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흔들린 때(10) 적대적 차별 앞에서
사도행전26:24-25
제가 퀴즈를 낼 터인데 맞추어 보세요. 한글을 만든 분은 누구입니까? 세종대왕입니다. 그러면 한글 띄어쓰기를 처음 도입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영국 선교사 로스입니다. 한글의 우수성에 가장 먼저 주목한 서양인이었습니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접한 한글에 매료돼 1877년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재 ‘조선어 첫걸음’(Corean Primer)을 발간했습니다. 교재를 펴내며 조선인도 생각지 못했던 한글 띄어쓰기를 최초로 도입했습니다. 독립신문이 시작한 한글 띄어쓰기보다도 19년이나 앞섰습니다. 최초의 한글 성경도 그가 펴냈습니다. 그는 “조선 알파벳은 현존하는 문자 가운데 가장 완전하다”며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도 힘썼습니다. 그가 어떻게 한국에 왔을까요? 한국에 선교하기 위해 들어와 최초로 순교한 선교사는 로버트 토머스 선교사인데 그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866년 조선 선교의 꿈을 품고 조선에 들어왔다가 대동강에서 조선군에게 붙잡혀 27세 나이로 순교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모친은 “내 아들을 죽인 조선을 위해 기도한다”라고 했는데 최초로 성경을 한글로 번역한 존 로스 선교사는 “토머스 선교사의 뜻을 내가 이루겠다”며 자원하고 나섰답니다. 이렇게 영국은 한때 온 나라 백성이 기독교인이었고 아프리카 인도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까지 선교사를 파송하여 세계 선교를 감당한 나라였습니다. 중세 이후 영국만큼 복음의 역사가 크게 일어나고, 영국만큼 복음의 종들이 많이 일어났던 나라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와 ‘설교의 황제’로 불리우던 챨스 스펄젼과 ‘기도의 사람’으로 유명한 죠지 뮬러, 아프리카 선교사였던 리빙스턴,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암 부스 등 수 많은 복음의 종들이 영국에서 일어났습니다. 17-20세기 세계 선교사의 80% 이상이 영국과 미국에서 보낸 선교사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매주 4개씩 영국 교회가 문을 닫고 있다고 합니다. 몇 달전 신문을 보니까 영국 기독교인 56%가 “신앙 지킨 대가는 적대·소외·차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올해 비영리단체 ‘정의를 위한 목소리 영국’이 기독교인 1,562명을 조사했는데 영국 기독교인의 절반 이상(56%)이 자신의 신앙에 대한 적대감 및 조롱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수치는 35세 미만의 젊은 세대에서 5%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젊은 기독교인들의 경우 자신의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더욱 어려워하고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합니다. 영국은 기독교 국가이지만 사회 전반이 진보적으로 흘러가며 반기독교적 정서가 늘어나고 있고 결혼과 성 정체성 등에 대한 기독교 신앙 및 가치관이 굳건한 기독교인들이 점점 사회에서 소외감과 차별을 느끼고 교회를 떠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21~2022년 영국 기독교인의 비율은 약 46.3%였습니다. 이는 10년 전인 2011년(59.4%)에 비해 13.1%, 20년 전인 2001년(71.7%)과 비교해 25.5% 감소한 수치라고 합니다. 영국에서 신앙생활하는 것 자체가 적대감과 조롱을 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때 기독교 국가였던 서구 사회가 변한 것입니다. 교회에 나간다고 하면 “아직도 미신을 믿고 있냐”라고 비아냥을 당할 정도로 신앙인이 적대적 차별을 받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도킨스 같은 신무신론자들이 앞장서 신앙은 이성과 과학의 적이라며 과학적 도덕적 차원에서 기독교를 맹공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무신론 단체는 "안심하세요. 지옥은 없습니다. 천국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즐기세요.", “아마도 하나님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걱정일랑 집어치우고 당신의 인생을 즐겨라”라는 글귀를 적은 현수막을 내걸고 무신론 단체의 회원을 모집하며 기독교인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진화론과 유물론을 추종하는 자들은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세뇌시키고 있습니다. 영국 왕립학회 회원인 리처드 도킨스은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책을 통해 사람은 유전정보를 실어 나르는 그릇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존재가 아니라 유전자 보존과 확대라는 유전자 기계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9살 때 하나님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다는 그는 <만들어진 신>을 통해 하나님을 인간에 종속된 산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기독교에 적대적인 무신론자들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다니엘 데닛(Daniel Dennett),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 등은 무신론이 더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만들어 주고 자유와 행복을 보장해 준다고 사람들은 세뇌하고 있습니다. 유물론과 진화론의 결합으로 과학적 무신론이 답이라고 초집단적으로 공교육을 통해 세뇌하고 있는 것입니다. 8.15가 되었을 때 어릴 때부터 일제에게 세뇌된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학생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우리 일본이 망했다니”하며 슬퍼했다고 합니다. 북한 정권에 세뇌된 사람들은 보십시오. 올림픽 때 응원단으로 온 북한 응원단이 김정일 사진이 비를 맞는다고 우는 것입니다. 김일정 김정일 김정은 3부자가 자신들에게 행복을 준다고 집단적으로 세뇌된 것입니다. 이 세뇌는 누구가 세뇌시키는 주체가 있습니다. 그러나 초집단적 세뇌는 그 주체가 없습니다. 진화론과 과학주의, 물질주의로 무장한 공교육의 거대한 흐름이 하나님은 없다고 어릴 때부터 인간을 세뇌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동성연애를 합법화하고 내 인생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세뇌하는 것입니다. 