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의 회복탄력성(12) 자율적 성취 목표
사도행전20:24
오늘 주보 <섬기는 언어>에 김주환 교수의 <회복탄력성>에 나오는 중학교 1학년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소개해 놓았습니다. 워낙 재주가 많아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쓰는데다 공부도 전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수재였다고 합니다. 성격도 쾌활해서 모든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학생이었답니다. 초등학교 때 1, 2 등을 하던 그 학생의 성적은 중학교 입학 후 약간 떨어졌고, 이 때문에 부모에게 꾸지람을 들어 늘 성적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만 극단적인 선택을 했답니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행복도는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라고 말합니다. 자료를 찾아 보니까 현재 연간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사람은 약 1만 3천여 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 중에는 기독교인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인을 전체 인구의 15%로 계산하다면 기독교인 중에서도 매년 1900여 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매년 1900여명 출석하는 중대형 교회 하나가 사라지는 셈입니다. 물론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회복탄력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회복탄력성을 자기조절능력(감정조절력 + 충동통제력 + 원인분석력), 대인관계능력(소통능력 + 공감능력 + 자아확장력), 긍정성(자아낙관성 +생활만족도 + 감사하기) 등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극단적 선택은 충동통제력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충동 통제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감정적인 고통, 스트레스, 분노 또는 절망과 같은 강한 감정을 경험했을 때 자살 시도를 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마슬로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데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동기가 필요한데 그 하나는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결핍 동기’이고 다른 하나는 보다 나은 자기 모습을 위해 노력하려는 ‘성장 동기’입니다. 충동통제력은 결핍동기보다는 성장동기와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배가 고파도 참고, 졸려도 참고, 괴로워도 그냥 참을 수 있는 것은 단순한 인내력이지 충동통제력이 아니고 충동통제력은 자신의 더 나은 모습을 위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꾸준히 노력할 수 있는 성장지향적 자기조절능력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내가 선택한 일이니까 내가 생각하기에 의미있는 일이니까”라고 다른 충동을 통제해가면서 그 일에 집중하는 것은 건강한 충동통제력이지만 이러한 긍정성이나 자율성이 동반되지 않는 충동통제력은 단순한 인내심의 발휘이며 이는 점차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우리나라 학생들은 타인이 강제로 시켜야만 성취도가 높으며 자기 스스로 흥미를 느끼며 자발적으로 학습하는 능력은 최하위라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 학생들은 능력과 우수한 자질을 지녔으면서도 자율적인 학습이 강조되는 대학에 입학하면 경쟁력이 형편없이 떨어지고, 성인이 되어서도 업무 성취도나 생산성에 있어서 상당히 뒤지는 현상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한국 학생 비율은 하버드 신입생 1,600 명 중에 6%나 되고 SAT 성적이나 내신 성적도 매우 우수한 편이지만 하버드 대학에서 낙제하는 학생 중에서 한국 학생 비율은 10 명 중 9명이나 될 정도로 높은 것도 이런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율적인 성취 목표가 뚜렷해야 회복탄력성도 높다고 합니다. 성취 목표란 개인이 어떤 과업을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나 이유를 의미하는 것으로 자율적 성취 목표가 중요한 것은 그 목표가 강하면 강할수록 어떤 난관 앞에서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넘어질 때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으며 원래보다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어떤 일이 있어도 극복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데는 남이 시킨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하는 자율적 성취 목표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미국 예일 대학교에서는 1953년 '목표를 적어두었을 때 나타나는 효과'에 대한 연구를 하였답니다. 