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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3) 모든 사람의 마음이 건강하길 원하십니다(이사야61:1-3)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595 추천수:4 112.168.96.71
2016-09-18 07:08:42

 

하나님의 마음(3) 모든 사람의 마음이 건강하길 원하십니다
이사야61:1-3

지난 연휴 때 교회에서 몇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중에 <결심중독, 최창호 저>이라는 책을 인상깊이 읽었습니다. 그 책에 보면 프랑스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에밀 쿠에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시간이 늦어 병원에 가지 못한 사람이 약국에 와서 약을 지어달라고 했답니다. 처방해줄 만한 약재가 없어 거절했지만 환자가 간절히 원해서 포도당 알약을 만들어 주었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환자는 그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았답니다. 이것을 위약효과 즉 플라시보 효과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혈액응고를 방지하기 위해 아스피린을 장기 복용하는 환자를 세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하는 내용입니다. 두 그룹은 아스피린을 장기 복용할 때 위장장애가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한 그룹은 아무 말로 해 주지 않았습니다. 일정 기간 약을 복용한 후 위장장애가 있다는 말을 들은 사람은 내시경을 통해 검사해 보니 세배 이상 위의 통증과 부작용을 호소했답니다. 이런 것을 노시보 효과라고 합니다. 없는 병도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몸이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이야기도 나옵니다. 사형수에게 당신은 이제 사형이 집행될 것이고 정맥을 끊어 피를 흘리면서 죽게 된다고 말해 주었답니다. 그리고 나서 피부를 살짝 베어 상처를 냈답니다. 그런데 그 사형수는 과다출혈을 상상하며 죽어갔답니다. 사람의 마음은 실제로 뇌와 신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플라시보 효과는 30%, 노시보 효과는 70% 정도의 결과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부정적인 마음의 결과가 더 인간에게 심각하게 반응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미워하고, 증오하고, 시기하고, 분노하고, 악을 품고, 탐욕을 부리고, 저주하고, 원수 맺는 것과 같은 나쁜 마음을 먹으면 그만큼 몸도 건강하지 못하고 인생도 불행해 진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수필가인 에머슨은 "사람이란 종일 자기가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는 "사람의 일생은 자기 생각 그대로 되기 마련이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잠 23: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이라고 하였습니다. 언젠가 <KBS스페셜 특별기획 다큐 '마음'>이 방영되었습니다. 제작팀은 쥐를 실험해 보았습니다. 고 콜레스테롤 먹이를 토끼에게 먹이면서 한 그룹은 애정을 보이고, 한쪽은 맹수울음소리를 들려주거나 괴롭히는 등 스트레스를 주었습니다. 4주 후 스트레스를 받은 8마리의 토끼 중 4마리는 콜레스테롤에 의해 혈관이 막히고 녹내장 현상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러나 애정을 받은 토끼 그룹은 동맥에 콜레스테롤이 쌓이기는 했지만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몸을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환경 때문에만 어떤 행동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 행동은 내 마음에서 먼저 우러나오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말의 근원도 마음이고(마12:34) 악을 선택하는 근원도 마음입니다(롬1;24,) 마음을 창조하신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실까요?

