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의 회복탄력성(10) 자신감 회복
사사기7:9-14
회복탄력성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제가 2012년에 “신앙인의 회복탄력성”에 대하여 시리즈로 아홉 차례 설교했습니다. 모든 위인은 회복탄력성 강한 사람이고 어떤 분야에서든지 성공한 사람은 회복탄력성이 강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회복탄력성>이라는 책을 쓴 김주환 교수는 위인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역경 덕분에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 마리의 개구리도 앞으로 뛰려면 반드시 뒤로 움츠려야만 하는 법인데 만약 모든 일이 술술 풀려 인생에 그 어떤 시련도 없었더라면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칭송받는 링컨도 보잘것없는 시골 변호사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고, 이순신 장군은 이름 없는 말단 장군으로 전전하다가 정년퇴임 당하고 말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최초 무과 급제할 때는 29세였다고 합니다. 건강 문제, 가족의 문제, 원균의 시기와 질투가 있었지만, 역경 덕분에 오히려 더 강해져 12척을 가지고 수많은 왜군을 물리치고 일어나 승리했습니다. 미국인에게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존경받는 링컨은 어릴 때 집을 잃고 길거리로 쫓겨나기도 했고, 혼자 힘으로 가족을 먹여 살려야만 했으며,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사업에 실패했습니다. 직장을 잃고, 법률 학교에 입학하려 했으나 실패했으며, 친구에게 빌린 돈으로 사업을 시작했으나 연말에 완전히 파산했으며 이 때 진 빚을 갚기 위해 17년 동안 일해야 했습니다. 약혼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큰 상처를 받아야 만했고, 극도의 신경쇠약증에 걸려 병원에 6개월간 입원해야만 하기도 했습니다. 주 의회, 하원의원 선거, 상원의원 선거, 부통령 후보 지명 선거에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그러나 1861년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수업이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지고 그 모든 것을 이기도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미국의 분열을 막았고 노예 해방을 시켰습니다.
회복탄력성이란 이런 것입니다. 크고 작은 역경과 어려움과 시련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마음 근력을 회복탄력성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세 개의 공이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어떤 공은 바람이 팽팽하게 들어 있습니다. 어떤 공은 바람이 빠져 있습니다. 어떤 공은 유리 공입니다. 이것을 교회 바닥에 던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회 바닥은 똑같습니다. 그러나 그 공들을 던지면 바람이 팽팽한 공은 튀어 오를 것이고 바람 없은 공은 바닥에 주어 앉을 것입니다. 그리고 유리공은 깨어져 산산이 부서질 것입니다. 세게 던지면 던질수록 바람이 팽팽한 공은 높이 튀어 오를 것이고 유리공은 사정없이 깨어져 버릴 것입니다. 태풍을 경험하지 않고 사는 인간이 없는 것처럼 인간은 살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어려움과 역경, 고난을 당하면서 삽니다. 건강을 잃고 병들기도 하고, 사업하다 부도나기도 하며, 시험에 떨어지기도 하고, 취업에 어려움도 당하기도 합니다. 장애를 만나기도 합니다. 신앙 생활하는 사람도 신앙생활 잘하다가 갖가지 역경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어떻게 역경에 반응하느냐에 따라 주저앉는 사람도 있고, 깨어지는 사람도 있으며 튀어 오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떻게 반응하는 스타일입니까? 우리 하나님은 역경을 딛고 튀어 오르기를 원하십니다.
1955년부터 에미 워너와 루쓰 스미쓰 교수팀은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하기 그지없는 하와이의 한 섬인 카우아이에서 그해에 태어난 아이 833명 30년 넘게 추적 조사를 했답니다. 그들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대부분 가족 구성원이 가정불화, 이혼, 알코올 중독, 정신질환 등으로 시달렸답니다. 3분의 2 가량의 아이들이 이러한 열악한 환경의 희생자가 되어 일찍부터 학습 부진에 시달렸으며, 약물중독에 빠지거나 정신질환을 앓았고, 범죄에 빠지거나 사회 부적응자가 되었답니다. 18세가 되었을 때는 많은 아이들이 전과자나 미혼모가 되었답니다.
