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하나님(2) 성품을 변화시키는 성령님
갈5:22-23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아줌마가 운전하는 승용차가 앞에서 서행을 하며 알짱거리자 젊은이가 운전하는 뒤차가 경적을 마구 눌러댔습니다. 그래도 아줌마의 승용차가 여전히 서행하자 화가 난 젊은이가 기어코 앞차를 추월하며 옆에 바짝 붙어 한마디 쏘아붙였습니다. " 아줌마가 집에서 밥이나 할 것이지 왜 차는 끌고 다녀?" 그때 아줌마 말했습니다. "지금 밥하러 가잖아 유!" 젊은이와 아줌마의 성격이 다른 것입니다. 똑같은 길에서 똑같은 시간대에 똑같은 방향으로 똑같이 운전하지만 성격이 다르니까 운전하는 행동 경향이 다른 것입니다. 젋은이의 이런 성격이 변할까요? 변하지 않을까요? 운전도 성격에 따라 운전한다고 합니다. 급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핸들만 잡으면 빨리 가고 싶고 다른 차가 앞에 있으면 가로막힌 것처럼 느낀다는 것입니다. 여자들 사이에서는 '그 남자의 성격을 알려면 '술에 취했을 때'와 '운전할 때'만 보면 된다'라는 말이 돌 정도입니다. 성격이 중요하다고 하여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 친화성, 정서적 안정성을 오대 성격 요인에 의한 검사, 완벽주의자, 조력자, 성취자, 개혁가, 관찰자, 충성자, 열정가, 도전자, 평화주의자 9가지 성격 유형으로 구분하는 에니어 그램 검사, 개인 심리적 상태를 더 깊이 평가하는 MMPI 검사들을 받아보는데 요즈음 젊은이들이 MBTI를 통해 외향(E)과 내향(I), 감각(S)과 직관(N), 사고(T)와 감정(F), 판단(J)과 인식(P)이라는 척도 구분을 통해 16가지 성격 유형으로 자기 이해, 대인관계, 직업 선택 등에 활용합니다. 학자들은 인간 행동의 차이나 특성을 설명하는 단어가 무려 17,963개나 된다고 합니다. MBTI도 참고할 수 있는 있지만 절대시하며 자신과 타인의 판단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구별하든 인간은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격이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의 성격이 변할까요? 성격도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격이 변한다는 학자들은 사람의 성격 형성 과정을 살펴보면 성격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고 합니다. 젊은 날 출세에 집착하던 사람이 나이 들어 출세보다 인간관계를 더 중시하면 분명 성격의 변화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향적 성격을 가져 낯을 많이 가리고 수줍음이 많고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보며 이야기를 못하는 사람이 10년 후 직장 생활을 하면 먼저 말을 걸고 대화를 주도하는 외향적 성격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 성격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타고난 성격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은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 성격이 바뀐 것이 아니라 사회적 능력이 향상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회적 능력에는 매너, 예의범절, 타인의 말에 경청하는 능력 등이 있는데 경험과 학습을 통해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적 능력이 향상되어 외향적인 것처럼 보일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혈액형이나 IQ나 부모에게 유전적으로 받은 기질 등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외향적인 사람은 죽을 때까지 외향적으로 살고 내향적인 사람은 죽을 때까지 내향적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신경증이 높은 사람은 민감하게 살고, 개방적인 사람은 다른 정보를 잘 받아들이며 살고 친화성이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과 잘 어울려 하고 성실성이 높은 사람은 죽을 때까지 질서 있게 산다는 것입니다. 윌리엄·제임즈가 “인간은 대부분 30세까지 성격 형성이 완료되어 그 이후로는 변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성격 불변설을 믿는 코스타씨와 그의 동료 로버트 매크레이는 20~82세의 남성 6백 명을 대상으로 10~18년간 연구한 끝에 26세 때 신경질적인 사람은 50세 때도 마찬가지로 신경질적이며 19세 때 친절한 소년은 79세의 할아버지가 되어도 여전히 친절하다는 결론을 내렸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성격을 정의할 때 한 개인의 비교적(개인차) 안정적이고(상황) 지속적인(시간) 내부의 심리, 행동 경향성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러한 성격은 한 개인을 다른 사람과 구별시켜 주며 개인의 일생에 걸쳐 비교적 일관적이고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안정적인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격은 부모로부터 받은 IQ나 혈액형, 기질처럼 도덕성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어서 외향적인 성격은 움직임이 많아 타인을 연결하는 장점이 있고, 내향적인 성격은 집중력이 좋아서 멈추고 숙고하며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성격이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사람들은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고, 보수적인 사람들은 기존 질서를 잘 지켜 사회가 유지되도록 한다고 합니다. 