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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흔들릴 때(2) 구원의 인생 항해에서 표류(히브리서2:1-4)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8733 추천수:2 218.155.63.46
2024-06-09 15:03:16

삶이 흔들릴 때(2) 구원의 인생 항해에서 표류

히브리서2:1-4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어느 정신 병동에 환자가 들어 왔답니다. 2층 방에 수용하였는데 창문을 열고 창살 틈으로 1층을 향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외쳐댔다는 것입니다. 시끄럽게 계속 외치자 1층에 있는 사람이 창문을 열고 창살 틈으로 2층을 바라보고 , 나는 너 같은 아들 둔 일이 없다.”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심지어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10:30)”라고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하는 빌립에게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14:9)"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정신병자였을까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지 모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이라고 말씀했다면 정신병자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정신병자이겠습니까? 정신병자가 사복음서에 나오는 것처럼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5:44)." 등과 같은 그런 위대한 말씀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정신병적 징후가 일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 아들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사기를 친 거짓말쟁이일까요? 예수님은 자신이 말씀하신 진리를 지키기 위해 십자가에 모진 고문을 당하며 돌아가셨는데 거짓을 위해 그런 고난을 감수했을까요? 거짓말 장이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거짓말쟁이도 정신병자도 아니면 예수님은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말씀하면서 요한복음 11:25-26에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님은 이 사실을 믿습니까? 이 사실을 믿고 사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아무나 이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자만이 이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성경 에베소서 2:8-9절에서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전도한 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똑똑하고 공부를 잘하는 친구였는데 어릴 때부터 한 번도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 친구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이시며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전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겠노라고 고백했고 저를 따라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토요일 저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싫다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 혼자 머리 빡빡 깎은 율브린너라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 와서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남자가 체재하게 뭐 교회에 나가느냐? 나 앞으로 교회 안 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너 좋으라고 예수님 믿으라고 하는 것이지 나 좋으라고 예수님 믿으라고 하는 것이냐라고 네 마음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진짜 교회를 방학해 버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를 처음 받았던 교인들은 유대교인으로 대대로 살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직접 경험했든지, 아니며 간접적으로 전해 들어서이든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핍박을 당하였습니다. 이 히브리서가 기록된 때는 B.C. 64-67으로 추정합니다. 기독교인을 대대적을 핍박한 로마의 네로 황제가 등극한 때가 B.C. 54년이고 로마의 대화재가 일어날 때가 64년입니다. 네로는 이 화재의 책임을 기독교인에게 돌리고 대대적인 핍박을 했습니다. 그 사실을 우리는 히브리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032-34절을 보십시오. 고난의 큰 싸움을 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비방과 환난을 당하고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갇히고 소유를 빼앗겼다고 말합니다. 이런 핍박과 고난을 당하니까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버려 버리고 그동안 대대손손 믿었던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이제까지 믿었던 신앙의 기준을 잃어버리고 인생이 표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의 기준을 상실하고 흔들릴 때 신앙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인생 항해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1. 기준을 잃고 삶이 흔들리 때 표류를 깨닫게 하는 기준인 성경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예전에 수학여행을 가는 아이들을 태우고 가다 침몰된 세월호의 침몰 원인이 아직까지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것은 복원력이 없었서 침몰하였다는 것입니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선박이 다가오는 각종 파도에 넘어지지 않고 복원력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는 벨러스트 수를 적절하게 채웁니다. 선박 평형수입니다. 이것이 있으면 파도에 따라 배가 좌우로 흔들거리다가도 정상으로 돌아 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는데도 마찬가지도 삶의 폭풍우 앞에서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를 때 기준이 분명해야 우리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 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그것은 들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1장을 받는 접속사입니다. 들은 것이 무엇입니까 1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말씀의 완성자이시고, 만유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영광의 하나님이시고, 구세주이시며, 부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승리자이시며, 통치자라는 말씀입니다.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천사보다 못한 분이 아니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들은 것, 예수 자신이 말씀하시고 사도들이 증거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이야기 곧 복음을 더욱 유념하라는 것입니다. ‘더욱 유념함으로는 문자적으로 풀이하면 우리가 더욱 많이 주의하여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경험을 통해 취득한 대전제가 되는 많은 경험 중에 그것에 우세권을 두어라는 말입니다.

