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2) 안전기지((Secure base)
시18:2
2024년 새해가 되었습니다. 2024년 민족적으로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무엇일까요? 저출산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은 인구 소멸 1호 국가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출산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280조라는 천문학적 돈을 쏟아 부었지만 지난해 3분기 출산율 0.7이라고 합니다. 부부 200명이 70명을 낳아 불과 20년 만에 반토막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구 절벽을 넘어 국가 소멸로 치닫고 있다고 합니다. 어느 나라나 출산율이 떨어지면 출산 장려 정책을 쓰는데 1965년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강력한 출산 장려 정책을 펼쳤답니다. 피임과 낙태를 금지시키고, 가임 여성은 무조건 4명 이상 아이를 낳도록 했답니다. 이를 어길 경우 벌금을 내야 해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는 태어난 아이를 보육원에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답니다. 보육원 교사 한 명이 수십 명의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아이를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명분 아래 아이들을 안아주지 않는 정책들도 시행했답니다. 보육원 아이들은 나중에 다양한 국가, 다양한 가정 환경으로 입양을 가게 되었고, 입양 후 성장한 환경은 다양했지만, 대다수 아이는 낮은 지능, 사회적 역량 부족, 폭력적 성향 등 공통적 특징이 발견되었답니다. 특히 만 3세 이후에 입양을 간 아이들의 경우는 그 상황이 더욱 심각하였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요?
<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최성애.조벽 저)>라는 책을 보면 정신과 의사 르네 스핏츠 박사의 실험이 나옵니다. 보육사들이 생후 6~18개월된 아기들에게 분유, 기저귀 갈아주기, 씻기기 등 기본적인 돌봄만 주고 눈 맞춤이나 안아주기 같은 정서적 돌봄은 주지 않았답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자 걷던 아기가 기어 다니거나 손가락을 심하게 빨거나 하는 행동적 퇴행을 보였고, 비명을 지르거나 흐느꼈답니다. 석 달 후에는 태아 자세로 웅크리거나 엎드려 있는 등 특유의 병리적 자세로 누워 있었고 표정이나 행동이 경직되었답니다. 5개월 후에는 표정이 멍해졌고, 성장이 중단되었으며, 손가락을 눈앞에 바짝 대고 뒤트는 기이한 손동작을 하고, 앉거나 기어 다니지 못했답니다. 6~7개월 후에는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병리적인 행동을 보였고, 폐렴 등 감염성 질병에 걸렸으며, 전체 실험 대상 아동의 37.3퍼센트가 급속한 노화 증상을 보이다가 만 두 살 이전에 사망했답니다. 이 실험 결과는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답니다. 정서적 돌봄의 박탈이 이 정도로 악영향을 미칠 줄 몰랐던 스핏츠 박사는 윤리적인 이유로 실험을 중단해야 할 정도였답니다. 인생 초기에 형성된 부모 자녀간의 정서적 애착의 질은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그 책에 보면 영국에서 있었던 일도 나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은 독일군의 집중 폭격에 취약한 런던 같은 대도시에 사는 어린아이들을 폭격이 덜한 농촌으로 대피시키는 아동 대피 프로젝트를 만들었답니다. 아이들은 농어촌, 심지어는 영연방이었던 캐나다,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해외로까지 피난을 보냈답니다. 도시 인구의 3분의 1 정도(약375만 명)가 이 국가적 대피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약 82만 7천 명의 학령기 아동과 수십만 명의 영유아들이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부모와 떨어져 낯선 가정이나 임시보호소에 맡겨졌답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믿을 수 없는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답니다. 어른들의 좋은 취지와 달리 낯선 가정에서 낯선 양육자들(국가 지원의 단기 훈련을 받고 보모가 된 사람들)에게 맡겨졌던 아이들 중에는 병들거나 심지어 사망한 아이가 많았답니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아이들은 상당히 오랫동안 불안증, 우울증, 집중력 저하, 학습 곤란 등 많은 심리적, 정서적 문제를 겪었답니다. 당시 세계보건기구(WHO)의 자문관있던 존 볼비 박사는 아이들이 이렇게 된 이유가 부모와의 애착결핍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성인 뇌의 80%까지는 영유아기에 형성된다고 합니다. 36개월의 부모와의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애착관계가 인생을 사는데 집을 짓는 기초와 같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심리학자 존 볼비라는 사람이 수용소 시설, 탁아소, 고아원에서 성장한 아동들은 다른 사람들과 친밀하고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볼비는 4세 전에 부모와 떨어져 결핵 요양소에서 약 5개월에서 2년 정도 지낸 7~12세의 아이들을 분석하고 추적· 관찰했답니다. 