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말씀 열린설교

열린설교

게시글 검색
행복한 사람(6) 마음이 청결한 자(마5:8)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47774 추천수:5 218.155.63.46
2023-12-17 04:36:07

행복한 사람(6) 마음이 청결한 자

5:8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에게 질문했습니다. "6억 원을 가진 사람과 아이 6명 가진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요?" 우리 성도님은 누가 더 행복하다고 생각합니까? 그러자 한 학생이 당차게 대답했답니다. “아이 여섯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때 선생님이 이유를 물었답니다. “6억 원을 가진 사람은 더 많이 갖고 싶어 하겠지만 아이 6명을 가진 사람은 그만 가졌으면 할 테니까요.” 가진 것으로 만족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불행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핍박받으며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그들을 행해 진정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설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행복한 사람 여섯 번째로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 받은 자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합니다.

 

1.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행복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에 동의하십니까? 행복은 다양한 행복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행복이 있고, 정신적인 행복도 있고, 관계적인 행복도 있고, 사회적인 행복도 있고, 감각적 행복도 있고, 육체적인 건강의 행복도 있고 종교적인 행복도 있고 공동체적 행복도 있습니다. 당시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아멘이라고 우렁차게 외쳤을까요? 가난한 자들에게는 돈이 있어야 복이 있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때나 오늘이나 세상에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있어야 행복하다고 대 놓고 말을 합니다. 불행해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돈이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행복의 가장 큰 적은 가난이라고 말합니다. 병든 사람들은 무엇보다 건강해야 행복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병들어 죽음에 이른 사람에게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면 아멘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사람을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인데 건강을 잃었는데 무슨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느냐고 너무 현실적이 아니라고 항변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직장도 없고 권력도 없고, 능력도 없고, 명예도, 지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는 말이 마음에 공감을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지금 설교를 듣는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이 말씀이 용기를 주고, 도전을 주며, 소망을 주고 감동을 줄 만큼 마음에 와닿지 않을 것입니다.

 

2. 왜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했겠습니까?

1) 마음은 생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한 마음이란 헬라어로 카르디아입니다. 인간의 지성, 정서, 의지를 다 포함한 전인격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즉 이 단어는 인간의 사고, 느낌, , 감정, 사상과 의지, 자아의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잠언 423절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말씀하는데 마음은 생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습니다. 돈보다 건강보다 권력이나 명예나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2) 하나님의 관심은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보고 계십니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하나님은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예레미야 1120절에서는 공의로 판단하시며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여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심장은 사람의 마음과 동일한 말입니다. 번역만 달리했을 뿐입니다. 요한계시록 223절에서도 하나님은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라고 했습니다.

3) 마음이 청결해야 근본적으로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자연인으로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말씀합니까? 예레미야 179절에서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건 마음이라라고 했습니다. 죄로 마음이 다 죽었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1518-19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이런 더러운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돈이 있다고 건강이 있다고 권력이 주어진다고 명예가 주어진다고 지식이 주어진다고 행복하겠습니까?

깨끗하지 못한 마음에 대하여 로마서 128-32절에서는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이 청결치 못한 사람에게는 무엇이 주어진 들 행복할 수 없습니다. 빵을 주면 옷이 없다고 옷을 주면 않을 자리가 없다고, 의자를 주면 누울 침대가 없다고, 침대를 주면 집이 없다고, 집을 주면 차가 없다고, 차를 주면 날지 못한다고, 날개를 주면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끝없이 불평할 것입니다.

4) 마음이 청결해져야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본다(호라오)"는 말은 "눈으로 본다, 마음으로 본다, 인지하다, 알다, 경험하다, 타나나다, 방문하다, 관찰하다, 직접 면전에 나아가다, 하나님의 참 지혜에 도달하다, 교제를 나눈다"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문법적으로는 미래 직설법 3인칭 복수로 그들이 볼 것이라는 말입니다. 마음이 각종 죄로 얼룩져 있으면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자가 깨끗함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다'라는 말은 안다라는 말과 비슷한 말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죄인된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 없는 것으로 오랫동안 인식되어져 왔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을 본 자가 있다면, 그는 곧 죽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경고하라 백성이 밀고 들어와 나 여호와에게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19:21)”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33:20)” 기드온도 이사야도 하나님 보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6:22; 6:5). 죄로 말미암아 에덴에서 추방된 인간은 그 죄라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이사야 59:2)” 그런데 하나님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에베소서 117절에서 19절까지의 말씀을 보십시오.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기도입니다.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교인들입니다. 마음의 눈을 열어 보게해 달라는 것 대신에 알게 해 달라고 말씀합니다. 초월적인 존재를 우리가 인격적으로 경험하고 인지하는 것을 말로 표현하기 위해서 '본다'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만큼 이 세상에 큰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3.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마음이 청결해 질 수 있겠습니까?

