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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4) 허락한 것을 이루심(창28:15)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48198 추천수:4 218.155.63.46
2024-01-28 16:01:08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4) 허락한 것을 이루심

28:15

 

새해 들어 올해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되자고 4차례에 걸처 말씀을 근거로 하여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다섯 번째로 하나님과 함께 살았던 야곱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허락한 것을 이루는 삶에 대하여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했던 야곱 뿐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께서 저와 우리 성도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런 축복이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야곱이 가만히 있었는데 저절로 이루어졌습니까?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천지를 창조하듯 야곱의 생에 가운데 번개치듯 어느날 하나님 스스로 기적적인 방법으로 이루었습니다. 아닙니다. 역사 속에 사는 야곱의 삶을 통해 야곱을 통하여 이루었습니다.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루어졌겠습니까? 학자들은 인간의 성공, 성취에 대하여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많이 연구하여 책을 써 냈습니다. 그 중 가장 과학적인 연구라고 평가받는 책이 <성공의 공식 포뮬러>라는 책입니다. 똑같이 일하고 똑같은 성과를 거두어도 어떤 사람은 성공하고 어떤 사람은 실패합니다. 똑같은 환경과 스펙을 가졌음에도, 또는 비슷한 재능과 노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하고 실패하는 차이는 왜 만들어지는 걸까?에 대하여 방대한 빅데이터와 네트워크 과학 도구를 이용해 성공의 공식을 발견해 그 내용을 쓴 책입니다. 이 책을 쓴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교수는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의 창시자이자 세계적 과학자입니다. 노스이스턴대학교 복잡계연구소 원장으로 물리학과, 컴퓨터와 정보과학과, 하버드 의과대학원 의학과를 공부한 사람입니다. 그는 5가지 성공의 공식을 말합니다.

1 공식은 성과는 성공의 원동력이지만 성과를 측정할 수 없을 때는 연결망이 성공의 원동력이다라는 것입니다. “성과+연결망=개인의 성공라는 것입니다.

성공하려면 일단 성과는 기본적으로 깔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상 선수처럼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성과로 성공을 거둘수 있지만 세상은 그렇게 올림픽 경기 처럼 계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과를 측정할 수 없는 분야에서 성과를 인정받는 성공을 하고 싶다면 인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측정할 수 없는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연결 즉 인맥, 네트워크, SNS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열심히 하여 성과를 거두면 그 성과를 공동체가 인정해 주고 그 성과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많아 질 때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스키아의 <무제>라는 그림은 무려 1247억원에 낙찰되었답니다. 그런데 바스키아는 똑같은 시기와 장소에서 비슷한 그림을 그렸던 알 디아즈의 작품은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했답니다. 동갑에 똑같은 환경에서 자란 두 학생이 서로 구분하기 불가능한 작품을 창작하다 갑자기 두 사람은 갈라서고 각자의 갈 길을 갔답니다. 디아즈의 그림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바스키아는 생존 당시에도 예술가로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심지어 사망 후에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디아즈는 외톨이인 반면 바스키아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과 인맥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당시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키스 해링을 만나 사귀었다고 합니다. 적극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맥을 쌓음으로써 바스키아는 2년 만에 집도 없는 10대에서 A급 예술가로 변신했고, 외톨이인 디아즈는 여전히 언더그라운드 거리예술 활동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정말 놀라운 점은 그의 성공이 탁월한 예술성과 전혀 관계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도 요셉에게 비유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과 연결되었고 하나님이 인정해 주었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2 공식은 성과를 내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성공은 무한하다는 것입니다. “성공+a= 무한대라는 공식입니다.

