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하나님(1) 운명을 변화시키는 성령님
요한복음3:5-8
초등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갔습니다. 술을 마시고 퇴근하다 교통사고를 당하여 아버지가 입원했기 때문입니다. 같이 간 어머니가 “그만하면 다행이다”라고 말하며 “이제 술을 끊으라”고 간곡하게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래, 이제 술을 절대 먹지 않을께”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늘 술에 취해 퇴근하는 아버지가 싫었던 아이는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퇴원하자 다시 술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선생님이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도 열심히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 아이가 짝의 옆구리를 꾹 찌르며 “야 사람 잘 안 변해, 선생님 뻥치고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이 초등학생의 말이 맞을까요? 살아 보니 어떤 것같습니까? 40-50년 지나 동창회에 나가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면 변한 것 같습니까? 아마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다른 친구들을 잘 도와주고 심성이 착했던 친구는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친구들을 배려해 주고 위로해 주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경쟁심이 심하고 무엇이든 남에게 지기 싫어했던 친구는 여전히 욕심이 많은 것도 보았을 것입니다. 코를 훌쩍거리던 친구는 여전히 코를 훌쩍거리는 것도 보았을 것입니다. IQ 변하지 않듯 사람이 잘 변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잘 변하지 않는 사람을 보며 사람들은 “세상사 다른 것은 다 고쳐 사용할 수 있어도 사람은 결코 고쳐 쓸 수 없다”라고 지나친 운명론, 결정론적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운명은 종종 고정된 것이고 불변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따라 살아가며 그 경로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동창회에 가서 완전히 변화된 사람들도 가끔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릴 때와는 달리 삶의 방향과 목적이 완전히 달라져 있습니다. 늘 가난 속에서 그늘진 얼굴을 가진 아이라 얼굴 표정이 어둡지 않고 밝습니다. 매사 부정적이든 아이가 말하는 것이 긍정적입니다. 어릴 때 지극히 이기적이던 아이가 사람을 대할 때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고 은혜가 풍성합니다. 늘 불평 불만을 하던 아이가 삶이 만족스럽고 행복해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운명이 변했을까요?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위기와 고난을 겪고 변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나누어 보면 대강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는 큰 병을 앓거나 사고를 당한 후, 삶의 중요성을 깨닫고 생활 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을 깨닫고, 이전과 다른 방식, 즉 더 나은 선택으로 운명을 바꾼 것입니다. 둘째는 성장과 학습을 통해 운명을 바꾼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육이나 새로운 지식을 통해 사고방식과 행동을 바꾸어 자신의 운명을 바꾼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중요한 관계를 통해 운명이 바뀐 사람들입니다. 사람과의 관계, 특히 깊은 사랑이나 결혼, 중요한 만남, 좋은 친구 등을 통해 운명이 바뀐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진짜 많이 변화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차원에서 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예수 믿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울이나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만난 종교적인 체험이나 영적인 깨달음을 통해 내면적으로 깊은 변화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임재를 느끼고, 그 경험을 통해 내적인 변화와 새로워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변하지 않을 것같은 사람들도 예수님을 만나 믿는 사람이 되면 완전히 새 사람으로 변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인간의 운명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운명을 변화시켜 주십니까?
1. 성령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심으로 운명을 변화시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믿고 운명이 변화된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입니다. 지금 말하면 국회의원과 같은 사람입니다. 당시 지식입니다. 권력도, 명예도, 돈도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운명은 완전히 변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운명이 변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것처럼 인간의 본성이 완전히 변하는 것입니다. 육체적 탄생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죄로 죽었던 영혼이 새생명을 얻고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탐욕으로 무장하고 자신만 위해 살던 옛 본성을 버리고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사는 것입니다. 성품과 행동이 사랑과 기쁨, 화평과 오래 참음, 자비와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 등으로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던 사람이 매사 하나님을 의식하며 깊은 교제의 삶을 삽니다. 내세를 인정하지 않는 세상 사람과는 달리 영원한 천국을 의식하면서 세계관과 가치관이 달라져 세상 사람과는 구별된 삶을 살게 됩니다. 교회와 공동체에 헌신하며 예배, 성경 공부, 기도 모임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사랑으로 교제합니다. 또한 교회의 사역에 동참하며, 자신의 은사와 재능을 통해 교회를 섬기고, 복음 전파에 힘씁니다.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인내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거듭난 사람은 고난을 통해 영적으로 성숙해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며,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합니다. 이들은 고난 속에서도 감사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신뢰합니다.
