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8)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
마5:10-12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수마을’ 텔레비전 진행자가 참으로 행복하게 살기로 소문한 107세 된 할아버지를 만나서 인터뷰를 했답니다. "할아버지, 이렇게 오래 행복하게 사신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할아버지가 뭐야? 그냥 형님이라고 불러!"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아, 형님 죄송합니다. 형님, 오래 행복하게 사신 비결이 뭐죠" "비결은 무슨......행복하게 사니까 행복하게 오래살지!"라고 말하더랍니다. 사회자가 웃으면서 "형님, 그동안 살아오며 미운 사람도 많았을텐데 스트레스도 없이 어떻게 그런 걸 다 참고 행복하게 사셨어요?"라고 질문을 했답니다. 그러자 "응 미운 사람들도 있었지. 하지만 그냥 내버려 뒀어. 그랬더니 지들이 알아서 80~90살이 되니 다 죽던데 뭘. 미운 사람 있어도 그냥 행복하게 오래 살면 돼! 절대 화 내지마! 화날 때는 그냥 웃어버려! 하하하........이렇게 말야"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12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행복하게 일년 동안 사셨습니까? 오늘 예배드리는 지금 이 순간 우리 성도님들은 행복하십니까?
우리 나라 사람은 행복할까요? 유엔 산하 자문 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는 세계 행복보고서를 내놓는데 국가변 행복지수를 발표합니다. 지난 2022년 146개국 59위를 했습니다. 10점 만점에 5.935 점을 맞아 OECD 정회원국 38개국 중 35위를 했습니다. 꼴찌에서 세 번째입니다. 2023년 우리 나라 아동, 청소년 행복지수는 얼마나 될까요?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87%가 행복하지 않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4점 만점에 1.66점이 나왔답니다. 아동 청소년의 만족도는 OECD 회원국 중 꼴찌라고 합니다.
과연 무엇인 우리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까요?
하버드대학에서는 1938년부터 84간 행복한 인생, 좋은 인생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연구했답니다. 하버드 의대 성인 발달 연구팀은 계속 연구를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은 재산 규모도, 명예도, 학벌도, 권력도 아니라고 합니다. 좋은 인생, 행복한 인생의 조건은 돈보다 더 힘이 쎈 것은 좋은 인간관계라고 합니다. 재산 규모, 명예, 학벌, 권력 보다 질 좋은 인간관계가 행복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의지할 사람이 있는 경우 더 건강하고 만족도 높은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좋은 인간관계는 심혈관 질환이나 관절염에도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외로움은 흡연만큼이나 건강에 독이된다고 합니다. 아끼는 사람과 좋아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 행복에 중요하고 얼마나 많은 친구가 있느냐보다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8복을 통해 정말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한 마디로 말하면 행복한 사람은 누구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정상적 관계를 가지지 못하면 근본적으로 불행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정상적 관계를 가지고 살지 못하는 인간들을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헐어 버리고 정상적 관계를 가지고 살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사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막힌 담을 헐어 버리고 참으로 믿고 의지하는 좋은 관계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행복한 사람 첫 번째 복인 무엇인지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세상에 무엇보다 천국을 소유한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심령에 있어서 즉 영혼이 파산 상태에 있어 예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어 자기 중심성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회귀한 사람입니다. 심령의 가난을 채우기 위해 예수님께 나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으로 채우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라고 했습니다.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32편 1절에서는 행복한 사람을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기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천국은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국도 있지만 하나님이 백성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 정상적 관계를 누리고 사는 곳이 천국입니다. 나라가 되려면 백성, 영토, 주권 이 3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바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곳이 천국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셔 예수님의 통치를 받으면 마음의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라고 했는데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마음에 모시면 의가 주어지고 평강과 기쁨이 주어지는 마음 천국, 인생 천국이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정의 왕이 되어 가정 식구들이 통치를 받으면 가정 천국이 이루어지고, 교회 천국, 직장 천국, 나라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은 팔복을 말씀하시면서 마지막 8번째 행복한 사람을 어떻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까?
