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3) 은혜로 형통
창39:21-23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여름 성경학교 때 하나님은 계시다는 주제로 공부를 했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였고,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으며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주를 운행하시며 우리와 함께 하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말씀을 배웠답니다. 그리고 성경학교를 마치는 날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하나님께 편지를 쓰도록 했답니다. 그 때 한 어린이가 이렇게 편지를 썼답니다. “하나님, 이번 여름성경학교는 정말 재미있었어요. 하나님도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우리끼리만 놀아서 미안해요.”
혹시 우리 성도님들 중에 이렇게 인생을 사시는 성도님들 계십니까? 젊은이들 중에 교회에 다니면서도 속으로는 “하나님도 없고, 지옥도 없으며 천국도 없다”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알 수도 없는 대상으로, 단이 인간이 만들어낸 신”이라고 말하며 “아마도 신은 없을 것이야, 이제 걱정을 멈추고 인생을 즐리라”라고 말하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무신론(Atheismus)자들은 신은 인간의 자유와 발전을 반대하며, 인간을 속박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빼앗으며, 인간의 소외를 가져 오게 하였다고 주장합니다. 이론적 무신자는 자신의 판단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이론적 무신론자 중에는 비판적 무신론자와 신의 존재를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자가 있습니다. 극단적 무신론자는 모든 정신적이고 초감각적인 존재를 부정하는 물질주의(Materialismus)자와 실증주의(Positivismus)자입니다. 범신론(Pantheismus)자는 세계를 초월하는 인격적 신을 믿지 않으며 실천적 무신론자는 신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으나 자신의 삶의 과정을 통하여 부정합니다. 그들이 말하고 믿는 것처럼 정말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 망상에 불과할까요?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떻게 이 땅에 태어났습니까? 부모님이 낳아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부모님은 누가 낳아 주었습니까? 할아버지 할머니가 낳아주었습니다. 계속 오르면 최초의 누군가가 있습니다. 과학에서도 최초의 누군가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최초의 누군가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무신론자자로 진화론자을 믿고 있는 자들은 무수한 진화를 거쳐 발달해 온 하등한 원시 포유류’에서 비롯되었을 것이고, 그 하등한 원시 포유류의 궁극적인 기원은, 지극히 원시적인 형태의 단세포 생물이고, 그 단세포 생물의 궁극적인 기원은 단백질과 RNA, DNA 등이었으며, 이들의 궁극적인 기원은 그것을 구성하는 탄소나 질소, 산소, 수소 등의 원소의 원자, 양성자, 전자 등의 미립자이며, 미립자의 궁극적인 원인, 최종 원인은, ’그냥 원래 있었다’ 라는 것입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무수한 존재’들 (사람, 동물, 식물, 물, 산, 돌, 바람, 지구, 태양, 달, 행성, 우주, 시간, 공간)의 궁극적인 기원에 대해 대해서도 ’원래부터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인도 없이 원래부터 존재하는 물질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대단한 믿음입니다. 유신론자든 무신론자든 세상에 존재하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믿고 있는 것을 공리하고 합니다. 모든 논리적 도출을 그 공리에서 출발하는데 그 전제가 되는 공리는 2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모든 존재하기 시작한 것에는 원인이 있다’ 이고, 두 번째는, ‘무에서 유가 창조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원래부터 있었다는 것은 수확적 추론으로도 맞지 않는 것입니다. 우주의 시작 자체가 없다면 우주의 과거 사건의 수는 무한대라는 것인데 수학에서 무한이라는 것은 실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토대로 제공되는 개념을 만들기 위해 가무한이지 실재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수학자 데이비드 힐버트에 의해 이미 밝혀졌습니다. 