이들은 정상적으로 자라난 아이들에 비해서 훨씬 거칠고 주도성이 떨어지거나 과도하게 흥분할 때가 많았답니다. 볼비는 이와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아이에게 애착 본능이 있는데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애착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못해서라고 합니다. 애착(attachment) 결핍이 생겨서라는 것입니다. 강아지를 보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엄마 개에게 가서 젖을 빱니다. 새끼 기린은 엄마 배에서 나오자 마자 부서질 것같은 가는 다리로 죽을 힘을 다해 일어납니다. 병아리를 부리로 껍데기를 깨고 나옵니다. 바다 거북이는 알에서 깨어나자 마자 바다를 향해 죽기 살기로 달려갑니다. 이런 것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심어준 생존 본능입니다. 그런 것처럼 인간도 생존 본능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애착이라는 것입니다. 영어로 attachment(애착 어태치먼트)는 ‘달라붙다, 접착하다’라는 뜻을 가진 ‘attach’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애착이란 아이가 부모에게 정서적으로 달라붙는 행동을 뜻합니다. 이때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성격 발달 뿐 아니라 신체, 인지, 정서, 사회적, 신앙적 발달에 평생도록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음식, 물 등 신체적 안전만이 필요한 게 아니고 아이와 부모 간에 긴밀한 정서적 애착이 형성되어야만 아이의 뇌와 몸의 신경체계, 호르몬 체계가 원활히 연결되고 작동한다고 합니다. 많은 연구를 통해 안정적 애착은 평생에 걸친 건강과 심리적 안녕에 핵심 요인임이 밝혀졌답니다. 리 컥패트릭(Kirkpatrick) 애착의 네 가지 기준을 “애착대상에 대한 근접 지속성, 애착인물로부터 분리 불안,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있을 때 안전한 안식처, 외부 환경 탐색을 위한 안전기지” 등이라고 말합니다. 유아 때 애착관계가 잘 형성되지 못하면 내적 표상이 즉 성장과정에서 타인에 대한 신뢰감과 자기 가치관에 대한 일종의 신념이 생격 이것이 자기와 타인과의 관계모델이 되어 애착 손상으로 말미암아 신체 발달, 인지 발달, 사회성 발달 뿐 아니라 정서 발달에게 좋지 않는 영향을 주어 감정 조절, 충동 조절, 주의력, 상황 파악 능력, 공감력, 대인관계 능력 등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극단적인 경우, 사이코패스가 되기도 한답니다. 로이스만(Roisman)과 그의 동료들의 연구에 의하면 불안정애착에서 안정애착으로 전환은 1000명 중 20명에 해당하는 2%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어린시절 안정적 애착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기치 못한 분리, 장기간의 이별을 경험할 때 애착 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생애 초기, 최적의 시기(3년 전), 민감한 시기에 애착 결핍이 생기면 성인기의 여러 가지 정신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 3세 이전의 시기에 안정적 애착을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상황이 생기면 아이의 발달에 영구적 손상이 생길 위험이 발생하고 이 손상으로 인한 결핍은 이후에 어떤 보상을 한다고 해도 만회되기 어려워서 성인기에도 성격적 결함이 발생하거나 정신병리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성인기로 넘어가면 애착 결핍으로 인해 피상적 대인관계, 감각 추구, 집중력의 결함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0-5세 애착 육아의 기적(이보연 저)>라는 책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오랜 전쟁으로 인해 유럽의 각 지역에 많은 수의 전쟁 고아가 생겼답니다. 당시 영국의 한 고아원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고아원은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어 아이들에게 먹일 것이 부족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먹는 것에 비래 도무지 살이 찌지 않고 키도 크지 않았답니다. 유독 가장 구석에 있는 방의 아이들만은 다른 방의 아이들과 달리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생기가 넘쳤답니다. 고아원 원장은 그 원인을 알아냈답니다. 보모와 직원들이 출근하는 아침, 다들 인사를 건네고 업무 준비를 마친 후 일을 시작할 즈음에 청소를 맡고 있는 아주머니 한 분이 청소도구가 있는 방을 향했답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청소 도구를 채겨 든 아주머니는 방을 나서더니 바로 옆방으로 들어갔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차례대로 안아주면서 이름을 불러주고 볼을 쓰다듬고 노래를 불러주었답니다. 아이들들에게 몇 마디 마을 걸고는 청소를 시작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답니다. 아주머니는 매일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 옆방에 들어가 이렇게 이이들과 잠시 시간을 보냈답니다. 그 방은 바로 건강하고 생기가 넘치던 아이들이 있는 방이었답니다.
