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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하나님(4) 신체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성령님(고린도전서6:19-20)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84345 추천수:4 218.147.218.173
2024-09-22 09:39:46

성령 하나님(4) 신체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성령님

고린도전서6:19-20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시골에서 신앙 생활하다 서울 아들 집에 와서 사는 권사님이 새벽마다 새벽 기도회를 갔답니다. 키가 작고 못생겼다고 어릴 때부터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답니다.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답니다. 하루는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데 골목길에서 어떤 남자가 같이가~ 처녀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놀라서 뒤 돌아 보지 않고 빨리 걷는데 계속 "같이 가 처녀~ 같이 가 처녀~"라고 하더랍니다. 권사님은 속으로 ''아니 내가 아직도 처녀처럼 보이나, 내 뒷모습이 그렇게 예쁜가''라고 생각했답니다. 권사님은 누군지 보고 싶었지만 남자가 실망할까 봐 차마 뒤돌아보지 못하고 집으로 왔답니다. 집에 돌아온 할머니께서 싱글벙글하자 손자가 물었답니다. "할머니. 오늘 무슨 좋은 일있었어요?" " 아까 새벽기도하고 집에 오는데 어떤 남자가 나한데 처녀라고 그러더라." 손자는 믿기지 않아 " 잘못 들은 건 아니고요?"라고 말하자 권사님은 정색을 하며 " 아니야. 내가 분명히 들었어. 같이 가 처녀.... 라고 했어." "그게 누군데요?"

"그건 모르지, 하여튼 남자들은 예쁜 건 알아 가지고.....?" "그럼 내일 보청기 끼고 다시 들어보세요"라고 손자가 말했답니다. 이튿날 권사님은 보청기를 끼고 새벽 기도회를 갔는데 역시 그 남자의 목소리가 뒤에 들려왔답니다. "갈치가~ 천원. 갈치가~ 천원"이라고 골목에 다니며 아침마다 갈치를 파는 사람의 목소리였답니다. 자신은 키가 작고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것을

신체 이미지(Body Image)”라고 말합니다. 신체 이미지란 자신의 신체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자기의 키, 몸무게, 얼굴, 머리 등 몸의 각부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긍정적 신체 이미지를 가질 수도 있고 부정적 신체 이미지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취업포털 알바몬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694명 중 93.5%"외모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답니다. 여학생의 96.0%, 남학생의 90.0%가 외모 콤플렉스가 있으며 여학생은 평균 2.8, 남학생은 2.2개의 부위가 불만족스럽다고 응답했답니다. 특히 '몸매 및 몸무게'가 전체 응답자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46.8%를 차지했답니다. 이어 '피부'(32.7%), ''(30.8%), '얼굴크기'(27.7%), ''(27.1%) 순이었답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59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직장인의 콤플렉스 3위는 영어, 2위는 학벌이었답니다. 1위는 무엇이었겠습니까? 43.3%로 외모가 가장 큰 콤플렉스라고 응답했답니다.

문제는 외모에 대하여 강박적 집착과 반복적 행동을 하며 정상적 삶에 지장을 받을 정도가 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체에 대하여 못생겼다고 과도하게 생각하고 집착하면 신체 이형 장애(신체 변형 장애)”라는 정신적 질환을 갖게 됩니다. 지나치게 외모에 집착하여 강박적 집착을 하고, 반복적 행동을 합니다. 불안으로 사회 활동을 회피합니다. 자신의 신체에 대하여 수치심과 혐오를 가지게 됩니다. 자존감이 심각하게 위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외모에 결함이 있다고 불만족하며 사람 만나기를 꺼리고 사회적 활동을 피하며 불안, 우울,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살고 심하면 극단적 행동까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은 자신에 대한 신체 이미지를 어떻게 가지고 계십니까?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신체 이미지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1. 성령 하나님은 우리 몸의 정체성 대한 신체 이미지를 성령의 전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정체성)