성격이 예민 예민한 사람은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사려 깊고 세심하며, 조금 둔한 사람들은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고 타인과 잘 섞여 일을 수월하게 진행한다고 합니다. 성격은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되지만, 학자들에 의하면 성격은 거의 결정되어 타고나는 것으로 어머니의 배 속에서 열 달 동안 받은 호르몬에 의해 영향받는다는 것이 거의 정설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품은 성격과 다릅니다.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변하는 것입니다. 성품은 사람이 어떤 도덕적 원칙이나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즉, 성품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좋은 성품도 있고 나쁜 성품, 못된 성품도 있습니다. 성품은 덕목과 관련되어 사랑, 정직, 친절, 용기, 책임감 같은 도덕적인 특성을 포함합니다. 성격은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이나 감정의 경향을 말하고, 성품은 우리가 어떻게 도덕적으로 행동하며, 다른 사람에게 어떤 가치를 가지고 대하는지를 말해 타인과의 관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면 수빈이는 항상 다른 친구들과 함께 노는 걸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과 쉽게 친구가 됩니다. 반면에 준호는 혼자 조용히 책 읽는 걸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과 잘 어울리지 않는 편입니다. 여기서 수빈이의 성격은 ‘외향적’이고, 준호의 성격은 ‘내향적’입니다. 수빈이는 친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적극적으로 내밀고, 정직하게 행동합니다. 준호는 친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못 본체 하고, 거짓말을 합니다. 여기서 수빈이는 좋은 성품을 가졌다고 하고 준호는 나쁜 성품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성품 좋은 준호와 성품 나쁜 수빈이 중 누가 더 행복하고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요?
1921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젊은 심리학자 루이스 터먼 박사는 아주 흥미로운 실험을 했답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초 . 중등학교 학생 25만 명 중에서 IQ 135 이상 되는 영재들만 1,521명을 추려 내 그들의 평생을 추적한 것입니다. 터먼은 실험에 앞서 이 아이들이 각계의 최고 엘리트가 되어 성공적인 인생을 누리고 높은 직위를 갖게 되리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그는 평생토록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학업 · 결혼 · 직장생활 등을 낱낱이 기록했습니다. ‘터먼 연구팀’은 1990년대까지 3대에 걸친 일생을 꿰뚫는 종적연구를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영재로 판명된 아이들의 성장은 터먼의 가설과는 다른 결과를 보였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자라서 최고의 엘리트가 되기는커녕 아주 평범한 직업인이 되었습니다. 판사와 주의회 의원 몇 명이 나왔을 뿐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터먼은 "성공은 지능이 아니라 성격과 인격, 기회 포착 능력이 좌우한다”고 자신이 세운 가설을 뒤집어 결론지었습니다. 성공의 조건이 타고난 지능, 신체적인 조건,힘 있는 부모의 재력과 능력 등 이런 환경적 조건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터먼 연구팀은 증명한 것입니다. 그보다는 스스로 그 환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느끼며,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할 것인지를 매순간 결정하는 ‘태도’에 성공이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터먼 연구팀이 결론지은 성공의 조건은 다름 아닌 좋은 성품입니다. 성품이 인생의 성공을 결정한다는 말입니다. 성격은 잘 안변해도 성품은 어떻게 삶을 사느냐에 따라 많이 변합니다. 과학이 극도로 발달된 세상이지만 성품이 경쟁력입니다. 어디에서나 성품 좋은 사람을 찾습니다. 좋은 성품은 큰 재산입니다. 한 평생 행복하고 멋지게 살려면 성품이 좋아야 합니다. 성품 좋아야 결혼 생활도 행복합니다.
