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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원(6) 하나님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제가 은혜 의식이 부족합니다 역대하24:15-22)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805 추천수:3 112.168.96.71
2017-05-28 13:21:09

 

애원(6) 하나님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제가 은혜 의식이 부족합니다)

역대하24:15-22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남 유다의 제 8대 왕으로 40년간을 유다를 다스렸던 요아스 왕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는 7살에 왕이 되어 47살의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참 불행한 왕이었습니다. 아버지 죽고 자신의 형제들이 권력에 눈이 멀어 피도 눈물도 없는 할머니 아달랴에게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자신도 죽을 뻔 했는데 제사장인 고모부와 고모가 몰래 성전에 숨겨 주어 살아났습니다. 고모부 이름이 여호야다입니다. 큰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은혜를 어떻게 갚았을까요?

2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았습니다. 요아스라는 이름의 뜻이 “여호와께서 주셨다”라는 은혜를 나타내는 이름인데 고모부의 아들을 죽였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입니다. 배은망덕한 인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은혜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개들도 주인을 알아보는데 큰 은혜를 입고도 하나님과 남에게 입은 은혜를 손바닥 뒤집듯 배신한 인간이 되어버렸습니다. 5월 가정의 달 마지막 주일 예배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탕자처럼 부모님의 은혜를 손바닥 뒤집듯 쉽게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은 30냥에 스승을 인신매매한 가룟 유다와 같이 은인의 은혜를 배신으로 갚으면 안 됩니다. 남편의 한량없는 은혜를 배신으로 갚은 고멜처럼 부부 간에도 은혜를 배신으로 갚은 배은망덕한 부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개도 주인을 물지 않는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은혜를 원수로 갚으면 되겠습니까?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니 보따리 달라”는 식으로 살면 무슨 복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요아스 왕처럼 배은망덕한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1.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 요아스가 배은망덕한 인생을 살았겠습니까? 우리는 본문에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요아스는 여호와의 전을 버렸습니다. 여호와의 전에 피해 그는 목숨을 건진 사람입니다. 아달랴가 유다 왕국의 씨를 말리려고 모두 죽이려고 했습니다(대하22:10) 이 때 제사장의 아내인 자신의 고모가 그를 빼돌려 어디에 숨겨 그를 살렸을까요? 대하 22장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6년 동안 숨겨 놓아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런데 자기를 살려준 성전을 버려버리는 것입니다. 떠났다는 것입니다. 현재 자신을 있게 한 하나님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말하면 살만하니까 교회를 떠나 버리는 것입니다. 병들었을 때는 교회를 찾다가 건강해지니까 교회를 떠나 버리는 것입니다. 어려웠을 때 도움 받았던 교회를 살만해 지니까 떠나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합니까? 다시 본문 18절을 보십시오.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깁니다. 교회만 떠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야다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은인, 신앙의 멘토, 자신의 정신적 지주를 잃자 바로 성전을 떠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배신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는 의존적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조금 발전하여 독립적 신앙을 가져야할 텐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가족치료사 보웬의 이론에 의하면 분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개별성과 연합성이 같이 작용한다고 합니다. 홀로 독립하고 싶은 욕구도 있고 다른 사람과 같이 있고 싶은 욕구도 동시에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홀로 있고 싶은 욕구는 독립성으로 발전하고 같이 있고 싶은 욕구는 의존성으로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가정에서 자라면서 정서적인 삼각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자식 등으로 삼각관계가 이루어지는데 부모로부터 분화 수준이 낮을수록 의존성이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천해의 고아가 되어 제사장 여호야다를 아버지처럼 섬기며 살았으니 여호야다 죽자 홀로 서기를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의존적 신앙에서 주체적 신앙으로 더 발전하여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주는 확장적 신앙으로 전진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한 것입니다. 의존성이 강한 그가 제사장이 죽자 결국 어떻게 됩니까? 17절을 같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유다 방백들이 아첨을 하며 왕에게 조언을 합니다. 그러니까 그의 말을 듣고 성전을 버리고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렇게 연약한 것입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사탄의 유혹에 쉽게 무너집니다. 시간이 지나자 자신이 어떻게 하여 살게 되었고 어떻게 왕이 되었는지 어떻게 그런 풍요를 누리게 되었는지 그 은혜를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잊는 것입니다.

