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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흔들린 때(9) 탈진의 늪에서(민수기 11:14-18)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47668 추천수:4 218.147.218.173
2024-08-04 11:54:10

삶이 흔들린 때(9) 탈진의 늪에서

민수기 11:14-18

 

한 달 넘게 성도님들의 교제의 공간을 만들어 드리기 위해 작은 카페 공사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했는데 더 편하게 좋게 만들려고 하다 보니까 자꾸 공사가 늘어났습니다. 야외에 인조 잔디를 깔려고 했는데 막상 사놓고 보니 의자를 놓으면 밑으고 구멍이 날 것같아 바닥을 콘크리트로 해야할 것같이 최집사님에게 연락을 하니까 집사님께서 공사하겠다고 데크로 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래서 목욕일부터 어제 토요일까지 데크 공사를 했습니다. 어제는 김집사님까지 오셔서 마무리 작업을 했는데 3일째 되니까 최집사님이 자꾸 치수를 제는 데 다르게 잘라오고 금방 쓰던 도구도 어디에 두었는지 잊고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웃는 소리로 이제 나이가 들어 도구 찾는데 한나절 간다고 농담을 하였습니다. 품삯받고 일하는 곳에서는 오후 430분되면 일정리하고 퇴근하면 되지만 교회 봉사하는 일이니까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작업을 하여야 하니까 피로감이 많이 쌓여서 그랬을 것입니다.

3일이 아니라 일년내내 홀로 나와 교회 봉사를 이런 식으로 하면 과도한 업무와 긴장과 억압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부정적 스트레스로 인하여 탈진 현상이 일어납니다. “탈진이라는 말은 영어로는 번아웃(burnout)이라고 하는데 웹스터 사전에는 세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어떤 물체의 내부 혹은 내용물이 타는 것을 뜻하고, 둘째로 전기학 분야에서 고온으로 발생된 자연 발화로 인해 회로가 파괴된 상태를 뜻하며, 셋째는 엄청난 산불로 인해 숲의 생명력을 지탱해주는 부식토를 파괴하게 되어 황폐해지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다 건물의 내부가 타버린 것처럼, 사람 내면의 에너지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고갈된 상태, 정신적인 회로가 다 타버려 기능이 파괴된 상태, 그리고 소생할 힘이 없을 정도로 소진된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탈진에 대하여 많이 연구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크리스티나 크리스티나 매슬랙 박사는 탈진을 5단계로 구분하였는데 1단계는 의욕 상실 단계, 2단계는 만성피로 증상, 3단계는 분노, 4단계 자신을 비관, 5단계s는 실제적 육체의 질병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호킨스은 탈진 현상이 오면 신체적으로 등이나 목이 아픈 것, 편두통, 불면증, 식욕상실, 궤양, 고혈압, 되풀이되는 감기, 소화불량, 알러지, 그리고 심할 경우 심장마비나 심장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합니다. 정신적으로 환멸감이나 패배감, 분노, 냉소적인 사고방식, 부정적인 태도, 성급함, 무력감이나 절망감, 자기 의혹 등의 좌절감, 죄책감, 어떤 일을 완벽하게 충분히 잘하지 못했다는 느낌, 무관심, 집중력 부족, 자기 비하, 환멸, 자기 정체성의 상실, 정신 착란 등이 생긴다고 합니다. 영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하나님의 역할을 하고, 영적인 진공 상태, 하나님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자신을 포기했다는 생각 등을 한다고 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번아웃(burnout) 증후군을 국제질병분류(ICD) 체계에 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인들도 탈진, 소진을 경험하지만 오랜 전에 살았던 성경에 나오는 엘리야나, 요나나, 다윗이나 모세같은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도 이런 탈진의 늪에 서게 되었습니다.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고 의욕이 상실되며, 공감 능력이 저하되어 냉소적인 태도를 갖기 쉽고, 개인적인 업무의 효율이나 성취감이 저하됩니다. 특히 전문인,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에게 많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정인국 박사에 의하면 미국의 경우 탈진으로 우울증을 앓는 남자 의사는 12.8%가 되고 여자 의사 19.5%가 된다고 합니다. 탈진 증후군으로 자살하는 경우도 있는데 남자 의사는 일반인보다 1.5-3.8배가 많고, 여자 의사는 여자는 3.7-4.5가 많다고 합니다. 30년 동안 개원한 의사들의 이혼율이 29%, 외과 의사들은 33%, 정신과 의사는 50%나 된다고 합니다. 한국 의사들도 80%가 탈진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학생, 직장인, 연예인, 심지어는 종교인까지 탈진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모세를 보십시오. 200만 명 정도 되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광야를 가다 무엇이라고 하나님께 고백합니까? 1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혹시 우리 성도님들 중에서 이런 탈진의 늪 앞에 있는 분이 계십니까? 사업을 하다 빚에 목조이면서 하나님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지금 죽는 것이 은혜입니다.”라고 외치는 성도님 계십니까? 아이를 기르면서 밤새도록 울어내는 아이를 보면서 내가 이렇게 살려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나라며 산후 우울증에 걸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질병으로 계속되는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하나님 이렇게 살 바에는 자식들에게 고생만 시키고 나는 살만한 의미가 없으니 지금 생명을 거두어 가는 것이 은혜입니다. 저를 죽여주십시오라고 말하시는 성도님이 계십니까? 직장 다니면서 열심히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어 육체적, 정서적, 정신적으로 지쳐서 열정도 잃어 버렸고 이상과 목표도 상실한 체 신체적,정서적, 정신적 고갈 상태에 있으신 성도님이 계십니까? 교회 일하며 전력을 기울였는데 기대했던 성과가 나오지 않고 극도의 피로감과 고립감, 권태감에 빠져 이제 더 이상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하며 하나님도 나의 진가를 알아주지 않으신다고 교회 봉사에 대하여 냉소주의에 빠지신 성도님이 계십니까?

