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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를 넘어 확신으로(7)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해야 한다고?(요한1서3:16)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30260 추천수:4 218.155.63.46
2024-03-17 01:51:19

회의를 넘어 확신으로(7)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해야 한다고?

요한13:16

 

얼마 전 신문을 보니까 "전교 1등을 했던 의사, 판사, 검사들은 어쩌다 저 지경이 된 것일까?"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습니다. 요즈음 일어나고 있는 세태를 비판하는 글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야만적인 경쟁 교육이 만든 결과라는 것입니다. 치열한 전쟁터에 살아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 엘리트들이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극단적으로 미성숙하고 오만하며 거의 파렴치한 엘리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끝없는 경쟁 속에서는 인격이 미성숙할 수밖에 없어 타인을 배려하기보다는 이용과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함께 사는 세상에서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진짜 사랑을 배우지 못해서입니다.

<결국 잘되는 우리 아이(이임숙 저)>라는 책에 의하면 아이가 행복하고 잘되는 길은 두 가지 자존감과 사회성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성장하게 하는 근원적인 내면의 힘은 자존감에서 나오고, 현실에서 아이를 이끌어 주는 힘은 사회성에서 비롯되는데 야만적인 경쟁교육에서는 이런 것이 갖추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존감이나 사회성도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타인을 배려하는 사랑이 없으면 잘 갖추어지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로마서 14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라고 했는데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나라는 기본적으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대 강령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마가복음 12:30-31에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로마가 지배하는 야만적인 경쟁 사회 속에서 사랑의 사도 요한은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요한132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하나님은 형제를 사랑하되 어디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합니까? 오늘 읽은 말씀 다시 한 번 큰 소리고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죽이는 경쟁을 하는 세상에서 이렇게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5:43-44)”라고 했습니다. 형제가 아니라 자신의 부모를 죽인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1절에서는 예수님세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1.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으면 우리도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사랑했으므로 우리도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원수되었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친히 자신의 목숨을 버리시는 무조건적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을 받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형제와 서로 사랑하는 것은 마땅한 의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에는 그 예수님의 사랑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를 위하여 낮아져 고난 받은 사랑입니다. 고통받는 사람과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공감하는 정도가 아니라 같은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고난입니다. 연한 순같은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마른 땅에 나온 줄기 같았습니다. 헤롯의 칼이 기다리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시대에 태어 나셨습니다. 외모로 보아 흠모할 만한 것이 없이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멸시를 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왜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습니다. 우리의 허물로 인하여 찔림을 당하였습니다. 우리의 허물, 우리의 교만, 우리의 오만, 우리의 아집 때문에 가시면류관과 못과 창으로 찔림을 당하였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상함을 당하였습니다. 그 모든 고난과 수모, 죽음을 사랑 때문에 담당하였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이 사랑을 본받으면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해를 당하면 똑같은 해로 갚은 동해 복수법을 당연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마태복음 544)라고 가르치고 실제 십자가에서 실천하였습니다. 부모를 죽인 이도 원수고, 형제를 죽인 원수, 남편이나 처자식을 죽인 철천지원수를 어떻게 사랑합니까? 예수님이 출생하기 전부터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기원전 63년에에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2만 명이 넘는 유대인이 죽었습니다. 당시는 너무나 황당한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역사를 인간의 역사로만 보면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에덴 동산에서 천국 생활, 하나님의 나라 생활을 하도록 해 주었습니다. 인간을 지을 때 돕는 배필로 지었습니다. 경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원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 하나님 나라의 의와 화평과 평강을 누리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권에 대하여 대항하고 반역함으로 선악과를 따먹고 의와 평강과 희락을 잃어 버리고 추방되어 형이 아우를 죽이는 것입니다. 야만적인 경쟁 대상자로 형제를 보는 것입니다. 탐욕으로 말미암은 인간의 죄성이 사람을 사랑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간 사회의 비극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심각한 갈등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의 현실이 어떻습니까?

