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흔들릴 때(6) 질병 앞에서
이사야 38:17(참고 대하32:24-33; 열왕기하 20:1-7)
<질병 해방(피터 아티아 외 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치매, 암, 당뇨, 심장병과 노화를 피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법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만성 질환과 노화는 늦추고, 막고, 되돌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대표 저자인 피터 아티아 의학박사는 세계적인 장수 의학의 권위자이자 노화와 만성질환 전문가라고 합니다. 이 책은 아마존에서 55주 연속 베스트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 있는 책인데 이 책에 의하면 백세인은 10~30년 더 건강하고 더 젊게 산다고 말합니다. 백세인 중 대다수는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치매, 암, 당뇨병, 심장병에 굴복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본질적 차이가 있는데 백세인은 이런 병에 걸리더라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늦게' 병에 걸리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보스턴대학교의 토머스 펄스 연구진은 전체 인구에서 5명 중 1명은 72세에 어떤 종류든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는데 백세인은 거의 30년이나 더 지나 100세가 되었을 때야 비로소 5명 중 1명이라는 암 진단율에 도달한다고 합니다. 전체 인구의 4분의 1은 75세에 임상적으로 확실한 심혈관 질환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는데 백세인은 92세에야 그런 비율에 다다른다고 합니다. 뼈 손실, 즉 골다공증, 뇌졸중, 치매, 고혈압도 백세인은 훨씬 더 늦게 걸린다고 합니다. 백세인들은 더 오래 살 뿐 아니라, 거의 생애 전체에 걸쳐서 또래들보다 더 건강하고 생물학적으로 더 젊었답니다. 60세 때 그들의 심장동맥은 35세일 때만큼 건강했고 85세 때 그들은 마치 60대였을 때처럼 보이고 느끼고 기능했답니다. 일반인들은 생애 말년 10여년 동안을 환자로 보내는데 백세인은 대체로 20~30년 앞서 사망한 이들보다 훨씬 더 짧게 앓은 뒤 사망한다고 합니다. 백세인들은 신체 기능을 잘 유지하고 만성 질환 없이 더 오래 살다가 생애가 끝날 무렵에 더 짧게 앓다가 세상을 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느냐인데 100세 인을 모방하여 그들이 먹는 것을 먹는다고 장수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백세인의 유전형을 알기 위해 백세인 수천 명의 유전체 서열을 분석해 보았지만 결국 백세인 사이에는 유전자의 공통점이 거의 없었답니다. 질병 해방을 위해서는 물론 균형 잡힌 식단,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 스트레스 관리, 적절한 수분 섭취, 정기적인 검진 등의 평소 건강관리가 중요합니다.
그러데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백세인의 단 한 가지 비밀은 회복력에 있다고 합니다. 병이 시작되기 전에 늦추거나 멈추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질병의 존속 기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발병을 지연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합니다. 단지 하나의 질병이 아니라 모든 만성 질환을 미리 예방해야 질병 없이 더 오래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성 질환을 단지 별개로 볼 것이 아니라 모든 병이 연관되어 있다는 관점에서 '각 질병'을 아주 조기에 예방해야한다고 합니다. 대사 건강을 개선하고 2형 당뇨병을 예방하는 조치를 취하면 심혈관 질환, 암, 알츠하이머병 위험도 한꺼번에 줄어든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합니다. 백세인은 회복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질병, 상해, 스트레스 등의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이를 잘 극복하고 이전의 건강한 상태로 회복할 수 있는 건강 회복력이 있어야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사고방식인 긍정적 마인드셋, 부정적 정서를 인식하고 효과적으로 다루는 정서 조절 능력,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 잡힌 식단 등을 통한 활력과 체력 유지, 스트레스 대처 능력과 문제 해결력 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질병에서 해방되기 위해 철저히 관리한다해도 인간이 삶의 항해에서 피해 갈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질병입니다. 문명의 발달과 의학의 진보로 많은 질병으로부터 고침을 받고 있지만 질병은 여전히 인간들을 괴롭히면서 평안한 삶을 흔들고 있습니다. 어느날 문득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질병이 찾아 왔을 때 질병 앞에서 삶이 흔들리지 않고 그 질병을 이기며 넉넉히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질병 앞에서 삶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먼저 질병을 이길 만한 바른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17).
