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1) 심령이 가난한 자
마태복음 5:1-3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불행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을 찾습니다. 돈이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돈을 추구하고, 명예, 권력, 쾌락이 행복해 줄 것이라고 평생 그것들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근원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까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불행하다고 늘 원망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빵을 달라고 기도했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빵을 내려주었더니 입을 옷이 없어 불행하다고 했답니다. 하나님이 입을 옷을 주었더니 앉을 자리가 없어 불행하다고 했답니다. 하나님이 앉을 의자를 주었더니 누울 침대가 없어 불행하다고 했답니다. 누울 침대를 주었더니 침대를 놓을 큰 집이 없어 불행하다고 했답니다. 큰 집을 주었더니 차가 없어 불행하다고 했답니다. 차를 주었더니 가장 빠른 차가 아니라 불행하다고 했답니다. 스포츠 카를 주었더니 날지 못해 불행하다고 했답니다. 날개를 주었더니 하나님이 될 수 없어 불행하다고 했답니다. 사람이 어떤 조건을 갖춘다고 진정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여자의 일생'을 써서 20대에 부와 명예를 쌓았던 프랑스의 소설가 모파상은 지중해에는 요트가 있었고, 여러 지역에 휴양을 위한 별장도 소유하고 있었으며, 매일 호화로운 삶을 누리며 마음껏 사치를 부리며 살았답니다. 하지만 그는 1892년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며 갑자기 자살을 시도하다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지만, 이후 파리 교외의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가 정신 발작을 일으켜 42세의 나이에 삶을 마감했답니다. 그의 묘비에는 그가 말년에 반복해서 했던 말이 기록되어 있답니다. '나는 모든 것을 갖고자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우리 성도님들은 지금 행복합니까? 나는 복받은 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팔복을 통해 궁극적으로 복받은 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합니까?
1. 진정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 이 시대는 "부한 자가 행복합니다. 부는 행복의 열쇠입니다. 가난은 행복의 적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의 표어인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무리들 앞에서 이와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4장 25절에 보면 무수히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친다는 소문을 듣고 좇아 왔습니다(23).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병든 사람들입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질병을 고침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과 제자들을 향하여 "복이 있도다 심령이 가난한 자여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원문을 보면 '복이 있나니'란 감탄문입니다. 사서 삼경 중의 서경에는 인간의 다섯가지 복을 장수, 부귀, 강녕, 유호덕, 고종명이라고 말하며 이런 것이 있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행복을 찾는 방법에 대하여 수많은 책들이 그 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늘 글을 쓰고 설교를 해야 하기 때문에 책을 디지털로 처리해 컴퓨터에 보관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2만 6천여권을 처리하여 보관하고 있습니다. 행복에 관한 책을 보니 448권이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행복에 대한 무수히 많은 책들이 나와 있지만 행복을 찾는 방법을 요약하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외적인 조건을 충족하여 행복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돈 명예, 쾌락, 권력, 아름다움, 건강, 실력, 지위 등을 취득하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냇적인 변화를 통해 행복해지려는 것입니다. 내적인 평안, 기쁨, 안정, 만족 등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지적 행복론>의 저자 리처드 이스털린 교수는 30년간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행복하는데 중요한 요소는 '경제 상황, 가정생활, 건강' 세 가지라고 합니다. 그가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이 세 가지의 영향으로 행복도가 10대까지 상승하다 20대 초 중반에 바닥을 친답니다. 이후로 30대 중후반까지 서서히 상승하다 하락세로 접어들고 50대가 되면 다시 바닥을 친답니다. 마지막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타면서 70대에 최고조에 달한답니다. 그런 다음 세 번째로 하락세를 보인다고 합니다. 평균적으로 10대, 30대 후반, 70대에 최고조를 보이지만, 20대, 50대, 80대 이후에는 바닥으로 떨어진답니다. 20대 하락은 직장 때문이고, 20대에서 중년까지는 주로 가정생활이 행복을 좌우한다고 합니다. 60대에 이르면 은퇴로 행복 수준이 올라가고 노년의 황금기가 지나면 배우자 사망과 건강 악화로 다시 바닥을 친다고 합니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여성의 행복도가 떨어진다고 합니다. 조건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없고 조건이 주어진다고 해도 사람은 쉽게 자극에 적응하기 때문에 특정 경험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쾌락 적응의 법칙이 작동되어 그것이 반복될수록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이 행복을 주지만 매일 먹게 되면 그 맛에 익숙해져 더 이상 맛있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늘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만족도가 평가되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것을 소유해도 더 소유한 사람을 보면 행복도는 떨어집니다.