목표가 분명한 사람과 없는 사람을 조사해 보니 20년 후 인생 목표가 분명한 학생 3퍼센트의 졸업생들이 나머지 97퍼센트의 졸업생을 전부 합친 것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목표가 뚜렷한 사람일수록 역경 앞에서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성취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 연구소는 65세 이상 정년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조사 결과 3%는 최고의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었답니다. 10%는 퇴직 전과 별 차이 없는 경제생활을 영위하였고, 60%는 가까스로 버텼고, 27%는 자선단체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가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그 원인을 조사했답니다. 조사 결과 상위 3%는 젊을 때부터 확고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글로 분명하게 적어 놓은 사람들이었답니다. 10%는 확고한 목표는 있었으되 글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었으며, 60%는 목표가 수시로 바뀌었던 사람들이고, 27%는 목표 자체가 아예 없었던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확고한 목표가 인생의 차이를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건강도 뚜렷한 성취 목표가 있는 사람이, 일의 성공도 뚜렷한 성취 목표가 있는 사람이, 자기 관리도 뚜렷한 성취 목표가 있는 사람이 성공적으로 해 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성도님들에게 아침마다 보내는 열린편지에 <집착의 법칙>이라는 책을 쓴 그랜트 카돈에 대하여 소개했습니다. 그는 돈이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답니다. 고교 시절부터 약물에 빠져 인생 밑바닥까지 떨어진 마약중독자가 되었답니다. 흙수저 루저였던 젊은이였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운용자산 5조와 순자산 8,000억, 보유기업 7개, 자가용 제트기를 소유한 갑부가 되었답니다. 그는 그의 책에서 자신이 어떻게 그렇게 변하여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새롭게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는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그는 문제아였답니다. 16살의 대마초를 피우기 시작했고 19살에는 구할 수 있는 약물은 뭐든 사용했답니다. 마약을 팔뚝에 주입하는 것 말고는 다 해봤답니다. 외모도 볼품없었답니다. 23살에 마약 때문에 표준 체중에서 9kg이 덜 나갔고 얼굴은 잿빛이었답니다. 자동차 판매점에서 세일즈맨으로 그럭저럭 일하긴 했지만, 그는 그 일에서 장래성을 찾을 수 없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쓰러졌고 갑자기 기절하면서 얼굴을 심하게 부딪쳐 많은 피를 흘렸답니다.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3일 동안 입원해 머리와 얼굴을 다섯 바늘이나 꿰맸고 어머니조차 그를 알아보지 못했답니다. 그들 가장 사랑하고 믿는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랐고 자신도 그 방법을 몰랐답니다. 집에서 쓰러져 죽을 뻔했던 사건도 그를 변화시키지 못했고 ‘오늘은 절대 마약을 하지 않겠어’라고 날마다 다짐했지만 잠시 후에는 마약을 하고 있었답니다. 그 후로 2년 동안 그의 삶은 전혀 바뀌지 않았고 매일 마약을 했답니다. 그는 그의 삶을 증오했고 모두가 싫었답니다. 며칠 후 그는 가족의 친구인 어떤 사람 도움으로 재활 치료 시설에 들어갔답니다. 29일이 지난 후 자신의 보험 약정이 끝나서 치료비가 더는 나오지 않자 치료센터는 그가 떠나온 세상으로 그를 돌려보냈답니다. 치료받으면서 유익했던 단 한 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마약 없이 29일을 버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퇴원하는 길에 그를 담당한 상담사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답니다. “성공은 꿈도 꾸지 마세요. 당신은 문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당신에게는 중독 성향이 있어요. 절대 치료할 수 없는 병이지요. 당신이 마약에 다시 손대지 않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그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강한 메시지가 되었답니다. 치료센터 문을 나서면서 그는 두 번 다시 마약의 손대지 않겠다고 스스로 맹세했답니다. 그리고 상담사가 내 파멸의 원흉이 될거라고 주장한 중독 성향을 자신의 인생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에 활용하겠다고 결심했답니다.