교회에 나와 예수님을 이렇게 믿었던 사람들의 대전제가 바뀌는 것은 어느날 특별한 다른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교회에 잘 나오던 자녀가 대학에 가니까 교회를 다니지 않는 것입니다. 대학에 들어가 리차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그가 주장하는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의 심리적 필요에 의해서 신이 만들어졌다고 자신도 받아들여 버리는 것입니다. 조금 과학적 지식이 있다고 오광남 박사처럼 예수는 없다라고 하지 말고, 피터 갠디 처럼 "예수는 신화다"라고 대전제를 가져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수많은 직간접 경험을 하는데 어떤 경험이 우세력을 가지면 그것이 대전제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가졌던 신앙의 기준이었던 말씀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가졌던 신앙이 흔들립니다. 인생이 흔들립니다. 신앙적 방황을 하게 됩니다. 회의론자가 되기도 하고 무신론자가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떤 경우에게 삶의 기준인 말씀을 잃지 않고 붙들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구원의 인생 항해에서 흘러 떠내려 가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흘러 떠내려가다역풍 때문에 목적지에 닿지 못하고 흘러 떠내려 가는 것’, 조난을 뜻합니다. 말씀을 붙들지 않으면 고난과 박해를 만나면 복음을 저버리고 다시 예전 생활 유대교에로 되돌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게 됩니까?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과거 예를 들어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을 때 결국 40년 동안 광야 생활하였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들도 말씀을 버림으로 결국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망했습니다. 여기서 천사들을 통하여율법이 천사들을 매개로 해서 주어진 사실을 가리킵니다(7:53; 3:19; 1:1). 이것은 구약을 구약의 율법을 지칭하는데 율법’(노모스)이라 하지 않고 '말씀’(로고스)이라 한 것은 구약의 율법 역시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인들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말씀임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견고하다는 말은 확실한 권위와 구속력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범죄함'순종치 아니함은 율법을 거스려 행동하며 율법을 준수치아니한 것을 가리킵니다. ‘공정한 보응이란 율법을 거스리고 준행치 아니한 데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형벌을 가리킵니다. 결국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면 그에 따른 심판과 징계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앙 항해에 기준이 되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합니까? 412-13절을 보십시오. 인생의 삶의 좌표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십니다. 각종 삶의 풍랑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일어나길 바랍니다. 고독할 때, 우울할 때, 실패할 때, 각종 중독의 위기에 있을 때, 이혼의 위기를 맞았을 때, 경제적 고난이 다갈 올 때, 죽음 앞에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시길 바랍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6)" 다른 책과 달리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즉 영감을 받아 기록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무엇보다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딤후3:15)"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책이 인간을 구원시키는 지혜가 담겨있겠습니까? 성경에는 구원의 지혜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딤후 3:17)"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소성시켜 주십니다(시편19:7-11). 하나님의 말씀을 우둔한 자에게 지혜를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을 기쁘게 해 줍니다.

 

2. 기준을 잃고 삶이 흔들리 때 표류를 붙잡아 주는 중심인 구원의 확신을 붙들어야 합니다(3)

그러면 인생이 표류하면 기준을 잃어 버리고 흔들림으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보응을 우리가 어떻게 보응을 피하겠습니까? 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큰 구원이라 함은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하여 주신 복음 계시의 전단계인 구약 율법과 달리 그리스도께서 친히 선포한 구원의 진리인 복음을 말합니다. ‘등한히 여기다는 말은 무관심하여 자신과 상관 없는 것인 양 내버려두는 것을 뜻합니다. ‘어찌 피하리요라는 말은 결단코 피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본절은 과거에 천사를 통해 주어진 구약 율법을 거역해도 그에 상응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았거늘 하물며 그리스도께서 친히 선포한 복음을 무시하거나 거부한다면 그 어찌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지 않겠느냐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복음의 권위에 대하여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첫째,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공생애 사역 중에 친히 복음을 선포하셨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직접 듣고 하나님의 성령에 감동되어 바로 깨달은 자들인 사도들에 의하여 우리들에게까지 전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배는 풍랑을 만나면 표류 하지 않고 제대로 가기 위해서는 등대를 보아야 합니다. 등대를 볼 수 없느면 북극성을 보아야 합니다. 과학이 발달된 때는 나침반을 보아아 하고 요즈음같은 때는 항해도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 구원의 항해를 하면서 표류하며 파선되지 않기 위해서는 큰 구원 즉 구원의 확신을 꼭 붙들고 가야 합니다. 구원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 그 어떤 것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았다면 왜 이렇게 사느냐고 나는 이렇게 살고 있으니 구원받지 못했다고 회의할 수 있습니다. 신앙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핍박과 유혹 앞에서 구원의 확신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생활에 흔들리지 않으면 구원의 확신을 죽을 때까지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은 제 친구처럼 영화한 편이 흔들 수 있습니다. 사소한 문구 하나가, 신뢰했던 한 사람이, 어느날 잃었던 책 한 권이 흔들 수 있습니다. 신학에서는 시간적으로 구원을 설명할 때 구원은 과거적 구원 현재적 구원 미래적 구원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에베소서 2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구원이 과거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과거적 구원은 중생, 거듭남, 칭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적 사역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선언되는 것으로 죄의 형벌부터 구원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

