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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5)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고전 10:31)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857 추천수:4 112.168.96.218
2017-08-20 11:00:39

 

오직(5)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고전 10:31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종교개혁 주요 정신인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 다섯 가지 “오직”에 대하여 말씀을 근거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시간으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입니다. 이 고백은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있고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영광'(glory)은 히브리어 '카보드'와 헬라어의 '독사'를 번역한 말로 “무게, 가치, 평판, 존경, 영예” 등의 의미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본질적 영광'입니다.

어떤 존재의 내적인 탁월성과 위대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이 가지고 있는 탁월함과 위대함, 존귀함, 거룩함, 완전함 등을 말합니다. 이 본질적 영광을 본체적 영광과 발산적 영광으로 설명을 합니다.

본체적 영광은 지성과 의지를 가지신 하나님 존재 자체의 영광을 말합니다. 이 영광은 피조물들의 도덕상태에 의해 영향 받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땅에서는 눈비가 오고 안개가 끼고 우박이 내려도 구름 위에는 언제나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사람과 관계에서 높은 지위와 권력, 능력으로 스스로 위엄과 영광을 나타내십니다.(단4:28-33,롬1:18-23)

 

발광적 영광은 인간이 하나님의 본체적 영광을 인식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계를 창조하시고 그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알도록 나타내신 것을 말합니다. 칼빈은 창조세계에 대해서 '하나님의 영광의 무대'라고 표현했습니다.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거기 있는 것으로 알려주는 영광입니다(출 3:1-5: 19:16) 신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신적 현현(顯現)으로 임재를 드러내셨는데 그것은 그의 '영광'이라고 불렸습니다(성막과 성전의 빛나는 구름: 출 40:34: 왕상 8:10, 보좌와 바퀴에 대한 에스겔의 환상: 겔 1:28 등). 하나님의 영광은 모든 피조세계에 능력으로, 위대함, 아름다움, 광채, 지혜로 드러나고 있습니다(요17:21-26).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시 19:1),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 6:3), “여호와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할 것”(민 14:21)이고,“대 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합 2:14)라고 선포합니다.

본체적 영광이 하나님의 내적 영광이라면, 발산적 영광은 하나님의 외적 영광입니다. 우리는 발산적 영광을 통하여 하나님의 본체적 영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현시적 영광입니다.

현시적 영광은 ‘본질적 영광’에 대한 인격적 존재一인간과 천사一의 반응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효과적 영광’이라고도 하는데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를 받아들임으로써 드러내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한 것은 하나님이 영광을 받기 위해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7절을 보십시오. 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습니까?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 43:7)”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사60:21) 하나님의 영광의 찬양이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엡 1:12,14). 하나님은 피조물을 만들 때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20)”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이것은 현시적 영광을 드러내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 하나님의 영광을 표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보다 교황과 종교회의가 결정한 전통이 더 우위에 있었습니다. 인간 높이기를 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몇 몇 특정 인물이 나누어 갖거나 한 사람이 통째로 빼앗아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영광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인데도 인간 높이기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도둑질하고, 횡령한 것입니다. 요즈음 이단들도 이단 교주를 만왕의 왕이라고 영광 도둑질을 합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피조물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느브갓네살 왕이나 엘리 제사장이나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이나 다윗의 아들 압살롬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사냥하는 사람들이 오늘날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 사이의 중보자는 오직 그리스도 밖에 없는데 마리아나 다른 성인들, 사제들이 중보자로서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챘습니다. 칼빈은 당시의 그러한 교회적 상황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진리의 빛이…꺼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매장을 당하고, 그리스도의 선하심이 깊은 망각 속에 방치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에서 제거되어졌다”('Reply to Sadoleto')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의 주요한 목적으로 표명하는 자는 백 명 중에 한 명이 될까 말까하다”(시편 109편 주석)라고 탄식하였습니다. 사실상 로마교는 인간 선행에 의한 칭의의 교리와 인간 교황을 중심한 교권주의의 야욕에 의해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한 것입니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로마교에 반대하여 하나님을 중심으로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강조하였습니다. 루터는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하시고 사시는 사람의 선행은 오직 하나님께 찬송과 영예를 바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돌리기 위해서만 도움이 될 뿐이다”고 하였으며, 칼빈도 “우리가 선택 받은 것뿐 아니라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 그 자체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서 제1문답이 요구하는 것처럼 그들에게 있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첫째, 우리의 삶과 사역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영광이 오직 하나님께’라는 말은 '하나님을 먼저 하나님 되시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 우리 몸을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 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고 말씀합니다. 성령으로 변화된 사람들이 이것을 받아들입니다. 성령으로 변화된 사람은 몸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최선의 방법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로마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롬 12:1)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우리가 드려야 할 '영적 예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한 삶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신자의 마땅한 행위입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를 바르게 드리지 못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것입니다. 합당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면 진노를 당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은 이 문제에 실패했습니다. 가인도 예배에 실패했고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해 애굽의 포로에서 해방시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가서 예배에 실패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경제의 신입니다. 부도덕한 방법으로 바알과 아세라를 섬겨 결국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고 말았습니다.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시29:2)라고 했는데 합당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 예배를 회복시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하는 자를 찾는 다고 예수님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요4:23-24).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 세상에 탄생하셨습니다.

