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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하나님(3) 능력을 변화시키는 성령님(행4:18-20)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9541 추천수:4 218.147.218.173
2024-09-15 03:26:00

성령하나님(3) 능력을 변화시키는 성령님

사도행전4:18-20

 

이번 주에는 추석 명절이 있습니다.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정은 제사 문제로 고민하기도 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기도 합니다. 104세로 천국에 가신 방지일 목사님이 가정도 그랬답니다. 지금은 조금 덜하지만 과거 유교 중심 사회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쉽지 않았답니다. 목사님의 가문에서 방만준 할아버지가 처음 예수님을 믿었는데 집에서 20여리 떨어진 철산읍 교회까지 주일 예배, 새벽기도회, 수요 예배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출석했고, 온전한 십일조와 이웃돕기를 솔선해서 했답니다. 예수님을 열심히 믿으니 가문에서 장손인데 조상에게 제사하기 싫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핍박을 받았답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니 문중에서 추방되었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빈손으로 나왔는데 예배를 드리고 나오면 친척들이 숨어 있다 붙들어 짐승처럼 잔인하게 두드려 팼답니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은 보고 방목사의 아버지도 나도 예수를 믿어야 하겠다고 예수님을 믿고 목사가 되어 중국 선교를 하였답니다. 이렇게 할아버지는 장로님이 되고 아버지는 목사님이 되어 신앙 가문을 이루었는데 후손이 400여 명이 되었고 그 후손 가운데 85명의 목사와 박사가 나왔는데 150여 명이 모여 가족 수양회를 할 정도로 유명한 신앙 가문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추석 명절 앞두고 예배당에 나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배드리는 우리 성도님들도 이런 신앙의 명문 가정을 만드는 주인공이 되시길 바랍니다.

연약한 한 인간이 이런 가문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슨 능력이 있어야 할까요?

이런 일을 하려면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능력에는 물리적인 능력과 정신적인 능력, 영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어떤 것을 이루는 데는 돈과 권력 같은 물리적인 능력도 중요하고 지식이나 도덕같은 정신적인 능력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자손이 예수님을 믿고 사회에 공헌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신앙의 명문 가정을 만드는 데는 영적인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한 시골 농부를 예수님을 믿게 만들어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었는데 무능하고 연약한 우리가 어떻게 능력있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을까요?

 

1.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능력있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어느날 베드로와 요한이 40년 동안 앉은뱅이로 고생하는 사람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쳤습니다. 그때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어떻게 합니까?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불러 경고하고 위협했습니다.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 말라고 위협했습니다. 이때 이 위협 앞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9절을 같이 읽겠습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하라고 담대하게 말합니다. 이들은 이런 말을 하면 유대 사회로부터 추방당할 수 있었습니다. 추방 뿐 아니라 감옥에 갇힐 수도 있고 예수님처럼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힘 있는 자들 앞에서 나약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들은 과거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예수님이 잡히시자 권력자 앞에서 다 도망간 자들입니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고 도망한 사람입니다. 배신자였습니다. 능력이 없었던 자들입니다. 비굴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변했을까요? 그렇게 죽음이 무서워 도망했던 자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하니까 3천 명, 5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행2:41). 어부이고 무식했던 베드로가 이런 능력자로 변했습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고 40년 동안 고통받으며 사는 사람을 기적적인 방법으로 일으켜 세우는 능력자가 되었습니다. 5장 15-16절을 보십시오. 각종 병자들을 치유하십니다. 사람들이 그의 그림자라도 밟으려고 찾아 듭니다. 사도행전 9장 40절을 보십시오. 죽은 다비다를 살리는 능력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것같은 일을 하시는 능력자가 된 것입니다.

 

무엇이 무능한 베드로를 능력의 사람으로 변화시켰겠습니까?

8절에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라는 말입니다. 성령 충만할 때 무능한 자도 능력자로 변화됩니다. 자연인으로 자신이 계발한 능력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 사용하는 통로가 되어 무에서 유를 만드는 성령님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4절을 찾아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두려워서 비겁하게 도망갔던 사람들이 수많은 말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입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14장 12절에 이미 이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한복음 14:12)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죽은 자를 살리신 것처럼, 그를 믿는 자들은 그와 같은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놀라운 기적들을 행한 것도 이러한 약속의 성취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심으로 인해, 복음이 전 세계에 퍼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 약속대로 오순절 성령 하나님이 임하셨고 성령 충만한 사도들은 능력의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흙수저이고 가진 것 없고, 배우지 못해 능력 없다고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사업을 할 때, 공부할 때, 가정생활을 할 때, 직장 생활을 할 때 능력의 한계 앞에서 포기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성령 충만하면 우리에게 맡겨준 일을 넉넉히 감당할 능력이 생깁니다. 성막을 짓는 브사렐을 보십시오(출31:3).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충만히 임하니까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를 발휘하여 성막을 짓게 됩니다.