1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에 대하여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성령의 전이라고 말씀합니다. 거룩한 성령 하나님이 거하는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성령 하나님이 거할 수 있도록 내어 준 몸이라는 것입니다. 단순한 세포 덩어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체에 대한 정체성이란 단순히 신체적인 특징을 넘어, 개인이 자신의 몸에 대해 느끼는 가치, 소속감, 그리고 자기 인식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키가 크고 작은 것도 다르고, 눈 색깔, 머리카락 색깔, 피부색도 다르고 입과 눈의 모양도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마치 지문처럼 모두가 다릅니다. 그런 몸에 대하여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그 생각이 우리의 행동과 느낌에 영향을 주는데 이것이 몸에 대한 정체성입니다. 오늘 말씀이 기록될 당시 몸에 대하여 두 가지 큰 사상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영지주의 자들입니다. 인간의 몸은 세포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몸은 악하고 타락한 것으로 부정적이고 속박적인 것으로 여겼습니다. 몸을 경시하고 금욕적 삶을 통해 몸의 욕구와 본능을 억제하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둘째는 에피쿠로스 학파였습니다. 인간의 몸이 전부라고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몸의 감각을 중요시했으며 죽음 이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니 몸의 쾌락을 현명하게 관리하는 삶을 강조했습니다. 쾌락을 삶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던 에피쿠로스 학파는 최대이 선은 쾌락이고 최대의 악은 고통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신론 자들은 몸은 진화의 산물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물질이 스스로 존재했고 그것이 진화되어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하니까 몸을 우상화합니다. 몸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며 오직 몸을 신처럼 떠받들고 사는 것입니다. 금욕적 종교는 몸은 단순히 영혼을 품는 그릇에 불과하며 영적 삶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며 몸을 학대하고 영적 삶의 방해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몸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몸의 본질에 대하여 성령의 전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16-18절에서 우리 몸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찾아서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우리의 몸은 성령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령의 전이라는 것입니다. 키가 큰 사람도, 작은 사람도, 얼굴이 못생긴 사람도 잘 생긴 사람도, 동양인도 서양인도, 남자도 여자도, 젊은 이도 늙은이도 다 성령의 전이라는 것입니다. 단순한 세포 덩어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학대하여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체 이미지는 바로 몸에 대한 정체성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긍정적인 신체 이미지를 가질 수 있고 부정적인 신체 이미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몸에 대한 긍정적인 정체성을 가지면 남성, 여성과 상관없이 인종 및 민족과 상관없이, 장애나 비장애와 상관없이, 체중이나 외모, 나이와 상관없이 긍정적인 신체 이미지를 가지게 됩니다. 주인이 성령 하나님이시고 자신의 몸 안에 성령 하나님이 내주하시기 때문에 어떤 경우도 자기 수용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자기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도 하나님의 시작으로 자신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몸을 귀중히 여기며 하나님이 원하는 방법으로 몸을 가꾸게 됩니다. 규칙적인 운동, 균형 잡힌 식단, 충분한 수면 등 건강한 생활 습관은 몸에 대한 자신감을 높여줍니다. 다른 사람도 성령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생각하니까 다양성을 존중해 줍니다. 다양한 체형과 외모를 가진 사람들을 겉 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못생김의 심리학(이창주 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신체 이미지를 치료하는 전문의인데 신체 이미지란 말 그대로 몸에 관한 이미지인데 외모와 달리 밖이 아니라 안에서 바라보는 관점이라는 것입니다. 정신과 의사이자 외모심리학 저술가인 저자도 고등학교 때 전두 탈모가 발병하였답니다. 전두 탈모증은 면역세포가 모낭을 공격해 머리카락과 눈썹이 한 올도 남김없이 빠지는 질환이라고 합니다. 고등학생이던 발병 초기부터 재수, 의대 재학 기간 동안 대학병원에 다녔으나 치료에 실패했을 정도로 난치병이었답니다. '왜 하필 나일까? 내가 전생에 무슨 죄라도 지었을까? 머리카락이 나지 않으면 어쩌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저 절망적이고 세상이 원망스럽고 '머리카락이 나지 않으면 내 인생은 끝이다'하고 크게 낙심했다고 합니다. 동안 대학병원 피부과와 한의원에서 약물과 면역치료, 한방치료를 받았지만 효과는 전무했고 머리카락이 난다는 보장도 없는 데다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치료를 지속하고 싶지 않아 치료하는 것을 그만두었답니다. 그런데 7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외모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외모가 못생겨서 스트레스가 생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답니다. 자신의 몸에 대해 생각하는 느끼는 방식이 잘못되어 있었답니다. 신체 이미지는 타인의 눈에 담기는 상이 아닌 내가 나를 바라보는 내면의 거울인데 그 거울이 잘 못된 것을 깨달았답니다. 외모보다 외모를 바라보는 관점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했답니다. 자존감이 문제였답니다. 혼탁한 거울의 표면에는 어떠한 모습도 일그러지게 담기듯 낮은 자존감으로 형성된 신체 이미지가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으로 외모와 달리 당사자만이 인식하는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신체 이미지는 4가지가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개인사(personal history)라고 합니다. 신체 이미지는 지금까지 들어온 신체에 대한 이야기(Body Talk)의 축적물이라는 것입니다. 어릴 때 부모나 친구, 가까운 사람이 뚱돼지라고 말하거나 공룡 샘이라고 체형을 말하면 자신은 뚱뚱하다는 신체 이미지를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미디어에서 반복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나 동화에서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 주인공이 되고 못생긴 사람은 악당으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남성은 재력, 여성은 외모", "키 작은 남성은 루저다" “못생김 = 비참함, 실패한 삶/예쁜 얼굴 = 화려하고 즐거운 인생”, 성형 = 인생 역전" 등으로 이것이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체 이미지에 대하여 타인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세상 기준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인도하시는 우리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기준에 우리의 기준을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다양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성령 하나님이 거하는 성령의 전이 우리 몸입니다. 유일한 것이 가장 존귀한 것입니다.