<성품 양육 바이블(이영숙)>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문용린 교수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성품이 중요한 시대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부모들은 자녀에게 좋은 성품을 가르치기보다 출세와 성공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자녀의 진정한 행복을 바란다면 자녀에게 어릴 때부터 좋은 성품을 키워주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성격은 잘 변하지 않지만, 성품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성품이 사용된 명언 중에는 사무엘 스마일즈가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성품이 바뀌고 성품이 바뀌면 운명이 바뀌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성품이 변하면 인생이 변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성품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1. 성령님께서 주시 믿음으로 옛 성품이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중생, 거듭남) 성품 변화는 시작됩니다(24).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기 전의 옛 성품은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우리의 옛 성품을 육체의 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1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힘쓰고 애써나 나타나는 행위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두 마음이 있는데 16절에 육체의 욕심, 17절에는 육체의 소욕이라는 것이 있고, 성령의 소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면 육체의 일은 분명하게 그 결과가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마음에 있는 것으로 영원히 감추어진 것이 아니라 뚜렷하게 성품으로 나타납니다. 눈에 띠게 타인에게 들어나고 명확관화하게 자신도 감지합니다. 육체의 욕심이 성령의 소원을 이긴 결과로 나타나는 성품입니다. 자신이 이런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육체의 열매로 맺어지는 못된 성품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성적 범죄입니다(19). 세 가지입니다. 음행입니다. 더러운 것 호색입니다. 둘째는 종교적 범주의 죄입니다. 2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우상숭배 주술(20)입니다. 우상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입니다.
셋째는 사회적 범주의 죄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기적으로 행함으로 발생하는 여덟 가지 죄의 열매입니다.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 이단, 질투 등으로 생기는 분열, 분파입니다(20.21). 시기와 분쟁이 당 짓는 것과 분열의 원인이라면 이단은 당 짓는 것과 분열의 결과입니다.
넷째는 음주의 범주 속한 죄입니다. 이교도들의 전형적인 방탕한 두 가지 죄인 술취함과 방탕함입니다(21). 방탕함은 술취함으로 나타나는 무절제한 행동을 말합니다.
첫째 아담은 의로운 성품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들어옴으로 죄인의 성품을 가지게 된 것이니다. 그래서 첫 사람 아담 안에서 태어난 인간, 즉 오늘날 육체의 욕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열매는 결국 이런 죄의 품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생물은 자기 생존의 이익에 부합하는 행동 원칙을 따릅니다. 이기적인 유전자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애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고 자기애가 있어야 인간은 이 땅에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독일에서 100만 부가 팔리고 유럽 14개국에서 번역 출간된 요제프 키르쉬너가 지은 "이기주의자로 살아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은 이기주의자다."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 모두 한 배를 타고 있으니 자신을 생각하지 말고 남들을 배려하라? '남을 도와야 너도 도움을 받는다? '우리는 하나?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미루어라' 등의 격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들을 복종시키려는 사람들이 지어낸 허구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언제나 우선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결정을 내릴 때마다 항상 거리낌없이 '그것이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을 던져 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익이 되는 것, 편리한 것, 기쁨이 되는 것을 따라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일을 계속하면 어떤 결과가 주어집니까? 2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지옥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받지 못합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고상하게 보이지만 이런 품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 살아갑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생존과 번식의 욕구의 종이 되어 조건만 주어지면 못된 품성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고상한 교수였는데 어느날 이리처럼 되어 제자를 성폭행합니다. 사람은 고상한 성품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죄인의 성품의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을 보십시오. 날이면 날마다 너가 죄를 지었다고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문제가 없는데 너는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은 죄와 잘못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누군가 성품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인정합니까? 인정하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회만 되면 갖가지 나쁜 열매를 맺는 못된 성품을 가진 사람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나무가 바뀌어 버려야 합니다. 엉겅퀴에서 포도가 맺히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육체의 소욕을 이기고 성령의 열매인 좋은 성품을 맺는 방법을 어떻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2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이 사실을 믿습니까? 이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성품이 변화되려면 내 육체의 정욕은 이미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육체란 단지 우리의 생물학적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악된 인간의 욕망을 뜻합니다(13,17, 3:3). 인간의 죄악된 본성을 정욕과 탐심 2가지로 요약하여 소개하는데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이미 못 박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타락한 본성은 마음이 선하지 못합니다. 아담 이후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스스로 고통을 자초하는 정욕의 산실이며, 욕심을 주체하지 못하여 탐닉에 빠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창6:3절에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라고 말씀하는데 육신이 되었다는 말은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육체의 욕망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탐욕적인 이기적 유전자가 흐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라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3:10-18)"라고 말씀합니다. 전적으로 부패해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런 옛 사람, 옛 자아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담에게 물려받은 죄된 신분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6:6)"
이 사실을 어떻게 인정합니까? 성령님께서 인정하게 합니다.
