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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1) 새 힘을 얻음(이사야40:31)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78997 추천수:5 218.155.63.46
2024-01-07 03:49:16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1) 새 힘을 얻음

이사야40:31

 

오늘은 2024년 첫 주일 예배입니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한 해가 되게 하소라라는 기도를 하고 출발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 새 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비상하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새힘이 필요합니다. 31절을 큰 소리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올 한 해 이 말씀을 붙들로 독수기가 날개치며 비상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으로 비상하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올 한 해 비상할 수 있겠습니까?

 

1. 문제보다 문제의 답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비상하시길 바랍니다(27-28).

2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공동번역에서는 야곱아, 네가 어찌 이런 말을 하느냐?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 이런 주장을 펴느냐? "야훼께서는 나의 고생길 같은 것은 관심도 두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내 권리 따위, 알은 체도 않으신다."” 새번역에서는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불평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불만을 토로하느냐?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는다" 하느냐?”

 

오늘 이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100-150년 후에 일어날 바벨론 포로 귀환 사건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1장부터 39장까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이사야를 통해 회개를 외쳤습니다. 그리고 40장 부터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바벨론 포로에서 회복해 주실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말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합니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불평 불만은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다는 것입니다. 내 길(다르키)은 개역 성경에서는 내 사정으로 번역했고 공동번역에서는 고생길로 번역했으며 새번역에서는 나의 사정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삶의 여정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당시 곤궁한 상황에 처한, 고통 받는 이스라엘의 실존적 상황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숨겨졌다(니스테라)는 것은 여호와께 연결된 자신들의 상황이 숨겨져 있을 정도로 피폐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르시고 관심도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시는 성도님이 있을 줄 모르겠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문제를 해결할 길, 환란을 피할 길, 질병에서 치유될 길, 가난에서 해결될 길, 부채에서 해방될 길, 취업의 길, 성공의 길, 월세에서 탈출할 길, 매출이 오를 길을 보여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 지옥같은 상황 하나님은 모르고 관심도 두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70년이라는 바벨론 포로같은 생활 속에서 고통이 지속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불평 불만은 나의 원통한 것을 하나님께서 수리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서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송사(미쉬파트)판결, 정의, 소송, 선고등의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공동번역에서는 권리새번역에서는 정당한 권리로 번역했습니다. “벗어난다(야아보르)”라는 말은 지나간다, 살아진다라는 말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가지고 왔을 때 온전한 판단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권리 따위, 알은 체도 않으시고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도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부당하게 사기를 당하고, 정당하게 일했는데 대가를 받지 못하고, 부정한 사람이 잘 살고, 간사한 사람이 승진하고, 정직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푸대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섬기고 봉사했는데 내가 왜 이렇게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남편에게, 아내에게, 자식에게, 교역자에게 이런 대우를 받고 살아야 합니까?”라고 새해부터 불평 불만으로 출발할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승진하지 못하고, 연봉이 오르지 않았다고, 일년동안 정말로 열심히 수고했는데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고 억울함을 하소연하며 새해부터 출발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한 두 번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말하며(토마르), 이르기를(우테다베르)는 문법적으로 미완료형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 백성이 지속적으로 불평과 원망을 했다는 것입니다. 광야 40년 동안도 문제만 다가오면 계속 원망과 불평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입술로는 고백하지만 연약한 인간들은 마음대로 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어려움이 다가오면 늘 그렇습니다. 문제에만 관심을 두면 누구나 이런 불평과 원망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28절 상반절만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불평 불만에 가득 차 원망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너는 알지 못하였는냐? 듣지 못하였느냐?"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의 불만은 하나님을 그들을 만드시고 보살피시는 하나님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여호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어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면 어떤 경우라도 불평과 불만 원망에 노예가 되어 주저 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사람들입니다. 홍해의 기적, 요단강의 기적을 체험한 백성들입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기적은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려움을 당하니까 그것들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려울 때 불러주시고 복음 주시고 인도해 주셨는데 자신들이 잘 못해 놓고 어려움을 당하니까 하나님께서 외면하고 억울함을 풀어 주시지 않으시며 자신들의 권리를 지켜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부모님이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셋방에 살으니까 부모님이 낳아서 길러 주신 은혜는 까마득히 잃어버리고 지금 가난하게 된 것만 보고 부모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고난과 어려움을 주었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어려운 현실만 보고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의 사정을 모르시는 분이십니까? 우리의 고통과 부당한 대우와 억울함을 외면하시는 분이십니까? 세상에 역사와의 무관하시는 분이십니까?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는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엘로힘)은 우주의 창조하신 주권자로서 하나님의 전능한 속성을 강조할 때 쓰는 호칭입니다. 여호와는 창조주로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특별한 관계를 맺을 때 언약의 주체로 표현할 때 쓰는 호칭입니다. 수없는 배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호칭입니다. 시간을 창조하시고 시간을 주관하시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사업이 잘 될 때나 사업이 잘 되지 않을 때나, 병들었을 때나, 건강할 때나, 취업이 될 때나, 실직했을 때나 신실하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갔다고 돌아가신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군대 생활할 때 교관이 훈련시킬 때 교관의 의도를 모르기 때문에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열매를 위해 가지 치는 것을 모르고 가지 치는 것만 아파합니다.