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또 천국을 소유한 자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의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의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6절에도 의가 나옵니다. 성경은 타락한 모든 인간을 가르켜 불의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 가는 사람들은 그 불의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3장18절"그리스도 께서도 한번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느니"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불의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8장 12절에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기억하지 아니하리라"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의가 뭐고 불의가 뭐길래 그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으셔야했을까요? 상대적 의는 도덕적 윤리적 수준을 정해 놓고 거기에 맞게 살아사는 것을 의라고 말하고 그것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불의라고 합니다. 그 기준이 법이 될 수 있고, 윤리, 상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히브리식 의(차다크)는 관계적인 의로 그 관계가 요구하는 내용에 맞게 살아내는 것을 의롭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의로운 속성을 가지신 분이신데 의로우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맺은 언약을 끝까지 지키십니다. 창세기 15장6절에 "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도덕적, 윤리적으로 의롭기 때문에 의롭다고 해주신 것이 아닙니다. 믿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의는 도적적 의가 아니라 관계적 의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전적으로 의지하는 신뢰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의는 올바를 뿐 아니라 화목한 관계를 말합니다. 하나님과 올바르고 좋은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로 하나님과 정상적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로마서 10장 2-3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증거 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지식을 쫒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의는 무엇이겠습니까? 로마서 3장 21-22절을 보겠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값없이 주어지는 의입니다. 이 의를 절대적인 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의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댓가를 지불함으로 주어지는 의, 칭의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행해주신 의를 우리가 가져오는 것입니다. 율법은 그 행하는 것에 따라 차별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믿음으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어지기 때문에 절대 차별이 없습니다. 간음한 자나 살인을 한 자나 도적질을 한 자나 모두가 믿음으로 예수님의 의를 내 것으로 가져오기 때문에 차별이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10장 10절을 보겠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누구를 믿고 누구를 시인하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스스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게 된 죄인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의입니다. 윤리적 의처럼 보이지만 5:6,11절을 연관시키어 보면 그리스도 안의 의 즉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로서 주어지는 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의를 위하여 혹은 의 때문에 박해받는 다는 말은 바로 11절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 의를 부여해 주신 그리스도를 위해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2. 의를 위해 받는 박해는 무엇이겠습니까?
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는 예수님 때문에 욕을 먹는 사람입니다.
모욕을 당하는 것입니다. 나쁜 말이나 행동으로 인격적 멸시나 창피를 받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직장의 술자리에 합석하지 않거나 해도 마시지 않는 신자들은 욕을 얻어먹습니다. "멋대가리 없고 싹수머리 없는 예수쟁이"라고 욕을 합니다. 혹은 돈에 깨끗한 신자들은 "제 혼자 잘났어!, 똑똑해!" "성자 낫네!" 등으로 비꼬임을 당합니다. 아니면 "세상 살기 힘든 놈이야!"라며 무능력자로 낙인을 찍어버립니다. 예수님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 . .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라는 조롱과 모욕을 당하였습니다. 지나가던 군중들과 대제사자, 서기관, 장로들 그리고 심지어 옆에 있던 강도마저도 예수님을 조롱하며 모욕을 주었습니다(마 27:39-44). 로마는 황제를 신격화하며 “가이사가 주시다”라고 하는데 신앙인은 예수님 만이 주님이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서만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 11:36-38)”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가시 면류관을 써야 했으며, 손발에 못이 박혀야 했고, 채찍을 맞고 옆구리에 창에 칠려야 했습니다.
셋째는 예수님 때문에 거짓으로 악한 말 듣는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거짓 증거로 고소를 당하였습니다. 예수님처럼 그리스도인들도 미움을 받아(마 10:22) 모함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로마의 네로 황제 때 발생한 로마 대화재를 로마에 살던 기독교인들이 저지런 방화였다고 거짓 증거하여 수많은 성도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2. 왜 이런 일을 박해를 당합니까?
첫째는 우리가 예수님께 속하고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9절에서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적당하게 타협하고 사는 사람은 박해가 없습니다.