성공 중에는 성과 측정을 객관적으로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답니다. 음악 경연대회나 미술, 포도주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가리는 것은 객관적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때 뛰어난 기술도 중요하지만 뛰어나게 보이는 것이 더욱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챠쥥차이가 프로 음악가와 초보자들을 대상으로 클래식 경연대회에서 결선에 오른 세 명 중 누가 이길지 예측하는 실험을 했답니다. 한 집단에게는 연주 소리만 들려주었고다른 집단에게는 연주 오디오와 비디오를 함께 보여주었답니다. 소리 없이 비디오만 보여준 집단도 있었답니다. 소리만 듣고 판단한 집단이 승자를 맞힐 확률은 25%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셋 중 하나를 고르는 일임을 감안하면 사지선다 시험에서 무작위로 찍어 답을 맞힐 확률보다도 낮았답니다. 놀랍게도 승자를 맞히는 데 가장 우수한 실력을 보인 집단은 소리를 끄고 비디오만 본 사람들이었답니다. 이들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화려한 몸짓을 구사하며 연주하는 연주자를 선정했답니다. 이 집단에 속한 초보자와 전문가 모두 승자를 맞힐 확률이 50%였답니다. 연주 소리를 듣지 않은 사람들이 들은 사람들보다 승자를 맞힐 확률이 두 배 높았다는 뜻입니다. 전문가라고 해도 가장 우수한 연주자를 골라내는 데는 초보자보다 나을 게 없었다는 것입니다. 연주 실력만으로 우열을 가릴 수 없을 경우 의상이나, 연주 스타일, 화려한 몸짓이나 표정 등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피겨스케이팅도 선수의 출전 순서가 뒤로 갈수록 점수도 일관성 있게 상승한다고 합니다. 회사 면접도 늦게 한 사람이 합격할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와인 대회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감정사가 똑같은 와인에 일관성 있는 점수를 매긴 비율은 겨우 18퍼센트에 불과했답니다. 훌륭한 와인의 경우 감정사들의 판단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경우는 무려 82퍼센트에 이르렀답니다. 그래서 와인 대회에서 우승하려면 결국 출전 확률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확률 게임에서 이기려면 계속 되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확률을 높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관적 확률이 아니라 낙관적 확률을 높이라는 것입니다. 한 번 우승을 하면 유명 와인이 되어 세계 시작으로 퍼저 나간다는 것입니다. 한 번 인정받으면 계속 성공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를 비교하면 요셉은 부정적인 것도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사는 긍정적인 성공을 부각시켜 결국 하나님께서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게 하여 12지파의 조상으로 만들었습니다.

 

3 공식은 "과거의 성공 경험이 적합성과 만나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한다(과거의 성공x적합성= 미래의 성공)"는 것입니다. 적합성은 인기도와 탁월함을 갖추어야 한다고 합니다. 상품성과 고품질이 적합성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성과와 우선적 애착이 결합되면 성공의 완벽한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식은 지식을 낳고 기술은 기술을 낳으며 전문성은 전문성을 낳아 이를 성공으로 이끌고 또 다른 성공을 낳게한다는 것입니다. 우선적 애착은 시간이 갈수록 격차를 벌리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우선적 애착이 시동을 걸어주지만 상품의 적합성이 반드시 병행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적대적이 세력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코카콜라 같은 1등 브랜드만 기억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일단 한번 대중의 인식에 각인이 되면 사회적 입증 효과에 의하여 편향적인 기재가 발동한다는 것입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실험적인 사회학자 아르나우트 판 더 레이트는 특정 캠페인에 대한 소액 기부를 통해 실험을 했답니다. 그가 전혀 기부하지 않은 프로젝트들의 경우 68퍼센트가 기부를 받지 못했답니다. 반면 그가 무작위로 기부한 프로젝트들의 경우 추가로 기부를 받지 못한 비율은 겨우 26퍼센트였답니다. 그런데 동일한 프로젝트에 최고 네 번까지 무작위로 기부하자 겨우 13퍼센트만 실패했답니다. 초기에 지원을 더 많이 받으면 사실상 성공이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새 책은 출간되고 첫 몇 주 안에 대부분의 독자를 확보되고, 연구논문은 발표되고 첫 2년 안에 대부분의 인용 횟수를 확보한다고 합니다. 스타트업은 6개월 안에 그 가치를 증명해 보이지 못하면 엔젤 투자자의 지원이 끊긴다고 합니다. 상품사람아이디어가 그 가치를 증명하는 데 주어진 시간은 매우 짧기 때문에 우선적 애착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선적 애착은 선한 영향력으로 작용하여 누군가가 등록한 초기 평가는 성공의 시동을 거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요셉에게 적용해 보면 요셉은 약속을 붙들고 성공한 후 삼촌 집에서나 애굽에 내려가서도 적합성을 가지고 더욱 하나님의 사람으로 되어져 마침내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어졌습니다.

