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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를 넘어 확신으로(10) 이렇게까지 섬길 수 있다고?(마태복음20:28)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56217 추천수:3 218.155.63.46
2024-04-07 17:17:37

회의를 넘어 확신으로(10) 이렇게까지 섬길 수 있다고?

마태복음20:28

 

국회의원 선거가 10일에 있습니다. 후보자들은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 뛰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이 되는 순간 100여 가지의 혜택이 주어진다고 합니다. 국회는 4년 동안 신의 직장 중에 신의 직장이라고 합니다. 월급은 12백만 여원, 세비는 연간 약 13,796만 원, 정근수당 연간 6464,000원 명절휴가비는 연간 7756,800, 보좌진은 최대 7명까지 임용 가능하고 사무실은 국회의사당 내 제공하며, 연구비를 연간 4,000만 원 지원된다고 합니다. 해외 파견은 연간 2, 1회당 최대 10일간 지원되며 그것도 항공기 비즈니스석 배정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공항 귀빈실 이용하고 출입국 절차도 간소화됩니다. 항공기뿐 아니라 철도도 무료, 선박도 무료라고 합니다. 입법 및 정책 개발도 지원되고, 4년 동안 면책특권, 불체포 특권도 누립니다. 국회 내 치과, 내과, 한의원, 사우나, 미용실 등의 편의시설을 무료 또는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답니다. 4년 후 그만두어도 공무원 연금, 국회의원 의료보험, 퇴직후 5년 이내 사망시 24개월 급여 유족 예우금 등을 받게 됩니다. 만약 아들이나 딸에게 이런 혜택이 주어지는 권력이 주어진다면 거절할 부모가 있겠습니까?

 

1. 권력에 대한 욕망

예수님 당시, 예수님의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를 보십시오. 예수님에게 무엇을 요구합니까?

20절을 보십시오.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와서 절합니다. 세베대는 야고보와 요한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니까 그 구한 사람은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인 것입니다. 그가 무엇을 요구합니까?

2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예루살렘에 예수님이 입성하여 당시 로마 정권을 물리치고 헤롯을 제거하고 왕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왕이 되면 주의 나라에서 좌의정, 우의정을 시켜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머니의 권력에 대한 욕망만은 아니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욕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것을 마가복음 1035-37절에 보면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나와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고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의 친자매인 살로메(15:40; 16:1; 19:25)로 알려진 세베대의 아내를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라고 표기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모가 되니까 혈연이라는 인맥을 이용하여 청탁한 것입니다. 여기서 라고 세 번 번역한 말은 큐리오스가 아니라 라는 말을 번역한 말인데 당신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살로메가 자신과 예수님의 이모와 조카로서의 친분 관계를 강조하는 단어로 선택한 것입니다. 혈연관계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한 청탁이 아닙니다. “명하소서(흐레오)”라고 압력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부모님의 마음이나 동일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연고를 통해서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3년 동안 훈련을 받았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제자들이 분노를 터뜨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희들만 권력을 독점하려고 하느냐 우리도 그 자리 오르고 싶다"라는 표현입니다.

누구나 이런 권력욕은 다 있는 것입니다.

니체는 일찍이 인간 존재의 본질을 "권력에의 의지"라고 보고 '권력에의 의지'를 자기 생존의 유지와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파악하고 남보다 우수해지고 남을 지배하려는 의지로 해석하였습니다. 아들러 역시 인간의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고 있는 원천을 권력에 대한 의지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권력에 대한 태도를 보면 첫째는 권력 추구형이 있습니다. 둘째는 권력 회피형이 있습니다. 셋째는 권력 무시형이 있습니다. 넷째는 책임감 있는 권력 사용형이 있습니다.