둘째는 예수 믿는 우리가 주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도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나라에 드러가려는 우리를 마귀가 시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4장 22절에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러가려면 많은 환난을 받드시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시켜 정결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다니엘서 12장 10절은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욥기서 23장 10절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박해를 통해 신앙인이 성숙해 집니다. 시편기자도 이러한 사실을 잘 깨닫고 있었습니다. 119편 67절에 보면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하였으며, 71절에서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통하여 성숙해집니다.
3. 이런 박해를 받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에서는 두 가지로 말씀합니다.
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첫째 복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박해를 받는 것을 저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박해를 받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로 받는 핍박을 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의로운 행위 때문에 핍박받는 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박해받고 욕을 얻어 먹고 무시를 당하고 왕따를 당하는 것이 저주가 아니라 복이라는 사실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19절에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니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0절에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3:12)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6장 22-23, 26절에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둘째는 기쁘고 즐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핍박받는 자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5장 40-41절는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12-14절에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역사상 참으로 혹독했던 핍박의 시기는 기독교가 주후 313년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로마의 국교로 공인되기까지입니다. 그 기간 동안 교회는 10여 차례 무시무시한 박해를 받았고 성도들은 박해를 피해 지하 동굴 카타콤에 숨어 살았습니다. 박해자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십자가형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해서 나무에 달린 자를 뼈가 부스러지도록 때렸습니다. 그러면서 상처에는 고통을 가중시키기 위해 식초와 소금을 뿌렸습니다. 성도들을 산채로 불을 붙여 가로등처럼 썼습니다. 야생동물의 가죽을 씌워 맹수에게 던지기도 했고, 바늘로 온 몸을 긁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의 등에 불에 녹인 납을 붓기도 했습니다. 눈을 빼기도 했고, 고통을 길게 하기 위하여 손과 발을 태우면서 온 몸에는 찬물을 붓기도 했습니다. 말들이 사방으로 잡아당기는 능지처참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이런 핍박 가운데서도 끝까지 견디며 승리하였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더 사랑했습니다.
폴리갑은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으며 주후 155년 2월 23일 토요일 순교당했습니다. 폴리갑이 체포되어 총독 앞에 끌려갔습니다. 총독이 폴리갑에게 “로마 황제의 형상 앞에 경배하든지 아니면 죽음을 택하라.”고 위협하자 폴리갑은 이같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섬겨온 86년간 주님은 단 한 번도 나를 섭섭하게 하시지 않았는데 내 어찌 나의 왕이신 구원의 주를 모욕하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총독이 화가 나서 그를 불태워 죽이겠다고 하니 폴리갑이 총독을 향하여 “당신이 잠시 타다가 곧 꺼져버리는 불로 나를 위협하나 이는 당신이 앞으로 다가올 심판날과 영원한 형벌에 악인들을 기다리고 있는 불을 알지 못함이오. 무엇 때문에 지체합니까? 자, 어서 마음대로 하시오.”하고 말했습니다. 군병들이 폴리갑을 형틀에 묶으려 하니 “나를 이대로 버려 두시오. 불을 견뎌내게 힘을 주시는 분으로 인해 불길 속에서 움직이지 않게 될 것이오.”라고 말했습니다. 군병들이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자 폴리갑은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신 당신에 관한 온전한 지식을 얻었나이다. 저를 순교자의 반열에 서게 해 주시고 그리스도의 잔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하늘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돌리나이다. 아멘.”
4. 왜 당연하고 기쁘게 박해를 당합니까?