로마서 814-17절에서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어떤 외모를 가지고 있다하여도 성도는 단순히 구별된 존재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며,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맺는 자들입니다. 성도는 상속자로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며,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존재입니다.

베드로전서 29절에서는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몸을 신묘막측하게 창조하시고 우리 몸을 피 값을 치루고 구속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 몸을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령의 전으로 삼으셨다는 말입니다. 외모를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까? 외모 때문에 좌절하며 주눅이 들어 살고 있습니까?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메스컴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메가폰을 들고 말씀하시는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너희 몸은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가 성령의 전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어부로서 별로 배움이 없는 부정적인 외모 이미지를 가질 만한 베드로가 성령 충만하니까(2:1-4). 외모에 상관없이 사마리아와 가이사랴의 이방 사람들에게 담대히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성령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11:17,15:8)".

평생 동안 육체적으로 질병을 가지고 있었고 외모가 변변치 못하다는 말을 들은 바울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외모와 상관없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2. 성령 하나님은 우리 몸의 가치에 대한 신체 이미지를 예수님이 대속으로 사신 보배로 변화시켜 주십니다.(가치)

사람이 부정적인 신체 이미지를 가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몸을 가치 없게 보기 때문입니다. <못생김의 심리학(이창주 저)>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신체 이미지는 4가지가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개인사(personal history), 두 번째는 미디어에서 반복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라고 하였습니다. 기준이 다 긍정적인 자아상이 아니라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게 하는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 전달해 준 것입니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이 아니라 피조물인 인간이 전달해 준 것입니다. 신체 이미지를 결정해 주는 4가지 중 세 번째는 객관적인 외모가 아닌 상대적인 외모 때문이라고 합니다. 외모 스트레스가 생기는 본질적인 이유는 상대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외모에 관한 생각이나 느낌은 고유한 생김새가 아닌, "비교"에서 비롯한다는 것입니다. 기준은 미디어에서 제시한 이상형이 된다는 것입니다. 남성은 키 180cm, 근육질 체형, 짙은 눈썹 여성은 쌍꺼풀, 높은 코, 긴 생머리, 마른 몸이라고 합니다. 성장 과정에서 반복 학습한 미의 기준을 척도 삼아 외모를 비교하고, 자신의 상대적 순위가 뒤처지면 열등감이 생기는 메커니즘이라는 것입니다.