유일한 말벗인 개를 데리고 작고 더러운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종이 한 장을 가지고 식탁 앞에 앉아 자신의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일, 성취할 목표를 종이에 적어 나가기 시작했답니다. “가족에게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고 싶었다. 자부심을 갖고 싶었다. 상담사가 한 말이 틀렸음을 반드시 증명하고 싶었다. 사회에서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등을 적었답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새로운 삶에 대해 적기 시작하자 이루고 싶은 온갖 일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답니다. 그는 계속 적었다 언젠가는 책을 쓰겠다는 열망과 괴물급 세일즈맨이 되겠다는 목표를 적었답니다. 남편과 아버지가 되겠다는 포부를 적었답니다. 그 순간 그는 왜 마약이 자신에게 문제가 되었는지를 깨달았답니다. 마약에 집착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어렸을 때부터 집착했던 목표 특히 성공에 대한 집착을 포기했기 때문이었답니다. 성공을 향한 집착을 억누른 탓에 자신의 에너지가 파괴적인 행동에 집중되었던 것이었답니다. 그날 밤 그는 성공하고 다른 사람도 돕겠다는 자신의 열망과 다시는 싸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자동차 판매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세일즈를 성공해 출발점으로 활용해야겠다고 결심했답니다. 그는 세일즈와 자동차 산업에 대한 모든 걸 하나도 빼놓지 않고 배우는데 전념했답니다. 6개월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마약에 손을 대지 않았고 결국 자동차 판매점에서 판매왕이 되었답니다. 처음으로 돈을 벌었고 번 돈을 다 저축해 자신에 대해 기분 좋은 감정을 느끼게 되었답니다. 28살이 되었을 무렵 그는 더는 마약 문제를 겪는 문제아가 아니었고 자동차 업계 세일즈맨 중 상위 1% 안에 들은 뛰어난 세일즈 전문가가 되었답니다. 그는 치료기관을 나설 때 상담사가 한 말과 정반대되는 행동을 하며 새로운 집착에 완전히 빠져들고 있었답니다. 성공이라는 목표가 그에게 새로운 마약이 되었답니다. 마침내 그는 집착 성향을 자신에게 해로운 방향이 아니라 유익한 방향으로 만드는 법을 알아냈답니다.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준 건 성공에 대한 집착이었답니다. 아이들이 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니까 방황하고 역경 앞에 쉽게 무너지게 됩니다. 회복탄력성이 약한 아이들은 대부분 자율적 성취 목표가 없습니다. 뚜렷한 성취 목표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 의욕도 강합니다. 자발적 성취 목표가 있어야 자신의 행동을 조절해 발전적인 생활을 하도록 합니다. 성취 목표는 희미한 것보다는 정확해야 합니다. 소위 잘나가는 학생의 경우는 공통적으로 뚜렷한 자율적 성취 목표가 있습니다. 성취 목표가 분명해야 어떤 난관과 역경 가운데서도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주어진 사명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성취 목표가 분명하고 선명할수록 회복탄력성이 강합니다. 회복탄력성이 강한 사람은 질병,실직,경제적 어려움,자연재해,결별,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등의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일어납니다. 역경이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어 도약합니다. 고난과 불행이 독약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보약이 되어 더 단단한 마음의 근력을 가지고 어떤 트라우마와 스트레스 속에서도, 역경으로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져도 깨어지거나 엎드려 있는 것이 아니라 튀어 오릅니다. 회복탄력성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리질리언스(Resilience)는 ‘다시 튀어 오르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레질리오(Resilio)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우리 신앙인이 회복탄력성이 강하려면 어떤 자율적 성취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1. 인생 사역에 있어서 사명으로 가지는 성취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이룸 성취 목표)
수많은 역경과 고난 가운데서도 쓰러지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나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한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오늘 읽은 말씀 24절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개척하고 3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양육하다가(31) 예루살렘과 로마 사역을 위해 떠날 때였습니다. 바울은 자신 앞에 환란이 있을 것을 알았습니다(23) 그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결박과 환난입니다. 에베소 교인들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25). 어쩌면 죽음이 점점 다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바울은 직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을 포기하지 못하게 하고 두려움으로 멈추지 못하게 한 성취 목표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평생 사명으로 붙들었던 성취 목표였습니다. 