오늘 우리가 읽은 17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히스기야는 중년의 나이 39살에 병에 걸렸습니다. 어떤 병입니까?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죽을 병입니다. 선지가가 사형 선고를 합니다. 요즈음 말하면 의사가 병원에 갔는데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어느 때였겠습니까? 100세가 될 때가 아닙니다. 이만큼 살았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때가 아니라 한참 일할 중년의 나이 39살 때였습니다. 아직 후계자인 아들을 낳지 못할 때입니다. 25살에 왕이 되어 왕이 된지 14년 째 앗수르 나라가 처들어와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했을 때 185,000명의 대군을 물리치고 전쟁에서 승리할 때입니다(대하32:22-23). 이제 나라가 안정되고 정치, 경제, 종교적으로 살만한 때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때입니다. 그때 중병에 걸렸고 이사야는 죽을 것이니 유언을 남기라고 합니다. 그때 히스기야는 질병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졌습니까?
1) 질병은 고통을 주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평안을 주려하심이라는 긍정적 태도를 가졌습니다.
똑같은 질병이라고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집니다. 심리학자 페팅게일은 유방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병에 대한 태도와 사망률을 분석했답니다. 환자들 중 암을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적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은 71%가 생존했답니다. 그러나 절망감에 빠져 치료할 수 없다고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포기했던 환자는 19%만이 살아남았답니다. 도너츠의 세계적인 대명사인 '던킨도너츠'를 세운 빈 로덴버그 회장 이야기입니다. 그는 세 번이나 치명적인 암에 걸렸으나 긍정적인 생활태도를 통해서 암을 다 물리치고 세 번 다 살아났다고 합니다. 로덴버그 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나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마음이 생긴다. 이것은 각종 질병이나 시련과 가지가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나는 1971년에 폐암에 걸렸으나 절대긍정적인 믿음으로 나는 산다는 확신과 기도를 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기뻐하며 견뎠는데 폐암이 낫고 말았다. 6년 후에는 임파선 암이 걸렸으나 또다시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감사하고 기도하며 나는 암으로 죽지 않았다. 절대 산다는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싸운 결과로 또 임파선 암에서 완치가 되었다. 1990년에는 고환암을 앓았는데 이것은 치명적인 암이라고 진단을 받았으나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치료받은 결과 그것도 나았다." 긍정적인 삶의 태도는 역경과 위기를 극복하게 해 줍니다.
미국 듀크대의대 정신과 연구팀이 1960년대 중반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 입학한 6958명을 대상으로 다면적 인성검사(MMPI)를 실시한 뒤 2006년까지 40여 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가장 긍정적인 태도를 지닌 2,319명은 가장 부정적인 2,319명에 비해 평균수명이 42%나 더 길었다고 합니다. 또한 2004년 예일대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서도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보다 7.5년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답니다. 질병에서 고침받고 장수하고 싶으시면 매사 부정적인 태도보다 긍정적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또 히스기야는 질병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졌습니까?
2) 질병으로 자신을 성찰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질병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청산하고 새롭게 사는 길을 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성경에 보면 대단한 왕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를 통치했던 왕이 무려 42명이나 되는데 그 중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라는 칭찬을 받은 사람은 다윗과 히스기야 밖에는 없었습니다(왕하18:3, 5-6) 유다의 역대 왕들 중에 다윗과 같이 정직했다는 평가를 받은 왕은 히스기야 외에 아사와 요시야 밖에 없습니다. 그는 신실한 왕이었습니다. 성전의 모든 우상을 제거하여 예배를 회복시켰습니다. 유월절을 통해 기쁨을 회복시켰습니다. 십일조 제도를 정착시켜 범사에 형통한 삶을 살도록 했습니다. 당시 최대 강국인 앗수르를 이김으로 존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정도의 삶을 살았다면 질병이 찾아 왔을 때 왜 나에게 이런 병이 걸리냐고 원망할 수 있습니다. 후계자도 없는데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 염려와 걱정에 사로잡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그는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정확하게 대처합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질병은 다양합니다. 현재 세계에 퍼져있는 질병은 최소한 8천 가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감염성 질환은 바이러스, 세균, 곰팡이, 기생충과 같은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를 제거하면 됩니다. 그런데 세균에 의한 질환은 항생제의 발달로 대부분 치료가 가능해졌으나, 바이러스성 질환에 대한 항바이러스제의 개발에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특히 고혈압 당뇨병, 암 등과 같은 비감염성 질환은 병원체 없이 일어날 수 있으며, 대부분 발현기간이 길어 오랫동안 고생을 하며 환자가 고통을 받습니다. 정확하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도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질병에 걸리는 원인을 성경에서는 여러 가지로 말씀합니다. 왕하5:25-27장에 나오는 게하시 같은 경우는 뇌물을 받아 죄를 짓고 문둥병이 걸린 것을 보게 됩니다. 창48:1,10에 나오는 야곱같은 경우는 노화로 인하여 병이 들었습니다. 절제하지 못하면 질병에 걸릴 경우도 있습니다(아2:5,호7:5). 나사로 같은 경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병에 걸렸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요11:4) 바울같은 경우는 겸손하게 만들기 위해 병에 걸렸다고 말씀합니다. 질병에 삶이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사명의 항해를 완주하려면 질병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성찰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더욱 더 신뢰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데 방해되는 것을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
2. 질병 앞에서 삶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질병 앞에서 치유해 주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2,11).