현재적 구원은 성화로 성령의 도우심을 죄의 능력으로부터 점진적으로 자유로워지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빌립보서 212절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았습니다(3:20~22, 24, 28; 2:8). 그러나 이 은혜는 우리를 선한 행위로 인도합니다(6:11~16). 그처럼 그러한 행위는 우리의 구원을 가져온 은혜를 적용한 결과입니다(6:18; 고후 6:1). 믿음으로 과거에 구원을 받은 우리는 현재에 각 개인이 하나님의 뜻과 능력에 협력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구원을 이루어가는 성화의 과정입니다. 각 개인은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3:9), “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경주하며”(12:1), “마귀를 대적하”(4:7), “끝까지 견디”(24:13)어야 합니다.

 

미래적 구원은 영화로 그리스도의 재림 시, 죽을 때 모든 죄와 결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은 2413절에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미래 시제가 쓰였습니다. 미래에 있을 구원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어(고전 15:54)”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15:43)”게 되는 몸의 구속인 영화의 경험인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에는 우리의 구원을 구원을 받았다(2:8)” “구원을 이루라(2:12)” “구원을 얻으리라(딤후 4:18)” 등과 같이 과거 현재 미래 시제로 되어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칭의로 믿음으로 죄의 형벌을 치루고, 무죄를 선언받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율법 요구인 죄에 대한 형벌을 이미 충족한 1회적 사건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중심에는 예수님의 구속의 피가 있습니다. 칭의에는 성부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성화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 성도가 죄의 영향력에 저항하며 구별 된 삶으로 성숙하게 되는 구원입니다. 믿는 사람의 반복적 삶의 과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율법의 목적인 거룩함과 선한 일을 이루어 가는 과정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영화는 죄로부터 완전한 구원받아 영원히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영화의 구원은 예수님을 향한 소망 때문에 받게 되는 새 생명(6:4), 새 몸(고전 15:51-52), 새 지식(고전 13:12), 새 하늘과 땅(21:1) 등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구원의 완성입니다. 영화구원은 성자 예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예수님의 재림이 있습니다.(살전 4:14-18, 살후 1:7-12).

다시 말하면 과거적 구원인 칭의는 갈보리 십자가를 통해 죄의 형벌로부터의 구원받는 것입니다.

현재적 구원인 성화는 죄의 능력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매일 매 순간마다 죄의 세력과 죄의 법과 싸워야 할 죄의 능력으로부터 이겨야 하는 죄의 습관과 죄의 지배로부터 구원을 말하며, 현재 진행형입니다. 성령을 따라 살지 않고 육신적으로 살면 죄를 짓고 징계를 받습니다. 십자가의 보혈에 힘입어 범죄 할 때마다 회개와 자백을 통해 자백함으로써 깨끗하게 씨어 죄의 능력으로부터 구원받아야 합니다.