심리학자 에미 워너 교수는 그중에서도 특히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201명을 추려 성장 과정을 분석했답니다. 그런데 '고위험군'이라고 불린 아이들 중 3분의 1인 72명이 밝고 건강한 청년으로 문제없이 성장했다고 합니다. 마이클은 미혼모 아래서 미숙아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고등학생 아버지와 중학생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답니다. 케이트는 어머니 정신질환자 어머니가 낳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망가질 수밖에 없는 고위험 환경에서 태어나 성장했는데 3분의 1이 멀쩡한 것입니다. 그래서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가를 조사해 보니까 이들에게는 공통된 속성이 있었는데 바로 역경을 이겨내는 힘이 있었다고 합니다. 워너 교수는 그것을 '회복탄력성'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회복탄력성이 열악한 가정환경과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정신질환의 요인 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성장하여 성실하고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역경 속에서 잘 자란 아이들에게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답니다.
첫째 유아시절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경험이 있었답니다. 사랑을 받고 자라 자아 가치감, 자기 존중감, 자신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가치감, 자기 존중감, 자신감이 이 낮아지면 마음 근력도 약해지는데 어릴 때부터 자존감이 잘 형성되고 자신감이 있어 마음 근력이 튼튼해졌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청소년기 이후 소통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조절력과 대인관계력이 회복 탄력성을 갖는 것의 중심이 되는데 어릴 때 소통 능력이 잘 개발되어 마음 근력이 튼튼해졌다는 것입니다. 그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심리학자 카렌 레이비치와 앤드류 샤테 등 많은 학자들은 7가지 회복탄력성 요인을 밝혀냈으며 회복탄력성 지수 (RQ: Resilience Quotient)도 개발했습니다. 이들이 제시한 회복탄력성 요인들로는 ①감정 통제력 ②충동통제력 ③낙관성 ④원인분석력 ⑤공감능력 ⑥자기 효능감 ⑦도전성 등입니다. 세 가지 요소로 정리하면 자기조절능력(감정조절력 + 충동통제력 + 원인분석력), 대인관계능력(소통능력 + 공감능력 + 자아확장력), 긍정성(자아낙관성 +생활만족도 + 감사하기)이라고 말합니다.
오늘은 자신감을 중심으로 신앙인의 회복탄력성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의 특징을 하나만 말하라고 하면 자신감이라고 합니다. 하버드대에서는 비범함과 평범함의 차이가 학업 성과가 아닌 그 사람의 자신감을 말한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기업을 다니는 사람들의 특징도 마찬가지로 자신감이 있다고 합니다. 이 자신감은 성공적인 삶의 필수요소라고 합니다. 새뮤얼 존슨은 "자신감은 위대한 과업을 달성하기 위한 첫 번째 요건이다."라고 했고, 데일 카네기는 "자신이 특별한 인재라는 자신감만큼 유익하고 유일한 것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자신감>이라는 책을 쓴 샤를 페팽은 "자신감이 세상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마인드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역경과 실패, 고난과 좌절의 현장에서 평생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 모든 고난과 역경이 제외되는 것이 아닙니다. 도약하려면 실패해야 하고, 내려가야 올라가며, 비가 와야 땅이 굳고, 앓고 나야 건강해지는 것처럼 역경과 시련과 어려움이 없으면 인간은 나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공의 세기가 크면 더 클수록 더 높이 올라가는데 자신감이 바닦에 있어야 튀어 오른다는 것입니다. 파도타기 하는 사람은 큰 파도를 오기를 기다렸다가 큰 파도를 타고 멋지게 비상하는 데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는 입니다.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자신감에 따라 팽팽한 공같은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바람 빠진 사람과 같은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유리공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역경은 누구에게나 다가옵니다. 뜻대로 안되는 일이, 계획하는 대로 안 되는 일이 누구에게나 다가옵니다. 무엇이든지 뜻대로 되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의도와 결과 간의 괴리는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때 강한 자신감에 기반한 강한 회복탄력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자신감을 기반으로 하여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떨어졌을 때 튀어 오르기를 원하겠습니까?