 

4 공식은 "팀이 성공하려면 다양성과 균형이 필요하지만, 팀이 성과를 올리려면 오직 한 사람만이 공을 독차지한다(다양성+균형+리더십=팀 성공)"입니다. 사람을 채용할 때 팀의 성과보다 개인의 성과를 우선시 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요셉에게 적용해 보면 그는 자식들과 함께 애굽에 내려 가서 자식들과 함께 팀웍을 이루어 살아서 애굽에 내려가지 못했지만 죽어서 가고 후손들에게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실현하였습니다.

 

5 공식은 "부단히 노력하면 성공은 언제든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Q-요인x끈기x노력=장기적 성공)"입니다.

심리학자 딘 키스 사이먼턴은 고대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다빈치뉴턴에디슨을 망라하는 2,000명의 과학자와 발명가들의 이력을 분석했는데대부분이 서른아홉 살에 역사에 족적을 남길 만한 업적을 이뤘답니다. 창의력은 젊었을 때 왕성하고, 늦어도 중년 초기까지 진가를 발휘한다는 인식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합니다. 사이먼턴은 예술가와 작가들의 이력도 살펴봤는데그들 또한 젊은 시절에 절정기를 구가했답니다.

그래서 특출한 과학자나 발명가 말고 일반인도 그런가 하여 시나트라와 함께 저자가 4000만 편에 이르는 논문을 연구했답니다. 학자들은 성공적인 연구 성과를 비교적 이른 시기, 즉 해당 분야에 입문하고 20년 내에 냈답니다. 정확히 말하면 경력 3년 차 과학자가 최고 영향을 미칠 연구를 발표할 확률은 대략 13퍼센트로 나타났답니다. 그다음 3년 동안에도 확률이 똑같았답니다. 20년 동안 매년 잭팟을 터뜨릴 확률은 비슷했답니다. 그러나 20년이 지나면 뭔가 변화가 생겼고 확률이 급전직하했답니다. 경력 25년차에 가장 인용 횟수가 많은 논문을 발표할 확률은 겨우 5퍼센트였답니다. 그리고 이후 확률은 계속 곤두박질쳤답니다. 그런데 경력 초창기에 창의적인 혁신을 낳는 이유들을 살펴더니 경력 20년차 후부터 대단한 연구를 발표할 확률이 급격히 떨어지기는 했답니다. 과학자들이 경력 생애 전 기간에 걸쳐 발표한 논문의 수를 살펴봤더니 출발점에서 압도적으로 생산성이 높았는데 나이 들수록 논문수가 줄어들었답니다. 지속적으로 생산성이 높으면 성공 활률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부단히 노력하면 성공은 언제든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80대 중반의 나이에 노벨상을 받은 존 펜은 32살에 논문을 발표했고 그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지속적으로 연구하여 전자분무 이온화 연구로 인생 땅거미가 질 무렵 노벨상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펜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했으며세상을 떠나기 몇 주 전까지도 거의 날마다 학과 연구실로 출근해고 전자분무의 메커니즘에 대한 그의 마지막 논문은 구순에 발표했다고 합니다. 지속성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요셉에게 적용해보면 젊은 때 빛난 것이 아니라 노년에 빛을 발휘했습니다.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성장함으로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이룬 것입니다.

