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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를 넘어 확신으로(2) 사람이 거듭날 수 있다고?(요3:1-10)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0214 추천수:3 218.155.63.46
2024-02-11 13:25:35

회의를 넘어 확신으로(2) 사람이 거듭날 수 있다고?

3:1-10

 

설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갑니다. 설날 온 가족이 모여 조상에게 감사하고 새해 복을 비는 설날 차례를 드립니다. , , , 고기, 생선, 과일, 나물 등 다양한 음식을 준비하고 전통 한복을 입고 닭이 울기 전에 조상에게 절을 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 때 교회를 다니는 집을 빼고는 동네 모든 집이 제사를 지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조상들이 육신적으로 죽었지만, 영혼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영혼은 존재할까?” “과연 죽음 후에도 삶이 있을까?”라는 회의를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 지고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 중에서도 어릴 때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며 인간의 영혼의 존재를 믿고 천국에 대하여도 믿게 됩니다. 그러나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 과학적 지식을 취득하다 보면 인간에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영혼이 있을까? 사후 세계가 있을까?”라는 회의를 품게 됩니다. 그러다 증명되어 존재하는 것만이 사실이라는 과학주의적 생각을 진리처럼 받아들이면 포이에르바하와, 마르크스, 니체, , 러셀, 사르트르, 쇼펜하우어, 볼테르, 프로이드 등과 같은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릴 때 교회에 다녔지만 조금 지식이 들어가니까 교회를 떠나 버린 사람들입니다. 포이에르바하는 인간을 지고의 존재로 만들었고, 마르크스는 하나님을 물질로 대체하였으며, 니체는 '하나님의 죽음'을 선포함으로 인간이 하나님이 되고자 하나님이 없기를 원하는 몸부림으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조금 배우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 줄 알고 무신론자, 회의론자가 되어 영혼이 있으면, 내세가 있으면, 하나님이 있으면 증명해 보라며 하나님은 인간의 산물이고 영혼도 내세도 없으니 이 땅에서 즐기고 살아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그저 죽으면 그만인 덧없는 생물 유기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영혼이란 것은 단순히 생물학적 현상일 뿐이지 영속하고 불멸하는 영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원자, 분자, 화합물, 세포, 조직, 기관으로 구성된 유기체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것만이 증명되고, 증명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과학적주의적 사고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영혼은 인간의 뇌와 신경계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현상일 뿐이고, 미신이고, 육체적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어 기제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정신 활동이라는 것은 단지 1.4kg의 뇌, 1000억개로 이루어진 세포 덩어리라는 물질 활동에 불과한 것이고 뇌가 살아짐과 동시에 인간 존재는 소멸된다는 것입니다. 과연 인간은 세포덩어리에 불과하고 영혼은 존재하지 않을까요?

 

1. 비물질적 세계인 영원히 사는 영혼이 있을까요?

79억 세계 인구 중 약 93%는 영혼의 존재를 믿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 루이스 벌콥은 인간에게는 본유적 혹은 생득적 지식과 후천적 지식이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누가 알려 주지 않아도 정상적인 상태라면 막연하나마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영혼의 존재를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영혼 없는 동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27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하였습니다. 어떻게 창조하였습니까? 창세기 27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흙으로 인간의 육체를 만드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생기를 주어 생령이 되게 했습니다. 영적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의 속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공유적 속성과 비공유적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님만 가지고 있는 속성인 비공유적 속성에는 불변성(3:6), 영원성(92:2), 편재성(22:23-24), 전능성, 전지성 등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가지고 있고 인간도 가지고 있는 공유적 속성이 있는데 그것은 영성, 인격성, 지성적 속성(지식, 지혜), 도덕적 속성(, 거룩, ), 주권적 속성(자유의지, 능력) 등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단지 인간을 세포덩어리로 지은 것이 아니라 영혼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본유적으로 영혼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로마서 119-20절에는 그 사실을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그러나 타락한 인간이 정확히 알지 못하니까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확실하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은 육으로 난 것이 있고, 영으로 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물질적 육이 있지만 비물질적인 영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알려 주십니다. 마태복음 1028절에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영혼은 불멸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28절을 찾아 읽어 보십시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과학은 물질적 현상의 사실을 밝히는 학문입니다. 존재와 증명의 기준이 되는 인간이 현재까지 발명한 측정 기기나 관찰 도구에 의해 정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구로 비물질적 영적 현상을 측정할 수 없습니다. 비물적 세계를 물질적 측정 기구로 측정할 수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정신적 속성과 물질적 속성을 다릅니다. 정신적 속성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입니다. 정신적 속성은 내적 성찰 가능합니다. 의도와 목적이 있습니다. 감각적 경험이 있습니다. 명제적 태도가 있습니다. 1인칭 자아가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로만 되어 있는 컴퓨터는 수만대를 연결해도 이런 것이 없습니다. 자의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육체를 초월한 자의식, 자기 정체성이 있께 때문에 인간은 단순한 물질로만 되어 있지 않는 것입니다. 물질을 초월한 영혼이 없다면 자유의지와 자유 선택이 불가능합니다. 세포의 화학적 반응에 의해서 내 안에서 일어난 화학 법칙에 의해서 일어난다면 자유 선택이나 자유의지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영혼의 기원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믿을 수 없으면 겸손하게 그냥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정직한 것입니다.