무한이 존재한다면 무한대 빼기 무한대는 0일까요 무한대일까요? 자기 모순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미 현대 물리학에서 빅뱅이론을 통해 우주 만물은 130억 전에 우주의 기원이 있었다고 밝혀졌습니다. 시작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빈박스 하나를 보여주고 이 빈 박스에서 우연히 정교한 컴퓨터가 나왔다고 하면 믿겠습니까? 제가 박스에 시계 부속품을 넣어 놓고 막 흔들며 이렇게 시계가 조립되어 정교하게 시간을 맞추는 기계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하면 믿겠습니까? 학자들이 원숭이 6마리로 한 달 동안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게 했고 원숭이 들이 50페이지나 되는 글자를 타이핑했는데 의미 있는 단어가 하나도 없었답니다. 우연이 우주가 탄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엇이가가 저절로 만들어 지는 것은 거의 0의 확률에 가까운 것입니다. 무엇인가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주는 미세 조정에 의해 정교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빛의 속도, 핵력, 우주 안에 있는 물질의 양, 전자의 질량, 전자기력의 힘, 산소의 수준, 대기의 투명도, 중력, 이산화탄소 농도 등이 정확하게 존재해야 합니다. 산소가 조금만 많거나 부족했다면, 이산화탄소 농도나 빛의 속도가 지금보다 조금만 많거나 적어도. 중력의 힘이 조금만 크거나 적었다면, 우주나 우리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빅뱅 이후에 일초에 해당하는 팽창비율이 천억 분의 백만 분의 일만큼이라도 더 작아졌다면, 우주는 현재의 크기에 이르기 전에 붕괴하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시간이 시작되어 우주가 시작된 그 시점부터 우주의 모든 물질들은 정밀하게 조정된 법칙과 수치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물질을 서로 잡아당기는 중력이 없다면 행성도, 항성도 없고, 어떤 형태의 복잡한 유기체든 생성이 불가능합니다. 또한 강한 핵력이 없다면 원자핵에 양성자와 중성자를 잡아둘 힘이 사라지므로 원자 자체가 생성될 수도 없고, 화학물질이라는 것 또한 존재할 수가 없지요. 전자기력이 사라지면 화학물질 사이의 연결고리가 없어져 빛이 사라집니다. 이런 식으로 우주의 생명체가 존재하기 위한 기본 법칙들 중 단 하나만 제거해도 생명체는 우주에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이처럼, 생명체라는 것은 무수한 물리적 상수에 의해 존재하고 있습니다. ’랜덤한 확률’에 의해 현재의 우주와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그야말로 0에 가깝다는 사실이 밝혀진 사실입니다. 원인자가 있어야 설명되어 지는 것입니다. 궁극적인 원인은 무엇이겠습니까? 세상 만물을 존재하게 한 최초의 원인자는 무엇이겠습니까? 물리학자 폴 데이비스는 하나님을 “우주의 정교한 조율자”라고 불렀습니다. 호일이라는 과학자는, 우연에 의한 생명발생은 마치 고철덩어리를 쌓아놓은 야적장에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니 갑자기 보잉 747이 만들어진 것과 같은 불합리한 생각이라고 주장하며 무신론의 거두였다가 우주를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회심하였습니다. 앤터니 플루(A. Flew)는 과학적 증거를 따라가다 보니 무신론보다는 유신론이 우주를 설명하는 더 적절한 원리라는 것을 인정하고 결국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였습니다. 유전자 연구의 대가인 콜린스(F. Collins)도 미세조정(fine tuning)된 우주나 엄청난 정보를 담고 있는 DNA에 흔들려 무신론에서 유신론으로 전향해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했습니다. 플루는, 만일 어느 호텔에 들어갔는데 제일 좋아하는 음악이 흐르고, 집에 있는 액자와 동일한 액자가 걸려있고, 제일 좋아하는 향수가 뿌려져 있으며, 미니바에는 제일 좋아하는 음료와 간식거리가 있다면, 그리고 책상위에는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놓여있고, TV를 켰는데 좋아하는 채널이 켜있다면, 이 모든 것을 우연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마치 우주가 이처럼 인간이 미리 올 것을 예측이나 한 듯이 미세한 부분까지 조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 우주는 우연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렇게 설계해놓았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다.