우리에게 다가온 탈진의 늪 앞에서 삶이 흔들리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탈출할 수 있겠습니까?

 

1. 탈진의 늪 앞에서 삶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람과 함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왜 모세가 탈진의 늪 앞에 서 있습니까?

14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과도한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입니다. 학자들은 과잉 성취 동기 때문에 탈진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현대인들은 성공지향 병에 걸려 일하기 때문에 영웅주의에 빠져 일 중독이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해야 할 책임이 심히 중하다는 것입니다. 뭐든지 적당히 하는 사람에게는 탈진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엘리야처럼 모세처럼 특별히 열정과 열심히 있는 사람에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나 혼자는 이 업무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일을 혼자서 짊어짐으로 인하여 육체적으로 고갈되는 탈진이 오는 것입니다. 혼자서 많은 일을 하게 됨으로 인해 육체적 피로가 쌓이게 된 것입니다(18:14-18). 모세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원망을 합니다. 만나만 먹으니 실증이 난다는 것입니다.(4) 만나에 질렸다는 것입니다. 고기를 먹고 싶다는 것입니다.(4) 그들은 노예로 있을 때가 좋았다고 했습니다.(5) 그들은 탐욕에 집착한 이방인의 선동에 같이 불평합니다. 온백성은 통곡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책임이 너무 중해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왜 은혜를 주어 이런 일을 홀로 지며 힘들게 살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 중에서 사업을 하면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정 생활을 하면서, 자녀 교육을 하면서, 교회 일을 하면서 이런 고백을 하는 분이 계십니까? 탈진의 늪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 속에 풍덩 빠져 버려 탈진의 늪에 갖혀 버리면 아무리 허우적 거려도 잘 빠져 나오지 못합니다. 계속해서 모세는 나 나 나를 강조합니다. 자기 중심적이 되면 도달 할 수 없는 높은 기준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지 못해 완벽주의에 빠져 버립니다. 완벽주의는 정상적 완벽주의와 신경증적 완벽주의가 있습니다. 정상적 완벽주의는 목표를 세우고 지속적으로 일을 하면서 더욱더 향상 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신경증적 완벽주의는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기준을 세워