예수님은 진정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합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것입니다. 소유나 자기 만족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2.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들입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에서 심령은 “토 푸뉴마티”로 “그 심령에 관한한”으로 번역될 수 있어 “그 심령에 있어서 가난한 자는 복되도다”라는 말씀입니다. ‘푸누마티’의 원형은 ‘퓨뉴마’인데 성경에서는 바람, 성령, 영혼 세가지로 번역이 됩니다. 여기서는 인간 마음을 움직이는 기원이 되는 핵심적 좌소인 영혼을 말합니다. 헬라어에서 두 가지가 있는데 가난은(패네스)는 수입이 적어서 근근히 먹고 사는 정도로 가난한 자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사용한 가난은 ‘패네스’가 아니라 ‘푸토코이’로 “가난한 자(호이 푸토코이)”는 파산 선고를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아무 것도 도움을 받을만한 데가 없는 절체절명의 상태에 이른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가난한 자는 벼랑 끝에서 예수님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태에 이른 사람입니다. 마음이 비어 있는 자, 예수님만이 구원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구주임은 인정하는 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자, 영적 무능함을 깨닫는 자, 영적 파산 상태에 있는 자, 자기를 의존하지 않고, 이제껏 살아온 자기 인생에서 자기 중심성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회귀하는 자인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겸손하게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메시아로 모시는 마음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심령의 가난을 자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무능, 부적격성을 깨닫고 온전히 그리스도만 신뢰하는 마음의 소유자를 말합니다.
누가복음에는 가난한 자라고 나와 있습니다. 심령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눅6:20)”라고 말씀합니다. 돈이 실제로 없는 가난한 자들을 말합니다. 가난 그 자체가 복 있다고는 성경 그 어느 곳에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안에 실제적으로 돈이 없어 가난한 자까지 다 포함된다는 것을 누가 복음에서는 특별히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예수님 따르기 위해 집도 버리고, 재산도 버리고, 가정도 버리고, 직업도 버리고, 다 내버려서 빈털터리가 되어 주님을 따라가는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들을 향해 너희가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너희를 세 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제자들이 바로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20-21절에 말씀한 것처럼 이 세상의 부요한 자들과 반대되는 내적으로 외적으로 위로와 도움이 필요한 거지와 같은 자, 예를 들면 헌데 투성이로 부자의 대문 앞에 버려진 나사로와 같은 사람을 말합니다(눅16) 그렇다고 가난한 자들이 다 복이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들이 다 복이 있다면 복받기 위해 모든 사람의 물질을 빼앗아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하게 사는 사람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이 가난한 삶을 복이 있다고 선언하는 것은 심령의 가난으로 다른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난을 단순한 물질적 가난으로만 본 다면 그 가난의 기준도 문제이고 물질적으로 부요한 사람은 반발이 심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가난이 아이라 지금 제자들처럼 예수님께 온 가난한 사람들을 복되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이 가난하다고 마음도 가난한 것도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니고데모는 부자였지만 심령이 가난하여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이사야 66장 2절에서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라고 말씀합니다. 이 ‘프토코스’라는 단어는 의지할 재산이 전혀 없는 거지 나사로(눅16:20-21), 전 재산 두 렙돈을 몽땅 헌금한 과부(막12:42-43) 혹은 왕의 잔치에 강제로 끌려 온 거리의 사람들(눅14:21) 등에서 사용되고 있듯이 찟긴 마음, 상한 마음 통회하는 마음을 말씀합니다. 이사야 61:1절에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라고 말씀했듯이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메시아로 오신 것입니다. 마11:5을 보면, 세례자 요한이 감옥에서 ‘그리스도의 일’을 전 해 듣고 그의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자(마11:2), 예수께서는 ‘너희가 듣고 본 것’을 요한에게 알리라고 하면서 이사야가 말했던 ‘메시아의 표징’을 열거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눈 먼 사람이 보고,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하시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복음을 듣는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가난한 사람들이 복되다’는 것은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보시고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진정한 복이란 무엇이겠습니까? 구약 성경에서 복을 지칭하는 말은 ‘바라크, 토브, 샤바흐, 에쉐르’ 등이 있는데 대표적인 단어는 ‘바라크’와 ‘에쉐르’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은 헬라어로 ‘유로게토스’와 ‘마카리오스’가 됩니다. ‘바라크’는 물질적인 유익으로부터 얻는 기쁨의 축복부터 시작해서 정신적인 즐거움에 이르기까지 아주 범위가 넓은 의미에서의 복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위대한 존재에서 비천한 존재에게 전달되는 즉 족장들의 손같은 매개를 거쳐서 실현되는 복입니다. ‘에쉐르’는 축복받은 자에게 매개없이 선언되는 복입니다. 지복, 신령한 복으로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백성이 받은 영적 복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복이 있나니’는 헬라어 ‘마카리오스’는 ‘복, 행복하다’는 말로 ‘에쉐르’를 말합니다. 이 복은 예수님이 선언하는 복입니다. 시편119편 1-2절에도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선언하고 있는데 복을 주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정상적 관계를 가짐으로 누릴 복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축복 선언은 바로 구원의 통고입니다. 시편 1:1-2절에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참된 행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출발합니다. 