1. 하나님은 자신감의 근거를 나에게 두지 말고 하나님께 두고 회복 탄력성을 가지길 원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자신감은 자기 인식이 높으면, 지기 효능감이 높으면, 긍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가지면 자신감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신감이 어디에 근거를 두느냐에 따라 항구적일수도 있도 일시적일 수도 있으며 상황에 따라 심하게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의 자신감은 자신에 근거를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근거를 두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기드온을 보십시오.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의 모든 사람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습니다. 그 숫자가 135,000 명입니다(삿8:10). 12절에 보니 사람들이 메뚜기처럼 중다하고 약대의 수가 해변의 모래같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에 나가 싸울 기드온 용사는 얼마나 됩니까? 8절을 보십시오. 겨우 300명입니다. 135,000 대 300입니다(8:10). 고대의 전쟁의 수의 전쟁입니다. 일단 숫자가 많아야 합니다. 특히 방어가 아니라 공격을 하여 승리하려면 특별한 전술이 없는 한 적어도 적군보다 3배는 있어야 합니다. 이루어야 할 과업은 큰데 능력이 없습니다. 100억대 사업을 해야하는 데 손에 든 돈은 1억 밖에 없습니다. 다윗 앞에 장대한 골리앗이 나타났는데 가지고 있는 것은 물맷돌 두 개입니다. 모세에게 바로가 있는데 가진 것은 지팡이 밖에 없습니다. 배고픈 장정만 5천명인 데 제자들의 손에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밖에 없습니다. 히스기야기 병들었는데 이사야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누구나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자신감은 주어진 조건에 따라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때 자신의 조건을 바라보면 자심감은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시도도 못합니다. 1억으로 어떻게 백억 사업을 사느냐는 것입니다. 물맷돌 두 개로 어떻게 골리앗을 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어떻게 5천 명을 먹일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자신감을 잃고 시도도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조건을 보고 자신감을 잃어버린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 밤에 나타나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오늘 본문 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너의 조건이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적군을 치는 것은 기드온 손에 붙였다는 것입니다. 자신감의 근거가 기드온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미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약속해 주었습니까? 사사기 6장 16절을 찾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믿습니까? 기드온을 통해서 하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여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디에서 자신감을 얻었습니까? 자신의 물맷돌이 아닙니다. 창과 칼과 방패가 아닙니다. 다윗이 고백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17:45)” 5천명이 배불리 먹고 12바구니가 남은 것은 제자들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질병에서 치유된 것은 히스기야의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역량이나 자신의 지혜나 자신의 힘이나 자신의 능력에 기반을 두고 자신감은 쉽게 무너집니다. 우리 신앙인의 자신감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사명을 맡겨 주시고 그 일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께 근거한 자신감을 가져야 어떤 역경 가운데서도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깨지지 않고 주저 앉지 않고 튀어 오를 수가 있습니다. 자신의 학벌, 자신의 인맥, 자신의 능력, 자신의 지식, 자신의 건강, 자신의 돈, 자신의 가문 등과 같이 자기 조건에 근거한 조건적 자신감은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오면 회복탄력성을 잃어버립니다. 우리의 자신감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근거를 두어야 합니다. 신앙인의 자신감은 자신의 능력보다 하나님의 인도와 도우심에 대한 믿음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도망가는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28:15)”라고 자신감을 주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10)”라고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가나안 정복을 앞에 두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여호수아 1:5)"라고 자신감을 심어 주십니다. 