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를 넘어 확신으로(9) 부활을 믿을 수 있다고?
요20:24-29
오늘은 예수님이 사망권세를 깨고 부활한 날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다 부활한다는 사실을 믿고 삽니다. 그런데 교회 다니는 사람 중에서도 어릴 때는 의심없이 믿었는데 <예수는 없다>, <예수는 신화다>라는 영화나 책을 보면서 부활신앙이 흔들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믿지 않습니까? 성경 기록자의 진실성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진실성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달자의 진실성을 의심하기 때문에 믿지 않습니다. 신화적 기록이고, 역사적 신빙성이 없는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꾸며낸 신화적 이야기라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역사를 평가할 때 현대인을 지배하는 사고 구조를 근거로 한 것입니다. 세 가지입니다. 첫째가 비평의 원리입니다. 둘째가 유추의 원리입니다. 셋째가 상관의 원리입니다. 역사를 나눌 때 크게 기록된 역사와 사실적 역사로 나눕니다. 기록된 역사는 기록하는 사람에 의해 쓰여지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일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기록된 역사가 사실이려면 객관성이 필요합니다. 많은 증거와 증인이 필요합니다. 고증이 필요한 것입니다. 개연성이 있어야 합니다. 지나간 역사는 과학적 실험을 통해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경험과 불일치가 되면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꾸며낸 이야기, 신화로 생각합니다. 과거 발생한 사건은 오늘과 상호 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경험은 결코 현재의 경험과 완전히 다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란 단회적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일어 날 수 없는 것은 과거에도 일어날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입니다. 지금 부활이 없는데 어떻게 과거에 부활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부활이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과학 문명이 발달되지 못한 그 당시 제자들의 신앙 고백적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신격화하기 위하여 꾸며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물리적,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신앙 고백이나 신앙으로 신학화한 것으로 생각하며 역사성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학자 가운데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트만은 신약성경에 나타난 구속 사건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신화론적 세계상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는 예수가 선재한 신적 존재이지만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와서 기적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고 무덤에 묻힌 지 사흘만에 부활하고 승천하고 재림하는 것 등을 모두 신화론적 진술로만 이해해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실제 부활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의 신앙 안에서 부활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역사다>라는 책을 쓴 리 스트로벨이라는 사람도 한 때 그러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예일대 법대 출신의 명 저널리스트였고 철저한 무신론자였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아주 냉소적 회의론자였고,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고 믿었으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이 막연히 희망이나 얻어 보려고 신과 부활, 천국 등을 지어냈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신앙은 굳이 시간들여 알아볼 가치조차 없는 말짱 허튼소리였으며 기자로서 최대의 쾌락을 얻는데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살았답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몹시 부도덕하고 술에 찌는 삶이 연속되었으며 자아도취에 빠졌고 설명하지 못하는 분노가 부글부글 끓었답니다. 술 먹고 아내와 싸우고 홧김에 발길질하여 거실 벽이 구멍이 뚫릴 정도여서 어린 딸은 아버지가 술 먹고 들어오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 숨었답니다. 어느 주일날 아내가 교회를 가자고 해서 아내를 잘못된 신앙에서 건져내려고 교회에 갔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신앙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고 자신의 전공인 언론학과 법학적 지식과 기자 정신으로 21개월 간 예수님이 진짜 부활했는가를 추적하였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21권의 책을 쓴 하버마스 박사도 10년 넘는 시간 동안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였다고 합니다.
1. 당시 예수님의 제자였던 도마는 부활을 믿었을까요?
2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왜 믿지 못하게다고 합니까? 손가락을 못 자국과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1세기의 유대인들은 부활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부활 사실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죽은 사람이 살아나 영원히 사는 일이 없으니 예수님도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유비의 원리, 개연성과 확실성 차이). 인간은 하나님 될 수 없기 때문에 부활을 믿을 수도 바랄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그리스 로마 사상은 이원론적 인간관을 가졌기 때문에 육체로부터 영혼이 자유로워져야 하지 육체의 부활은 당시 철학과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그는 자신이 직접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했기 때문에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각종 기적을 실제적으로 체험받은 사람들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것을 본 사람들입니다. 나이성 홀로된 여인의 아들을 살리시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것을 본 사람들입니다. 38년된 병자를 치유하는 것을 본 사람들입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것을 본 사람들입니다. 바다 위를 걸어가시고 폭풍을 잠잠케 하시는 초인적인 능력을 보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부활하셨다고 하니까 자신들이 직접 목격하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고, 인간의 한계입니다. 역사 속에 일어난 사건은 우리가 보지 못해서 믿지 못할까요? 진조 할아버지 계셨음을 믿습니까? 보았습니까? 보지 않았지만 믿습니다. 이순신 장군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물리친 장군이라는 것 믿습니까? 수많은 역사적 사실을 믿습니다. 보았습니까? 보지 않은 것이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왜 믿습니까? 기록된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기록한 사람이 진실을 기록했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전달해 주는 사람이 거짓이 아니라 사실을 전달해 주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성경에 예수님의 부활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 이외에도 일부의 역사가들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역사적 인물이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으니까 부활을 합리적으로 설명을 합니다.