1)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베드로 전서 118-19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1:18-19)”

아담은 선악과 사건 이전에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았습니다(3:8). 그러나 범죄한 후 에덴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이사야 592절에서는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볼 것을 소망했습니다. 욥기 1926절에서 27절에서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에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이사야 3317절에서도 네 눈은 왕을 그의 아름다운 가운데서 보며라고 말했고 다윗은 시편 1715절에서는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라며 하나님의 얼굴을 볼 기대를 드러냈습니다. 드러내고 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보이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셨고(12:7, 17:1, 18:1), 이삭에게도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지시하셨으며(26:2, 24). 야곱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보이셨으고(28:13, 35:1, 48:3) 모세에게 출애굽기 34장에서 하나님이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셨습니다(34:6). 그리고 이사야 405절은 하나님의 입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고 예언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오셨는데도 깨끗해져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제사법과 정결의식을 시행했습니다. 제사를 통해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정결의식을 주기적으로 행하면서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기 위해서 노력해 하나님을 만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 정결 의식에 철저했고 일반 백성들도 형식적인 정결예식을 매일 지켰습니다. 출애굽기 19:10, 14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모세가 산에서 내려 백성에게 이르러 백성으로 성결케 하니 그들이 자기 옷을 빨더라의식적 정결례로 겉모습은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근원적으로 정결이 필요한 장소를 알지 못했습니다. 마음은 아무리 의식적 정결례를 수행한다해도 깨끗해 질 수 없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17:9)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죄의 본성을 깨끗이 할 수 없습니다. 사탄이 거하면 예수님께서 마15장에서 말씀한 것처럼 "사람 속에 있는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증거와 훼방이 사람을 더럽게"할 뿐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무리 노력을 해도 깨끗해 질 수가 없습니다.

청결이란 말은 구약에서 150번 이상 사용된 말로 <카다로스>라는 말에서 온 것인데 대부분 의식상의 정함을 말합니다. 먹을 수 있는 종류의 음식과 동물을 말할 때 사용된 말입니다. 구약에서는 종교 의식을 지키면 청결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유대교의 정결예식에서 주로 많이사용된 것(7:21; 21:14; 16:6)으로, 도덕적이고 종교의식적인 정결을 의미할 때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세상의 각양 욕심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마음을 말합니다. 종교적으로 조금도 잡된 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청결한 마음은 깨끗하게 유지하고 악과 섞이지 않는 투명한 마음입니다. 어항 속에 깨끗한 물을 넣어 놓으면 어항 속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율법을 잘 지키어 두 마음을 품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4:8절에서는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어떤 사람의 마음의 중심, 곧 생각과 동기가 깨끗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욕심이란 생각으로 인해서 물들지 않고 깨끗한 마음과 생각을 갖고 있을 때에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능할 수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말은 순도 100%의 순금처럼 마음에 불순물이 없는 온전한 한 마음을 가지는 것인데 어떻게 사람이 노력으로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미워하는 것도 이미 살인이고, 음욕을 품은 것도 이미 간음이라고 예수님을 말씀하시는데 흠과 점이 없는 예수님의 마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믿음의 형제들에게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에수의 마음이니..."(빌립보서 2:5)라고 권면하였는 데 바로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입니다.

노아는 당대에 의인이라 완전한 자라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술에 취해서 실수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훌륭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첩을 거느렸습니다.

모세 온유한 사람이고 열심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도 혈기로 살인하였고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랑할 정도로 순전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역시 자신의 난 날을 저주하였습니다. 엘리야는 능력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이세벨에게 쫓기며 하나님께 죽기를 소원했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부인했고 바울도 로마서 7장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호소합니다. 원하는 선은 행할 수 없고, 원치 않는 죄로 기울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개탄합니다. 온갖 더러운 것들이 들어오도록 방치하면 우리의 마음에는 쓰레기가 가득차 하나님을 볼 수 없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여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라"(1:16)라고 외침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들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려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게 하자"라고 권면했습니다(고후7:1).

 

우리가 무엇으로 깨끗하여져서 하나님을 보고 경험하고 동행할 수 있겠습니까?