넷째는 자존감과 신체 이미지의 상관관계를 말합니다. 외모는 삶의 질을 낮출 수 있는 다수의 요인 중 하나에 불과한데 거의 모든 경우, 신체 이미지가 건강하지 않으면 자존감도 낮고, 반대로 자존감이 낮으면 신체 이미지도 부정적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외양이 신체 이미지를 좌우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겉모습에 현저한 이상이 있어도 자존감의 높낮이에 따라 신체 이미지의 차이가 크다는 것입니다. 결국 신체 이미지는 타인의 눈에 담기는 상이 아닌 내가 나를 바라보는 내면의 거울이라는 것입니다. 설령 다른 사람의 눈에 부정적으로 비쳐도 내가 그 모습을 수용한다면 신체 이미지는 양호하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존감이 낮으면, 외모 스트레스에 취약해진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상대에 비해 외모만 보면서 가치 없게 판단하고 받아들여 그것이 자신이라고 단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 대하여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2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산 것이다라는 말씀은 누군가 내 대신 죄의 값()을 갚아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이지요. 자신의 피로 우리를 사신 분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신묘막측하게 창조하셔 성령 하나님이 거하는 전으로 만들었는데 바로 예수님을 댓가고 지불하고 우리를 사셨다는 말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우리의 육체와 생명과 존재가 모두 마귀에게 넘어가게 되어 마귀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전이 되지 못한 인간은 술의 노예가 되었고 돈의 노예가 되었고 정욕의 노예로 평생 살다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성령의 전이 아닌 몸은 진정한 자유가 없습니다. 69절 이하에 나오는 것처럼 몸은 불의, 음행, 우상숭배, 간음, 탐색, 남색, 도적, 탐욕, 술취함, 속임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마귀의 손에 넘어간 사람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지 않고 엄청난 값을 치루시고 사람들을 마귀에게서 사셨다는 말입니다. 무슨 값을 치루셨습니까? 하나님이 치룬 값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었습니다. 20:28에서는 그것을 "하나님의 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했습니다. 마귀의 노예로 죄악 가운데서 지내던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서 우리들에게 다시 돌려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은 우리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엄청난 값을 치루고 사셨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것으로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서 하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우리 몸은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놓기까지 댓가를 지불하고 산 몸이 된 것입니다. 고전 7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우리 한 사람만 있어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정도로 우리 몸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626절에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그 목숨을 바꾸겠느냐?"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씁니다. 한 사람의 생명과 영혼이 온 세상의 재물이나 가치보다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과 존재가 하나님의 눈에 매우 소중하며,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보다 더 큰 가치가 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누구와 비교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이고 고유한 특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생명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하고 고유한 존재입니다. 나와 같은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유일한 존재입니다. 각 개인은 천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입니다. 비교의식이 아니라 절대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환경과 조건을 초월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키 작다고 숨는 나무는 없습니다. 떠도는 유머 중에 좋은 소식 vs 나쁜 소식 vs 환장할 소식이라는 유머가 있습니다. “좋은 소식 : 아이가 상을 타왔네. 나쁜 소식 : 옆집 애도 타왔네. 환장할 소식 : 아이들 기 살린다고 전교생 다 주었다네.” 인간은 늘 비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우리를 하나님의 유일한 작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해 나으면 우월감으로 모자라면 열등감에 사로잡힙니다. 유일한 것이 가장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은 1400억원에 팔렸다고 합니다. 고갱의 언제 결혼하니2500억원에, 세잔의 카드 놀이하는 사람들3000억원에 쿠닝의 인터체인지3600억운에, 다빈치의 구세주5300억원에 팔렸다고 합니다. 모나리자의 가치는 40조원이 된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가치가 있습니까? 그린 사람의 가치과 그의 유일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분은 누구입니까?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대가를 지불하신 분은 누구입니까? 성자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어졌고 십자가의 댓가를 치르고 사심받은 사람이며 성령 하나님이 거하는 전입니다. 몸이 살아 있다는 것 자체로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입니까? 우리 몸의 가치에 대한 신체 이미지를 존귀한 존재로 우리가 인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외모가 어떠하든 하나님은 성령의 전인 우리를 향해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시편 16:3)”라고 말씀합니다.