기절설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일시 기절했을 뿐이며 장사를 한 후 정신이 되돌아와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빈 무덤설을 말합니다. 무덤을 잘 못 찾았다고 말합니다. 어두운 새벽길에 잘못 찾아서 빈 무덤을 보고 주님이 부활한 것으로 오해했다는 것입니다.
도난설을 말합니다.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 옮겨 놓고는 부활했다고 거짓을 퍼트렸다는 것입니다.
환상설을 말합니다. 부활이 없었는데 돌아가신 후 죄송한 뉘우침에 부활을 말씀하신 것을 굳게 믿고 심히 피곤하여 머리속에 그리다가 마침내 환상을 보고서 이것을 실제인양 퍼트렸다는 것입니다. 마음 속에서 정신적으로 되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종교적 상징인데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역사적 사건으로 오해했다는 것입니다.
신비설을 말합니다. 바벨론 신화. 동방신화에 나오는 부활설을 예수에 적용했다는 것입니다. 불트만 같은 사람은 부활 사실은 믿지 않으나 부활 신앙을 강조합니다. 부활은 역사적 사건과는 달리 신앙적인 것이니 역사적 증거를 찾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활은 은유나 상징으로 보는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의심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죽음의 역사성, 둘째, 부활 기사의 신빙성, 셋째는 빈무덤의 역사성, 넷째는 부활 후 출현의 역사성입니다. 결국 부활은 역사 속에서 일어난 실제적이고 유일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가설을 만드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부활을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2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부활하신 주님이 헛개비가 아니라 확실하게 손발에 못을 박히고 옆구리에 창이 찔리신 그 예수님이신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십니다. 과학적 사실은 증명으로 입증되지만 역사적 사실은 증거로 입증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증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유명한 법학 교수 사이몬 그린리프(Simon Greenleaf) 박사는 증거를 다루는 천재로서 하버드 대학교 법학과를 미국의 명문으로 끌어 올린 석학입니다. 그는 법원에서 사용하는 증거의 법칙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자료들에 적용한 결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상 어떤 사건보다 더 확실한 증거로 증명되는 사건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로슈 멕도르씨는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지금까지 사람들을 속여 오던 일 중에서 악랄하고 비도덕적이고 비양심적인 위선 중에 최대의 위선이라"고 했습니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라면 인류 역사상 가장 기적적인 사건일 것이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했다는 것이 사기이고, 환상이고, 꾸며낸 이야기이고, 신화일까요? 기절하였다가 다시 일어났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은 성경의 증언이면서 역사적 사실입니다. 빌라도도'빌라도 보고서'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초기의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그는 메시아였다. 우리 유대인들 중의 지도층 사람들이 그를 고소했기 때문에 빌라도는 그를 정죄하여 십자가의 처형을 받도록 했다."라고 기록했고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도 "이 이름의 창설자인 그리스도는 티베리우스의 통치 기간 중에 총독 빌라도에 의해 처형되었다."라고 기록함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역사적 사실인 것을 확실하게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여인들이 무덤을 잘못 찾아가서 빈무덤을 보고 착각했겠습니까? 예수님의 묘지는 공동묘지가 아니라 개인 묘지이기에 찾기에 쉬웠습니다. 여인들이 무덤의 위치를 미리 확인하여 두었습니다.(눅23:55). 제자들이 시체를 도둑질하여 옮겨놓고 거짓으로 부활했다는 소문을 퍼뜨렸겠습니까? 그럴만한 이유가 없습니다. 잡히시던 현장에서 도망하고 주님을 부인하던 제자들입니다. 또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 부활을 전했을 때, 믿지 않으려고 확인까지 하려던 제자들입니다.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제자들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순교하였는데 한결같이 거짓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버렸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너무 그리다가 그만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고 헛소리 한 것입니까? 여러 사람이 일시에 환상을 보고 실제적 사건으로 오인했다고 생각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후, 40일간 무려 11번 나타나셨고 갈릴리 지정된 산 위에서는 500여 형제에게 일시에 나타나셨습니다.