놓고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작하기 전부터 불안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것입니다. 자기 지향적 완벽주의는 자기 자신에게 과도하게 높은 기준을 부과하여 자신의 실수,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타인 지향적 완벽주의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기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하고 평가하며, 사회적으로 부과된 완벽주의는 타인이 자신에게 부과한 과도하고 비현실적인 기준과 기대를 충족시켜야만 승인과 인정을 얻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고의 특성이 '성공이 아니면 실패'라고 생각하며 '완벽하지 못할 바에는 아예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못합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세상은 되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과 감정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한 '책임자 원숭이' 라는 실험이 있습니다. 두 마리의 원숭이를 묶어 놓고 그 중 한 마리를 '책임자'로 지정한 다음 불빛 등의 자극이 있을 때마다 손잡이를 누르도록 훈련시키는 실험이었습니다. 만약 자극이 있는데도 손잡이를 누르지 않을 때는 두 마리 모두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는데 결과는 사뭇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전기충격을 당한 원숭이는 잠깐 놀라기만 할 뿐 건강하게 살아남지만, 자극에 대비해 늘 긴장해야 하는 책임자 원숭이는 열흘쯤 뒤에는 심한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으로 인한 복막염으로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실업자에게 다가오는 극심한 심리적 부담감은 책임자 원숭이와 같은 것일 것입니다. 자기 중심에 갇혀 탈진의 늪 앞에 있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16-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야 모세야 "너 혼자가 아니다. 너 홀로 무거운 짐을 지고 가게 하는 것 아니다. 칠십인을 세워 백성을 이끌로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칠십인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피할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신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지지 아니라리라" 25절을 보십시오. 모세에게 임한 동일한 성령님이 임하여 일하게 하십니다.

엘리야가 자신 혼자 밖에 없다고 탄식하며 죽여달라고 할 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왕상 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 앞에서 홀로라고 행각하며 탈진의 늪으로 그 짐을 지고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나에게서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면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어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울 사람을 보내 주십니다. 에스라를 보십시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오는 길은 4개월이나 되는 먼 길입니다. 오는 길에는 대적들이 매복되어 있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는 경호원도 없이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어떻게 합니까? "(8:31) 정월 십이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모세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홀로 산 것이 아닙니다. 바로 왕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많아지자 위기의식을 느껴 모든 사내 아이들을 낳으면 강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잘 섬기는 십브라와 부아를 만나 그는 살아났습니다. 다른 산파를 만났으면 여지 없이 죽었을 것입니다. 결국 나일 강에 버려졌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은 바로의 딸을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살리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왜 바로의 딸이 대낮에 나일 강에 나왔겠습니까? 애굽 왕실이 얼마나 호화롭습니까? 당시 세계 최 강국입니다. 목욕할 곳이 없어 나왔겠습니까? 모세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모세는 결국 미디안에 가서 훈련을 받습니다. 모세가 제 3의 인생을 출발할 때 하나님께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저는 입이 둔한여 못합니다. 저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만한 사람이 못됩니다. 그 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7: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보내게 할지니라"

 

가만히 우리의 인생을 돌아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홀로 인생을 살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우리를 도와 주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도다고 할지라도 절망하며 탈진의 늪으로 빠져 들 필요가 없습니다. 홀로라고 고독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은 곳에 우리를 도울 사람을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인생과 세상은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인간들끼리 운행하는 것 같고 우연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10:29)”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12:7)”

탈진의 덫을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리의 시선을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시선을 고정하는 것입니다.

 

2. 탈진의 늪 앞에서 삶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나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주신 사명을 이루어야 합니다.

모세의 탈진의 원인은 무엇이겠습니까?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자신의 힘으로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200만이나 되는 사람에게 어디시 고기를 구해 그들을 배부르게 먹일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자신이 고난당하고 있으니 차라리 죽여달라는 것입니다(15).

학자들에 의하면 탈진의 원인은 과도한 업무 부담, 높은 기대와 압박 뿐 아니라 통제력 부족에서 생긴 낮은 자존감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에 근거해서 자기 스스로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부여된 일에 대하여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이런 상황을 앞에 놓여있습니까? 부도의 순간인데 어디서 돈을 구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노환으로 매일 몸에 통증은 오는데 이 병원 저 병원 가 보아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목사님께 기도를 받아 보아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새벽에 우는 아이 달래 보아도 계속 아이는 울고 윗 집에서 층간 소음이라고 찾아 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책임감은 더 커지는데 문제는 더 책임감에 무게를 더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무게로 인하여 스프링이 이완되고 공에 바람이 빠져 버려 회복 탄력성이 없어져 버립니다. 그러면 원망과 책임 회피를 하는 것입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12절을 보십시오. 모세는 모든 일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며 원망하고 합니다. 자신의 백성들을 돌볼 책임은 모세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모세의 책임 전가성 발언입니다. 고기를 달라고 아우성치는 백성에게 고기를 공급할 책임을 하나님께 있음을 강조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중재로서의 역할을 잊어버리고 백성들과 같은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자신의 무능력으로 인하여 탈진의 늪 앞에 있는 모세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몸을 거룩히 하고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고 합니다. 그들의 말을 다 들었다는 것입니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얼마 정도 먹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20절을 보십시오.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처음부터 능력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살인자입니다. 도망자입니다. 모세에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은 문제를 만났을 때 원망하고 자포자기 하였지만 모세는 하나님께 그 문제를 가지고 갔다는 사실입니다. 모세가 홍해를 갈랐습니까? 모세가 쓴물을 단물로 변하게 하였습니까? 모세가 만나를 내리게 하였습니까? 아닙니다. 모세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사용한 것입니다. 모세는 그 은혜를 잊어 버리고 은혜를 베풀어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세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잘 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의 지팡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지금 모세에게 말합니다. "너에게 고기를 주라는 것 아니다. 내가 줄 테이니까 내일 고기 먹을 준비를 하라"고 합니다. 그저 준비만 하고 있어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먹을 것을 주겠다고 합니다.

