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않는 영적 자원
시편23:1-6
오늘은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날인데 우리 어린이들이나 학생들은 양념 치킨 요리를 좋아할 것입니다. 맛있는 치킨 요리로 성공한 사람의 대표주자는 커넬 샌더스라는 사람입니다.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KFC)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현재 80개 이상의 국가에서 2만 4천 개 이상의 매장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회사의 창업자는 커넬 샌더스 할아버지인데 이분이 몇 살에 이 회사를 만들었을 것같습니까? 65살에 창업하였다고 합니다. 65살이면 우리나라에서 노년 초기라고 합니다. 그때부터는 노령 연금도 주고 전철도 어르신 교통카드를 주어 전철을 공짜로 타고다니게 하고 국립공원도 무료로 입장하게 합니다. 그도 모든 일에 실패하고 사회보장연금 105달러로 살고 있었답니다. 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3살짜리 남동생과 어린 여동생을 스스로 돌봐야만 했답니다. 커넬이 12살 때, 그의 어머니마저 재혼하게 되었답니다. 40살에는 아들이 죽는 슬픔을 겪게 되었답니다. 사업은 망했고 정신병까지 앓고 정신병 때문에 결국 사랑하던 그의 아내마저도 그를 떠나 버리게 되었답니다. 절망과 낙심과 상처 속에 괴로워하고 있던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어디선가 노래소리가 들려오더라는 것입니다. 그가 따라가 보니 조그마한 교회 예배당이었답니다. 그 예배당 앞에 어떤 한 미친 여자가 앉아서 너무나 평화롭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너 근심 걱정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를 부는 것입니다. 커넬 샌더스는 그 여자 옆에 앉아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이렇게 고백했답니다.
"주님, 이곳에도 주님이 계시는군요. 미친 여자가 있는 바로 이곳에도, 주님은 계시는군요. 제가 평생 예수님 없이 돈만 벌려고 하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세요." 사람이 어떤 사건을 접할 때 객관적인 현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관적인 현실입니다. 자신이 사건에 대하여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집니다. 이것이 객관적 현실보다 더 중요합니다. 똑같은 사건을 당해도 사람마다 다 저마다 다른 경험을 합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개인의 인생관, 세계관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 전체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구성주의라고 합니다. 존 밀턴은 “마음은 자신만의 장소이며 제 스스로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고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인생의 근본적인 마르지 않는 영적 자원으로 삼고 사는 사람은 어떤 경우든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샌더스는 한참 동안 울며 회개의 기도를 하다가 그는 정신병이 나았고 길거리에서 KFC라는 간판을 붙여 놓고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판매를 시작했는데 이게 불티나게 팔렸답니다.
돈이 아니라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들 생각하며 음식을 만들었답니다. 그는 가난하고 불쌍하고 소외된 수많은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고,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비로 수익금의 많은 부분을 사용하였답니다. 사업에 성공한 후에는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다니며 자기의 삶을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신 살아계신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였고,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어 삶의 진정한 행복과 영원의 축복을 소유하게 되기를 권고하는데 남은 인생을 살았답니다. 그는 다니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늘 이사야서 50장 15절의 말씀을 이야기해 주었답니다.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이사야5:15)” 인생을 살면서 참 만족을 주는 마르지 않는 영적 자원은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전한 것입니다.