1. 하나님이 원하는 마음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기를 원할까요?
신명기 5장 29절에는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겠다는 그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경외하여 자신도 복을 받고 자손도 복을 받기를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는 건강한 마음을 가짐으로 자손들까지 복을 받고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에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마음과 같이 우리 마음이 건강한 마음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2. 병든 마음
그런데 우리 마음은 어떻습니까?
혹 병든 마음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마음은 생각하고 느끼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여러 가지 기능이 작동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마음에 상처가 생깁니다. ‘트라우마’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마음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마음이 상하면 마음이 병들면 마음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참 신비합니다. 같이 밥을 먹다 보면 어떤 사람은 짜장면을 먹지 못합니다. 군대에서 짜장면을 먹다 채한 후 부터는 못먹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오이를 먹지 못합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오이를 먹지 않는다고 때렸답니다. 어떤 사람은 게를 먹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복숭아를 먹지 못합니다. 트라우마가 생긴 것입니다. 상처가 생긴 것입니다. 마음이 병들면 정상적인 기능을 못합니다.
몸이 병들면 얼굴에 생기가 살아지듯 마음이 병들면 얼굴에 생기가 돌지 않습니다. 표정이 밝지 못합니다. 근심과 걱정을 얼굴에 달고 다닙니다. 우울한 표정을 짓습니다. 웃음이 사라집니다. 밝은 표정이 사라집니다. 몸이 병들면 밥을 먹기 싫듯 마음이 병들면 남의 말 듣기도 싫고 하나님 말씀도 먹기 싫어집니다. 몸이 병들면 몸의 유연성이 없어지듯 마음이 병들면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집니다. 순수하고 맑았던 마음이 어느새 바위 덩어리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성폭력을 당하면 그렇게 순수했던 마음이 병들어 세상을 향해 마음을 닫아 버립니다. 몸이 병들면 몸의 순환이 잘 되지 않듯 마음이 병들면 마음이 순환이 되지 않고 과거의 한 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다면 그 상처받은 과거의 경험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몸이 병들면 통증이 있듯이 마음이 병들면 아픔이 있습니다. 억울해 하고 분노하고 서운해 합니다. 고슴도치 마음이 되어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합니다. 고약한 마음으로 변해 매사 부정적으로 말을 합니다. 우리가 살다가 상처를 받으면 마음이 쓴 마음으로 변해 버립니다. 독을 품은 마음으로 변해 버립니다.
1) 그래서 상처받은 마음 때문에 스스로 고통을 당합니다. (1) 신체적인 결과로 화학적 균형이 깨집니다. 우리가 분노하면 뇌하수체, 신장, 갑상선과 다른 내분비선으로부터 특정 호르몬이 나오게 된답니다. 이런 호르몬이 지나치게 많게 되면 신체의 어느 부분에서나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답니다. 그래서 궤양성 대장염, 독성 갑상선종, 고혈압들의 질병에 걸릴 수 있답니다. 쓴 마음을 품으면 자신의 육체와 인격을 파괴뿐 아니라, 신체적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불면증, 변비, 소화불량, 두통, 면역력 저하, 세포재생산 능력의 감소, 암 등 질병을 유발하기도 합니다.쓴 마음을 품으로 육체가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잠15:30; 잠17:22).
(2) 쓴 마음은 정서적으로 나쁜 결과를 나타나게 합니다. 죄의식, 수치심, 버림받음, 분노와 외로움, 슬픔, 답답함 등과 같은 정서의 찌꺼기가 남아 괴롭히는 것입니다. 가장 현저하게 나타나는 증상은 우울증입니다. 원한을 계속 품으면 감정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됩니다. 삶에 대한 부정적인 말과 태도 가지게 됩니다.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부모 혹은 세상의 모순 탓이라고 원망과 분노의 늪에 갇혀버리고 맙니다. 치유받지 못한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은 항상 정서적 중압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 중압감에서 해방되기 위해 강박적 또는 중독증 행동을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도망일 뿐입니다. 고통스러운 사건은 행복한 느낌을 덮어버릴 정도로 강력하게 지배합니다. 공포, 미움, 모멸감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소녀가 부모에게 성적 학대를 받았다면 그 소녀는 너무나 강력한 분노와 공포, 수치심으로 인하여 자신의 감정을 정상적으로 다루지 못합니다.
(3) 쓴 마음을 품으면 정신적으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복음 안에서 주어진 자유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과거의 종이 되어 성인 아이로 살아갑니다. 성인 아이가 되면 쉽게 진실을 말할 수 있을 때에도 거짓말을 하고 자신을 무자비하게 비판합니다. 친밀한 관계를 맺기가 어렵습니다. 과민반응을 보입니다. 끊임없이 칭찬과 인정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2) 대인관계가 건강하지 못합니다.
마음의 벽을 만듭니다. 자기를 보호하려고 벽을 만들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시련의 아픔이 있으면 이성에 대하여 담을 쌓아 버립니다. 타인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다시는...’을 반복하며 심리적 장애를 가진 삶을 살게 됩니다. 정상적인 관계가 어려워집니다. 모든 사람을 사기꾼처럼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일반화해 버립니다. 지나치게 다른 사람을 의존하던지 지나치게 지배하려고 합니다. 한 번 이성에게 배신당한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깊어지면 결혼해도 의처증 의부증으로 나타납니다. 사랑을 주지도 받지도 못합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잘 하지도 못합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줍니다. 상처 준 사람에게 원수를 갚으려고 합니다. 쓴 마음을 가지면 마음이 과거 사건에 갇혀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쓴 마음은 적개심을 도발하여 다른 사람에게 증오심을 품게 합니다. 그 사람에 대해 적개심과 원한을 품고 살게 됩니다.