지난 주에도 우리가 살펴 보았듯이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연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성령으로 말미암아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는 말씀처럼 마음으로 믿어지고 입으로 시인하여 예수님의 사람으로 운명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품도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이 죄인에게 임하면 의인의 성품을 갇도록 하는 것입니다. 씨가 바뀌는 것입니다. 나무가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가 되면 의인의 성품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이제 예수님으로 사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성품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면서도 옛 사람이 시퍼렇게 살아 있으니까 조금만 자존심이 상하면 칼 부림을 하는 것입니다. 시기와 다툼과 분열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누가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하면 "그래 그 더러운 자존심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었어"라고 인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예쁘고 멋있는 상대가 유혹하면 "그래 내 옛 정욕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어."라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죽은 것들은 어떤 유혹 앞에서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누가 나쁜 놈이라고 하면 "그래 나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인데 그 인간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어"라고 인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인정하지 않고 잘난체 하니까 분열과 다툼이 일어나고 가는 곳마다 성령의 열매는 맺지 못하고 육체의 열매만 맺게 됩니다. 못된 성품이 활개를 쳐 인생을 추하게 만들고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정욕과 탐심에 따라 살았던 옛 자아는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반응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인정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인 좋은 성품을 맺게 해 주시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15:4-8) ” 자신에 대한 신념, 믿음을 바꾸어야 새로운 성품으로 살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세포 생물학자 브루스 립튼 박사는 그의 <당신의 주인은 DNA가 아니다>라는 책에서 “마음과 환경이 몸과 운명을 바꾼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운명을 바꾸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믿음’과 ‘환경’이라는 사실을 말하며 유전적 결정론에 매달려 유전자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생각을 바꾸어 사고의 과정을 재훈련하기만 해도 몸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무엇을 믿고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 육체와 운명이 바뀐다는 사실을 늘 염두해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디 리셋(전홍준 저)>라는 책에 건강하게 살려면 환경과 생활 방식을 바꾸라고 말합니다. 집돼지도 풀어 놓아 햇볕을 마음껏 쬐고 흙에서 뒹굴며 야생 생활을 하게 되면 멧돼지처럼 된다고 합니다. 사실 집돼지와 멧돼지의 유전자는 같답니다. 사는 방식과 환경이 달라지니 생김새와 건강 상태 등이 마치 다른 동물처럼 달라진 것이라고 합니다. 집 돼지는 살찌기 쉬운 음식들만 먹으면서 비만 조절이 잘 되지 않아 뚱뚱해진답니다. 운동도 거의 하지 않아 다리가 짧지만, 자연에 풀어 놓으면 달라진답니다. 먹이를 구하러 다니느라 움직임이 많아져 자연스럽게 비만이 해결되고 날씬해 덩달아 다리도 더 빨리 움직이며 달릴 수 있게 길어진다고 합니다. 집 돼지는 병에 약해서 구제역이나 돼지 열병 같은 전염성 강한 병이 돌면 삽시간에 병에 걸리고 치사율이 높은 병이 돌면 거의 100% 사망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야생 멧돼지는 어떤 병에도 잘 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병에 걸려도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환경이 바뀌고 생활 방식이 달라지면 잠들어 있던 유전자가 깨어난다는 것입니다. 건강과 풍요, 행복 이 세가지를 다 함께 이루려면 두 가지를 하라는 것입니다. 첫째 나는 건강하고, 풍요롭고,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말하기. 둘째 나는 이미 건강하고, 풍요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고 믿고 그러한 사람처럼 행동하기 등이라고 말합니다. 매일 입을 열어 “나는 건강해, 풍요해, 행복해 그러니 감사해”를 천 번 정도 하라는 것입니다. 한 번 말하는데 2초 정도 걸리니까 천 번 말하는데 30분도 채 안 걸린다고 합니다. 마음속으로 말해 보고, 속삭이듯 말해 보고, 큰소리로 말해 보고, 노래하듯 웅얼거리고, 놀이하듯 하면 몸이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아파 죽겠다고, 불행하다고, 가난하다고 말하면 삶은 그 말에 지배되기 쉽습니다. 건강하고, 풍요로우며,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말부터 건강하고 풍요로우며 행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성품도 마찬가지입니다. 못된 성품이 자신을 지배하려고 할 때마다 내 옛 성품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이미 죽었어라고 믿고 외치는 것입니다.