"(눅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그러나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습니다(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예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단 번에 산 제사를 드림으로 누구든지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영광으로 인도하셨습니다(골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되었습니다(요 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기 때문입니다(고후 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인격과 사역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육신으로 나타나신 분이십니다. “그는 하나님 영광의 광채시며 그 본체의 형상이십니다(히1:3).” 예수님 자신도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해주십시오(요17: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광의 영(벧전 4:14)이신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너희와 영원히 함께하실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실 것이며 그분은 진리의 성령이시며 그분이 너희 안에 계시고 너희는 그분 안에 있을 것(요14:16-18)”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러한 은혜를 입은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롬5:2)” 할뿐만 아니라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서 바울 사도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가 어떤 예배이겠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먼저 예수님을 주님으로 시인하여야 합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11).”

무엇보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예배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예배에서 인간적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배의 유일한 대상이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종교 개혁자들은 예배는 인간 중심의 축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높이는 진정한 경배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인간 높이기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가 엔터테인먼트와 혼돈되고 설교가 복음과는 상관없이 자기개발과 자아존중 또는 자아성취로 변한다면 결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람에게 사랑을', '오직 세상에 행복을', '오직 사람에게 기쁨을 주기 위하여'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종교 개혁자들은 “내가 어디서 와서, 왜 여기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로마서 11:36)에서 찾았습니다. 종교 개혁자들은 ‘하나님 앞에서’(코람 데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습니다. 인간 중심이냐 하나님 중심이냐에서 하나님 중심을 부르짖은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바른 복음이 전파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고후 4:4)”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응답행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인간의 응답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회개하고, 용서받고, 하나님 앞에서 위로받고, 소망으로 일어서고, 하나님 앞에 결단하여 아멘 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장 20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라고 기록했습니다. 아멘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신뢰한다는 증거입니다. 아멘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믿음의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시편 50장 15절에 보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말렉과 전쟁 때도 모세가 기도했습니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옆에서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도록 받쳐주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상황에서든지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면 이기게 하시고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죄인이 회개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우리는 신앙 고백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7절에 보면,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가를 많이 작곡했던 조셉 하이든이 존 밀턴의 [실락원]에 근거해서 [천지창조]를 작곡하여 비엔나에서 공연되었을 때 그는 몸이 몹시 아파 환자로서 뒤에 앉아 있었답니다. 연주가 끝났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일어서서 지휘자에게 박수를 보냈답니다. 그 때 지휘자는 청중들의 박수를 중단시키면서 뒷자리 발코니에 앉아 있는 하이든을 가리키며 "저 사람입니다. 저 분이 이 놀랍고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했습니다."라고 말했답니다. 그 때 자신을 향해 환호하며 박수치는 청중들을 중단시키며 하늘을 가리키면서 "아니요.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분이 모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늘로부터 온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 분께만 영광을 돌리십시오."라고 했답니다. 위대한 음악가 요한 세바스챤 바하는 "모든 음악의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보내고 사람에게 즐거운 감정을 솟아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작곡한 칸타타나 오라토리오의 마지막 부분에 항상 S.D.G라는 글자를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의 첫 번째 글자들입니다. 우리 삶 전체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예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우리의 삶과 사역은 믿는 형제끼리 관계에서 형제 사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성도끼리 우상 제물에 대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황제 숭배와 우상숭배가 성행한 때였습니다. 우상에게 제사드린 고기가 시장에서 팔렸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으니까 우상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이 있었고 어떤 사람은 먹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교회 내에 갈등과 다툼이 생기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그것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23절을 보십시오. 모든 것이 가하다는 것입니다. 먹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칙이 있습니다. 먹어도 괜찮지만 24절을 보십시오. 남을 위해 하라는 것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자기 자신의 자유를 고집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라는 것입니다(31) 제물이라고 말하면 그 사람을 위해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자기의 권리만을 주장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라는 말입니다.(33)

성도끼리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까? 덕을 세우는 원리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이런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바울 파, 아볼로 파, 게바 파 등과 같은 파벌이 있었습니다(고전1:10-). 교회 내 성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계모를 범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법정 소송문제가 있었습니다. 우상 제물에 대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방언과 은사에 대한 다툼이 있었습니다. 이것에 대한 결론적인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13장에 나오는 사랑입니다. 13장 1-3절까지를 읽어보겠습니다.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형제 사랑의 원리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 17:24)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롬 15:5-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5장 7절 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의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우리 성도는 서로 사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셋째, 우리의 삶과 사역은 믿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영혼구원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불신자 앞에서는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27절을 보십시오.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무엇을 말씀합니까?