이러한 법칙은 인과의 법칙은 아닙니다. 상관의 법칙입니다. 꼭 이렇게 하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실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 주식해서 돈을 벌었다고 자기처럼 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선전하면 그것에 혹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게 해도 돈을 버는 것이 아닙니다. 상관성이 있지만 인과성은 없는 것입니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는 다른 말입니다. 상관 관계는 두 변수 간에 일정한 관계가 있음을 의미하고 인과관계는 한 변수가 다른 변수의 원인이 되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키와 몸무게는 상관관계입니다. 키가 클수록 몸무게가 클 가능성은 높으나 반드시 그렇지 않습니다. 학업 성적과 수면, 소득수준과 교육 수준 등은 상관관계입니다. 담배 흡연과 폐암, 과음과 간 질환 등과 같은 것은 인관관계라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요셉이 성공했던 확실한 방법을 알려줍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관성 있게 적용되는 법칙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원을 주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동일합니다. 소원을 주시고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명을 주시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명을 이룰수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세와 다윗과 바울에게 약속만 하시고 방치한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 약속을 평생 동안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약속을 붙들고 한해 한해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올 한해 우리가 각자에게 허락받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1. 어떤 경우도 우선순위로 하나님의 약속에 집중하여야 합니다.

젊든 나이가 들었던,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었던 되지 않았던, 질병이 있던 건강하든, 실력이 있던 없던 어떤 경우에고 개인개인에게 주신 하나님이 주신 약속, 사명, 목표을 붙잡고 집중해야 합니다. 연초가 되면 목표를 설정하고 무엇인가를 이루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쉽게 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적인 인생을 살려면 어떤 경우에도 주어진 목표, 사명,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사명을 붙들고 사는 것이 불행으로 병들지 않는 최고의 명약입니다. 붙들어야 할 목표가 있어야 인생은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과학적 법칙을 기록하고 있는 <1만시간의 재발견>이라는 책에 의하면 어떤 성과를 이루는 사람들은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집중(Focus), 피드백(Feedback), 수정(Fix it)의 단계를 거치는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집중(Focus)하는 것이 우선 중요합니다. 핵심에 집중해야 합니다.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성과가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에 집중해야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약속만 남기고 다 지워버려야 할 때 지워버려야 합니다. 그럴 때는 작의 부정도 초월해야 합니다. 약속에 집중해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르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은 인생은 무엇에 집중하는 삶을 살았습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허락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2523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가졌을 때 이미 하나님께서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리브가의 뱃속에서 부터 큰아들 에서가 아니라 둘째 아들 야곱이 아브라함의 언약 계승자가 될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태어난 순서는 에서가 먼저 나왔지만 야곱에게 아브라함을 계승할 영적 장자권을 줄 것을 약속한 것입니다. 아마 이 사실을 어머니 품속에서 살았던 야곱은 알았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첫 번째로 방해하신 분은 아버지였습니다. 매사 아버지는 형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은 고기를 좋아하셨는데 사냥꾼인 에서가 고기를 사냥해오면 그것을 잡수고 에서를 편애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사회적 제도였습니다. 장자는 부모로부터 다른 형제보다 2배의 재산을 물려받고, 가장으로서의 권한을 물려받게 됩니다. 아버지 뒤를 승계하여 가문의 대소사(大小事)를 처리 할 수 있는 주도권이 있습니다(27:1-45; 대하 21:3).