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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흔들린 때(11) 힘이 주어질 때(사무엘상13:8-14)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5910 추천수:3 218.147.218.173
2024-08-18 11:34:07

삶이 흔들린 때(11) 힘이 주어질 때

사무엘상13:8-14

 

만약 우리 성도님들에게 북한 김정은같이 절대 권력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액턴 경은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윌리엄 피트는 무제한적 권력은 그 권력을 쥔 자의 정신을 부패시키기 쉽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사람은 절대 권력을 가지면 정신과 인생도 부패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속성이 부패하게 만들고, 권력을 생산하는 시스템이 사람을 부패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권력의 심리학(브라이언 클라스 저)>라는 책에 요거트 왕 마르크 라발로마나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인구 25백만 정도가 사는 아프리카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섬에서 태어났는데 가난하게 자랐답니다. 세계서 4번째로 큰 섬이고 세계 47번째 큰 나라로 기독교인이 41%나 됩니다. 다섯 살 무렵, 그는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물냉이가 든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나가 낡아빠진 기차의 승객들에게 팔았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작은 행운이 찾아왔답니다. 이웃이 그에게 자전거를 준 것입니다. 어린 라발로마나나는 자전거를 타고 가까운 농장을 돌아다니며 남는 우유를 얻었고, 이것으로 수제 요거트를 만들었답니다. 풋내기 사업을 키워가는 동안 그는 어려움을 겪는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려고 애썼답니다. 다니는 동네 교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성가대에서 성가대원으로 찬양을 불렀답니다. 그렇게 살던 그는 사업을 통해 1990년대 말에 섬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 명이 됐었답니다. 2002년에는 여전히 모두가 무일푼인 나라에서 무일푼으로 자수성가한 이야기의 가치를 이해하는 현명한 정치인이자 대통령 라발로마나나로 거듭났답니다. 대통령이 된 그는 변화를 약속하고 처음에는 이를 실행에 옮겼답니다. 도로 건설에 투자했고 부패를 단속했으며, 그 결과 세계에서 가장 급속도로 성장하는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답니다. 그러나 그는 권력에 취할수록 도덕성을 잃었답니다. 2006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주요 정적을 강제로 추방한 뒤, 후보자 등록이 끝날 때까지 본국에 돌아오지 못하도록 막아 선거에 압승하고, 6년이라는 집권 기간을 거치는 동안 일반적인 사람들이 1년에 수백 달러 남짓을 버는 나라에서 그는 국고 6,000만 달러를 들여 대통령 전용기를 샀답니다. 전용기의 명의를 정부가 아니라 본인으로 하려고 했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의 부패는 점점 더 심해졌고 2009, 한 라디오 DJ가 갑자기 인기를 얻더니 정치인이 되어 라발로마나나 대통령에게 맞서는 시위대를 조직했답니다. 시위대가 대통령궁에 도착하자 요거트 왕을 지키는 군인들이 사격을 시작했답니다. 국민은 분노했고 쿠데타가 일어나 라발로마나나를 끌어내렸답니다. 국민은 그 자리에 라디오 DJ를 앉혔지만, 그는 자신이 밀어낸 요거트 왕보다 더 부패한 대통령이 되었답니다. 저자는 당신이 또는 내가 어느 날 갑자기 그 섬의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우리 또한 부패하는 건 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라고 말합니다.

 