진정 행복한 삶을 사는데 하나님은 거침돌이 된다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절대적인 기준이 상실되어 모든 것이 상대화되고, 권위가 상실되고, 절대적인 해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물질에 불과하며 진화의 산물이라고 세뇌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물결은 우리나라에도 밀려와 우리나라 역시 탈종교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2024년 1월 3일 기준 종교별 인구 비율은 기독교 17%, 불교 12%, 가톨릭 8%, 기타 0.3%, 무종교 63%로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약 870만 쯤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교인은 2012년 22.5%였는데 10년 후 17%로 감소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중 가나안 성도가 160만 명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목회데이터 연구소에 이하면 2023년 가나안 성도 비율은 26.6%로 2012년 10.5%에 비해 2.5배 증가했답니다. 10년 전 개신교인 10명 중 1명 정도가 교회 출석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4명 중 1명이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청소년 기독교 비율은 13.6%입니다. 20대 교인은 최근 10년 사이에 절반으로 감소했는데 어릴 때 교회에 나가던 어린이도 20대에 접어들면 교회 출석율은 55%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이제 어린이나 청소년이 교회에 나오는 비율은 그 연령대의 5%도 안 된다고 합니다. 지금 교회에 나오는 아이들도 33%는 어른이 되면 교회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기독교 청소년은 53%가 모태 신앙인이지만 61%는 학교에 가서 교회에 다닌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청소년 31.5%, 부모도 가나안 성도라고 합니다. 해다마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가 늘어나고 있어 2030년이 되면 교회학교 90%는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학령인구 감소율보다 교회학교가 두 배 정도 높다고 합니다. 우리 교단이 최대 교단인데 100명 미만의 교회 중 48%가 아이들이 없어 주일학교가 없다고 합니다. 소속교회가 1만 2천 교회 쯤 되는데 교회학교를 담당하는 교육자가 있는 교회가 약 1천 교회뿐이라고 합니다. 신앙에 대한 거대한 적대적 차별 앞에서 유럽 교회는 이미 무너져 가고 있고 우리 나라 교회도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 대해 적대감을 가진 이들과 그들이 이끄는 반 기독교적 문화 속에서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신앙을 유지하며 대대손손 기독교 신앙을 전승하며 신앙가문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1. 적대적 차별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신앙으로 삶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바울은 거대한 반 기독교 정치 세력 앞에서 여섯 번째 심문을 받고 있습니다. 아그립바 앞에서 그에게 바울은 무슨 질문을 합니까? 2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본래 헤롯 아그립바는 저유명한 헤롯 대왕의 증손자(아그립바 II세)입니다. 증조부 헤롯대왕이 유대인과 에돔 혼혈 출신이지만 자신은 헤롯 왕가의 마지막 통치자로 유다의 문화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자로 자처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가문은 성경을 잘 못 알고 있었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대대로 예수 믿는 사람들과 원수가 된 집안입니다. 그의 할아버지 헤롯 대왕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2살 이하 아이 무참하게 살해한 사람입니다. 그의 삼촌은 세례 요한의 목을 멘 사람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야고보를 처형했고 베드로 투옥시킨 사람입니다. 바울는 자신을 미쳤다고 하는 자들 앞에서 자신이 믿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분명하게 전합니다. 자신이 믿는 예수님은 자신의 개인적 철학이나 인간적 학습이나 민족적 전통에 만들어 진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인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22-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 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리라 함이니이다" 성경에 근거하여 믿고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이성 수위론이 아니라 신앙 수위론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종교를 크게 나누면 자연종교와 계시 종교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계시란 열어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이성으로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보여 주신 것에 근거하며 믿는 것입니다. 계시에는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가 있습니다. 일반 계시란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보여 주시고 허락하신 모든 진리 예를 들어 자연, 역사, 양심등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하나님을 정확히 알 수없고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특별히 자신을 계시하시고 구원의 길을 계시하셨는데 그것을 특별 계시하고 하고 대표적인 특별 계시가 바로 성경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5:39)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을 적대시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성경이 신화같고 역사서 같고 문학같고 예언서 같지만 본질적으로 구약 창세기 1장부터 신약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까지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이야기입니다. 