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중심 예수 그리스도(2) 예수님의 증언 2
누가복음24:44
우리 나라에서 한 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을까요. 2021년 사망 원인 통계에 따르면 31만 7680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전체 사망자 중 50%가 80세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연간 사망자 중 사고를 당하거나 뇌졸중·심근경색 등 갑작스러운 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전체 사망자의 약 25% 쯤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앓고 있던 병의 악화로 긴 고통의 과정을 거치며 죽음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가정에서 자녀들과 함께 살며 돌아가시는 분은 많지 않고 80% 이상은 병원이나 기타 복지시설에서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거나 질병이 고통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다고 합니다. 이중 매년 8만 명 정도가 암으로 숨지는데 호스피스 병상은 1,500개도 되지 않고 호스피스 이용률은 23% 정도에 불과하답니다. 그래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품위 있는 죽음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환자 본인은 물론 지켜보는 가족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죽음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안락사나 의사 조력자살을 법제화하자는 의견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수명을 다 누리고 편안하고 안락하게 자신과 주변 모두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삶을 마무리하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소원이지만 마지막까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마감을 하는 것은 마음대로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자연 수명을 넘는 단지 생명 연장을 목적으로 하는 연명 의료행위에서 벗어나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만약을 대비하여 자신이 임종 과정에 이르게 되는 경우에는 연명의료를 하지말거나, 시행의 경우에는 중단하라는 자신의 의견을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작성하여 등록기관으로 지정된 의료기관에 등록하여두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으로 볼 때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활신앙이 필요합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부활 신앙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품위 있게 살다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4대 고통이 나타납니다. 질병, 고독감, 경제적 빈곤, 역할상실입니다. 그래서 노년을 초라하지 않고 품위있게 보내는 비결은 경제적 부요, 건강한 몸, 함께하는 친구, 사랑, 여유, 용서, 아량, 부드러움, 신앙 등과 같은 정신적 가치 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은 부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니까? 죽음 후에 지옥 간다고 생각하니까 노년에 품위 있는 삶을 살지 못하고 품위 있게 죽지 못합니다. 죽음은 천국에 들어가는 문이고 신앙인은 예수님이 부활했듯이 부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는데도 부활의 신앙이 확고하지 못한 성도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오늘 예배드리는 성도님들 중에 이 사실을 믿지 못하시는 분이 계시면 오늘 말씀을 들으며 꼭 부활의 믿음을 가지는 품위 있는 삶을 살다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길 바랍니다.
1. 왜 부활을 믿지 믿지 못합니까?
독일 슈피겔(Spiegel)지의 조사에 의하면 가톨릭 신자들 중에는 61%, 개신교 신자는 58%가 부활을 믿는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성당과 교회를 다니지만 독일의 가톨릭 신자들 중에서 39%는 부활을 믿지 않고 개신교 신자들 중에는 42%는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국에서 BBC가 조사했는데 예수님의 부활을 성경 대로 믿는 사람은 3분의 1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미국 교인들은 75%가 부활을 믿는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도 가톨릭신앙생활연구소가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30%는 부활을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였을 때 예수님의 두 제자가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왜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을까요?