미래적 구원은 몸이 구속받은 순간 죄의 임재로부터의 영원히 구원받는 것입니다. 지금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살고있는 우리는, 죄의 권세로부터 집요하게 유혹받고 있고 시험받고 있고 고난당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를 처음 받은 유대인 성도들도 네로의 핍박 앞에서 배교하는 성도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을 향하여 흘러 떠내려 가지 말고 구원의 확신을 붙들고 마침내 구원의 소망의 항구에 도달하라는 것입니다. 논리학적 설명을 하면 어떤 경우도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으로 우리의 구세주라는 대전제를 붙들고 평생 살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중심인 예수님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울도 유대인으로 유대교의 신봉자였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신비한 경험을 했습니다. 바울의 인생에서 대전제가 바뀌는 때였습니다. 이런 경험을 대전제를 바꿀만한 낯선 체험의 충격, 충격적 체험, 유레카 경험, 신앙적으로는 하나님 체험이라고 합니다. 일반 종교에서는 득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람이 대전제가 쉽게 바꾸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충격적 체험을 해야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대전제가 하나님이 존재한다로 바뀌는 것입니다. 자연인 인간 예수님에서 하나님 예수님으로 바뀝니다. 이런 충격적 체험을 대전제를 이루는 여러 정보 중에 우선력을 가지게 됩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전도한 친구는 그 후 졸업을 한 후 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중병에 걸려 병원에서는 고칠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저는 다시 친구를 찾아가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전하고 소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예수님을 다시 믿고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 권사님의 안수를 받고 깨끗하게 고침받고 판사가 소원이었던 친구가 신학대학에 들어가 박사학위를 받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 체험을 직접하면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 예수님이 구세주인가? 예수님이 하나님인가? 예수님이 부활하였는가? 예수님이 재림하는가? 죽으면 천국에 가는가?” 등과 같은 것을 놓고 인생이 표류하지 않습니다. 방황하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버지니아 의대 정신의학과 신경 행동과학 명예교수로 40년 동안 1천 여명의 임사체험자를 연구한 브루스 그레이슨 박사가 <애프터 라이프>라는 책을 내어놓았습니다. 그는 미국정신의학회에서 수여하는 최고 영예인 석학회원으로 선출된 정통 의학자로서 전공 분야 의학 연구로 여러 차례 중요한 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책에 의하면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현격하게 삶이 변화된다고 합니다. 임사 체험을 한 사람들은 예전 방식대로 살지 않고 두려움을 줄어들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하는 체험자 많다고 합니다. 정신의학은 정신은 두뇌의 전기 작용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임사체험을 한 자들을 연구해 보면 의식과 두뇌는 별개이며 두뇌 기능이 정지해도 정신 의식은 일정 기간 동안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그 책에서는 <나는 천국을 보았다>의 저자인 하버드 최고의 신경외과 전문의 이븐 알렉산더 박사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7일간의 뇌사상태에서 죽음 너머의 세계를 체험하고 살아 돌아오 이야기를 그의 책에서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그의 임사체험에 대하여 의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의사들 중에는 그의 환상은 약물 투여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의심하였답니다. 그래서 그것을 의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3명의 의사가 600장이 넘는 진료 기록을 검토해 보았다고 합니다. 상의 없이 각각 진료기록를 검토한 후 결론이 다르면 서로 함께 의논하기로 했답니다. 시티 촬영 결과를 보면 뇌의 빈 부분이 고름으로 꽉차 부풀어 있고 의사들은 그가 절대 깨어나지 못하거나 깨어나라도 다시는 말을 하거나 스스로 생활할 수 없다고 예측하며 소견을 적어 놓았답니다. 세 명의 공통된 결론은 그의 혼수상태는 약물투여와 관련이 없었고 그는 뇌가 최악으로 손상된 상태에서 죽기 일보 직전이었으며 그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혼수 상태인 사람이라면 결코 인지할 수 없는 것을 보았답니다.

 

임사체험을 경험한 이븐 알렉산더 박사도 자신이 직접 임사체험을 경험하기 전에는 임사체험은 뇌가 만들어내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믿어 왔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뇌가 완전히 멈춘 순간에 죽음 너머 세상을 경험함으로써, 임사체험은 뇌가 만들어내는 환각이 아니며, 뇌가 죽어도 의식이 계속 존재한다는 증거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천국, , 영혼에 관한 그 어떤 이야기도 의학적인 지식과 양립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과 영혼이 실재하며, 죽음이란 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만이 진정한 삶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의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삶이 육체나 뇌의 죽음과 더불어 끝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게 된 지금, 이 몸과 이 지구를 넘어서 내가 보게 된 것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무엇보다 이전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듣고서 믿고 싶었지만 차마 전적으로 믿을 수 없었던 그런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창조주의 조건 없는 사랑과, 우리가 더 큰 차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한, 지상에서의 우리는 언제나 길 잃은 심정으로 살아갈 것이다. 나는 이 경험으로 내가 정말로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어떤 종류의 세상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어 행복하다.” 우리는 이 땅에서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나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죄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고 지금 이루어 가고 있고 예수님의 재림으로 우리의 죽음으로 영원한 천국에 참여하여 완성될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이란, 내가 지난 시간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었기 때문에 나는 구원을 이미 얻었던 것이며, 이 현재의 믿음으로 인하여 현재 구원의 길을 걷고 있으며, 이 믿음을 계속 유지하는 조건으로서 장래에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라는 확증이 되어져야만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이 구원의 길에서 탈선하지 말고 어떤 경우도 구원의 항해에서 표류하다 파선되지 말시기 바랍니다.

