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중심 예수 그리스도(3) 예수님의 증언 3
요한복음8:58
요즈음 세계인의 시선은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에 시선이 모아져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자치정부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여 지금까지 양측 사망자가 최초 26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가자는 성경에 나오는 가사지역을 말합니다. 과거 블레셋 땅이었습니다. 무차별 폭격으로 사상자 수는 1만명을 훌쩍 넘어선 상태라고 합니다. 하마스가 일으킨 이번 전쟁의 작전명은 '알 아크사의 홍수(Al-Aqsa Deluge)'입니다. 알 아크사는 예루살렘 성전(聖殿)산에 있는 모스크 사원입니다. 요르단이 관리하고 있고, 사원 경내에서 기도는 이슬람 신자에게만 허용돼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성전산 바깥에 있는 '통곡의 벽'에서 기도합니다. 극우 이스라엘인들은 이에 불만을 품어왔고, 지난 5월에는 일부 이스라엘인들이 기습적으로 사원 경내에서 기도해 이슬람 측의 분노를 불러왔는데 여러 가지 다양한 배경들이 거론이 되고 있지만,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성지인 알 아크사 사원을 훼손했다는 것을 명분으로 들고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 장소는 유대인에게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려던 장소이자(모리아 산), 솔로몬 성전이 있던 장소(시온산)입니다. 그런데 이곳이 모스크 사원이 되어 요르단이 관리하고 있으니 그들은 어떻게 하든 그 땅을 차지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슬람에게는 그들이 절대적으로 추종하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승천한 장소로 알려져 메카, 메디나와 함께 이슬람 3대 성지 중 하나라 절대 빼앗기지 않으려는 장소가 된 곳입니다. 그래서 이곳을 놓고 끊임없이 분쟁을 해 왔습니다. 이들의 전쟁은 모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갔는데 그때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을 통해 가나안땅을 점령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곳에서 정착하였습니다. BC 1000년경 다윗 왕이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로부터 은 50세겔(일반 노동자 200일의 품삯)에 성전산(당시에는 타작 마당)을 구입했습니다. 그의 아들 솔로몬은 BC 960년 그곳에 제 1성전을 세웠지만 BC 586년 바빌론의 침공으로 제1성전은 파괴되었고, 유대인들은 대거 바빌론으로 끌려갔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스룹바벨의 지휘로 성전 재건을 시작했고 BC 516년 제2 성전을 완공했습니다. 그러다 BC 20년, 유대인이 아닌 에돔 사람으로 로마의 분봉왕 노릇을 하던 헤롯이 유대인의 민심을 얻으려고 성전과 부속건물을 화려하게 신증축했지만 AD 70년 유대가 반란을 일으키자 로마 타이투스 장군은 헤롯 성전을 완전히 파괴해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언대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부서져버렸고 유대인들은 전 세계로 흩어졌습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성전산에다 주피터신전을 세웠고, 이후 비잔틴시대에도 유대교의 성전터였다는 이유로 황폐하게 방치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무함마드가 죽은 후 638년 예루살렘과 성전산을 정복한 우마이야 왕조는 코란 17장1절에 나오는 ‘알라의 종을 밤새 메카 사원에서 아득히 먼 사원으로 데려갔다’는 구절의 ‘아득히 먼(알아크사·Al-Aqsa)’ 장소를 예루살렘이라고 특정하게 됩니다. 당시 무함마드 후계자인 칼리프들의 경쟁이 치열했는데, 시리아 다마스커스에 본거지를 둔 우마이야 왕조가 메카 지역 칼리프에 맞서 예루살렘의 위상을 높이려고 그렇게 해석한 것입니다. 이슬람교는 크게 두 분파가 있습니다. 시아파와 수니파입니다. 간단하게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직계 후손만이 후계자가 될 수 잇다는 것이고 수니파는 무함마드 직계 후손이 아니어도 선출에 의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8억 무슬림 중에서 85% 정도가 수니파이고 15% 정도가 시아파입니다. 지금까지 이들은 자기들끼리 이라크 내전, 시리아 내전, 예멘 내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갈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칼리프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후계자이자 이슬람 공동체의 종교적, 정치적 권한의 가진 지도자입니다. 오늘날에는 이슬람교 지도자는 일반적으로 이맘(종교의식), 무프티(사법), 쉐이크(학자) 등으로 불립니다. 우마이야 왕조의 5대 칼리프인 압둘 말리크는 691년 8각형의 바위사원(Dome of the Rock)을 세웠습니다. 돔 아래에는 폭 10m가 넘는 바위가 있는데 무함마드가 야간비행을 통해 메카에서 날아와 이 바위를 딛고 승천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코란에 예루살렘이란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고, 무함마드가 예루살렘을 방문했다는 역사적 기록도 없습니다. 기독교 도시 예루살렘을 빠르게 이슬람화할 필요가 있어 창작되어진 설화에 불과합니다.