창세기 1장 1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해 보이기 위한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인간과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논리적 설명보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기정사실에 바탕을 두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성경의 저자 중 그 어느 누구에게라도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해 보이라는 지시가 내려진 적은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단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否認)하는 자는 미련한 자라고만 잘라서 말하고 있을 뿐이다. 시편 14편 1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형태의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분명한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시편 19:1에 “하늘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창공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19-20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창조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에 관하여 이제라도 배워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제슬린 저스티스는 "인간 두뇌가 하나님의 존재를 인지한다는 것을 과학이 증명하다"라고 말합니다. "우리 두뇌에 하나님을 믿는 회로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한 번도 교육을 받지 못했다 할지라도 우리 두뇌는 여전히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인식 불능증’ 질환자와 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병에 감염되면 환자는 자신의 왼팔이나 왼다리가 마비되었다는 것을 무시하거나 때때로 부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에 의해 보편적 신앙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2:15에서는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그들의 양심도 증거하고 그들의 이성이 송사하거나 서로 변명하여 그들의 마음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보여 주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인간의 양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17:23에서도 “지나다니다가 너희가 섬기는 대상을 보았는데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 놓은 제단도 있었노라”고 했습니다. 비록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늘에 있는 태양의 광채를 인정하지는 않더라도 태양이 존재하며 매일같이 뜨고 진다는 사실 만큼은 부인하지 못합니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하나님은 계시고 오늘도 여전히 살아 계신다”는 끊임없는 속삭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비행기를 쳐다보고서 조종사가 보이지 않으니 조종사 없이 비행기 스스로 날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하늘을 쳐다보며 단순히 하나님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무신론자들의 잘못된 논리는 첫째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현상과 원리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은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합니다.
둘째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은 거짓이다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것은 있습니다. 과학은 물리적 현상을 설명할 뿐이지 비물리적인 속성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셋째는 경험적으로 증명이 불가능한 현상은 거짓이다는 것입니다. 임진왜란의 진위성을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국어 문법으로 미적분 공식을 증명하려고 시도하다가 불가능함을 깨닫자, 수학 공식은 거짓이라고 주장하면 되겠습니까?
만물은 우연히 존재한 것이 아니라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우주는 스스로의 힘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 정교하게 운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적이고 도덕적 성품을 주어 이 땅에 존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생명의 원천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36:9에는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1:25에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 생명이니" 또 14:6에서는 "나는 ... 생명이라."라고 하셨고 10:28에서는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생겨난 것입니다. 생명이 자발적인 진화론로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6절에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찾아서 읽어 보겠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이 은혜로 믿음을 주어 하나님과 함께 은혜를 누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제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단톡을 통해 매일 아침에 열린편지를 보내는데 지난 1월 18일에 의사이자 코넬대와 홍콩과기대 정책학과 교수로 학생을 가르친 김현철 박사가 쓴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이라는 책에 나오는 인생 성취의 8할은 운이라는 내용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세계은행 출신의 저명한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의 연구에 의하면 월급, 태어난 나라, 교육 정도, 성별 등 다양한 조건을 조사해 보았는데 태어난 나라가 평생 소득의 절반 이상을 결정해 준다는 것입니다. 저개발 국가에서 태어나면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입니다.