둘째는 땅 끝까지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공간적으로 제약이 없으신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왔다고 해서 예루살렘에만 계시고 바벨론에는 계시지 않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고통의 현장에도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실패의 현장, 우리의 질병의 현장에도 살아 계셔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어려움 당할 때 현실을 보고 불평 불만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려는데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나에게 주셨는가? 하나님께서 여기에서 내가 어떻게 하시길 원하시는가?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답이 나오게 되고 문제를 풀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용광로가 없이 어떻게 금이 나오겠습니까? 훌륭한 선수가 되려면 고난의 과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세상의 현상만 바라보는 패러다임에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 관점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질병을 치료받기 전에는 과학적 패러다임에 의해 살던 사람도 기적으로 질병을 치유받으면 신앙적 패러다임으로 바뀌어 버리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월세방 사는 것도, 때로는 병드는 것도, 때로는 실패하는 것도, 때로는 사고는 당하는 것도, 때로는 말할 수 없는 고난에 처하는 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해 못할 어려운 일을 당하면 하나님께서 왜 이런 고난과 어려움을 주었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어려운 현실만 보고 불평불만만 늘어놓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우리가 알지 못하고 예측하지 못하는 수많은 일들을 일어납니다. 좋은 일도 있지만 내가 예측하지 못하고 내가 가고 싶지 않은 일이 일어날 때 하나님에 대하여 회의를 가지고 하나님을 떠날 것이 아니라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지금 나에게 남아 있을 것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 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 비상해야 합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께 눈을 돌려야 합니다. 제련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남겨 두신 것을 가지고 무엇하기를 원하는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것을 가지고 비상해야 합니다. 다 없어진다고 해도 마지막까지 남아 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심리학자인 크래머 박사는 자산에 바탕을 둔 사고결핍에 바탕을 둔 사고를 말합니다. 결핍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결국 어려운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는 요원해진다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리더들은 "자산에 바탕을 둔 사고"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을 본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서 무엇이 효과가 있는지, 어떤 장점이 있는지, 어떤 잠재력이 있는지 들여다본다는 것입니다. 현실을 회피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곳에서 찾을 수 있는 자산에 집중하는 자가 그 늪에 빠져 나와 비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살인자가 되어 도망한 모세가 계속 자신은 민족 지도자로 살 수 없다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거절할 때 하나님은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4:2)"고 물었습니다. 다 잃은 것 같지만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손에 남아 있는 지팡이를 쓰겠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아합을 피해 도망가다 사르밧 과부를 만났습니다. 먹을 것을 달라고 합니다. 그때 그 여인은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왕상17:12)" 얼마나 비참한 가난입니까? 그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왕상 17:14)" 그 여인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왕상17:16) 하였습니다. 우리가 비상하려면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그 문제의 배후에 답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지금 있는 자산으로 비상해야 합니다. 진주는 보석입니다. 그러나 진주를 품고 있는 조개는 그것은 아픔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 아픔을 통해 진주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놓여 있는 수많은 고통과 문제, 장애 안에는 그만큼, 아니면 그보다 더 큰 이익이나 기회가 숨어 있습니다. 고난을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고난은 겸손하게 하고 고난은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줍니다. 몸의 열은 괴로움을 주지만 건강을 위한 희망입니다.