오늘 시편 23편을 쓴 다윗도 수많은 실패를 했습니다. 다윗은 어릴 때 목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나라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블레셋이라는 나라가 이스라엘을 쳐들어온 것입니다. 형들이 군인으로 전쟁터에 나갔는데 아버지가 형들의 안부를 알기 위해 다윗에게 양식을 주면서 그것을 장교 천부장에게 가져다주고 증표를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보니까 거인 골리앗이 나와 이스라엘을 모독하고 하나님을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사울 왕의 시기를 받아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여러 차례 암살시도를 했습니다. 직접 창으로 찔러 죽이려 했습니다. 자객을 다윗의 집에 보내어 죽이려 했습니다. 도망간 다윗을 수천 명의 군대를 이끌고 직접 찾아가 죽이려고 했습니다. 10여 년 동안을 수배자가 되어 도망 다녀야 했습니다. 적진 블레셋으로 들어가 미친체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다 사울왕이 전쟁터에 나가 죽자 그가 왕이 되었는데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를 쫓아내었습니다. 믿었던 부하들이 압살롬 편에 섰습니다. 왕궁과, 재산, 권력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다시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결국 다윗은 다시 회복되어 왕위에 올랐는데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다윗은 오늘 시편을 통해 어떤 고백을 합니까?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나님이 자신의 마르지 않는 영적 자원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던 샌더스도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이사야5:15)”라고 하나님이 자신의 마르지 않는 영적 자원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물질도 우리를 만족하고 행복하게 하는 마르지 않는 자원이 될 수 없습니다. 때가 되면 다 떠나는 것들입니다. 기술도 우리를 만족하게 하는 마르지 않는 자원이 될 수 없습니다. 정신력도 우리를 만족하게 하는 마르지 않는 자원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참으로 평생동안 만족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영적 자원은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실패했다고, 가난하다고, 병들었다고, 실수했다고, 범죄했다고, 늙었다고, 배운 것이 없다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고, 능력이 없다고 낙심하고 포기하며 불평과 원망으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없을지라도 수없이 실패했을 지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우리에게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남아 있는 링컨을 보십시오. 그는 가난한 구두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학교를 1년도 채 다니지 못했고, 9살에 그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23살엔 직장을 잃었습니다. 24살 회사를 차려 사업을 했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도산했습니다. 24살의 도산으로 17년 동안 빚에 시달렸습니다. 26살엔 사랑하는 여인을 백혈병으로 잃었습니다. 27살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상실로 신경 쇠약과 정신분열증으로 정신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29살 주의회 대변인 선거에 도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 이후 그는 선거에서만 모두 6번 떨어졌습니다. 31살 정부통령 선거위원, 34살 하원의원 선거에서, 39살 하원의원 선거에서, 47살엔 부통령 선거에서, 49살엔 상원의원 선거에서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는 공식적으로만 27번 실패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20세에 사랑하는 누나가 죽었습니다. 42세에 5살인 둘째 아들이 이 땅을 떠났습니다. 54세에 셋째 아들이 11살에 죽었습니다. 63세에 넷째 아들이 19세로 천국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실패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51살 미합중국 16대 대통령 당선되었습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링컨에 대하여 "역사상 위대한 영웅들과 위인들이 많이 있었지만 진정한 거인은 링컨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링컨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링컨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자로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인생을 버티게 하는 마르지 않는 자원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기도를 들으며 자랐고, 아침이면 신선한 공기를 마시듯 기도로 시작했고 저녁이면 기도로 하루의 일과를 마감했다고 합니다. 그는 포성 속에서도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는 기도로 실패와 고난을 이겨낸 것입니다. 링컨은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시34:4)."라는 말씀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마르지 않는 자원으로 삼고 일평생을 산 것입니다.
마르지 않는 영적 자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우리에게 참 만족을 주시는 목자이십니다(1)
1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양에게는 다른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한 가지 목자만 있으면 만족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양은 다른 동물과 달리 자기를 방어할 수 있는 무기가 없습니다. 이빨이나 뿔이나 독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양은 넘어지면 혼자 일어나지 못한다고 합니다. 때때로 양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있으므로 해서 숨이 막혀 죽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양에게는 오직 목자만 있으면 됩니다. 선한 목자만 있으면 됩니다. 양은 목자를 따르기만 하면 부족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목자가 있는 곳에는 양식이 있고 푸른 초장이 있고 쉴만한 물이 있고 인도와 보호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십니다. 사막의 뜨거운 태양열을 피하여 쉴 수 있는 그늘진 곳, 휴식처, 생존과 직결되는 푸른 초장에서 먹고 쉴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목자는 양들을 잔잔한 물가로 인도함으로써 안전히 쉴 수 있게 해줍니다.