성경의 중심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며 성경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다면 성경을 읽은 것이 아닙니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고 행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고, 신약의 기록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혹은 풀어서 기술한 것이며 구약의 기록은 비유적, 모형적, 상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양에서 만나를 먹고 죽지 않고 살았는데 그것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씀 한다는 것입니까? 요한복음 6장 51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구리뱀을 만들어 걸어 놓았는데 예수님은 그것이 말하는 궁극적인 의미가 무엇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까? 요한복음 3장 14-15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누가복음 24장 27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 가실 때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눅18:31)"라고 했습니다.
부활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예수님은 대답하시기를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오해 하였도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것을 너희가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자의 하나님이시라."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시작에서 마칠 때까지 예수님의 웅장한 구원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조-타락-구원-완성으로 이루어진 성경은 우리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완성하시는 여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창2:3, 요19:30, 계21:6). 구약에서 죽음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복음서에서는 죽음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구세주의 현현을 사도행전에서는 구원주 예수님에 대한 선포를, 서신서에서는 설명을 계시록에서는 완성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중심 내용은 구원의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다양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지만 성경에는 하나의 궁극적 계획, 하나의 궁극적 줄거리, 하나의 궁극적 승리자, 하나의 궁극적 왕이 있습니다. 구약은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겠다는 약속이고, 신약은 그 약속대로 오셔서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고 계십니다. 구약은 그림자이고, 신약은 실체입니다. 구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많은 예표와 모형들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겠다는 약속이 300가지 이상 자세하게 묘사되었습니다. 그리고 역사 속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여자의 후손을 태어날 것(창 3:15)라고 했는데 그대로 때가 차매 여자의 후손으로 태났고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날 것이라고 했는데(창17:7) 그대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났고(갈4:4) 유다의 후손(마1:3), 다윗의 후손으로 탄생했습니다(행13:22-23). 태어나실 때도(단9:24-25;갈 4:4), 태어나실 장소도(미5:2; 마 2:1),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실 것도(사7:14), 태어나실 때 유아 학살이 있을 것도(렘 31:15;마2:16-18), 귀한 예물을 바칠 것도(시72:10;마2:11), 애굽으로 피신할 것도(호 1:1; 마 2:15)도 예언되고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줄 것이라는 과도한 과학의 신격화를 주장하는 과학주의, 자연이 전부이고 초월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연주의, 과학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을 무조건 진화로 메꾸려는 ‘빈틈의 진화’를 외치는 신무신론(新無神論)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증언해 주고시 예수님의 능력이 증언해 주실 뿐만 아니라 성경이 증언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첫째, 믿음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이기고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히10:38)” 둘째, 죄사함을 받습니다.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10:43)" 셋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립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넷째,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갑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엡3:12)” 다섯째, 믿음으로 능력을 행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9:23)” 여섯째 믿고 구하면 기도 응답을 받습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21:22)”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약 5:15)” 믿음으로 마음이 깨끗하여지고(행15:9) 믿음으로 기업을 얻게되고(행26:18) 믿음으로 의로워지고(롬3:22) 믿음으로 기쁨과 평강이 충만해지고(롬15:13)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고(벧전1:5) 믿음으로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습니다.(엡1:13)
2. 적대적 차별 앞에서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 체험을 담대하게 전해야 합니다.
