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의 회복탄력성(11) 신앙적 스토리텔링
사도행전27:22-26
김주환 교수의 <회복탄력성>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보니 집 앞에 주차했던 차를 누가 긁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이럴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입니다. 이럴 때 회복탄력성이 낮은 사람은 “왜 나에게만 이런 재수 없는 일이 생길까. 여기 세워둔 내가 잘못이지(개인성)”, “왜 내게는 늘 이런 재수 없는 일이 일어날까(영속성)”, “왜 나는 매사가 이렇게 운이 없을까?(보편성)”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회복탄력성이 낮은 사람 즉 비관적인 사람은 나쁜 일이 일어나면 개인성에서 나를 포함하여 누구에게나 일어난 일을 나에게만 일어난 일로 보고, 영속성에서 어쩌다 그런 일이 아니라 항상 그런 것으로 보고, 보편성에서 그것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면이 그렇다고 스토리텔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차를 긁고 그냥 가다니 양심도 없는 나쁜 사람이구만, 이런 일은 누구나 다 당하는 법이야(비개인성)”, “오늘 어쩌다 운이 나쁜 날이구나(일시성)” “주차와 관련해서는 내가 운이 나쁘구나(특수성)”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낙관적인 사람은 비개인성으로 나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 누구에나 일어난 일로 보고, 일시성으로 항상 있는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일어난 일로 보며, 특수성으로 모든 면이 다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만 그런 것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은 나쁜 일일 일어났을 때 어떻게 생각하고 말을 합니까?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똑같은 나쁜 일을 당하든 좋은 일을 당하든 긍정적으로 스토리텔링을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경쟁률이 치열한 일류 대기업 입사시험에 합격하면 회복탄력성이 낮은 부정적인 사람은 회사시험에 합격한 것이 내가 실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운이 좋아서 합격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입사 시험만 어쩌다 합격한 것이고,이 시험에 합격했다고 해서 내 인생이 전반적으로 성공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회복탄력성이 높은 긍정적인 사람은 입사 시험에 합격한 것은 내가 실력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며 나의 합격은 언제나 그렇듯이 내 성공적인 인생의 한 부분이며,회사에 합격한 것처럼 인생의 다른 모든면에서도 자신은 다 성공적일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회복탄력성이 낮은 사람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나쁜일에 대해서는 내가,언제나,모든 면이 다 그렇다는 식으로 크게 생각하고,좋은 일에 대해서는 남도,어쩌다가,이번 일만 그렇다는 식으로 그 의미를 축소해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회복탄력성이 높은사람은 이와는 정반대로 나쁜 일에 대해서는 그 의미를 축소하고 좋은 일에 대해서는 더 크게 일반화해서 받이들인답니다.
그는 시련을 행운으로 바꾸는 마음의 근력,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실패를 극복하고 날아오르는 힘을 회복탄력성이라고 말합니다. 이대로 죽느냐 아니면 다시 한번 제대로 살아보느냐의 갈림길에서 회복탄력성이 있는 사람은 모든 고통과 시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오히려 역경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이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평소에 몸에 배이도록 어떤 일을 당할 때 그 원인을 분석할 때 긍정적 스토리텔링을 하라는 것입니다. 아주 회복탄력성이 강한 바울은 어려움이 당할 때 어떻게 스토리텔링을 했겠습니까? 그는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살았고, 한 평생 질병이 떠나지 않았으며 가난하게 살면서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만났습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은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고후11:23-27)”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바울이 바다에 파선당한 이야기입니다. 바울이 지금 잡혀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압송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15절을 보십시오. 통제 불가능한 상태를 만났습니다. 인생으로 비유하면 밀리고 밀리는 인생, 주도권을 상실한 인생, 방향 감각을 노친 인생, 자포자기한 인생, 두려움과 낙심에 처한 인생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절박한 인생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17절에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15절에 나온 말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냥 쫓겨 가더니"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고 싶은 데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가는 데로 그냥 가는 삶입니다. 더 나아가 쫓겨 가는 삶입니다. 빚에 의해, 나쁜 습관에 의해, 중독에 의해, 세속적 가치관에 의해 그냥 자기 주도권을 잃어 버리고 밀려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바울 역시도 그 큰 풍랑 가운데 어쩔 수 없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오늘 읽은 말씀 2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살다 보면 우리가 이런 태풍 속으로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건강의 태풍, 경제의 태풍, 가정의 태풍, 결혼 생활의 태풍, 직장생활의 태풍, 사업의 태풍, 신앙의 태풍 등이 나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갑자기 다가올 수가 있습니다. 바울에게 자신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순식간에 태풍이 다가 왔습니니다. 이런 일을 당할 때 신앙 회복탄력성이 강한 바울은 어떻게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이런 일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하겠습니까?
