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를 넘어 확신으로(1)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요 14:7-14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 보여 주면 믿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을 직접 보여달라고 요구하십니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보여주세요. 그러면 믿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믿지 않은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을 보여 줘! 그러면 내가 믿어 줄께!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믿느니 차라리 나를 믿고 내 주먹을 믿는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 중에도 원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기도해도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 보여주세요. 그러면 믿겠습니다.”라고 회의에 빠진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빌립도 오늘 말씀에 보면 그런 말을 합니다.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여기서 ‘족하겠나이다.’를 영어 성경은 'enough for us'라고 번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집으로' 가신다고 말씀하고 계시고, 우리들도, '아버지 집' 에 갈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말로만 하시지 마시고,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면, 여러 말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에게 믿지 말라고 해도, 믿을 것입니다. 그런 말입니다. 요즈음도 ‘목사님 자꾸 하나님 믿으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 보여주세요. 그러면 믿지 말라고 해도 믿을 것입니다. 하나님 계시면 한 번 나에게 나타나 보세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여주신다고 믿을까요? 세상에는 보이는 것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여야만 믿는 것도 아닙니다.
바람이 보입니까? 엑스선, 감마선이 눈에 보입니까? 지금 예배당에서 수많은 전파가 흐르고 있습니다. 눈에 보입니까?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지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은 존재합니다. 바람이 보이지 않지만 나무가 흔들리는 것을 보면 바람이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너무 큰 것도 너무 작은 것도 볼 수 없고,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없습니다. 지구 자전 속도면 '서울-부산 거리를 단 11분만에 주파'하는 속도입니다. 지구의 공전 속도는 초음속제트기 보다 44배 빠르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실제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하지 않을까요?
인간이 듣는 가청역은 20헤르츠에서 2만 헤르츠 주파수 법위입니다. 듣지 못한다고 그 외의 소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2만 헤르츠가 넘으면 초음파라고 합니다. 박쥐는 초음파를 듣습니다. 사람이 볼 수 있는 가시 스펙타클은 380나모미터에서 780나노미터 범위의 빛입니다. 그렇다고 적외선과 자외선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돌고래는 자외선을 느낍니다. 작아서 보이지 않는 것도 현미경을 통해 관찰하면 볼 수 있습니다. 멀어 볼 수 없는 것도 망원경을 통해 보면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보이지 않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의 태도는 아닙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 아버지를 부인한다고 아버지의 존재가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부정한다고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직접 인간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시지 않고 있을까요?
2. 하나님을 직접 보면 어떻게 될까?
출애굽기 33장 20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죄인들이 하나님을 보게 되면 그 자리에서 즉사입니다. 우리가 태양 가까이 가서 태양을 직접 보면 어떻게 될까요? 살아 남을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에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저주를 받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직접 나타나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불과 물이 공존하지 못하듯 죄와 거룩은 공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거룩과 공의는 하나님 고유의 속성이기 때문에 절대 죄가 하나님을 알현할 수 없습니다. 자연인으로서 죄인은 하나님을 직접 보면 태양 앞에 직접 서 있는 것처럼 존재할 수 없습니다. 알량한 권력을 가진 한 나라의 대통령도 직접 일반인들이 볼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 존재하셔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영광과 존귀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기 위해 직접 현현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3. 그러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주십니까?
첫째,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로마서 1장 2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 할지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 법칙, 원리, 창조의 능력 등으로 하나님을 계시해 주십니다. 이런 것을 일반 계시라고 합니다. 비언어적 계시입니다. 여기에 마이크가 있습니다. 마이크를 보면 생각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누군가 마이크를 만든 분이 있게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오묘하고 신비한 법칙에 의해 운행되고 있는 천지 만물을 보면, 오묘하고 신비한 인간을 보면 ‘아 누군가 만든 분이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자연계시 즉 자연과 이성, 양심 등과 같은 선물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선물을 통해 사람들은 자연 만물을 관찰해 보면 희미하게나만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습니다. 포드 자동차 엔진을 분해한 후 포드가 없다고 포드 자동차를 만든 포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엔진을 분해해 엔진의 작동 원리를 이해했으니 애초에 엔진을 설계한 포드 씨의 존재를 믿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주를 작동에 대한 비인격적 원리들에 대한 이해가 우주를 설계하고 만들고 보존하는 인격적인 창조주의 존재를 불필요하거나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생각은 범주 오류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주가 작동하는 기제와 그 원인이나 보존자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무신론들인 앳킨스와 도킨스 같은 과학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기제와 작인(作因)을 구분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정한 현상을 설명하는 기제를 우리가 이해하므로 그 기제를 설계한 행위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아주 초보적인 범주 오류에 해당합니다.