확실한 증거는 부활을 목격한 예수님의 가족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의 가족과 친척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요7:5) 미쳤다고 했습니다.(막3:21) 그러나 그들은 부활을 목격하고 그들의 삶은 변하였습니다(행1:14) 희생제사, 율법, 안식일을 기반으로 하는 유대 사회가 변했습니다. 1500여 년 동안 이어온 안식일이 예수님이 부활한 날로 예배가 바뀌었습니다. 역사는 사실적 역사와 기록된 역사가 있습니다. 사실적 역사는 증거와 증인에 의해 진위를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많은 부활의 증인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진실성을 입증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역사학 교수였던 토마스 애놀드는 말하기를 "나는 여러 해 동안 과거의 역사를 연구하고, 그 사실을 조사하고, 이에 대하여 기록한 문헌과 유물을 고증하여 그 사실 여부를 조사하여 오는 중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는 표징, 곧 그리스도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보다 더 분명하고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을 인류사에서 나는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음도, 부활 기사도, 빈무덤도, 부활 후 출현도 역사적 사실입니다. 부활을 목격한 바울은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살지 못하였고,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 믿음도 헛것, 금생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고전15:16-19)"라고 말합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요구합니까?
부활에 대한 회의론자가 되지 말고 확실하게 믿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세 가지의 믿음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가 있습니다.
첫째는 본능적인 믿음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믿음입니다. 개연성, 상식에 의하여 생기는 믿음입니다. 내일 아침에 해가 뜰 것입니다. 내일 죽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밥을 주는 것에 독이 들어 있지 않을 것입니다. 집이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는 이성적인 믿음입니다. 과학적 사고에 의한 믿음입니다. 경험해 보고 증명해 보고 믿는 믿음입니다. 과학이나 경험을 통하여서 믿어진 믿음입니다.
셋째는 영적인 믿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천국을 믿고, 영적인 것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살후3:2)"라고 말씀합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오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령에 의하여 영적인 새생명이 있는 사람만이 가지는 신비한 것입니다. 기적입니다.(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고전 2: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러므로 이 믿음을 가진 자가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요한복음에만 "믿음"이라는 말이 모두 98회 나옵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람을 만나실 때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을 바라십니다.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만 하면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부활절 막연한 부활신앙이 확고한 부활신앙으로 변하시길 바랍니다. 냉소적인 부활신앙이 경험적인 부활신앙으로 변화되시길 바랍니다. 무기력한 부활신앙이 영향력을 부는 부활신앙으로 변화되시길 바랍니다.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실 때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5-26)" 믿습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나오는 것입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12살난 딸을 살려 주실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였습니다. 나사로를 살릴 때 예수님이 원하는 것은 믿음이었습니다.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라고 말하자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롬 14:23)"라고 했습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 가장 없어지는 것은 바로 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확실하게 믿어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은 증거가 없어서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기적을 믿지 않는 것은 근본적으로 믿지 않으려는 태도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에 부활도 기적도, 성경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왜곡하여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하였다고 할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맨 처음 만난 사람이 베드로나 요한 같은 제자들이 아니고 죄인 취급을 받았던 막달라 마리아라는 사실을 기록하지 않고 빼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여인들은 증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사도들이 두려움과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사실대로 기록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의심하는 도마의 기록도 빼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을 정확합니다. 의심할 만한 사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람이 기록하였지만 성령의 감동을 받고 기록하였기에 사실 그대로를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가장 큰 증거는 제자들의 생활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도망간 자들입니다. 장례식에 조차 참석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낙담하고 뿔뿔이 흩어진 자들입니다. 여인들이 부활을 전해 주어도 믿지 않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순교를 하였습니다. 진리를 위해 목숨을 내 걸 수 있지만 거짓과 사기를 위해 누가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내어 놓겠습니까? 죽은 다음의 생명을 분명히 믿은 제자들이 순교의 잔을 마신 뒤, 위대한 신앙인들은 순교의 길을 기쁨으로 알고 따라 나섰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탄생되었습니다. 이 보다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도행전의 삶들은 부활을 증거하였고(행4:2), 베드로는 부활을 말하지 말라는 사두개인들에게 사람의 말과 하나님의 말 중에 어느 것을 듣겠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행2:14-36) 사도행전은 '부활의 복음서'라고 불릴만큼 부활이 확증하고 있습니다.(2:23, 32,3:15, 26, 4:10, 33, 5:30, 10:40, 13:30-34, 17:31)
