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관계의 우선순위(2) 부모 효도 우선순위
창45:11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어버이 주일이면 늘 효도에 대하여 말씀을 묵상합니다. 효도를 말하면 오늘날과 같이 핵가족화 핵개인화 시대, 산업화, 정보화, 도시화로 가치관이 변했고, 각자 도생하는 시대에 효도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듣기도 전에 귀를 닫아 버릴 수 있습니다. 이미 효도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고 효용성이 없는 것으로 폐기 되어, 효도의 죽음, 셀프 효도, 대리 효도, 효도 계약서 등 부모와 자식 관계가 물질적 관계로만 남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회가 변해 인간성 경시 풍조, 가치관 혼란, 극단적 이기주의, 물질 지상주의, 저속한 쾌락 우선주의, 극단적 책임 회피 주의 등이 판을 친다고 해도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효도는 사회의 건강한 존속과 자신의 도덕적 만족, 가정의 행복을 위해 중요합니다. 유교에서는 효도는 백행의 근본이라고 했고, 하나님은 십계명을 줄 때 인간에 대한 계명에서 가장 처음 주신 계명이 효도에 대한 계명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효도는 약속있는 첫 계명입니다. 사람의 두 가지 소원이 있다면 누구나 건강하게 장수하고 잘 살기를 바라는데 바로 효도를 하면 그렇게 살 수 있다고 하나님이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가족 관계에서 효도는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부모 효도 우선 순위를 잘 듣고 실천하여 자식도 우리도 함께 하나님이 주시는 건강하게 장수하고 잘 사는 복을 평생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효도의 우선순위는 시대와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노인이 지각한 효도와 행복에 대한 토착심리 분석>이라는 전성숙 박사 논문에 의하면 노인은 자녀의 효도 행동으로 ‘안부 물음’과 ‘자주 만남’을, 효도의 말은 ‘건강하세요’, 가장 감동이 되는 효도는 ‘보살펴 줌’ 을 지적하였으며, ‘보살펴 줌’의 항목 중 ‘건강을 챙겨줌’은 가장 중요한 반응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현재와 한평생을 살면서 자녀들 때문에 가장 기쁜 일은 ‘손주로 인한 기쁨’과 ‘가정화목’, ‘자녀가 잘 사는 것’, ‘자녀의 성취’ 등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노인을 가정생활에서 행복하게 하는 일로 ‘가정화목’이 중요한 요인인데 한국 성인이 행복하기 위한 조건과 행복하기 위해 할 일로 가정화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가정화목’은 한국인의 가장 자랑스러운 성공 경험이며, 미래에도 성취하고 싶은 일이며, 청소년과 성인세대들의 중년기 성인 남녀에게 가장 고통스런 실패 경험이 가정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가정화목’은 현재, 과거, 미래에 걸쳐 한국인에게 중요한 요인이라고 합니다. 청소년이 부모에게 하는 효도 행동으로 ‘순종’으로 생각하고 있고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는 자녀의 효도 행동으로 ‘순종’이 가장 좋은 효도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청소년의 부모는 ‘순종하지 않음’을 대표적인 불효 행동으로 인식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연락이 없고, 무시하는 행동을 하고 섭섭한 행동, 부모에게 무관심한 것 등을 불효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입장과 처지에 따라 우선순위를 다 다른데 하나님이 말씀하는 효도의 우선순위는 무엇이겠습니까? 모범적인 효도의 사람 요셉을 통해 교훈을 받으려고 합니다. 요셉이 아버지에게 했던 효도의 우선순위는 무엇이었습니까?
1. 어릴 때 효도의 우선순위는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효도입니다.
요셉의 가정은 복잡한 가정입니다. 요즈음 말하면 정상적인 가정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말하면 순기능 가정이 아니라 역기능 가정입니다. 야곱이라는 아버지는 하나인데 어머니가 넷이나 있고 그 가운데 배다른 형제 자매가 있습니다. 이런 가정에서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같은 사람이 나온다는 것은 기적이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을 요셉에게 적용하면 요셉이 그렇게 잘 된 것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효를 한 결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요셉이 총리가 된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순종하는 효도를 하는 자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한다는 말을 적용하면 요셉은 어릴 때부터 순종의 효를 우선 순위로 산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이 17 때 일을 보십시오. 17살 먹은 요셉에게 아버지가 심부름을 시킵니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었는데 형들과 양들이 잘 있는지 살펴보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배다른 형들이 자기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세겜은 가까운 것이 아니라 먼 곳입니다. 약 90KM 되는 거리라고 합니다. 당시 양을 방목하고 있던 시절이기 때문에 말이 세겜이지 어느 골짜기에서 양을 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겠습니까? 얼마든지 이유와 핑계를 댈 수 있습니다. 그때 요셉이 어떻게 합니까? 창세기 37장 13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 하겠나이다(창37:13)" 이유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시시비비를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전혀 원망과 불평없이 "예"라고 순종합니다.