경제학자 미국 다트머스대학교의 브루스 새서도트의 연구에 의하면 어느 부모에게서 태어났느냐가 교육 연한의 44.3%를, 소득의 32.4%를 설명해 준다는 것입니다. 결국 어느 나라에 태어났느냐도 부모이기 때문에 인생 80%는 어떤 부모를 만나 함께 하느냐가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성취의 또 다른 척도인 ‘건강’도 운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우선 태어난 나라와 부모가 기대수명을 크게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소득 수준과 의료 시스템 등이 기대수명에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2017년 존스홉킨스대학교 연구팀은 과학 저널〈사이언스〉에 18가지 주요 암의 발생 요인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답니다. 크게 유전, 환경, 세포 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적 요소가 암 발생 요인이랍니다. 연구 결과, 암 발생의 50% 이상이 우연에 기인했답니다. 게다가 부모가 물려준 유전도 운이랍니다. 사람의 노력으로 예방할 수 있는 환경 요인은 4분의 1에도 미치지 않다고 합니다. 결국 사람의 건강도 운이 8할을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20%도 우리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노력할 수 있는 힘조차도 사실 상당 부분 타고난 것이기에 인생 성취의 대부분은 우리가 스스로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칠레대학교와 칠레 가톨릭대학교는 칠레의 명문대인데, 인문계의 경우 경영학과 법학 전공이 인기가 많답니다. 입학 자격은 철저히 시험 성적으로 정해진답니다. 이곳을 졸업한 1.8%가 주요 기업 요직의 41%를, 상위 0.1% 소득자의 39%를 차지한답니다. 대한민국도 시가총액 상위 30개 기업 임원의 25%가 서울대, 연대, 고대 출신이라고 합니다. 세스 지머먼 예일대학교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다른 특성들은 매우 비슷하나 특정 사건(입학 커트라인)으로 운명이 바뀐 사람을 분석했답니다(회귀 불연속 설계). 사소한 점수 차이로 명문대 입학은 고소득자가 될 확률을 50%가량 상승시켰답니다. 시험 점수 1점 차이로 고소득자가 될 확률이 50%나 증가했답니다. 사회에서의 보상이 결코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이뤄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능력이 비슷한데 커트라인 때문에 운명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매우 작은 점수 차이로 명문대에 아슬아슬하게 입학한 학생과 탈락한 학생이 졸업 뒤 상위 0.1% 고소득자 혹은 기업 임원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꼭 실력에 의해 인생의 성공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오늘의 내가 될 수 있던 것은 8할 이상이 공동체와 다른 사람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시는 분으로 믿는 그는 신앙적 용어로 은혜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씀한 것처럼 그 교수님도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신앙 간증을 들어 보았습니다. 친구들의 전도를 받아 교회에 나갔지만 예배시간에 잠만 잤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때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왕따를 당하다 신실한 짝을 만나 교회에 나가게 되었답니다. 그 친구도 의사가 되었답니다. 대학에 들어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약자들을 돌보는 것은 사람을 통해, 국가를 통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강남 세브란스 병원에서 24살에 근무했는데 강남 분들은 0기 1기 때 오는데 하루는 45세 할머니 같은 분이 오셨답니다. 시골에서 일하며 얼굴이 주름에 가득한 말기 유방암 환자였답니다. 모기 같은 소리로 “선생님 저 암이 아니지요”라고 했답니다. 그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실태를 보고 화장실에 가서 울었답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못배우면 왜 이렇게 되어야 되느냐고 질문하며 국가적 제도를 통해 소외된 자를 돌보아야 하다는 생각으로 경제학 공부를 하였답니다. 컬럼비아 대학 유학하였는데 학부 4.0 이상 받은 자 만 합격을 시켰답니다. 그런데 자신은 의대에 꼴찌로 들어갔고 평점이 4.0이 되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한국 의대는 경쟁이 심하니 합격시켜 주었답니다. 20명이 경제학 박사 과정을 거치는데 바닦 5명을 퇴학시켰답니다. 자신은 15등 정도였답니다. 아침 일어나 죽을 것같아 “하나님 오늘 하루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제발 도와 주세요”라고 절박하게 기도하였답니다. 친구 2명과 선배 1명을 통해 개인 과외를 받아 꼴등으로 합격하게 되었답니다. 교수 채용도 4명 선발에서 한 교수의 추천으로 교수가 되었답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가서 죽음의 위기를 무릎쓰고 좋은 제도를 만들어 그들을 돕기 위해 애를 썼답니다. 그렇게 사는데도 삶의 현실 속에서는 마음에 늘 하나님의 부재와 임재의 갈등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해 주시면 왜 이렇게 세상이 불공평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고난을 받아야 하느냐는 질문이 있었답니다. 신앙인 좋은 분으로 아브리카에 의과대학을 세우시는 선배 원장님이 계셨는데 유학 시절 돈이 없다고 하니까 400만원의 경비를 다 내주면서 자신을 아프리카에 눈을 뜨게 만들어 주신 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베트남 선교에 가셨다가 사고로 베드남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그렇게 신실한 신앙인이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선교에 가셨다가 돌아가시느냐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의 부재를 드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간증하기를 그렇게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부재와 임재를 갈등하면서 하나님이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 지혜로운 신앙인이라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부재와 임재 사이에 갈등하는 것 자체가 영적으로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죽으면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그렇게 갈등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와 함께 시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요셉도 하나님의 부재와 임재 가운데 얼마나 갈등을 하였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요셉은 평생 동안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ᄄᅠᆫ 처지 어떤 환경에서도 함께 해 주었습니다(창39:2,3,21,23 행7:9). 2,3,21,23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품을 떠났습니다. 고향을 잃었습니다. 집을 잃어 버렸습니다. 가족을 잃었습니다. 형제들의 시기로 인신 매매되어 종이 되었습니다. 자유를 잃은 사람입니다. 미래가 없습니다. 과거 어릴 때 꿈을 꾸었습니다. 형들이 자신들에게 절할 것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형들이 절하기는커녕 형들이 노예로 팔아 벌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함께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억울하게 감옥에 갔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이해가 되십니까?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복입니다. 사람들은 어려움 당하면 도망갑니다. 사랑하는 아내도 실직하여 병들면 도망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방의 의인 욥같은 사람도 아내가 병들고 고난받으니까? 하나님 저주하고 죽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던지 그곳에 함께해 주십니다. 올 한해 우리 하나님이 어디에 있던지 어떤 처지에 있던지 함께해주시는 한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결과가 이루어 집니까?