올 한 해 문제보다 문제의 답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비상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비상하는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28-29)

영원하신 하나님, 땅끝까지 창조하신 하나님, 시간을 창조하시고, 공간을 창조하실 뿐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계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28절 하반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이아프)은 일반적으로 육체적 고달픔을 나타낼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곤비(이가)는 영적 고단함을 지칭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인간을 일하다 피곤할 수 있고 곤비할 수 있습니다. 지쳐 불평 불만하고 그만 둘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수없이 배반하고 반복하여 범죄하여도 언약을 파기하고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습니다. 명철(타분)은 창조주로서 피조물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조정을 감당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로우심을 말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여호와는 그 무한하신 능력으로 우리를 판단하시며 무엇보다 고통 가운데 그의 백성이 나아가야 할 길과 형편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29절 같이 읽겠습니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힘을 주십니다.

세상에는 힘의 원천을 무엇으로 삼느냐에 따라 세 종류의 인간이 있습니다. 물질을 힘의 원천으로 삼고 사는 사람, 인간 자신을 힘의 원천으로 삼는 사람, 하나님을 힘의 원천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우리 성도님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피곤한 자(야에프)’완전히 지친(삼하16:2) 상태를 말합니다. 전혀 생기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나약해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지속된 부담과 고통, 실패, 고난이 다가오면 탈진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끝내야겠다. 그만 두야겠다. 포기해야 겠다. 헤어져야 겠다. 교회를 떠나야 겠다. 직장을 그만 두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시다는 말은 문법적으로 능동 분사형으로서 무한한 힘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능력을 공급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비록 고난에 처해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에 따라서 지속적으로 회복게 하시는 은혜를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능력(코아흐)’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입니다. ‘무능한 자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진정한 간섭과 주권적인 도우심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존재를 말합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의 힘을 부어 주십니다.

 

사람이 비상하지 못하고 원망하며 불평 불만에 사로잡혀 주저앉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힘이 없으니까 전쟁에서 패배하고 포로가 되고 병원균을 이길 힘이 없으니까 질병에 지고 사업에서 성공할 힘이 없으니까 사업에 실패하고 좌절합니다. 죄를 이길 힘이 없으니까 죄악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비상하지 못합니다. 물리적인 힘이 없기 때문에, 경제적인 힘이 없기 때문에, 정신적인 힘이 없기 때문에, 육체적인 힘이 없기 때문에 불평과 원만 가운데 주저앉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들은 우리 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신앙의 사람들은 이 힘을 알고 누렸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무너뜨렸던 신비한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입니다.

파리가 부산에서 서울까지 날라 올 수 없으나 파리도 승용차를 타면 부산에서도 서울까지 올 수 있고 비행기를 타면 서울에서 뉴욕까지 갈 수 있으며 우주선을 타면 달 나라까지도 갈 수 있습니다. 전혀 질이 다른 새 힘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됩니다. 새 해에는 무엇보다 여호와를 알고 여호와를 가까이 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비상하는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몰라 원망하고 불평하고 범죄하여도 쉬 지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지쳐서 우리의 문제를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범죄하고 또 범죄하고 또 범죄합니까? 우리는 몇 차례만 당해도 쉬 지쳐서 외면해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도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신다 해도 피곤해하시고 지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하나님은 피곤한 자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힘을 주십니다. 아무리 좋은 차도 기름이 없으면 거리에 서고 맙니다. 그 차가 가려면 기름을 넣어야 합니다. 인간은 진정한 힘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생동감이 넘치고 지치지 않고 소망 가운데 새 힘 얻어 비상할 수 있습니다. 기진해 있을 때 기력을 회복해 주십니다. 엘리야가 사역을 하다 지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며 새 힘을 주십니다. 요한이 밧모섬에서 힘을 잃고 지쳐 있을 때 다니엘을 지쳐 쓰러져 있을 때 하나님은 일어나라고 새 힘을 주었습니다. 가족도 외면한 38년 된 병자가 절망 가운데 쓰러져 있을 때 우리 예수님을 그를 찾아 가 새 힘을 주시고 치료시켜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범죄한 후 지쳐있을 때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의 부당취득하고 죽음을 피해 도망갈 때 우리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고 그들을 찾아가 위로해 주시고 새힘을 주어 비상하게 하였습니다.