무함마드가 어떤 사람입니까? 아내만 11-13명이라고 합니다. 25살아 15살 연상인 하디자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녀는 상인으로 성공한 부유한 기독교인이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부인은 그의 사촌인인데 유대인으로 살다 무함마드가 개종시켰다고 합니다. 셋째는 마리아인데 자기 종의 아내를 이혼시키고 결혼했다고 합니다. 조카딸과 결혼하고, 며느리와 결혼하고 9살 아이샤와도 결혼하였습니다. 지금도 무슬림들은 여성의 인권을 무참하게 짓밟고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정치 종교를 위한 수단으로 승천했다는 신화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몇 년 뒤에는 바위사원 남쪽에다 알아크사사원을 추가로 지은 것입니다. 바위사원은 1099년 십자군 시대에 교회(템플럼 도미니)로 잠시 바뀌었으나 1187년 다시 이슬람 손으로 들어갔습니다. 20세기 들어 후세인 요르단 국왕이 사재 650만달러를 털어 24K의 순금으로 1200장의 얇은 판을 바위사원에 씌웠습니다.
유대인들은 로마에 의해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난 후 1948-1949년 이스라엘 건국 전쟁을 통해 1300년 동안 가나안 땅을 점령했던 팔레스타인들은 쫓아내었고 그들은 같은 이슬람 지역인 레바논과 요르단 등 아랍 국가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지금 팔레스타인 자치주로 남아 있는 곳이 가자 지구와 요르단 서안 지구입니다.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 지구는 이집트에서 건너온 팔레스타인 사람들로 이스라엘을 몰아내고 이슬람 왕국을 만들려는 목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성전산을 차지하려는 종교 전쟁으로 그들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이삭의 후손으로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인들은 이스마엘의 후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을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평화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이해하지 못하고 원수가 되어 그 땅을 차지하려고 끊임없는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의 중심 인물인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깨닫지 못하여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인 죄와 죽음을 해결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유대교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랍비이자 예언자 정도로 생각합니다. 심하게 말하는 사람은 거짓 메시아, 사이비 종교의 창시자라고 생각합니다.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님을 중요한 예언자로 인정하지만 메시아,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꾸란은 이슬람의 근원을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지만 본래 아브라함이 무슬림이었으며 유대교와 기독교의 뿌리는 이슬람이었다고 가르칩니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타락하여 그 본래의 원형이 변질되었기에 알라가 마지막 선지자 무함마드를 보내서 그 원형을 복구하였는데 그것이 이슬람이라는 것입니다. “알라는 셋 중에 하나라 말하는 그들은 분명 불신자이라 알라 한 분외에는 신이 없거늘 만일 그들이 말한 것을 단념치 않는다면 그들 불신자들에게는 고통스러운 벌이 가해지리라”(꾸란 5:76)고 가르칩니다. 유대교나 이슬람교가 구약의 아담과 하와 노아 아브라함 모세에 이르는 성경속 인물들을 모두 인정하지만 성경속 신약의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아 그리고 구원자인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유대교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아 복음 전달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합니다. 이슬람교는 예수를 최상의 인격체로 받아들이고 추앙하지만 순수한 인간 예언자 혹은 선지자로 볼 따름이지 하나님의 아들이자 인류의 구원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무슬림이 믿는 ‘알라’를 우리 나라 코란을 번역할 때 하나님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그것은 근본적으로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 섬겼던 달신입니다. 모하메드의 부족인 꾸라이시(Quraish) 부족이 섬기는 우상만 해도 360개에 이르렀는데 그 중 최고신으로 경배한 것은 달신 알라입니다. 아랍 국가들 대부분 국기에 달이 그려져 있습니다. 알라를 부르는 우상의 이름이 바로 월신이었기에 초생달은 이슬람의 매우 중요한 상징입니다. 코란 5:73에 삼위일체을 부인하고, 예수의 신성도 부인하고(코란 5:72), 알라 자신이 기독교와 유대교를 적으로 천명하고 있습니다(코란 5:51).