1.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환란에서 하나님이 인자로 건져 주십니다(21,행7:10). 인생의 미래
2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여기서 인자라는 말은 히브리어 헤세드의 번역으로 언약에 기초한 하나님의 불변의 사랑을 말합니다. 그래서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였습니다. 아무런 조건없이 선대함을 받게 한 것입니다. 그를에게는 이방인입니다. 종으로 상관의 부인을 간음하려다 걸려온 사람입니다. 선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헤세드로 하나님께서 간수장의 마음을 움직여 그렇게 환난에서 거져 주신 것입니다.
요셉이 웅덩이에 갖히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죽었습니까? 그대로 놓아두면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방 상인을 통해 구해 주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렸습니다. 그곳에서 학대를 받다가 죽임을 당합니까?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으로 애매하게 감옥에 갖힙니다. 그 감옥에서 처형되었습니까?
웅덩이에 갖히면 웅덩이에서 건져 주십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갖히면 감옥에서 건져주십니다. 요셉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요셉에게 인자를 베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수장의 은혜를 받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신약적 용어로 말하면 환난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후대의 성경 기록자는 요셉의 생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보십시오.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저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치리자로 세웠느니라 (행 7:9-10)"
환란에서 건져내었다고 합니다. 한 가지의 환란이 아닙니다. 모든 환란에서 건져내었다고 말씀합니다. 웅덩이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환란입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억울하게 인생을 끝마쳐야 할 수 밖에 없는 환란입니다. 감옥에서 그대로 인생을 끝낼 수 밖에 없는 환란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환란에서 건져 주었다는 말입니다.
올 한해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모든 환란에서 건짐받는 한 해가 되기기 바랍니다. 작년 한해 동안 마치 요셉이 노예로 팔린 것 처럼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었던 가정이 있습니까? 올해는 그 환란에서 건짐받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다가 오더라도 두려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건강의 환란, 재정적인 환란, 인간 관계의 환란, 신앙의 환란, 직장의 환란 등이 있습니까? 그러나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하나님은 그 모든 환란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올 한해 아니 우리 인생 마치는 순간까지 하나님이 함께 하여서 결국 우리를 그 모든 어려움에서 건저주실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질머지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우리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 16:33)"
갖가지 어려운 인생의 과정을 격으며 오로지 주를 위해 일평생을 사신 사도 바울 선생님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8-39)" 이 말씀을 믿습니까? 2024년도 모든 환난에서 건짐받으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해를 끼치는 사람들이 꾸민 악한 계획까지 선으로 바꾸어 주십니다.(22, 창50:20)-방해하는 사람들(대인 관계)
2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왜 보디발이 요셉을 감옥에 넣었습니까? 무죄한 요셉입니다. 평소 요셉을 본 그는 아내가 잘 못한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의 잘못을 덥고 요셉을 감옥에 집어 넣음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체면을 세우려고 했을 것입니다. 요즘도 마찬가지만 상대를 공격하는 최대의 무기는 상대를 악마화하는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그를 감옥에 쳐 넣으므로 그를 죽이려고 했을 것입니다. 사회로부터 매장하고 결국 그 감옥에서 사형 언도를 받고 죽게 만들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간수장이 어떻게 합니까? 제반 사무를 요셉에게 맡깁니다. 오히려 악한 계획을 선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살다보면 우리가 잘 되는 꼴을 못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우리를 지지하는 자들도 있지만 우리를 시기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와 무관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적극적인 적대자가 한 사람만 있어도 목에 칼을 드리댑니다. 사람들을 향하여 악선전을 합니다. 악마화하여 매장을 시켜 버립니다. 우리가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하여 시기하는 사람들, 유혹하는 사람들, 경쟁하는 사람들, 어떻게든 넘어뜨리고 실패하게 만들려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키려하는 사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요셉을 보십시오. 비록 노예로 팔려갔지만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여서 가정 총무가 되었고 그가 맡아 일을 하니까 그 집이 잘되었습니다. 