어떻게 이런 변화의 삶이 가능할까요? 운명이 완전히 변하는 거듭남은 종교적인 공력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1). 1절을 보십시오. 그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니고데모의 이름의 뜻이 순결한 피입니다. 이를 위해 어릴때 부터 양손에 말씀을 붙이고 다니면서 외우고 또 집 문설주에 말씀을 붙여 놓고 나갈 때나 집에 들어 올 때에 외웠습니다. 간음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 여자가 앞에 나타나면 눈을 감고 길을 갔을 정도입니다. 권력의 힘으로 거듭날 수 없습니다(1). 경험의 힘으로도 거듭날 수 없습니다(4). 재력의 힘으로도 거듭날 수 없습니다(요19:39). 지식의 힘으로도 거듭날 수 없습니다(10).
그의 운명이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요? 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은 무엇이겠습니까? 물을 태의 물, 세례, 말씀, 정화, 성령의 상징 등 여러 가지로 해석하지만 물은 회개케 하는 말씀(벧전1:23-25; 약 1:18)으로 해석하는 것이 신학적으로 자연스럽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1:18)"고 말씀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께서 은혜를 주시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자연적 생명과 영적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적 생명만 준 것이 아니라 영적 생명도 주셨다는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이러한 영적 지식을 말한다고 너무 놀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이히 여기다는 말은 "다우마세스"의 번역인데 이해력이 결여된 놀라움을 말합니다. 니고데모는 당시 지식인 중의 지식인이었지만 이것을 모른 것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성령의 역사를 예수님이 설명해 주십니다. 바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현상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현상으로 실제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합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불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마음속에 역사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람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바람은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지 정확히 알 수 없듯이, 성령님의 역사도 인간의 이성으로 완전히 파악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생각과 기대를 넘어 자유롭게 역사하십니다. 바람은 모든 곳에 편재합니다. 바람은 어디든지 불어갈 수 있듯이, 성령님도 모든 곳에 임재하시며 우리의 삶 속에 역사하십니다. 마치 바람이 불어 생명체에 활력을 불어넣듯이, 성령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시고 변화시키십니다. 성령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합니다. 성령님을 통해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하고, 세상에 복음을 전합니다. 마치 바람이 불어 나무를 흔들고, 파도를 일으키듯이,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분의 임재를 느끼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았을 때, 예수님을 전혀 몰랐던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다면, 이는 성령님께서 그 사람 안에서 역사하시는 증거입니다. 또한, 예전에는 화를 잘 내던 사람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온유하고 겸손해진다면, 이 역시 성령님께서 그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셨음을 보여줍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우리의 이성으로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는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치 바람이 부는 것을 느끼고 그에 따라 움직이듯이, 우리도 성령님의 역사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님은 받으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을 마음으로 구세주라고 믿게 되고 입으로 시인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되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 성령으로 운명이 바뀌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한 사람이 예수님은 세상에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으로 운명이 변하여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며 순교하였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으며, 술에 중독되어 방황하는 삶을 살았던 윌리엄 부스가 성령을 받고 운명이 바뀌어 구세군을 창설하여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일에 헌신하며 평생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역을 했습니다. 종교개혁을 한 루터나 칼빈이나, 쯔빙글리나 노예무역을 패지한 윌리엄 월버포스나 미국 대부흥을 이끈 찰스 피니나 한국 교회 부흥을 일으킨 길선주 목사나 주기철 목사도 다 성령으로 운명이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가나한 사람도, 부유한 사람도, 남자도 여자도, 건강한 사람도, 병든 사람도, 무식한 사람도 유식한 사람도, 초하한 사람도 화려한 사람도, 힘있는 사람도 힘 없는 사람도 성령으로 거듭나면 운명이 변화됩니다.