아이작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나서 “나는 행성의 운동을 설명하는 기제를 발견했다. 그러므로 그것을 설계한 행위 주체인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만유인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고 난 뒤 그것을 설계하신 하나님을 존경하는 마음은 더 커졌다고 합니다.
플루는 나이가 들어 정직하게 그의 책에서 신의 존재를 논증합니다. 첫째는 자연세계의 합리성에 대한 논증입니다. 어떻게 우주가 합리적일 수 있는가에 대하여 무신론은 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과학은 합리성의 구체적인 현상과 내용들을 찾아내고 합리성의 정도를 보여줄 뿐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의식과 자아를 가진 인간과 같은 존재가 어떻게 만들어 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무신론이 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목표지향적이고 자기복제하는 생명체들의 기원, 의도와 자아를 갖는
인간의 존재를 무신론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우주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물질의 세계는 영원 전부터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데 무신론은 그 기원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을 모든 피조물들을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을 알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의 지각이 하나님을 감지할 수 없을 만큼 저급하게 타락을 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영적 귀가 막히고 영적 눈이 멀어 버린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8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증거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수많은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로마서 1장 1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그런데도 하나님을 믿지 않으시니까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어떻게 살아갑니까? 로마서 1장 29절 이하에 그 삶의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간이 살도록 방치하셨나요? 아닙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언어적 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알려 주었습니다.
비언어적 계시를 통해 알려 주니까 인간이 통 알아 먹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어적 계시를 하기 위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인 이스라엘의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또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특별계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수없이 계시를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에 대하여 350여회 예언해 주셨습니다. 인간이 타락한 직후에 하나님은 장차 여자의 후손을 통해 뱀의 머리를 깨뜨릴 것을 예언하셨습니다(창3:15). 노아와의 언약을 통해서는 물 심판 중에 의인 노아의 가정을 구원하신다는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아브라함 언약을 통해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세상 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창 12:3). 유월절 어린양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모든 죄를 속죄해 주실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다윗 언약을 통해 메시아 나라를(삼하7:11-16) 예언해 주었습니다. 이사야를 통해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구원 사역을 감당할 것을 말씀해 주었습니다. 성경이라는 특별 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5-17)”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보여주기 위해 어떤 방법을 하나님이 택하였습니까?
세 번째 방법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 1-2절을 찾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언어 메시지로 끊임없이 하나님을 보여주었지만 알지 못하니까 말씀(로고스)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요한 복음 1장 1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장 1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 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그런데 빌립이 이 진리를 모르고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한 것입니다. 과거 빌립이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나다나엘에게 자신이 메시아를 만났다고 고백했던 사람입니다(요1:45). 그런데 보여 주면 믿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배웠고 많은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이해 못할 일이 생기면 이런 실존적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빌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시는 의미를 모른 것입니다. 왜 그런 고통을 당하여야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을 빌립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요한복음 14장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예수님을 하나님을 분명하게 계시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던 분입니다. 눈으로 직접 보고, 귀로 직접 듣고, 손으로 직접 만저 볼 수 있는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차원이 다른 인간이 하나님을 실제 경험할 있도록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 위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며 영접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장 10~12절을 찾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 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4. 영적 세계를 보고 믿습니까?
보고 믿는 세계가 있고 믿고 보는 세계가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11:1-3)”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정확하게 볼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예수님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누가 복음 24장 44~45절을 찾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는 성경이 계시를 통해 예수님을 정확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이 땅에 오셨는지? 왜 인간의 몸을 입어야 했는지?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지 등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못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배를 드리는 우리는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은 못 보았으나 성경이 설명하고 있는 예수를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빌립도 알아보지 못했던 예수님을 우리는 정확하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육안으로 보는 물리적 '봄'이 아닙니다. '블레포'는 아무나 다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해를 하고 보는 '오라오'는 영안이 열린 자들만 보는 봄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육안이 있고 심안이 있고 영안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엠마오로 내려 가는 제자들을 예수님을 보지 못합니다.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눅24:16)”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눈이 먼 것이 아닙니다. 영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눅24:25)”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성경 말씀을 가르쳐 줍니다. 그 때 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31절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라고 말씀합니다.