이루어야 할 일은 막중한데 지혜 없다고 가방끈 짧다고 인생 망했다고 단정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성령 충만하면 지혜가 생깁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가 되어 안수를 받을 때 지혜의 영이 그에게 충만히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령 충만하여 백성들을 다스리니까 어떻게 됩니까?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신34:9) "라고 말씀합니다.

집안이 변변치 못하고 과거가 지저분하다고 자꾸 환경의 노예, 과거의 노예가 되어 무능력하게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하면 사람이 이해 못하는 강력한 힘이 생깁니다.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시니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습니다(삿 14:6)" 능력의 한계를 초월하게 합니다.

소심하고 성격이 모났다고 내 인생 성격, 성품대로 살 것이라고 자포자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하면 담대해 집니다. 성령 충만한 부모 밑에서 낳아 성령 충만한 세례 요한을 보십시오.(눅1:15, 41, 6) 담대하게 천국을 전하고 그 악한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였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이 생깁니다.

성령 충만한 스데반을 보십시오.(사도행전 6:5절 행7:55)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말씀을 전합니다. 담대하게 사명을 감당하게 합니다.

영적 능력이 없다고 비굴하게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하면 강력한 영적 능력이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 충만하여 엘루마를 꾸짖으니까 엘루마는 소경이 되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행13:9)

능력이 없어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하면 바른 길로 인도를 받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 성령 충만한 바울은 아시아에서 전도하고자 했으나 성령께서 허락하지 않으시자 성령의 인도에 따라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욕심이 너무 강해 욕심을 이길 능력이 없다고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하면 육신의 욕망을 극복하게 합니다. 사도행전 11:24의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여 육신의 욕망을 물리치고 성령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2. 그러면 우리가 성령 충만 받아 능력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임하여 말씀을 들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게 만들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능력 있는 재벌 아들로 태어나는 것은 내가 원해서 재벌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재벌이 낳아 주어야만 그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우리가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내가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 하나님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게 만들어 능력의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지는 것이니다. 그렇다고 예수 믿는 우리가 모두 능력 있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재벌 아들이 되었다고 그냥 초등학생이 회장이 되어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받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받았다고 바울처럼 세계 선교를 감당하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베드로처럼 3천명을 회개시키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스데반처럼 죽음 앞에서 순교하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는 것과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능력 있는 삶으로 변화되려면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능력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성령 충만을 받야 하겠습니까?

 

첫째, 기도하여야 합니다(29)

29-3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일이 일어나도록 기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3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기도하니까 신비한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오순절의 성령 충만도 기도하다 받았습니다(행1:14-2:4). 행8:15-17에도 기도하다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왕하2:9 엘리사도 구하여 받았습니다. 베드로가 사도행전 3장 6절에 보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3:6)”라고 외쳤습니다. 이것은 선포적 기도입니다. 기도에는 간구적 기도도 있고 축복적 기도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눅 11:13)” 베드로가 그렇게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할 때 성령 충만 받은 베드로를 성령 하나님이 사용하여 성령의 능력을 그를 통해 나타내는 것입니다. 파리도 비행기를 타면 파리 에벨탑까지 갈 수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하면 결국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밖에 못하지만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일하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타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무능력 앞에서 절망하는 자들을 향하여 오늘도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마가복음 11:23-24)