이렇게 정서적 애착이 중요한데 애착 형성에 중요한 것은 아이가 돌보는 이에게 얼마나 편하게 도달할 수 있는가와 돌보는 이가 얼마나 일관되게 반응성을 유지하는지가 핵심적이라고 합니다. 양육자가 안전기지가 되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엄마가 아이의 ‘정서적 안전기지(secure base)’가 되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전 기지(secure base)라는 용어는 존 볼비의 애착 이론에서 나온 말입니다. 아기가 생애 초기 양육자와 가지는 애착이 인간 본성의 기본이 된다는 이론인데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려면 양육자가 그 아이의 안전기지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빌딩을 지을 때 기초공사로 땅을 깊이 파서 철심을 박고 콘크리트를 충분한 양을 부어 넣어야만 높이 올려도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건물이 될 수 있듯이, 애착 형성은 엄마가 아이의 마음에 기초공사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에베레스트산을 오를 때 베이스캠프와 같은 것이 안전기지입니다. 히말라야 같은 곳에서 고산 탐험대는 반드시 정상에 이르기 전에 베이스캠프를 칩니다. 정상을 향하기 전 사람들의 안전에 절대적인 것들을 꾸려 놓은 곳으로 부상을 당하거나 장비가 고장이 나면 베이스캠프로 돌아가 치료를 받고 쉬게 됩니다. 험한 인생의 산을 오를 때 힘들고 지칠 때 언제나 돌아가 힘을 재충전하고 도전하는 곳입니다. 한 번도 가지 않은 세상을 탐험하다 위기를 당하면 안전하게 피신하고 보호받는 곳입니다. 어린 시절 엄마와 아이의 애착 관계를 연구한 영국의 정신 분석가 존 볼비는 세상에서 오로지 기대어 의지할 수 있는 엄마의 품을 아이의 심리적 안전기지라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심리적 안전기지가 꼭 ‘엄마의 품'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를 응원해주는 존재,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존재, 언제나 보호하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 어떤 경우에도 사랑해 주는 존재,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편이 되어 주는 존재, 어떤 하소연과 억울함을 호소할지라도 들어 주시는 존재'가 바로 우리의 심리적 안전기지가 될 수 있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가 안전기지가 되어주기를 원하지만 그렇다고 온전하지 못합니다. 부모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형성하지 못한 아이들은 친구나 교우 관계에 집착하지만 그것도 영구적이지 않습니다. 16세 이후의 청소년과 성인들은 친구보다 연인에게 안전기지를 찾지만 그것도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인생은 자신을 사랑해 주고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는 대상을 사랑으로 포장해 상대방이 그렇게 해 주길 간절하게 원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항상 유기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참된 안전기지를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애착(attachment to God)’을 연구한 핵심 인물인 리 컥패트릭(L. Kirkpatrick)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므로 애착 행동 역시 창조적 구조 중 하나이며 인간은 하나님을 절대적 의존 대상으로 인정하고 돌보시는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관계가 될 때 안정 하나님 애착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안정 애착 관계에서는 하나님이 안전기지가 되고 안전한 안식처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80 평생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던 다윗은 자신의 안전기지를 누구라고 믿고 있습니까?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편18:2)” 시편 23편 1-2절에서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올 한해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안전기지로 삼고 살아기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1. 하나님은 우리에게 안전감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애착수업>이라는 책을 쓴 일본 정신과 의사인 오카다 다카시는 건강하고 좋은 안전기지가 되기 위해서는 4가지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안정감을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함께 있어도 상처받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어야 합니다. 