미처다고 하는 세력들과 적대시하는 아그립바 왕 앞에서 바울은 무엇을 말합니까? 행26:19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하늘에서 보이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14-18절까지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그립바에게 다시 자신이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사는 사람인가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자신은 바리새인으로 양육받았고(4-8) 예수님에 대하여 알고 있을 때는 광신적으로 예수믿는 사람을 박해하였다는 것입니다.(9-11) 그러나 어느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12-18) 직접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아는 차원이 아닙니다.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18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눈을 뜨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는 분이십니다. 죄사함을 주고 믿음으로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화실한 예수님 체험을 한 것입니다. 확실한 간증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예수님의 인생이 내 인생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고 예수님의 비전이 내 비전이 되고 예수님이 기뻐하신 것이 내가 기뻐하신 것이 되고 예수님의 언어가 내 언어가 된 것입니다.
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신앙인을 적대시합니까? 몰라서 그렇습니다. 예수님 체험을 하지 못해서입니다. 신앙 체험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기적을 보았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그 중 믿는 사람들은 일부였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은 믿게 되어 있습니다. 하버드 신경외과 의사인 이븐 알렉산더도 뇌과학자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교수로 과학 학술지에 150여 편이 넘는 논문들을 게재했고, 국제의학컨퍼런스에서 200회 이상의 연구 발표를 하는 등 뇌와 의식의 작용에 관해 뛰어난 업적을 쌓은 세계적인 뇌의학 권위자입니다. 그는 물질주의적인 관점에서 영혼, 신, 사후세계 등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죽었다 살아난 임사체험을 한 후 임사체험이란 뇌가 만들어내는 환각이 아니라 '완전한 실제(Ultra-Real)'라고 말합니다. 천국, 신, 영혼에 관한 그 어떤 이야기도 의학적인 지식과 양립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직접 경험한 후 신과 영혼이 실재하며 죽음이란 다만 다른 상태로의 전이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7일 동안 죽었다 살아 나보니 임사체험이 뇌가 만들어내는 환각이나 망상이 아니라 뇌와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의식의 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사후 체험을 <나는 천국을 보았다>라는 책으로 펴내고 무신론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이 체험한 신앙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어령 교수도 한국 지성인 중의 한 분으로 인문학적 소양이 대단한 무신론자였습니다. 딸이 전 캘리포니아주 검사를 거쳐, 청소년 범죄 전문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손자가 자폐증에 걸렸고 딸이 암에 걸리고 시력이 상실되어 앞을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신비하게도 기도하면서 15년 동안 앓아 왔던 암에서 치유되고 손자의 자폐증이 낫는 기적과 시력이 회복되는 능력을 체험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실제 옆에서 경험하게 되고 결국 “사랑하는 내 딸아, 너의 기도가 높은 문지방을 넘게 했다. 암에 걸렸던 너의 아픔과 어둠이 나를 영성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 70평생 살아온 내 삶이 잿불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다.”라고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성으로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존재를 믿음으로 받아들였고 2007년 세례를 받고 영적인 세계를 인정하며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그 후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시작으로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 <지성과 영성의 만남>, <소설로 떠나는 영성순례>,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등을 펴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 체험을 한 사람들입니다.
