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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흔들릴 때(4) 유혹 앞에서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6046 추천수:2 218.155.63.46
2024-06-23 03:03:05

삶이 흔들릴 때(4) 유혹 앞에서

마태복음4:1-11

 

나이가 든 사람들은 예전에 공중 화장실에 가보면 낙서를 해 놓은 것을 누구나 한 번쯤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화장실 유머도 많았습니다. 이런 화장실 유머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화장실에 앉아 앞을 보니까 "뒤를 보시오"라고 써 있었어 뒤를 보니 "옆을 보시오"라고 써 있었답니다. 옆을 보니까 "위를 보시오"라고 써 있어 위를 보니 "뭘 봐 똥이나 싸"라고 써 있었답니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후예인 인간은 화장실에 낙서하지 말라고 하면 더 낙서하고 싶어 하는 심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효과를 반발 심리 효과”, “금지된 과실 효과라고 말합니다. 세상에는 나를 먹으세요”“나를 사세요”“나를 보세요”“나를 따라 하세요”“그러면 부유함과 건강과 행복이 보장됩니다라는 식의 유혹이 널려 있습니다. 눈만 뜨면 "욕망을 채워줄 터이니 나를 선택하라."는 광고가 유혹합니다. 스마트폰 시대에 유혹의 안전지대가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로버트 그린은 "유혹의 기술"에서 "세상의 모든 것은 유혹으로 통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사회를 읽는 첫 번째 코드로 서슴없이 '유혹'을 꼽았습니다. 그만큼 유혹은 남녀관계의 차원을 넘어 정치, 사회, 경제, 문화를 움직이는 키워드로 부상했습니다. 물질의 유혹, 명예의 유혹, 권세에 대한 유혹, 성에 대한 유혹 등 모든 유혹은 달콤하고 매혹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유혹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잘 나가던 사람들도 순식간에 삶이 흔들리고 이제까지 쌓아 놓은 인생이 무너지는 것을 봅니다. 잘 나가던 가수가 음주 운전으로 순식간에 감옥에 갔습니다. 잘 나가던 영화 배우도 성적 유혹으로 그만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8세기경 중국의 황제였던 현종은 철저히 금욕적인 생활을 하였지만 한 순간 온천에서 목욕하는 양귀비의 모습을 보고 무너졌다고 합니다. 그녀는 현종의 아들인 수양의 비였지만 현종은 황제의 권력을 이용해 아들의 아내를 빼앗습니다. 타이거 우즈는 골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선수 중 한 명이지만, 불륜 스캔들로 인해 이미지는 실추되었고, 사이클링에서 7번이나 투르 드 프랑스 우승을 차지한 랜스 암스트롱은 후에 금지된 약물 사용 혐의로 인해 모든 타이틀을 박탈당했습니다. 유혹은 달콤하게 다가오지만 유혹을 삼키면 그 독은 그 후 삶을 삼켜 버립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당하는 유혹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요일2:16)”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유혹이 널려 있는 세상에서 유혹으로 인생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육체적인 차원의 유혹 앞에 단호하게 말씀으로 아니오라고 의지로 생존의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인간으로 사실 때 유혹을 받았습니다. 어떤 유혹을 받았습니까? 예수님이 40일 동안 금식하여 주린 상태였습니다. 사탄이 유혹하는 도구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입니다. 우리와 같이 육신의 정욕의 시험입니다. 첫 사람 아담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면서 먹음직 함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사탄이 2번째 사람 예수님에게도 동일하게 유혹합니다.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3)” 40일간 굶주린 사람에게 가장 긴박하게 다가오는 유혹은 생존이 유혹입니다. 돌을 화폐로 만들라는 유혹입니다. 화폐가 왕이된 세상에서 오늘날 수없이 우리는 이 유혹을 받고 그 유혹 앞에서 인생이 흔들립니다. 20%로 이자 준다면 사람들이 빌려줍니다. 그러다 사기를 당하여 퇴직금 다 날려 버립니다. 투자 전문가라고 하며 이 주식에 투자하며 대박이 난다고 유혹합니다. 그런 유혹에 넘어가 집을 잃고 가정 파탄 나고 자살한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닙니다. 작전 세력을 동원하여 주가 조작을 하게 하고 불의의 뇌물을 받도록 합니다. 그러면 인생이 흔들입니다. 사탄이 이용하는 두 날개는 탐욕과 세상 풍속입니다. 그 중 가장 기본적으로 이용하는 유혹의 도구가 굶주림이라는 육체의 욕망을 이용합니다. 그런데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고 넘어뜨리기 위해 가장 먼저 꺼낸 말은 무엇입니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하여 회의를 주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왜 이렇게 광야에서 주리고 고생하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40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를 광야에서 먹게 만들었는데 너가 새롭게 출애굽한 새 이스라엘의 인도자라면 그렇게 해 보라는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광야에서 돌들이 떡이 되게 하여 육체의 필요를 채우라는 것입니다. 능력을 남용하여 하나님의 뜻보다는 육적 필요를 먼저 채우라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먹는 문제로 시험하여 재미를 본 사탄이 예수님에게도 똑같이 덤벼든 것입니다.