3) 영적 삶이 건강하지 못합니다.
교회를 오래 다녀도 영적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악한 영이 들어오는 자리를 내어 주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사탄에게 쓰임받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이지 못하고 영적 성장에 큰 지장을 초래합니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쓴 마음을 품으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요일4:20-21). 아무리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많다하여도 영적 성장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3. 상처난 마음의 원인
예수님을 믿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는데도 왜 마음이 병이 듭니까? 살다가 상처를 받기 때문입니다. 왜 마음이 상처를 받습니까?
상처를 받는 이유는 많이 있지만 크게 나누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결핍(absence)으로 오는 것입니다. 받고 싶었는데 못 받은 것을 통하여 오는 마음의 상처입니다. 사랑받고 싶고 싶었는데 사랑받지 못한 것으로부터 오는 상처입니다. 인정받고 싶은데 인정받지 못하고, 이해받고 싶은데 이해받지 못하고, 격려 받고 싶었는데 격려 받지 못하고, 위로 받고 싶은데 위로받지 못하고, 칭찬 받고 싶었는데 칭찬받지 못하면 상처가 생깁니다. 부모의 이혼, 부모의 편애, 학대, 부모의 부도, 부모의 심한 다툼, 부모의 태도, 부모의 사별, 가난 등으로 어릴 때 받아야 할 것들을 받지 못해 상처가 생깁니다. 교사로부터, 목사로부터, 배우자로부터, 친구로부터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하여 마음에 상처가 생기게 됩니다. 애정결핍, 인정 결핍, 칭찬 결핍 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었는데도 어린아이의 기질이 남아 유치하게 말하고 행동을 합니다. 성인 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감정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나쁜 일(bad)을 당함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받기 싫었는데 겪은 것들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나쁜 말을 통해 상처를 받습니다. 억울한 말, 독설, 비난, 비교를 당하면 상처를 받습니다. 나쁜 행동으로 인해 상처를 받습니다. 폭행, 폭력, 억울한 일, 성폭행 등을 당합니다. 나쁜 대우를 받아 상처를 받습니다.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해서 상처를 받습니다. 부모부터, 친구로부터, 스승으로부터, 직장 상사로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면 상처를 받습니다. 배신을 당하고, 이혼을 당하고, 경제적 손실을 당하고, 사기를 당하면 마음에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면 마음은 병이 들고 병든 마음이 병든 감정을 만듭니다. 병든 마음이 병든 말을 만들고, 병든 마음이 병든 행동을 하게 하고, 병든 마음이 병든 인생을 만들어 냅니다.