바울은 나쁜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스토리텔링을 합니까? 2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고난을 당한 원인, 환란을 당한 원인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말을 듣지 안아서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이 무엇입니까? 9-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정박하고 머물다 가야지 지금 계속 항해을 하면 하물과 배, 심지어는 생명까지고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항에서 겨울동안 정박할 것을 제안한 것입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바울의 말을 듣지 않고 항해를 강행했습니다. 그 결과 태풍을 만나 19절에 보면 살기 위해 생명처럼 귀중한 배의 도구도 버렸습니다. 20절 보니까 태풍이 여러 날 계속되었습니다. 그들은 먹지를 못해 기력을 다 상실하였습니다. 아마 잠도 자지 못했을 것입니다. 최악의 상태입니다. 절망적인 상태입니다. 이때 바울이 일어나 말을 한 것입니다. 바울의 말을 들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책망하는 말보다는 잘못된 선택에 대하여 그들의 잘못을 깨닫게 해주기 위한 말입니다.
바울은 지금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년의 때입니다. 바울은 이미 지중해에 11번 이상의 항해를 한 분입니다. 바울의 항해 기록을 계산해 보면 5,600킬로미터쯤 된다고 합니다. 세 번이나 난파의 위험을 경험했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이 한 시대 사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제안은 무시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11절을 보십시오.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었습니다. 죄수 주제에 무슨 말을 하느냐는 것일 것입니다. 선장과 선주가 전문가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12절을 보십시오. 다수결주의를 따릅니다.
셋째는 미항은 과동하기에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편의시설이나 유흥시설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태풍을 통해 하나님은 그들의 잘못을 깨닫게 해주시고, 바울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드러내 줄 뿐 아니라 자연만물은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회복탄력성이 강하려면 원인분석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원인을 정확히 분석해야 무조건적으로 긍정적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실패하지 않고 일어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강한 긍정적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람빠진 공을 던지면서 그 원인을 모르고 계속 바람빠진 공을 던지면 그 공은 튀어 오르지 않습니다. 공이 튀지 않으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 공에 바람을 넣어야 합니다. 유리 공을 던지면서 계속 유리공을 던지면 깨진다고 하면 유리공을 던지면 던질수록 바닦은 깨진 유리로 쓰레기 장이 되고 맙니다. 튀기를 원하면 유리공을 바꾸어야 합니다.
백부장은 바울의 말을 듣지 않고 선장과 대중의 말을 듣고 계속 항해합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13절을 보십시오. 잠깐은 그들의 의견이 맞는 것같았습니다(13). 온화한 남풍이 불기 시작하여 항해하기에는 좋은 날씨였습니다. 이때 아마 바울을 비난했을 것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이" "죄수 주제에 정치 차려" "기도하면 다야" "세상 물정 모르는 늙은이가" "뭐 예수가 밥을 먹여 주냐?" “무슨 하나님이 통치해, 우리의 경험, 다수결이, 편리함이 중요하지” 별소리를 다 했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 때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창피를 당하고 자신들의 뜻을 이룬 줄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뜻이 얼마나 갑니까? 며칠이나 갑니까? 얼마 못 가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불어왔습니다. 하나님은 태풍을 통해 그들의 잘못된 선택을 깨닫게 해 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4:12)"라고 말씀합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섭리하신다는 것을 알려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돌아가신 분이 아니라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침묵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실제 삶에 개입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스토리텔링에 있어 원인 분석력은 중요합니다. <회복탄력성>이라는 책의 저자인 김주환 교수에 따르면 나쁜 일이 일어날 때 비관적인 사람은 원인을 개인성, 영속성, 보편성에 두고, 낙관적인 사람은 원인을 비개인성, 일시성, 특수성에 둔다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비관적인 사람은 원인을 비개인성, 일시성, 특수성에 두고 낙관적인 사람은 개인성, 영속성, 보편성에 둔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사건에 대해 비개인적이고, 일시적이고, 특수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고 좋은 일에 대해서는 개인적이고,영속적이고,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긍적적 습관을 가져야 회복탄력성은 놀랍게 향상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받아들 일 수 있는 이론이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11:36)”라는 사실을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는 믿지 않고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면 우연히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불행한 일이 우연히 나에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억울합니다. 왜 나만 그러느냐고 회복탄력성이 나오지 않습니다. 불행한 일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하면 자책하며 절망감에 빠집니다. 불행한 일이 타인에게 있다고 하며 원망하며 미움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일이 역사와 개인에게 일어나도 하나님의 섭리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로 역사를 바라볼 때 나쁜 일이 일어나도 그것으로 회복탄력성을 잃지 않고 하나님께 나와 회개하고 방향을 바꿈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간음하고 살인 교사죄를 저질렀습니다. 바람피워 난 아이가 병들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와서 회개할 것을 말씀합니다. 정확하게 자신이 당한 역경의 원인을 깨닫고 신앙적 스토리텔링으로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일어납니다. 그러나 사울은 달랐습니다. 그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전쟁통에 급하다고 제사장이 드려야할 제사를 자신이 드립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그의 잘못을 지적하지만 그는 회개하지 않고 회복탄력성을 잃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결국 자신과 가족이 망해 버렸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건 중에 가나안 땅을 앞에 놓고 부정적 스토리텔링을 하다 망한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고 부정적, 소극적, 비관적 스토리텔링을 하다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나쁜 일이 생길 때도, 좋은 일이 생길 때도 하나님의 섭리적 관점에서 과거를 바라보고 나쁜 일이 있을 때나 좋은 일이 있을 때나 하나님이 원하는 신앙적 스토리텔링으로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2. 현재 문제를 해결책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신앙적 스토리텔링을 해야 합니다.