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목자되신 여호와께서 영혼을 회복시키시고, 평탄의 길, 형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범죄하여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하여도 소생시켜 줍니다. 밧세바를 범하여 절망적인 상황에 있었지만 그를 소생시켜 주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도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아들 망신은 곧 아버지 망신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한 분으로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개인적인 진솔한 고백이 되시길 바랍니다. 내가 나의 목자시니, 자본이 나의 목자이고, 쾌락이, 명예가, 권력이 나의 목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된다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자본주의가 기본적으로 탐욕이라는 호르몬으로 움직이는 제도요 체제이고 모두가 돈은 나의 목자시니라고 외친다해도 우리는 진실하고 정직하여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미국의 기독교 출판 협회가 주는 기독교 작가 금상을 두 번이나 받은 작가 맥스 루케이도는 현대인들은 자신이 목자가 된다고 풍자하면서 시편 23편을 이렇게 패러디하였습니다. “나의 목자는 나 자신이니 언제나 부족하리로다. 내가 이 백화점에서 저 쇼핑센터로. 이 병원에서 저 요양원으로 안식을 찾아 헤매고 다니나. 결코 안식을 얻지 못하리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기어 다니며 안절부절 하는 도다. 구충제에서부터 전선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두려워하며 어머니의 치마 고리를 잡고 늘어지기 시작하리로다. 매주 열리는 직원회의에 들어갈 때마다 적들이 나를 둘러 쌀 것이며, 집에 돌아간다 해도 하찮은 금붕어 까지 찌푸린 얼굴로 맞을 것이다. 내가 강력 진통제로 두통에 찌든 머리에 기름을 부었으니, 독한 술이 내 잔에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정녕 고통과 불행이 나를 따르리니 죽는 날까지 신에 대한 회의 속에서 영원히 거하리로다.”
다윗은 40년 동안 모든 권한을 누려본 사람입니다. 그의 고백이 여호와만 자신의 목자로 만족을 줄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 어거스틴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와 "하나님이여, 당신은 당신을 위하여 우리 인간을 지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당신 품에 안기기 전에는 참된 만족도 참된 평안도 없었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만족을 누리기 위해 남편 다섯이나 바꿀 정도로 헤맨 여인에게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도 빌립보서 4:11 이하에,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여호와를 목자로 삼을 때 참된 만족이 있습니다. 우리의 목자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죄악의 수렁에서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 평탄의 길, 형통의 길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마르지 않는 영적 자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2.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참 자유를 누리게 해 주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4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와는 전혀 다른 자칫 잘못하여 발을 헛디디면 천길 낭떨어지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을 수 밖에 없는 위태로운 골짜기입니다. 죽음의 위협이 있는 골짜기입니다. 사나운 짐승이 목숨을 노립니다. 사망은 인생의 최대의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목자만 있으면 양은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기 때문입니다. 목자되신 하나님께서 어디로 가든지 항상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기 때문입니다. `지팡이'이로 인도해 주고 `막대기' 맹수의 공격을 방어해 주기 때문입니다. 목자되신 하나님께서 인자하고 섬세한 손길로 인도하시고 위급할 때는 권능의 팔로 돌보와 주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으로 모든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 참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다윗은 힘이 있는 왕입니다. 40년 간 입법 사법, 행정의 권한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린 왕입니다. 얼마든지 스스로 살 수 있다고 고백할 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직 여호와가 자신의 목자가 되어 사망의 골짜기에서 인도하시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사울로부터 죽을 고비를 얼마난 많이 겪었습니까? 아들이 반역하여 죽음의 위기에 처합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함으로 치명적이 위기를 겪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때 그때 그를 보호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들이 즐비하게 있습니다. 때로는 범죄하고 실수하고 절망 가운데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다윗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참 목자가 되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에게 새생명을 주신 예수님은 분명하게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실패의 현장에도, 질병의 현장에도, 가난의 현장에도, 죽음의 현장에도 우리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모든 자원은 다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마르지 않는 영적 자원인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죽음의 현장에서도 떠나지 않습니다. 아무도 돕는 사람 없다고 끝났다고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죽음 만이 문제의 답이라고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진정한 답은 우리 하나님께 있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 한 분으로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마르지 않는 영적 자원인 하나님은 다윗의 피난처가 되어 주었고(시편 31:1), 다윗의 바위와 요새(시편 31:3)가 되어 주었습니다. “내가 어둠 속에서 해멜때에도 주님은 함께계셔 내가 시험 당하여 괴로울때도 주님은 함께계셔 내가 은밀한 곳에서 기도할때도 주님은 함께계셔 내가 아무도 모르게 선한일할때도 주님은 함께계셔 힘이 없고 연약한 사람들에게 주님은 함께계셔 세상 모은 형제와 자매들에게 주님은 함께계셔 기뻐한양하네 할렐루 할렐루야 할렐루 할렐루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마르지 않는 영적 자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3.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왕이십니다.