얼마나 요셉이 순종의 사람이었는지 아버지 야곱이 돌아 가실 때 보면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130세에 애굽에 내려갔고 요셉과 함께 17년을 더 살다가 147세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죽으면서 요셉에게 유언하기를 "내가 죽거든 저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다가 우리 조상들과 함께 장사 지내다오"라고 부탁합니다. 요셉은 총리입니다. 애굽에 화려한 피라미드 장례를 치를 수 있습니다. 자칫 잘 못하면 총리로서 애굽의 장례문화를 거역한다는 오해를 받고 총리의 자리에서 쫓겨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어떻게 합니까? 창세기 50장 12절을 보십시오.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그를 위해 따라 행하여”라고 말씀합니다. 그대로 행합니다. 야곱의 아들 중 이 일을 순종하여 행한 주인공은 누구겠습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꾼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요셉입니다.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1,000리, 약 400km가 넘는 거리입니다. 영구차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도 총리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릴 때 배운 순종의 효를 그대로 실천합니다. 순종의 효는 마땅한 것입니다. 옳은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에서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경우를 따지고 시비를 가리면서 순종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서 있으면 그저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의 효도에 핑계는 없습니다. 인류의 구속사를 이루시는 예수님도 육신의 부모에게도 순종으로 효를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사시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며 "아니요" 하시지 않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예" 하고 순종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육신의 부모님에게도 순종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장 51절에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 앞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을 보이셨습니다.
맹종이 아닙니다. 부모님을 지옥가게 만드는데, 부모님을 범죄자로 만드는데, 부모님을 위태하게 만드는데, 부모님을 불안하게 만드는데, 부모님을 위험에 빠뜨리는데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을 복을 받는 통로입니다. 불순종은 저주의 수렁에 들어가는 통로입니다. 요즈음은 권위를 무시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순종의 효를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어릴 때부터 우선순위로 순종의 효를 하도록 해야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자녀들은 결혼하기 전까지는 주 안에서 우선 순위로 순종의 효를 다하도록 해야 합니다. 불순종은 마귀가 심어주는 불행의 씨앗입니다.
감리교위 창시자 요한 웨슬리 어머니 수산나는 19명의 자녀를 출산하였습니다. 가난한 가운데 이 많은 아이들을 양육하는데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아이들을 훌륭하게 양육하였습니다. 그녀는 순종 교육을 철저히 시켰답니다. 두 살 전에 순종을 가르치는 것을 교육 목표로 삼았다고 합니다. 두 살 전에 순종을 배우면 부모에게도, 선생에게도, 하나님에게도 순종할 수 있다고 합니다. 두 살 전에 순종을 가르치는 길이 그 자녀가 영원히 효를 행하며 살게 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자녀가 잘 되길 원하시면 어릴 때부터 우선순위로 순종의 효를 가르쳐야 합니다. 오늘날 너무나 순종의 효가 무시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말에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의 말이라면 자녀 잘못될 까바 벌벌 떠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교회 선택도 자녀가 정합니다. 여행지 선택도 자녀가 정합니다. 밥먹는 시간도 자녀에게 맞춰야 합니다.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성경은 말세 징조를 말하면서 사람들이 부모를 거역할 것(딤후 3:2)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개성과 창의력이 발달되어 자녀가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불순종을 방치하면 자녀가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을 방치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삼손을 보십시오. 나실인으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이방 여인과 결혼을 합니다. 결국 블레셋 사람들의 포로가 되어 눈을 빼임당합니다. 짐승이 돌리는 맷돌을 돌리다 죽습니다. 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을 보십시오.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성전에서 방탕합니다. 고기를 도둑질해 갑니다. 간음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방치합니다. 겨우 권면하는 것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이 정도 수준에서 머물게 됩니다. 성경은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잠22:15)"라고 말씀합니다.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30:17)"라 했습니다. 신21:18-21에서는 성 밖에서 돌로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부모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해서라도 순종하게 해야 아이들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 가정에서 순종의 효를 배우지 못하니까 아들들이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립니다. 아이들은 전쟁터에 나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 잘 되는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삭을 보십시오(창22:9-10) 결혼할 배우자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는데도 순종합니다. 결국 이삭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성경을 보십시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창 26:12-14)" 잘 되었습니다. 잘 되었을 뿐 아니라 장수하였습니다. 아브라함 175세, 야곱 147세에 비해 이삭은 1백 80살까지 장수합니다. 효도하는 방법은 많이 있지만 결혼하기 전 효도의 우선순위는 순종의 효입니다.