바울이 고린도 전서를 기록할 때가 ad 55년 또는 56년으로 본다면 부활에 대한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 왜곡되거나 창작될 가능성이 없습니다. 아직도 수많은 목격자들이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가족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의 가족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였습니까? 성경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육신적 신구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요7:5)"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막3:21)"
그러나 그들은 부활을 목격하고 변하였습니다. 행1:1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확실히 부활하였습니다.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예루살렘 교회의 감독)가 주후 62년경 순교하기 직전에 기록한 말씀입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예수님에 대한 신앙 때문에 돌에 맞아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뭐라고 말씀합니까? 야고보서 1장 1절에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였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부활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쉽게 희생제사와 율법을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돌아가신지 불과 5주 만에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메시아로 받아들였습니다. 안식일 제사 대신에 주일 예배를 드렸습니다. 5천명이 3천 명이 그렇게 갑자기 1500여년동안 이어져 오던 전통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확실하고 큰 사건, 인생관을 바꾸어야만 하는 사건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채 20년이 되기 전에 로마의 황실에까지 복음이 들어갔겠습니까? 당대의 기준에 보기에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부활을 믿을 수밖에 없었겠습니까? 예수님이 확실히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화형장의 이슬로 살아졌고, 사자굴 앞에서도, 십자가 앞에서도 담대하게 부활을 전하였습니다.
3. 도마는 예수님을 말씀을 듣고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하여 어떤 고백을 합니까?
2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21권의 책을 쓴 하버마스 박사도 10년 넘는 시간동안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수십년 동안 예수님의 부활을 연구할수록 예수님은 실제적이고 육신적으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대 역사 자료에도 45개가 있으며 이중 예수님의 생애, 인격, 가르침, 죽음, 부활 등에 관련된 역사 기록은 총 129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로마 황제 시저에 대한 기록은 9개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세계를 지배했던 시저보다 훨씬 더 많은 기록이 있는 것입니다. 하버마스 박사는 부활에 대해 접근하면서 "최소의 사실(minimal facts)"을 확인하려 했답니다. 그는 자유주의 학자나 회의적인 학자나 다 같이 동의하는 것을 위해 여러 자료들로부터 증명되지 않은 자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답니다. 부활에 대하여 다수의 비판적 학자들도 인정하는 것만 골랐답니다. 6가지가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로마 군인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된 것은 역사적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없다>라는 영화나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신화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 역사 속에 존재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의 모습을 보고 믿음을 회복한 것, 죽은 자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본 제자들은 완전히 변화되어 두려워하던 모습을 벗어버리고 담대해 진 것, 부활의 선포는 기독교 운동의 시작이 된 것, 예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믿은 자들 중에는 예수의 형제였던 회의론자 야고보 사도도 있었던 것, 다른 회의론자 사도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완전히 변화된 것 등이었답니다. 이 사실은 부활에 대하여 우호적인 학자든 적대적인 학자든 일반적으로 동의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부활에 대한 회의론을 가지고 가능한 역사적 접근을 해 보았지만 부활을 부인할 수 없어 부활을 믿고 그것을 증거하는 사람으로 바뀐 것입니다.