블레즈 파스칼은 프랑스의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로서, 매우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청소년기부터 이미 여러 수학적 발견을 하였고, 20대 초반에는 유체역학과 기하학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는 과학과 철학에만 몰두한 채 신앙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1654년 11월 23일, 파스칼은 "회심의 밤"으로 알려진 깊은 신앙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는 강력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며, 그의 삶은 크게 변화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과학적 연구를 계속하면서도 신학과 신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파스칼의 팡세"라는 신학적, 철학적 글을 남겼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신앙과 이성을 조화롭게 연결하는 중요한 논의들을 제시했습니다. 파스칼은 성령님의 역사로 인해 과학자이면서도 깊은 신앙인이 되었으며, 그의 신학적 글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운명이 변화되었습니다. 과거 첩의 딸로 총장이 되기도 했고, 첩으로 살다 전부 부인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했습니다. 백정이라는 운명으로 살다 장로가 된 박성춘 장로님이 계십니다. 아들 만큼만 공부를 시키기 위해 승동교회에 보냈습니다. 학문은 익히되 하나님께 예배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박성춘이 콜레라에 걸려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아들 박봉출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한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무어 목사님에게 아버지를 살려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래서 무어 목사님은 당시 고종의 주치의인 에비슨을 찾아가 부탁했습니다. 그의 효심을 보고 에비슨은 냄새나고 누추한 백정의 집에 가서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셨습니다. 그 사건으로 모든 식구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열심히 전도하였습니다. 그는 백정으로 최초의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의 아들은 의학을 공부하여 최초의 서양 의사 7명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간도에 숭신 학교를 세워 민족교육을 하였으며 독립운동단체인 대한국민회에 참여하여 군의관으로 독립운동을 하였습니다.
2.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를 구세주로 믿게 하심으로 운명을 변화시킵니다.
성령으로 운명이 변화된다는 사실을 예수님이 말씀하자 당시 최고 지식인 중의 하나였던 니고데모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9절을 보십시오.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같이 예배드리는 성도님 중에서도 이해가 안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니고데모가 어떤 질문을 합니까?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이성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이해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현실적으로 그것을 경험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차원이 다른데 어떻게 이해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루살이와 메뚜기와 개구리 이야기가 있습니다. 셋이 같이 재미있게 놀다 하루살이가 내일 만나자 하고 떠났습니다. 그러자 메뚜기가 말합니다. “웃기네 하루살이가 내일이 어디 있어” 하루살이는 하루 살고 죽었고 다음날 메뚜기와 개구리가 만나 계속 놀다 메뚜기가 “내년에 만나자”라고 헤어졌습니다. 그러자 개구리가 말합니다. “웃기네 메뚜기도 한 철이지 메뚜기에게 내년이 어디 있어” 차원이 다르면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육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심안도 있고 영안도 있습니다. 시력이 좋으면 멀리 있는 것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아이큐가 30정도 되면 아무리 시력이 좋다고 해도 밤하늘의 별을 보며 윤동주의 “별헤는 밤”을 읊을 수 없습니다. 마음의 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처럼 영안이 없으면 영적 세계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안이 열려야 영적인 세계를 보고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아야 말씀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물과 성령, 즉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는 구약 성경 연구의 권위자요 율법학자입니다. 그런데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하나님의 자녀가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지 어떻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이미 에스겔서 11:19절에 "새 신"을 주시겠다고 약속했고 겔36:25-28절에 새영을 백성들의 마음에 두시고 렘31:33절에 하나님의 법을 백성의 마음속에 두어 하나님의 백성을 삼겠다고 말씀해 주었는데 니고데모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지 않으니까 말씀을 보아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0절에 영적 무지에 대하여 예수님을 니고데모를 책망하는 것입니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님이 그를 그(호, 정관사) 선생으로 부르신 것을 보아서 그는 분명히 중요한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산헤드린의 회원, 바리새인, 율법학자로 백성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직 영안이 안 열려 예수님이 성령의 역사와 활동을 말해도 표적을 통해 관심을 가졌지만, 참된 영적지식을 가진 신앙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바람부는 현상도 믿지 않는다면 인간의 지식으로는 하늘의 실제를 직접 설명해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14절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15절 같이 읽겠습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믿어야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16절 큰 소리고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믿는 자마다 다 영생을 얻습니다. 이것을 믿는 자가 가장 고상한 지식입니다. 종교인의 공력으로 거듭날 수가 없습니다(1절 상) 권력의 힘으로도 거듭날 수가 없습니다(1절 하) 경험의 힘으로도 거듭날 수가 없습니다(4절) 재력의 힘으로도 거듭날 수가 없습니다(요19:39, 참고) 지식의 힘으로도 거듭날 수가 없습니다(10절) 오직 믿음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게 하는 것을 누가 하신다는 것입니까?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연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성령으로 말미암아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는 말씀처럼 마음으로 믿어지고 입으로 시인하여 예수님의 사람으로 운명이 바뀌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7에서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합니다. 성령으로 말씀암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어 그리스도 안에서 근본적으로 변화된 새로운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님을 단순한 4대 성인이 아니라 메시아 우리 주 그리스도로 만나면 완전히 운명이 바뀝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면 어느날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날이 올 줄 믿습니다.
