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흔들린 때(7) 사랑하면 왜?
말1:2
시청에서 공공 건축물이 15년 되면 검사를 한다고 건물 진단을 하고 갔는데 잘 관리하였다고 하면서 종탑 밑 물세를 것과 지하 계단 내려가는데 콘크리트 갈라지는 것을 바로 잡으라고 공문이 왔습니다. 지난 월요일 3층 비 새는 것을 잡기 위해 실리콘 작업을 하려고 올라갔다 내려와 보니 주차장에 최집사님이 일하러 오셨습니다. 이번에는 정확히 물 새는 것을 잡아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최집사님께 시간이 있냐고 물어보고 같이 지붕 실리콘 작업을 하자고 했습니다. 집사님이 고가 사다리차를 불러 실리콘 작업을 하고 저와 함께 십자가까지 올라가 보았습니다. 피뇌침을 고정한 곳 하단에 조그마한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교회 전면과 후면을 실린콘 작업을 하고 확인해 보니까 비가 새지 않았습니다. 지붕 빗물 흐르는 골을 보니 쓰레기 먼지가 쌓여 있고 이끼가 끼여 있어 김목사님과 함께 그곳을 다 긁어내어 깨끗하게 청소하였는데 아무래도 오래 놓아두면 녹으로 구멍이 날 것같았습니다. 최집사님에게 물어보니 녹슬리 않게 하는 방청페인트를 바르면 된다는 것입니다. 비가 오지 않는 날 방청페인트를 발라 놓고 그 위에 페인트를 한 번 더 발라야 하는데 계속 비가 왔습니다. 일기 예보를 보니 토요일 오전에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토요일은 새벽 기도회가 없어 3시에 일어나 5시 이후에 낡이 조금 밝으면 옥상에 올라가 페인트를 칠해야 하겠다고 계획을 세우고 5시에 할려고 하니 너무 어두웠습니다. 6시가 지나 작업을 할만하여 혼자 페이트를 들고 한 두 시간동안 바르는데 비가 조금씩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페이트 칠 다하는 동안만 이곳에 비가 내리지 않게 해 주세요” 어린아이같은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페인트 칠을 다 할 때까지 하늘은 먹구름이 몰려오는데 비가 오지 않아습니다. 그래서 다 칠한 후 “하나님 페이트가 마를 때까지는 비가 오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또다시 속으로 기도하고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한 30분 있으니까 비가 내리는 것입니다. 아마 열심히 페인트를 칠했지만 비를 맞아 제대로 효과가 없을 것같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일어날 때도 저녁에 잘 때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의도적으로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페인트를 열심히 칠해 놓았는데 비가 내리면 제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증표일까요? 신앙 생활하면서 이런 작은 일이 아니라 큰 재정적 손실이나, 건강, 지휘, 권력, 명예 등에 있어 자신이 원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생각할 때 우리는 신앙생활이 흔들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 1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1. 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회의를 했습니까?
1) 그들은 이방 나라의 사람과 비교하여 자신들은 너무 초라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데 그들은 어떻게 사랑하느냐고 반문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렘31:3)”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바벨론에게 망하여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되어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와 국가적으로 외형을 갖추어 성전을 다시 짓고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며 자신들이 집을 지었습니다. 포로에서 귀환한지 100년이 지났는데 그들은 초라하고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화려하고 잘 되는 것입니다. 여전히 페르시아 제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조공과 세금을 바쳐야 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심히 곤핍하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병충해가 심했습니다. 메뚜기 떼가 습격하여 농사가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가 야곱을 사랑했다고 하시니까 화가 나서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사랑했습니까?”라고 반문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3장 1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오늘날 우리도 이런 생각을 하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면 왜 이런 일을 당하느냐고 회의를 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다고 하는데 왜 믿지 않고 교만하자는 복되고 악을 행하는 자는 번성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들은 화를 면하는가라고 회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의 삶에서 확인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해 보려고하니 보이는 것은 근심과 걱정거리 밖에 없고 하루하루 사는 것도 힘들고 팍팍한 인생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2) 왜 사랑하다면서 고난을 받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렇게 어려움을 받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미움을 받을 만한 무슨 잘못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1장 6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어떻게 주를 멸시하였나이까?”라고 질문합니다.
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라고 합니다.
2장 17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어떻게 주를 괴롭게 하였나이까”라고 합니다.
3장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라고 합니다.