리 스트로벨은 <예수는 역사다>라는 책에서 그는 기자의 눈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추적한 결과 예수님의 부활은 가능성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류 역사 속에 그 어느 누군가에게 여덟 개의 예언이 성취될 확률은 1만 조분의 1이다."라고 합니다. 이 확률은 미국 텍사스 주(한반도의 세배 넓이) 전체를 은화 동전으로 덮는데, 그냥 덮는 것이 아니라 동전을 60cm 높이로 쌓아 덮고, 그 중에서 미리 표시한 단 한 개의 동전을 단 한 번에 정확하게 집어낼 확률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예언은 구약성경에 약 300개 이상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라고(창3:15) 했는데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갈4:4-5). 베들레헴에서 탄생과(미5:2; 마2:1) 탄생의 때(단9:25; 눅2:1-2), 동정녀 탄생(사7:14; 눅1:27), 헤롯의 학살(렘31:15; 마2:16-18), 애굽으로 피난(호11:1; 마2:14-15), 하나님의 아들(시2:7; 마3:17), 친구에 의해 배반당함(시41:9; 눅22:47-48), 은 삼십에 팔림(슥11"12; 마26:15), 손과 다리가 찔림(시22:16; 요20:27), 조롱과 모욕당함(시22:7-8; 눅23:35), 뼈가 꺾이지 않음(시34:20; 요19:32-33), 옆구리가 찔림(슥12:10; 요19:34), 부자의 무덤에 장사지냄(사53:9; 마27:57-60), 부활하심(시16:10; 막16:6-7), 승천하심(시68:18; 막16:19) 등 수많은 예언들이 성취되었습니다. 수학자 피터 스토너는 어떤 한 사람에게 총 48개의 예언이 성취될 확률은 1조의 13승분의 1(1/1조¹³)이라는 거의 측정 불가능한 통계 수치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예언은 그대로 역사 속에서 성취되었습니다. 무신론자였던 리 스트로벨은 침대 옆에 털썩 무릎을 꿇고 여태껏 부도덕하게 살아온 삶을 다 쏟아 놓고 회개하였답니다. 그리고 주방에 있는 아내에게 갔답니다. 아이가 있어 얼른 끌어안았답니다. 그러나 아이는 잽싸게 빠져나갔답니다. 그는 아내에게 말했답니다. "여보, 예수님은 부활하여 살아 계셔, 방금 막 그분께 내 삶을 드렸어" 울음을 터뜨리며 내 목을 끌어안았답니다. 아내도 울먹이며 기도 응답이라고 그를 받아 주었답니다. 그의 성격은 완전히 변했고 가치관과 도덕성과 태도와 철학과 세계관과 대인 관계와 우선순위도 달라졌답니다. 사람이 어찌나 확 달라졌던지 어린 딸도 알아차릴 정도였답니다. 마침내 어느 날 딸아이가 자기 주일학교 교사와 엄마에게 차례로 이렇게 말했답니다. "하나님이 아빠한테 해주신 일을 나한테도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딸아이는 다섯 살 때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되었답니다. 현재 앨리슨은 활기가 넘치는 그리스도인, 여러 권의 기독교 소설을 펴낸 작가, 기독교 아동 도서를 쓰는 신학교 졸업생의 아내가 되었답니다. 아들 카일은 역시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되어 학부에서 성경학을 공부한 뒤 종교철학과 신약성경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스코틀랜드 애버딘 대학교에서 신학박사를 했답니다. 그도 목사가 되어 <특종! 믿음 사건>, <창조 설계의 비밀>, <리 스트로벨의 예수 그리스도> 등 많은 책을 내어 회의론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있습니다. 문학적인 천재이며 캠브리지의 중세와 르네상스 문학 교수인 'C.S 루이스'는 기독교는 틀렸다고 생각하는 분이었습니다. 자기가 기독교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기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라고 했었습니다. 그런 그가 밤마다 연구를 하다가 자기가 가장 협오했던 복음서의 역사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의 부활하심과 그 분이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엎드려 회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4.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하여 신앙고백을 하는 도마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29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이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약속해 주시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1)영생의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물고기 두 마리가 싱싱한 지렁이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한 물고기가 그것을 집어삼키려고 하자 다른 물고기가 타이릅니다. "저 지렁이는 낚시 바늘에 걸려 있는 거야. 저것을 잘못 삼키면 바늘에 걸려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는 신세가 되고 말아." 그러나 다른 물고기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누가 믿어? 아무도 그것을 증명하지 못했잖아. 어디 사람들의 식탁까지 갔다 온 물고기가 있으면 증명해 봐. 네가 저 지렁이를 욕심내는 거지?" 그 물고기는 덥석 지렁이를 삼켰습니다. 그러면 다시는 바다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집니다. 지렁이를 삼킨 물고기처럼 그 때 후회해도 이미 기회를 잃게 됩니다.
2)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3)기도응답을 받습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21:22)"
4)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이 있습니다. 병고침을 받고 능력을 행합니다. 소원을 이룹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9:23)"
5)세상을 이깁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
6)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7)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벧전1:5)"
참으로 부활의 믿음을 가진 자가 복된 자입니다. 부활의 믿음으로 영생의 복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심판에 이르지 않기 바랍니다. 기도응답을 받고, 병 고침을 받으며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부활의 능력을 행하고 소원이 이루어져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길 바랍니다. 마귀의 유혹과 공격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고 복음으로 세상을 이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믿음을 가진 자에게 이런 행복을 주실 것을 성경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는데도 여전히 부활에 대하여 의심하는 신앙이 아니라 확신하는 신앙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막연한 부활 신앙이 아니라 확고한 부활신앙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냉소적이고 관념적인 부활 신앙이 아니라 경험적 부활신앙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내 안에 머무는 부활이 아니라 이 부활을 능력 있게 전하는 삶으로 변화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4.3.31.
열기 닫기
| 쪽지 보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