인간의 불행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분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있는 영혼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했습니다. 영혼이 있는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고 처음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창세기 1장 28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주신 복은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생권,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교제권,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지배권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는 범죄로 인간에게 죽음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영적죽음, 육적 죽음, 영원적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되니까 영적 소경, 죄의 지배, 친죄 성향의 인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인간에게 참된 복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그 사실을 믿는 자들에게 죄와 죄의 결과로 이루어진 죽음과 비참함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짐으로 끊임없이 생명과 사랑을 공급받는 복을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있나니(에스틴)’은 헬라어로 현재형입니다. 즉각적으로 현재적으로 복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자를 말합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심령이 가난한 마음으로 이 땅에서 사셨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가난한 심령을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하나님과 정상적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것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4:12)”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갈3:26)” 시편 32편 1절에서는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했는데 허물의 사함을 받고 죄를 가리는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것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양육해 보면 어릴 때 어떤 아이는 세배돈을 받든 누가 용돈을 주던 엄마에게 전부 맡겨놓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한 푼도 엄마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이 그것을 가지고 쓰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아이가 더 행복하고 풍성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엄마에게 맡겨 놓은 아이들은 자기가 맡겨 놓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가져다 씁니다. 어마 돈이 자기 돈이 되는 것입니다. 행복은 정상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버드대학교 성인발달연구는 1938년부터 75년간 역대 최장 기간에 걸쳐 행복과 건강한 생활에 대하여 연구했다고 합니다. 조사는 참가자의 직업, 건강, 결혼과 가정생활, 사회적 성취, 친구관계 등 삶의 전반에 걸쳐 이뤄졌답니다. 75년간의 연구에서 얻은 가장 분명한 메시지는 바로 '좋은 관계'가 인생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연구 총책임자 로버트 월딩어 교수는 행복하고 건강한 삶의 조건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라고 말합니다.
돈이 없다고 권력이 없다고 명예가 없다고 실력이 없다고 미모가 없다고 늙었다고 병들었다고 실패했다고 우리 믿음의 사람은 불행한 사람일까요? 신명기 33:29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신 33:29)"
우리 성도님과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번 달 마지막 찬양을 행복으로 바꾸었는데 우리 행복이라는 찬양을 같이 불러 보겠습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주며 사는 삶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눈물 날 일 많지만 기도할 수 있는 것 억울한 일 많으나 주를 위해 참는 것 비록 짧은 작은 삶 주 뜻대로 사는 것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세상은 알 수 없는 하나님 선물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행복이라오 눈물 날 일 많지만 기도할 수 있는 것 억울한 일 많으나 주를 위해 참는 것 비록 짧은 작은 삶 주 뜻대로 사는 것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세상은 알 수 없는 하나님 선물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행복이라오 행복 행복이라오 세상은 알 수 없는 하나님 선물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행복이라오 이것이 행복이라오”
3.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누리는 복은 무엇입니까?
천국이 그들의 것이 됩니다. 천국은 장소와 상태를 동시에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서 가는 영원한 천국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사는 상태를 동시에 말씀하는 것입니다. 즉 천국은 하나님께서 왕으로서 그 백성들을 친히 다스리시는 장소이자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하나님과 교제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천국은 예수님을 통해 ‘이미’ 이루어졌고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완성되기 때문에 ‘아직’이라는 양상을 갖습니다. 곧 현재의 “은혜의 나라”와 미래의 “영광의 나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심령이 가나한 사람은 이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1)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바로 이 천국을 소유합니다.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늘 나라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영생을 값없이 얻은 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천국이 그들의 것이 되었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인간의 노력으로 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고 죄용서을 받은 자만 가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4장 7-8절에서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그 심각성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아무리 이 땅에서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아도 가난한 심령으로 예수님을 믿지 못하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2)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게 됩니다.