과학에는 질량 분변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질은 결코 무가 될 수 없고, 형태를 바꿀 뿐이고, 물질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질량이나 에너지는 변함없이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이 법칙에 의하면 육체라는 물질 자체도 죽음 이후에 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다른 형태의 존재가 있을 수 있는 것인데 이런 법칙은 애써 무시해 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게 되는 원인이 있는데 인간은 진화되어 스스로 존재했다고 이런 공리는 애써 외면해 버리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언제 영혼과 내세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됩니까?

니고데모는 어떤 사람입니까?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그는 바리새인이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종교적 지도자로 영혼의 존재도 믿었고 내세 천국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 지도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 회원이었습니다. 지금 말하면 국회의원입니다. 권력과 명예와 돈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당시 지성인, 엘리트 계층 사람입니다. 막연한 내세보다 확신한 현실을 보며 권력과 명예, 부와 지식을 가지고 즐길 것이 너무나 많았을 것입니다. 부와 권력, 명예와 지식을 지닌 세상에 성공한 배부른 지식인들은 내세나 영혼 내적으로 타는 목마름이나 자기 존재와 삶의 깊고 근원적인 질문에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영혼과 내세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예수님께 관심을 가졌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님의 표적 때문입니다. 어떤 표적이겠습니까? 211절을 보십시오. 가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표적입니다. 22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성전에서 소와 양과 장사꾼들을 몰아내고 성전을 헐라고 외친 표적입니다. 당시 바리새인 지도자들이 상인들과 야합하여 돈을 벌기 위해 성전을 장사꾼으로 소굴로 만들었는데 이것을 아무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와 소와 양들을 성전에서 쫓아내고 장사꾼의 상을 엎어버리고 성전을 청결하게 한 것입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이런 표적을 보고 니고데모든 예수님께 나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일반 사람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랍비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안드레나 요한 나다나엘처럼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부르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인데 자신과는 다른 특별한 선생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지자와 같은 선생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여 아무나 할 수 없는 이런 표적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와 다른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 나라 지성인 중의 한 분인 이어령 교수님은 인문학적 소양이 대단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지식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신론자였습니다. 이어령 교수께서 [지성에서 영성으로] 라는 책을 냈습니다. 딸을 통해 나타난 표적을 보면서 예수님께 관심을 가진 것입니다. 딸이 전 캘리포니아주 검사를 거쳐, 청소년 범죄 전문 변호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손자가 자폐증에 걸렸고 딸이 암에 걸리고 시력이 상실되어 앞을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신비하게도 기도하면서 15년 동안 앓아 왔던 암에서 치유되고 손자의 자폐증이 낫는 기적과 시력이 회복되는 능력을 체험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실제 옆에서 경험하게 되고 결국 "사랑하는 내 딸아, 너의 기도가 높은 문지방을 넘게 했다. 암에 걸렸던 너의 아픔과 어둠이 나를 영성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 70평생 살아온 내 삶이 잿불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다."라고 그 책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 메디컬스쿨 교수로서 3대째 반평생 뇌를 연구해온 저명한 뇌과학자인 이븐 알렉산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과학 학술지에 150여 편이 넘는 논문들을 게재했고, 국제의학컨퍼런스에서 200회 이상의 연구 발표를 하는 등 뇌와 의식의 작용에 관해 뛰어난 업적을 쌓은 세계적인 뇌의학 권위자입니다. 평생을 과학적 세계관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신이나 영혼, 천국의 존재는 믿지 않았답니다. 그가 뇌사 상태에 빠져 7일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의학에서 의학적 죽음은 1단계로 심장이 멈추고 15초 이상 멈추면 피가 정지되어 뇌의 활동이 멈춥니다. 숨을 쉬지 않고 의식이 없는 상태을 말합니다. 이때는 돌아올 수도 있고 못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생물학적 죽음은 2단계로 5-6분 지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단계입니다. 그런데도 신비하게도 7, 10, 30, 3시간, 하루 가 지났는데 살아 돌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것을 임사체험이라고 고합니다. 20년 전 미국에서 나온 통계에 의하면 2,300만명이 이런 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대부분 임사체험을 하는 사람들은 4분인데 그는 7일간 뇌가 정지된 것입니다. 