 

3. 기준을 잃고 삶이 흔들리 때 표류를 뚫고 나가게 하는 동력인 성령의 능력을 꼭 붙들어야 합니다.

배가 표류하지 않으려면 동력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구원의 여정인 인생 항해에서 표류하지 않으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권위에 대하여 확증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여러 가지 표적과 기사와 능력과 성령의 은사를 통해 친히 복음의 진정성을 증거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메시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면 인간 구원의 완성자라라는 사실을 하나님이 친히 증거해 주었는데 본문은 크게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유일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면서 로마의 압제 속에서, 포악한 헤롯 권력 밑에서 신음하며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정의로 통치하고 참된 평화와 안정을 주실 다윗의 후예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메시아가 와서 포악한 헤롯 정권을 무너뜨리고 로마를 무릎 꿇게 만들어 참된 자유와 평화와 안식이 올 줄 기대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고 믿었는데 로마의 권력 앞에 고난과 핍박을 받으며 환난을 겪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인생이 표류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지극히 자기 중심적입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통해 인간은 생존과 종족 번식에만 충실하다고 말합니다. 모든 생각과 행동은 그것에 맞추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지만 성경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고 모든 사람이 죄악 가운데 출생했다고 말씀한 것처럼 지극히 자기 중심적입니다. 로마서 310-12절에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는 말씀처럼 인간은 본래적으로 이기적인 경향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예수님을 떠나 버립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예수님을 떠나 버립니다. 10년 동안 기도하였는데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하나님은 실제 계시기나 하는가라를 회의를 가지고 하나님의 침묵을 말합니다. 기도는 단지 마음의 평안을 위한 심리적 현상이라고 회의를 하는 것입니다. 내세는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 종교적 위안을 주기 위한 신화적 언어 정도도 생각하는 것입니다. 당시를 생각해 보십시오. 가족을 세워놓고 예수님을 믿겠느냐고 물어 봅니다. 어머니가 믿는다고 하면 아들을 고문합니다. 심지어는 처형합니다. 또다시 물어 봅니다. 믿는다고 하면 딸을 고문하고 처형합니다. 믿지 않는다고 하면 풀어 줍니다. 우리가 이런 현장에서 믿음을 지키며 다 같이 순교할 수 있겠습니까? 조금만 불이익만 생겨도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결혼할 때 그렇게 죽기 살기로 같이 살겠다고 하는 부부도 한 번 이상한 짓을 하면 그것을 끝장을 내는 것이 인간입니다. 조금 자존심만 상해도 상관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보이지 않는 예수님과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데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 흔들리지 않고 구원의 항해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큰 구원의 성취자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첫째 '표적들과 기사들을 통해 확증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두 단어는 모두 하나님의 권능에 의한 초자연적 역사를 뜻하지만 굳이 차이점을 말한다면 표적’(세메이온)은 단순히 육안으로 보여지는 것 이상의 초자연적 역사의 의미를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기사’(테라스)는 눈에 보이는 경이로운 사건 자체를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직접 세 번이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결정적인 순간 즉 세례를 받을 때, 변화산에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질병을 고쳐 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는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습니다. 둘째는 여러 가지 능력으로 하나님 만이 하시는 일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확증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능력'(뒤나미스)은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말합니다(7:22; 6:2). 이것은 표적과 기사들을 포함하는 보다 넓은 의미의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권능으로써 놀라운 일을 행해 보이심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살아 역사하심을 계시하시거나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믿도록 역사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바다를 걸음으로 자연질서를 다스리는 분인 것을 확증해 주었고, 죽은 자를 살림으로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확증해 주었습니다. 셋째는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확증해 주었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을 받은 사람들에게나 일시적으로 성령이 주어졌지만, 신약에서, 특히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5:32)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히 성령이 하나님의 은사로 주어졌습니다. 이 성령은 성도들의 심령 속에서 역사하사 복음의 진리를 믿게 해주고 성도들이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들임을 자각하게 해주실 뿐 아니라 모든 고난과 환난을 이기게 만들어 주십니다. 오늘 날로 말하면 이 성령이 능력이 앞의 두 가지를 하나님의 아들이 된 우리가 실제 삶의 현장에서 체험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즉 성령 충만하여야 순교의 자리에서도 표류하지 않고 신앙의 길을 견고하게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항해에서 표류를 막아주는 힘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어떤 유혹과 핍박 앞에서도 표류하지 않고 승리하려면 강력하고 우월적인 힘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힘이 대단한 것같지만 사소한 것에도 쉽게 표류하고 좌초하게 됩니다. 다윗 대단한 것같지만 벗은 여인의 몸을 보고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아브라함 대단한 믿음을 가진 것같았지만 권력자 앞에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바울을 얼마나 대단한 신앙인입니까? 그러나 로마서 7장에 보면 자신의 마음에 육신이 소욕과 성령의 소원이 싸워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7:19)”라고 고백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사단과의 유혹과 핍박 앞에서 신앙을 끝까지 인생 항해 마지막까지 표류하지 않고 항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절망적 고백을 하며 로마서 8장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죄로부터 자유를 누리고 넉넉히 승리한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26-27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그러므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라고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는 사단의 유혹과 핍박을 이길 수 있습니다. 바울은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8-39)”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이 저와 우리 성도님의 고백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힘이 없으나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힘을 주시면 능으로도 못하고 힘으로 못하는 일을 성령님께서 가능하게 하십니다. 성령 충만을 받지 않으면 술 충만, 쾌락 충만, 물질 충만 명예 충만, 권력 충만, 이성 충만, 과학주의 충만 등이 금방 파고듭니다. 그러면 인생 항해는 흔들리지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는 신앙 생활을 하려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갈라디아서 516절을 찾아 읽어 보십시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육체를 따라 살면 어떤 결과 나타납니까? 19절 이하를 보십시오. 첫째는 성적 범죄입니다(19). 세 가지입니다. 음행입니다. 더러운 것 호색입니다. 미혼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성적 범죄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불법적 성행위를 가리킵니다.