우리가 못한다고 하나님이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 아이어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하나님의 일을 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쓰임받는 은혜가 난관 앞에서 나를 탈진의 늪으로 끓어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아니면 여호수아를 통하여서도 얼마든지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적을 베푸실 수 있습니다.

내 능력 없다고 절망하고, 나 가진 것 없다고 낙심하며, 되어지는 일 없다고 불평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포기하며 탈진의 늪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절망하는 순간이 하나님에게 희망이 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 저는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라고 손들고 나올 때 하나님은 우리의 손을 붙들고 "그래 너는 못하지만 내가 하겠다"고 우리를 사용하십시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40:27-31)” 이 말씀을 믿습니까?

사도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3)” 나는 무능합니다. 힘이 없습니다. 지혜가 없습니다. 물질이 없습니다. 건강이 없습니다. 배경도 없습니다. 실력도 없습니다. 기술도 없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탈진의 늪 앞에서 삶이 흔들리지 않고 탈진의 늪에 빠지지 않는 우리의 신앙입니다.

가정 경제가 실직으로 곧 넘어질 것 같습니다. 경제 사정의 악화로 자녀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할 것 같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찰해보니 인간의 능력으로 건강 회복이 안될 것 같습니다. 인간의 계산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그를 때 그 짐을 짊어지고 탈진의 늪으로 뛰어 들지 말고 그 짐을 지고 문제의 답을 가지고 계시는 우리 하나님 앞으로 나오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겨 버리릴 때 참 쉽이 있습니다. 죽음까지도 다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윗은 목동입니다. 형제 중에 특별한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아예 사무엘이 갔을 때 내어놓지도 않은 아이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떻습니까? 그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 장사였습니다. 그는 어떻습니까? 말씀을 거역하며 첩을 거느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끝까지 버리지 않고 변화시켜 능력의 사람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하는 베드로 어떻습니까? 무식한 어부였습니다. 주님을 배반하고 저주한 사람입니다. 대학 나온 사람아닙니다. 돈많은 재벌 아들 아닙니다. 무능한 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능력을 주어 앉은 뱅이를 일으키는 기적을 배풀고 그의 신앙 고백을 통하여 교회를 만들어 갔습니다.

아모스 어떤 사람입니까? 뽕나무 기르는 농부출신입니다.

에훗 어떤 사람입니까? 왼손잡이입니다. 여기 왼손잡이라는 오른 손을 쓰지 못하는 병신이라는 말입니다.

입다는 어떤 사람입니까? 기생의 아들입니다. 동네에서 살 수 없어 쫓겨난 사람입니다.

삼손 어떤 사람입니까? 바람둥이입니다.

기드온 어떤 사람입니까? 스스로 고백하기를 가장 약한 자라고 했습니다. 겁쟁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사용했습니다. 연약한 우리를 하나님은 사용하여 능력있는 사람으로 만드시길 원하십니다.

시편 기자는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를 붙드시며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는도다 중생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145:14-16) 이 말씀을 믿습니까? 능력 없음으로 인하여 탈진의 늪앞에 있다면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탈진의 늪에서 탈출하시길 바랍니다.