죽었다 살아난 것입니다. 자신만이 단 하나의 사례가 된 '임사체험(臨死體驗)을 한 것입니다. 7일 동안 그가 천국에 다녀온 것입니다. 전원이 나갔는데 TV 화면이 나오는 신비한 천국 체험을 한 그는 하나님과 영혼, 천국을 확실하게 믿은 것입니다. 뇌가 의식, 즉 영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육체에서 분리된 의식, 즉 영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사후 체험을 <나는 천국을 보았다>라는 책으로 펴냈습니다. 뇌 과학의 전문가로서 물질주의적인 관점에서 부정해왔던 영혼, , 사후세계 등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임사체험은 뇌가 만들어내는 환각이 아니라 '완전한 실제(Ultra-Real)'라고 말합니다. 의학적으로 뇌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임사체험을 했다는 것은 임사체험이 뇌가 만들어내는 환각이나 망상이 아니라 뇌와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의식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세상에는 1차원의 세계(점의 세계), 2차원의 세계(선의 세계, 평면의 세계), 3차원의 세계 (입체적인 세계), 4차원의 세계(영의 세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지식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스스로 체험하지 않고 물질을 연구하는 과학적 지식으로 탐구하여 4차원의 세계를 알 수가 없습니다. 개가 어떻게 인간의 아파트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차원이 다른 세계를 알 수 없습니다. 인식의 한계, 능력의 한계, 시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예수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조금 지식이 있다고 오광남 박사처럼 [예수는 없다]라고 하지 말고, 피터 갠디 처럼 "예수는 신화다"라고 하지 말고 리차드 도킨스 처럼 '만들어진 신'이라고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자들을 향해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10:3)"라고 말씀합니다.

 

3. 우리가 비물질적 세계인 내세나 영혼,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이런 체험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방법을 니고데모에게 어떻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으로 보고 예수님을 선생, 혹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생, 하나님이 함께하는 선생 정도로 생각했는데 예수님은 그의 말을 듣고 진정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질의 세계인 시각을 통해 비물질의 세계인 하나님의 나라를 보려면 시각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멀리 있는 우주나 작은 세균을 보려면 망원경이나 현미경이 필요하듯이 비물질의 세계인 영혼이나 내세를 보려면 바로 거듭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니고데모가 무엇이라고 질문합니까?

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오늘날 물질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물질적 세계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습니다.

니고데모는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즉, 몸이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늙은 사람이 어떻게 어머니 배속에 들어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느냐고 예수님께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중생에 대하여 거듭남에 대하여 다시 태어남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당대에 대단한 지식인이었지만 비물질적 세계를 물질적 세계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는 것만 보고 듣는 것입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입니다. 모르면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한계로 인해서 한 번 형성된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의 시각에서 벗어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진의를 알지 못하고 사람이 늙어서 어떻게 어머니 배 속에 다시 들어가 낳을 수 있냐고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육안이 있고 심안이 있고 영안이 있습니다. 육안과 심안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육적이 눈이 아무리 좋아도 어린 아이가 삼각함수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고차원 방정식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눈이 아무리 좋아도 자동차가 고장 나면 고칠 수 없습니다. 자동차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자동차를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영적 세계는 영안이 열려야 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닫혀 있는 영안이 열려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솝우화에서 나오는 "개구리와 메뚜기, 하루 살이"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살이는 내일을 알 수 없습니다. 메뚜기는 봄을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내일이 없고 봄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차원의 문제이지 비이성 비논리가 아닙니다. 초이성입니다. 초논리입니다.