2. 부모에 대한 태도에서 우선순위 효는 공경의 효입니다.
요셉의 아버지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는 무엇이었겠습니까? 아내를 넷이나 두고 부인들의 다툼을 방치하였고 자식을 지나치게 편애한 아버지입니다. 할아버지와 큰 아버지를 속이고 도망 온 아버지입니다. 삼촌을 속이고 양을 차지한 아버지입니다. 한때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 버리고 세상적인 것에 집착했던 아버지입니다. 우리 성도님같으면 이 정도가 된 아버지 어머니라고 하면 어떤 태도를 가지겠습니까?
요셉이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했는가 창세기 45장 3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총리인 요셉은 형들을 만나자 무엇보다 먼저 아버지의 안부를 물어봅니다. 창세기 43장 7절을 보십시오. 요셉은 곡식을 구하러 온 형제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물어봅니까? "너희 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시느냐"고 아버지의 안부를 물어봅니다. 창43:27절을 보십시오. 세 번이나 만날 때마다 아버지의 안부를 물어보고 있습니다. 그만큼 다른 것보다 아버지를 중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19:3)"라고 말씀합니다. 공경이나 경외는 하나님께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부모에게 이 단어를 사용하며 공경하라 경외하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공경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베드"라는 단어로 "무겁다, 존중하다"는 뜻입니다. ‘경외하다’는 “야레”라는 말로 “무서워하다, 두려워하다”는 뜻입니다. 부모를 무겁게 여기도 두려워하라는 말은 부모를 하나님처럼 높여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함부로 대하지 말고, 업신여기지 말고, 멸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하나님처럼 존중하고, 어렵게 생각하고 두려워하고, 무겁게 모시라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우습게 여겨 지구에서 추방하고 부모의 권위를 귀찮게 여겨 가장에서 추방함으로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누릴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부모 공경 없이 사람답게 잘 사는 사회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듯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공경의 효를 해야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조금 배웠다고 성장하고 무엇인가 사회적 지위를 얻었다고 부모를 무시하고, 학대하고, 멸시하면 결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말을 하면 뭐 부모를 공경할 것이 있어 “공경하지요”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공경할 만한 조건이 있어 공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부모라는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정직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자식이 되었을 때 우리 부모님이 자식이 사랑할만한 조건이 있어 사랑하며 희생하고 양육했습니까? 아닙니다. 자식이라는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게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며 희생하고 양육한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공경할만한 조건이 있어 공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사기꾼이었습니다. 4명의 아내를 가진 사람입니다. 나이 늙어 양식을 구하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분이었습니다. 직업이 당시 애굽 나라에서 천대하는 목축업이었습니다.
자신은 수많은 백성을 호령하는 총리가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아버지에 대하여 어떻게 대합니까?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합니다. 47장 7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왕 앞에 가서 축복하게 합니다. 애굽 사람들은 목축을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46장 34절을 보세요.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겼다"라고 했습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목축업자였습니다. 애굽인들은 목축하는 사람들을 천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바로왕 앞에서 야곱은 '조상 대대로 목축업을 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못났다고, 촌스럽다고, 잔소리가 많다고, 늘 강요만 하고 칭찬 한 번 해주지 않았다고, 부모 때문에 행복을 누리지 못했다고, 부모의 뜻대로 나를 길러 이꼴이 되었다고, 양육하면서 한 번도 칭찬해주거나 격려해 주지 않았다고, 남겨주고 해준 것이 없다고 원망하며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를 짐 덩어리가 아니라 복덩어리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부모에 대한 우선 순위로 공경의 효를 하면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공경의 효도야말로 가장 확실한 투자입니다. 복받을 기회입니다. 부모는 늘 함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고 떠나고 나면 효도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남습니다. 치매 걸린 부모님 있으면 짐 덩어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대대손손 복을 받을 수 있는 복의 통로로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셨다고 효도하면 하나님이 약속한 약속의 복을 대대손손 누리는 것입니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았다면 그것을 효도를 통해 복덩어리가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부모는 어떤 상황에 있는지 우리에게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대체 가능한 분이 아니고 비교할 수 있는 존재가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효자는 부모님의 직업이 어떠하든, 외모가 어떠하든 상관치 않고 낳아주신 것으로 인해 감사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복받은 기회인 것을 알고 자식된 도리를 다할 뿐입니다. 