그 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유혹합니다. 주인의 아내입니다. 6절에 보니까 요셉의 외모가 준수하고 아담하다고 했습니다. 중년 부인이 바람이 났습니다. 그래서 눈짓을 합니다.(7) 눈짓해도 못본채 하니까? 주인만 없으면 날마다 청합니다.(10) 바람도 단단히 났습니다. 그래도 거절하니까? 12절에 옷을 잡고 늘어집니다. 그래도 요셉은 옷을 뿌리치고 도망하였습니다. 요셉은 붉은 피가 끓는 20대 젊은이입니다. 이 유혹을 물릴 칠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옵니까? 주인이 무서워서입니까? 감옥에 갈까바서입니까? 9절 보십시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신전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감옥에 갖혔다고 그것이 끝입니까? 아닙니다. 이 때 나이 27살입니다. 하나님이 그 과정을 통하여 요셉으로 하여금 최고 권력층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고 결국 30살에 공무원으로 일하게 만든 것입니다. 시기하는 형들이 팔아 먹었습니다. 결국 요셉은 그 사건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 50:20)"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이렇게 악한 계획까지도 선하게 바꾸어 주십니다. 형들의 악한 계획도, 보디발의 아내의 악한 계획도 결국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방해하는 자들, 시기하는 자들까지 사용하여 하나님은 요셉에게 주신 비전을 이루게 만들었습니다. 어릴 때 가진 꿈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한 것입니다. 올 한해 이런 역사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시기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여 선으로 바꾸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해를 끼치려 한다할지라도 그것이 선으로 바꾸어지는 역사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3.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가는 곳마다 하는 일마다 형통(온갖 일이 뜻같이 잘 되어감)하게 되었습니다.-맡겨준 일
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범사에(모든 일에) 형통하게 되었습니다.(3, 23) 장소에 관계없이 형통하게 됩니다. 이국 땅입니다. 자기 나라가 아닙니다. 신분에 상관없이 형통하게 됩니다. 노예의 신분입니다. 종이 되었습니다. 종이 되어도 형통하게 됩니다. 4절보십시오. 주인이 은혜를 베풀어 가정 총무을 삼고 그 모든 소유를 맡깁니다. 하나님께서 요셉 때문에 그 집이 어떻게 됩니까? 5절 보세요. 그 집과 그 소유물에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감옥에 죄수의 몸으로 들어갔습니다. 감옥에 들어가도 형통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국무총리가 됩니다. 나라일을 맡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가뭄으로 죽어갈 때 그가 맡은 나라는 형통하게 됩니다. 집에 들어가면 집이, 감옥에 들어가면 감옥이, 나라에서 일을 맡으면 나라가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여서 이런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곳에 형통함을 나타내시길 바랍니다. 하는 일 마다 형통하길 바랍니다. 요셉은 적어도 4가지의 직업을 가졌습니다. 4번 직장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목동으로, 가정 총무로, 감옥의 맡은 자로, 나라의 총리로 그런데 가는 곳곳 마다에서 하는 일마다에서 형통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우리도 올 한해가 그런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직장을 옮길 수도 있습니다. 직종을 옮길 수도 있습니다. 뜻하지 않는 자리에 갈 수도 있습니다. 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다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여 그 어느 곳에서든지 형통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형통하는 역사를 자신만 체험한 것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가 형통한 것을 보았습니다.(3) 형통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었습니다.(5) 나 한사람이 잘되면 가정이 친척이 나라가 교회가 잘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올 한해는 형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한 사람의 영향력은 대단히 큰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요셉 한 사람 때문에 그 가정이 살아납니다. 나라가 살아 납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어 나중에 어떻게 합니까? 조카들까지 다 책임을 집니다. 성경에 보면 나사로 한 사람 때문에 믿는 자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다윗 한 사람 때문에 골리앗 앞에 떨고 있던 백성들이 기쁨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모세 한 사람 때문에 노예로 사는 억압받는 민족이 출애굽하게 됩니다. 나 한 사람 참으로 중요합니다. 실패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형통하여야 합니다. 올 한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내가 형통함으로 우리 가정이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되고, 가정 경제가 회복되고, 자식이 잘되고, 가정에 평안이 깃들고,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살아 계신 능력을 나타내는 한 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나 하나 때문에 내가 다니는 직장이 복을 받고 내가 속한 나라가 지역사회가 교회가 복은 받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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