막강한 힘이 주어지면 그 힘이 그 사람과 그가 사는 사회에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삶과 세상을 무너지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 순순하게 예배당에 나가 봉사하고 찬양을 부르던 그가 돈과 세상 권력을 잡자 부패해지고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힘이 없을 때도 삶이 흔들리지만, 힘이 주어질 때도 삶은 흔들립니다. 힘이란 "자신 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능력, 실력, 권력, 세력 따위입니다. 정치 권력의 힘, 외모의 힘, 지식의 힘, 건강의 힘, 명예의 힘, 돈의 힘 등 누구나 힘을 얻기를 원합니다. 어느날 대통령이 되고, 장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차관이 된다는 것, 어느날 과장, 이사로 진급한다는 것, 어느날 사법고시 행정고시에 합격한다는 것, 어느날 사장이 되고 큰 부자가 된다는 것, 어느날 박사 학위를 받는다는 것, 어느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따른다는 것 이것 얼마나 신나고 살 맛나겠습니까? 능력, 실력, 권력, 세력, 재력 등을 얻는 것은 보통 즐거움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그 힘은 얻는 것은 쉽지 않지만 어렵게 그 힘을 얻고 쓰러져 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재력의 힘이 없을 때는 성실한 남편이 재력이 힘이 생기니까 바람을 피우며 가정이 파탄이 납니다. 권력의 힘이 없을 땐 겸손하게 살던 사람이 권력의 힘이 생기자 그 힘을 남욕하고 오용하여 사리 사욕을 추구하다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감옥에 갑니다. 미모의 힘이 없을 때는 잘 어울려 살다가 성형 수술하고 미모의 힘이 생기자 인기에 취해 마약을 하고 이 남자 저 남자를 거치며 버림을 당합니다. 인기의 힘이 없던 사람이 인기의 힘이 생기면 성적으로 타락하여 방송에서 퇴출되어 버립니다.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크고 작은 힘들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때 그 힘 때문에 삶이 흔들리지 않고 그 힘으로 더욱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신과 가족도 행복하게 살며 주어진 힘으로 세상을 조금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1. 주어진 힘으로 삶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주어진 힘을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여야 합니다.

사울은 초대 왕이라는 권력이 주어질 때 그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블레셋과 전쟁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숫적으로 비교가 되지 않는 싸움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블레셋 전력은 병거 3, 마병 6, 군인은 해변의 모래같이 많았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그것을 보고, 숨으며 모두 떨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에게 사기를 북돋아 주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할 사무엘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정한 기간 7일을 기다렸지만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제사를 통해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고 전쟁에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제사를 통해 두려워하는 백성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백성들이 용기를 가지고 전쟁에 참여할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왕권을 가지고 자신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와서 사울왕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제사 드리는 것이 망령되이 행했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무지하여 경솔하게 행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1714-20절까지는 이스라엘 왕이 세워졌을 때 이스라엘 왕이 지켜야 할 명령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을 말씀을 통치 이념으로 삼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통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제 1 덕목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선포하고 증거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도구화하여 자신의 왕권을 공고히 하려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드려야 할 제사를 자신이 드리는 것입니다. 권력의 힘을 남용한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삼권이 엄연히 분리되어 있고 대통령도 법에 의해 주어진 권한 이외의 것을 시행하면 탄핵을 당합니다. 주어진 힘을 제 것인 양 착각하고 교만해져 전능하신 하나님이 된 것처럼 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본래 사울이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외모가 잘 생긴(삼상9:2) 청년이었지만 아주 겸손했습니다. 사무엘이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하러 왔을 때, "나는 이스라엘 지파들 중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의 사람이 아니냐"라고 말했습니다(삼상9:21). 목동과 농부로 일반 백성처럼 부모에게 효도하며 농사와 가축을 돌보는 삶을 살았습니다(삼상9:3-5).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삼상10:1,6).

그러나 왕이 되자 그는 그에게 주어진 권력의 힘을 하나님께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지 않고 남용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를 자기가 차지하고 싶은 것입니다. 길갈에서 사무엘이 해야 할 일을 자신이 해 버립니다. 월권을 하는 것입니다. 한 번이 아닙니다. 반복적으로 합니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엘 상 1522-2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권력의 힘을 주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만이 왕이라는 사실을 드러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목적을 두고 사용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하나님을 도구화하여 말씀을 어기면서까지 승리함으로 자신의 영광을 구하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성공이나 영광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영광을 받으실 분입니다. 목적이 아무리 선하다고 해도 방법이 잘못된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없고 주어진 권력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면 그 권력의 힘 때문에 삶은 흔들리고 결국 권력도 잃어버리고 비참하게 인생은 끝나 버리고 맙니다. 사울은 결국 자신도 자식도 전쟁터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사울왕의 마지막 전투는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 군대는 크게 패배하고, 사울의 세 아들인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가 모두 전사하게 됩니다(삼상31:2). 자신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히는 것을 두려워하여, 무기를 든 자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그의 병사가 두려워서 거부하자, 사울은 스스로 칼에 엎드려 자살하게 됩니다(삼상31:4). 그의 병사도 결국 그를 따라 자살하게 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의 시신을 발견하고, 그의 머리를 베어 블레셋 땅 곳곳에 전리품으로 보냈습니다. 또한, 사울의 시신을 벳산 성벽에 걸어 모욕했습니다(삼상31:9-10).