3장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라고 합니다. 뭘 잘못해서 우리만 징계를 받는냐는 것입니다. 공의 없는 사랑만 원하는 것입니다.
3) 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약속한 메시아가 와서 메시아 나라의 의와 화평과 희락을 누리지 못하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해 주었습니다. 이사야 49장 8-26절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헐벗은 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라”라고 했습니다.
학개 2장 6-9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라고 약속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다 지었는데도 여전히 메시아 나라는 오지 않은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는 진동하지 않고 성전의 영광은 충만하지도 않으며 평강은 여전히 먼 미래의 이야기입니다. 메시아를 통한 의화 화평과 희락이 있는 날을 기대했는데 여전히 옛날이나 동일한 것입니다.
스가랴 9장 9-14:5절에서 메시아가 오셔서 사악한 이방 나라를 제거하고 영원한 메시아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약속했는데 오시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히 그들을 버리셨다는 것입니다.
스가랴9장 9절만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여전히 페르시아에 세금을 납부해야 하고(느5:15) 성전세가 부족하여 레위인들은 농업에 종사해야 하며(느13:10) 가정생활에 실패한 가난한 자의 자녀들은 여전히 노예로 팔려 갔고(느5:1-5), 정의가 하수처럼 흐르는 세상은 오지 않는 것입니다(3:15). 포로 귀한 100년이되었는데 부패와 불의, 가난이 계속되는 것입니다(말3:10-11, 학1:10-11), 실직자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슥8:10).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면 왜 이런 일이 계속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질문합니다. 3장 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돌아 가리이까”라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어떻게 그들을 사랑했습니까?
1)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함으로 사랑하십니다.
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은 하나님은 조상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비교하여 부러워하는 이방인의 조상과 이스라엘 선택받은 조상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은 야곱인데 오늘 성경은 에서는 야곱의 형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야곱은 선택하여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선택이라는 말은 ‘아헤브’를 번역한 말로 하나님이 언약을 동기로 선택하는 주권적 사랑을 말합니다. 신명기 4:37에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사랑하신 고로 그 후손인 너를 택하시고” 신명기 7:7-8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선택의 이유가 사랑임을 말씀하십니다. 신약 로마서 9장 11-13절에서는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롬9:11-13)” 호세아서 11장 1절에서는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 내가 그를 내 아들처럼 사랑하여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모태에서 부터 큰 자가 어린 자 섬김을 받을 자라고 말씀해 주셨고 야곱 가문을 선택해 하나님의 언약의 계승자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에는 6절에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10절에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사랑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서를 미워했다는 것은 미움을 받지 않아야 하는데 미움을 받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미워하다 사네티는 하나님이 악한 동기나 의도를 가지고 미워했다는 말이 아니라 주권적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창26:27‘ 37:5; 잠6:16). 굳이 여기서 미워하다라는 동사를 사용한 것은 하나님께서 에돔 족속이 자행한 범죄 행위를 용남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심판을 인정하지 않고 교만한 자세로 일관하지만 에돔은 결국 심판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장 5절과 같은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방인이 심판받는 것을 목도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나타나는 것만 보지 말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아야 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영광이 이방 민족 중에 크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담 이후 범죄한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미움을 받을 대상으로 전락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계속 거역하여 그 상태에서 선택하지 않고 유기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언약의 백성은 비록 잘못을 하여도 그들을 끝까지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어느 정도 사랑하고 있는지를 3장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요한복음 13장 1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우리 하나님은 병들었다고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하다고 사랑을 접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못났다고 외면하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에베소서 1:4,5절에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사랑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2)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하는 아들이기 때문에 징계로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난을 많이 주시고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게 한 것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에서 70년 간 포로 생활하게 될 것을 말씀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예레미야 29:11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고, 하나님보다 물질을 의지하고 살려고 하는 죄를 지었으므로 그들을 회개시켜서 복을 주시려고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게 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2:5-6절에서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히12:5~6)”라고 했습니다. 과실수를 전지작업하는 것은 미워해서가 아닙니다.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로마서 1장 24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내버려 두었다는 것입니다. 계속 나옵니다. 26,28절을 보십시오. 3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렇게 우상을 숭배하고, 동성연애를 하고 죄를 지어도 뻔뻔하고 떳떳하며 다른 사람에게도 권장합니다.