둘째는 종교적 범주의 죄입니다. 2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우상숭배 주술(20)입니다. 우상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입니다. 돈이 우상이 될 수도 있고 명예, 권력, 자녀, 인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술수는 마술이나 술책과 같이 미신적 행위를 말합니다.

셋째는 사회적 범주의 죄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기적으로 행함으로 발생하는 여덟 가지 죄의 열매입니다.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 이단, 질투 등으로 생기는 분열, 분파입니다(20.21).

넷째는 음주의 범주 속한 죄입니다. 이교도들의 전형적인 방탕한 두 가지 죄인 술취함과 방탕함입니다(21). 방탕함은 술취함으로 나타나는 무절제한 행동을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신앙 인생을 표류하고 파선되어 버립니다.

이런 일을 계속하면 어떤 결과가 주어집니까? 2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런 것들은 계속 즐긴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다는 물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받지 못합니다.

성령을 좇는 생활의 열매는 무엇이겠습니까?(22,23)

첫째,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한 세 가지 내적 열매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매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며, 하나님 안에서 희락, 하나님과 화평입니다.

둘째, 사람들과 관계에 의해 맺혀지는 세 가지 열매입니다. 오래참음, 자비, 양선의 열매입니다. 사회적 열매(덕목)로 오래참음, 자비, 양선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것이기보다는 인간을 향한 것입니다.

셋째, 성도의 일반적인 삶의 태도로서 세 가지 열매입니다.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입니다. 개인의 신실성에 관한 열매로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충성은 그리스도인의 신실성을 말하며, 온유는 겸손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절제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마지막까지 승리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 524-26절을 보십시오. 첫째, 우리는 육체와 함께 그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24). 둘째, 성령을 좇아 행하여야 합니다(16, 25). 세째,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26).

 

삶이 흔들릴 때 분명한 기준을 붙들어야 합니다.

첫째는 표류를 깨닫게 하고 복원력을 주는 기준인 성경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둘째는 표류를 붙잡아 주는 중심인 구원의 확신을 붙들어야 합니다.

셋째는 표류를 뚫고 나가게 하는 동력인 성령의 능력을 꼭 붙들어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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