세 가지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첫째는 천국이 이런 자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에게 가장 큰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천국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정상적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천국을 이루며 살아야 하고, 이 세상 삶을 마친 다음에 천국에 올라가서도 영생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자신의 무력과 불가능을 철저히 인정하는 심령이 가난한 자로, 죄로부터 스스로 자유하지 못함으로 애통한 자로,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긍휼히 여기는 자로, 주님이 주신 새마음을 품은 마음이 청결한 자로, 막힌 담을 헐고 화평케 하신 주님처럼 화평케 하는 자로, 주님이 주신 의를 받고 주님을 위해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7)고 하였고,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라고 하였습니다. 장차 천국을 소유하는 영광을 얻으려면 현재의 박해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무신론자들은 "안심하세요. 지옥은 없습니다. 천국도 없습니다. 삶을 즐기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시2:4)"라고 말씀합니다.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박 집사가 어느 날 택시를 타고 회사에 가면서 택시 기사에게 복음을 전했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가니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했답니다. 그러자 택시 기사는 아직 천국에 관심이 없다며 "교회는 없는 천국을 만들어 천국 장사를 한다"고 비판했답니다. 천국이 없다고 하는 기사를 설득하며 회사에 도착한 박집사는 택시에서 내리면서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던졌답니다. "그래요. 나는 천국에 갈 거니까, 당신은 지옥에나 가세요!" 택시 운전사는 "지옥에나 가라"는 말에 잔뜩 화가 나서 운전석에서 내려 회사로 가는 박 집사를 바라보며 말했답니다. "이런 기가 막혀서야. 세상에 저런 나쁜 사람을 봤나!"라고 말하며 분노하였답니다. 아무리 사후 세계를 부정하며 천국도 지옥도 없으니 현재를 즐기라고 하는 사람도 지옥 가라고 하면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무신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천국과 지옥은 사람들의 관념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라 실존하는 세계임을 성경은 명백하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신앙인에게 "천국을 믿느냐?"라고 질문하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천국? 당연히 믿죠. 천국은 분명히 실재해요."라고 대답하면서 이 땅에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 즉 그분의 주권과 통치가 미치는 영역으로서의 하나님 나라가 자신 안에 있는 천국, 믿는 사람 안에 있는 관념적 천국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는 천국도 천국이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 아버지 집'을 말씀하며 '토포스, 모네'라는 용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이는 점유하거나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천국이 엄연히 물리적인 현실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 집"은 우리의 상상으로 빚어낸 환상의 세계에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실제 장소를 뜻하는 용어입니다. "곳" 또는 "거처"로 번역된 헬라어 '토포스'는 요한복음 14장 2-3절에서 세 차례 사용되었습니다. 천국이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는 단지 '토포스'만이 아니라 "거할 곳"으로 번역된 헬라어 '모네'는 '거주지, 숙박소, 집'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물리적인 현실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동화의 세계, 관념의 세계가 아니라 실존하는 세계입니다. 무신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천국과 지옥은 사람들의 관념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라 실존하는 세계임을 성경은 명백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사후의 세계에 대하여 가사상태를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철학에 나오는 존재론적 증명보다 더 확실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동화의 세계, 종교의 세계가 아니라 실존하는 세계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지옥이라는 말이 22번 나오는데 예수님이 14번 사용하십니다. 예수님은 사기꾼이거나 정신병자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전해 주신 말씀의 주제가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천국은 죽음도 고통도 눈물도 슬픔도 없는 장소이지만 지옥, 음부, 하데스는 고통의 장소입니다. 지옥은 단 한 방울의 물의 자비도 끊어진 장소입니다. 지옥은 다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장소입니다. 희망이 없는 장소입니다. 단테는 "신곡"에서 지옥의 대문에는 "여기에 들어오는 자여, 모든 소망을 버릴지어다."라고 써 놓았습니다. 토마스 부룩스는 "만일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고통과 슬픔, 비참함과 불행을 한꺼번에 당한다 해도 그것은 지옥의 가장 가벼운 고통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지옥은 끔찍한 곳입니다. 영원한 불 못입니다. 예수님은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마18:8)"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인물들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히11:16)" 살았습니다. 