안정감을 주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사랑의 대상으로 근접성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안전한 보호처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성격과 지능, 성품, 능력의 기초를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배우는데 유아기 때 가장 영향을 주는 것은 안아주고 눈을 맞추어 주는 부모라고 합니다. 친숙한 사람과의 지속적인 강력한 정서적 유대를 애착이라고 하는데 이때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성격발달 뿐 아니라 신체, 인지, 정서, 사회적, 신앙적 발달에 평생도록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유아는 어린 시절에 여러 사람들과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중 가장 좋아하는 애착 인물이 있고, 나머지 사람들에 서열이 매겨지는데 서열의 결정인자는 어른이 유아와 함께 하는 시간, 돌봄의 질, 아이에게 쏟는 정성, 출현 빈도 등이라고 합니다. 애착행동의 중요한 특성은 첫째가 애착 대상에 대한 근접 지속성입니다. 필요할 때 언제 어디에서든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애착 인물로부터 분리될 때 분리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엄마가 아이를 떼어 놓고 회사에 가면 아이가 떼를 쓰며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부짖는 것이 바로 애착 결핍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자신을 떠나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힘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떠날 지라도, 자식이 내 곁을 떠날 지라도, 권력이 떨어지고, 친한 사람들이 배신할 지라도 하나님이 자신의 힘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이 마지막 노년에 기록한 시편이라고 합니다. 사무엘 하 22장과 99% 같은 내용입니다. 22장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라고 기록 배경이 나와 있습니다. 오늘 시편 표제어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모든 대적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받을 때입니다. 사울의 손에서 뿐 아니라 모든 대적이기 때문에 다윗의 인생이 거의 끝날 무렵일 것입니다. 그리고 23장에 가면 1절에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쩌면 다윗이 마지막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서 유언처럼 기록한 말씀입니다.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습니다. 근 13년 동안을 사울에게 추적을 당하며 목숨을 건지기 위해 쫓겨다니는 생활을 했습니다.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부모의 이혼이나 사별, 부모의 무관심 때문에 분리 불안으로 애착 결핍이 생기는 정도가 아닙니다. 안전한 곳을 찾아 동굴에 숨고 심지어는 적진 블레셋을 안전 지대로 삼고 도망가기 까지 했습니다. 여러 차례 죽음의 위기를 만났습니다. 이 정도 되면 불안 장애, 공항장애, 우울증에 걸려 시달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위대한 왕이 되었는데 자신 인생의 안전기지는 하나님이어었다는 신앙고백입니다. 다윗은 그 하나님을 평생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시편 23편에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것 주어서가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어 주시는 것 자체로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는 어떤 일을 당해도 하나님을 안전기지로 삼고 살았습니다. 전쟁에서 이겼을 때도, 사울왕을 피해 도망 다녔을 때도, 왕이 되었을 때도, 자식에게 반역을 당했을 때도 하나님과는 상관없지 자기 마음대로 처신하거나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골리앗이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을 보고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조롱받는 모습을 보고도 침묵합니다. 그러나 다윗을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였기 때문에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상대는 장군이고 키가 장대처럼 크지만 조그마한 돌을 가지고 나가 싸워이깁니다. 사울이 죽이려고 합니다. 자신이 죽일 기회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을 그를 죽이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시므이가 욕하며 저주합니다. 다윗을 따르는 아비새라는 신하가 시므이를 요절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가만두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으면 저가 내게 그럴 수 없느니라라고 말합니다. 다윗의 생애를 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얼마든지 복수할 수 있고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부당한 방법으로 복수하지 않습니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모든 것을 관련시켜 생각합니다.