누가복음 24장 1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동행하면서도 예수님인 줄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믿지 않는 이유가 눈이 가리어져서라고 말씀합니다. 눈이 멀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의 눈에는 육안, 심안, 영안이 있습니다. 물질을 보는 눈이 육안이고, 정신 세계를 보는 눈이 심안이고, 영적인 세계를 보는 눈이 영안입니다.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영적 세계를 알 수 없고 믿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은 것입니다. 초등학생에게 미적분을 보여주면 눈이 있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영적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여주어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냥 우연히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어낸 이야기 신화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1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 정도 생각하는 것입니다. 4대 성인 정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입니다. 그저 대단한 일을 했을지라도 사람에 불과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네 가지를 들어 의심을 합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죽음의 역사성, 둘째, 부활 기사의 신빙성, 셋째는 빈무덤의 역사성, 넷째는 부활 후 출현의 역사성입니다. 기절설, 도난설, 환상설, 신화설을 말하며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합니다. 과연 기절했다가 살아났겠습니까? 죽음의 역사성은 확실합니다. 빌라도도 '빌라도 보고서'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초기의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그는 메시아였다. 우리 유대인들 중의 지도층 사람들이 그를 고소했기 때문에 빌라도는 그를 정죄하여 십자가의 처형을 받도록 했다."라고 기록했습니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도 "이 이름의 창설자인 그리스도는 티베리우스의 통치 기간 중에 총독 빌라도에 의해 처형되었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꾸며낸 이야기이겠습니까? 기록된 내용이 역사적으로 신뢰성이 있으려면 첫째는 구전 전승 기간이 짧을수록 사실에 가깝습니다. 불교의 경전은 230-600년, 공자는 약 400년이지만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약 30-60년입니다. 둘째는 원본과 필사본의 시간 간격이 짧을수록 진짜입니다. 시저의 갈리아 전쟁은 900년 요한복음은 30-50년 차이가 납니다. 셋째는 사본의 개수가 많을수록 신뢰성이 높습니다. 시저의 갈리아 전쟁은 10개, 플라톤의 4부극은 7개이지만 신약성경은 무려 2만 4천여개가 됩니다. 넷째는 사본들 사이의 내용의 일치성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은 75%이지만 신약은 99.5%입니다. 여인들이 무덤을 잘못 찾아가서 빈무덤이라고 했겠습니까? 개인 무덤입니다. 만약 꾸며낸 이야기라면 여인들을 증거로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간 제자들이었습니다. 거짓을 위해 순교할 수 있겠습니다. 환상을 보았겠습니까? 부활하신 후, 40일간 무려 11번 나타나셨고 갈릴리 지정된 산 위에서는 500여 형제에게 일시에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가족의 변화를 보십시오. 믿지 않았고(요7:5) 미쳤다(막3:21)고 했습니다. 부활을 목격하고 그들의 삶은 변했습니다.(행1:14) 야고보서 기록했고, 유다서를 기록하면서 형이 아니라 주라고 고백했습니다. 유대교의 희생제사, 율법, 안식일을 기반으로 하는 유대 사회가 변했습니다. 1500여 년 동안 이어온 안식일이 예수님이 부활한 날로 예배가 바뀌었습니다. 사실적 역사는 증인에 의해 진위를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많은 부활의 증인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진실성을 입증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했듯이 우리도 부활합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살지 못하였고,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 믿음도 헛것, 금생뿐만아니라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고전15:16-19)"
사람이 사색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성 의존 사색과 계시 의존 사색입니다. 부활은 이성 의존 사색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계시 의존 사색을 해야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고 신학을 평생 동안해도 이성의존 사색을 하면 부활을 믿지 못합니다. 부활을 신학화시키고 합리적 철학화를 시키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실 것에 대하여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면 실의에 빠져 엠마오로 내려가는 삶을 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했습니까?
누가복음 9장 22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누가복음 18장 33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누가복음 24장 7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이렇게 명백하게 부활을 예언해 주었는데 더디 믿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증거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말씀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죽음을 존재의 소멸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 존재와 영적 세계를 모르니까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3차원의 세계까지만 있고 4차원의 세계는 없다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포스트 트루스(리 매킨타이어)>라는 책이 있습니다. 부제로 “가짜 뉴스와 탈진실의 시대”라고 되어 있습니다. 포스트 트루스는 객관적인 사실보다 개인적인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순서상 진실 이후라기 보다는 진실이 무의미할 정도로 퇴색되었다는 말입니다. 존재하는 것에 대해 존재한다고 말해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기만과 망상에 빠져 진실이 아닌 말을 진심으로 진실이라고 믿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탈진실의 뿌리는 세가지로 말합니다.