국제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와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정책연구소가 28개국 성인 대상으로 문화전쟁을 조사했습니다. 문화전쟁이란 한 국가 내에서 정치적 입장이나 사회적 계층, 소득이나 자산, 연령, , 종교, 인종, 지역 등이 서로 다른 집단 사이의 충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조사국 대상 가장 갈등이 심한 나라로 조사가 되었습니다. 12개 항목 중 7개 항목에서 세계 최고였습니다. 한국은 진보와 보수의 갈등(87%), 여당과 야당의 갈등(91%), 부유층과 빈곤층 간 갈등(91%), 남성과 여성 간 갈등(80%),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 갈등(80%), 대졸자와 비대졸자 간 갈등(70%), 종교 간 갈등(78%) 등이 1위였습니다. 1위가 아닌 나머지 5개 항목 가운데 사회 계층 간 갈등(87%, 2), 도시와 농촌 간 갈등(58%, 3), 대도시 엘리트와 노동자 간 갈등(78%, 3) 3개 항목도 전체의 2~3위로 역시 최상위권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게 느끼는 갈등은 토착민과 이주민 간 갈등(66%, 15), 인종 간 갈등(67%, 11) 두 가지 뿐이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지난 100년 동안 세계인이 부러울 정도로 빠른 시일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나라입니다. 식민지 국민의 아픈 경험과 분단의 아픔, 전쟁의 아픔과 군사독재 하의 아픔 IMF의 아픔 등 엄청난 고난과 시련을 이기고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평균 아이큐 105를 넘는 유일한 나라, 문맹률 1%미만인 유일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대졸 비율이(69,3%) OECD 1위입니다. 미국은 51.2. 프랑스는 50.3, 독일은 35.9%입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갈등 공화국입니다.

왜 이렇게 갈등이 많겠습니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라는 것이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의 결과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관용성평가에서 52개국 중 52위를 차지했습니다. ‘관용성과 타인 존중45.3%1인당 GDP1807달러에 불과한 르완다(56.4%)보다 낮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공부못하는 아이와 사귀고 있을 때 그 아이에게 열심히 도와 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와 놀지 말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1981년 조사 이후 거의 40년 동안 사회적 신뢰와 관용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머리는 똑똑해 전교 1등을 해서 의사가 되고 검사가 되고 판사가 됩니다. 그래서 대통령도 되고 장관도 되고 국회의원도 됩니다. 그런데 도덕적 권위는 없는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사회비평가인 프랑코 베라르디(Franco Berardi)는 한국사회를 진단해 그 특징을 4가지로 요약했습니다. 첫째는 끝없는 경쟁, 둘째는 극단적 개인주의, 셋째는 일상의 사막화, 넷째는 생활리듬의 초가속화라고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야만적인 지독한 경쟁과 서열화된 교육 제도 속에 살다 보니 경쟁지상주의, 주입식교육, 학력이 계급화된 사회, 승자독식 등의 엄청난 문제를 진짜 문제로 보지 않고 당연시 받아들이는 풍토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경쟁에서 무조건 이겨야 하고 공부만 잘하면 모든 걸 용서해 주는 사회 속에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나 공감을 배울 수 없는 것입니다. 경쟁을 야만으로 생각하지 않고 경쟁에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걸 체화하여 1등만 한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사회 엘리트가 되면 인간으로 성숙성이나 존엄성은 찾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30년의 역사를 가진 '행복학'이 숱한 실험을 통해 내린 결론은 행복을 위한 제 1조건이 관계'라고 합니다. '행복학의 대가'인 에드 디너 미국 일리노이대학 교수는 '매우 행복한 사람'이란 논문에서 상위 10%의 행복한 사람들이 나머지 사람들과 보인 가장 큰 차이가 돈이나 건강, 재산이 아니라 '관계'였다고 합니다. 물론 재산, 직업, 사회적 지위, 연봉 등의 물질적 조건이 행복과 아주 무관하지는 않고 어느 수준까지는 정비례한다고 합니다. 밥 세 끼를 먹고, 아플 때 병원에 가고, 오늘 밤 어디서 자야 할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까지 물질적 조건의 영향력은 크다고 합니다. 그러나 생존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물질적 조건의 영향력은 미미해지고 그때부터 압도적 변인은 관계라고 합니다. 부모, 자녀, 배우자, 회사 동료 등과의 관계가 좋으면 행복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단 한 가지를 말한다면 사랑하는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자기와의 관계에서도 사랑이 있어야 건강한 자존감을 갖게 되고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나 직장 동료나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사랑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건강한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행복의 조건>이란 책을 쓴 미국 하버드대학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성인 발달 연구" 72년의 연구 결과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이라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사랑은 삶에서 더없이 중요한 행복의 원천이며 연인이나 배우자와 교감하는 안정적인 사랑은 그 자체로 커다란 행복일 뿐만 아니라 인생의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는 버팀목이 됩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인간관계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하고, 인간관계가 건강하고 행복해지려면 안정적인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즉 사랑의 수준이 높아지면 높아진 만큼 인간관계의 수준은 높아지고, 인간관계의 수준이 높아지면 높아진 만큼 건강하고 행복의 수준도 높아집니다.