그들이 어려움을 당한 원인을 정확히 알려 준 바울은 지금의 고난 앞에서 해결책을 어떻게 제시하고 있습니까?
2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태풍을 보지 말고 바울을 통해 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하시길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단지 배만 손실을 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인생 전체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회복탄력성>이라는 책에 의하면 회복탄력성이 약한 사람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면 누구아게나 일어난 일로 바라보지 않고 부정적인 일은 나에게만 일어난 일이라고(개인성) 말하고 좋은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난 일이라고 말을 합니다(비개인성). 회복탄력성이 약한 사람은 나쁜 일이 일어나면 이 병으로 나는 죽을 것이라고(영속성)이라고 말하고 좋은 일이 있으면 이때만 좋지 또 나쁜 일이 생길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일시성). 좋은 일이 일어나면 반대로 이야기합니다. 어쩌다 100점 맞았지 또 50점 맞을 거야라는 식입니다. 회복탄력성이 낮은 사람은 나쁜 일이 일어나면 주식에 실패했으니까(특수성) 사업에도 실패할 것이라고(보편성) 말합니다. 그러나 회복탄력성이 강한 사람은 주식에 실패했지만(특수성) 사업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일어납니다(보편성). 바울은 너희가 잃어 버리는 것은 배뿐이지 생명은 산다는 것입니다. 잃은 것 보면서 스토리텔링하지 말고 남은 것 가지고 스토리텔링하라는 것입니다.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2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하나님이 말씀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상태나, 조건, 주변 여건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상대적이고 쉽게 변합니다. 영원토록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사는 바울 덕분에 살아나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녀들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 믿고 말씀대로 사는 우리 덕분에 가정이 살고, 우리 덕분에 교회가 부흥되고, 우리 덕분에 기업이 성장하고, 우리 덕분에 나라가 잘 될 것이라는 말을 자신있게 해야 합니다.
무슨 말씀을 해 주었습니까? 2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바울이 죽지 않고 가이사 앞에 서야하겠다고 말씀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주셨다(카리조 마이)’는 말은 "아무 이유없이 허락하다. 인도하다. 호의를 베풀다" 등과 같은 말로 번역됩니다. 그들이 비록 잘못된 선택을 하며 화를 당하고 있지만 결국 그와 함께한 275명도 안전(37)게 생명을 건짐받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사명의 사람 바울 덕분에 죽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신앙적인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습니까? 지금 상황이 태풍의 한 가운데 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언제 망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신앙적인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2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안심하라고 합니다. 22절에도 안심하라고 말하는데 22절은 지금 이루어진 일에 대하여 안심하라는 말이고 25절은 미래에 이루어질 일에 대하여 안심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수없는 역경을 만났지만 이 믿음으로 결국 승리하는 삶, 사명을 이루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4:8-9)”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이렇게 고난의 현장에서 말씀에 근거한 신앙적 스토리텔링으로 강한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현재 문제를 해결책을 말씀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신앙적 스토리텔링을 해야 합니다. 골리앗을 만나 이스라엘 왕과 모든 군인들이 두려워하고 있을 때 다윗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17:45)” 베드로가 밤새워 고기를 잡지 못했을 때 예수님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라고 말씀할 때 베드로가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말씀을 믿는 믿음에 근거하여 신앙적 스토리텔링을 합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습니다. 베드로 배뿐 아니라 두 배에 가득 채웠습니다(눅 5:5~7). 야고보서 1:22절을 보면,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3절을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신앙인의 신앙적인 스토리텔링은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말씀에 근거한 신앙적인 스토리텔링이 실제적으로 회복탄력성을 제공합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할 때에, 병에서 고침을 받게 되고, 자신의 삶이 변화하게 되고, 놀라운 기적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미래에 대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고 신앙적 스토리텔링을 하여야 합니다.