이 일을 이루는 데는 생명을 아끼지 않겠다고 합니다. 불확실한 미래, 장차 고난이 다가 온다하여도 결코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만큼은 포기하지 않고 그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회복탄력성이 약한 사람들은 이런 자율적 성취목표가 없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고 넘어지고 부서집니다. 사람은 무엇을 중심으로 사느냐에 따라 4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익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편리를 중심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쾌락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넷째는 사명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사명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익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이익이 없으면 쉽게 가정도 사업도, 일도 포기해버립니다. 편리를 목적으로 사는 사람도, 쾌락을 목적으로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견디며 선명한 성취 목표를 가지고 산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붙들고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종교개혁의 선구자 마틴 루터, <천로역정>의 작가 존번연, 청교도 혁명의 지도자 올리버 크롬웰, 스코틀랜드의 지도자 존 낙스, 아프리카 선교사 데이빗 리빙스턴, 인도 선교의 선구자 윌리엄 캐리,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 신대륙 개척자 윌리엄 펜, 중국에 뼈를 묻은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 등 그들은 수많은 역경을 만났지만 하나님이 주신 사명, 성취 목표를 가지고 어떤 경우도 넘어져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리빙스턴을 보십시오. 아프리카 원주민의 복음화와 발견되지 않은 아프리카 탐험, 악한 노예 매매를 폐지하는 일에 일평생을 바친 사람입니다. 그가 죽었을 때 영국민은 국장으로 장례를 거행하였고, 원주민들은 많은 위험과 어려움, 그리고 생명의 위혐까지 받으면서도 2,000km 운구하여 시신을 지켰다고 합니다. 그는 노동자 계급의 아들로 태어나 방적공장에서 일했으며 아버지는 차를 파는 행상을 하였습니다. 12살 소년 리빙스턴은 헌금할 돈이 없어 헌금 시간에 자신의 몸을 드리겠다고 앉았답니다. 그는 중국 의료 선교사를 꿈꾸며 방적공장에서 일하며 독학하여 글래스고 앤더슨 대학교에 들어가 신학과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극심한 고난, 질병, 굶주림, 습지 도보 횡단, 일정의 지연, 그리고 호전적인 부족들의 약탈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분명한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사역한 지 16년이 되었을 때 적대적인 야만인들에게 포위되어 죽음의 위험이 눈앞에 아른거렸을 때도, 삼십 번 가까이 열병으로 사경을 헤매일 때도, 사자에게 물어뜯겨 왼쪽 팔이 힘없이 매달려 있을 때도, 사랑하는 아내가 죽어 바오밤나무 밑에 묻고 슬펐했을 때도, 그는 사명을 붙들고 일어났습니다. 리빙스턴이 맹수의 습격을 받아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를 따르던 조수가 "선생님 돌아가실 뻔했죠?"라고 말했을 때 리빙스턴이 이렇게 답변했다고 합니다. “아니다. 사명이 있는 자는 그것이 끝나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 그는 마지막 일기에 이렇게 썼답니다.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신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실 것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분은 약속을 지키실 것이고 모든 일은 잘 될 것이다. 여기에는 의심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절대로!’ 리빙스턴은 평생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라는 말씀에 붙들여 살았습니다. 우리 성도님 삶 가운데 붙들어야 할 다양한 성취 목표가 있을 것입니다. 학업 목표, 사업 목표, 건강 목표, 경력 목표, 개인 성장 목표 등 다양한 성취 목표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들을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받아들이시면 높은 회복탄력을 가지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은 꼭 사명으로 평생 붙들어야 할 영적 성취 목표가 있습니다. 바울이 붙들었던 것처럼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이고, 제자들을 부른 이유이며, 예수님이 유언적으로 남긴 사명입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그 사명을 자기 사명으로 받아들여 일생동안 이루어야 할 자율적 성취 목표로 삼았습니다.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9:16)”라고 하며 평생 복음 전함의 사명을 붙들고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2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난 거리낌 없이 전하였습니다. 우리 집안 사람들에게 나에게 주신 평생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거리끼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증언합니까? 