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한 가정의 대표자로 가문의 모든 일을 처리하고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며,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영적 축복권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그는 간발의 차이로 차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그 약속에 집중했습니다. 우리는 그 증거를 어디서 볼 수 있습니까? 창세기 253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집에서 팥죽을 쑤고 있었는데 형 에서가 심히 배고픈 상태로 집에 들어왔습니다. 형 에서는 야곱이 팥죽을 쑤는 것을 보고 그것을 달라고 합니다. 그때 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할 기회로 삼은 것입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기고 맹세하고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 먹고 팔아버렸습니다. 에서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 장자권에 별 가치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무엇보다 귀중하게 여겼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도덕적 양심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귀중히 여겼던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와 공모하여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을 얻어냈습니다(27:1-29). 물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속임수로 쟁취한 것을 결코 정당화될 수도 장려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것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입니다. 멀리 보는 자가 멀리 갑니다. 건강하게 장수하고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기 원한다면 사명, 즉 목표의식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미국 미시간대학 공중보건대학원 역학과 부교수인 셀레스트 리 피어스는 2006~2010년 집단의 사망 원인을 조사해보았더니 "생의 목적과 건강 사이의 연관성이 갈수록 확실히 드러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연구팀이 분석한 데이터는 참가자가 생의 목적을 갖고 있다고 강하게 느낄수록 장수하고 경제 생활이 풍요로웠답니다. 1953년 예일 대학을 졸업한 학생이 어떻게 사는지 20년 후 1973년 조사를 했답니다. 그 중 3%가 미국을 이끌어가는 리더로 살고 있었고, 그들의 수입의 합은 나머지 97%의 합보다 많았다고 합니다. 상위 3%의 사람은 학점이 좋은 사람도, 결혼을 잘한 사람도 아니라 구체적이고 명확한 꿈을 문서화하여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1979년부터 1982년까지 하버드대학 MBA를 졸업한 학생을 대상으로 10년 후를 조사했답니다. 졸업생 중 3%는 자신이 원하던 대로 성공했고, 10%는 어느 정도 꿈을 이루었고, 60%는 그럭저럭 살고 있었고, 27%는 생활보호 대상자였답니다. 3%는 자신의 꿈을 문서로 가지고 있었고, 13%는 문서로 만들지 않았지만 머릿속에 정리된 꿈이 있었답니다. 정리된 꿈은 가진 13%의 수입은 꿈이 없는 84%의 수입을 모두 합친 것보다 두 배나 많았고, 꿈을 이룬 3%의 수입은 나머지 97%의 수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았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통해 성공적인 삶을 살기 원한다면 각자 개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우선순위로 그 약속에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2. 어떤 경우도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불신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데 가장 방해되는 요인 중의 하나입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개인적인 기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매사 불신하는 사람은 사회에서 성공할 확률이 현격하게 떨어집니다. 상관의 말을 믿지 않는 부하를 누가 쓰겠습니까? 인간의 불행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을 불신한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불신은 약속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사명을 회피하게 만듭니다. 불신은 의욕도 동기도 떨어지게 합니다. 불신은 상사와 동료와의 관계도 악화시킵니다. 창의성을 마비시키고 협업과 소통의 장애물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이루시길 원하는데 우리가 불신해 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야곱도 하나님이 주신다고 약속해 놓고 이렇게 쫓겨나게 되었으니 얼마든지 불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도망가는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어떤 약속을 해 주셨습니까?