나이 드시고 병들었다고 함부로 말하고 박대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경력, 부모의 직업, 부모의 성격, 부모의 조건, 부모로부터 받은 혜택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생명을 있게 하신 분이라는 한 가지 이유로도 공경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특별한 은혜로 영적인 생명을 주었듯이 우리 부모님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어 이 땅에 살게 한 것입니다. 부모님이 나를 낳아준 은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생명을 주신 은혜와 같으므로 부모라는 한 가지 이유로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에게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을 그쳐야 합니다. 부모를 하대하고 멸시하고 무시하는 것을 중단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부르면 큰 소리로 대답하고, 필요할 때 달려가 뵙고, 출입할 때 문밖에까지 나가 배웅하며, 식사 때 부모보다 먼저 시작하지 않고, 밥을 다 잡술 때까지 식사 자리를 뜨지 않는 부모님 공경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자녀들이 복을 받습니다. 외출하면 행선지를 알려 주고, 귀가 예정시간을 말씀드리고, 귀가 시간 늦으면 부모에게 연락하며, 돌아와서 인사하는 것을 배우는 공경의 효를 가르쳐 주어야 도덕 지수가 높아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인정받아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게 됩니다. 작더라도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부모님의 일을 거들어 주는 부모공경의 효를 배워야 자녀들이 잘 살고 행복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리라 (마 15:4)" "부모를 경솔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신 27:16)"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듯이 죽을 지니라(출21:17)."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공경하지 못하다 왕자로 태어났지만 복을 받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자식들이 복을 받지 못합니다. 효도의 계명은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부모님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아버지, 노아의 수치를 가렸던 셈과 야벳은 축복을 받았습니다(창 9:26). 그러나 부모를 경멸히 여긴 함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부모에 대한 태도에서 우선 순위의 효도는 부모를 공경하는 효도입니다.
3. 결혼한 후 우선순위의 효도는 보모를 봉양하는 봉양의 효입니다.
요셉은 결혼하고 그 당시 가장 강대한 나라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초라한 노인입니다. 그때 아버지에게 어떤 효도를 했습니까? 요셉은 아버지를 모시고 그의 다짐을 무엇이라고 표현합니까? 1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다(창 45:11)" 어떻게든 아버지를 봉양하겠다고 다짐하고 약속합니다.
말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창세가 47장 12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 하였더라"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하며 거기서 산업을 얻고 생육하며 번성하였더라(창 47:27)."라고 말씀합니다. 야곱은 십 칠년 동안 노년에 총리의 아버지로 축복을 받으며 살았습니다(창 47:28).
봉양이란 말은, '돌봐드린다' 또는 '공급하다'란 뜻입니다. 아버지가 생활하시는 데 불편함 없도록 공급해드리고, 돌봐드린 것입니다. 무작정 가까운 곳으로 모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고센 땅으로 모셔온 것입니다. 아버지와 형제들이 생업으로 하던 목축업을 계속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고려해서 모셔 온 것입니다. 부모님을 몸소 봉양하고 실천하는 효도를 신체력행효라고 하고 부모님의 생활을 물질적으로 부양하는 효도를 양지효라고 말합니다. 부모님의 생활비와 용돈을 드리고 주거 환경을 마련해주며, 건강을 위해 비용을 들이고, 노후 생활을 편안히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부모에게 그렇게 봉양한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이 어렸을 때,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씻어 주었으니 부모가 늙으면 자식들이 부모를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씻겨 주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황새나 까마귀 같은 날짐승도 어미 새가 늙어 날 수가 없게 되면 제 둥지에 데려다놓고 죽을 때까지 모이를 물어다 먹인다고 합니다. 디모데전서 5장 8절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4절에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를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즈음 세대는 부모가 죽을 때까지 돌보아야 하는 세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황혼 육아 비율이 63.8%라고 합니다. 이 중 무보수로 육아를 담당하는 부모가 54%라고 합니다. “잘난 아들은 나라의 아들이고,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이며, 빚진 아들은 내 아들이고, 아들 둘 둔 엄마는 이집 저집 떠밀려 다니다 노상에 서 죽고, 딸 둘 둔 엄마는 해외여행 다니다 외국에서 죽고, 딸 하나 둔 엄마는 딸네집 씽크대 밑에서 죽고, 아들 하나 둔 엄마는 요양원에서 죽고, 재산 안주면 맞아 죽고, 반만 주면 쫄려 죽고, 다 주면 굶어 죽는다.”라는 유머가 있습니다.