권력은 그 권력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권력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로마서 13:1절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하나님이 주시는 권력은 백성의 질성과 평안을 위해 필요한 것이며 가치 중립적인 것입니다. 문제는 그 권력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2. 권력에 대한 바른 이해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2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님은 권력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너희라는 말씀 속에는 야고보와 요한과 그들의 어머니, 제자들을 다 포함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그들의 잘못된 권력욕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권력욕은 끝없이 남보다 더 힘이 있어야 하고, 남보다 더 잘나야 하고, 남보다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남보다 더 인정받아야 하고, 남보다 더 좋은 자리에 앉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생존을 위한 권력욕입니다. 권력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나 지위 명예 물질적 풍요를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욕구의 도구로 권력을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영적 소경이 되어 영적 무지로 만왕의 왕으로 최고의 권력을 가지신 예수님이 왜 인간이 되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지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이번에 예수께서 수도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가시적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다윗 왕국의 영광을 회복하고 정치적 지상 왕국의 왕좌에 앉아 영광을 누리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물어봅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이 잔은 예수님이 필연적으로 마실 수밖에 없는 잔입니다. 수단과 모욕과 고통과 죽음을 당해야 할 잔입니다. 얼마든지 마시지 않아도 될 만한 권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이 잔을 마심으로 죄로 말미암은 탐욕으로 말미암아 권력 게임으로 끝없는 악을 만들어내는 세상에 참된 평화와 평안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이 잔은 시편23: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말씀한 것처럼 구약에 번영의 잔으로 쓰였습니다(16:5;115:13). 동시에 역경과 고난의 잔으로도 쓰였습니다. 시편116절에서는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75:9 51:17,22).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기도에서 이 잔을 옮겨 달라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고난을 말씀하는 잔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와 요한은 축복과 번영의 잔으로 생각하고 마실 수 있다고 장담합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달리 자신에게 필요한 대로 선택적 수용을 한 것입니다. 권력은 자신의 번영과 축복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의와 화평과 희락을 만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주신 것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 무지로 장담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23절을 보십시오. 예수가 마셨던 고난의 잔을 야고보와 요한도 반드시 마시게 될 것을 보여 줍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사도권이 있었지만 하나님 나라를 의와 화평과 희락을 위해 이 예언대로 야고보는 예수의 제자 가운데 가장 먼저 순교를 당하게 되었고(12: 2), 요한도 말년에 맛모섬에 유배되는 고난의 잔을 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주인공으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정당한 권력은 피흘리는 투쟁에 의해 쟁취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것인 것을 알려 줍니다.

 

3. 바른 권력

권력은 그 권력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문제인 것을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권력을 독점하려는 야고보와 요한에게 제자들은 분노합니다(24). 그 때 예수님을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2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권력에 대하여 바른 이해를 시켜 주시 위해 잘못된 권력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집권자는 헤롯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생물의 생존의 세계에서는 누군가를 죽여야 합니다. 피흘리는 생존 경쟁을 하는 것이니다. 처절한 오징어 게임을 하며 성공과 번영, 군림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권력과 자리에 취한 잘 못된 권력은 첫째는 백성을 임의로 주관하는 것입니다. 권력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대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시행되어야 함으로 분명한 기준이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억압고 무력을 통해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의와 화평과 희락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권력은 억압과 통제를 합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합니다. 사람을 억압하고 통제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합니다.

둘째는 권세를 부리는 것입니다. 권력을 남용하고 오용하는 것입니다. 권력을 탐욕의 도구로 공공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부패하게 사용합니다. 책임감 없이 비효율적인 정책과 행정을 추진합니다. 불공정과 차별로 특정 계층에게 유리하도록 권력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킵니다. 입을 틀어막고 언론에 족쇄를 채워 폭력과 억압으로 권력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권력은 어떤 것입니까?

26-2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섬기는 자(디아코노스)심부름을 가다라는 뜻이 있는 디아코에서 유래한 말로 하인’ ‘사환이라는 의미입니다. 권력을 준 자를 위해 심부름하는 사람입니다. 권력은 개인적인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도구입니다. 권력을 맡겨 준 자에 대하여 책임감을 가지고 행사해야 합니다. 주어진 권력으로 공동체의 삶을 개선하고 공동체의 발전을 도모해야 합니다. 모든 국민에게 공정하게 행사되어야 하고, 특정 계층에게 유리하도록 선택적으로 자기 마음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권력 행사의 과정은 투명해야 합니다. 권력 준 자들의 의견을 겸손과 자기 성찰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정책에 반영하여야 합니다.