2. 결국 성령님께서 우리의 성품을 그리스도의 장성한 인격의 분량에 이르도록 변화시킨다(영화)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다고 어느날 성품이 확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교만이 잠들고, 분노가 통제되고, 탐욕이 없어지며, 질투가 외출 나가고, 게으름이 잠들며, 탐식이 살아지고, 비난이 죽어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라고 외치며 신앙 생활하면서 품성이 변화되지 않는다고 낙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 있으면 언젠가 성품이 변화될 때가 있습니다.
나무가 심어졌다고 바로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나무 마다 다 다른 기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에 채리 나무를 심었는데 5년이 되었는데도 열매가 열리지 않는 것을 봅니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열매 맺는 조건 무엇인가가 부족해서 열매가 맺히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인의 성품의 열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가 40년 동안 왕국 교육을 받았지만 폭력적인 성품이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죽이고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온유한 성품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12:3)”.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랐지만 예수님이 체포될 때 세 번이나 부인하고 도주하였습니다. 용기가 없었습니다. 다혈질이었고 성품이 급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고 담대한 성품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박해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켰습니다(사도행전 2:14-41, 4:19-20). 대적자들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라고 담대하게 외쳐고 노년에는 순교의 자리에 나아가기까지 용감한 성품을 가졌습니다.
성령님께서 결국 우리를 어떤 성품으로 변화시켜 주십니까? 22-23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9가지 열매가 나오는 데 이것은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성품을 말합니다. 이 성품을 오늘 성경은 성령의 열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받은 자들에게 성령님께 속한 성령님께서 맺혀 주는 열매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금할 법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이나 자원으로 성품의 변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통제를 받고 살 때 사랑에서 절제까지 성령님에 의해 성품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의 영이 인간들 가운데 생동적으로 사역함으로 맺혀지는 열매입니다. 열매 자체는 어떤 노동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성장의 결과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한 세 가지 내적 열매의 성품을 맺게 합니다. 사랑 희락 화평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매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며, 하나님 안에서 희락, 하나님과 화평입니다.
둘째, 사람들과 관계에 의해 맺혀지는 세 가지 열매의 성품을 맺게 합니다. 오래참음, 자비, 양선의 열매입니다. 사회적 열매(덕목)로 오래참음, 자비, 양선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것이기보다는 인간을 향한 것입니다. 오래 참음은 핍박하는 자들에 대하여 끝까지 참는 것입니다. 자비는 남에 대하여 인자하고 관대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양선은 말과 행동에 있어 적극적으로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것입니다.