아이들이 진화론을 배우고 대학에 가면 “과학이 신의 부재를 증명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루이스(C. S. Lewis)도 <기쁨으로 놀라며(Surprised by Joy)>라는 자서전적 글에서 이 선언을 믿었었다고 합니다. 그는 어린 시절 무신론자였는데 그렇게 된 것은 과학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의 무신론은 과학과 과학이 발견한 것들을 믿음으로 근거해서 형성되었다는 것을 당신은 이해해야한다. 과학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사실 과학적 권위들에 대해서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과학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었지만 누군가가 신의 부재를 과학이 증명했다고 말하니까 그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라고 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 시그마 자이(Sigma Zi)라는 전문 여론 조사기관이 3300명의 응답자를 조사한 결과 박사 학위를 가진 과학자들 중 43%가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 것으로 나타났답니다. 미국의 일반 대중 중 44%가 교회에 간다고 대답했답니다. 과학 분야에서 높은 학위를 가지고 있다고 다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요하네스 케플러는 “나는 예수님을 섬기는 것만을 믿는다. 그 안에서 모든 피난처와 위안을 얻는다”라고 했습니다. <나는 위대한 과학자보다 신실한 크리스천이고 싶다(정근모 저)>도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았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이 '만성신장염'에 걸려 앞으로 그 신장은 5년이 지나면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는 진단을 받아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답니다. IQ 152인 아들이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며 우울증에 걸리고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답니다. 결국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답니다. "아들아! 너는 네 아들에 대하여 감사해 본 적이 있느냐?"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아들 때문에 감사할 수가 있는가?' 다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답니다. "네가 지금껏 큰 짐으로 생각해 왔던 네 아들을 통해 너와 네 가족이 구원받지 않았느냐?" 그는 너무나 감격하여 엉엉 울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학력과 과학의 능력으로는 조금도 손댈 수 없는 생명의 역사 앞에서 그는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고 이제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 뜻대로만 살겠다는 결단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답니다. 교회 장로로 섬기고 있는 정근모 박사는 말합니다. “신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벌써 신이 아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정복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할 수는 없다. 어찌 과학적으로 하나님을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내 삶을 통해 끊임없이 사랑을 베풀어 주셨던 하나님, 세미한 음성으로 때로는 위로해 주셨고 때로는 나아갈 길을 인도해 주셨던 그 하나님을 믿는다. 지나온 삶을 반추해 보면 더욱 그것을 깨닫게 된다.”
어떤 적대적 세력 앞에서도 복음을 증거하는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된 세상에서라도 복음은 능력이 있습니다. 구원의 능력, 화목의 능력,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바울은 확실하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1:16)”
3. 적대적 세력 앞에서 우리는 삶을 통해 세상 사람들을 우리와 같이 살게 만들어야 합니다.
바울이 적대세력인 아그립바 왕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계속 전하자 아그립바 왕이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2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 도다“
이 때 바울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이 아니라 오늘 내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일하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이렇게 죄수로 결박되어 여러분 앞에 서 있는 모습 빼고는 나는 여러분이 나같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를 미쳤다고 하는 그들에게 내 마음속에 있는 평화를 당신들도 누렸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내 영혼 속에 넘치는 구원의 기쁨을 당신들도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죽으면 나를 위해 예비 된 저 천국을 향한 그 놀라운 내세의 희망을 당신들도 소망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와 목적이 되는 예수님을 당신들도 믿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서 자신이 은혜를 받아 풀려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니라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말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도 자신과 같이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초라한 늙은 죄수에 불과합니다. 재판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베스도 총독, 아그립바 왕, 버니게라고 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힘있고 돈있고 건강하고 화려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눈에는 그들은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 구원받아야할 불쌍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우리도 이런 고백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가난하다고 부끄러워하고 초라해 할 것없습니다. 별거 아닌 인간의 허세 앞에 비굴하지 않습니다. 다 한 줌의 재로 변해 버리는 것입니다. 힘없다고 기죽지 말고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적대시하는 당신 권력자들이 보인 반응이 무엇이었습니까? 행26:30-32을 보십시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는 결박당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라"라고 합니다. 32절에서는 아그립바 왕조차 바울이 로마의 가이사 황제에게 상소만 안했더면 당장 석방시킴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적대자들도 바울의 무죄함과 그의 삶의 순결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바울의 삶을 부러워했을 것입니다.