 

어떤 힘이든지 힘이 주어질 때 그 힘을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사용할 때 삶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자신의 영광을 위해 남용하고 오용하면 결국 그 힘도 잃게 되고 자신도 불행해지고 사후에 자신의 삶은 모독을 당하게 됩니다. <권력의 심리학(브라이언 클라스 저)>라는 책을 보면 부패하게 하는 권력의 어둠의 3요소를 첫째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마키아벨리즘이라고 합니다. 어디로 가나 서울만 가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것만 성취하면 최고라는 생각입니다. 절대 권력의 힘을 가진 사울의 특징은 목적을 위하여 잘못된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백성이 흩어지고 사무엘이 정한 시간에 오지 않아 부득이 번제를 드렸다는 것입니다(삼상13:11-12). 아말렉과 전투에서도 다만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게 제사를 드리기 위해 양과 소를 끌고 왔다는 것입니다(삼상15:21). 하나님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방법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원하지 않습니다. 목적을 위해 아무런 수단을 사용한다고 그것을 정당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마키아벨리즘에 사로잡힌 자들은 음모, 대인관계 조작, 타인에 대한 도덕적 무관심 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데 그것들은 권력자를 부패하고 타락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성경을 통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공부를 하든, 사업을 하든, 정치를 하든, 직장생활을 하든, 운동선수를 하든 힘이 주어질 때 그 힘을 하나님께 영광돌리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아무리 많이 힘이 주어진다해도 그 힘이 우리의 삶이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2. 주어진 힘으로 삶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주어진 힘은 섬김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권력을 남용하여 번제를 드렸을 때 사무엘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사무엘이 왕에게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물어 봅니다. 그러자 사울은 12절에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자신을 치러 와서 어쩔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는 것은 제사인데 사무엘이 오지 않자 부득불 자신이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왕권의 힘을 오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리하여 대리 통치자로 백성을 다스리고 섬기도록 주신 것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백성이 자신에게 흩어지니까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사무엘 핑계, 백성 핑계를 댑니다. 전정권 핑계, 백성의 어리석음을 핑계댑니다. 요즈음 말하면 지지율이 떨어지니까 주어진 힘을 오용해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11절에도 반복해 말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의 잘못을 지적하며 무슨 말씀을 합니까?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백성의 지지를 끓어 모르려고 하지만 백성의 지지는 그렇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힘은 주어질 때 바르게 섬김으로 사용될 때 그 힘은 더 강력해 지는 것입니다. 권력의 힘 뿐 아니라 모든 힘은 섬김을 위해 쓰려질 때 그 힘은 오래가며 자신뿐 아니라 공동체에게 유익하게 되는 것입니다. 권력을 오용하여 섬김을 받으려고 하면 백성이 자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지도는 더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불이익이 있다고 해도 백성을 변하지 않는 원칙을 가지고 섬길 때 백성을 결국 그 사람을 알아주고 더 존경하며 더 지지를 보내주는 것입니다.