히스기야는 죽는다는 질병 앞에서 무엇을 합니까?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1)전심 전력을 다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이사야 38장 2절을 보면 얼굴을 벽을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만 바라본다는 말입니다. 당시 그는 왕이었습니다. 존대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당시로도 그 당대의 의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당하는 고통이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에 먼저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질병을 낳게 해 주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얼마나 큰 고통입니까? 13절을 보십시오. 뼈가 꺽인 것같은 고통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죽을 것같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전심 전력하여 기도 드리는 것입니다.
2)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이사야 38장 3절 이하를 보십시오. 그 당시의 기도 내용이 자세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밀려 옵니다. 모든 뼈를 꺽음같은 고통을 느낍니다. 밤새로록 시달립니다. 사자가 뼈를 꺾는 것 같은 고통느낍니다(13). 아침 저녁으로 생명이 끝나는 것 같다는 말입니다. 제비같이 학같이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눈이 쇠하도록 하나님을 앙망하였습니다. 영적 고통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 대로 살았는데 이런 질병으로 죽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우습게 보고 하나님을 조롱하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눈물을 흐리면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남들을 향하여 우는 눈물은 별로 값이 없습니다. 여호와를 향하여 흘리는 눈물이 값진 눈물입니다. 신세 타령하는 눈물이 아닙니다, 원망의 눈물이 아닙니다. 눈물의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입니다. "울고 있는 형제에 왜 기도를 모르는가 ..."
3) 행함이 있는 삶을 근거하여 기도를 드렸습니다.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전심 전력으로 행한 것을 추억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려고 애를 쓰지 않았습니까?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히스기야는 이미 앗수르와의 전쟁에서 기도의 큰 체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아는 사람입니다.
4) 의학적 도움을 받으며 기도하였습니다.
2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사야가 이르기를 한 뭉치 무화과를 가져다가 종처에 붙이면 왕이 나으리라 하였고” 신앙이 좋다는 사람들 중에는 의학적 치료를 거부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의학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의사나 목사나 상담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극단적으로 인간의 과학이나 지식, 의학을 무시하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다양성을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받아들이며 최대한 사용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벽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합니다. 죽음의 벽, 질병의 벽, 낙심의 벽, 의심의 벽, 절대 절망의 벽들을 만날 때 그 벽 앞에 좌절하고 원망하며 포기할 것이 아니라 그 벽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벽을 헐어 버려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해 주십니까?