바위 돔 사원 벽에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 다시 말해 그에게 다른 동역자는 없다. 마리아의 아들인 메이사 예수는 알라와 알라가 마리아에게 주었던 말씀의 사자이며 알라로부터 나온 영일 뿐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오로지 알라와 그의 사자를 믿기는 하되 셋에 대해 언급하지 말라. 그것이 너희들에게 더 나을 것이다. 알라는 오직 한 신이다. 알라에게 아들이 있다는 것은 그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다. 알라의 눈 앞에 종교는 진실로 이슬람교밖에 없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칼 구절 꾸란 4:89; 5:33에는 “그들이 배반한다면 그들을 포획하고 그들을 발견하는 대로 살해할 것이며 친구나 후원자를 찾지 말라(4:89)” “실로 하나님과 선지자에 대하여 지상에 부패가 도래하도록 하려 하는 그들은 사형이나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그들의 손발이 서로 다르게 잘리거나 또는 추방을 당하리니(5:33)”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금지된 달이 지나면 너희가 발견하는 불신자들마다 살해하고 그들을 포로로 잡거나 그들을 포위할 것이며 그들에 대비하여 복병하라.” 다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만행을 저지르며 우매한 백성들을 그들의 종교를 어릴 때부터 세뇌시켜 역사 속에 비극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예수님 스스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58절을 큰 소리로 같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진실로 진실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 사실을 믿지 못합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진리를 말해도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48절을 보십시오.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귀신이 들렸다고 말합니다. 52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는데 어떻게 사람이 죽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53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민족의 뿌리로 보고 있는 아브라함보다 예수님이 크냐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5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예수님이 아브라함 때에 이미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듣기에는 참으로 황당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끝없는 전쟁을 하는 유대교도 이슬람교도 이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5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오십도 되지 못했는데 2000년 전에 있었던 아브라함을 보았느냐는 것이니다. 거짓말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도저히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는 진실로 진실로 강조하면서 아브라함 전부터 예수님이 계셨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구약에 예수님이 계셨는지 성경을 찾아 보겠습니다. 불편하지만 성경을 펴고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리를 바로 깨닫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창세기 16장 7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19쪽). “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가 아이를 갖지 못하자 사래가 여종 하갈을 첩으로 줍니다. 그래서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자 여주인 사래를 멸시합니다. 그러자 사래가 하갈을 학대했습니다. 하갈은 주인을 피해 도망을 가는데 그때 하갈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9절을 보세요. 여호와의 사자가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고 합니다.
10절에도 여호와의 사자가 나옵니다. 10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여기 나오는 여호와의 사자가 누구일까요? 천사라면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천사는 전달자일 뿐이지 창조자, 섭리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11절에 보면 바로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라고 나옵니다. 1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겠습니까?
18장 1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13:18참고)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2절 보세요. 그런데 사람 셋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무엇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내 주여라고 말씀합니다. MY LORD 이것은 단수입니다. 그렇다면 그 세 중에 주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그가 이르시되” 말씀하시는 분이 한 분이 계십니다. 그 말씀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13,14,17,20를 보십시오. 말씀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들은 거기서 떠났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있습니다.
19장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러면 세 사람으로 표현된 세 사람 중 두 명은 두 천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분 아브라함과 대화하신 분은 누구겠습니까? 여호와의 사자입니다.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바치려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창22장 11절을 찾아 보십시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15,16절을 보십시오. 그 여호와의 사자는 바로 여호와로 나와 있습니다.