애착행동의 중요한 특성은 둘째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있을 때 안전한 안식처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다윗은 진정 안정감을 주시는 분은 누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2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8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혜의 방어 기지이고 안전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삶의 기초가 되고 믿음의 기초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견고하게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요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산의 정상에 자리잡고 있어 어떤 적도 침범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방어 시설과 같은 분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건지시는 분입니다. 위험과 환란을 당할 때 우리는 방관하시는 분이 아니라 건져주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엘로힘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능력의 하나님이시다는 말입니다. 힘의 근원이 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피할 바위, 방패, 구원의 뿔, 산성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심리학적 용어로 말하면 하나님이 안전기지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안전한 곳이며, 적의 공격과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피난처로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기에서 구원하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볼비는 애착체계를 활성화시키고 애착행동을 유도하는 세 가지의 상황을 언급하는데 첫째, 피곤, 아픔, 나쁜 건강상태, 배고픔, 추위와 같은 개인적 조건입니다. 둘째, 애착대상의 부재, 애착대상의 떠남, 애착대상으로부터의 분리의 위협과 같은 대상의 행방과 행동조건입니다. 셋째, 무섭거나 놀라게 하는 사건들의 발생과 같은 환경적 요인입니다. Hood의 연구에 의하면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들도 첫째, 정신적, 육체적 괴로움을 일으키는 고통, 무능력과 같은 부정적인 삶의 사건들, 둘째, 친구들이나 친척의 죽음, 셋째, 삶의 역경 등이 있을 때 하나님께 돌아오더라는 것입니다. Kirkpatrick은 사람들은 이 세 가지 상황에서 하나님을 안전기로 안식처로 여기며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단순하게 애착 대상을 상실하여 대안적 애착 대상으로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평생 여호와를 안전기지로 삼았습니다. 다윗은 시편 23편 6절에서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하나님께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평생 함께 하는 삶을 산 것입니다. 다윗이 인생 말년에 자신의 안전기지를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우리 성도님도 이런 고백을 하시며 올 한해 아니 평생 이렇게 여호와로 힘을 입고 여호와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그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 하나님은 우리를 공감해주시고 민감하게 반응해 주십니다.
건강하고 좋은 안전기지가 되기 위해서는 두 번째 조건은 공감성이라고 합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것을 느끼고 무엇을 추구하는 지를 알고 공감해 주어야 합니다. 인간은 불안한 상황에서 의지할 수 밖에 없는데 상대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어야 안전기지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조건이 민감성입니다. 응답성입니다. 상대가 원할 때 바로 반응하고 대응해주는 것입니다. 상대가 원할 때 바로 응답하여 보호받을 수 있다는 안도감을 주어야 합니다.
다윗은 누가 자신에 대하여 공감해 주고 민감하게 반응해 주신다고 말씀합니까?