"지치고 곤하여 매일 주저 앉고 싶을 때 다가와 손 내미시네"

27세에 억만장자가 된 폴 마이어는 가정 형편으로 대학에 들어갔지만 3개월 만에 그만두었습니다. 그는 말을 더듬었습니다. 보험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입사 원서를 냈지만 무려 57번이나 거절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았답니다. 일어나고 일어났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인생에서 실패하는 사람의 90%는 진짜로 패배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만두었을 뿐이다."라고 합니다. 그가 비상하게 된 계기는 바로 어느날 우연히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11:22-23)" 라는 말씀을 접하고 철저히 성경구절대로 살 것을 결심한 때부터였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는 자를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새 힘을 주어 비상하게 합니다.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라는 신비한 힘입니다. 믿고 경험하는 자만이 알 수 있는 오묘한 힘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 모든 죄로부터 담대하게 일어서는 새로운 힘입니다. 다윗은 이 힘으로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비상하였습니다. 모세는 이 힘으로 홍해를 가르고 비상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힘으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비상하였습니다.

올 한 해 내 힘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부어주시는 능력으로 비상하는 한 해가 되기길 바랍니다.

 

3. 새 해에는 여호와를 앙망하여 새 힘을 얻어 비상하는 새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30-31).

하나님이 연약한 인간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3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소년은 인생 중 힘이 가장 왕성한 시기입니다. 그러나 이들도 영육간에 지치고 비곤하여 필연적으로 지키고 소멸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장정은 인생 중 가장 활력이 넘치는 청년을 지칭합니다. 스스로 아무리 활력있고 넘치는 힘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언젠가를 쓰러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시간 앞에서 다 늙어져 가고 힘을 상실하며 좌절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힘을 얻고 비상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3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앙망(웨코예)한다는 말은 "기다리다”“찾다”“바라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끈기와 긴장감을가지고 지속적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소년과 장정과 대비되게 답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확신하며 고난 가운데서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진정으로 의지할 분이시며 참되고 온전한 도움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알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단순히 시간을 축내는 것이 아니라 확신있는 기대를 가지고 기다림을 뜻하는 말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함을모든 일을 결정함에 있어 그 결정권을 흔쾌히 그분께 드림을 뜻합니다. 한창 기력이 왕성한 젊은이들마저 정녕 지쳐 쓰러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해 그 모든 역경을 담담하게 인내하며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원래 여러 가지 물건을 비틀어서 하나로 묶을 때 사용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기다리고, 소망하고, 바라보다"는 말은 몸을 비틀만큼 힘겨운 것이라는 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힘겹고 어렵다해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드는 것입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내가 주님을 바라봅니다." 하루 종일 아니면 일년을 아니면 70년을 기다리며 소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뒤틀리는 고통이 따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3814절에는 "나의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눈이 쇠할 정도로 그렇게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린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붙들고 사느냐에 따라 4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평생 이익을 앙망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둘째, 평생 편리를 앙망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셋째, 평생 쾌락을 앙망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넷째 평생 사명을 앙망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평생 붙들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은 평생 사명을 앙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끝까지 해내는 사람들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들입니다. “뇌가 가동하는 기막힌 소원성취 시스템으로서의 망상활성계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무엇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어떤 것을 주십니까?

새 힘을 주십니다. 여기서 새 힘은 마치 나무나 풀 등에서 첫 싹이 힘있게 땅 위로 올라가는 힘(14:7)과 같이 하나님이 고난 가운데 연약해져서 실의에 빠져 있는 자들에게 마치 새로운 힘과 용기를 친히 주실 것이는 말입니다.

그 힘은 어떤 힘입니까?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비상하고 달음박질하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믿습니까? 하나님이 새 힘을 주시면 어떤 환경과 환난에서도 그것을 타고 비상할 수 있습니다. 어떤 핍박과 위협이 있을 지라도 사도 바울처럼 사명붙들고 달려갈 길을 달려갈 수 있습니다. 일상의 생활 속에서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해도, 고난이 닥쳐와도, 능력의 한계에 이르러도 하나님의 손을 잡고 주님과 동행하며 매일 매일 걸어갈 수 있습니다.