사탄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탄은 우리들을 유혹할 때 생소한 것으로 시험하지 않습니다. 너는 마땅히 그럴 자격이 있다는 것으로 유혹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어떻게 사탄의 유혹을 물리쳤습니까? 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신명기 83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여기서 기록되었으되'는 직역하면은 '기록하여 보존되고 있으며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효력의 영원성과 현존성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어릴 때도, 늙을 때도, 가난한 때도 부요할 때도, 권력이 없을 때도 권력이 있을 때도 유혹을 이기는 유효한 말씀입니다. 육체의 필요를 채우는 떡을 부인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육체를 위한 떡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도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의 원리를 제시하신 것입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음식도 필요하지만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우선순위를 분명히 한 것입니다.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해야 합니다. 루실 솔렌버거는 인간이 유혹에 빠지는 진행 과정을 분석했습니다. 유혹에 빠지는 첫 번째 단계는 죄악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악한 상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호기심으로 한 번 하면 중독이 빠지는 길로 들어섭니다. 여기에서 단호하게 말씀에 근거하여 아니오라고 말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강한 상상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아직 행위로 옮겨진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사고행위 융합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세 번째로 상상이 빈번해 지면 그 상상을 즐거워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거부 공격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범죄자와 오래 있으면 범죄자를 좋아하는 스톡홀름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죄악의 강한 상상으로 인해 의지가 극도로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정서적 거부가 무너지고 이성도 약해지고 판단력도 흐려진다는 거입니다. 상상과 의지가 충돌하면 반드시 상상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로 유혹에 빠져 하게 된 악한 행동을 하고 싶어 하는 상상은 결국 행위로 나타나게 된답니다. 여섯 번째로 유혹을 거부할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양심도 무뎌지며 반복해 죄를 범하게 되어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유혹 앞에서 완전히 삶이 흔들려 좌초되고 맙니다. 유혹은 맛서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피해 버려야 합니다. 요셉처럼 피해 버려야 합니다. 유혹의 환경과 상황에 머물면 안됩니다. 말씀의 현장으로 달려 와야 합니다.

오늘날도 사탄은 말씀보다 의식주에 우선권을 두라고 유혹합니다. 광야 40년은 바로 이것을 훈련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은 이 훈련에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후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담처럼 이 유혹 앞에서 흔들리고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유혹을 받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로 삼아 승리해야 합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6:17)”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로 삼아 사탄의 거짓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사탄을 이기고 자신을 방어하도록 주신 무기인 것입니다. 사탄의 유혹은 오늘날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삶의 의식주 보다 뒷전으로 미루게 하는 것입니다. 생존의 유혹, 육신의 정욕의 시험을 말씀으로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거절해야 합니다. 아담은 먹음직한 시험에 실패했습니다. 떡이라는 물질보다 말씀이라는 영적 양식을 확실히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해 주셨습니다. 신명기 2:7:"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셨으므로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이 사십 년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였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신 것을 기억하게 하시며, 그들을 먹이고 입히신 것을 말씀하십니다. 입법 사법 행정 3권을 가지고 40년 동안 통치한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마6:25-34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라고 하셨습니다.