그들은 안심시킨 바울은 앞으로 이루어질 미래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2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안심하라고 한 그는 미래에 대하여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고 확신을 시켜 줍니다. 폭풍으로 파선되어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한 섬에 걸릴 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27절을 보십시오. 14일째 되는 날까지입니다. 하루가 지나도 이리 쫓기고 저리 쫓깁니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바울을 보면서 너 허풍 떨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라고 말하면 믿지 않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시37:25)”라고 말했는데 왜 믿는 사람의 가정이 어려워지냐는 것입니다. “아니 천국이 있다며, 아니 좋아진다며, 아니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며, 아니 하나님이 믿으면 생활 형편이 펴진다며, 개뿔 좋아지는 것이 뭐야”라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어떻게 됩니까? 14일쯤 지나니까 육지에 가까워지는 징조가 보입니다. 그 말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사공들이 도망하려고 합니다. 그때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말합니다. 31-32절을 보십시오. 백부장과 군인들이 바울의 말을 듣습니다. 바울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 때문에 모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33-35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주도권을 가지고 그들의 삶을 회복시켜 줍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 이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이제는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한 바울 덕분에 소아시아와 유럽이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고 산 이레니우스가 덕분에 프랑스가 복음화되었고 영국에서 건너온 보니페이스 한 사람 덕분에 독일이 기독교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고 산 패트릭이라는 16살 난 포로 소년 한 사람이 덕분에 아일랜드가 복음화되었으며, 토마스 선교사가 덕분에, 언더우드 덕분에 한국 땅에 복음의 씨가 뿌려져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아도니람 저드슨 덕분에 미얀마가, 허드슨 테일러 덕분에 중국이 변화되었습니다. A.D 313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화 했는데 그것은 그 어머니 헬레나의 신앙적 확신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그 어머니는 자기 집에서 일하는 예수님을 만난 이름 모를 한 하녀 덕분에 예수님을 믿었고,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 독실한 신앙인이 되었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한 이름 모를 하인도 예수님을 만나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사람의 약속은 쉽게 변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신명기 7:9)”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1:8)” “빌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6-7” 이러한 말씀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하나님이 약속을 확신하고 신앙적 스토리텔링을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1:20)” 믿습니까?
4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 이런 저런 과정은 있었지만 하나님의 약속대로 마침내 육지에 상륙하여 구조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폭풍 가운데 확실하게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붙잡혀 심문을 받았습니다(행21:27-40). 공회에서 심문(행23:1-10)을 받았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바울에게 하나님은 로마에 이르러 가이사 앞에 서겠다고 약속해(행23:11,행27:24) 주었고 40명의 손에서 건져 주었습니다(행23:12-35). 그를 죽이려고 길에서 매복한 자들(행25:1-5)의 위험에서 건져 주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28장 14-1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결국 로마에 도착합니다. 누가 궁극적으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저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로마에 도착하게 하는 것입니다. 선박도 숙식도 다 제공받고 보호도 받고 인정도 받으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인생이란 내가 가고자 하는 길로 가는 것같지만 주어진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냐 사탄의 종노릇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의 삶은 결국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가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같지만 결국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린도전서 15:10)
사람들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나이들면 나이들수록, 병이들면 병이 들수록 부정적인 스토리텔링을 합니다. 그러나 “나는 부족하다, 나는 안된다. 나는 늙었다. 나는 병들었다, 나는 다 끝났다” 등과 같은 부정적인 스토리텔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로 시대마다 약속을 해주시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이 쓰십니다.
노아는 술에 취해 실수한 사람입니다. 야곱은 사기꾼이었습니다. 모세는 말을 더듬었고, 살인자였습니다. 삼손은 바람을 피우고 살인자였습다. 나오미는 과부였고, 두 아들마저 죽었습니다. 다윗은 너무 어렸고, 맞는 갑옷조차 없었습니다. 솔로몬은 여성 관계가 복잡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우울증을 앓기도 했고, 자살 충동도 느꼈습니다. 호세아의 아내는 창녀였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성미가 급했습니다. 마르다는 걱정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죽을까봐 두려워 거짓말을 했습니다. 기드온과 도마는 의심이 많았습니다. 디모데는 위장병이 있었습니다. 마가 요한은 힘들다고 도망간 사람입니다. 모세와 베드로는 성미가 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시대마다 그들에게 사명을 주고 약속해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그들을 통해 이루게 했습니다. 인간은 누구 하나 완벽하고 온전한 사람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부족하고, 모순 많고, 자주 실패하고, 힘겨운 일 많고, 연약하지만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우리는 인도하시는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버리지 않고 우리를 붙들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어떤 역경 속에서도 신앙적 스토리텔링으로 신앙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바울은 자신의 힘으로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1:29”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의 회복탄력성을 높게하는 신앙적 스토리텔링은 하나님의 섭리와 말씀에 대한 믿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으로 하는 것입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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