<상처받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기(유은정 저)>라는 책을 쓴 저자는 미국에 있을 때 내적 치유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의학박사를 받은 정신과 전문의로 당시 자신은 예수님의 치유 방법이 정말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을지 궁금했답니다. 세미나 장소에 가기 위해 캘리포니아의 돌산을 지나 한없이 달렸답니다. 가기 전에 기도를 응답을 받았는데, 이 세미나에 가면 금은보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기대감이 더 충만했답니다. 그런데 34일의 세미나 기간 동안 별다른 일이 없었답니다. 그냥 일반적인 세미나와 비슷했답니다. 갑자기 속이 상했답니다. 그래서 마지막 통성기도 시간에 울면서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이게 뭡니까? 돌산을 뚫고 왔는데 금은보화는 대체 어디 있나요?' 그때 이런 마음이 들었답니다. '금은보화는 바로 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43:4)”

', 금은보화가 나구나! 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을까?'라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그때까지 저자는 정말 열심히 살았답니다. 엄마 말씀도 잘 들었고, 공부도 열심히 했고, 환자도 열심히 진료했답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저자 자신을 칭찬해준 적이 없었답니다. 이날 저자는 완전히 무너졌답니다. 인간은 진화된 동물이 아닙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습니다. 세상에 어떤 복제품도 없는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값으로 사신 바 된 사람들입니다. 자존감의 중요한 요소는 자기 가치감, 소속감, 자신감 등입니다. 외모에 상관없이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가치 있는 존재라고 말씀합니다. 시각, 청력도 잃었지만, 작가, 교육가, 사회운동가로서 헬렌 켈러는 유일하게 쓰임받았습니다. 30세가 넘어 갑자기 하반신을 전혀 못 쓰는 소아마비가 되었지만,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장애를 이기고 미국 32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한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 씨는 한 손에 손가락이 두 개씩 있고 무릎 아래로는 다리가 없는 선천성 사지기형 1급 장애인입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제 손가락이 열 개였다면 아무도 저를 신기하게 보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이런 몸으로 태어난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게 됐죠. 그래서 저는 손가락을 네 개만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해요. 이 세상에서 오직 저 하나밖에 없는 아주 보물 같은 손이잖아요." 모세가 자신은 말을 잘 못한다고 할 때 하나님은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4:2)”고 말씀했습니다.

 

3. 성령 하나님은 우리 몸의 목적에 대한 신체 이미지를 하나님께 영광의 도구로 변화시켜 주십니다.(목적)

왜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몸을 댓가로 지불하면 우리의 몸을 사서 성령 하나님이 거하는 성령의 전으로 만들었습니까? 목적이 무엇입니까? 20절 하반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삶의 목적을 알지 못하니까 몸으로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다 가하다고 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13절을 보십시시오. 우리 몸이 주를 위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분명히 목적과 방향이 있는 것입니다. 거울에 비추어진 내 몸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합니까? 소셜 미디어에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열등의식을 가지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저도 하나님이 주신 신체 이미지를 가지고 살지만 사워를 하며 거울을 보면 초라하게 늙은 몸을 봅니다. 우리 몸은 나이 먹으면 점점 낡아 집니다. 10대에 치장, 20대에 화장하고, 30대에 분장하고, 40대에 변장하고, 50대에 위장하고, 60대에 포장하고, 70대에 환장하지만 80대가 되면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치장하고 포장해도 40대 아줌마가 되면 지식의 평준화가 되어 많이 배운 여자나 못 배운 여자나 그저 그렇답니다. 50대가 되면 미모의 평준화가 되어 예쁜 여자나 미운 여자나 비슷하답니다. 60대가 되면 자식 잘 둔 여자나 못 둔 여자나 비슷하고 70대가 되면 남편이 있는 여자나 없는 여자나 비슷하고 80대가 되면 재산의 평준화가 되어 돈이 있는 여자나 없는 여자나 비슷하다고 합니다. 90대가 되면 수명의 평준화가 되어 집에 누워 있는 여자나 산에 누워있는 여자나 비슷하다고 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어느 때나 우리 몸은 성령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기 원하는 값 주고 사신 성령 하나님의 것입니다. 다윗을 외모로 보고 하나님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중심을 보고 사용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키 작은 삭개오를 외면하거나 결멸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칭할 정도로 병약한 체질을 가지고 있는 칼빈의 몸을 사용했습니다. 과체중인 마르틴 루터와 스펄전을 사용하여 종교 개혁과 부흥운동을 일으켰습니다. 키 작고 약한 체력과 소모성 질환을 앓고 있는 윌리엄 월버포스를 사용하여 영국에서 노예제를 폐지하였습니다. 여성으로 잘 생기지 못하고 키작은 마더 테레사를 사용하여 수많은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였습니다. 무학으로 외모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드와이트 무디를 복음 전도자로 사용하였습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만족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디어, 광고, 소셜 미디어 등은 보며 비현실적인 신체 기준을 가지고 외모 스트레스를 받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존재 이유와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변경해 주신 신체 이미지를 가지고 어떻게 하는 것이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까?