이사야 38장 5절을 보십시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응답해 주십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년을 더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성을 앗수르 손에서 건져 내겠고 보호하겠다고 말씀합니다. 더 많은 것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기도는 효율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눈물을 흘려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 눈에서 눈물을 제거시켜 주십니다. 질병의 이유가 어디에 있던지 간에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죄로 인한 질병이든, 훈련으로 인한 질병이든, 자신의 부주의로 인한 자연적인 질병이든, 사명을 위한 질병이든, 영광을 위한 질병이든 어떤 질병이든 질병이 다가 오면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질병의 고난이 다가오면 회개하고 그 문제를 해결받으면 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면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훈련으로 다가오는 질병의 고난은 인내로 참고 견디며 훈련과정을 마치면 하나님의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이 됩니다. 사명 때문에 다가온 질병의 고난이면 회피하지 말고 그 사명을 감당하며 그 질병의 고난을 통해 더욱 성숙하고 더욱 큰 인물되면 됩니다. 자연적인 현상으로 다가 오는 질병의 고난은 그 고난을 통해 교훈을 배우며 더욱 영이 새로워지면 됩니다. 육신은 날로 후폐해지나 그것을 통해 영이 새로워지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형통의 통로이며 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마케팅 회사 '아메리칸 텔레캐스트'의 설립자인 스티븐 스콧의 이야기입니다. 대학 졸업 후 6년 동안 아홉 군데 직장에서 실직과 해고를 거듭당했지만, 게리 스몰리 목사님을 만나 성경의 지혜와 예수님의 가르침을 삶에 적용해 보라는 조언을 받고 그 원리에 따라 살아 보기로 결심했답니다. 그 후 동료들과 함께 단돈 5천 달러의 자본금으로 마케팅 회사인 '아메리칸 텔레캐스트'를 설립해서 〈포춘〉 500대 기업 CEO 중 여덟 번째 부자가 되었답니다. 그는 <형통의 원리>라는 책에서 자신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수년 전 많은 청중 앞에서 회사와 새 제품을 소개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 가 그곳의 한 호텔 룸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며 쉬고 있었답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고 받아보니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들려왔답니다. 스무 살의 그의 아들이 암 진단을 받고 급속도로 자라나는 거대한 종양으로 인해 우루과이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연락이었답니다. 그는 전화를 끊자마자 호텔 룸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답니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인 아들을 살려 달라고, 아들 대신 자신이 암에 걸리게 해 달라고 울며 부르짖었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은 속삭이셨답니다.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였고(요6:20),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였답니다(요14:1). 말씀을 읽자 이해를 초월하는 놀라운 평강과 평안이 자신을 감쌌지만, 아들의 상황만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이 아팠답니다. 그날 밤 사업 파트너들을 대상으로 한 프레젠테이션을 도무지 할 수가 없었답니다. 그는 마음을 억지로 추스르고 모임 장소로 가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나서 청중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했답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들이 주님의 기적으로 낫도록 한 주간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답니다.
그러자 자신과 만난 지 3일밖에 되지 않은 한 목사님이 앞으로 나와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 당장 기도하죠."라고 말하며 몇몇 리더들을 불러 주위로 모이게 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답니다. "아버지, 당신은 위대한 의사이신 줄 압니다. 당신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이 형제님의 아들을 괴롭히는 종양이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리게 해 주십시오. 말끔히 사라지게 해 주십시오. 의사가 아들의 몸을 열어 보고 나서 이 형제님에게 이렇게 말하게 해 주십시오. '혼란스럽네요! 암을 찾을 수가 없어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이런 일은 처음 봤어요!'라고 말하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주님이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며 오직 당신만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을 저희 모두가 알게 해 주십시오." 그 목사는 기도를 마치고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답니다.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사실을 절대적으로 믿길 바랍니다. 분명 아드님은 괜찮습니다. 이제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의 기도가 감사하긴 했지만 솔직히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답니다. 다음날, 유타대학병원에서 검사 후 해밀턴 박사는 암이 맞다며 종양의 크기와 위치로 볼 때 전이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조직 검사 후 가슴과 뇌를 촬영할 것이라고 했답니다. 