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목자와 양의 관계로 노래한 다윗은 이제 하나님을 풍성한 잔치를 베풀어 주시는 왕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신하에게 승리의 잔치를 베풀어주시는 왕입니다.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풀어 주십니다.
전쟁에서 승리하여 돌아온 장수에게 포로들 앞에서 전쟁 승리를 축하하며 잔치를 베풀어 주는 장면입니다. 다윗의 주변에는 그의 생명을 노리는 대적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대적들을 물리쳐 주시고 승리하게 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베푸시고'란 미완료 시재로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계속적으로 베풀어 주셨다는 말입니다.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습니다. 당시 귀족들은 잔치에 참여할 때 이 기름을 머리나 수염 등에 발라 주었는데 이것은 주인의 극진한 친철과 호의를 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매우 존귀히 여기셨다는 말입니다.
내 잔이 넘쳤습니다. 잔치가 시작되어 주인이 술을 잔에 가득 담아 호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이 잔은 다윗에게 허락하신 기업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은혜의 풍성함을 말합니다. 그가 차지한 왕실의 재산과 사유 재산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대상 27:25-31; 29:2-5).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집'은 일차적으로 예루살렘 성막을 말하고 있지만 영원한 하늘나라에 거할 것을 사모하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생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영적 자원인 여호와를 목자로 삼고 살면 하나님의 은총으로 평생 풍성한 은혜의 삶을 눌 수 있습니다.
모든 은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한스 카르스는 "목자가 양을 선택한 것이지 양이 목자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15:1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자로 오신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이 삼십백, 60배, 100배의 결실을 얻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 4:19)"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약 1:5에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했으며, 빌 4:13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도 여호와를 목자로 삼아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품 받고, 잔이 넘치고, 여호와의 전에 영원히 거하는 은혜를 누려야 하겠습니다.
우리 인생이 아무리 힘들어도 다윗에 비하면 그리 힘든 상황이 아닐 것입니다. 오랜 세월 장인에게 쫓겨다니면 죽음의 위기를 겪었습니다. 아들이 배신하여 왕위에서 쫓겨났습니다. 부하의 아내를 차지하고 부하를 죽여 자식이 죽고 죄로 말미암이 한 때 심각한 수치를 겪었던 사람입니다. 결혼한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가버렸습니다. 자신의 부하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자신이 낳은 아들 딸이 간음을 하고 형제끼리 죽이는 일을 겪었습니다. 자식이 전쟁터에서 죽는 일을 당한 사람입니다. 대부분 이 정도의 사건을 겪으면 트라우마 속에서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하거나 실제로 자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마르지 않는 분명한 영적 자원인 목자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습니다.
원하지 않게 경상도로 직장이 옮겨도 "여호와가 내 목자 아이가! 내사 마 답답할 끼 없데이"하고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전세금이 없어 충청도로 이사 가도 "여호와는 염생이 같은 지를 키우시고 멕이시는 분이시니 지가 부족한 것이 없네유."라고 고백하고 당당하게 주님과 함께 참 만족을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노후 생활 안전하지 못하여 고향 땅 전라도에 내려가도 " 아따! 여호와가 시방 나의 목자신디 나가 부족함이 있겄냐?"라고 한 평생 만족하며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목자가 아닙니다. 남편의 목자, 아내의 목자, 자식의 목자만이 아니라 여호와만이 나의 목자이어야 합니다. 돈도 권력도 명예도 지식도 나의 영원한 목자가 될 수 없습니다. 짧은 시이지만 우리 번역에 '나'와 관계된 말이 14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나의 목자이신 여호와는 우리 인생을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양들은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가장 적합한 길로 목자는 인도해 주십니다. 목자는 전체를 보고 인도합니다. 적국에 들어가 미친체하고 온 가족이 포로로 잡혀가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인도해 주십니다. 