다윗은 하나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니니” 언제든지 접근하여 자신의 근심과 걱정과 고뇌와 아픔을 말할 수 있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언제든지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삶의 위기와 문제 앞에서 언제든지 교회에 나와 예배드릴 수 있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와 애착결핍 불안정애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4-5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자신이 당한 고난을 시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그는 장인에게 죽음의 위기를 당하였습니다. 사랑했던 자식에게도 사망의 위기를 당하였습니다.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사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아들이 죽기도 했습니다. 가정에서 배 다른 자식들이 치정에 얽여 간음하게 되고 자식이 자식을 죽이는 꼴을 보기도 했습니다. 우리 평범한 인생은 이런 것 하나만 겪어도 다들 우울증에 걸리고 정신적 질병으로 실의에 빠져 회복하지 못하고 인생을 끝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사망의 줄이 그를 얽어맺지만, 불의의 창수가 늘 그를 두렵게 하였지만, 음부의 줄과 사망의 올무가 그를 포위하였지만 애착의 대상인 하나님, 안전기지인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공감해주고 민감하게 반응해 주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액착의 대상을 부모, 친구, 부부, 자식 등으로 여기고 살지만 막상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 공감해주고 민감하게 반응해 주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났을 때 수많은 전쟁에 같이 했던 장군들도 다윗을 떠납니다. 시므이는 다윗을 저주까지 합니다. 적장 골리앗을 죽이고 나라를 구했는데 장인된 사울왕은 그를 시기하여 죽이려고 합니다. 그렇게 사랑해주고 용서해주었는데 아들 압살롬은 그를 반역하여 자신의 왕위를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정도는 조금 다르지만 죄악 가운데 출생한 이기적인 인간은 모두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다윗과 함께 하며 공감해 주고 예민하게 반응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한때 그는 자신의 충성스런 부하를 죽이고 그 부인을 간음하는 무서운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가 회개하며 눈물로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외면하지 않고 그를 용서해주시고 다시 일으켜 주었습니다. 그는 적진에 들어가 미친개처럼 비굴하게 굴며 실수한 때도 있었습니다. 부끄러운 과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부끄러운 과거로 그를 외면하고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16-19절까지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높은 곳에서 손을 펴사 나를 붙잡아 주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그들은 나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로다 그들이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나를 구원하셨도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되어 올 한해 이렇게 해 주시는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29절에서 다윗은 어떻게 간증을 하고 있습니까?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인생의 갖가지 담을 뛰어 넘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육신의 질병이 담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실패가 담이 될 수 있습니다. 나쁜 습관이 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신적 질환이 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 빈곤이 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담이든지 우리의 안전기지가 되시는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면 우리 하나님이 담을 뛰어 넘게 만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기도하여 하나님의 힘으로 곰과 사자의 발톱을 뛰어 넘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여 하나님의 힘으로 골리앗같을 뛰어 넘을 수 있었습니다. 기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끝없이 추적하는 사울과 같은 대적을 뛰어 넘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안전기지로서의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117명의 대학생을 상대로 연구한 백(Back)은 하나님과 안정 애착을 형성하고 있는 집단은 신앙여정 동안 평화를 누리며 기독교 교리를 완전히 받아들였답니다. 또한 그들은 신학적 탐구에 열심을 보였으며 자신과 다른 신앙단체에게 관대했답니다. 반면에 회피적인 애착유형은 기독교교리의 거절과 관련이 있었고, 불안/양가적 애착은 신학적 탐구가 적고 다른 신앙단체에 대해서 용인하는 경우가 적었답니다. 이는 불안정애착유형의 유아가 낯선 환경에서 어머니를 떠나지 못하고 탐색을 포기하는 행동과 유사하다고 합니다. 안전기지로서의 하나님은 안정감과 자신감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32-3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을 강력한 안전기지로 삼은 다윗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까?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시며 나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또 주께서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를 실족하지 않게 하셨나이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안전기지가 되셔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면 이렇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이 불어나면 큰 배가 저절로 떠오른다.'는 말입니다. 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안전기지로 삼으면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떠 오를 수 있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복음 전도자 '워치만니'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너무 약했답니다. 그는 하나님께 내 육신이 건강하여 하나님의 일을 마음껏 하다가 주님께 가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였답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는데 갑자기 강 가운데 큰 바위가 놓여 있어 갈 수가 없게 되었답니다. 그는 기도하였답니다. “하나님 아버지 장애물이 있어서 갈 수가 없으니 이것을 없애 주옵소서” 그랬더니 음성이 들리기를 “내가 바위를 없애주랴 강물을 불려주랴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는 강물을 불려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였더니 강물이 불어나고 자기가 탄 배는 그 바위 위를 지나갈 수가 있게 되었답니다. 그는 그 이후 어려움 당할 때마다 그 어려움을 치워달라고 하지 않고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새해에 우리 하나님이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면 넉넉히 담을 뛰어 넘는 사람이 되어 담을 넘는 복을 누릴 줄 믿습니다.