믿어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본다고 다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았습니다. 가룟 유다도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았습니다. 보고 믿는 게 아니라 믿으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빌립은 보여 주시면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으면 볼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라신과 뱃새다 사람들은 그 많은 기적을 보았는데도 믿지 않았습니다. 복음서를 보시면,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 뱅이가 일어나기 전에, 먼저, '내가 믿나이다' 라고 고백했기 때문에, 기적을 본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천국을 믿음으로 천국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는 믿어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눈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육신이 눈으로 하나님을 보면 죽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면 살아납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보고 메추라기를 보고 바다를 마른 땅이 되게 하는 것을 보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배신하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 기적을 한 번 보여주세요. 그러면 믿을께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아무리 큰 기적이 일어나도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요한복음 14장 1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믿으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40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자기 오빠를 고쳐 달라고, 무언가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마르다에게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너는 보고 믿으려 하는데 믿으면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믿지 못한다면 주님이 행하신 일을 보고 믿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물 위를 걸으시고, 오병이어로 수 만 명을 먹이시고, 병자들을 일으켜 세우신 것 등 하나님 만이 하시는 것을 보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이적과 기사를 보여주었지만 믿지 않았습니다(요12:37~40). 믿음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영안이 열려야 기적의 진의를 믿음으로 깨닫는 자가 되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게 되고 그 예수를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5. 믿으면 어떤 것을 볼 수 있습니까?
1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첫째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살아 계셔 역사하는 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무신론 자들은 하나님은 돌아가셨다고, 하나님은 아예 존재 하지 않았다고, 하나님은 침묵한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의 삶 속에 생생하게 함께 하셔 보여주시고 깨닫게 해주시며 체험하도록 하고 계십니다. 삶의 현장에서 믿고 나아가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게 됩니다.
둘째,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을 살수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3~24을 보세요.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일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예수님처럼 이 세상에서 생명 구원 사역을 위해 맞아주고 당해주고 섬겨주고 죽어주는 삶입니다.
제자들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 29절에서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고 이 땅에서 어떤 환경, 어떤 처지에 처하든 한 번 십자가를 지고 살아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고향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합니다.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명령입니다. 그러나 믿고 따라가다 보니 하나님이 살아셔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홍해를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반석을 치라는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수치를 당하고 돌아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고 십자가의 길을 갑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직접 사건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셋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현현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면 이 보다 더 큰 일을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다 도망을 갔지만 부활을 목격하고 성령을 받은 후 베드로가 설교하니까 사도행전 2장 41절에 한 번에 삼천명이 회심하고 돌아옵니다. 사도행전 4장 4절에는 남자만 약 5천명이 믿게 됩니다. 예수님이 3년 공생애 동안 하신 일보도 더 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과 완성에 쓰임받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앉은 뱅이가 일어나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제가 지난 주 열린 편지에 미국의 대표적인 마케팅 회사 ‘아메리칸 텔레캐스트’의 설립자인 스티븐 스콧의 이야기를 소개 해 주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6년 동안 아홉 군데 직장에서 실직과 해고를 거듭당했지만, 게리 스몰리 박사를 만나 성경의 지혜와 예수님의 가르침을 삶에 적용해 보라는 조언을 받고 그 원리에 따라 살아 보기로 결심했답니다. 그 후 동료들과 함께 단돈 5천 달러의 자본금으로 마케팅 회사인 ‘아메리칸 텔레캐스트’를 설립해서 〈포춘〉 500대 기업 CEO 중 여덟 번째 부자가 되었답니다. 그는<삐끗한 인생 되돌리기>와 <형통의 원리>라는 책을 냈습니다. 그는 그의 책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삶의 구덩이에서도 하나님은 일으키실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인생의 실패를 통해 포기, 좌절, 절망, 낙심 등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온갖 경험들이 다가 온다고 했도 하나님을 만나면 얼마든지 반전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형통의 원리>라는 책에서 자신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수년 전 많은 청중 앞에서 회사와 새 제품을 소개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 가 그곳의 한 호텔 룸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며 쉬고 있었답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고 받아보니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들려왔답니다. 