 

2. 구체적으로 어떻게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해야 합니까?(17-18)

첫째는 물질의 도움을 통해 사랑해야 합니다(17).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갈등이 세계적으로 심합니까? 갈등은 가치관과 충돌, 감정 충돌, 욕구 출동 이 세가지에 의해 주로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탐욕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15절에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밥그릇 싸움으로 사회적 갈등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대통령과 장관, 정치인, 검사, 의사, 판사가 되면 그것은 밥그릇이 아니라 국민을 섬기라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여야 하는데 오로지 자신의 출세와 부를 쌓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유시장은 종교처럼 숭배하는 자본독재는 함께 행복하게 살지 못하게 합니다. 자본이 통제되지 않고 마음대로 활개를 치면 결국 분배정의가 실현되지 못하여 빈부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심하되고 유물론적 공산주의같은 혁명이 일어나 모두가 불행해집니다. 사랑해야 불평등도 해소되어 서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아주 미성숙하고 오만방자한 엘리트들이 권력자가 되고, 국회의원, 교수, 의사, 검사, 판사가 되면 자신이 누리는 부와 권력이 자신이 쟁취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국민을 섬기는 것보다 자신의 지위를 자신의 출세와 돈벌이의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갈등이 생기면 타인을 섬기는 것보다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려고 덤벼드는 것입니다.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도 능력주의, 경쟁 교육 시스템으로 인해 소수의 오만방자한 엘리트와 절대다수의 굴욕감을 내면화하고 있는 대중들로 사회가 완전히 갈라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학급 내 등수와 학교별 등급이 인생의 등급이 되는 끝없는 경쟁의 수직적 위계 속에서 이긴 자의 오만과 우월감과 진자의 모멸과 열등감 구조 속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경쟁을 최우선으로 하여 배출된 사람들은 능력은 있지만 존엄이 없고, 성장은 있지만 성숙은 없으며, 경쟁은 있지만 연대는 없고 지식은 있지만 사유가 없는 사람들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는 똑똑한 사람들이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루어 경제적으로는 잘 사는 나라가 되었지만 자살률 1위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1020대 사망 원인 중 자살이 1위입니다(56%). 1020대 아이 죽은 장례식에 가면 그 원인은 둘 중의 하나가 자살이라는 것입니다. 불평등 1위라는 것입니다. 미국이나 멕시코보다 더 하다는 것입니다. 정태인 씨는 자본주의 역사 250년 동안 지금 한국 사회보다 더 불평등한 사회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수입이 평등하게 분배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24%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합니다. 불평등이 심한 미국 32%라고 합니다. 임금 차이가 더 벌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59%가 넘는다는 것입니다. 미국 36%라고 합니다. 6년 마다 한 번씩 조사하는데 2020년에는 평등하게 분배되고 있다는 의식이 6년 전에 비해 더 나빠져 12%라고 합니다. 차이가 더 벌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65%가 되었답니다. 불평등을 사랑하는 나라 1위라는 것입니다. 아동 우울증 1, 산업재해 1위가 되어 불안하고 우울한 나라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경제 성장에 비해 행복도가 낮습니다. 매년 OECD에서 발표하는 세계 행복 순위에서 한국인들의 행복도는 다른 국가들보다 상당히 낮은 순위를 기록합니다. 20233월에 발표한 세계 행복 순위 보고서에서도 한국은 38개국 중 35위에 그쳤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나눔으로 행복해게 살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을 가나안 땅에 보낼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고 땅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고 안식년과 희년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살다 보면 삶의 조건으로 인해 심한 경제적 불평들이 이루어지니까 50년이 되면 원위치를 돌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한 번도 그것을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다 결국 바벨론과 아수르에게 망해 버려 모든 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늘 본문은 궁핍하여 최소한의 생활조차 어려운 이웃을 물질로써 도와주는 것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십자가의 사랑을 물질을 통해 실천했습니다. 부유한 바나바(11:24)가 실천하였습니다. 가난한 다비다(9:36-39)도 실천하였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실천하여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고 힘을 다해 어려운 교회들을 도왔습니다. 권력있는 이방인 신자 고넬료(10:1-2)도 실천하였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들이 실현한 행복한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단지 부유한 자만이 자신의 소유물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재물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궁핍한 자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착취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이나 사람을 거래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당하면 그것으로 더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고 합니다. 남의 불행을 통해 자기 부를 축적할 뿐 아니라 자신의 욕만을 채우려고 합니다. 기독교 공동체만큼 물질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가 세상에 어디 존재합니까? 건강한 신앙인들은 자신의 물질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고 십자가의 사랑을 물질로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물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때문에 신앙인들 사람을 대할 때 착취나 거나나 탐욕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로마로 처음 들어갔을 때 수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기독교인이 성찬식을 하는 것을 보고 오해해 사람의 피를 먹는다는 것입니다. 재산을 빼앗기고, 직장을 잃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순교를 당하니까 땅굴을 파고 땅 속으로 숨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카타콤입니다. 그때 로마에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길거리마다 시체가 즐비했고, 아무도 시신을 수습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자기 살기 위해 피했고 썩는 냄새가 진동하였지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했답니다. 한밤중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 시신을 수습했답니다. 자신에게 남은 작은 재물을 가지고 카타콤에 숨어 있었던 기독교인들인 사랑을 실천한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실천이 사람들에게 기독교 대한 오해를 풀게 하고 신앙인을 미워하던 사람들의 마음의 빗장을 풀게 했다고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돈을 하나님으로 숭배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 누가 자신의 재물로 나라를 사랑하며 헌신을 합니까? 일본 강점기 때 누가 재물보다 귀한 목숨을 걸고 독립을 위해 싸웠습니까? 3.1운동 때 어떤 사람들이 주역을 했습니까? 6.25 때 누가 더 공산주의 자를 반대했고, 독재 시대 때 누가 작은 물질이라고 헌신하여 더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습니까? 지금도 누가 남북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누가 어려운 이웃을 섬기고 있습니까? 자원봉사 참여율 1위가 개신교인이며, 기부금을 통해 사회의 약자를 돌보는 사람들도 1위가 기독교인들입니다. 죽음과 고통을 무릅쓰고 세계 오지에 가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개신교인들입니다. 기독교는 이익이 아니라 가치를 더 중요시하는 가치 공동체, 사랑 공동체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에 자신의 생명까지도 거는 공동체입니다.