2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에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고귀한 일은 생명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음으로 끝나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세계가 있습니다. 지옥과 천국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사랑하는 친구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영원한 지옥에서 형벌을 받을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야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2. 인격 성숙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닮겠다는 분명한 성취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됨에 대한 성취목표)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기 전 밀레도에서 교회 장로님들에게 말을 합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어떻게 사역을 하였는가를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18). 무엇을 장로님들이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까? 1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바울이 자신의 인격 성숙에 대하여 어떤 자율적 성취 목표를 가졌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겸손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가말리엘 문하생입니다.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에 능통한 사람입니다. 얼마든지 하버드 출신이라고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고 교만할 법합니다. 삼층천을 보고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났게 하였다고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겸손했습니다. 바울은 지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감성이 풍부한 눈물의 사도였습니다. 자신의 죄를 보고 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백성들의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아타까워할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아는 사도였습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유대인의 간계에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편견 없이 성도가 유익한 것은 담대하게 회개와 믿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요즈음 보면 한 나라의 지도자들이 편가르기에 앞장을 서는데 바울은 네 편 내 편 가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아름다운 인격 4가지를 발견합니다. 겸손, 긍휼, 신앙의 지조, 편견없는 공평을 발견합니다. 회복탄력성은 일도 중요하지만 성품, 인격도 중요합니다. 겸손을 잃어 버리고 교만덩어리가 되어 끝까지 회복하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하면 안됩니다. 겸손의 회복탄력성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심장을 잃어 버리고 눈물이 마른 표독한 인생 광야를 걸어가면 안됩니다. 눈물의 회복탄력성, 긍휼이 회복탄력성, 불쌍이 여김의 회복탄력성이 있어야 합니다. 회개의 회복탄력성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회복 탄력성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도 한 때 바나바와 사역 때문에 다투었습니다. 마가가 선교지에서 연약하여 포기할 때 그와 멀어지기도 했습니다. 늙어서 함께 사역하는 자들이 떠나기도 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 중에서 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고 이중 인격이라고 돈을 좋아한다고 설교를 못한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바울은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상태에 그대로 머물지 않았습니다. 세상에는 4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신본주의 자들입니다. 둘째는 인간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인본주의 자들입니다. 셋째는 짐승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쾌락주의 자들입니다. 넷째는 물건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물질 주의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사랑 화평 자비 양성 충성 온유 절제 오래참음 등과 같은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혀야 할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가며 갈수록 성숙해졌습니다.
사도바울의 초기 사역이였던 1차, 2차 ,3차 선교 여행 때 쓰여진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 전 후서, 고린도 전 후서, 로마서 등의 6개 서신서를 통해서 사도바울은 “나는 사도 중의 가장 작은 자이다” 라는 고백합니다. 고린도전서15:9에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라고 고백합니다.