첫째는 인지 편향입니다. 인간은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피하려고 애쓴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던 정보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지면 쉽게 바꿀 것같은데 불이익이 되니까 바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집단 동조입니다. 사람은 집단 압력의 영향을 받는데 주위 사람들의 믿음과 조화를 이루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속한 집단에 순응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확증 편향입니다. 사람은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의도적 합리화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진실이라는 사실을 확증하기 위해 자신의 믿음을 확증해 주는 증거만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화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잘못을 알려주면 더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는 현상입니다. 더닝 크루거 효과가 나나탄다는 것입니다. 너무 멍청해서 멍청한 줄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부활을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득해 주어도 믿지 않으려고 하는 자들은 믿지 않습니다. 눈앞에서 증거를 대주어도 믿지 않습니다.
2. 예수님은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만들어 주셨습니까?
먼저 예수님은 그들이 믿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2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더디 믿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에 부활도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무엇을 전해 주었다는 말입니까?
2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예수님이 많은 고난을 받고 부활하여 영광에 들어갈 것을 가르쳐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미 선자자들을 통해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가르쳐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믿지 않으니까 영안이 열리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옆에 계시는데도 알아보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믿지 못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니까 실망하고 낙담하여 엠마오로 내려가는 2명의 제자에게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2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모세는 모세 오경을 말씀하시고, 선지자의 글은 선지서를 말씀하며 모든 성경에 쓴 바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하여 기록한 그 외 성경에 있는 내용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 성경 전체에 있는 예수님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가르쳐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11 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부활에 대한 믿음을 주시기 위해 그들을 방문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가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문안 인사를 합니다.
그때 그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37절을 보십시오. 두려워하며 예수님을 영으로 생각합니다.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38-3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실제 경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실제 부활하신 주님의 몸을 체험해 보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믿었습니까?
40-41절을 보십시오. 손과 발을 보여주었지만 아직도 믿지 못합니다. 이 때 예수님은 그들이 믿을 수 있도록 무엇을 합니까? 영이 아니라 진짜 음식을 잡수시는 몸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시기 위해 같이 식사를 하시고 그것으로도 믿지 못하니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4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동일하게 구약 성경에 계시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단지 인간의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성경은 성경에 대하여 디모데 후서 3장 16-17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라고 분명하게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책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는 책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기록한 목적이 분명하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점진적으로 알려 주시기 위해 점진적 계시를 해 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모든 길이 서울로 연결되어 있듯이 모든 성경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을 읽을 때도 예수 그리스도의 안경을 끼고 읽어야 합니다.
성경 처음 시작인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예수님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미 창조에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이 창조에 대하여 요한복음 1장 1-3절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씁니다. 위대한 창조자,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것은 요1:14에 명백히 나타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그리스도에 의한 창조는 골1:16~18절에 나타난 그의 죽음으로부터 부활까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1:16-18) “모든 것”을 창조할 능력을 가지신 그리스도는 또한 “죽음으로부터 처음 난자”였습니다. 아마 예수님은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가르쳤는지도 모릅니다. 성경 계시록 마지막을 어떻게 끝이 납니까? 계시록 22장 20-21절을 찾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성경은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도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되어 있으며 직접적인 말씀과 모형을 통해 부활을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아담을 잠들게 하고 하와를 만드신 것도(창2:21-22) 에베소서 5장 30-32절을 보면 그리스도와 교회를 모형적으로 보여 주어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의 부활을 모형적으로 예표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드렸으나(창22:13) 죽지 않고 살아난 것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모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히브리서 11장 18-19절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을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지만 삼일만에 살아난 것도 예수님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예고해 주었는데(요4:17, 마12:39-40) 아마 이 말씀을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는 시편에도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시16:8-10)”라고 말씀해 주었고 시편 110:1(행2:34-36)에서도 말씀해 주셨는데 예수님은 시편을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가르쳐 주었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모세 오경, 시편, 선지서 어는 구절을 가지고 말씀했는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구약 성경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오실 구원자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관한 예언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22:5-7,16,18, 27:12, 34:20, 35:11, 41:9, 55:12-14, 69:3,21, 109:2,4,25, 사50:6, 53:3-12, 단7:13,26, 9:26, 슥11:12-13, 12:7-8,10,13:7, 14:10,16,21). 예수님은 생전에 그 선지자들의 예언들이 자기에게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9:22, 31, 18:31-33, 22:37). 예수님의 부활은 성경에 예언된 대로 그대로 역사 속에 이루어져고 그 부활을 믿는 자들은 예수님처럼 마지막 예수님이 재림할 때 부활합니다. 성경은 궁극적으로 이것을 믿게 하려고 기록하였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15:3,4)" 믿습니까?