종은 둘로스라는 말로 둘로스는 주인에게 완전히 예속된 노예를 말합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인을 위해 일하며 필요하다면 자신의 생명까지 바쳐야 할 사람입니다. 모든 권력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섬김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섬김은 창조 질서의 원리입니다. 최초의 인간을 보십시오. 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들었습니다. 왜 만들었습니까?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2:18)"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20)"입니다. 도와주라고 즉 섬기라고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가정도 주어진 알량한 권력으로 섬기지 않고 지배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가족들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옆에 있는 분 섬기라고 만나게 해 주신 것입니다. 교회 직분 왜 주었습니까? 계급으로 주었습니까? 서열로 주었습니까?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4:12)"라고 했습니다.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생존의 원리가 아니라 생명의 원리입니다. 생명을 나눈 사람은 섬길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는 자신을 끝없이 섬깁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명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내 생명을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면 단순한 생존의 관계가 아니라 생명을 나눈 관계가 됩니다. 그러므로 섬길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도 예수님의 제자로 일평생 섬김의 비전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이 땅에 흩어져 있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자기의 몸과 생명을 사랑과 희생의 제물로 드리는 섬김의 삶을 살다가 섬김의 죽음을 죽었습니다. 권력은 섬김을 위해 사용될 때 자신과 이웃 세상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그린리프는 서번트 리더십이론을 정립한 사람입니다. 그는 하버드·예일대 등 최고의 스펙을 자랑하는 AT&T의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경영 자문을 하고 교육 훈련을 실시하던 중 지체 높고 똑똑한 사람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무척 어렵다는 것을 체득했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능가하지 못하는 강사에 대해서 가차 없이 비판하거나 시간 낭비라고 교육을 거부하는 등 콧대 높은 행동을 보이기도 했답니다. 그 때 그는 헤르만 헷세의 <동방순례>라는 책을 읽다 섬김의 리더십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 책에 참된 봉사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가져다줍니다. 오래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남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남을 지배하려고 하는 사람은 오래 살지 못해요. 이것이 봉사의 법칙이지요라고 하인 레오가 던진 말이 나오는데 그 말에서 그린리프는 전광석화와 같은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동방순례에 나오는 하인 중 하나인 레오는 짐 나르는 일을 도와 주고 때로는 순례단 대표의 사사로운 심부름을 맡아서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즐겁게 일했고, 대개는 혼자서 노래를 부르거나 휘파람을 불었으며 필요할 때 외에는 눈에 잘 띄지도 않는 하인이었습니다. 그런 레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습니다. 순례단은 백방으로 레오를 찾아 나섰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그의 실종으로 말미암아 순례단에게 안정과 평화로움을 가져다주던 레오의 노래와 휘파람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자 결국 무리들은 무질서해졌고 여행은 중단되었습니다. 그러다 몇 년 후, 그 무리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소설 속의 는 레오가 그 순례단의 머리, 길잡이 역할을 한 리더였음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 공동체를 유지하게 한 진정한 리더는 보이지 않게 섬겼던 하인 레오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영감을 받아 그린리프는 1970<서번트 리더십>라는 책을 출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책을 쓴 헤르만 헤세는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신학교를 중퇴한 사람인데 예수님으로부터 섬기는 리더십을 깨달은 것입니다. 섬김은 창조질서의 원리입니다. 심장과 폐가 말없이 섬기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봄이 되면 화려한 꽃을 피는 것도 겨울 내내 뿌리가 모든 고난을 참고 섬기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부모의 섬김이 없이는 자녀의 성장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일제로부터 독립된 것도 주어진 힘으로 누군가의 섬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한 교회가 세워지고 한 회사가 세워지는 것도 누군가의 섬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지배하면 냄새가 되지만 섬기면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권력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히틀러나 모택동이나 레닌처럼 잘 못 사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촛불은 자신을 밝히기 보다는 세상을 밝히기 위해 존재할 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권력은 섬김의 바구니에 담길 때 오래도록 빛이 납니다.

 

4. 섬김의 정도

어디까지 섬겨야 하는가?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2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목숨을 대속물로 주시까지입니다. 오늘날로 해석하면 목숨을 희생할 정도로 섬기는 것이고, 나이들어 줄을 때까지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적당히 섬기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고, 어느 기간 섬기는 것도 마음 잘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몸숨을 내어 놓고 섬기고 마지막 죽을 때까지 섬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관계가 되면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 힘이 아니라 내 안에 역사하는 생명의 근원 성령님을 통해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죽음에 이르기까지 섬겼는데 자신의 안에 역사하는 성령님의 힘으로 힘을 다해 주소한다고 말했습니다(1:29). 삶의 현장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늘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그 은혜로 감사하며 섬기면 가능합니다. 예수님이 그럼에도 섬겼는데 나는 못하겠는가라고 생각하면 섬김의 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기까지 섬겼습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점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실천력입니다. 실제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섬겼습니다. 그것도 자격없는 죄인들을 위해서 죽기까지 섬겼습니다. 예수님의 섬김의 위대성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모아 놓고 그들의 발을 씻겨 주었습니다. 이것은 종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발을 씻긴 것입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13:14-15)" 우리도 주어진 시간과 재능, 물질을 통하여 예수님처럼 섬김의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손과 발과 몸으로 병자들의 몸을 어루만지며 치료하시는 긍휼과 치유와 섬김의 사역을 하였습니다. 가까이 가기도 싫어하는 문둥병 자들의 몸을 만지시며 그들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8:2,3). 예수님은 열병으로 앓아 누운 베드로의 장모의 손은 만지시며 그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8:14,15). 두 소경이 예수님을 따라오며 소리를 질렀을 때 예수님은 저들의 눈을 만지시며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9:29). 회당장의 딸이 죽어서 집에 누어있었을 때 예수님은 회당장의 집으로 가서 죽어서 누어있는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므로 그를 살려주셨습니다. 귀신 들려서 자주 땅에 엎드러지는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며 그를 고쳐주시기도 했습니다(9:27). 예수님은 또한 먹을 것이 없어서 기진하여 쓰러질 광야에 모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음식을 먹이시는 음식 제공함으로 섬겼습니다(8:2,3).