<권력의 심리학(브라이언 클라스 저)>라는 책을 보면 어둠의 3요소를 첫째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마키아벨리즘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나르시시즘입니다. 오만, 자아도취, 과장, 타인의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 등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나르시시즘은 자신의 외모, 능력, 중요성 등을 과대평가하고,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성향을 말합니다. 자신이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라고 믿으며,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 부족합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고, 자신의 감정만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칭찬에 대한 갈망이 강합니다. 끊임없이 타인의 칭찬과 인정을 갈망하며, 비판이나 반대 의견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특권 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자신은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하거나 이용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의 자존심이 상하거나 비판을 받으면 분노, 수치심, 우울감 등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돌리려고 합니다.

사울왕은 백성을 섬겨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자기가 섬김받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자기중심적 사고와 불안정한 자아상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 대신 다윗을 기름부어 세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다윗이 백성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사무엘상 187-9절을 보십시오. 사울이 다윗의 전쟁 승리에 대해 여인들이 다윗을 찬양하자, 큰 분노를 느끼며 다윗을 질투합니다. 자신의 왕권을 다윗이 위협한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과도한 자존심과 권력 유지에 집착합니다. 사무엘상 153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판단대로 전리품을 챙기다 사무엘로부터 꾸지람을 받자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도 백성들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사무엘에게 함께 예배 드리러 가자고 요청합니다(사무엘상 15:30). 백성과 장로들 앞에서 자기를 높여달라는 것입니다. 이는 백성들에게 진정으로 봉사하고 섬기려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의 이미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어떻게든 백성들에게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행동입니다.

