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를 넘어 확신으로(11)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롬8:28)
오래 전에 미국에 사시다가 여러 가지로 실패하고 한국에 돌아와 우리 교회에 나오신 성도님이 계셨습니다. 몇 년 동안 교회에 잘 다니셨는데 어느 날 저를 찾아 왔습니다. 서울로 이사를 하여 교회를 옮겨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이 교회를 몇 년 다니면서 되는 일이 없었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하셨는데 신앙생활 열심히 했고 기도도 했는데 모든 것에 되는 일이 없는데 합력하여 무슨 선을 이루어 주시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기도로 고질병과 불치병이 치유된 113인의 체험담(신상래 엮음)>이라는 책에 보면 현대 기독교인들은 고질병과 불치병이 기도로 치료될 것으로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경의 경이로운 사건들을 접하면서, 자신에게도 이런 기적과 이적이 일어났으면 하고 기대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도로써 고질병이나 불치병이 치유될 수 있다고 믿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기도로 질병을 치유한다는 것은 성경에나 나오는 이야기일 뿐, 현대 시대에도 일어나는 일이 거의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꿈을 깨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차가운 현실을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은 과거나 현재나 동일하신 분으로 지금도 기도를 통하여 고질병과 불치병을 치유하고 있다고 하면서 전신마비 환자, 뇌경색, 알츠하이머, 당뇨병, 암, 터너 증후군, 불면증, 공항장애, 조현병, 무기력증, 아토피, ADHD, 만성 두통, 자가면역 질환 등 113명의 실제 인물이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받은 간증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 책 맨 처음에 소개된 집사님은 2021년 4월 25일 고혈압으로 인한 뇌간출혈로 쓰러졌답니다. 상세 불명의 사지마비, 삼킴곤란(연하장애), 복시(물체가2개로 보임), 경도 인지장애(치매 전단계의 증상), 신경성 방광의 기능장애, 고혈압이 왔다고 합니다. 이러한 참기 어려운 몸과 정신의 불편함과 고통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회복에 대한 두려움과 더 안 좋아질지도 모른다는 회의감과 불안감,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답니다. 그런 가운데 영성 훈련을 받고 기도하는 가운데 가장 먼저 마음의 평강을 얻었답니다. 지긋지긋하던 오만 가지의 두려움, 염려, 걱정이 싹 걷히고 너무도 평안한 매일매일을 살고 있답니다. 그리고 몸의 균형 회복되고 청각도 예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회복되어 대화에 큰 어려움이 없게 되었답니다. 복시 문제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많이 회복되었고 여전히 회복돼야 할 후유증이 많지만, 이제는 내 육신의 회복은 선하신 하나님께 맡기고 영혼 구원 사역의 용사가 되기 위해 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고 있다고 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인이 원하는 대로 안되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서도 금방 교회 나오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회의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짧은 말씀이지만 오늘 말씀 들으면서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회의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여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지속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능력 있고 희망차게 신앙 생활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성도님은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라는 말씀을 믿습니까?
1. 우리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1) 합력하여 선을 이루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직역하면 ‘모든 것이 선을 위해 함께 역사한다’하는 말입니다. 즉 만물 또는 모든 일이 선을 목표로 하여 협조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선은 인간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 같은 성공이나, 모든 것이 잘 되는 만사형통과는 다른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일반적이고 피상적인 낙관주의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상대적인 선도 아닙니다. 예수님과 부자 청년과 대화에서(마 19장, 막 10장, 눅 18장)에서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만이 선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선이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의에 부합되는 것만이 선하다는 말씀입니다. 선과 악의 기준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의도하심이 나타나는 것이 선입니다. 하나님의 의에 합당하면 선이고 그렇지 않으면 악입니다. ‘부르심’은 목적과 계획을 의미하는데 헬라아 ‘선(아가토스)’는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토브’ 역시 하나님의 목적과 관련이 깊습니다. 토브가 창세기 1장 4절에서 처음 사용되는데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은 창조의 결과가 하나님의 계획하신 것과 일치하였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유익이나 행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은 하나님의 영원한 선한 목적과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합니다.