스무 살의 그의 아들이 암 진단을 받고 급속도로 자라나는 거대한 종양으로 인해 우루과이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연락이었답니다. 그는 전화를 끊자마자 호텔 룸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답니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인 아들을 살려 달라고, 아들 대신 자신이 암에 걸리게 해 달라고 울며 부르짖었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은 속삭이셨답니다. “네 책을 펴라.” 당시 그는 1천 900개의 예수님 말씀을 225개의 주제로 정리한 책을 2년간 집필한 상태였답니다. 출판사에서 네 권의 가제본을 제작해 주었는데 190쪽을 펼쳤고 주제는 ‘불안과 걱정과 두려움’이었답니다. 그쪽에서 빨간색으로 된 첫 번째 말씀은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였고(요6:20) 그다음 말씀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였답니다(요14:1). 말씀을 읽자 이해를 초월하는 놀라운 평강과 평안이 자신을 감쌌지만, 아들의 상황만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이 아팠답니다. 그날 밤 사업 파트너들을 대상으로 한 프레젠테이션을 도무지 못하겠다고 하나님께 말씀들렸더니 하나님이 시편 15편의 한 구절을 속삭이셨답니다.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시15:4). 그는 마음을 억지로 추스르고 모임 장소로 가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나서 청중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했답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들이 주님의 기적으로 낫도록 한 주간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답니다. 그러자 자신과 만난 지 3일밖에 되지 않은 한 목사님이 앞으로 나와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 당장 기도하죠.”라고 말하며 몇몇 리더들을 불러 주위로 모이게 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답니다. “아버지, 당신은 위대한 의사이신 줄 압니다. 당신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이 형제님의 아들을 괴롭히는 종양이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리게 해 주십시오. 말끔히 사라지게 해 주십시오. 의사가 아들의 몸을 열어 보고 나서 이 형제님에게 이렇게 말하게 해 주십시오. ‘혼란스럽네요! 암을 찾을 수가 없어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이런 일은 처음 봤어요!’라고 말하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주님이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며 오직 당신만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을 저희 모두가 알게 해 주십시오.” 그 목사는 기도를 마치고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답니다.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사실을 절대적으로 믿길 바랍니다. 분명 아드님은 괜찮습니다. 이제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의 기도가 감사하긴 했지만 솔직히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답니다. 다음날, 유타대학병원 비뇨기과 과장이 아들을 봐 주기로 했고, 사흘 뒤 아들이 집에 도착하면 곧장 병원으로 데려오라고 말했답니다. 검사 후 해밀턴 박사는 암이 맞다며 종양의 크기와 위치로 볼 때 전이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조직 검사 후 가슴과 뇌를 촬영할 것이라고 했답니다. 월요일이 되었고, 수술은 오후 12시 30분에 시작되었답니다. 아들이 수술실에 들어간 지 2시간 뒤, 자신과 아내를 찾는 전화벨이 울렸답니다. 간호사가 아내를 보며 말했답니다. “해밀턴 박사님은 아직 수술 중이시지만 보호자분과 할 얘기가 있다고 하십니다.” 아내가 전화를 받았고, 잠시 후 수화기에 대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혼란스럽다고요?” 아내는 몇 번 “헉”하는 소리를 하더니 전화를 끊었답니다. 그는 아내에게 말했답니다 “혹시 의사 선생님이 혼란스럽다고 말씀하셨나요?” 아내는 울면서 말했답니다. “네, 의사 선생님이 혼란스럽다고 하셨어요.” “그러고 나서 암을 찾을 수 없다고 하셨고요?” 놀란 아내가 대답했답니다. “네, 맞아요. 암을 찾을 수 없다고 하셨어요. 동결절편의 조직 검사를 했더니 암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대요.” “그러고 나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셨고요?” “맞아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몇 번이나 반복하셨어요.” “그러고 나서 이런 일은 처음 봤다고 하셨고요?” 아내는 잠시 숨을 돌리고서 말했답니다. “아뇨.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어요.” 그는 일주일 전 그 목사의 기도에 관해서 아내에게 말했답니다. 그 말에 아내는 “그 목사님이 정말 그렇게 기도하셨어요?”라고 말했답니다. “네, 150명 앞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셨죠. 그러고 나서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셨으니 우리 아들이 괜찮을 거라고,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죠. 여보, 암은 사라졌어요. 의사 선생님은 네 문장 중 세 문장을 똑같이 말하셨어요. 이런 일은 처음 봤다는 말만 하지 않으셨죠.” 그들 부부는 놀라서 벌린 입을 한동안 다물지 못했답니다. 1시간 뒤 해밀턴 박사가 수술복을 입은 채로 대기실에 들어와 맞은편에 앉았답니다. 그는 하늘로 두 팔을 들었고, 그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이런 일은 처음 봤어요!”였답니다. 이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암이 입힌 손상은 다 있는데 암은 없었어요.” 다음날 그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차분히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제 기도에 응답하셨다고 했잖아요.” 나중에 그는 그 목사가 믿음의 은사를 지녔고 그가 사역하는 동안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 후 그는 기도 응답을 확신하였고 성령의 어떤 역사가 일어날 수 없다는 의심의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답니다. 모든 이에게 본인이 원하는 대로 기도가 응답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도하면 하나님은 상황에 따라 ‘예’로 혹은 ‘아니오’로 혹은 ‘기다리라’는 방법으로 응답해 주는 것은 확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다가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당하면 회의주의에 빠져 교회를 떠나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하나님을 보여달라고?”하는데 하나님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의심 많았던 도마도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라고 고백했습니다. 십자가 현장에 있던 백부장은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질문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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