셋째, 성도의 일반적인 삶의 태도로서 세 가지 열매의 성품을 맺게 합니다.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입니다. 개인의 신실성에 관한 열매로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충성은 그리스도인의 신실성을 말하며, 온유는 겸손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절제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이 운행하시는 천국 비행기를 탄 것입니다. 목적지는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런데 비행기가 목적지를 갈 때 항로를 이탈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90% 정도가 항로를 이탈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GPS와 항공 교통 관제 시스템 덕분에 비행기는 계획된 항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비행기의 항로 이탈은 보통 몇 해리 이내로 제한되고 안전한 범위에서 허용되는 것으로 안전하고 효율적인 비행을 위해 정밀하게 조정된다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로마서 8:14).”라고 말씀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가 잘 못된 길로 갈 때 탄식하시만 우리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인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성품으로 만들어 영화롭게 하십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믿습니까? 성령님께서 온전한 성품을 만들어 그 나라를 유업으로 누리게 하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사람은 성품이 그리스도처럼 온전한 자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때는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계22:11)”라는 말씀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에 의해 우리의 성품이 영화롭게 되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3. 성품을 변화시키려면(성화) 성령님을 좇아 행하여야 합니다(16,25)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두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체의 소욕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소원입니다. 하나님은 선택권을 인간의 자유의지에 주었습니다. 이 두 마음이 갈등을 합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성품이 달라집니다. 체로키 인디언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이야기는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삶의 지혜가 담긴 두 마리 늑대 우화라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우리의 마음속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살고 있단다. 그리고 이 두 마리 늑대는 항상 싸우고 있지.”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손자가 “왜 싸워요?”라고 질문합니다. 할아버지는 “둘이 성격이 반대라서 그렇단다. 검은 늑대는 악이다. 그 녀석은 화, 질투, 슬픔, 후회, 욕심, 오만, 자기 연민, 죄책감, 억울함, 열등감, 헛된 자존심, 우월감을 가지고 있단다.” 손자는 “다른 한 마리는요?”라고 하자 할아버지가 “하얀 늑대는 선이다. 그 녀석은 기쁨, 평화, 희망, 평온함, 겸손, 동정심, 친절, 자비, 공감, 너그러움, 진실, 연민이지. 이 두 마리의 늑대의 싸움이 네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단다.” 손자가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라고 하자 할아버지가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란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품을 가지기 위해 육체의 욕심을 이기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2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은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9절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성령님은 우리를 영적 네비게이션처럼 인도하십니다. 그러면 성령님의 인도대로 가면 자동적으로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육체의 욕심 따라 사니까 육체의 열매들이 맺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행할지니(스토이코멘)"라는 말은 좇아 행하다는 말보다 엄격한 의미로 군대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철저하게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16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성령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겉모습은 그대도 이지만 속사람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자아는 그대로이지만 삶의 주인이 바뀐 사람입니다. 오순절 성령을 받은 제자들을 보십시오. 누가 높은가 싸우는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성령을 받고 성령에 충만해지자 성령의 지시에 따라 살게 되었습니다. 시간과 재물과 재능의 주인이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성품이 완전히 바뀌어 성령님이 원하시는대로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자 오순절 교회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유무상통합니다. 날마다 모여 찬양하고 말씀을 배우며 기쁨과 즐거움으로 살아갑니다. 40년 동안 앉으뱅이로 살았던 사람이 일어납니다. 악한 영에 사로잡힌 자들이 해방됩니다. 3천명 5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성령의 영적 네비게션에 따라 움직이면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성령의 사역이 나타납니다. 생명 역사가 일어납니다.
율법을 기준으로 하여 자꾸 육체의 욕심대로 하지 말자고 하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육체의 욕심을 회피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육체의 욕심에 따라 살게 되어 있습니다. 조금만 더, 한 잔만 더, 한 번만 더 하면서 그 욕망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없는 불신자들은 육체의 욕심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실천할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 일을 하면 안 된 줄 알면서도 여전히 죄에 끌려가는 것입니다. 음란한 영화를 보지 말자고 계속 해 보십시오. 결국 음란한 영화의 종이 되어버립니다. 그럴 때 금요일 극장에 가는 것이 아니라 기도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마을 모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성령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극장에 가서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 들을 때 성령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텔레비전 본다고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을 가지고 친구들과 함께 춤추는 곳에 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봉사를 하는데 시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재능과 물질을 가지고 성령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돈이 생겨도 그것으로 망하지 않습니다. 2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헛된 영광(케노돜소이)이란 "허무한, 속이 빈, 열매없는" 영광입니다. 헛된 영광을 구할 것이나 참된 영광을 구할 것이나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1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십니다.(18) "인도하시는" 수동태로 인도된다는 말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성령께서 이끄시대로 이끌려 간다는 말입니다. "율법 아래"라는 말은 육체의 소욕을 달리 표현한 말입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죄인들은 다 육체의 욕심에 따라 사는 존재입니다(롬2:13) 바로 성도는 육체의 욕심에 굴복하는 자들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좇아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16,25)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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