 

은혜가 있을 때는 얼마나 잘 교회를 위해 충성을 했는가를 보십시오. 24장 4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가 왕이 되자마자 처음 한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전을 보수하였습니다.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노력한 것입니다. 결국 성전을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1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전을 이전 모양대로 견고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모든 날에 여호와의 전에 항상 번제를 드렸습니다. 요즈음 말하면 왕이 매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 산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 떨어지니까 성전도 버리고 하나님도 버려버린 것입니다. 은혜로 시작한 인생 은혜로 마치려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것도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맨 처음 인간인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에덴동산을 선물로 주신 일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한 채로 선악과를 따 먹고서 범죄한 그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신 일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가인의 생명을 어느 누구도 해치지 못하도록 보호의 표를 주신 일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방주를 통해 홍수 심판으로부터 노아와 그의 식구들을 구원하신 일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의 행동을 막으시고 범죄의 한복판에서 인류 구원의 대역사를 이루기 위해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일이나 아브라함을 비롯해 이삭과 야곱 및 요셉 등의 족장들에게 약속을 주시고 그것을 성취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와 속박의 땅에서 구원하신 일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비롯한 각종 율법 규정들을 선물로 주신 일도, 약속의 땅 가나안을 선물로 주신 일도 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입니다.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입니다. 험난한 세상에서 이렇게 교회에 다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남편을 만난 것도, 아내를 만난 것도,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도,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 주어진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배은망덕한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즉 돈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의 근원적인 힘과 에너지인 것입니다.

강도도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 성자도 은혜가 떨어지면 마귀로 변합니다. 천사도 은혜 떨어져 교만해 지면 마귀로 변하지만 살인자도 은혜를 받으면 성자가 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목사님이 어느 집사님 댁에 심방을 갔다. 집이 참 좋아 보였답니다. “집사님, 집이 참 좋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 집사님은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예, 저희 남편이 아주 성실한 사람이라서 열심히 일한 덕분이지요.” 아들이 쓰는 방을 보았더니 벽에 상장들이 많이 붙어 있었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이렇게 물어 보았답니다. “아들이 공부를 참 잘하는 모양이지요?” 그러자 집사님은 기분이 좋아서 대답했답니다. “이 집안의 사람들이 머리가 좋다는 말은 늘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내친 김에 목사님은 한 마디 더 칭찬을 해주었답니다. “집사님은 인물도 예쁘시니 참 복도 많으십니다.” 그런데도 그 집사님은 눈치를 채지 못하고 또 이렇게 말했답니다. “인물이야 부모님을 잘 만난 덕분이지요.” 잠시 뒤에 집사님은 다과를 준비해 나왔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일체 손을 대지 않았답니다. 그러니 함께 간 사람들도 덩달아 손을 대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답니다. 안절부절못하는 집사님을 보면서 목사님은 넌지시 이렇게 말했답니다. “목사는 다과를 먹고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먹고사는 존재랍니다. 제가 다시 물어볼 테니까 이번에는 잘 생각해서 대답해 보세요.” 그러면서 차례차례 다시 물어답니다. 집사님도 목사님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바르게 대답했답니다. “이 집이 참 좋군요.”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아들이 공부를 잘 하는군요.”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지요.” “집사님은 남편도 잘 만나셨고, 아들도 잘 두셨고, 인물도 예쁘시니 참 복이 많으십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평생 은혜로 살았던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 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고전15:10)" 이런 고백이 매 순간 우리에게도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의 달려갈 길 다 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한량 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한량 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한량 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그렇습니다.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린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롬3:24). 내가 이만큼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가정도 직장도 자녀도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평생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살 때 배은망덕한 인간이 되지 않습니다.

 

2. 우리는 은혜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은혜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은혜의식이 떨어집니다. 배은망덕한 인간들은 은혜의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공로의식이나 피해의식으로 살아갑니다. 은혜를 은혜로 생각하는 신자의 근본적인 밑바탕에는 은혜의식이 있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움직이는 기름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의식(意識)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환자가 살아나면 의식이 깨어났다고 말합니다. 관계적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의식구조가 중요합니다. 살아 있지만 아무렇게나 살고 정신없이 넋 나간 사람처럼 살면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의식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 민족의식이 없고 역사의식이 없고 신앙의식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 배은망덕한 인간들은 은혜의식보다는 당연의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공로의식, 피해의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모든 것이 자기 노력으로 당연히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은인에게 쉽게 안면 바꾸고, 안면몰수하고 배신하고 등을 돌리는 것입니다.

은혜의식이 없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납니까?

첫째가 은혜 의식이 없으면 은혜를 부담으로 받아들입니다.