1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28:15)" 무슨 약속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이 함께 있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붙들고 살려다 잘못된 방법으로 그것을 쟁취하려다가 아버지도 잃고, 어머니도 잃고, 형도 잃고, 집도 잃고, 고향도 잃고 겨우 자기 목숨 하나 부지하기 위해 도망자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약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해주신 나만은 너를 떠나지 않고 너와 동행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냥 떠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땅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14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자손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 이루기까지 하나님이 떠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주겠다는 것입니다. 보호에 대한 약속입니다. 다 잃어버리고 몸뚱어리 하나밖에 없는 혈혈단신이지만 하나님은 그와 함께하시며 보호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셋째,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히브리서 1121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야곱의 삶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11:21)"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가나안 땅에 살아서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그것을 믿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은 야곱이 타향살이 20년 동안 그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20년 동안 낮에는 더위를 밤에는 추위를 이겨내면서 피눈물 나는 수고를 하면서(31:40)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이 이 약속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외삼촌 라반에게 열번이나 속임을 당하는(31:41) 아픔을 맛보았으나 그 때마다 마치 오뚝이처럼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약속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광야 같은 험악한 147년의 세월을 살면서도(47:28) 끝까지 그를 붙들어 주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사랑했던 어머니와 생이별하고 죽을 때까지 만나 보지못했습니다. 피를 나눈 형과 원수로 살아야 했습니다. 처음부터 뒤틀린 결혼을 해야 했고 그로 인해 계속되는 가정불화를 격어야했습니다. 20년 간을 처가살이를 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랑하는 부인 라헬이 죽는 비극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외동 딸 디나의 치욕을 경험해야 했고, 장자 르우벤과 첩 빌하 사이의 불륜관계를 목도해야 만했으며, 아들 요셉의 행방불명으로 노년을 한을 품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7년 대기근으로 말년에 낯선 땅 애굽으로 이민을 가야만 했습니다. 얼마나 험한 인생입니까? 그래서 야곱은 바로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나그네 인생이라고 말하며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47:9) 그런 인생을 살면서도 이때 만난 하나님 체험과 하나님의 약속이 그의 인생을 흔들리지 않고 버티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믿음이었습니다. 믿는 것을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하 선택입니다. 의심은 성공을 향한 문을 막아 버리는 장애물입니다. 한 치도 성공을 향에 걸어갈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의심의 늪에 빠져 버리면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판단력도 추진력도 분별력도 상상력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지구가 돈다는 것을 믿지 않아도 지구는 오늘도 돕니다. 게리 하버마스는 의심을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사실적 의심, 정서적 의심, 의지적 의심입니다. 사실적 의심은 신앙의 기초가 되는 성경적 사실, 역사적 사실, 또는 이 사실에 기반을 둔 과학적 사실 및 논리에 대한 의심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은 믿음의 근거가 되는 역사적 사실 및 논리를 충분히 제시하면, 대개 의심이 사라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런데 '정서적 의심'은 성경의 특정 사실이나 논리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개인의 주관적 느낌과 감정에 의심이 생기는 경우라 객관적 사실이나 증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느낌으로 증거를 판단한 결과 의심이 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아무리 객관적 증거, 역사적 과학적 사실 그리고 논리 정연한 설명을 제시해도 당사자가 의심스럽다고 느끼는 한 해결할 수가 없답니다. 더욱 고약한 것은 의지적 의심입니다. 본인이 의지적으로 믿으려 하지 않는 경우를 말합니다. 자발적으로 믿지 않으려고 의지를 발동하기 때문에, 의심을 없애려고 순순히 선택하지 않는답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객관적 증거, 역사적 및 과학적 사실, 양심과 상식에 근거를 둔 논리적 반박이나 증거를 제시해도 의심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1:1-2절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이신 예수님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9:23)”그리고 소원을 가진 자들을 향하여 네 믿음대로 되라고 하셨습니다.

 