그러니 너희들도 그렇게 섬기고 살라는 것이니다. 이렇게 섬기며 살 수 있겠습니까?

신문에서 "막노동하는 목사의 간 쓸개 다 내주는 사랑"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57세인 최정식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섬김을 실천하기 위해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콩팥을 하나 떼어주었답니다. 다른 모르는 이에게 간의 반을 떼어 주었답니다. 또 다른 모르는 이에게는 골수를 기증했답니다. 헌혈도 186번 했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콩팥과 간을 동시에 기증한 이는 25명인데, 골수까지 기증한 이는 최 목사님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으로는 가장 많은 장기를 기증했답니다. 최목사님은 2006년엔 췌장 기증 등록을 해 기증 받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사후 시신 기증도 약속했고 조직 기증도 약속했답니다. 죽어서도 아낌없이 다 주는 삶을 실천하겠다는 것입니다. 30년째 하루 한끼만 먹고 산다고 합니다. 최목사님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고(12:1) "약한 사람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20:35)"을 실천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몸을 이웃에게 드려 섬기지는 못할지라도 우리에게 가지고 있는 작은 것이라고 섬김을 실천하는데 사용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늘 남을 정죄하고, 비난하고, 욕심 많은 사람이 되어 자기 것만 챙기려고 하지 말고 조건없이 섬김을 실천하여야 합니다.

 

5. 섬김에 대한 회의에서 확신으로

이런 정도까지 섬길 필요가 있느냐고 회의를 가질 수 있습니다. 힘이 있으면 섬기는 것이 편합니까? 군림하는 것이 편합니까? 섬김은 겸손과 희생과 사랑이 필수적으로 따라야 합니다. 무능한 자가 섬기면 비굴하게 보고 힘 있는 자가 섬기면 무시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섬김이 손해라는 인식이 팽배한 세상입니다. 세상은 서열의식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찬물도 위 아래가 있다하며 나이, 학번, 인사년도, 시험기수, 근무년수, 직급 등에 따른 서열 문화가 인간관계를 지배합니다. 자리를 앉을 때 서열을 중요시합니다. 한국 정치인끼리의 비중을 알고 싶으면 그들 아내의 앉는 서열을 보면 안다고 합니다. 최고 권력자 자리 옆에 누가 앉았는가를 보면 압니다. 어디 행사를 해도 서열에 따라 자리를 앉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섬김의 자리로 내려오면 무시당하고, 자존심 상하고,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하게 역설적 진리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섬김을 받는 자보다 섬기는 자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2627절을 다시 보십시오.

섬기는 자가 오히려 크게 되고, 종이 되는 자가 오히려 으뜸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섬김의 도를 가르쳐 준 후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13:14-17)"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섬김의 도를 알고 행하면 화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저주가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낮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섬김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섬김에는 화목이 있습니다. 섬기면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집니다. 섬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갑니다. 섬기면 행복해 집니다. 섬기면 치유가 됩니다. 우울증이 치료됩니다. 무기력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정신이 건강해 집니다. 물질과 시간과 재능을 통해 섬기면 진정한 부자가 됩니다. 회사도 서비스가 우수한 회사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최상의 서비스"라는 책을 쓴 발 지(Val Gee)"고객의 68%가 단골이 되지 않는 오직 한 가지 이유는 나쁜 서비스 때문이다. 한 사람의 불만 고객이 10-20 명의 다른 사람들에게 불평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서비스도 상품이다 "를 쓴 칼 알브레히트는 "우수한 제품을 미흡한 서비스로 제공하느니, 차라리 평범한 상품을 우수한 서비스로 제공하는 편이 더 낫다."라고 말합니다. 서비스의 황금률을 "당신이 고객일 때 받고 싶은 대접 그대로 고객들을 대접하라"고 말합니다. 섬김은 결코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부흥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섬김이 없기 때문입니다. 섬기지 못하고 모두가 직분을 계급으로 생각하고 자기 잘났다 서로를 비난하면 교회는 부흥이 되지 않습니다.