4. 치유의 길
그러면 우리가 상처를 치유하고 어떻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겠습니까? 마음의 상처가 외부적인 환경을 바꾼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기억을 지운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보상받는다고, 합리화한다고 남에게 뒤집어 씌운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1) 십자가 앞에 나아오면 모든 상처를 치유받고 건강한 마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사야를 통해 예수님이 이 땅이 오실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예언을 자신의 사역에 직접 인용하였습니다(눅4:17-21). 1절의 가난한 자는 심령이 가난한 자(마 5:3)를 말씀합니다. 마음이 상한 자, 2절의 슬픈 자, 위로, 3절의 희락, 근심 등 모든 것이 마음과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다 결국 마음이 상처투성이인 인간들을 치유시키기 위해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상처난 마음에는 희락이 없습니다. 슬픔이 가득합니다. 위로가 없습니다. 근심이 검은 구름으로 마음을 덮고 있습니다. 마음이 상하였다는 말은 “샤바르”라는 말로 "깨뜨리다. 산산조각내다"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깨어졌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품을 떠나는 순간 마음이 땅에 떨어져 깨져 버렸습니다. 그러니 그 속에 아무리 채워도 차지 않습니다. 굶주림은 계속됩니다. 돈으로 명예로, 학식으로 권력으로 환락으로 아무리 채워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깨어진, 마음 상처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상하면 그것으로 끝이 납니까? 오늘 본문을 처럼 포로된 자 갇힌 자가 됩니다. 사단의 포로가 됩니다. 하나님 대신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중독이 된다는 말입니다. 술 중독, 마약 중독, 일 중독, 쾌락 중독, 취미 중독 등이 되어 버린다는 말입니다. 중독되면 어떻게 됩니까? 이제 자신의 마음을 자신 스스로 어떻게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결국 어떻게 됩니까? 갇히게 됩니다. 포로되었다는 말은 세상에 사는 것이 자유롭게 선택하여 사는 것 같지만 내용적으로는 포로된 것입니다. 그러나 갇혀 있다는 뜻은 완전히 그 자유마저 잃어버린 상태를 의미합니다. 꼼짝없이 갇혀 움직일 수도 없는 묶임의 극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상처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오면 깨끗이 치유됩니다.
마음의 상처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가져가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치료법은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상처를 다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5) 이 사실을 믿습니까?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우리의 상처를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다 치유해 주셨습니다. 상처를 고귀하게 생각하고 품고 감추고 싸매고 살지 말고 십자가 앞에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살면서 멸시당하고 거부당한 것들 십자가에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고 멸시당하신 예수님께 가지고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내가 당한 명시 내가 당한 거부 예수님께서 이미 다 당하였습니다. 내가 당한 부끄러움 예수님이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다 당하였습니다. 우리의 버림 받음 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고통을 끌어 안고 자신을 조롱하고 핍박하고 못을 박고 죽이는 자를 용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라고 우리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이 남자 저 남자의 품에서 상처를 치유받으려고 했지만 결국 치유받지 못한 여인을 예수님께서는 치유시켜 주었습니다. 간음한 여인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 주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어 마음에 상처를 받은 삭개오의 마음을 치유해 주었습니다. 독자를 잃고 상심해 있는 나인성 과부의 상처난 마음을 치유해 주었습니다. 외동딸을 잃고 울고 있던 야이로의 상처난 마음을 치유해 주었습니다. 오라비를 잃고 울부짖고  있던 마르다, 마리아 자매의 상처난 마음을 치유해 주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왕따 당한 나병 환자의 상처난 마음을 치유해 주었습니다. 

[영적 치유]라는 책을 쓴 '케이 아더'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상처받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실제적인 치유의 삶을 체험할 수 있도록하는 좋은 책입니다. 그녀는 참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결혼을 하였지만 남편은 자신에 대하여 너무나 무관심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주먹까지 휘두릅니다. 별수 없이 별거를 합니다. 두 아들은 부인이 맡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상처를 받습니다. '혼자 별거해서 사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은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아무래도 내가 정신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묻는 부인의 질문에 남편은 '당신이 나에게 퍼부었던 그 끔찍한 말들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야'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남편은 가끔 '자기가 자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부인은 남편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렇다면, 그렇게 하세요. 그래야 제가 당신을 유산을 상속받지요.'라고 매몰차게 말했습니다. 결국 남편은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 남편은 상처를 받기만 했지 그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채 죽어갔던 것입니다. '미안해요, 내가 진작 알았더라면...'  부인은 심한 죄책감에 몸부림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인은 괴로움과 외로움 때문에 이 남자, 저 남자를 만나는 추한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자녀들은 큰 상처를 받고 말았습니다. 남편의 자살로 인한 상처, 남편과의 별거로 인하여 두 아들에게 준 상처, 그리고 그후 계속 정결치 못한 삶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준 더 큰 상처 상처 투성이인 인생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상처 속에 뒹굴던 그녀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오게 됩니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받고 자기와 같이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사역을 하게 됩니다.