역경 앞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사명을 성취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근거를 둔 자신감으로 깨지지 말고 무너지지 말고 튀어 오르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제자화 사역을 맡길 때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라고 자신감을 심어 주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며 일평생 맡겨준 일을 사명으로 감당한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사람들이 자신감을 잃는 회복탄력성을 갖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아예 시작을 하지 않습니다. 소극적이게 됩니다. 하나님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감을 잃은 기드온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2. 하나님은 이성에 근거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신감으로 회복탄력성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기드온을 보십시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적들과 싸워야 하는데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기질적으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포도주 틀에서 타작을 하고 두려움 때문에 저녁에 신상을 부수고 두려움 때문에 계속 하나님께 징표를 요구한 사람입니다. 어릴 때부터 외적의 지배를 받고 살았기 때문에 무조건적 두려움을 가지고 사는 체질처럼 보입니다. 숫자적으로 게임이 되지 않는 싸움에서 기드온은 심각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을 것입니다. 두려움은 자신감을 마비시켜 버립니다. 어떤 것도 시작하지 못하게 해 버립니다. 재능을 잠들게 만들어 버립니다. 두려움은 마음을 무기력하게 하는 바이러스와 같습니다. 나폴레옹 힐은 "공포는 모든 논리를 무력하게 하고, 모든 상상을 파괴하며, 모든 자신감을 꺾어 버리고, 모든 열성을 지워버리며, 모든 의욕을 없애 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을 나태와 비참과 불행에 빠뜨리고 마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워즈워드는 "두려움은 수백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 당신의 마음을 괴롭힌다" 라고 했습니다. 두려움은 사람을 병들게 하는 독이 들어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이성을 가지고 계산해 보니까 답이 없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적으로 당연한 것입니다. 누구나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하나님 손에 잡혀 쓰임받은 사람들은 다릅니다. 두려워하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하나님은 우리가 역경과 고난을 만났을 때 두려워하며 주저 앉고 깨어지기를 원하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6장 2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시리라” 이 말씀이 오늘 우리 성도님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아멘으로 받으시길 바랍니다. “질병에서 죽지 않는다. 사업에서 죽지 않는다. 직장에서 죽지 않는다. 고난에서, 역경에서, 죽지 않는다.”라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두려워하는 하나님께서 정 그렇게 두려움이 있으면 내가 승리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 줄터이니까 부하를 데리고 진으로 들어가 보라는 것입니다. 정탐을 하는 것은 장군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하를 시키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드온 성격상 직접 목격해야만 그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부하들보다 지휘자인 기드온 자신이 자신감이 있어야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장군 기드온에게 직접 부하를 데리고 정탐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12절 보십시오. 수많은 군사들과 낙타들이 있습니다. 더 두려움이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진에 이르니까 어떤 사람이 꿈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덮치니까 장막이 무너졌다는 꿈입니다. 그러자 한 친구가 확실하게 해몽까지 해 줍니다. 이는 기드온의 칼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디안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말씀을 그들의 입으로 확인해 줍니다. 인간이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런 방법으로 기드온의 두려움을 제거시키고 자신감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고 믿고 자신감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기드온 마음 속에 얼마나 자신감이 생겼겠습니까? 하나님이 확실하게 기드온에게 자신감을 주신 것입니다. 이제 자신감 있게 말합니다. 15절 보십시오. 진중에 돌아와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얼마나 자신감있는 장군의 외침입니까? 벌벌 떨고 있는 300명의 군인들에게 외치는 자신감 있는 지휘관의 외침입니다.