 

부흥한 사도행전 교회를 보십시오. 얼마나 섬김이 넘쳐났습니까? 사도행전 2035절에 보면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224절에 밀알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 썩지 아니하면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이야기입니다. 미국 필라델피아 변두리에서 가난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학력은 초등학교 2년이 전부였습니다. 13살 때 벽돌공장에서 노동을 하였는데 교회 입구가 조금만 비가 내려도 진창이 되는 것을 보고 하루 품삯 7센트 중 일부로 날마다 벽돌 한 장씩을 사 그 길을 포장하였습니다. 그의 작은 섬김을 교인들이 알게되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들만 생각하는 이기심을 회개하고 교인들은 각성하여 1년 만에 새로운 교회를 건축했다고 합니다. 그는 교회 목사님을 존경하며 따랐습니다. 챔버스 목사를 영적인 '멘토'로 모시고 섬겼습니다. 그는 아무리 사업이 바빠도 매 주일 아침 9시 반부터 밤 9시 반까지 12시간 이상을 교회에서 섬겼다고 합니다. 베다니 교회는 18745천명을 수용하는 자체 건물을 짓게 됐고, 1902년 그는 땅을 기증하여 세계적 규모로 교회를 건축하였습니다. 미국 제 23대 대통령 벤자민 해리슨으로부터 체신부 장관이 되어줄 것을 요구받았을 때도 주일학교 교사를 하는 조건으로 수락을 하였고, 워싱턴과 필라델피아를 오가며 4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베다니 교회를 섬겼습니다. 허름한 건물 귀퉁이에서 21살에 베다니 주일 학교를 설립한 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67년간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였습니다. 195827명으로 시작한 주일학교는 18923천명을 넘었고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주일학교 어린이 숫자는 형제교회를 포함해 만 명이 넘어섰습니다. 심방은 의무가 아니라 즐거움이었고 그는 수천 명의 주일학교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외웠습니다.

그렇게 교회와 하나님을 섬겼는데 그의 사업이 망한 것이 아니라 날로날로 번창되어 당시 미국 10대 재벌 안에 드는 백화점왕이 되었답니다. 14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3세 때 조금씩 저축한 돈으로 사업을 시작하여 창업한 후 4일 만에 남북전쟁이 발발하여 위기를 당했지만 결국 사업은 번창하여 세계 최고의 백화점을 만들었고 백화점의 창시자로, 상인의 왕으로, 비즈니스의 개척자로 불리게 되었답니다. 체신부 장관시절 한 번은 어떤 사람이 물었답니다. "당신은 그 큰 사업에 바쁠 뿐 아니라 체신장관의 업무를 수행하고 또 다른 일들이 많을 터인데 어떻게 4천 명의 주일학교 학생들을 다루는 주일학교 교장직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는 정색하며 대답했습니다. "무슨 말씀을 주일학교가 나의 정작 본 사업입니다. 그 외의 다른 일들은 그저 일들입니다. 나는 45년 전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의 말씀을 확실히 깨닫고 믿게 되었단 말입니다."라고 말했답니다. 존 워너메이커는 "나는 일생동안 하나님 안에서 생각하고 하나님 안에서 노력하고 하나님 안에서 땀 흘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내 인생의 표어였으며 내 인생의 전부였다"라고 유언을 남겼답니다.

 

섬겨서 망하는 사람 없습니다. 물질과 재능과 시간을 섬기면 무엇으로 얻을 수 없는 행복이 주어집니다. 건강해 집니다. 삶의 질이 좋아집니다. 세상이 좋아집니다. 권력을 가지고 섬기는 대통령 망하는 대통령 없습니다. 물질을 가지고 섬기면 행복해지는 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재능을 가지고 섬기면 재능이 빛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국회의원이 되는 것도 섬김을 위해, 의사가 되는 것도 섬김을 위해, 부자가 되는 것도 섬김을 위해, 목회자가 되는 것도 섬김을 위해, 학자가 되는 것도 섬김을 위해, 기능인이 되는 것도 섬김을 위해, 직분자가 되는 것도 섬김을 위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섬김받기보다는 섬김의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죽기까지 섬김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섬김으로 함께 하나님 나라의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주어진 인생 섬기지 않아도 다 살아지고 썩게 되어 있습니다. 섬기면 하늘에 상급이 쌓이고 이 땅에서 3060100배의 결실을 맺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는 섬김의 확신을 가지고 섬김을 실천하여 섬김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고 섬김으로 살맛나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섬김에 대한 회의에서 벗어나 섬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죽을 때까지 죽음에 이르도록 섬기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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