 

둘째는 말과 혀로만 하지 말고 오직 행하므로 해야 합니다(18).

1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말과 혀로만 사랑을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물론 말과 혀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행함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사랑에는 자기로부터 시작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이런 사랑은 철저히 이기적인 사랑이요, 자기 욕망에서 시작되는 에로스적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은 이용가치가 있으면 사랑하고 이용 가치가 없으면 버립니다. 사랑에는 상대방으로부터 시작되는 사랑이 있습니다. 상대가 나를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로의 이익을 위하여 아끼는 필리아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성경은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할 만한 가치가 없고, 사랑해도 그 보상을 기대할 수 없음에도 먼저 사랑하여 주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폐적인 사랑입니다. 이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 실천적으로 헌신하는 사랑입니다. 다미엔 신부는 하와이 군도 몰리카 섬에서 문둥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 자신도 문둥이가 된 사랑은 말과 혀의 사랑이 아닙니다. 행함이 있는 사랑입니다.

산돌 손양원(1902~1950) 목사님은 1948년 좌익과 우익이 충돌한 여수ㆍ순천 사건 때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낮에는 군경이, 밤에는 좌익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순천사범학교와 순천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두 아들이 좌익 학생에 의해 학살당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예수님의 말씀인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죽인 원수를 살리기 위해 직접 구명 운동에 나섰습니다. 급기야 그 원수를 자신의 양자로 삼았습니다. 아들에게 못다 준 사랑을, 아들을 죽인 아들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

 

셋째는 거짓이 아니라 진실함으로 해야 합니다(18).