2) 당시 로마서를 받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로마서를 기록한 때는 57년 경으로 봅니다. 네로가 황제가 된 해는 54년입니다. 로마서를 받은 때는 본격적인 네로의 핍박은 없었지만 그래도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이 많은 핍박을 받고 있었을 때입니다. 오늘 말씀은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18상)”과 문맥이 연결되고 있습니다. 35절에 보면 환란,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 등이 나옵니다. 모든 피조물이 죄의 저주에서의 탄식과 고통을 말씀합니다(롬8:22). 26절에서는 성령이 탄식을 말씀합니다. 네로 황제가 64년부터 본격적으로 기독교인들을 박해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일을 때 신앙인들을 예수님을 믿는다는 한 가지 사실로 많은 어려움을 당했을 것입니다. 네로는 기독교인을 방화범으로 몰아 십자가 형에 처하고 사자 밥이 되게 하는 혹독한 핍박을 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정원에 신앙인을 매달고 타르를 흠뻑 적신 후 불을 붙여 저녁 산책을 위한 불을 비추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런 환경에 살던 사람들이 이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어 주신다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요?
문맥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지향하시는 궁극적인 ‘선’은 로마서 8:29-30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정하신 우리를 부르시고, 부르신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하도록 퍼즐을 맞추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롬 8:29)” 결국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통하여 이루고 싶어하시는 것은 우리들의 성장과 성숙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계획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계획이 차질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선”이란 인간이 당장 보기에 좋다고 여기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시는 최종적인 선 곧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의미합니다. 빌립보서 1:6절에서,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하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이 “선”을 이루어 나가신다는 말씀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은 어느 한 부분이나 과정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최종적인 결과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21,22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마지막이 사망이고 어떤 사람은 마지막이 영생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실패하는 것 같고, 망하는 것 같아 보이나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하나님의 뜻인 개인적인 구원사인 미리 아심, 미리 정하심, 부르심, 의롭다 하심, 영화롭게 하신 등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고난과 순교를 통해 하나님의 선하신 구속사적 목적을 성취해 가신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50여년전 미국 선교사 5명이 아우카 인디언으로 알려진 악명높고 거친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에콰도르의 오지로 갔습니다. 5명의 선교사는 도착민들의 창과 칼에 순교를 당했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짐 엘리엇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엘리엇과 또 다른 순교한 선교사 네이트 세인트의 누이인 라헬 새인트가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여 아우카 인디언들이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복음이 전해질 때 토마스 선교사는 대동강 강변에서 복음을 전하지도 못하고 순교 당하는 순간에 품고 있던 성경을 던짐으로 우리나라에도 복음이 전달되었고 수많은 교회가 세워지는 기반을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잘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사를 이루어가는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3)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좋은 환경이나 나쁜 환경이나 결국은 하나님께서 선으로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은 유익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때로는 실패가 유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병듦이 유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17살에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이 인신매매 하게 되었고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10여년의 종살이 한 결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3년 동안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신앙고백은 무엇입니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 45:5)”라고 합니다. 요셉은 모든 사건들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의 손이 있다는 점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라고 고백합니다.
세상이 거꾸로 가든 바로가든 돌아서 가든 간에 여기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인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구원의 계획이 차질 없이 이루어질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성취한다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의 모세는 애굽인을 살해하였습니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사람을 죽이는 일을 좋은 일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사건을 통해서 모세를 광야로 보내시고 그곳에서 훈련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의 배후에서 그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 백성들에게 유익이 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 순간 한 순간이 이해할 수 없더라도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바나바와 심하게 다투었던 일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어디에도 성도 간에 얼굴을 붉히며 말다툼을 하는 것을 옳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서 선교팀을 두 팀으로 만드시고 일하게 하십니다.