1613절을 보십시오. 다윗을 왕으로 세웁니다. 사울도 자기 대신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윗을 제거하려고 합니다. 섬김을 받아야 할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다윗을 반복적으로 죽이려고 시도한 것은 다윗이 자신의 명성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자신의 이미지와 권력 유지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나타냅니다. 분노와 파괴적인 행동을 합니다. 사무엘상 19장에서 그는 다윗을 죽이기 위해 창을 던지기도 했고, 사무엘상 22장에서는 다윗을 도운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 가족을 몰살하는 잔인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백성을 섬기라고 주신 권력의 힘을 이렇게 오용합니다. 이는 사울이 백성들을 섬기기보다는 자신의 권력과 자존심을 지키는 데 급급했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의 권력 유지를 우선시했습니다. 처음 왕이 될 때는 겸손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의 권력 유지에 급급합니다. 그는 제사장이 아닌 왕의 자격으로 제사를 드려, 하나님의 질서를 어긴 것입니다. 이는 섬김의 정신을 망각한 행동이었습니다. 백성들을 위한 섬김보다 자기 이미지에 집착합니다. 모든 힘은 섬김을 위해 사용될 때 아무리 많은 힘이 주어져도 그 힘으로 삶이 흔들리지 않도 더 든든히 서게되는 것입니다. 서로 섬김을 받으려고 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5)"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권력의 힘이든, 학문의 힘이든, 미모의 힘이든, 명예의 힘이든, 재물의 힘이든, 건강의 힘이든 그 힘이 섬김을 위해 쓰여질 때 아무리 큰 힘이 주어져도 삶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3. 주어진 힘으로 삶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주어진 힘은 성령의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사울은 왕의 권력을 가지자 이렇게 망가졌겠습니까? 힘을 가질 때 망가지는 이유가 그 사람 자신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권력을 만드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서일까요? 두 가지 다가 문제가 있습니다. 아담 이후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누구나 힘을 가지면 교만하여 왕처럼 되려고 하기 때문에 넘어지지 쉽습니다. <권력의 심리학(브라이언 클라스 저)>라는 책을 보면 어둠의 3요소를 첫째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마키아벨리즘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나르시시즘입니다. 세 번째가 사이코패스 성향이라고 합니다. 공감능력의 결여와 충동, 무분별, 조작, 공격성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세이코패스 성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권력을 가지면 극단적으로 이 세 요소가 응축되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푸틴과 같은 권력의 부패 문제는 사람의 문제이고 시스템의 문제라고 합니다. 저자의 결론은 사람의 문제가 원인이고 시스템으로 이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철부지 아이들도 권력은 악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권력이 강해지면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위계질서와 권력은 협력과 공동체가 유지되는 필수적인 것이었는데 그 권력이 강해지면서 부패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시스템으로 절대 권력이 생기지 않고 절대 부패가 생기지 않을 수 있도록 잘 선발하고 감시와 통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역사속에서 이상적으로 권력을 사용한 사람 두 명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 사람은 기원전 458년 로마가 위기를 당했을 때 로마를 구원한 루시우스 퀀시우스 신시내투스입니다. 그는 농업에 열중하며 밭을 갈고 있었는데 집정관으로 지명이 되었답니다. 그는 로마군을 이끌고 아이퀴족을 무찌른 후 집정관 취임 6일 만에 사임하고 다시 밭으로 돌아갔답니다. 20년 후 권력을 장악하려고 하는 마엘리우스의 위혐을 물리쳐 달라고 로마 시민은 그에게 요청했답니다. 마엘리우스는 교활하고 권력에 굶주린 강탈자의 전형이었고 대중 선동가였답니다. 신시내투스는 로마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를 물리치고 다시 21일 만에 다시 농부로 돌아갔답니다. 그는 직접 자신의 손으로 일했고, 검소한 삶을 살았으며, 영예로운 가난을 마다하지 않았고, 권력의 지위를 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한 사람은 2000년도 더 지난 후에 미국을 독립시킨 워싱턴을 말합니다. 워싱턴은 국가를 위해 일한 또 다른 애국자이자 농부였으며, 요청을 받아 군주가 됐고, 두 임기 동안 대통령을 지낸 뒤 권력을 거부하고 물러났다는 것입니다. 권력은 최악의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가장 선한 사람들까지도 부패시키지만, 신시내투스와 조지 워싱턴은 두 가지 효과 모두에 면역력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권력을 추구하지 않았고, 매혹적인 유혹에 빠져 악한 사람으로 전락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기 통제력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일반인이 권력이 주어질 때 이런 엄격한 자기 통제를 가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권력은 사람의 뇌를 변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현대에서 사회적 권력의 정의는 첫 번째는 status(계급, 서열, 지위) 꼽습니다. 누군가가 지위가 높은가 낮은가에 따라서 스스로가 느끼는 사회적 권력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계급이 높으면 남에게 시키기도 하고 내가 계급이 낮으면 억울하지만 해야된다라고 하는 위치라는 권력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꼽히는 것이 인포메이션(information)이라고 합니다. 정보가 많은 사람이 권력이 많답니다. 광주 사태를 통해 정권을 잡았던 전두환이 최고 권력자는 아니었지만,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어 실제 최고 권력자 행세를 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social capital 즉 사회적 자본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인적 자원이 얼마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따르면 권력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alternatives 즉 대안입니다. 권력이 있는 사람은 선택지, 대안이 많다는 것입니다. 선택지와 대안이 많다는 것은 그 자체가 권력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권력의 맛을 보면 뇌가 변한다고 합니다. 네가지로 변한답니다. 첫째는 권력을 가지면 권력 시스템 자체가 공감 능력을 떨러지게 한답니다 둘째는 도덕성이 떨어진답니다. 셋째는 대인관계의 민감도가 높아진답니다. 넷째는 자기 확신은 높아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멀쩡하던 사람도 권력을 갖게 되면 공감능력이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능력(조망수용능력) 등이 떨어지게 되며 도덕성또한 저하된다고 합니다. 대신 누가 자신에게 충성하고 유익한가를 보는 대인 관계의 민감도는 높아진다고 합니다. 자기에게 잘 보이는 사람만 직위를 준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도 중책을 맡기는 것입니다. 도덕성은 떨어지지만, 자신이 옳고 맞다는 자기 확신도는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권력자가 되면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아주 뻔뻔하게 비윤리적일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뇌가 이기적이기 때문에 그런 경향성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권력자 중에 사이코패스가 나올 확률이 일반인보다 2배 내지 15배까지 높게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갈린스킨 등의 학자에 의하면 권력을 잡는다고 모두가 도덕성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고 본래 내면이 중요한데 원래 관대한 사람은 더 관대해지지만, 이익을 중시하는 사람은 더 자신의 이익을 중시한다고 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타인이 부여해 준 것이라는 권력에 대한 의식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권력자의 도덕성에는 인성 같은 내적 자질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권력이 없을 때는 감정이 풍부하고 공감 능력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사무엘 상 95절 이하를 보십시오. 아버지의 암나귀를 찾는데 사환이 돌아가자고 합니다. 이유는 아버지가 걱정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을 찾자고 합니다. 그는 사환의 말을 공감하고 그대로 따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다릴 줄 아는 자였습니다. 그는 겸손했습니다. 백성의 생명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권력을 잡자 감정의 결여와 공감 능력이 부족해집니다. 사울은 다윗이 백성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윗을 죽이려는 집착에 사로잡힙니다(사무엘상 1811). 사울은 자신의 권력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려 했지만, 다윗의 무고함에 대한 고려나 공감이 없었습니다. 잔혹함과 무자비함이 드러납니다. 사무엘상 22장에서 사울은 다윗을 도운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의 가족뿐 아니라 제사장들이 살고 있는 성읍 전체를 몰살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는 사이코패스 성향에서 나타나는 무자비한 행동과 잔인함을 보여줍니다. 백성의 생명을 자신의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들까지도 자신의 권력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무차별적으로 해치려 했습니다. 충동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합니다. 사울은 자주 충동적인 결정을 내리며, 자신의 불안정한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을 취했습니다. 사무엘상 19장에서 다윗을 향해 창을 던지는 장면이나,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제사를 드린 사건(사무엘상 13)은 그의 충동적 성향을 보여줍니다. 거짓말과 자기합리화에 능숙합니다. 사울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변명과 거짓말로 상황을 합리화하려 했습니다. 사무엘상 15장에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이 명령한 것을 지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무엘에게 백성들이 원해서 전리품을 남겼다고 변명합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명령을 다 행했다고 자기 확신에 사로잡혀 있습니다(삼상15:13).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진의를 깨닫지 못하고 행하고는 거짓말과 책인 전가만 합니다. 전 정부 탓하고 야당 탓하고 여당 탓하고 노조 탓하고 미국 탓하고 일본 탓하고 북한 탓하고 부자 탓하고 최고 권력자가 내로남불 남 탓만 하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사이코패스적 경향을 나타냅니다.