구약에는 예수님께서 여호와의 사자로 종종 나타나셔서 인간과 대화하는 모습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마노아에게(삿 13:15-23; 사 9:6). 기드온에게(삿6:12), 모세에게(출3:2-7), 이삭과 야곱에게(창26:2,5, 24-25; 28; 28:10-14; 32:24-32;48:15-16; 호 12:4-5), 홍해 도하 시에(출14:19), 광야에서(고전 10:4), 여호수아에게(수 5:13-15), 이사야에게(사 6:1-13; 요 12:39-42; 참조, 겔 1:1-28; 사 63:8-10), 스가랴에게(슥 1:8-13;2:8-11;3:1-10;6:12-15), 풀무불 속에 있던 다니엘의 세 친구들에게(단 3:25) 나타나셨습니다.
시간 관계상 다 찾아 볼 수는 없고 모세 때를 한 번 찾아 보겠습니다.
출3:2절에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라고 말씀합니다,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의 노예에서 해방시키려고 할 때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나 모세와 대화를 합니다. 그 여호와의 사자는 누구입니까? 4절에 바로 여호와로 나옵니다. 단순한 천사가 아닙니다. 5절에는 하나님으로 나옵니다. 7절에서 여호와로 나옵니다. 이렇게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나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누구이겠습니까? 단순한 천사이겠습니까? 천사라면 하나님이라고 그렇게 동격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과 동격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 누구겠습니까?
사사기 13장 18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
지금 가자에 사는 사람들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하고 있는데 삼손이 태어나 가자 지구 블레셋을 쳐 점령했습니다. 삼손이 태어날 때 삼손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와서 말씀하시는 여호와의 사자에 대하여 물어보는 말씀입니다. 그 때 여호아의 사자가 내 이름은 기묘자라고 말씀합니다.
그 기묘자는 누구이겠습니까?
이사야 9장 6절을 찾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 한 아기가 누구이겠습니까? 마1:23에서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이미 창세기 3장 15절에 약속하신 여인의 후손으로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 미가서 5장 2절에서 예언하신 베들레헴에서 나실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유대인의 왕 메시아, 이사야 7장 14절에서 약속한 처녀에게서 나실 아기 이사야 53장에 약속한 고난받고 인류를 구원할 고난의 주, 시편 16편에서 약속한 부활의 주님을 말씀하는 것이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 38절에서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대제사장의 기로를 통해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요17: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여호와의 사자", "하나님의 사자", "언약의 사자"(창 22:14; 31:11, 13; 출 14:19; 사 63:9; 말 3:1)는 구약에 사역하시는 그리스도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에도 영원한 아들로(사9:6), 인자 같은 이로(단7:13), 언약의 사자로(말3:1,2, 막1:2)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선재성에 대하여 계시록에서 예수님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시는가를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 계시록 1장 1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어떻게 말씀합니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17절을 보십시오.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하십니다. 2장 8절을 보십시오. 시작과 마지막으로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계21장 6절을 찾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22장 13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창조주이시고 재림하시고 심판하실 메시아이십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이 예수님을 증거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선지자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22장 1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이사야 41장 4절에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44장 6절에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육신을 가지고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은 인간이나 랍비, 선지자 정도가 아니라 성부 하나님과 동일하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요한 복음1장 3, 10절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라고 말씀합니다. 골로새서 1장 16-17절에서는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왜 이렇게 종교라는 이름으로 싸우고 있습니까? 왜 이렇게 세상이 갈등과 분열 탐욕으로 지옥처럼 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어도 잘못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예수님을 메시아로 구세주로 믿고 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선물을 주십니까?
첫째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요한복음 8장 31-3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참제자가 되고 친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죽음과 죄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1:14)”라고 말씀합니다. 12절을 읽어 보십시오. 어둠을 거두어 내기 위해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밝히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참 평안의 삶을 누리게 됩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셋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분명한 목적있는 삶을 누리게 됩니다.(고전10:31 빌1:20; 롬14:8)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믿으면 지배를 위해, 권력욕으로 충촉하기 위한 인생 목표에서 멀어집니다. 인생의 목표가 달라집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넷째는 늘 영적 싸움을 하는 힘겨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이 땅의 싸움이 인간과의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인 것을 알고 믿음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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