“아바 아버지 아바 아버지 나를 안으시고 바라보시는 아바아버지 아바 아버지 아바아버지
나를 도우시고 힘주시는 아바아버지 주는 내 맘을 고치시고 볼 수 없는 상처 만지시네 나를 아시고 나를 이해하시네 내 영혼 새롭게 채우시네 주는 내 맘을 고치시고 볼 수 없는 상처 만지시네 나를 아시고 나를 이해하시네 내 영혼 새롭게 채우시네 내 영혼 새롭게 세우시네”

나의 상처를 가지고 치유시키시는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나는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나는 십자가를 통해 모든 과거의 상처로부터 자유함을 받았습니다.
고통스런 기억을 숨기지 말고 십자가 앞에 나와 회개하며 드러내 놓으면 됩니다.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면 주홍같이 불은 죄도 양털같이 희게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십자가 앞에 나오면 고통스러운 기억, 숨기고 싶은 기억, 나를 죄의 노예로 붙들어 놓고 있는 기억, 이루어 놓은 것을 누리지 못하게 하고 진정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부끄러운 기억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받습니다. 다윗이 그 고통스런 기억을 끝까지 숨기고 살았다면 다윗은 성군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누구나 고통스런 기억, 상처가 있습니다. 바울에게도 숨기고 싶은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었습니다. 스데반이 순교할 때 살인 방조를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죽이려 했습니다. 베드로에게도 숨기고 싶은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 부인하였습니다. 고통스런 기억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나면 인생이 새로워집니다. 오히려 고통스런 기억이 창조적으로 활용되어집니다. 다윗은 간음으로 망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겸손해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와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나는 십자가를 통해 왕같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믿습니까? 이미 나의 상처 십자가에 다 못박혔습니다. 상처로 얼룩진 나, 자기 고집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나, 자존심으로 높아지려고 했던 나, 자아중심적이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자 하고자 한 나, 하나님께 거역하고 반항하며 죄로 똘똘 뭉쳐진 ‘나’는 이미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삶을 망가뜨리고, 불행하게 만드는 나, 본질상 진노의 자녀여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심판을 받아야 했던 나는 십자가에 이미 못을 박았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상처를 받고 힘들어 하는 것같지만 문제는 십자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나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것입니다. 나는 선하고 나는 잘났고 나는 문제 없고 나는 의롭다고 하는 나 때문에 꼬이고 괴로운 것입니다. 나는 그분이 죽으실 만큼 못되고 악하고 문제투성이이고 선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내가 죽을 때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죽였습니다. 주님이 나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내가 십자가에 주님을 죽게 했습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나를 용서해주십시오”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용서 못할 그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하면 내가 상처로부터 내가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내가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하지 못하면 내가 그 상처로 병든 마음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2)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모든 상처를 치유받고 건강한 마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지울 수 없는 상처라면, 상처에 대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그 상처에 대한 우리의 해석입니다. 과거는 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석입니다.
둘째, 그 상처에 대한 반응입니다. 과거는 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반응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사건 때문에 우리 인생이 비참해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과거 사건에 대한 해석과 반응에 따라 우리 인생은 행복해질 수도 있고 비참해 질 수도 있습니다. 그 과거 사건이 독약이 될 수도 있고 보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과거 사건이 디딤돌이 될 수도 있고 거침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그것도 마구간에 태어났습니다. 인간 예수님으로는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받았겠습니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말과 행동의 흠을 잡기 위해 죽기까지 쫓아다닙니다.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받았겠습니까? 제자 중 하나라 인신매매합니다. 제자들이 부인하고 떠납니다. 로마 군인들이 창으로 찌릅니다. 옷을 벗깁니다. 침을 뱉습니다. 저주하고 조롱합니다. 이런 일을 당하면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받았겠습니까? 인간적으로 볼 때 인간 예수님처럼 마음의 상처를 받으신 분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상처를 어떻게 해석합니까? 상처는 상처를 받은 것보다 상처를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내뜻대로 가 아닙니다. 아버지의 뜻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기록된 대로 가시는 삶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 예수님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기 위해 그 일을 다 묵묵히 감당하며 마침내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며 운명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상처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처의 원인을 타인이나 자신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일어난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고 반응해야 합니다. 태어난 환경, 가난, 결핍, 나쁜 경험, 죄악된 세상에 태어난 자체로 입은 상처 등을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로 해석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루심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조교를 쓰십니다. 인생 막대기를 통해 우리를 만들어 가십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것을 하나님의 쓰시는 인생 막대기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나쁜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는 도구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수없는 상처를 받은 요셉을 보십시오. 한 아버지 밑에 어머니가 4명입니다. 그것도 정상적인 어머니들이 아닙니다. 서로 남편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아들 낳기 경쟁을 한 어머니들입니다. 그것도 자매지간입니다. 얼마나 콩가루 같은 집안입니까? 형제 10명이 자기를 왕따 시킵니다. 인신매매를 했습니다. 이국땅에 팔려가 노예가 되었습니다. 중년 부인의 음욕 때문에 억울하게 감옥에 갔습니다. 얼마나 마음에 상처가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자신의 과거 상처를 준 모든 사건을 어떻게 해석을 합니까?
요셉이 형들을 만나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석합니다. 아버지가 돌아 가신 후 형들이 상처로 보복할까봐 애걸복걸할 때 요셉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 50:19-21)