3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거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나”는 믿음이 약한 자들을 말합니다. 사람의 실족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33절을 보겠습니다.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비유 맞추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사람들의 환경에 적응하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유익보다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기의 유익에만 집착하지 말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추구하고, 자기 개인 구원에만 몰두하지 말고 많은 사람의 구원을 위해 힘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어떤 결과가 나옵니까?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고 말씀했습니다. 착한 행실을 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악한 행실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배당 전면에 예수님의 모습이 스테인드글라스로 표현된 교회가 있었답니다. 어느 주일예배 때 목사님이 설교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앞자리에 앉은 어린이가 엄마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답니다. "엄마, 목사님이 없어지니까 예수님이 보여요." 어린이의 이야기를 들은 목사님은 큰 깨달음을 얻었답니다. '아, 내가 예수님을 가릴 수도 있구나.'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남에게 사랑을 베풀고,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세상 사람이 ‘기독교인은 과연 다르다.’라고 생각하며 주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저절로 많은 사람이 주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며 선을 베풀고 살아갈 때,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삶으로 복음을 전하여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롬 15:9)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게 하는 것이 복음전도이고 선교입니다. 복음전도와 선교는 모든 사람과 민족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기뻐하게 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세우려는 것이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믿지 않은 사람에게 전도와 선교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넷째, 우리는 우리의 삶과 사역은 우리에게 맡겨준 사명을 완수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31절을 보십시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모든 일”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7장 4절에서 “.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명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말씀입니다. 평생 사명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죽음을 앞에 놓고 계신 예수님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십자가의 사명을 붙드신 것입니다. 죽음으로 완성한 사명입니다. 조롱받는 길입니다. 수치를 당하는 길입니다. 자존심이 뭉개지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완수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결과제일주의와 결과만능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주의나 성공주의 신화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인정받은 ‘잘 됨’이나 ‘성공’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아닙니다.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아닙니다. 무슨 일을 하던 우리가 낮아지고 하나님만 높이려 하는 자세가 바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라는 사상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적 영광은 우리의 손에 달린 것도, 우리의 행동에 의해 좌우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만이 영광의 주체이시며 동시에 그 영광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은 우리를 통해 나타나는 현시적 영광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미국 남동부 조지아주 애선스의 조지아대학교 강당에서 3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졸업식이 열렸답니다. 졸업식 때 사회자는 4.0만점에 4.0을 받아 전체 수석을 차지한 한국인 여학생 ‘장시온’씨의 이름을 호명했답니다. 그녀가 대형 스크린에 비춰지자 졸업생과 참석자들은 환호와 함께 기립박수를 쳤답니다. 이 대학은 졸업생들이 각자의 학사모를 꾸미고 입장하는 전통이 있는데 장씨는 이날 학사모에 'To God Be The Glory(하나님께 영광)'라는 문구를 썼다고 합니다. 그녀는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의 딸로 태어나 인천 달동네에 살았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는 아버지 따라 지방부흥회에 갔다가 뜨겁게 성령을 체험했답니다.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여행을 간 어린 딸은 아버지에게 "저 여기 남게 해 주세요. 여기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거예요"라고 말했답니다. 만약 이 학생이 맨날 컴퓨터 게임이나 하고 매주일 영화나 보고 다니고, 술집에 드나들다 꼴지를 했는데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글을 쓴 학사모를 쓰도 나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습니까? 홀로 귀국한 아버지는 딸 걱정에 밤새 잠을 못 이뤘지만, 아이는 약속대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각고의 노력 끝에 대학 4년을 전액 장학생으로 조지아대에 입학했고 목회자 남편을 만나 믿지 않는 성도들을 전도하고 정성껏 양육하는 사모가 되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언제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은 자기 높이기의 유혹을 평생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고 삽니다. 누군가 조금만 몰라주어도 서운하고 조금만 자신에 대하여 비난을 하면 참기 어려운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성공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미국에서 '황색의 빌 게이츠' '시애틀의 한인 억만장자'라고 불리는 사람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미국 애리스 사의 폴 송 회장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그는 27세의 나이로 부인과 함께 1천 달러로 정보시스템 컨설팅회사인 애리스 사를 만들어 10년도 못돼 직원 900명 연간 매출액 1억 1천만 달러(1320억)를 넘는 회사로 성장시켰답니다. 그는 그렇게 된 데는 그의 가족과 기도 때문이라고 서슴없이 말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였습니다.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하루 종일 교회 활동으로 자녀에게 매달릴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키워 주기를 기도하며" 미국 주류 사회 속에서 성공해 하나님과 한국의 이름을 빛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쓰임 받기를 원했답니다. 꼭 출세하고 돈을 벌어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삶의 비전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한 제일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백하게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서는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뿐 아니라 모든 피조 세계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셨다고 말씀합니다(시19편). 우리를 나에게 맡겨준 사명을 완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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