평생 동안 말씀을 우선순위로 놓고 사역을 했던 바울은 빌립보서 4:19절에서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라고 했습니다. 생사화복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영생을 추구하지만 목숨 때문에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의 은총보다 자신이 소유한 재물 때문에 영생의 길을 포기한 어리석은 부자 청년처럼 유혹의 지옥으로 떨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생존의 욕망 때문에 떡을 얻기 위하여 돌들을 떡으로 만들려는 헛수고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육체적인 차원의 유혹 앞에 단호하게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으로(6:17; 4:12,15) “아니오라고 의지로 결단함으로 유혹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인생을 사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정신적 차원의 유혹 앞에서 단호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의 욕망을 말씀에 순종함으로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그러자 사단은 어떻게 합니까? '데려다가라는 '유도하다'는 말씀입니다. 유혹은 쉽게 물러나지 않습니다. 이생의 자랑의 유혹을 합니다. 첫 사람 아담은 지혜스럽게 탐스러움의 유혹에 실패를 했습니다. 하나님 만큼 지혜로운 유혹 자신이 하나님이 되리라는 유혹 앞에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말씀으로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유혹을 물리치자 사탄은 말씀을 적당히 왜곡하여 유혹을 합니다. 예수님을 거룩한 성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세웁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천사의 시중을 받기 원하는 행위는 지배와 통치의 욕망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이고 현현의 장소입니다. 우주의 창조주와 통치자로서 하나님의 상징성은 성전에 영광중에 계신 하나님의 모습으로 상징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신 성전은 가장 존엄하고 숭고한 최고의 자리이며 모든 피조물들은 성전 아래 엎드려 하나님을 섬기고 찬양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탄은 성전 위에 예수그리스도를 세워놓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와 지배에 대한 반역과 거부의 행위를 뜻합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의 홀로서기를 부추기는 것입니다. 첫 번째 사람은 아담도 모든 피조물들을 관리하고 지배할 권한을 위임받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사단의 유혹에 끌려 선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를 취하여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다가 영생이 보장된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람들로부터 명예와 존귀와 부귀와 영광을 얻어 보라는 것입니다. 소유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소위 명예의 유혹, 인기의 유혹을 하는 것입니다. 소유의 욕망을 자극하며 유혹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생존의 욕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유의 욕망이 아주 강합니다. 세상의 명예와 부귀와 권세들을 가지고 싶어합니다. 사탄은 그것을 사용하여 유혹합니다.

사단은 무엇으로 유혹을 합니까?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죽지 않고 사는 영웅적 방법으로 하나님 되심을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시편 91:11-12절에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라는 메시아 예언시가 나오는데 그 말씀을 자기가 유혹하는데 적합하도록 적당히 조작했습니다. 예수님이 성경 말씀으로 유혹을 거절하자 사탄도 성경 말씀을 통해 유혹을 합니다. 그 말씀 중에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를 빼버립니다.