은혜로 받은 목사의 직분도 부담이 되고, 장로, 권사, 집사의 직분도 부담이 되는 것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의식을 가지게 하기 위해 선지자를 보내어 경고합니다. 은혜를 주신 여호와께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네 이름처럼 네가 왕이 된 것은 네 힘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인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는 듣지 않습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말씀이 은혜롭게 들리지 않습니다. 부담으로 들려오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정죄하는 말로 들리게 됩니다. 자신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로 들립니다. 자신을 비난하는 말로 들립니다. 사람들이 배은망덕하는 이유가 다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부담이 되고, 스승이 부담이 되고, 목사가 부담이 되고, 교회가 부담이 되고, 하나님이 부담이 되고, 사장이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유익이 되면 배은망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의 자존심을 죽이고, 체면을 손상케 하고, 자기를 모독하고 정죄하는 말씀으로 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담 없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담 없는 남편만 찾으면 결국 창기가 됩니다. 부담 없는 교회만 찾으면 빨리 천국 가야합니다. 부담 없는 교회는 교회도 아닙니다. 신앙 연륜이 깊어지면 부담은 더 커지는 것입니다. 부담 없는 회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초임 때는 부담이 없다가도 승진하면 할수록 부담이 있는 것입니다. 부담 없는 회사를 찾아 다녀보십시오. 그런 회사는 세상에 없습니다. 은혜 의식으로 부담을 십자가로 지고 가면 그 부담이 나를 성장시키고 나를 큰 그릇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 부담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받은 그릇으로 쓰임받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은혜 의식이 없으면 은혜가 의식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의식을 지배해 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2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보냅니다. 자기를 살려준 은인의 아들이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 같으면 그 집안과의 지난 은혜의 관계 때문에 은혜의식이 살아날 것입니다. 친구처럼, 형제처럼 46년 동안 얼마나 좋은 경험을 같이하고 친하게 지냈겠습니까? “아, 저 아이의 아버지가 나를 살려 주었지, 나를 왕이 되게 해 주었지, 나를 성전에서 아버지처럼 양육해 주었지” 아마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스가랴가 무슨 말을 합니까?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고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가 너희를 버렸다”고 말씀합니다. 깨닫고 은혜 의식을 회복하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합니까? 2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감정이 그의 의식을 노예처럼 부려버린 것입니다. 스가랴를 돌로 쳐 죽입니다. 말씀을 듣고 회개하도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말씀을 전했는데 그를 죽인 것입니다. 은혜 의식이 망가지니까 그렇게 선하던 왕이 자기를 살려 주었던 은인의 아들을 듣기 싫다고 살해해 버립니다. 어디에서 죽였습니까? 어릴 때 자신이 은혜를 받았던 곳 성전 뜰입니다. 그곳에서 은혜를 원수로 갚아 버린 것입니다. 감정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 중 가장 악한 것은 분노조절을 못한 것입니다. 은혜 의식으로 살지 못한 사람들 중에는 분노조절을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조금만 누가 싫은 소리를 하면 그 동안 좋은 관계는 다 무시되고 감정의 노예가 되어 0인신공격을 서슴없이 합니다. 설교를 들으면서도 싫은 소리를 들으면 그 동안 은혜받은 것을 다 제로가 되어 버리고 설교자에게도 무례하게 대하며 일어나 나가버립니다. 요아스가 어릴 때 얼마나 상처가 많았겠습니까? 아버지 형제들 다 비참하게 죽고 자기의 형제들 할머니에게 처참하게 죽고, 자기 홀로 고아가 되어 살았던 인생이었는데 얼마나 상처가 많았겠습니까? 그래서 성격장애가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주목과 인정에 목말라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으면 분노 조절을 못하고 폭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점화점인 것입니다. 아킬레스건입니다. 은인의 아들이 싫은 소리한다고 참지 못하고 죽이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자신을 살리는 말씀이고 자신의 인생길을 형통하게 하는 말씀인데 그것을 참지 못하고 배은망덕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통로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성례, 즉 세례와 성찬식을 통해서 전달됩니다. 설교는 보편적인 은혜 받는 방편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은혜가 저수지라면 말씀은 은혜를 전달하는 파이프와 같은 것입니다. 말씀을 전달하는 설교자는 수도꼭지를 여는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전달되어지는 은혜를 설교자는 설교를 통해 쏟아놓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자는 은혜의 생수를 받는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열어놓고 믿음으로 은혜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 뿌리를 내리고 싹을 내어 무성하게 자라 풍성한 열매가 삶속에 맺혀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분노하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 의식을 회복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내 감정을 폭발하게 하는 아킬레스건을 십자가로 녹여버려야 합니다.