스웨덴의 페트로라는 어부가 겪은 이야기입니다. 페트로도 아들과 함께 배를 몰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풍랑으로 배들이 돌아와야 할 시간에 돌아오지를 못했습니다. 온 동네 아낙네들과 아이들이 바닷가에 나가서 남편 혹은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밤은 점점 깊어지고 파도소리 외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때에 설성가상으로 어느 집에서 어린아이가 집을 보다가 촛불을 넘어뜨려 불이 났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합심하여 이 불을 끄느라고 남편, 아버지를 기다리는 생각은 다 잊어버리고 물동이를 동원해 정신없이 몇 시간을 싸우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는 중에 배가 돌아왔습니다. 무사히 풍랑을 이기며 돌아온 것입니다. 돌아온 페트로가 말하기를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웬 불인지는 몰랐으며 어쨌든 불이 보여서 그 불을 바라보고 결국 집에까지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 집에 불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 배는 무사히 돌아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왜 불이 나야 했는지, 왜 아파야 하는지, 왜 고난을 당하여야 하는지, 왜 내가 손해를 봐야 하는지, 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해야 하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합력하여 선하심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을 확신하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한 과정만을 보고 낙망해서는 아니 됩니다. 당장 눈앞만 보며 원망하고 불평하고 실망하지 말고 멀리 그날을 내다보는 원시적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2. 우리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모든 것(판타)”은 글자 그대로 “모든 것”입니다. 모든 것 속에는 원치 않는 고난, 무력함, 연약함, 고난과 환란, 부정적인 것, 역경, 실패등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 자체로서는 해로우나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탁월한 활동을 통해 이롭게 사용되는 것들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모든’에는 작은 일도 포함됩니다. 잠언 16장 33절은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동전을 던지는 것조차 하나님 계획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모든)에는 ‘나쁜 일’도 포함됩니다. 세상의 악은 하나님이 원래 계획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음, 질병, 죄, 그리고 부패는 죄의 일시적인 결과입니다(롬8:18-23). 우리가 고난당할 때 하나님도 괴로워하시고(사63:9), 우리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도 슬퍼하십니다(시56:8).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러한 곤란, 슬픔, 그리고 고통마저 하나님의 계획대로 엮어 가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획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선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롬8:28).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29)”. “여호와의 행하심이 없는데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암3:6).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사45:6-7).” 여기 모든에는 ‘죄’들도 포함됩니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죄들은 여기서 말하는 “모든 일”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만일 우리의 죄들이 하나님의 계획에서 빠진다면 남는 것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시편 76편 10절은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다시 말해 하나님은 악하고 폭력적인 사건들조차 뒤집고 조종하셔서 하나님 백성의 선과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운명론이나 숙명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연성이나 결정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책임져야 할 선택을 하지만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절대 주권 하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장자권을 훔쳤습니다. 그 결과 그는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고난과 불의를 겪어야 했습니다(창27:1-28:5), 하지만 그곳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하고 자녀들을 낳았는데 바로 그 후손들 가운데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창29:16-30:24). 여기에도 수많은 죄로 물든 욕망과 행위가 연루되어 있습니다. 비록 야곱이 죄를 지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원래 그에게 주시고자 한 삶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모두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 가운데 일부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죄를 결과적으로 선이 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렇다고 야곱에게 죄에 대한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야곱은 자신의 어리석은 행위의 대가를 삶으로 지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확실하다 하더라도, 지혜롭게 행동하고 올바르게 선택할 책임이 사람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구속사에 있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십자가사건입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그의 악한 선택은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사건 자체는 비참한 것이며, 저주의 십자가였고, 악의 극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자가사건을 통해서 죄인이 의인이 되고, 사탄의 노예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지옥에 떨어져야할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놀라운 선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을 박은 사건이 인간이 저지른 “악”의 극치였다면, 하나님의 구속사역은 “악을 선”으로 바꿔 놓으신, “선”의 극치였던 것입니다.
모든 것은 예외 없이 다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우연이 없습니다. 창세기 24장에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아브라함의 며느리를 구하러 아브라함의 고향으로 갔습니다. 우물에 가서 아브라함의 종이 기도합니다. 물을 길러 오는 소녀가 나오면 물을 달라고 하면 물을 마시게 하면 바로 그 소녀가 아브라함의 며느리가 돌 자가 된줄 알겠다는 기도였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리브가가 옵니다. 물을 달라고 하자 자신과 나귀에게 물을 길러줍니다. 그래서 그 여인이 이삭의 아내가 됩니다. 물길러 온 것이 우연같이 보이지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겪은 건강도, 질병도, 성공도, 실패도, 어떤 고난도 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를 통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누구에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까?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입니다.
알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알다(오다이멘)’은 세상적 지식으로 부분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자신이 드었고 보았고 경험한 완전한 지식을 말합니다. 노아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모세와 베드로와 바울과 같이 그들의 인생에 개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을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도 반박할 수 없을 만큼 너무도 분명하고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26중)”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어떤 시련을 당하게 될 때에, 우리는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그 원인은 알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거니와”, 즉 내가 확신하는 것은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일하여 선을 이룬다(28하)”하는, 결과만은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과 지혜 안에서 선한 목표를 향해 집중되며 기여하게 된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안다는 것입니다.