우리는 절망적 상황이 다가올 때, 위기를 만났을 때, 역경이 다가올 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확실하게 믿는 자심감으로 무너지거나 깨지는 것이 아니라 역경을 딛고 튀어 올라야 합니다. 질병의 두려움, 사고의 두려움, 실패의 두려움, 죽음의 두려움, 실직의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의 포로가 되면 인생을 무너지고 깨어집니다. 이럴 때 말씀을 붙들고 자신감을 가지고 다시 한번 튀어 올라야 합니다. 40년 광야 생활에서 무너지고 무너지고 계속 무너졌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는 마지막 유언적 설교를 하면서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신31:8)"라고 말씀합니다. 미래는 우리의 계산대로 우리의 예측대로 잘 되어지지 않습니다. 미래의 세계는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저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은혜로 우리게게 믿음을 선물로 주었습니다(엡2:8). 그러면 역경을 만났을 때 그 믿음을 사용해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11:1)”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역경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신문에서 4대 36명이 한 교회서 신앙생활하는 유기순 권사님이 이야기가 나와 읽어 보았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답니다. 믿지 않는 가정에 시집을 가서 농사지으며 6남매를 낳아 키웠답니다. 남편은 청각 장애인이었답니다. 기울어 가는 가정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자손이 잘될 것이라는 희망이 없는 가문입니다. 남편이 술에 취하면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온 밤을 하얗게 세우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답니다. 남편이 권사님 나이 49살에 어린 자식들을 남겨두고 먼저 세상을 떠났답니다. 가난 가운데 홀로된 여인으로 6남매를 기르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회복할 수 없는 역경을 만난 것입니다. 그러나 새벽마다 1시간이 되는 교회에 나가 기도하며 믿음으로 여섯 자식을 길렀다고 합니다. 미래는 암담하게 보였지만 말씀을 믿고 자신감을 가지고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어려운 살림이지만 교회 재정위원장을 맡아 헌신하며 봉사하였답니다. 이런 어머니의 믿음과 기도로 6남매 잘 자라 결혼하여 잘되어 온 가족이 믿음의 가문을 이루어 한 교회를 섬긴다고 합니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가 한 교회에서 직분을 받아 장로 4명, 권사 4명, 안수집사 2명, 집사 2명, 손자와 증손자까지 합치면 36명이 한 교회에서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유 권사님의 기도는 늘 변함이 없이 "자식과 자손들 예수 잘 믿게 해주세요"라고 합니다. 동네 사람들이 이렇게 복받는 권사님의 가정을 보며 "예수 믿으려면 저 집안처럼 믿어라. 유 권사와 그 자녀들처럼 믿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기자가 권사님에게 "자식 중에 누가 가장 좋으냐?"고 물으니까 "예수 잘 믿는 자식이 제일이죠."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배우지 못하고 연약한 여인이지만 믿음 하나로 참으로 행복한 가정, 신앙의 명문 가문을 만드는 주춧돌이 된 것입니다. 말씀을 믿는 믿음은 힘이 없고, 별거 아닌 것같지만 대단한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 예수님 말씀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어떤 역경의 현장에서도 말씀의 능력을 믿고 자신감으로 무너지거나 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역경을 딛고 튀어 오르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이 자신감을 잃고 회복탄력성을 가지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능력의 부족입니다. 어느 대학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실력이 부족합니다. 자신감을 잃습니다. 기업을 하려고 하는데 돈이 없습니다. 취업을 하려고 하는데 외모적인 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자신감을 잃습니다. 나이가 들어 체력을 잃습니다. 그러면 매사 모든 것에 자신감을 잃어버립니다. 어떻게 힘의 부족에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3. 하나님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힘에 근거한 자신감으로 회복탄력성을 가지 원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기드온을 보십시오. 절대적으로 힘이 부족합니다.
135,000 대 300입니다. 잘 훈련된 병사들도 아닙니다. 7년 동안 핍박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특수 부대도 아닙니다. 절대적으로 힘이 부족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 져서 능히 내려가서 그 진을 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약한 기드온일지라도 하나님이 붙들어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적들을 다른 위대한 사람의 손이 아니라 겁 많고 연약한 너의 손에 붙여 주겠다는 말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들을 기드온의 손에 붙이셨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약한 것처럼 만듭니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 전원을 군인으로 동원하여 싸우게 만드시지 왜 300명으로 싸우게 만드느냐는 것입니다.