이 유혹에서 마귀는 두 가지를 변질시키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인생의 목적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인류의 구원을 위함입니다. 마귀는 그 하나님의 능력을 하나님을 위해서 쓰지 말고, 사람들 앞에서 너의 명예와 권세와 영광을 과시하고 자랑하고드높이도록 하는 데 사용하라고 부추깁니다. 너의 자존심과 명예와 권세를 증명하는 삶을 살아보라고 부추깁니다. 인생의 목적을 바꾸는 유혹을 하는 것입니다. 이 두 번째 유혹에서 마귀가 변질시키고 있는 또 다른 한 가지는 바로 인생의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버림을 받고 비천한 상태로 머물며 비루한 삶을 필요가 있겠는가입니다. 부와 명예와 권세를 소유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방법이 말씀에 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은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함으로써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고난을 감당함으로써 결국은 그 영광의 자리에 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에덴 동산에서도 이렇게 말씀을 축소 확대 왜곡하여 하와를 유혹하였습니다. 두 번째 시험은 정신적이요 명예적인 것으로 말씀을 오용한 시험입니다. 첫 시험이 생물학적 배고픔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심리적 배고픔에 관한 것 즉 명예와 명성의 소유에 관한 유혹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의 현장에서 뛰어내린다면 예수님은 단번에 군중의 갈채를 받으며 무리들에게 메시아의 확실한 표징이 되었을 것입니다(3:1). 사단은 명예심을 자극하여 예수님을 인류를 구속할 메시아로서의 희생적 삶보다는 세상의 환대 속에 영웅적 삶을 살도록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은 네가 그렇게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한다면 내가 성경 한 구절을 줄 터이니 그 말씀에 순종하는가를 보여달라고 하였지만 그것은 믿음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신뢰하는 자녀들의 길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신뢰하며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며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녀들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마치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시험하였듯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는 것의 증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말씀을 가지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기적을 일으키도록 강요하는 환경으로 자신을 내던지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37-8절은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팎케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마음을 강팎케 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였다고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어떻게 그 유혹을 물리쳤습니까? 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신명기 616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사단의 말씀에 대한 오용을 지적하여 바르게 해석하여 주신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시험하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함으로 온 세상에 예수님의 이름을 드러내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공 사역을 감당하실 때, 하나님을 시험하는 무모한 방식도, 영웅적인 방식도 아닌, 말씀에 순종하여 기록된 대로 모욕받고 낮아지심으로 감당하셨습니다. 말씀이 가라고 하면 가고 멈추라고 하면 멈추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유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삶이 흔들리지 않는 방법입니다. 지금도 사탄은 무모하게 보이는 종교적 모험을 시도해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지 증명해 보라고 유혹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왜 그렇게 가난하게 사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왜 병들고 힘들게 사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세상이 왜 이렇게 불공평하냐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해 주었는데 하나님이 계시면 지금 벼락을 내려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겠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무능하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사고가 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을 시험하는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마사와 므리바에서 하나님을 시험합니다(17:1-7). 마실 물이 없으니까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의심합니다. 여호와를 시험하여 여와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는가 아니계시는가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석을 모세에게 반석을 치게 하여 물을 마음껏

마시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나가면 하나님은 보호하고 인도를 실제적으로 체험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만나를 매일 주는데도 애굽에 먹던 음식을 그리워하며 하나님을 시험합니다(민수기 11:4-6, 31-34). 메추라기를 모아 쌓놓습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의 약속의 땅을 정탐하게 했는데도 하나님을 시험합니다(민수기 14:1-23). 아프리카의 짐바브웨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지키시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악어들이 우글거리는 강으로 들어간 목회자가 있었답니다. 그는 일주일간 금식하며 기도한 후에 믿음으로 강을 걷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악어가 있는 강에 갔답니다. 그는 성도들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증명해 보이려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악어의 밥이 되고 말았답니다. 이생의 자랑의 유혹을 정확한 말씀으로 이겨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만큼 지혜스럽고 탐스러움의 유혹에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고지 점령의 싸움에서 승리를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3. 영적 차원의 유혹 앞에서 경배와 섬김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신 것을 명확히 함으로 지배의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그러자 사탄은 포기합니까? 생물학적 육체적 단계의 유혹에 실패하니까 심리적이고 정신적 단계로 유혹을 합니다. 그것도 실패하지 영적인 믿음의 단계의 유혹을 합니다. 생존의 유혹, 소유의 유혹에 실패하니까 지배의 유혹으로 다시 도전하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에게 보암직함의 유혹을 하여 성공하였습니다. 눈을 매개로 하여 하는 유혹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고 유혹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에게도 그런 유혹을 합니다. 8절에 보십시오. 예수님을 높은 산에 오르게 하여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줍니다. 안목의 정욕을 가지게 합니다. 그리고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라고 합니다. 세상의 환상을 미끼로 사단은 유혹합니다. 사탄에게 절하면 영광스런 열방의 왕이 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지배의 유혹으로 예수님을 흔듭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으로 백성을 구원하는 만왕이 왕이 되실 것은 이미 성경에 예언해 놓고 있습니다(2:8713-1491019:16). 잘못된 수단을 통하여 목적을 달성하라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두 번에 걸쳐서는 전제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유혹했는데 이제는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이라고 유혹을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우상 숭배의 유혹입니다. 사탄은 유혹은 궁극적으로 자신이 하나님으로 경배받기 위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24절에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아담과 하와도 이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하나님처럼 되려는 유혹에 인간들은 흔들이고 넘어갑니다. 사탄은 자신을 창조주, 전능한 하나님으로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모든 것을 예수님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에게 십자가의 길을 피하고 왕국을 소유하도록 유혹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높아지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천하를 다스리실 것입니다. 사탄은 이러한 십자가의 영적 싸움을 포기하고, 천하의 영광을 얻고 편히 살라는 것입니다. 단지, 자신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유혹을 했습니다. 예수께서 처음으로 수난을 예고했을 때 베드로를 통해서 그리 마옵소서라고 유혹했는가 하면(16:22)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렸을 때도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27:40; 23:35-37)고 유혹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어떻게 그 유혹을 물리쳤습니까?

