾아내 종이에 적어 매일 읽고 큰 소리로 믿음으로 선포하셨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시작되었답니다.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답니다. 조금씩 병세가 호전되었답니다. 식욕이 돌아오고 몸무게가 불어나기 시작했답니다. 하나님이 그의 어머니의 건강을 회복시키고 상처를 치유하고 계셨답니다. 몇 달이 지나자 회복세는 더욱 빨라졌답니다. 몇 주밖에 살 수 없다던 어머니는 20년이 흘렀어도 천국에 가지 않았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침마다 치유의 성경 구절을 묵상하고 믿음과 승리, 건강에 관한 말을 하지 않고서는 집을 나서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조엘 오스틴 목사의 어머니는 다리에 장애가 있었지만 언제나 밝고 긍정적이었답니다. 간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선포하는 삶을 살았답니다.
둘째는 타인에 대한 핵심 신념을 자신의 신념을 이루는 도구가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랑의 대상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사람은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갑니다. 그래서 타인을 신뢰할 수 있는지, 안전한 존재인지에 대한 신념을 가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신뢰할 만하다" 또는 "사람들은 나를 해치려 할 것이다." 등과 같은 핵심 신념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합니다. 바울이 성령 충만을 받기 전에서 사람들에 대한 잘못된 신념은 무엇입니까? 9장 2절을 보십시오. 적대자로 생각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해를 끼치는 사람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신앙인을 멸하는 자입니다. 타인에 대한 그런 신념을 가졌던 바울을 성령 하나님께서 어떻게 변화시켜 주십니까? 2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율법과 전통에 따라 타인을 판단하고 배척하는 자세를 가졌지만, 회심 이후에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바라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등하고 귀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용납하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라고 말합니다. 약한 자를 배려하는 신념을 가지게 됩니다.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고전9:22)"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약한 자와 함께하기 위해 그들의 입장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함께하는 자세를 보입니다. 그는 약한 자를 배려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융통성 있게 사랑을 실천하려 했습니다. 타인의 구원을 위해 헌신하는 신념을 가지게 됩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9:3).“
편협한 유대주의자가 어떻게 이렇게 타인에 대한 신념이 변화되었을까요? 오래된 잘못된 신념을 바꿀 만한 몸으로 기억하는 확실한 예수님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를 죽이려고 가는데 다메섹가까이에 이르러서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쌓습니다. 그 빛으로 땅에 엎드러 지자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립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9:4)” 그러니까 사울이 누구냐고 물어 봅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자기처럼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적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 준비된 사람을 만나라는 것입니다. 3일 동안 먹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합니다. 아마 저주 받은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손에 끌러 아나니아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18-1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잘못된 신념을 강력한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게 되면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 사람은 사람도 아니라는 신념을 아들 딸 결혼시키길 꺼려해도 정말로 자신을 사랑해주고 딸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전라도 총각이 살려주는 경험을 하면 신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사람을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의 대상으로 신념을 가지시길 원하십니다.
셋째는 세상에 대한 핵심 신념을 자기의 뜻을 성취하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세상으로 변화시켜 주었습니다.
바울이 성령 충만을 받기 전 세상에 대한 신념을 어떻게 가지고 있었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편협한 유대 주의의 신념에 따라 그 사상을 세상에 펼치는 장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결국 열심을 가지고 잘못된 신념으로 세상을 사상 전쟁터, 이데올로기 전쟁터로 만드는 것입니다. 자기가 중심이 되어 세상에 대한 잘못된 신념을 가지는 것입니다. 히틀러도 어렸을 때 목사가 되고 싶어했고 교회에 들어가 강단에 서서 목사 흉내를 내며 설교하며 부활절이 되면 월급을 몽땅 털어 달걀을 사서 가난한 사람들이나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뜻을 이 땅에 관철시켜려다 유대인 600만을 학살하며 자기 왕국을 건설하려 했던 그는 1945년 4월 30일 권력의 상징인 권총으로 자살함으로써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스탈린을 보십시오. 공산주의를 붙들고 살았던 스탈린도 한때 러시아 정교회 신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집권 이후 기독교인들에 대한 숙청과 박해를 아예 제도화해 버렸습니다. 비밀경찰은 지하교회까지 샅샅이 색출해 수백만 명을 구금하였고, 신자들은 사형에 처해지거나 드넓은 시베리아 곳곳에 세워진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뜻을 세상에 이루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공산주의를 붙들고 편집증적 의심과 공포정치를 획책했던 그는 1953년 3월 1일 쓰러졌고 아무도 의사를 부르지 않았으며 반신 마비 상태로 4일을 앓다 인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바울은 세상에 대한 핵심 신념이 변화되었습니다.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1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후 바울은 세상을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장이라는 신념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장이라는 신념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율법과 행위 중심의 신념에서 은혜와 사랑 중심의 신념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결국 그가 전하는 세상이 어떻게 변화됩니까? 3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복음이 유대인에서 이방인에게까지 확장됩니다. 그는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평생 힘을 다해 수고합니다. 세상 곳곳에 세상의 중심이 되는 복음의 터인 교회를 이루어냅니다. 그는 이렇게 유언적인 말씀을 남겼습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6-8)” 순교할 때가 다가오자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떠났습니다. 그래도 그는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았던 노사도의 얼마나 멋진 고백입니까?
성령님께서 변화시켜 준 핵심 신념을 붙들고 평생 사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는 핵심 신념, 핵심 믿음을 가지고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함을 받는 능력있게 사시길 바랍니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능력에 근거를 둔 핵심 신념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사시길 바랍니다.
타인에 대하여 대한 자신의 신념을 이루는 도구가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랑의 대상이라는 핵심 신념을 가지고 사시길 바랍니다.
세상에 대하여 내 뜻을 이루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곳이라는 핵심 신념을 가지소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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