 

셋째는 은혜 의식이 없으면 좋은 성품이 아니라 나쁜 성품이 삶을 지배해 버립니다.

다 나쁜 성품을 가진 사람이 없고 다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은혜 의식이 풍성하면 좋은 성품만 나타납니다. 상대방의 좋은 성품만 보입니다. 그러나 은혜가 살아지면 똑 같은 사람인데 마귀 같은 성품이 나오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마귀 같은 성품만 보는 것입니다.

 

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는 처음 왕이 되었을 때 성품이 어떠했습니까? 왕이 되자마자 하나님의 전을 보수할 뜻을 두었습니다. 은혜를 보답하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성품입니까? 얼마나 하나님과 성전을 사모하는 열정이 있었습니까? 5절에 보십시오. 중수할 뜻을 두자마자 무엇을 합니까?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바로 모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서 성전 수리할 세금을 빨리 거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레위 사람들이 빨리 하지 않았습니다. 무려 23년간 성전 수리하지 못했습니다(왕하12:5). 그 때 어떻게 합니까? 6절을 보십시오. 비록 자신의 생명을 살려 주신 분이지만 대제사장 여호야다를 꾸짖었습니다. 공사를 분명하게 하는 것입니다. 직접 왕이 진두지휘합니다. 열정적입니다. 8절에 보십시오. 헌금 궤를 만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직접 헌금하게 하였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백성들이 기쁘게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왕이 직접 제사장과 함께 공사 책임자를 임명하여 성전 수리를 하게 하였습니다.(12) 마침내 성전을 본래대로 아름답고 튼튼하게 보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여호와의 성전에서 규칙적으로 드리는 번제물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그가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폭력적이고 살인적인 성품을 드러냅니다.

송재근 목사님이 쓴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는 57가지 성품을 말합니다. 그 성품 중에는 죄악을 만드는 나쁜 성품에는 18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거짓, 역리성, 교만, 탐욕, 보복, 악독, 변절, 무책임, 부정적 언어, 이기심, 증오, 분노, 과격, 배은망덕, 시기와 질투, 간사, 음란, 우상 숭배성” 등으로 말합니다. 이 나쁜 성품들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악을 만들고 이 성품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죄성이 나타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런 성품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의로움을 만드는 좋은 성품에는 20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정직, 베풂, 관용, 선함, 의리, 책임감, 이타성, 사랑, 견고성, 보은, 순종, 화합과 양보, 감사, 순리, 겸비, 친절, 자비, 온유, 인내, 낙관성” 등입니다. 이 성품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와 선행들을 계속 만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고 주변에서 좋은 평을 듣게 한다고 합니다.

단점을 갖고 있는 성품에는 13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내향성, 냉정, 나약, 소심과 옹졸, 열등감, 불평불만, 부정성, 나태, 소극성, 자만, 조급, 독선, 비관” 등입니다. 이 성품들은 죄악성에 가까워 죄를 짓도록 만들기 때문에 반드시 고치지 않으면 신앙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부덕한 오점만을 남겨 준다고 합니다.

장점을 가지고 있는 성품 6가지라고 합니다. “외향성, 대담성, 긍정성, 근면, 적극성, 결단력” 등입니다. 장점이 많은 성품들은 의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고 남들에게서 좋은 평을 들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복 받을 심성들이라고 합니다.

이런 성품이 저와 우리 성도님들에게 다 있습니다. 그런데 은혜 의식 속에서 살 때는 좋은 성품 20가지 장점을 가지는 성품 6가지가 삶을 지배합니다. 그런데 은혜가 떨어져 은혜 의식이 없으면 나쁜 성품 18가지 단점을 가지고 있는 성품 13가지가 고개를 들고 기승을 부리는 것입니다. 이런 나쁜 성품이 춤을 추면 개인이 더러워지고, 가정이 비참해지고, 교회가 싸움터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송목사님은 신앙인들은 나쁜 것은 골라내고 좋은 성품을 내 것으로 만들도록 훈련받아야 하는데 결국 좋은 성품을 갖게 하는 것은 “주권자인 하나님의 말씀을 주입하는 것이 최상책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송목사님은 좋은 성품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십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모든 예배에 참석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매일 기도를 드리는 세 가지만 되면 만 가지도 다 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수한 사람을 죽인 스탈린(Stalin)은 기독교 계통 학교를 다니며 신학교육까지 받은 사람이었지만 주변 지도자들이 신앙과 심성을 바로잡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김일성은 모친이 권사였고 본인도 교회를 다녔지만 동족 전쟁을 일으켰고 북한 땅의 교회를 없애버린 이유가 부모나 지도자가 그 마음을 바로잡아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망가진 성질을 치료받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훈련받아 복 받는 성품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을 생활하여 늘 범사에 은혜의식을 가지고 살면 배은망덕한 삶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말씀을 떠나 은혜의식을 잃으면 천사도 마귀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떠나면 성자도 마귀로 변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멀리하고 은혜의식으로 살지 않으면 목사도 장로도 마귀의 하수인으로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평생 은혜 의식으로 살아 형통한 인생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3. 우리는 은혜를 저버린 비참한 결과를 깨달아야합니다.