<여기 저 살아 있어요>라는 책이 있습니다. 악마의 통증이라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을 앓고 있는 김소민 자매의 간증집입니다. 발명의 원인도 알 수 없고 치료법도 없는 희귀병이라고 합니다. 이 통증은 인간의 통증을 10으로 수치화할 때 산모의 통증이 7이라고 하면 9-10 정도를 계속 느끼는 통증이라고 합니다. 전신의 뼈는 으스러지면서 드릴로 뚫리는 것같고 피부는 불에 타서 진물이 나고 속살에 알코올을 들이붓는 것 같은 통증이 지속된다고 합니다. 24시간 지속되는 통증과 수시로 찾아오는 돌발통은 먹고, 자고, 싸는 인간의 기본적 행위조차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 그만 두고 어머니가 교사여서 어머니와 같이 교사가 되기 위해 시험을 준비하던 스물여덟의 여름에 어느날 갑자가 이 병에 걸렸답니다. 죽음 외에는 통증을 끝낼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28살 생일 때는 ‘나에게 온 시련을 열심히 이겨 내서 다시 웃자’라고 써지만 29 살 생일 때는 ‘내가 이 세상에 맞이하는 마지막 생일’이라고 적었답니다. 어릴 때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할머니는 매일 아침 식사를 마치면 2-3시간 쇼파에 앉아 기도했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자식과 손주들의 이름을 한명씩 한 명씩 불러가며 세세한 부분까지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함께 동네에 나가면 손녀를 자랑했고 전화를 하면 언제나 응원을 해 주셨다고 합니다.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 주었는데 신앙생활을 하며 여러 굴곡이 있었지만 끝까지 교회를 떠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외할머니 때문이었답니다. 미주알 고주알 고민을 이야기 하면 할머니는 늘 “하나님 잘 믿는 것이 제일이야”라고 말하곤 했답니다. 그 고통 가운데서도 견디게 해 주는 힘은 할머니가 있었기 때문인데 그 할머니가 폐암으로 돌아가시고 난 후 모든 희망을 포기해 버렸답니다. 더 이상 살 희망이 없어졌고 자살 충동과 자해 행위만 심해졌답니다. 그런데 외할머니가 천국에 간 1주기 추모식 때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수술실에서 천국에 간 외할머니가 자신에게 내려준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감사기도를 했답니다. 그는 3대째 신앙인으로 어릴 때 교회를 잘 다녔지만 스무 살이 된 직후부터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주일 예배는 격주제라고 신앙과는 조금 멀어졌다고 합니다. “하나님 제가 지금은 하나님을 잠깐 떠나 있지만 하나님은 제 새끼 손가락이라도 붙잡고 있어 주세요 그러면 언젠가 다시 돌아갈께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살아도 그의 삶은 탄탄대로였답니다. 인생은 자신이 세운 계획대로 착착 흘러가고 있었고 세상은 즐거운 것들로 가득찼으며 에너지가 넘치는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마치 이 세상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같았답니다. 그런데 극단적인 고통 속에서 믿음이 생겼다고 합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언제나 나를 최고의 길로 이끌어 주시는 분이니까 나는 아직 그뜻을 알지 못할 뿐이야”라고 되뇌며 매순간을 버텼답니다. 예배당에 나가 예배를 드리다가 여러 번 119에 실려갔지만 그래도 예배에 나가 기도했답니다. 어머니도 교직을 그만 두고 기도하며 간호해 주었답니다. 4년 만에 처음을 잠을 5분에서 30분으로 점차 2시간이 넘도록 잘 수 있었답니다. 두 발로 걷기 시작했고 매일 가족이 모여 10분 동안 가정 예배를 드리며 찬송가 471장을 “주여 소민이의 병든 몸을 지금 고쳐 주소서, 모든 병을 고쳐 주마 주 약속하셨네 내가 지금 굳게 믿고 주님 앞에 구하오니 주여 크신 권능으로 곧 고쳐 주소 아멘” 찬양을 불렀고 그 찬양으로 하루 종일 통증을 버텨내며 위로을 받았다고 합니다. 운전 드럼 자전거 수영은 더 이상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지금은 수영만 제외하고는 다 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불가능이 가능으로 변한 것입니다. 담당 교수님은 그의 회복은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것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육신적 고통은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고 살게 만드는 마음의 근육을 키워주었다고 합니다. 그 책에서 마지막 그는 “살날이 너무 많이 남은 것이 괴로웠던 한 청년이 이제 남은 날이 너무나도 기대된다”라고 마감하고 있습니다.

 

둘째, 믿어야 합니다.

이 사람에게 40년 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능력이 임한 것은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3장 1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성령님은 그 사람의 믿음을 통로로 능력을 부여하십니다. 베드로도 믿음으로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3:6)”라고 외쳤습니다. 베드로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 믿음으로 성령 충만한 베드로가 외치가 성령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믿음을 통하여 성령 충만케 하여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7-39)" 어떤 사람이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것 같이 성령의 능력이 나타납니까? 믿는 자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해 성령 충만한 능력의 사람으로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9장 23절에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온전히 성령 하나님께 내 인생과 나의 문제를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으로 어떤 어려움도 이기게 만들어 주십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한일서 5:4)

 