미국에서 20세기 초 가장 영향력이 있는 복음 전도자 중의 한 분이었던 빌리 선데이 이야기입니다. 그는 한때 술고래이자 야구 선수였던 사람입니다. 어릴 때 그의 가정환경은 불우했답니다. 그는 태어난 지 5주 만에 아버지는 질병으로 죽었고 어머니는 재혼하지만, 양아버지는 가정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빌리가 10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빌리와 형을 고아원에 보냈답니다.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는 학교에서 수위로 일해 매달 5파운드를 벌었답니다. 당시 수위 일은 새벽 2시에 일어나 14개의 난로에 석탄을 넣고, 난로 전부가 오전 동안 꺼지지 않도록 관리하고, 바닥을 닦아 반들반들 윤을 내는 것이었답니다. 그는 고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지만 1880년 야구 선수가 되었는데 야구 선수 중에 발이 빠른 것으로 유명해서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주장인 팝 앤슨에게 영입되어 스물한 살이 되기 전에 메이저리그에서 스타 선수가 되었답니다. 대부분 사람이 출세하면 늘 그렇듯 그도 훌륭한 야구 선수가 되자 술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했답니다. 그런 생활 가운데 그는 어느 날 성령 하나님을 만나 인생의 대전환을 이루었습니다.
그때 당시 상황을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1887년 어느 날 저는 유명한 야구 선수 몇 명과 어울려 시카고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술집으로 갔죠. 일요일 오후였고, 몹시 취한 채로 술집에서 나와 길모퉁이로 가서 앉았습니다. 길 건너엔 한 무리의 남녀가 악기를 연주하는 중이였죠. 호른, 플루트, 슬라이드 트롬본을 들고서요. 일부는 복음 성가를 불렀는데, 아이오와주 통나무집에서 어머니가 불러주시곤 했던 그 노래였습니다. 저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러자 한 젊은 남자가 앞으로 나와 이렇게 말하더군요. '우리는 퍼시픽 가든 미션으로 가는 중입니다. 우리와 함께 가지 않겠습니까? 당신도 즐거우리라 확신합니다. 주정뱅이들이 어떻게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는지, 여자들이 어떻게 홍등가에서 구원을 받았는지 말해줄 겁니다.' 이에 저는 일어서서 동료 선수들한테 말했죠. '내 야구 선수 생활은 끝났어. 난 예수 그리스도에게 갈 거야. 이제 우린 헤어져야겠군.' 그러고는 저는 동료들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몇몇은 크게 웃었고 다른 몇몇은 절 조롱했죠. 그래도 한 사람은 절 격려해주었습니다."
빌리 선데이는 이렇게 본격적인 기독교 신자의 길로 들어섰지만, 의심 많은 사람과 냉소적인 사람들은 그가 돈을 벌기 위해 대중의 종교적인 갈망을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답니다. 그러나 그는 야구 선수로서 매달 받는 1백 파운드의 봉급을 포기하고 YMCA에서 16~17파운드의 봉급을 받으며 일했답니다. 심지어 때로는 그런 봉급조차 제때 지불되지 않아 반년 뒤에 받기도 했답니다. 그래도 그는 복은 전하는 자의 길을 걸어가 뉴욕에 머무는 동안 빌리 선데이는 125만 명에게 설교했으며 거의 10만 명의 죄인이 설교단으로 나와 자신의 사악한 생활 방식을 버리겠다며 참회했답니다. 그는 학교 수위, 장의사 보조, 프로 야구 선수, 목사 등으로 직업의 옷을 갈아입고 살았지만,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영향력을 미친 것은 그가 목사로 산 것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남녀노소 3분의 2에 달하는 8천만 명이 그의 세련되진 않지만, 죄와 구원에 관한 열정적인 메시지를 들으러 몰려들곤 했답니다. 그는 35년의 세월 동안 1백만 명 이상의 영혼을 빛으로 인도하는 순회 전도 집회를 개최했습니다. 피츠버그에서 8주 동안 설교하는 동안 도시 전체가 흥분으로 휩싸였고 대형 백화점에서는 전 직원을 보내 설교를 듣게 했으며 어느 날 10명의 경찰관이 1만 5천 명의 군중 앞에 나와 하나님의 사람이 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답니다. 누구나 운명을 변화시킬 인생의 대전환의 기회는 주어집니다. 베드로는 어부였지만 예수님을 만나 1세기 세상을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설교자가 되었고,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 유럽을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선봉장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후 인생이 달라집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만나 세상을 변화시켰던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합니다. 낙심하지 말고 불신 가족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어느날 성령님께서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을 선물로 주시면 운명은 변할 것입니다.