다윗을 보십시오. 어릴 때 아버지에게 상처를 받을만했습니다. 사무엘이 왕을 세우려고 하는데 아버지는 그 대상에도 넣어 주지 않았습니다. 전쟁터에 나가 큰 나라를 구하는 큰 공을 세웠는데 부당한 대우를 받습니다. 장인이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얼마나 상처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관점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이 세운 왕을 어떻게 자기 손을 죽일 수 있겠느냐고 죽일 기회가 있는데도 죽이지 않습니다. 결국 그는 성군이 되었습니다.

모든 상처는 하나님의 섭리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면 그것이 보약이되고 디딤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상처를 훌훌 털어 버리고 건강한 마음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나쁜 경험으로부터 선한 것을 가져다 주십니다(고후1:3,4; 롬8:28).
하나님은 고통스런 어린 시절을 통해 오히려 강한 생존 본능을 만들어 주시고 (약1:2-4) 단련 시켜 고유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고통스러운 과거를 통해 우리를 탁월함을 향한 욕구를 부어 넣어 주십니다.(마25:21)
하나님은 고통스러운 과거를 통해 우리를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듭니다.(고후1:3-4)
시편 34편 18절은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 (시편 42 : 5)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 모든 상처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과 관점을 바라보고 해석하시길 바랍니다. 궁극적으로 우리 하나님이 치유시켜 주십니다. 우리 인생의 상처를 치유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출 15:26)"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 (렘 30:17)" "보라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렘 33:6)"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주님 하늘의 아버지 날 주관 하소서 주의 길로 인도하사 자유케 하소서 새 일을 행하사 부흥케 하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성령의 기름 부으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내 잔을 채워 주소서
성령으로 채우사 주 보게 하소서 주의 잉재속에 은혜 알게 하소서 주 뜻대로 살아 가리 세상 끝날까지 나를 빚으시고 새날 열어주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성령의 기름 부으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내 잔을 채워 주소서”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6.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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