 

3. 탈진의 늪 앞에서 삶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이성만으로 아니라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왜 모세가 탈진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들을 실컷 고기를 먹여 주겠다고 하니까 모세가 어떻게 반응하는가 보십시오. 2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모세가 이르되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모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어머 어마한 기적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모세도 그런데 우리야 어떠하겠습니까?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많은 기적을 체험했으면서도 다시 의심을 합니다. 그는 수많은 기적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멀쩡한 손이 갑자기 문둥병에 걸렸다 났는 기적도 체험하였고, 애굽에서 10가지 재앙의 기적도 체험하였고, 홍해를 가르는 기적,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는 기적, 바위에서 물이 나오는 기적, 쓴물이 단물로 되는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런데 의심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런 기적은 한번도 체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학자들은 탈진의 원인을 미래 불안한 하이텐션에서 생긴다는 것입니다. 구직을 포기한 청년들인 40만을 넘는다고 하는데 번 아웃 상태라는 것입니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포티파이가 직장인 1000명을 조사했는데 20~30대의 절반가량이 번아웃 상태였답니다. 과거에 대한 불신, 현재의 불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 등 3불 현상으로 젊은이들이 탈진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성의 한계입니다. 우리가 과학에 근거한 이성적 사유를 하면 산다고 하지만 결과는 그렇게 행복하지 못합니다. 신앙을 배격하고 인성을 절대시하는 사회가 오히려 더 불행해졌고 정신병과 각족 질병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과거 현제 미래를 살아가는 인생에 중한 것은 무식한 것같지만 믿음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경험한 것은 믿을 수 있겠는데 메추라기 기적은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질병을 기적으로 낳은 사람도 음식이 떨어지면 하나님이 음식까지 줄 수있을까 의심하는 것입니다. 기적적인 방법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도 실직을 하면 다시 직장에 들어 갈 수 있을까 걱정하는 것입니다. 아이 낳지 못한 사람이 기적적인 방법으로 아이를 낳았어도 아이와 함께 교회에 오면 감기 걸릴까봐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 꼴입니다. 이 백성이 보행자만 즉 남자 장정만 60만인데 일개월 간 어떻게 고기를 줄 수 있냐는 것입니다. 양떼와 소떼를 잡고 바다의 고기를 모은들 족하게 먹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23절을 다같일 읽어보십시오. "여호께서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이 말씀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3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손은 짧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성에 제한을 받으신 분이 아니십니다. 현제의 결과가 미래로 연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막연한 개연성의 늪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에 근거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과학적 추리에 제한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논리적 사고 틀에 얽매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조그마한 두뇌에 한정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초라한 경험으로 다 이해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세상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세상을 만드신 분이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역사를 섭리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신앙인에게 탈진은 근본적으로 믿음 없음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약화되면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11:1” 예수님은 계속해서 오늘날도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면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선포하고 계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십시오. 빈들입니다. 저녁입니다. 음식점도 없습니다. 음식점이 있다하더래도 장정만 5000명입니다. 빌립은 계산이 빨랐습니다.(6:7)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할 것이라고 합니다. 안드래는 누가 음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없나 찾아 보았습니다. 한 아이가 자기의 도시락을 내놓았습니다. 그것으로 다 먹고 12바구니를 거두었습니다.

빚에 시달리다 결국 아들까지 종으로 내어주어야 하는 선지자의 아내를 보십시오.

남편은 죽고 빚은 있고 이제 아들까지 그 빚을 변재하지 못하여 노예로 팔아야 할 형편입니다. 그가 가진 것은 기름 한 병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사를 통하여 기적이 일어나게 했습니다. 하나님 보다 한 발 앞서가면서 염려하고 걱정하며 탈진의 늪에 갇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조금만 더 가면 오아시스가 나오는데 물가지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보다 한 발 뒤에 걸어 가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지금 있는 것으로 시작해 보십시오. 지금 있는 것으로 하나님은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왜 나 홀로 이 무거운 짐을 지게하십니까?(11,14)라고 탈진의 늪으로 들어가고 있습까?

커다란 짐 앞에서 자신의 무능력을 한탄하며 탈진의 늪으로 몸을 던지고 있습니까?(12-13)

나는 할 수 없다고 포기하며 탈진의 늪으로 직진하고 있습니까?(15)

나에게서 문제에서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그곳에 삶이 흔들리지 않고 탈진의 늪에서 들어가지 않고 탈진의 늪에서 헤쳐 나오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준비하여 우리를 탈진의 늪에 들어가지 않도록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탈진하지 않고 우리의 일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탈진의 늪에서 빠져 나와 신비한 세계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23)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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