거짓 사랑은 이 세상에 차고 넘칩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무엇이 최대의 이단이냐? 최대의 이단은 교의상의 이단이 아니라, 가장 큰 계명인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것이 최대의 이단이다." 라고 했습니다. 사랑엔 진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김태형 저)>에서 저자는 사랑을 "아끼고 위하는 따뜻한 인정을 베푸는 일 또는 그 마음"이라는 사전적 정의로 해석하며 사랑을 '어떤 대상을 귀중히 여기고 아끼며 위하는 마음'이라고 정의합니다. '어떤 대상'이라는 말은 사랑의 대상으로 인간은 자신에게 귀중한 대상을 당연히 귀중히 여기고 그 대상을 아껴주고 위해주는 마음을 가지는 데 이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사람이 귀중하게 여기도록 하는 요인은 요구, 욕망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욕망에 기초해 대상을 대하고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를 원하기에 그 욕망의 실현에 도움이 되는 대상이나 조건 등은 귀중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자신의 욕망 실현을 방해하거나 좌절시키는 대상이나 조건 등은 귀중하게 여기지 않거나 증오한다는 것입니다. 이데올로기나 가치관 같은 신념 또한 그 주요 요인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이데올로기나 가치관에 부합하는 대상은 귀중히 여겨 사랑하는 반면 그것에 부합하지 않는 대상은 사랑하지 않거나 증오한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욕망은 다르므로 사람마다 사랑의 대상도 다를 수 밖에 없지만 현실에서 욕망은 사회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특정한 시기에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욕망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한국은 돈이 인간 위에 군림하는 세상, 돈을 숭배하는 사회라 사람들 대부분은 돈을 사랑하며, 나아가 돈이 많은 사람 혹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한국인들이 부자, 성공한 사람, 유명한 사람, 예쁜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들이 곧 돈을 상징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종잇조각에 불과한 돈은 그 자체로는 별로 귀중하지 않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온갖 욕망을 다 실현하게 해주는 강력한 도구라고 합니다. 돈은 생존의 조건이며 권력이나 사회적 지위를 갖게 해주고, 인기를 누리게 해주고, 존중 혹은 존경받게 해주고, 과시하거나 잘난체할 수 있게 해주고, 경제적 지원이나 선물을 주는 행위로 사랑을 얻도록 해주는 등 모든 욕망을 실현하게 해주는 강력한 도구이자 매개물로 기능하기 때문에 제일가는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은 인간이 아닌 인간보다 돈을 더 존중하게 만드는 가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돈에 대한 욕망은 돈이 없으면 굶어 죽게 될 거라는 생존 불안, 돈을 잘 벌지 못하면 남들한테 존중받지 못할 거라는 존중 불안에 시달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받는 경험을 통해 성장하고, 나아가 공동체의 지지를 받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인데 현대 한국의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체제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여 도구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체제를 내면화한 사람들은 자연히 인간관계에서도 이해득실을 따져 가며 손해 보는 사랑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인간 소외와 개인화를 초래한다고합니다. 거기다 경쟁에서 패배해 돈을 벌지 못하면 생존 자체를 위협받을 거라는 생존 불안,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경제적으로 빈곤하면 사회에서 멸시받을 거라는 존중 불안은 모든 타인을 잠재적 경쟁자로 여기게 만들어 주변 사람을 향한 적개심을 부추겨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낳은 생존 불안과 존중 불안이라는 이 두 원인이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악화하여 사랑에 실패하도록 만드는 주범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말세의 징조를 말하면서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디모데후서 3:2)”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디모데전서 610절에서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인은 진짜 사랑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것입니다.

2차 대전이 한창이었던 1943122, 뉴욕 항을 떠난 연합군 병력수송선 도체스터호는 904명을 태우고 어둠을 가르며 북으로 향하고 있었답니다. 항해 12일 만에 그 해 2355분 독일 잠수함(u-233)이 도체스터 호에 어뢰를 쏘았답니다. 얼마가지 않아 도체스터 호는 어뢰를 맞고 점점 물에 잠기기 시작하였답니다. 도체스터 호는 아수라장이 되었답니다. 비상 훈련을 기억해내는 병사는 아무도 없었으며 모두 상대편을 잡고 울부짖었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네 명의 군목들은 매우 침착하게 구명조끼를 나누어 주며 병사들을 구명정 타는 곳으로 안내했답니다. 더 이상 나누어줄 구명조끼가 없었답니다. 그 때 군목 폴링이 한 병사에게 물었답니다. "자네 예수 믿는가?" "아니요" 그러자 군목은 자기가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주면서 말했답니다. "나는 예수를 믿으니 지금 죽어도 천국 간다. 너는 이 구명조끼를 입고 살아서 꼭 예수를 믿고 천국에서 만나자" 네 명의 군목은 모두 다 자신이 낀 장갑과 구명조끼까지 벗어 병사들에게 주었답니다. 도체스터 호에는 점점 물이 차올랐습니다. 자신의 구명조끼마저 병사들에게 준 네 명의 군목은 서로 팔을 끼고 기울어진 갑판에 서서 "내 주를 가까이"라는 찬송가를 부르며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생존한 병사 Grady Clark은 그들의 최후를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내가 본 마지막 장면은, 군목들이 기도하는 모습이에요. 그들은 최선을 다했고 나는 그들을 다시 보지 못했어요. 그들은 자기 자신들이 입고 있었던 구명조끼와 장갑을 병사들에게 벗어 주었어요." 병사 904명 중 605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살아남은 수병들이 군목들의 희생을 기억하였습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이들 4명의 군목 폭스, 구스, 폴링. 웨싱턴을 기리는 예배당을 짓게 했답니다(US Naval Chapel 미해군 예배당) 필라델피아 시에서는 이 용감하고, 희생적인 4인의 군목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서 기념관을 짓고, '4인의 불멸의 군목들'이라는 기념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15:1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이렇게 죽기까지 사랑하면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납니까?(19-24)