월요일이 되었고, 수술은 오후 12시 30분에 시작되었답니다. 아들이 수술실에 들어간 지 2시간 뒤, 자신과 아내를 찾는 전화벨이 울렸답니다. 간호사가 아내를 보며 말했답니다. "해밀턴 박사님은 아직 수술 중이시지만 보호자분과 할 얘기가 있다고 하십니다." 아내가 전화를 받았고, 잠시 후 수화기에 대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혼란스럽다고요?" 아내는 몇 번 "헉"하는 소리를 하더니 전화를 끊었답니다. 그는 아내에게 말했답니다 "혹시 의사 선생님이 혼란스럽다고 말씀하셨나요?" 아내는 울면서 말했답니다. "네, 의사 선생님이 혼란스럽다고 하셨어요." "그러고 나서 암을 찾을 수 없다고 하셨고요?" 놀란 아내가 대답했답니다. "네, 맞아요. 암을 찾을 수 없다고 하셨어요. 동결절편의 조직 검사를 했더니 암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대요." "그러고 나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셨고요?" "맞아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몇 번이나 반복하셨어요." "그러고 나서 이런 일은 처음 봤다고 하셨고요?" 아내는 잠시 숨을 돌리고서 말했답니다. "아뇨.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어요." 그는 일주일 전 그 목사의 기도에 관해서 아내에게 말했답니다. 그 말에 아내는 "그 목사님이 정말 그렇게 기도하셨어요?"라고 말했답니다. "네, 150명 앞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셨죠. 그러고 나서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셨으니 우리 아들이 괜찮을 거라고,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죠. 여보, 암은 사라졌어요. 의사 선생님은 네 문장 중 세 문장을 똑같이 말하셨어요. 이런 일은 처음 봤다는 말만 하지 않으셨죠." 그들 부부는 놀라서 벌린 입을 한동안 다물지 못했답니다. 1시간 뒤 해밀턴 박사가 수술복을 입은 채로 대기실에 들어와 맞은편에 앉았답니다. 그는 하늘로 두 팔을 들었고, 그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이런 일은 처음 봤어요!"였답니다. 이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암이 입힌 손상은 다 있는데 암은 없었어요." 다음날 그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차분히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제 기도에 응답하셨다고 했잖아요." 나중에 그는 그 목사가 믿음의 은사를 지녔고 그가 사역하는 동안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 후 그는 기도 응답을 확신하였고 성령의 어떤 역사가 일어날 수 없다는 의심의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답니다. 모든 이에게 본인이 원하는 대로 기도가 응답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도하면 하나님은 상황에 따라 '예'로 혹은 '아니오'로 혹은 '기다리라'는 방법으로 응답해 주는 것은 확실합니다. 오늘날도 어떤 사람에게는 히스기야와 이사야의 기도에 즉각적으로 그림자를 십도를 물러가게 하는 기적처럼 응답되기도 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5:15-16)"
3. 질병 앞에서 삶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질병의 과정을 통하여 받은 축복이 하나님과 관계를 파괴하는 독약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보약이 되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질병에서 나음으로 어떻게 합니까?
19-2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버지가 그의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리로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대하 32장 27절을 보면 부와 영광이 극에 달했습니다. 모든 일에 형통하였습니다. 그때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이사야 39장 1절을 보십시오. 바벨론 왕이 사신을 보내었습니다. 그 땅에 나타난 이적을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강력한 나라 앗수르를 이겼냐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죽을 병에서 고침받았냐는 것입니다. 이 작은 나라가 어떻게 부와 영광이 극에 달라고 어떻게 모든 일이 형통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때 어떻게 했는지 2절을 보십시오. 궁중의 보물을 보여 줍니다. 전국내 소유를 다 보여 줍니다. 전략무기를 보여 줍니다. 전략 식량을 다 보여 줍니다. 과시욕입니다. 자랑입니다. 내가 이만큼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실 신흥 바벨론으로 앞으로 전략을 위해 유다를 방문한 사람들입니다. 첩자들이고 정보 수집가들입니다. 유다를 정탐하고 점령계획을 세우기 위한 자들입니다. 당시 작은 나라가 최대 국가이 앗수르를 이겼으니 그들의 지형과 군사력을 파악한 후 점령하기 위한 첩자들입니다. 금은 보화는 그들에게 약탈하려는 마음을 더 자극한다는 사실을 히스기야는 몰랐습니다. 이사야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교만하여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그것에 대하여 대하 32장 31절은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미 히스기야 마음이 교만해지니까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처럼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오히려 받은 은혜와 축복이 시험거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질병 중에는 더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수 있었는데 건강의 축복을 받으니까 오히려 그것이 독약이 되어 교만해서 패망의 선봉에 서 버린 것입니다.
그것을 역대하 32:25절에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앗수르를 이기게 된 것이 누구의 힘에 의한 것입니까?
선지자 이사야와 함께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해 주신 것입니다(20).