나의 목자이신 여호와는 안위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팡이'이로 인도해 주고 `막대기' 맹수의 공격을 방어해 주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범죄하고 실수하고 절망가운데 있을 지라도 우리 하나님이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나의 목자이신 여호와는 승리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려운 일이 앞에 있다고 하나님이 안계신 것처럼 낙담하고 좌절하며 원망과 불평으로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질의 자원도, 건강의 자원도, 정신적인 자원도 세월이 흐르면 마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자원인 우리 하나님은 아무리 퍼내어도 아무리 세월이 많아 지나가도 마르지 않는 샘과 같습니다. 영적 자원이신 우리의 목자 하나님 안에 우리 삶의 뿌리를 내릴 때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같이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을 것입니다. 브라질 출신의 찬양사 중에 알다 셸리아라고 하는 자매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시골에서 태어나서 농장에서 자란 그런 자매인데요 나중에 예수님 만나고 미국에서 온 선교사님 만나서 결혼을 하고 선교사의 부인이 되었답니다. 결혼하고 약 7년 동안 그런 많은 고통의 시간을 보냈답니다. 마음도 너무 힘들었고 육체적으로도 아픈 부분이 너무 많아서 7년 동안 아기가 생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수술도 해보고 약물치료도 받아보았는데 다 했지만 안 되었답니다. 그러는 어느날이 자매님이 이사야 54장 말씀을 읽다가 이런 말씀을 보게 됩니다.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사54:1)” 이걸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떠지더라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렸답니다. 잉태하지 못했으니 탄식하고 울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잉태하지 못한 노여 노래하라라는 말씀을 붙잡고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을 매일 3-4페이지 적어 내려갔답니다. 마치 하나님 말씀을 래퍼 같이 노래하면서 적어갔는데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답니다. 마음에 있는 질병이 다 떠나갔답니다. 상실되었던 마음에 기쁨이 다시 회복되고 육체의 연약함이 치유가 되어지면서 아기를 잉태하게 되었답니다. 나중에 아들 딸 둘을 낳게 되었답니다. 그 자매님이 고백한 찬양이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능치 못하실 일 전혀 없네”입니다. 불가능의 산 앞에 우리는 머물지만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게 하시는 우리의 마르지 않는 인격적인 영적 자원입니다.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능치 못하실 일 전혀 없네 우리의 모든 간구도 우리의 모든 생각도 우리의 모든 꿈과 모든 소망도 신실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괴로움 바꿀 수 있네 불가능한 일 행하시고 죽은 자를 일으키시니 그를 이길 자 아무도 없네 주의 말씀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 던져 오늘 그가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것 보라 주의 말씀 의지하여 믿음으로 그물 던져 믿는 자에겐 능치 못함 없네”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 공부하고 전라남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목회를 하다가 중국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선교를 하고 있는 김요석 박사의 간증입니다.
튀빙겐 대학에 라틴어를 가르치던 한 노교수님이 계셨답니다. 언어능력이 뛰어나 10개 국어를 했답니다. 히브리어도 유창하게 잘하셨는데 하루는 한 제자가 그 연유를 물었답니다. 그러자 교수님은 40여 년 전, 세계대전 때 있었던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었답니다. 당시 유대인 친구와 함께 기숙사에 살게 되었는데, 그 친구는 "아도나이 로이 로 에흐사르"를 중얼거리며 외웠답니다. 유대인들은 말을 배울 때에 이 시를 암송하고, 죽을 때에 이 시를 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어보니까 '시편 23편'을 히브리어로 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시편 23편을 히브리어로 암송했답니다. 그런데 유대인 박해가 시작되었고 나치 비밀경찰에 잡혀 갔는데 자전거를 타고 친구가 끌려가는 것을 뒤쫓아갔는데 친구는 트럭 뒤로 웃는 얼굴로 내밀고 "아도나이 로이 로 에흐사르"를 외치더라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교수님도 군대에 징집되어 러시아 전투에 파병되었다가 포로로 잡혔답니다. 다른 전쟁포로들과 같이 총살당할 위기에 처했답니다. 모두가 죽음의 공포로 울부짖었지만 교수님은 가스실로 끌려가면서도 평온한 얼굴로 웃으며 시편 23편을 외우던 친구가 생각이 났답니다. 동료들이 하나, 둘, 총알에 쓰러지고 드디어 교수님의 차례가 다가왔을 때 서서 총을 겨누고 있는 군인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물었답니다. 그때 교수님은 잠시 눈을 감고 시편 23편을 히브리어로 암송했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 그러자 러시아 장교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 교수님과 함께 시편 23편을 히브리어로 외우기 시작했답니다. 그도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인이었던 연합군 장교의 눈에서도 뜨거운 감격과 감동의 눈물이 흘러내렸답니다. 결국 교수님은 목숨을 잃지 않고 무사히 풀려날 수 있었답니다. 하나님은 음침한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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