<회복 탄력성>이라는 책을 쓴 김주환 교수는 역경과 시련과 어려움이 없으면 인간은 나약해진다는 것입니다. 역경과 시련은 누구에게나 있고 사람마다 총량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김주환 교수에 의하면 사업이나 질병이나 진학이나 취업이나 튀어 오르는 사람은 1/3 정도가 되고 망하는 사람이 2/3가 된다고 합니다. 1:2의 법칙을 말합니다. 역경이 세고 회복탄력성이 크면 더 크게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계속 올라가는 법이 없고 엔자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내려가야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냥 올라가는 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세가지로 듭니다. 첫째 떨어져 본 사람만이 어디로 올라가야 하는지 그 방향을 알고, 둘째, 추락해 본 사람만이 다시 튀어 올라가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며, 셋째, 바닥을 쳐본 사람만이 더욱 높게 날아 오를 힘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뛰어난 사람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역경 덕분에 위대한 업적을 이루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링컨이나 이순신이 역경이 있었기 때문에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책에서 동화 작가 안데르센이야기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아주 못생겼다는 말을 들었답니다. 매우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못했답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하곤 했답니다. 그런데 그는 훗날 동화 작가로 명성을 얻게 되었을 때 이렇게 말했답니다. “생각해보니 나의 역경은 정말 축복이었습니다. 가난했기에 성냥팔이 소녀를 쓸 수 있었고,못생겼다고 놀림을 받았기에 미운 오리새끼를 쓸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역경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성공과 도약의 발판이자 원동력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에이미 멀린스라는 사람을 이야기 합니다. 선천적으로 날 때부터 두 다리 무릎 아래 종아리뼈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의족을 끼고 달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피나는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장애인 올림픽의 세계 신기록으로 석권합니다. 광고 모델을 합니다. 플라스틱 다리를 끼우고 패션 모델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모델로써 엄청난 장점이 있습니다. 나는 내 다리가 8개가 되어 옷에다 내 다리를 맞는 다리 갖다 끼워 넣을 수 있어요. 그리고 키도 커졌다 작아졌다 할 수있어 이건 모델로써 엄청난 장점이랍니다.” 그녀는 테드 강연뿐만 아니라 어린이를 위해서 강의를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장애아 앞에서 자신의 다리를 보여주면 자신은 무능력자가 아니라 능력자라고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다리가 없었기 때문에 운동선수로, 모델로 성공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300명만 남기게 했습니까? 두가지 이유입니다. 첫째는 자긍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2절에 보세요. 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능력을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순종하게 하기 이해서입니다(3,6)
기드온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기드온이 횃불과 나팔을 빈 항아리를 들고 전투에 참여합니다. 이상한 전쟁입니다. 칼과 창을 든 것이 아닙니다. 밤에 보초를 바꿀 때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부수고 횃불을 밝히며 소리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일제히 소리를 지릅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22절을 보십시오. 놀란 그들을 자기들끼리 칼로 치며 자멸해 버렸습니다. 숫적으로 불리한 기드온을 승리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신비한 방법이었습니다. 만약 정상적으로 싸운다면 한 사람이 460명을 물리쳐야 합니다.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들어 사용하시면 나의 능력이 문제가 아닙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신감은 내 힘이 아니라 주님의 힘에 근거한 것입니다. 우리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실수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쉽게 무너집니다. 우리는 감당하기 쉽지 않습니다. 조그마한 소문에도 흔들리고 조그마한 상처에도 무너지는 것이 우리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진흙밭에 버려진 돌이라도 위대한 예술가가 다듬으면 아름다운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면 지팡이로도 홍해를 가르고 조약돌로도 골리앗을 넘어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른손 불능자 왼손잡이 에훗도 쓰셨습니다. 당시 물건 처럼 취급당하는 드보라도 사용하셨습니다. 사기꾼 야곱, 40년 간 처가살이한 모세, 아내를 내어 놓은 아브라함, 배반자 베드로, 살인 방조자 바울도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열등아였던 발명왕 에디슨 배우기를 포기한 젊은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전쟁와 평화'의 저자인 톨스토이를 하나님은 사용하였습니다. "얼간이"로 낙인 찍혀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당했던 제임스 와트를 사용하여 증기기관을 발명케 하였고 안전히 실명한 존 밀턴을 사용하여 '실낙원'이란 불후의 명작을 남기게 하였습니다. 우리를 사용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능력을 보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교회가 적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루살렘 교회의 역사는 120명으로 일어났습니다. 유럽을 복음화시킨 안디옥 교회의 교인은 성경에 보면 10명 되지 않습니다. 그들을 통해 역사하였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도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도, 우리가 이 땅에서 성과를 거두는 것도 내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을 고백합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기드온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한 후 어떤 고백을 합니까? 8장 22-23을 보십시오. 겸손하게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합니다.
자신감이 없습니까?
이룰 수 없는 목표 때문에 자신감을 잃고 포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자신감의 근거를 나에게 두지 말고 하나님께 두고 회복 탄력성을 가지길 원합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감을 잃었습니까?
하나님은 이성에 근거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신감으로 회복탄력성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능력의 부족으로 자신감을 상실했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힘에 근거한 자신감으로 회복탄력성을 가지길 원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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