첫째, 진리에 속한 줄을 알게 됩니다(19).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줄을 알게 됩니다.

둘째, 우리 믿음이 굳세어지고, 성장하게 됩니다(19).

셋째,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습니다(21).

넷째,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됩니다(22).

다섯째, 그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 안에 거하게 됩니다(24).

주님과 연합되어 진정한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사랑이 사람을 바꾸고 사랑이 세상을 하나님이 원하는 세상으로 바꿉니다.

세상은 좁은 6단계로 이루어진 세상이라고 합니다. 6단계만 연결하면 누구와도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 연결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전염병만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도 행복도 전염된다는 것입니다. 건강, 정치, 종교, 문화, 성적 취향, 비만, 금연, 정치적 성향, 배우자 선택 등 다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행복 전염도 3단계 영향의 법칙이 있습니다. 나는 친구에게 15% 영향을 주고 친구의 친구에게 10%, 친구의 친구에게는 7%의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면친구가 사랑하고친구의 친구가 사랑하고세상이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행복하면친구가 행복하고친구의 친구가 행복하며세상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어느 사회학과 교수가 자신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과제물을 내었답니다. 그것은 볼티모어의 유명한 빈민가로 가서 그곳에 사는 청소년 2백 명의 생활환경을 조사하는 일이었답니다. 조사를 마친 뒤 학생들은 그 청소년들 각자의 미래에 대한 평가서를 써냈답니다. 평가서의 내용은 모두 동일했답니다. "이 아이에겐 전혀 미래가 없다. 아무런 기회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뒤, 또 다른 사회학과 교수가 우연히 이 연구 조사를 접하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그는 학생들에게 그 2백 명의 청소년들이 25년이 지난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추적 조사하라는 과제를 내었답니다. 학생들의 조사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답니다. 사망을 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20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180명 중에서 176명이 대단히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답니다. 그들의 직업도 변호사와 의사와 사업가 등 상류층이 많았답니다. 교수는 놀라서 그 조사를 더 진행시켰답니다. 다행히 그들 모두가 그 지역에 살고 있었고, 교수는 그들을 한 사람씩 만나 직접 물어볼 수 있었답니다. "당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답은 모두 한결같았답니다. "여 선생님 한 분이 계셨지요." 그 여교사가 아직도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답니다. 교수는 수소문 끝에 그 여교사를 찾아가서 물었답니다. 도대체 어떤 기적적인 교육 방법으로 빈민가의 청소년들을 이처럼 성공적인 인생으로 이끌었습니까? 늙었지만 아직도 빛나는 눈을 간직한 그 여교사는 작은 미소를 지었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그것은 정말 간단한 일이었지요. 난 그 아이들을 사랑했답니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의 사랑만 풍성히 받아도 세상은 달라집니다. 오늘 이 시대는 사랑에 굶주린 시대입니다. 무한한 사랑의 샘물인 하나님이 계시는데도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에 굶주려 메마른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면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의지적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비판하고 싶은 사람도 의지적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서로 십자가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면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물질의 도움을 통해 사랑하시길 바랍니다(17) 말과 혀로만 하지말고 오직 행함으로 사랑하시길 바랍니다(18) 보여주기식 사랑이 아니라 진실함으로 사랑하시길 바랍니다(18).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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