마태복음 2628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음이 정결케 되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의 피밖에 없습니다. 유대주의나 율법 주의나 신비 주의로 자신을 청결하게 할 수 없습니다. 나로부터 정결해지는 것이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님의 피로 정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13-14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마음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출애굽기 3020절에는 불결하게 된 여인들이 물로 씻어 정결하게 될 수 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출애굽기 1910,1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모세가 산에서 내려 백성에게 이르러 백성으로 성결케 하니 그들이 자기 옷을 빨더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레위기 714절에는 피를 뿌려 정결케 된다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모두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죄인들을 당신의 속죄의 피로 깨끗이 씻어 그들을 정결하게 함으로써 죄인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그 정결케 함을 힘입어 거룩하신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게 되는 속죄의 사건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에는 7번의 복을 선언하는데 마지막에 속한 복 마지막에 속하는 복인 두루마기를 빠는 자이기는 자”(2:7)는 두 곳에서 생명나무가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일맥상통한다고 보면서, 여기서 생명나무는 영생을 상징하며, 두루마기를 빤다는 것은 도덕적이고 영적인 정결을 의미한다. 이것은 구원 받은 큰 무리는 큰 환난을 통과하면서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으며(7: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시록 714절에는 큰 환난에서 나온 하나님의 백성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깨끗해지는 방법은 예수님의 피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뿌리신 그 보혈의 길을 지나 휘장을 찢고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난 새로운 은혜의 보좌에 이르는 거룩하고 산길을 걸어갈 수 있게끔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를 우리에게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약속하시기를 "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36:25-27)."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4:16).

 

2) 믿음으로 깨끗해 질 수 있습니다(15:9).

사도행전 159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마음이 정결케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깨끗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22절을 보세요.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그런데 인간들은 예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8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볼 수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빌립이 예수님께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족하겠다는 것입니다. 행복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49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바로 하나님을 보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본 자가 곧 하나님을 본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보면 이는 곧 하나님을 본 것과 동일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분명히 보여주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시 예수님은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를 통해(15:1-8) 깨끗하게 하는 방법을 알려 줍니다. 농부가 열매를 많이 맺게하기 위해 열매 맺지 않는 가지를 깨끗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다고 말씀합니다. 깨끗해지는 방법이 내 안에 거하라라고 말씀합니다. 도마가 나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20:28)라고 믿습니다.

딤후3:8절에 마음이 부패하고 더러운 자들은 믿음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씀합니다. 진리를 불의로 막는 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마음이 더러운 상태에 있는 것이고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8절 이하를 보십시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주사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수군, 비방, 하나님을 미워함, 교만, 자랑, 불효, 우매, 배약, 무정, 무자비한 가운데 살게 유기해 버린 것입니다. 불공평한 것이 아닙니다. 태양 빛을 똑같이 비추는데 어둠 속에 들어가 자신이 빛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풍요로운 비가 똑같이 쏟아지는데 뚜겅을 닫아 놓고 물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스스로 불신으로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죽음과 죄로부터 해방되어 참 자유를 누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은 자연적인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시력이 좋다 하여도 둔제이면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시를 읊을 수 없듯이 아무리 머리가 좋다하여도 육신적인 눈이 없으면 밤하늘의 별들을 볼 수 없듯이 영적인 눈, 곧 마음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이 영안은 어떻게 열립니까?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어떻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3:3)"

어떻게 거듭납니까? 라고 니고데모가 물어봅니다. 그 때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3:5)"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성령님은 그의 지성과 의지와 감정 안에 있는 부패함을 죽이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청결, 내적 깨끗함을 가지게 만듭니다. 새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고후7:1).

더불어 이 때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16)"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마음의 눈이 열려야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살아계셔 지금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역을 보게 됩니다.

시편 73:1절에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46:1-3, 10절에서는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찌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셀라)...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우리의 모든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감지하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하고 깨끗하여 그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서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놀라운 사역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상상도 못하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병든 자가 하나님을 기적처럼 살아나 하나님을 찬미하는 모습을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황혼에 지는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보며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들에 핀 야생화 속에서 하나님의 솜씨를 봅니다. 천둥치는 소리에서 빗소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봅니다. 불의와 죄악이 횡횡하고 문제가 많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음성과 뜻을 보다 분명히 깨닫고 경험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들은 자연계에서 하나님을 봅니다. 사도 바울도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로마서 1:20)”라고 말했으며, 다윗도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시편19:1~4)”라고 말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성경에서 하나님을 뵙게 됩니다. 마음이 부패한 사람은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청결한 사람은 성경 어디를 읽든 그곳에서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동안 찬송을 부르면서, 기도를 하면서,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게 되므로 ", 나는 오늘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모든 사건 속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매일 매일 일어나는 일 속에서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가 천국에 가면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대하듯 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부분적이지만 종말에 성취될 때가 옵니다. 현재에 부분적으로 하나님을 알지만 완전히 알때가 옵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라"(요한일서 3:2)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가 이제는 거울을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라"(고린도전서 13:12)고 하였습니다.