심령이 가난하여 그 가난한 심령에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모시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을 온통 다스리시는 상태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통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그 통치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누가복음 17장 21절을 보면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은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주님께서 말씀했는데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이미 이루어졌고 그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마음이 기쁨과 행복으로 얼마나 충만해지는지 모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서는 이런 상태의 천국을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땅의 돈으로도 권력으로도 명예로도 지식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1) 우리 안에서 의가 이루어집니다. 쾌락과 부와 세속적 가치가 행복을 줄 것으로 생각하지만 의가 없는 곳에는 참된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그것들을 가진다고 해도 공허는 끊임없이 찾아 오고 심각한 죄가운데로 사람을 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재벌이 죄를 범하고 감옥에 가면 행복하겠습니까? 한 나라의 최고이 권력자 대통령이 죄를 짓고 감옥에 가면 행복하겠습니까? 우리의 의는 어떻게 주어집니까? 행함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주어지는 의인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8절에서는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에베소서 2장 8-9절에서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2) 우리 안에 평강이 이루어집니다.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신 심령에 임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서 다스리시는 천국이 임하면 우리 안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이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롬 5:1). 십자가를 통해 구원해 주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님은 제자들을 만나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인간의 3대 고난이 있습니다. 늙고, 병들고, 화를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평안이 없이 불안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역사의 주인으로 모실 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해주신 주님과 함께 한 평생을 사는 것입니다. 바울처럼 인생에 유라굴로 광풍이 불어와도 주님과 함께라면 평안히 인생항해를 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심각한 세균은 불안입니다. 이 불안은 각족 사회 악과 궤양 투통, 두드레기, 통증, 심리적인 병, 심장 병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 불안으로부터 어떻게 우리가 평안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폭풍우가 심한 날, 아슬아슬한 낭떠러지를 달리고 있는 버스가 있었답니다. 승객들은 모두 겁에 질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답니다. 그런데 맨 뒷자리에 앉은 소년은 평화스러운 얼굴로 자고 있었답니다. 그 소년은 버스 운전사의 아들이었는데 아버지가 안전하게 운행할 것을 믿었기 때문에 편안하게 잠들었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과 우주을 운전하고 계십니다.
내적 평강과 외적 평강이 이루어집니다. 죄로 말미암아 막힌 하나님과 인간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막힌 담을 헐어 버리고 주신 진정한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평강이 임하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기댈 때도 누리지 못했던 평강, 쌓아 놓은 돈에 기댈 때도 누리지 못했던 평강, 사람들 앞에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참한 자식들에게 기댈 때도 누리지 못했던 평강, 내 건강을 의지할 때도 누리지 못했던 평강을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심으로써 누리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적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의 혼란과 불안에서 벗어나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원수 같은 사람과도 화평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 평안을 네게 주노라”
(3) 우리 안에 기쁨이 이루어집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미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주신 기쁨을 사탄에게 빼앗기기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기뻐할 일이 없지만 마음에는 예수님만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천국을 선물해 주신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11절에서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충만한 기쁨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18절에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의 3대 원리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중에 첫째가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환경과 상황을 포월하여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었습니다. 주님을 통해 천국을 얻었고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는 기쁨은 예수님이 말씀한 것처럼 그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요16:22). 주님과 함께 누리는 기쁨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이 기쁨은 심령이 가난하지 않는 자는 누구도 누리지 못하는 기쁨입니다.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는 기쁨 그것 오래가지 못합니다. 욕구를 충족하는 기쁨 역시 한 순간입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은 순교의 현장에서도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사도들은 능욕을 받아고 기뻐했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5:41)"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도 기뻐합니다. 바울은 죽을 지라도 기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2:17)"
스데반은 순교를 당하면서도 천사의 얼굴을 하고 죽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환난의 많은 시련 극한 가난 가운데서도 넘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고후7:4). 음악을 아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과 즐기는 사람은 다릅니다. 진정 음악의 경지에 이르는 사람은 음악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천지자연을 즐기고 우리의 생활을 즐기고 우리의 일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어려운 피난 생활에서도 여호와로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다윗이나 전쟁의 위험 속에서도 여호와를 즐거워하는 하박국 선지자나 이사야, 예레미야 선지자 등은 모두 이 경지에 이른 사람들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을 보십시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합 3:17-19)"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시16:8-9)"
느헤이미야는 말합니다.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헤미야8:10)" 이 사실을 믿습니까?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조건이 문제가 아닙니다. 승리와 성공이 문제가 아닙니다. 욕구 충족이 문제가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을 평생 누릴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누리는 천국 생활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우리 성도님들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이런 천국을 소유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우리는 이 땅에서 이런 천국의 복을 누려야 합니다.
“주님 한 분밖에는 아뢸 사람 없어요 가슴 깊이 숨어있는 주를 사랑하는 맘 주님 한 분밖에는 기도 하지 못해요 처음 주를 만난 그 날 울며 고백하는 말 나는 행복해요 죄 사함 받았으니 아버지 품안에서 떠나 살기 싫어요 나는 행복해요 사랑이 샘솟으니 이 세상 무엇이든 채우고도 남아요 나는 행복해요 죄 사함 받았으니 아버지 품안에서 떠나 살기 싫어요 나는 행복해요 사랑이 샘솟으니 이 세상 무엇이든 채우고도 남아요”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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