왜 말라기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지를 자세하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구원은 일방적이지만 복은 쌍방적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렇게 어려움을 받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미움을 받을 만한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1장 6절에서 “어떻게 주를 멸시하였나이까?” 7절에서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라고 대들자 하나님은 1장 8절 이하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13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을 왜 가나안 땅에 보내었습니까? 예배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성전왜 왜 재건하였습니까? 하나님이 찾는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4장 23-24절에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있데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서도 바벨론에서도 바벨론에서 돌아와서도 이 훈련에 합격 점수를 받지 못해 징계를 받은 것입니다.
3장 8절에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라고 대들자 하나님은 9-10절에서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라고 말씀합니다. 레위 언약을 깨뜨린 것입니다(2:8) 왜 레위 언약을 주었습니까? 2장 5-6절을 보십시오. 복을 주기 위해서, 생명과 평강을 주기 위해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합니까? 2장 11절을 보십시오. 이방 여인과 결혼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가정이 파괴됩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재단을 가리게 하였다는 것입니다(2:13). 형식적인 예배도, 삶의 예배도 다 하나님 징계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정성도 없고 열심도 식어져 귀찮고 짜증스럽게 여기는(1:13, “번폐스러운”) 겉치레적이고 마지못해 드리는 형식적인 제사를 드렸습니다. 율법의 제사 규정마저도무시하는 더러운 떡과 총독에게도바치지 못할(1:8) 눈이 멀고 절뚝거리며 병든 것으로 제물을 삼는(1:7, 8) 무성의한 제사가 행해졌습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을 올바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은 이방인과의 결혼, 이혼을 일삼는 등 하나님의 기대와는 빗나간 삶을 살았습니다. 물론 율법에 규정된 형식도 올바로 지키지 않는 예배도, 삶도 모두 하나님의 징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왜 가나안 땅으로 보내었습니까? 사탄이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 즉 경제 정의를 이루며 함께 더불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만들고, 안식년과 희년을 통해 함께 살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십일조라는 것은 결국 레위인들에게는 농토를 주지 않고 하나님의 일만 하게 하였으니 그들에게도 같이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세운 제도입니다. 즉 맘몬의 통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평생 우리는 이 훈련을 받고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탐욕의 종이 되면 결국 징계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맘몬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시면서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을 마지막까지 이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사랑하였냐고 회의를 가진 그들에게 구약 마지막 성경을 기록하게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은 궁극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말씀합니다. 예언된 영광이 지연되는 현실 앞에서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에 냉소적인 그들은 삶이 공허함 가운데 말합니다.
말라기 2장 17절에 보면 “그들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라고 회의를 가집니다. 자신들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약속한 메시아 나라가 왜 이 모양 이 꼴이냐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3장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여기서 나오는 내 사자는 누구이겠습니까?
4장 5-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선지자 엘리야를 말합니다. 그러면 그 선지자 엘리야는 누구이겠습니까? 마태복음 11장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더 구체적으로 마태복음 17장 10-13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말라기 3장 1절에 나오는 너희가 구하는 주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는 누구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성경의 중심 말씀인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일서 4:10에는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한일서 3:16에는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로마서 5:8에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독생자를 주시지 말고 돈이나 주고 건강이나 주고 권력이나 주어야 하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팍팍 느껴질 것입니다. 굳이 값비싼 독생자까지 주실 거라면 값싼 사은품으로 10억원 마시면 사랑에 겨워 살 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3장 13절에서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라고 합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회의는 무엇입니까? 3장 14-1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경건생활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 교만한 자가 복되고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말라기 3장 16-1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을 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기념책에 기록합니다. 특별한 소유를 삼으십니다. 아들을 아낌같이 우리를 아낌니다. 마지막 주님과 함께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4장 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어줍니다. 상처와 고통을 치료해 주시고 제거해 주십니다. 결국 승리하게 하십니다.
로마서 8장 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1,2)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35-39)”
남들이 나보다 더 건강하고 잘 나가고 잘 사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하며 삶이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자신들은 너무 초라하다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다고 단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해 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있다고 하나님의 사랑이 식어진 것이라고 회의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징계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징표입니다. 히브리서 12장 8절은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세상에서 불의를 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다 불의하고 공정치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시기게 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사랑했는가를 분명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잔잔히 우리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부실 전능자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즐거히 부르며 기뻐 기뻐 하시리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즐거히 부르며 기뻐 기뻐 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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