셋째, 회개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시도행전 2:38을 찾아 읽어 보십시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성령은 거룩한 영이기 때문에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받습니다. 회개는 잘못을 깨닫고 통회 자복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행동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5장 32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행 5:32)" 성령의 역사하심에 순종할 때 성령의 능력의 사람으로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능력이 임하였는데 행1:12-14의 행동은 곧 행1:4,5의 말씀에 순종할 때 이루어진 변화입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처음부터 능력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받아 회개하고 성령 하나님께 순종하니까 성령님의 능력이 그를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 충만이 무엇인지를 잘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이 어떤 것이가를 잘 설명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성령 충만과 술 취함이 어떤 유사성이 있는 것을 보여 줍니다. 사도행전에 보면(행2:12-16) 성령 충만을 받았을 때 사람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고 했습니다. 술 충만하면 어떻게 됩니까? 술이 사람을 지배해버립니다. 술은 각성제이기 보다는 억제제입니다. 알코올은 중추신경을 자극하여 자율신경을 제 기능을 못하게 하고, 지혜력, 이해력, 판단력, 균형 감각 등을 억제해 버립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못하도록 해 버립니다. 술에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완전히 무능력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성령 충만도 성령에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생각이 성령에 지배를 받고, 감정이 성령에 지배를 받고, 의지가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행동이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충만하면 충만할수록 더욱 지배력이 강화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과 술 충만은 강력한 힘이 있지만 질적으로 다릅니다. 술 충만하면 무능력자가 되어 결과가 방탕하게 됩니다. 무질서하게 하고, 혼돈 상태에 처하게 하고, 이해력과 품위를 잃게 하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게 하고 자제력을 잃게 합니다. 아무리 많이 배워도 술 앞에는 꼼짝을 못합니다. 아무리 권력이 있어도 술 앞에서 실수하고 망신 사는 권력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술 취하면 술이 사람을 지배해 버립니다. 건강한 사람을 환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멀쩡한 사람을 야수로 만듭니다. 지혜로운 사람을 우매자로 만듭니다. 부자를 거지로 만듭니다. 장래가 총망되는 젊은이를 바보로 만들어 버립니다. 행복에 넘치는 가정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돼지같이 더럽게 하고, 원숭이 같이 춤을 추게 합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시고 지혜를 주시는 성령님이 지배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이성과 감성, 의지를 지배하여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일으켜 세워주는 것입니다. 능력자로 만들어 줍니다. 이성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 영적 세계를 알 수 있는 능력자로 만들어 줍니다.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자로 바꾸어 줍니다. 시기를 잠재웁니다. 분노를 억제해 줍니다. 다툼에 올가미를 씌워 버립니다. 남을 비판하고 욕하는 입술을 닫게 만들어 버립니다. 의지를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하는 능력자로 만들어 줍니다. 지혜를 주어 총명하게 합니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선한 양심이 생겨 다른 사람의 의식하고 사는 자제력을 가지게 됩니다. 허랑방탕하게 낭비적 생활을 하던 사람이 절제할 수 있게 됩니다. 게으른 사람을 부지런하게 합니다. 불안하던 사람이 평안해지고, 슬픔에 잠겨 우울하게 살던 사람이 어떤 경우에도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도덕적인 삶이 회복되고, 인생의 목표가 회복됩니다. 창공을 나는 독수리처럼 새 힘을 얻게 합니다. 공동체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고 평강이 넘치게 합니다. 고약한 술 냄새 풍기지 않습니다. 더러운 말을 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인격을 가진 성령의 지배를 받으니까 바나바처럼 선하게 인격이 변화됩니다. 어둠 가운데 걸어 다니지 않고 방탕함과 온갖 더러운 것들을 취하고 행동하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비겁함이 없어집니다.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위협 앞에 비굴해지지 않습니다. 용감하게 예수님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수치스럽지 않습니다. 회개하고 순종할 때 성령이 충만해 지고 성령이 충만해 지면 내가 나을 다스릴 수 없고 내가 내 감정을 억제할 수 없고 내가 내 행동을 통제할 수 없지만 성령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다르려 주시고 통제해 주셔서 능력있는 사람으로 살도록 해주십니다.

 

능력이 없어 40년 동안 해도 해도 할 수 없는 질병 앞에 무능력하십니까? 태산 같은 걱정의 위협이 목을 조여 오고 있습니까? 죽음의 위협 앞에서 절망하고 있습니까? 돈의 위협이 있습니까? 권력의 위협이 있습니까? 부도의 위기에 있습니까? 성령 충만하여 용감하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질병아, 죽음아, 걱정아, 염려야, 죄야 물러가라"고 외쳐 보십시오. 우리 예수님의 이름 앞에 그 어떤 위협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힘으로 능으로 못하지만 성령의 능력이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스가랴 4장 6절을 통하여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할 때 태산도 그 앞을 막을 수 없습니다.(슥4:7) 성령의 능력으로 할 때 시작한 일은 기어코 마치고야 맙니다(9). 성령의 능력으로 하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멸시 받지 않습니다(10).

 

세상 어떤 사람도 줄 수 없는 능력을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의 능력을 바꾸어 주십니다. 무능력한 사람을 능력있는 사람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성령님을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성령님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회개하고 성령님에 순종하여 성령 충만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성령 하나님님께서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게 하여 능력의 사람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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