왜 신무신론자들이 기독교를 비판하며 적대시합니까? 9.11 테러 이후 종교인들을 보니까 평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주범들이라는 것입니다. 인류에 일어난 전쟁은 거의 종교전쟁이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가 있어서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보니 하나님이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도킨스는 “간섭하지 않는 종교”에 대해 가졌던 존경심의 마지막 흔적은 2001년 9월 11일의 연기와 숨 막힐 것 같은 먼지 속에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자살 폭탄 공격자, 9/11, 7/7 자살 폭탄, 십자군, 마녀 사냥, 인도의 분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세르비아/크로아티아/무슬림 학살, 유대인 박해, '명예 살인' 등이 종교 때문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신앙이 잘 못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면 인간끼리 전쟁 없이 더 행복을 누리 수 있을 것같습니까? 하나님 없는 공산 주의가 만든 만행을 보십시오. 인간을 동물화, 물질화시키다 보니 절대 도덕성이 상실되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어 버렸습니다. 기회주의, 이기주의, 물질 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얼마나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고통을 받게 만들고 있습니까? 그래도 기독교가 있기 때문에 이 만큼 세상을 보존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인을 개독교, 미친 인간이라고 하지만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신앙인들이 얼마나 많은 선한 일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예수님처럼 살지 않기 때문에 적대시하는 것이니다.
바울의 말을 듣고 있던 베스도 총독이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라고 했습니다. 베스도 총독이 본 바울은 아깝고 답답하고 미친 사람과 같았습니다. 난지 팔일 만에 할례받은 정통 유태인입니다. 공부도 할 만큼 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걱정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예수에게 미쳐서 여길 가도 예수, 저길 가도 예수, 총독 앞에서도 예수, 왕 앞에서도 예수, 감옥에서도 예수, 거기서 나와도 예수, 집안에서도 예수, 길거리에서도 예수! 완전히 미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을 바울은 하고 있었습니다. 성공 출세를 마다하고,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고생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 바울을 바라본 베스도 총독은 "네가 미쳤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결코 미치광이가 아니었습니다. 신약성경 27권 중에 반절이 바울이 쓴 책입니다. 미친 사람이 책을 쓸 수 있습니까? 그는 미친 것도 아니고 정신이 이상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삶을 통해 세상을 변했습니다. 오늘 날도 오직 예수님으로 세상을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빛과 소금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믿는 사람답게 삶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한국 교회 초기 교인 중의 한 분인 서상륜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13살 때 부모님을 여위었습니다. 삶의 여건이 좋은 부모 만나지 못했습니다. 가난합니다. 고아가 된 이 사람은 살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성에서 나는 고려인삼을 사 가지고 만주에 가서 팔았습니다. 인삼장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장사를 하다 31살에 장티푸스에 걸렸습니다. 열이 오르고 쓰러지고, 헛소리를 했습니다. 아무도 그를 돌보아 주지 않았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스코트랜드에서 파송 된 메킨타이어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그분은 정성을 다해 치료해 주었습니다. 죽어 가는 그를 살렸습니다. 서상륜에게는 메킨타이어가 생명의 은인이었습니다. 선교사는 그에게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는 가장 고귀한 만남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일년만에 세례를 받고 그의 인생은 변했습니다. 이제 가난이나 질병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 번역인 로스 성경을 로스 선교사님과 함께 번역했습니다. 황해도 장면에 있는 송천(솔내, 소래)에 가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전합니다. 최초의 교회인 '송천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를 만나 서울에 새문안 교회를 새웁니다. 처음 14명이 세례를 받습니다. 모두 서상륜이 전도한 사람들입니다. 황해도, 평안도 할 것 없이 부산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평생 평신도로 살며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집을 헌납하여 교회를 지었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가난하였습니다. 그래서 언더우드 선교사님께서 그가 헌납한 집과 똑같은 기와집을 노년에 사주었다고도 합니다. 예수 만나면 인생이 바뀌고 가정이 바뀌며 사회가 바뀝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자 소아시아와 유럽이 변화되었습니다. 이레니우스가 예수님을 만나자 프랑스가 복음화되었고 영국에서 건너온 보니페이스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독일이 기독교 나라가 되었습니다. 패트릭이라는 16살 난 포로 소년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아일랜드가 복음화되었으며, 언더우드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한국 땅에 복음의 씨가 뿌려져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아도니람 저드슨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미얀마가, 허드슨 테일러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중국이 변화되었습니다.
공적 기관에서 종교 편향이라고 신앙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제한하고, 세속적 가치관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당당하게 신앙 생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신앙인을 미친 사람 취급하는 적대적 차별 앞에서 우리는 신앙 생활을 포기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적대적 차별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신앙으로 삶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적대적 차별 앞에서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 체험을 담대하게 전해야 합니다.
적대적 세력 앞에서 우리는 삶을 통해 세상 사람들을 우리와 같이 살게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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