22절을 보십시오. 그를 존대케 해 주신 분이 누구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히스기야의 부귀와 영화가 극에 달한 것이 누구의 은혜입니까? 2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심이 많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범사에 형통한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자랑하지 않고 자기를 자랑합니다. 이것을 성경은 교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승리를 주고, 건강을 주고, 성공케 하고, 물질을 줄 때 축복의 결과만을 자랑하면 안 됩니다. 축복해 주신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히스기야가 만약 "최강의 앗수를 물리친 것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동원하여 18만 5천을 단숨에 쓸어 버린 것이다. 내가 이렇게 불치의 병에서 나은 것은 기도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영표를 옮기면서까지 나를 치유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고 살아계신 분이시다." 이런 식으로 자랑했다면 바벨론 사신들이 정신이 오싹했을 것입니다. 감히 하나님의 사람들을 건드리면 안 되겠구나 우리도 앗수르 꼴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사야 39장 6-7절을 보십시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게서 태어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왕하20:17-18절에 이 말씀이 나오는데 이 예언은 역사적으로 그대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유다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성전은 불에 태워지고 성전의 기구와 왕궁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바벨론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의 아들인 므낫세왕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아마 히스기야가 그 병으로 죽었으면 이 아들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교만을 드러냈던 결과 엄청난 비극이 찾아 왔습니다. 자랑했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주신 지식, 주신 물질, 주신 건강, 주신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바울은 자기의 모든 것을 분토처럼 버리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질병을 달고 살면서 오직 하나님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질병은 한 번 고침받았다고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또다시 찾아옵니다.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질병을 통해 받아야 할 훈련입니다. 하나님은 죽는 순간까지 부하든 가난하든 승리하던 실패하든 건강하든 질병에 걸렸든 이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라는 사실을 선포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그 복을 주신 분이 우리의 왕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열방 가운데 선포하기를 원하십니다. 히스기야가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 왕이며 히스기야는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세계 열방에 알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그는 모든 것이 자기 힘으로 된 것처럼 과시합니다. 자기가 왕이라는 것입니다. 주신 분은 무시하고 잊어버리고 받은 것만 가지고 교만해져 버립니다. 히스기야의 마지막 삶까지 지배했던 자기 자랑 자기 교만의 끝없는 욕망은 우리 인생에서도 마지막까지 남겨 놓고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도구입니다. 조금 교회 커지면 자기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조금 기업이 커지만 사람 무시하기 시작합니다. 조금 말 잘하면 헤롯처럼 됩니다. 헤롯은 교만하여 충 먹어 죽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처럼 자유 의식을 주면 그것으로 교만하여 마음대로 해도 되는 줄 압니다.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당합니다. 진노 앞에 히스기야가 회개합니다만 그 뉘우침에는 흔적이 따랐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병이라는 것을 통해 마지막까지 겸손의 훈련, 하나님 자랑의 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어떤 질병이 다가와도 우리는 마지막 숨을 멈추는 순간까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하나님 자랑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복을 가장 잘 누리는 방법입니다. 불치의 병에서 질병을 치유받으면 더욱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마지막까지 더욱 영육간에 강건하게 살 수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공중보건대학의 연구팀은 미국의 중년 여성 간호사 약 7만5000명의 데이터를 분석했답니다. 연구팀은 1992년부터 2012년 사이에 4년마다 그들을 대상으로 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하는지 등 종교에 관한 설문 조사를 했답니다. 그 결과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예배에 참석한 사람은 교회에 전혀 가지 않은 사람보다 사망 위험이 33% 낮게 나타났답니다.
미국 코엔 박사팀은 65세 이상 되시는 분들 4,000명을 대상으로 6년 동안 '예배 참석과 장수'에 관하여 연구했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종교집회에 규칙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우울증과 불안증이 적었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도로 해결하며, 건강한 생활습관을 가지며, 병에 대한 저항력이 높아서 일반 사람들보다 사망률이 46%나 낮았다고 보고하였답니다.
또한 코헨 박사팀은 5,286명을 대상으로 28년 동안 '예배 출석과 사망률에 대한 연구 조사'에서 "병들고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사람들이 종교 집회에 더 부지런히 참석하는 경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규칙적으로 교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사망률도 25%나 적고 더 장수한다."고 하였답니다. 몸이 약한 사람일지라도 규칙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건강하지만 신앙 생활하지 않는 사람보다 사망률이 낮다는 것입니다.
질병 앞에 있습니까? 오늘 이 말씀 “내”라는 말씀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계속 외치며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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