배은망덕한 그의 인생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23절을 보십시오. 무섭게 파멸됩니다. 이루기는 어렵지만 파멸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그 해가 다 갈 즈음에 아람 군대가 쳐들어 왔습니다. 숫자적으로 볼 때는 아람 군대는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그런데 아무리 숫자적으로 우세해도 하나님이 유다 편에 서지 않으니까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적들에게 넘겨주어 버렸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이 떠나자 아람 군인들이 심판의 도구가 되어 이스라엘을 진멸시켜 버렸습니다. 인생은 보기보다 단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으면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은혜 떠나면 망합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신을 평생 동안 도와 줄 것 같은 사람들이 다 죽습니다.(23) 유다 지도층이 모조리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백성들도 그를 진정한 통치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아람 군대의 공격 무마하기 위해 성전 기물 바치는 비굴한 일을 합니다.(왕하12:18) 그렇다고 그가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전쟁터에서 중상을 입었습니다.(25) 결국 병상에서 자신의 부하들에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25) 은혜를 망각하고 여호야다의 아들을 죽였는데 자신도 똑같이 당하는 것입니다. 선왕의 무덤에도 안장되지 못했습니다.

파멸로 가는 가족 시스템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파멸의 고리를 끊어 버리지 못했습니다. 바알 신을 섬기다 아버지가 23살에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형제들이 모조리 죽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바알 신을 섬기다 비참하게 중병에 걸려 40세에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이 정도 되었으면 고리를 끊을 만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강퍅한지 모릅니다. 꼭 바로 왕의 마음 같습니다. 중독증이 강합니다. 무엇이든지 중독에 걸리면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9가지 재앙이 내려와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장자가 죽는 열 번째 재앙을 맛보아야 마음에 결단을 합니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결단합니까? 아닙니다. 다시 추격하는 것입니다. 죄의 중독에서 벗어난다는 사실이 그렇게 어렵습니다. 배은망덕의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뼈저리게 새겨야 합니다. “배은망덕해도 아무런 이상이 없겠지”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길로 가면 내 앞에 심각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배신'은 '사기'와 마찬가지로 흔한 '인간심리'입니다. 그러나 배은망덕한 인간은 잘 되지 못합니다. 행복하지 못합니다. 가드라는 사람은 "배은망덕은, 어떤 풍토에서도 자라는 잡초로서, 처음에는 너무나도 빨리 자라지만, 조만간에 시들어 버린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사람들 결코 양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복을 받지 못합니다. 성공을 돈과 동일시하는 사회에 살다 보니까 돈이 성공의 전부인 것처럼 보고 배은망덕을 밥 먹듯 하지만 가만히 보십시오. 그런 사람들 처음만 반짝할 따름이지 장기적으로 결코 잘 되는 일이 없습니다. 스승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를 보십시오.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단테는 신곡에서 지옥 밑바닥엔 배신자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다윗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배은망덕한 나발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은혜를 배은망덕으로 갚은 롯이 머물렀던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불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배은망덕의 심각성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은혜를 헛되이 받아서는 안 됩니다(고후6:1).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유1:4).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단번에 보혈의 은혜에 참여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은혜로 시작했다가 비참한 인생으로 마치면 안 됩니다. 은혜로 일하다가 은혜로 인생을 마감해야 합니다. 우리는 은혜 받고 은혜로 시작했으니 은혜로 일하다 은혜로 마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를 받았습니다(엡 1:6). 값없이 주신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롬 3:24). 일한 것 없이(롬 4:4-6) 선물로 받았습니다(엡 2:8). 이제 받은 대로 살아 인생 마지막까지 즐겁고 복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처음은 은혜로 시작했다 저주로 끝나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 12:31) 이 은혜를 가능한 한 많이 누려야 합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히브리서4:16절은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꽃이 제 잘나서 꽃이 되는 것이 아니라 햇빛이 있어 꽃은 꽃이 되는 것입니다. 집은 땅이 있어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물은 물길이 있어 흐를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7.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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