사후 세계에 대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가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뇌의학 권위자이자 하버드 신경외과 전문의인 이븐 알렉산더 교수도 사후 세계를 믿지 않고 살았답니다. 과학 학술지에 150여 편이 넘는 논문들을 게재했고, 국제의학컨퍼런스에서 200회 이상의 연구 발표를 하는 등 뇌와 의식의 작용에 관해 뛰어난 업적을 쌓은 세계적인 뇌의학 권위자입니다. 그가 어느 날 원인을 알 수 없는 매우 드문 종류의 대장균성 박테리아성 뇌막염에 걸려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답니다. 인간으로서 사고와 감정을 통제하는 뇌 부위가 완전히 정지된 거의 죽은 상태였고 결국 동료 의사들은 치료를 중단하고 생물학적 사망 판정을 내리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7일 째 되는 날,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단 하나의 사례가 된 ‘임사체험’을 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사후 체험을 <나는 천국을 보았다>라는 책으로 펴냈습니다. 그는 의식이나 자유의지 혹은 비물질적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았답니다. 지상에 있는 물질이 유일한 현실이고 나머지 모든 것들(생각, 의식, 관념, 감정, 영혼)은 그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즉, '의식'이라는 것은 뇌의 생화학적인 기능에 의해 발생하는 산물로 받아들였답니다. 임사체험도 극도의 스트레스 하에서 뇌가 만들어내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받아들였답니다. 그런데 자신이 직접 천국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믿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븐 알렉산더 교수도 자신이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에는 물리주의 입장에 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임사체험을 한 후에물질주의적인 관점에서 부정해왔던 영혼, 신, 사후세계 등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임사체험은 뇌가 만들어내는 환각이 아니라 '완전한 실제(Ultra-Real)'라고 말합니다. 10여 년 동안 1,300여 명의 임사체험자를 조사한 미국의 종양학 전문의 제프리 롱 박사는 그의 저서 <죽음 그 후>에서 임사체험자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의식이 몸 밖으로 나오는 유체이탈 체험이라고 주장합니다. 죽음을 체험한 사람들은 인생을 새로운 관점으로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 죽음 이후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40)"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둘째, 하늘에서 상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순교하면서까지 기뻐하고 즐거워했던 것은 하나님 나라의 큰 상이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보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으니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10:42)" 씨 뿌리는 비유, 보화 비유, 포도원 일꾼 비유, 달라트 비유, 열 므나 비유, 게으른 종 비유,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종의 비유, 열 처녀 비유, 문지기 비유, 혼인잔치 비유, 지혜로운 청지기 비유, 부자와 나사로 비유 등을 통하여 예수님은 하늘에서의 영광스런 승리와 상급을 말씀합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16:27)" 요한계시록에도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칸트 철학에 영향을 받아 덕은 덕 자체를 위해 필요한 것이지 상급을 받기 위해 덕을 행하는 것은 비열한 행위라고 말하며 하나님 보다 더 고상한 것처럼 천국의 상급을 부정합니다. 차등 상급이 있는 곳이 어떻게 천국이 되겠느냐며 예수님의 많은 교훈이 공로와 보상에 대한 교리를 많이 강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단지 교육적 차원에서 말씀하신 것이라 해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셋째, 선지자들도 이렇게 박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의 모세, 엘리야, 아모스, 이사야, 예레미야 등 선지자들은 한결 같이 박해를 받았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오실 예수님을 증거 하다가 박해를 받았고, 사도들은 오신 예수님을 증거 하다가 박해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행복한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미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행복한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어느 마을에 꽃을 파는 할머니가 있었답니다. 할머니는 가난했답니다. 복장은 허름했고 얼굴에는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답니다. 그러나 얼굴 전체에 항상 행복한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답니다. 사람들은 그 할머니를 "행복한 할머니"라고 불렀답니다. 어느 날 누군가가 할머니에게 물었답니다. "무슨 좋은 일이 있나 보지요?" 할머니는 특유의 밝은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답니다. "내게는 행복의 비결이 하나 있답니다." 할머니의 말은 다음과 같이 이어졌답니다. "이 나이에 어찌 좋은 일만 있겠습니까? 고통을 당할 때마다 저는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금요일 날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사흘 만에 부활의 새벽을 맞이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고난이 다가올 때마다 마음속으로 '사흘만 기다리자'고 다짐합니다. 그때부터 제 삶이 한결 행복해졌어요." 아무리 십자가의 고난이 무겁더라도 사흘 후면 부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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