금쪽같은 손주를 양육하면서 기쁨도 있지만 삭신이 멍이 든다고 합니다. 결혼하면 끝이 아니라 결혼하면 이제 또다른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아들 딸은 진이 빠지도록 손자 손녀 돌보아 주어야 진짜 부모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돌보아 주었는데도 늙고 병들면 부모를 봉양하는 효도를 짐으로 생각하는 자녀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아주어 어쩔 수 없이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가 있었답니다. 어느 날 인질범이 시어머니를 납치해 간 것입니다. 그리고 며느리에게 전화를 했답니다. "너희 시어머니, 내가 데리고 있다. 1000만원을 가져오면 풀어주마." 그 때 며느리가 "어림없는 소리, 니 맘대로 해." 그러자 인질범이 다시 말했답니다. "좋다. 그럼 너희 시어머니 도로 당신 집에 데려다 놓겠다." 그러자 당황한 며느리는 황급한 목소리로 "여보세요. 은행 계좌 번호가 어떻게 되죠?"라고 물어보더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세태를 풍자한 유머입니다. 부모님을 봉양하는 것은 손해처럼 보이지만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약속있는 첫 계명입니다. 인권을 무시하는 계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인간이 인간답게 복받고 살게 만들기 위한 계명입니다.
봉양한다는 것은 꼭 물질로 보답하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잘 되는 것이 봉양의 효도입니다. 치매에 걸려 수발해야 할 부모님을 모신다고 모든 것을 접고 가정에서 봉양하는 것 만이 봉양의 효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전문가들이 보살피는 요양원에 모시면서 자신의 주어진 일에 성공하는 것을 부모님은 기뻐하실 것입니다.
부모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과 관심을 가지는 것, 하나님을 믿음으로 자신에 대하여 성실한 것, 사업에 성공하는 것,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을 하는 것,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에 충실한 태도를 가지는 것, 자신의 신앙 관리, 마음 관리, 건강관리 철저히 하는 것, 자신의 타고난 능력과 소질을 최대한 개발하는 것, 자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입신양명하는 것 등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것 모두가 봉양의 효도입니다.
요셉처럼 주어진 일을 잘 성취하여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봉양입니다. 하나님은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23:25)고 하십니다. 불효자식은 늘 부모의 마음에 근심과 고통을 안겨드리지만, 효도하는 자식은 늘 부모님의 마음에 즐거움과 기쁨을 안겨드리는 것입니다. 맹자는 다섯 가지의 불효를 말했습니다. 첫째, 게을러서 부모님을 돌보지 아니함이요. 둘째, 도박과 술 때문에 부모님 받드는 일에 게을리 함이요. 셋째, 돈과 처자만 알고 부모님을 받드는 일에 게을리 함이요. 넷째, 눈과 귀의 만족에 급급하여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일이요. 다섯째, 싸움질 잘하고 성질이 사나와서 부모님을 근심되게 하는 일이 바로 불효라고 했습니다.
요셉처럼 자신을 죽이려하다가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을 22년 만에 만났지만, 보복하지 않고 다 용서하여 형제끼리 화목하게 사는 것도 봉양의 효입니다.(창45:15; 창 50:19~21).
부모의 소박한 기대에 어긋나지않도록 노력하는 것, 부모에게 심려를 끼쳐드리지 않는 것, 부모가 기뻐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 어버이 날이나 생신 기억 축하 선물을 하는 것,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부모와 같이 시간 보내는 것, 부모님이 병환이 났을 때 즉시 최선을 다해 보살피는 것, 가능한 부모가 원하는 것을 최선을 다해 해 드리는 것 등 다 공양의 효입니다. 봉양의 효는 어릴 때부터 흉내를 내어서라도 가정에서 배우고 생활화되고 체질화되게 해야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닙니다.
효도는 자녀의 본분이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효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창조질서의 근원입니다. 신앙인이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딤전5:4) 인간 중심의 효도가 아니라 하나님 경외의 효입니다. 주 안에서 효입니다. 믿지 않는 부모님이 계시다면 복음을 전하여 같이 천국에 가야 합니다. 지옥의 형벌을 받도록 침묵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룻 역시 모압 여인으로 유대인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심으로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룻은 흉년이란 재난에, 남편과 아들을 잃은 불행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며느리, 룻은 지극 정성으로 시어머니, 나오미를 공경했습니다. 밭에 나가 이삭을 주어다가 시어머니를 봉양하였습니다. 그 결과 보아스라는 덕망 있는 남자와 재혼하게 되었고 다윗 왕의 증조모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개처럼 취급받던 이방 여인이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되었고 메시아의 조상이 된 겁니다(마1:5).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땅에서 잘되고 장수합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는 모든 성도님의 가정은 우선순위로 순종의 효, 공경의 효, 봉양의 효를 실천함으로 참으로 건강하고 잘 되는 삶의 축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4.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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