1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신명기 613절 말씀을 인용합니다. 오직 경배를 받으실 뿐은 하나님 뿐이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소유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섬기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천하만국의 부귀와 영화와 권세를 얻기 위해 예수님의 신분을 망각하고 사탄에게 넙죽 절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권세는 자신의 배고픔을 해설하기 위해 준 것도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왕이 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섬기는 데 사용하는 권세였습니다. 우리는 끝없이 사탄의 소리를 듣습니다. 나에게 절하라 그러면 권력을 주어 섬김받는 자리에 오르게 할 것이다라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명은 바로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만 경배하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서 가셔야 할 길이 십자가의 길임을 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만국의 영광을 회복하기 전에 죄로 인하여 타락한 세상을 십자가의 복음으로만이 회복시키게 됨을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가셨고 그 길을 통하여 죽음으로써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안목의 정욕이 유혹에서 이겨야 합니다. 아담은 보암직한 유혹에 너머졌습니다. 우상은 허상에 불과합니다. 하나님 만 경배하고 섬기는 것이 참만족과 위로와 기쁨과 보람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13:14-15)”

오늘날도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높아지라고 고지에 오르라고 유혹을 합니다. 단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경배을 받고 섬김을 받으라고 유혹합니다. 하나님이 되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3:5절에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라고 유혹한 것처럼 사단은 현대인에게 하나님의 권위를 넘보고, 자율적으로 선악을 판단하라고 유혹합니다. 모든 기준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자아숭배와 자기중심주의에 빠지게 만듭니다. 자기계발, 자기 존중, 자아실현을 강조하며 개인의 욕망이 최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과 성취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을 키우고, 타인보다 우월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켜 자기 우상화를 하라는 것입니다. 첨단 기술과 과학을 신격화하여 하나님이 아니라 과학의 발전이 인간이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고 있습니다. AI. 인공지능, 유전자 편집, 우주 탐사 등 과학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은 세상에서 물질적 성공과 사회적 지위를 통해 자신을 신격화하라고 유혹합니다. 재물과 권력, 명성을 통해 세상에서 신과 같은 위치에 오르려는 욕망을 사탄을 끊임없이 자극하며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1:16)”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말씀합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과 바다에 있는 자들과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5:13)”

권력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인간사에 많은 파멸과 불행을 가져왔습니다. 사울 왕도 압살롬도 세배대의 아들들도 이 유혹에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영적 차원의 유혹 앞에서 경배와 섬김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신 것을 명확히 함으로 지배의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생존의 유혹, 소유의 유혹, 지배의 유혹을 받고 삽니다. 생물학적 유혹, 정신적 유혹, 영적 유혹을 받습니다. 이 유혹에서 인생 흔들리지 않고 평생 행복하고 형통하게 살려면

육체적인 차원의 유혹 앞에 단호하게 말씀으로 아니오라고 의지로 생존의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정신적 차원의 유혹 앞에서 단호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의 욕망을 말씀에 순종함으로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영적 차원의 유혹 앞에서 경배와 섬김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신 것을 명확히 함으로 지배의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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