3. 하나님은 일관성을 가지시고 우리의 안전기지가 되어 주십니다.
건강하고 좋은 안전기지가 되기 위해서는 넷째 조건은 일관성이라고 합니다. 부모가 일관성 없이 분리되면 아이들은 분노에서 절망, 포기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변덕스러운 사람은 안정기지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일관된 태도와 반응을 보이면, 아동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갖게 되고, 이는 아동의 정서적 안정에 도움을 줍니다. 부모가 아동의 행동에 대해 항상 일관된 훈육 방식을 적용하면, 아동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할 수 있게 됩니다. 이를 통해 아동은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고, 사회적 규범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일관성이 없으면 아동은 불안전 애착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일관된 태도와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아동은 불안감을 느끼고,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쉽게 변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은 시편 18편을 통해 하나님은 영원히 변치 않으신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의복도, 자동차도, 지식도, 관계도, 권력도, 지위도, 인간도, 자연도 다 변합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변하는 것 아래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하였듯이 자연은 변하지만 자연법칙은 변하지 않고 계절은 변하지만 계절의 법칙은 변하지 않으며 동물의 생태는 변하였지만 동물의 본능은 변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영원히 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떠나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마음에 맞지 않다고 분노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인간들처럼 자신의 기분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변덕스러운 분이 아니십니다. 공부 못한다고 차별대우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돈없다고 멸시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잘 생기지 못했다고 무시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실패했다고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언제나 함께 해주시고, 사랑해주시며, 반응해 주시고, 돌보아 주시며 위로와 소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어릴 때 부모와 충분한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Kirkpatrick와 Shaver의 종단 연구에 의하면 아동기 동안에 어머니가 비교적 종교적이었을 경우에는 하나님과 애착관계가 좋았고 종교적인 헌신과 교회출석의 수준이 더 높은 경향이 있었지만 갑작스런 종교적 회심은 불안정 부모애착을 가진 사람의 회심 비율이 안정 부모애착을 가진 사람보다 높게나타났으며 특히 어머니와의 관계가 회피형에 해당하는 참여자의 44%가 회심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영아기의 안전애착을 가지지 못하고 부모의 죽음이나 질병, 이혼과 같은 중요한 사건으로 불안정애착으로 전환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만나면 비교적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릴 때 별로 부모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을 때도 다윗은 제외시켜 놓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고 차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안전기지로 삼고 살았습니다. 변하지 않으신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고, 보호자가 되어 주시며 구원을 주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 하나님은 살아계시다고 고백합니다(46) 다윗은 자신이 믿고 의지했던 하나님에 대하여 노년에 죽음을 앞에 놓고 이 시를 마무리하면서 결론적으로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5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다윗이 실수할 때도, 다윗이 범죄했을 때도, 다윗이 승리했을 때도, 다윗이 도망다닐 때도, 다윗이 위기에 처했을 때도, 다윗이 젊었을 때도, 다윗이 병들었을 때도, 다윗이 늙었을 때도 우리 하나님은 변함없이 다윗과 함께하시며 다윗을 구원하였으면 인자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다윗 뿐 아니라 그가 죽은 후에 그 후손에게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9편 18절에서는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16편 8절에서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23편 6절에서는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30편 12절에서는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다윗의 고백이 우리 성도님들이 고백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은 어떻다는 것입니까? 다윗이 기록한 시편 62편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4절을 보세요.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그래서 10절에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진정 일관성을 가지고 우리 편이 되어 주시고 우리를 사랑하며 끝까지 보호하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6-8절을 보십시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
그래서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산 것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5절을 보십시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올 한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안전기지로 삼고 살아계셔 일관성을 가지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자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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