 

4. 우리가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어머니의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지 않고도 사람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어머니 배속에 들어갔다 다시 나는 것이 거듭남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 거듭남이라고 말씀합니다. 영안이 열리는 거듭남은 물과 성령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배운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수양이나 지식의 축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적 지식은 거듭난 자만 가지는 것인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도서 35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2)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 거듭나는 것입니다.

물은 무엇이겠습니까? 물을 태의 물, 세례, 말씀, 정화, 성령의 상징 등 여러 가지로 해석합니다. 에베소서 526절에는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성경에서 거듭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베드로 전서 123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야고보서 118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1:18)“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는 거듭남 즉 중생의 내적 요소, 외적 요서, 개관적 요소, 주관적 요소라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객관적 요소입니다. 성령님은 주관적 요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께서 은혜로 역사하여 중생을 시켜줍니다. 영적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께서 은혜를 주시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아무런 영적 교제를 할 수 없는 사람이 영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에 대하여 느끼고 보고 알게 되고 교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 사는 것입니다. 거듭남(겐네데 아노덴)인데, “겐네데은 태어나다 라는 뜻이고 아노덴은 위로부터, 다시한번, 새롭게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로부터 즉 하나님께로 부터 다시 새로 나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육의 사람이 모태로부터 태어난 것처럼 위로 곧 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것은 하나님에 의하여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단순한 성품의 변화나 성화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8: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아담으로부터 난 사람들은 모두가 아래에서 난자로써 성경은 모태 아래로 난자, 흙에 속한, 죄아래 있는, 혈과 육은 썩을 몸, 율법아래 있는자, 세상에 속한자, 죄의몸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흙에 속한 육체, 썩을 몸인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고전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썩을 죄의 몸은 썩지 않는 나라에 들어갈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위로부터 즉 하늘로 부터 다시 태어나 하늘에 속한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4. 그러면 우리가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 어떻게 천국에서 영생할 수 있겠습니까?