사도바울의 사역 중기라 할 수있는 1차 로마 옥중 투옥 때 쓰여진 옥중서신서들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에베소서 등을 보면 바울은 “나는 모든 성도 중에 가장 작은 자다” 라는 고백을 하게됩니다. 에베소서 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자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라고 고백합니다. 사도바울의 사역 말기인 2차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순교되기 전까지로써 디도서, 디모데전후서를 통한 목회서신을 기록했는데 그때에는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다”라고 고백합니다. 디모데전서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라고 고백했는데 바울의 인격이 가면 갈수록 성숙해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궁극적인 인격 성숙 목표는 무엇이었습니까? 고린도 전서 11:1절을 찾아 잃어 보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장 13절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인격 성숙에 대한 성취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건강한 성격과 튼튼한 인격이 스펙을 누르는 것입니다. 성품의 탁월성이 인생을 탁월하게 합니다. 새무얼 스마일즈는 그의 책 <인격론>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인격"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천재성은 항상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인격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큰 일을 한다고 해도 인격이 더러우면 누구도 그 사람을 성공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존경하지 않습니다. 인기보다 중요한 것이 인격입니다. 정원사가 정원을 가꿀 때 뚜렷한 그림을 그려 놓고 가꾸듯 우리의 인격의 표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많은 그릇이 있지만 깨끗한 그릇을 사용합니다. 더러운 그릇도 깨끗하게 만들어 하나님을 사용합니다. 인격 성숙에 대한 분명한 성취 목표가 없기 때문에 오래동안 교회에 다녀도 성품이 변하지 않고 무너지면 쉽게 잃어나지 못하고 끝까지 원수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가 평생 인격 장애로 살기 원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회복탄력성, 화평의 회복탄력성, 용서의 회복탄력성, 자비의 회복 탄력성, 충성의 회복탄력성 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인격 성숙의 성취 목표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영주씨의 <동그라미 선생님>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어느 날 주부가 된 자매가 길에서 여고 동창생을 만났답니다. 그에게 고교 담임이었던 수학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자주 꾸중하고 벌을 주어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선생님이었답니다.
그런데 친구가 "영주야 그 선생님이 담임 시절 교탁에 반 학생들 사진을 유리아래 항상 두고 있었는데 그 중 몇 학생의 얼굴에 동그라미 표가 있었는데 너와 내 얼굴에 동그라미가 있었던 것을 아느냐?"고 물었답니다. "뻔하지 너와 내가 찍혔던 것이겠지"라고 말을 했답니다.
이 분이 어느 날 집안 정리를 하다가 여고 시절 고교 잡지 한 권을 발견했답니다. 거기에는 바로 그 담임 수학 선생님이 기고한 글이 있었는데 그 글의 제목이 <동그라미 선생님>이었다고 합니다.
글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답니다. "나는 수학의 모든 기호 중에 동그라미를 가장 좋아합니다. 이 원만하고 모가 없는 둥금은 나의 학생들에게 내가 기대하는 인격의 목표입니다. 나는 나의 학생들이 공부만 잘하고 수학 문제만 잘 푸는 학생으로 교정을 떠나기를 원치 않습니다. 나는 그들이 동그라미처럼 원만한 인격의 소유자로 사회에 나아가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거기까지 글을 읽어 내려가던 그녀는 자리에 무너져 대성통곡으로 이런 결단을 고백했다고 합니다. "그랬군요 그래서 저를 꾸중하시고 저를 책망하신 선생님, 그 마음을 이제 알겠습니다. 저 이제부터라도 동그라미 인생, 동그라미 제자가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신앙인이 단지 이 땅에서 구원만 받고 끝나기를 원치 않습니다. 어떤 부모도 자식이 갓난아이로 죽을 때까지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으로 성숙하기를 원합니다.
3. 삶의 궁극적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결과에 대한 성취 목표, 궁극적 성취목표)
회복탄력성이 강한 사람은 무엇을 하든 삶의 궁극적 목표가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헤어지면서 무엇을 기억하고 합니까? 3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왜 바울이 눈물로 3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훈계한 것을 기억하라고 합니까? 29-30절에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바울이 떠나면 예수님을 따르게 하지 않고 자기를 따르게 하기 위해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을 탐욕의 대상으로 삼는 이리같은 사람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내적인 붕괴가 일어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30). 너희 중에서 자기를 좇게 하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이 나올 것을 바울은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는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주님과 주님의 말씀에 부탁하며(32). 장로들에게 조심하라는 것입니다(28) 삼가라는 말은 '무엇에 대하여 주의를 집중하라', '전력하라', '관심을 가져라',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무엇을 또 기억하라고 말씀합니까? 3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탐욕없이 주님처럼 사역하는 자신의 본받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합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세가지 삶의 유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파괴적인 삶의 유형입니다. 가는 곳마다 파괴합니다. 이단들이 들어와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을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어디에 가든 파괴만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이기적인 삶의 유형입니다. 장로 중에 일부가 자신을 쫓으라하고 자신의 말로 가르칩니다. 무엇이든 자신의 이기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바울처럼 이타적인 삶의 유형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의 유형입니다.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로 편지로 빛으로 소금으로 드러나는 삶의 모습니다. 인생의 궁극적 목표를 어디에 두겠습니까? 주는 삶에 두겠습니까? 받는 삶에 두겠습니까? 우리가 회복탄력성 있는 삶을 살려면 궁극적으로 어떤 삶의 방식을 목표로 해야 하겠습니까?