 

그 근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성경은 명백하게 그 근본 이유를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사무엘 상 106을 찾아 읽겠습니다.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성령 충만을 받아 새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힘합니다. 11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암몬족을 물리칩니다. 그의 권력의 힘은 성령에 의해 통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왕이 되어 권력의 노예가 될 때 그의 마음은 무엇에 이끌려 갑니까? 161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르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사울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잃고, 대신 악령에 의해 고통을 받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1810-11절을 보십시오. 정신적 불안정과 폭력성이 나타납니다. 악령에 시달리게 된 사울은 점차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보이며, 극도의 질투심과 폭력적인 행동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다윗을 질투하여 반복적으로 다윗을 죽이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또한, 사울은 다윗을 도운 제사장들을 몰살하는 잔인한 명령을 내렸습니다(삼상 22: 17-19). 성령의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두려움이 생깁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점점더 멀어집니다. 사울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대신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점점 더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 대신 무당을 찾아가 사무엘의 영을 불러내려 한 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삼상28:7-20). 그는 절망적인 상태에서 도움을 구했으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미 단절된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식의 힘, 정치적 권력의 힘, 명예의 힘, 건강의 힘, 재물의 힘, 미모의 힘 등 힘이 주어질 때 성령 충만으로 통제력을 가질 때 그 힘이 자신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하고 그 힘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며 그 힘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령에 사로잡히면 힘이 크면 클수록 자신도 망하고 가족도 이웃도 나라도 지옥처럼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힘이 주어질 때 그 힘으로 삶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주어진 힘을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여야 합니다.

주어진 힘은 섬김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주어진 힘은 성령의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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