결국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한, 신실하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항상 지속적으로 새 힘을 얻어서 지치지 않고 끝까지 승리하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앙망하는 사람에게는 비상할 수 있는 새힘을 주십니다. 다윗은 17년 동안 하나님을 앙망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새힘을 얻어 왕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40세에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앙망하기 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민족을 구원하려고 하다 결국 비상하는 것이 아니라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도 여호와를 앙망하고 기다지지 못하고 첩을 얻어 이스마엘을 낳음으로 비상하지 못하고 추락하는 경험을 해야 했습니다. 사울도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을 앙망하지 못하고 자신의 방법으로 제사를 드리다가 비상하지 못하고 추락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앙망하면 새 힘을 얻어 독수리처럼 올라가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새 힘을 얻으면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며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할 수 있습니다. 가면 갈수록 신앙생활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소망이 넘칩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와 도움을 받는 삶이 이어집니다. 나는 약하지만 여호와의 힘으로 넉넉히 이기게 됩니다. 벽지는 그것만으로는 찢어지기 쉬운 것입니다. 약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벽에 붙는다면 강해집니다. 새로운 힘이 생깁니다. 성령의 능력을 주십니다.

독수리가 높이 날아 오르는 것은 독수리 자신의 힘도 중요하지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상승기류입니다. 위로 올라가는 더운 공기를 탈 때 독수리는 힘들이지 않고 높을 창공을 날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환경을 만들어 주시고 여건을 만들어 주셔서 비상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돌아오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며 여호와께서 부어주시는 새힘, 여호와께서 만들어 가시는 역사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썰물이 있으면 반드시 밀물의 때가 옵니다.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고 어둠이 깊어질수록 새벽이 가까이 왔다는 징조입니다. 하나님께서 비상할 수 있도록 상승기류를 만들어 줄 은총의 때가 있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며 그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독수리가 날개쳐 높이 올라가면 공기가 다릅니다. 경관이 다릅니다. 지상에서 보는 경관과는 전혀 다릅니다. 소년 같은 바벨론, 장정같은 바벨론도 지치고 끝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앙망하고 나아가면 지치지 않고 넘어지지 않습니다. 올라가는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달려가는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성취하는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원망하거나 불평 불만의 늪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현실이 다가온다 하여도 부정적이고 소극적이고 비관적이 되지 않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낙관적인 신앙인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확실하게 고백하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너희가 나를 믿으면 내가 하는 일을 할 것이요, 또한 나보다 더 큰 것도 행하리라.”(14:12) 이 말씀을 믿고 나아갑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면 모세처럼 80살이 되어도 절망하지 않고 수많은 백성들을 이끌고 120살까지 힘차게 광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면 바울처럼 믿음으로 미래의 푯대를 향하여 끊임없이 올라갑니다(3:14).

 

세계 역사상 교회 음악 작곡가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고 하는 '요한 세바스챤 바하'의 인생을 보십시오. 황무지같은 가정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그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어릴 때 돌아가셨습니다. 마리아와 결혼하였지만, 일곱 자녀를 낳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시 결혼하여 11명의 아들과 9명의 딸을 두었지만 그 중 10명의 자녀가 어려서 죽었습니다. 그의 자녀 가운데는 정신 박약아가 있었다고 합니다. 노년에 자신도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고 말았고 뇌일혈로 쓰러져 반신불수까지 되었습니다. 그는 처절한 가난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의 영혼을 완전히 사로잡을 만큼 웅장하고 장엄한 찬양과 경배와 감사의 노래들, 그야말로 불후의 명작들을 만들어내었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과 절망에 사로잡히지 않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늘 말하기를 "모든 음악의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보내고 사람에게 즐거운 감정을 솟아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음악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다고 믿었고 음악을 그의 영광을 위해 쓰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 만민의 죄를 홀로 감당하시고 누구든지 못박혀 돌아가신 구주만 믿으면 구원 얻게 된다는 것을 굳게 믿으며 그 황무지 같은 인생 속에서도 장엄하고 경건한 음악의 꽃을 피웠습니다. 그는 자신이 작곡한 칸타타나 오라토리오의 마지막 부분에 항상 S.D.G라는 글자를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의 첫 번째 글자들입니다. 그리고 오르간 연주만을 위한 작품들의 첫 부분에는 I.N.J , '예수 이름으로'라고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신앙의 힘이 황무지에서도 장미꽃을 피게 하였습니다. 현대 음악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바하의 가문에서는 약 200년 동안에 걸쳐 저명한 음악가 50여명이 나왔다고 합니다.

 

올해도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로 새해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올 한 해 소모하고 추락하고 파멸되는 해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새 힘을 얻어 비상하는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1. 새 해에는 문제를 보고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문제의 답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우리의 사정을 아시는 하나님을 믿어(알아) 새 힘얻어 비상하는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2. 새 해에는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 힘얻어 비상하는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3. 새 해에는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여 새 힘을 얻어 비상하는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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