3. 어떤 경우도 약속에 응답하는 실천하는 삶을 끝까지 실행하여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약속은 약속을 받은 사람의 실행을 통해 성취되는 것입니다. 믿는 데서 끝나버리면 안 됩니다. 믿었다면 실행으로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 침상을 들고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뜻을 이룰 때까지 실행해야 합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고 그 약속을 믿고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16-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무슨 말씀입니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합니다. 이제 모두가 자신을 떠나 버리고 자신 홀로 남은 것 같았는데 하나님은 그 실패의 현장에 고독한 현장에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홀로 있는 자신을 밤새도록 지켜 주심을 깨달은 것입니다. 바로 자신이 있는 곳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만나는 장소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실패한 자리가, 고독의 자리가, 쫓겨나는 자리가, 부도난 자리가, 병든 자리가, 오해받는 자리가, 고난의 자리가, 소외된 자리가, 멸시받는 자리가, 굶주린 자리가, 가난한 자리가 바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 꿇는 자리입니다. 욥이 고난의 과정을 경험하고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42:5)라고 고백했듯이 고난의 파도를 겪으면서 하나님의 실재를 본 것입니다. 욥은 재산도, 자식도, 건강도 잃고 진정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권력도, 명예도, 부도 다 잃고 광야에서 떨기나무 불 가운데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체험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신앙체험을 한 것입니다. 삶의 변화는 이때 오는 것입니다. 지식이나 깨달음이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실존적 만남을 가진 것입니다. 내게 다가온 어려움을 모든 것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로 삼는다면 이 보다 값진 것은 없습니다.

<실행이 답이다(이민규)>라은 책에서 저자는 변화가 일어나려면 반드시 다음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첫째,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될 절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둘째, 어떤 일이 있어도 원하는 목표를 달성해야 할 간절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변화를 원하면서도 변화하지 못한다는 것은 현재 상황이 절박하지 않고 간절하게 원하는 것도 없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야곱은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진솔하게 반응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응합니까?

1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이제 어제의 야곱이 아닙니다. 쫓기는 야곱의 아닙니다.

야곱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어제의 태양이 아닙니다. 동녘에 솟아오르는 광명한 태양을 바라보면서 말할 수 없는 희열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밤새 베개하였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가지고 가던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것은 성별의 의미 또는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상징일 것입니다. 그곳의 이름을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혼돈이라는 루스를 하나님의 집이라는 벧엘로 고쳐 부른 것입니다. 인생의 방향이 확실하게 정해진 것입니다. 세계관이 바뀐 것입니다. 물질관이 바뀐 것입니다. 축복관이 바뀐 것입니다. 삶의 목적이 명쾌해진 것입니다.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 곳이지만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에 하나님의 집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 가지 서원기도를 합니다. 편안히 아버지 집에 돌아오게 하시면 첫째, 여호와께서 그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21하반절). 둘째, 야곱이 기둥으로 세운 곳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22상반절). 셋째, 십일조를 드리겠다는 것입니다(22하반절). 야곱은 세계관이 변하였습니다. 그는 인생관이 변하였습니다. 그는 물질관이 변하였습니다. 축복의 개념이 달라졌습니다. 형의 장자권이 단지 아버지 상속을 받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히브리서 11:21에서는 야곱의 인생을 단 한 절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삶의 과정을 통해 철저히 변하였습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갖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철저하게 계산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후 그를 철저히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반응하며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증거를 몇군데 찾아 보겠습니다.

(1) 철저히 약속붙들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여 욕심의 노예에서 벗어납니다. 43:1-2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큰 기근입니다. 그런데 적은 식량이라고 말합니다.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먹일 소와 양이 많고 자손과 종이 많은데 탐심이 없어진 것입니다.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46:6)

(2)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실천합니다. 43:14을 보십시오. 아들이 인질로 잡힐 위기에 처했는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 버립니다.

(3) 제단 중심 생활을 실천합니다. 경건하게 제단을 쌓습니다(45:28-46:1)

(4) 세상의 소망 보다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소중히 알고 현재의 일보다 미래의 일에 더 생각하는 삶을 실천합니다(49:18)

야곱은 받은 벧엘에서 약속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은 자신의 인생을 통해 신실하게 응답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 일평생 이 은혜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는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었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 인도하여 민족을 만드는 모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복의 근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오게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조상이 되었습니다.

 

올 한해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한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올 한 해도 저와 우리 성도님들에게 허락한 것을 꼭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어떤 경우도 우선순위로 하나님의 약속에 집중하여야 합니다.

 어떤 경우도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경우도 약속에 응답하는 실천하는 삶을 끝까지 실행하여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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