첫째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성전이 있는 목적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로마서 12:1)

둘째 주님을 증거하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페니 크로스비는 생후 6주만에 맹인이 되었지만 92세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은혜로운 영혼의 찬송 10,000여편을 씀으로 주님을 증거하는데 한 시대 강력하게 쓰임받았습니다. 팔 다리 없어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세상을 돌아다니며 하나님을 전하는 닉 부이치치를 보십시오. 그에게는 외모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첫째, 내가 인생에서 얻게 된 가장 큰 기적은 영혼이 구원받는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시는 동안 그분과 관계를 맺었다고 합니다. 둘째, 그분은 이 세상의 어리석은 자들을 사용하여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이라고 합니다. 그는 78개국에서 3,500회 이상의 연설을 했으며, 이 여정을 통해 거의 1,000만 명에 달하는 이들과 직접 만났고, TV를 통해 28억 명에 달하는 이들과 여정을 공유했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1:27-28)"라고 말씀합니다.

셋째 몸을 잘 관리하여 구별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은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세상 방식을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을 다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수는 없습니다. 잘 관리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5:29)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을 돌보고 보호하는 것처럼, 우리도 몸을 잘 관리하고 건강하게 유지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그 몸으로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헨델은 1737년 파산한 뒤에 헨델은 중풍과 건강의 악화로 고통을 당하였고 56세가 되었을 때, 거의 파산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때 23일간 기도하면서 때로는 음식을 전폐하면서 작곡에 몰두하여 "할렐루야"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는 68세 때 완전히 실명하였지만 좌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도하며 위대한 음악을 남기고, 장애에도 불구하고 음악 연주회를 지속하였습니다. 그는 중풍과 허약한 육체, 시각 장애를 격으면서도 "내가 나서 자라난 신앙 안에서 살다가 죽겠노라"고 말하며 끝까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실낙원의 저자 밀톤은 1652년 실명하였습니다. 어려움은 계속 닥쳐왔습니다. 아내는 떠나고, 아들은 죽었습니다. 자신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뻔했습니다. 실명한 상태에서 딸로 하여금 한구절 한구절 받아쓰게 하여 "실락원(Paradise Lost)"1667년에 완성하였고, 이어서1671년 복락원(Paradise Regained)과 투기사 삼손(Samson Agonistes)을 합본으로 완성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는 성령님께서 변경해 주신 신체 이미지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 몸의 정체성 대한 신체 이미지를 성령의 전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정체성)

성령 하나님은 우리 몸의 가치에 대한 신체 이미지를 예수님이 대속으로 사신 보배로 변화시켜 주십니다.(가치)

성령 하나님은 우리 몸의 목적에 대한 신체 이미지를 하나님께 영광의 도구로 변화시켜 주십니다(목적).

오늘 본문을 너희라는 말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큰 소리로 한 번 읽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4.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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