3. 성령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따르도록 운명을 변화시킵니다.
니고데모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었을까요 믿지 않고 그냥 세상 지식인으로 살았을까요? 요한복음에는 니고데모에 대하여 3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7장 50절을 보세요.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하속들을 파송했습니다. 그런데 하속들이 예수님을 체포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속들을 나무라자 니고데모가 하속들을 변호하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에 대해 변호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그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를 보십시오.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고 질문했는데 바로 니고데모가 믿은 것입니다. 적대자들 앞에서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의 모든 재산과 지위를 하루 아침에 빼앗길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9절을 보십시오.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100근쯤 가지고 왔습니다. 제자들까지 다 도망을 갔습니다. 예수 당으로 찍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물질입니다.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나드 한 근의 향유를 부었는데 가룟 유다가 그 향유를 300데나리온에 팔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기 때문에 일반 노동자의 1.5년 연봉에 해당됩니다. 그러면 니고데모가 드린 몰약과 향유의 값어치는 일반 노동자의 150년 치 연봉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황제 장례식에 사용되는 분량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드렸는지도 모릅니다. 니고데모는 정치적으로 로마의 황제가 진짜 황제가 아니라 예수님이 유일한 황제라는 것을 고백한 행위입니다. 경제적으로 예수님이 그의 전부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는 변화된 지성인이 된 것입니다. 냉소적인 지성인이 아니라 예수님께 헌신한 지성인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의 변화는 물리적인 변화에 머문 것이 아니라 화학적인 변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삶의 목적이 바뀐 것입니다. 삶의 방식이 바뀐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니고데모의 운명을 바뀌게 했을까요? 성령님입니다. 성령님께서 이렇게 완전히 다른 삶을 살도록 선택의 지혜와 힘과 능력과 용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힘으로도 능력으로도 못하는 일을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하나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할 뿐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답게 살도록 하시는 능력을 부어주십니다(롬8:14). 죄를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변화시켜 주십니다(로마서 12:2). 다양한 영적 은사를 주셔서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파하도록 하십니다(고전12장). 질병을 치유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악령을 쫓아내는 등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하도록 해 주십니다(사도행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평안과 위로를 주시고, 힘을 내도록 격려해 주십니다(요일4:18).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영적인 진리를 분별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고전2장).
중국 선교의 아버지 허드슨 테일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신앙에서 멀어졌습니다. 15살에 은행 견습사원으로 취직하여 오직 돈을 많이 벌어 좋은 집과 훌륭한 말을 사서 즐길 것인가라는 생각에만 골몰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시력이 나빠져 은행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우울하게 보내었습니다. 어느 날 허드슨이 아버지 서재에 들어가 책을 보는데 그 책 속에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나왔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죄를 다 청산하고 구원을 온전히 이루었다는 사실이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 사실을 믿은 후에 그의 인생은 완전히 변화되어 새벽 5시에 일어나 중국어를 공부하고 의학을 공부하였답니다. 세계적인 대문호인 빅토르 위고도 주색에 빠져 방탕하게 살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십시오."라는 딸의 유서를 보았습니다. 그때 성령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는 완전히 변화되어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고 말년에는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됐었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았던 솔제니친이 암에 걸렸지만, 그 가운데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질병도 났고 위대한 작품도 남겼습니다.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사형수가 되었던 도스토예프스키가 성령님의 역사로 예수님을 만나자 위대한 신앙의 작가로 변화되었습니다.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뮬러는 어릴 때 불량한 소년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돈을 훔치고, 불량청소년으로 감옥에 가기도 했고,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으로 말미아마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후 고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성령님께는 인간의 운명을 변화시키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심으로 운명을 변화시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를 구세주로 믿게 하심으로 운명을 변화시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따르도록 운명을 변화시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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