3.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어떻게 마지막까지 품위 있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3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말씀을 들으니까 영안이 열려 영적인 세계를 보게 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11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4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 말씀을 들을 때 영안이 열리고 부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말씀을 들으니까 이들이 어떻게 변화가 됩니까? 3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열정이 생긴 것입니다. 부활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입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부활 신앙으로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어도 뜨겁게 교회에 다니고 열정적으로 사업하고 열정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합니까?
3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바로 즉시 실망하고 낙담하며 내려갔던 엠마오 길에서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열한 제자를 방문하여 무엇을 합니까?
34-3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그들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목격하고 부활을 확신한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실제 체험하고 내려가는 인생 도피하는 인생이 아니라 올라가는 인생 증거하는 인생으로 살았습니다. 죽음을 초월하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냉혈적 신앙이 변하여 정열적 신앙으로, 불확실한 신앙이 확실한 신앙으로, 도피적 신앙이 참여의 신앙으로, 소극적 신앙이 적극적 신앙으로 변했습니다. 새 힘과 용기를 얻어 부활이 증인이 됩니다.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고 내려가 도피하는 인생이 아니라 올라가 증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마 노년에 초라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평생 부활을 증거하며 품위 있는 삶을 살다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죽음을 이긴 부활을 믿으면 부활을 전하는 사명을 가지고 품위 있게 살다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인생을 십자가에서 그 폭력적이고 천박한 인간들 앞에서 “다 이루었다”하며 얼마나 품위 있게 마쳤습니까?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했던 베드로가 부활의 능력을 체험받고 얼마나 뜨겁게 살다 품위 있게 인생을 마감했습니까? 역사사 요세푸스가 기록한 12 제자의 순교에 의하면 베드로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주님과 같은 모습을 할 수 없다며 거꾸로 못박혀져서 순교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살았고, 안드레는 헬라에 가서 부활을 전하다가 아가야 성에서 십자가에 줄로 매달려 순교했고,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가 되었으나 헤롯 아그립바왕의 칼에 순교했으면 빌립은 소아시아 브르기아에 가서 부활을 전하다 기둥에 매달려 찢겨져 순교했다고 합니다. 바돌로메는 알메니아에 가서 부활 전하다 수 없는 매질을 당하 다음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고, 도마는 인도에 가서 부활을 전하다 현장에서 군인들이 던진 창에 맞아서 순교했답니다. 마태는 이디오피아에서 부활을 전하다 칼에 순교했고, 야고보는 군중들이 성전 꼭대기로 데리고 가서 밀어 떨쳐, 시몬은 이디오피아에서 칼날에, 다대로는 파사에서 활에 맞아, 맛디아는 이디오피아에서 군중들이 수없이 던지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합니다.
죽으면 끝이 아니라 부활이 있습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살지 못하였고,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 믿음도 헛것, 금생뿐만아니라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고전15:16-19)"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6:40)"라고 말씀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활 신앙을 확신하고 품위 있게 살다 품위 있게 죽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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