1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절을 큰 소리로 같이 읽겠습니다. “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예수님이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 위해 오신 분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니고데모는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지도 못했고 믿지도 않았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으니까 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여기서 놀라다는 "다우마세스"는 이해력이 결여된 놀라움을 말합니다. 니고데모는 당시 지식인 중의 지식인이었지만 이것을 모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8절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역사를 설명해 주십니다. 바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현상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현상으로 실제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은 받으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10)"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을 마음으로 구세주라고 믿게 되고 입으로 시인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최고 지식인 중의 하나였던 니고데모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4절에서는 어떻게 가능하겠냐고 질문하였습니다. 이제 어떻게 현실적으로 그것을 경험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하나님의 자녀가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지 어떻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그는 구약 성경 연구의 권위자요 율법학자입니다. 그런데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예수님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든 구리 뱀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살았는데 바로 그것은 예수님의 모형인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예언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1119-20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이미 성령과 말씀을 통해 새 마음을 주시겠다고 말씀해 주었씁니다. 36:25-28절에 새영을 백성들의 마음에 두시고 렘31:33절에 하나님의 법을 백성의 마음속에 두어 하나님의 백성을 삼겠다고 말씀해 주었는데 니고데모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바람부는 현상도 믿지 않는다면 인간의 지식으로는 하늘의 실제를 직접 설명해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모세가 든 구리뱀처럼 사람들이 믿고 그 구리뱀을 본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아났듯이 인류의 죄와 죽음을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어야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믿는 자마다 거듭나고 다 영생을 얻습니다. 종교인의 공력으로 거듭나 영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1절 상) 권력의 힘으로도 거듭나 영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1절 하) 경험의 힘으로도 거듭나 영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4) 재력의 힘으로도 거듭나 영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19:39, 참고) 지식의 힘으로도 거듭나 영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10) 오직 믿음으로 거듭나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로마서 1017절을 찾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에베소서 28절에서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들은 후 니고데모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었을까요 아니연 여전히 회의주의에 빠져 이 세상이 끝이라고 생각하며 천국도 지옥도 영생도 영혼도 없으니 그냥 즐기고 살자며 한 평생 살았을까요? 요한복음에는 니고데모에 대하여 3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750절을 보십시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하속들을 파송했습니다. 그런데 하속들이 예수님을 체포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속들을 나무라자 니고데모가 하속들을 변호하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에 대해 변호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변하는가 보십시오.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고 질문했는데 바로 니고데모가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목격하면서 확실하게 믿게 된 것입니다. 그 모진 고문과 수모 가운데서도 구원 사역을 사랑으로 다 이루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아마 그는 참으로 예수님은 예수님이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는 사실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직접 체험하면 사람들은 정직하게 믿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라는 책을 쓴 아니타 무르자니라는 분이 있습니다. 20024, 임파선암이 발견된 뒤 4년 동안 투병 생활을 했답니다. 200622, 악성세포가 차지한 그의 몸은 마침내 기능을 멈추었고, 그때 그는 임사체험 상태로 들어갔답니다. 30시간 동안의 임사 체험을 통해 그가 가지고 있던 삶에 대한, 존재에 대한, 우주에 대한 관점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답니다. 그 경험 후 아니타의 몸은 닷새 만에 병세가 호전되어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답니다. 암세포가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판명돼 입원 5주 만에 퇴원하였고 임사 체험의 경이로움과 그것을 통해 깨닫게 된 후 완전히 변했다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어떻게 변했습니까?

요한복음 1939절을 보십시오.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100근쯤 가지고 왔습니다. 제자들까지 다 도망을 갔습니다. 예수 당으로 찍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물질입니다.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나드 한 근의 향유를 부었는데 가룟 유다가 그 향유를 300데나리온에 팔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기 때문에 일반 노동자의 1.5년 연봉에 해당됩니다. 그러면 니고데모가 드린 몰약과 향유의 값어치는 일반 노동자의 150년 치 연봉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황제 장례식에 사용되는 양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드렸는지도 모릅니다. 니고데모는 정치적으로 로마의 황제가 진짜 황제가 아니라 예수님이 유일한 황제라는 것을 고백한 행위입니다. 경제적으로 예수님이 그의 전부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는 변화된 지성인이 된 것입니다. 냉소적인 지성인이 아니라 예수님께 헌신한 지성인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의 변화는 물리적인 변화에 머문 것이 아니라 화학적인 변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삶의 목적이 바뀐 것입니다. 삶의 방식이 바뀐 것입니다. 거듭남과 영생에 대한 회의에서 확신을 가진 것입니다. 조엘 오스틴 목사의 저서 '잘 되는 나'에 나오는 간증입니다. 오스틴의 친구가 말기 암에 걸렸는데 의사들이 다 포기했답니다. 하루는 집에서 요양을 하는데 네 살배기 아들이 성경책을 들고 나왔답니다. 글을 못 읽는 아이가 성경을 펼치고 손가락을 대며 "아빠, 뭐라고 쓰였는지 읽어 달라" 말했답니다. 요한복음 114절을 가리키고 있기에 그가 읽어주었답니다.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그런데 그 순간 그는 하나님 음성을 들었답니다. "네 살배기 아들이 죽음을 앞두고 절망에 빠진 자신에게 성경을 펼쳐 손가락으로 이 구절을 가리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답니다. 똑같은 말씀이지만 성령으로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는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라는 구절을 부여잡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결과 절망적인 말기 암에서 고침을 받게 되었답니다. 똑 같은 말씀이지만 어떤 사람에게 의미 없이 흘러가는 바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치유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미 거듭났습니다. 중생함을 받았습니다. 영생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거듭남에 대하여 회의에서 확신으로 변한 삶을 살았던 니고데모처럼 유물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지만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거듭남에 대한 확신, 구원에 대한 확신,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4.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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