누가 안다는 것입니까? 아무나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만 해당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곧’이라는 말로 연결되어 동격처럼 보이지만 원문은 구분되어 있습니다.
1)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아는 자들입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갑니다. 순종하였습니다. 그런데 큰 풍랑이 일어납니다. 죽게 되었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예수님께서 바다를 잔잔케 해 주십니다. 베드로와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갑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좋은 일하다 감옥에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십니다. 경험적으로 하나님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악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자들입니다. 주님이 먼저 부른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부르신 것을 안 것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아 알고 있는 사람은, 병이 들어도 고난을 받아도 죽어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결과는 선하게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아브라함이나 야곱이나 모세나 다윗이나, 베드로나 요나나, 욥이나 바울이나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게서 구원하기 위해 부르시는 사람들을 부르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지금은 내가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 지도 모르고, 또 빌 바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결과는 선을 이루어주실 것이라는, 이것 하나만은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다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끝없이 신뢰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붙들고(요14:23) 하나님 곁에 늘 같이 있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고 싶어하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욥과 요셉은 무고하게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도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도 고난의 용광로를 통과했습니다. 그들이 당한 고난을 우리가 당한다면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성경은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다고 말씀합니다. 요셉은 속박이 없이는 구원이 없음을 보여주고, 욥은 질병이 없이는 치유가 없음을 증명하며, 요게벳과 나오미는 불행을 모르면 기쁨이 없음을 알려줍니다. 바울은 로마서 전체에 걸쳐 악이 없이는 선을 깨달을 수 없고, 죄가 없이는 의로움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믿는 자로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그것은 분명 우연도, 무의미한 것도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난 인물과 사건을 통해 만유의 하나님의 주권은 우리의 모든 환경에 목적이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4. 우리는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하심을 이루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누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까?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우연히 확률적으로 자연이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계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첫째, 성령님께서 탄식하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한글 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지만 28절 앞에 ‘데’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라는 말입니다. 27절을 받는 말입니다.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성령님만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님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29절의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라고 말씀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31절에 “누가 대적하리요”하는 말씀에 나타나 있습니다. 능력이 없다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는 없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은 사랑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32절의 “자기 아들을 내어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사랑의 하나님께서 결국은 선을 이루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39절을 보십시오.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게 끊을 수 없습니다.
다섯째, “시작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하나님이 미리 정하시고, 하나님이 부르시고 하나님이 의롭게 하시고 하나님이 영화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한번 시작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고 말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계획하셨고, 사랑의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취해 나가신다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확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이 있게 때문에 우리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확신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불행이나 역경, 고통도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선한 계획과 목적을 무산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사용하여 우리를 아시고, 예수님을 본받게 하고 부르시고 의롭게 하시며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 고통이나 슬픔, 실패나 질병 그 자체가 영광일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 인격을 영화롭게 만들기 위해 그 모든 것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오묘하고 놀라운 섭리 안에서 선하게 이루어 가실 것을 확신하시길 바랍니다. 32절을 보십시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고의 선물인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고난을 넉넉히 이기는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 주십니다. 아버지의 축복을 속여받고 라반을 속이면서까지 축복에 집착했던 야곱이지만 하나님은 그 과정까지도 사용하여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이어받아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 만드셨습니다. 의분으로 살인죄를 짓고 도망간 모세였지만 하나님의 그 모든 것을 선하게 사용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키는 지도자로 삼았습니다. 남편과 아들을 잃고 슬픔을 당한 여인 나오미였지만 하나님은 그 과정을 선하게 사용하여 며느리 룻이라는 여인을 통해 위로해 주며 메시아의 조상으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를 잡아 감옥에 넣는 핍박자 바울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열정을 선하게 사용하여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일찍이 부모를 잃은 고아같은 에스더였지만 하나님은 그녀를 왕비로 세워 유대 민족을 살리셨습니다. 젊은 나이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을 통해 하나님은 이방 나라에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알려 주었습니다. 우리는 때로는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실직할 수도 있습니다. 사별할 수도 있습니다. 질병에 걸리 수도 있습니다. 고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장애를 앓고 질병을 앓을 수도 있습니다. 이해 못할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확신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마지막 가는 곳은 천국입니다. 37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믿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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