고린도 전저 10장 31절에서는 하나님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위대한 음악가 중에 어마어마한 고난을 당했지만,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붙들고 넘어지지 않고 일어나 인류에게 좋은 음악을 남겨 놓은 사람이 있습니다. 서양 음악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요한 세바스챤 바하입니다. 어릴 때 부모님을 잃었답니다. 그는 마리아와 결혼하였지만 일곱 자녀를 낳고 그가 여행을 떠난 사이에 아내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답니다. 재혼하여 11명의 아들과 9명의 딸을 두었지만, 그 중 10 명의 자녀가 어려서 죽었답니다. 그의 자녀 가운데는 정신 박약아가 있었다고 합니다. 노년에 자신도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고 말았고 뇌일혈로 쓰러져 반신불수까지 되었답니다.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것도 아니었답니다. 둘째 부인이 죽었을 때 장례 치를 형편이 못되어 장례식은 빈민구제를 위한 조치로 치러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수많은 사람의 영혼을 완전히 사로잡을 만큼 웅장하고 장엄한 찬양과 경배와 감사의 노래들, 그야말로 불후의 명작들을 만들어내었습니다. 그는 독실한 신자였다고 합니다. 그는 늘 말하기를 "모든 음악의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보내고 사람에게 즐거운 감정을 솟아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답니다. 우리 성도님들고 내 인생의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는 궁극적 성취목적을 가지고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 만민의 죄를 홀로 감당하시고 사람이 받아야 할 모든 고난을 홀로 받으시고 구원을 완성하신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태도를 본받아 그 황무지 같은 인생 속에서도 장엄하고 경건한 음악의 꽃을 피웠습니다. 그는 자신이 작곡한 칸타타나 오라토리오의 마지막 부분에 항상 S.D.G라는 글자를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의 첫번째 글자들입니다. 그리고 오르간 연주만을 위한 작품들의 첫 부분에는 I.N.J 즉, '예수 이름으로'라고 적어놓았다고 합니다. 현대 음악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바하의 가문에서는 약 200년 동안에 걸쳐 저명한 음악가 50여 명이 나왔다고 합니다. 고난과 역경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365일 내내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날씨만 계속된다면 대지는 사막으로 변해 버립니다. 구름도 끼고 바람도 불고 비도 와야 자연이 유지되듯이 고통이 있어야 행복도 진정으로 완성될 수 있습니다. 참기름은 참깨를 잘 볶아서 짓이겨야 나옵니다. 좋은 숯은 자신을 태우는 고통을 감내함으로 탄생합니다. 좋은 나무는 오랜 세월 풍파에 시달리는 고통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고난이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궁극적 목표를 가지고 고난이 화가 아니라 복이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쉽지 않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궁극적 목표를 가지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주어진 고난이라고 믿으면 기대를 가지고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1:2)”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 4:16)”
어떤 어려움과 난관과 역경이 다가온다고 해도 성취 목표가 분명하면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인생 사역에 있어서 여러 성취 목표가 있겠지만 특히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성취 목표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인격 성숙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닮겠다는 분명한 성취 목표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삶의 궁극적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분명한 성취 목표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3.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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