 

4. 하나님을 본 자들이 진정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눈이 있어도 주님을 볼 수 없으면 영적인 소경입니다. 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영적인 귀머거리입니다. 이것 얼마나 불행입니까?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사람의 모든 불행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보지 못한데서 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것은 사람의 최대의 만족이며 최대의 행복입니다. 하나님을 뵐 수 없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불행입니다. 여기서부터 인간의 절망이 시작됩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 살면서 하나님을 뵙는 동안에는 무척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에덴동산에서 내어 쫓겨 하나님을 뵐 수 없게 되자 행복이 다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을 보는 것은, 태양이 하늘로 솟아 오를 때 별들이 그 모습을 숨기고 희미하게 살아지듯이, 지상의 온갖 현란한 환영들을 무색하게 만들 것입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내 마음에 가득합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좌우하시는 하나님을 밤이고 낮이고 보면서 삽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고 없는 것 가운데 있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항상 내 눈앞에 계십니다. 한 나라의 최고의 권력자 대통령만 마음대로 보면서 살도 행복감에 사로잡히고,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만 날마다 보아도 행복감에 졌는데 우리 하나님을 날마다 보고 산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두려워할 수 없습니다. 좌절할 수 없습니다. 절망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부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복에 겨워하는 것입니다.

평범하게 살았지만 에녹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평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5:24).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기가 막힌 약속을 75세에 받았습니다. '내가 너에게 아들을 주마. 그리고 너에게 주는 그 아들을 통해서 전세계 사람들이 복을 받을 것이다.' 나이가 75세라 그 후 25년 동안 기다렸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어떤 부분을 보았을까요? 로마서 417절을 보면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 아는 하나님'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언약의 하나님, 성실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을 보았을 것입니다.

야곱도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32:30).

다윗은 조금 다릅니다. 600여명의 추종자들과 함께 정치적 망명 생활을 합니다. 눈만뜨면 산으로 들로 도망을 가야하고 먹을 것 걱정을 해야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윗에게 보인 하나님은 목자이신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방패가 되신 하나님입니다. 백인이 한번도 발을 들여놓지 아니한 검은 아프리카 대륙에 홀로 들어가, 복음이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닦기 위해서 평생을 그 속에서 살다가 죽은 위대한 선교사 리빙스턴에게 보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겠습니까?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을 보시며 살아가십니까?

위대한 설교자 스펄전이 하나님이라는 주제가 우리에게 크나큰 위안이 된다면서 이렇게 감격적인 말을 한 것이 있습니다. '!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것에는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치유제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명상하는 것에는 모든 슬픔을 근절시켜 주는 것이 있습니다. 성령의 감화력 안에는 모든 아픈 곳을 잊게 해 주는 진통제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슬픔을 잊고자 합니까? 여러분의 염려를 잊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신성의 깊고 깊은 바다, 하나님을 보는 깊고 깊은 바다에 잠겨 보십시오. 하나님의 광대함에 몰두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편히 쉬다가 나오는 사람처럼 기운이 나고 생기가 돌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열심히 묵상하는 것 보다 더 영혼에 위로를 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슬픔과 비탄의 굽이치는 파도를 그처럼 진정시키며 시련의 바람들을 평온하게 해 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참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왜 우리는 날마다 비참해집니까? 왜 우리는 날마다 힘을 잃습니까? 왜 우리는 포기하고 싶습니까? 왜 우리는 무기력합니까? 왜 우리는 기쁨이 없습니까? 왜 우리는 행복하지 못합니까? 왜 우리는 만족이 없습니까? 왜 우리는 불평과 불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왜 우리는 두려워합니까? 왜 우리는 걱정과 근심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까? 돈이 없어서입니까? 능력이 없어서입니까? 성격이 본래 그래서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만 보지 마십시오. 사람만 보지 마십시오. 세상만 바라보면 세상에 속고 사람만 바라보면 사람에게 실망합니다. 하나님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가까이 보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승리하는 비결이고 행복해지는 비결입니다. 만족하고 밝게 살고 기쁘게 사는 비결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아무리 세상이 요동하고 환경이 열악하여도 우리는 요동치 않을 것입니다. 모진 풍파 속에서 우리 하나님을 우리는 더욱 깊이 알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참으로 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마음이 깨끗하여 졌으니 그 깨끗함을 지키고 죄를 지었을 때는 회개함으로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보는 삶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심이되면 우리가 그와 같은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게하느니라(요일3:2-3)”.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3.12.17.

 
SNS 공유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