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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함께 살기(5) 핵심 사고, 관련적 사고방식(사도행전3:16)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5986 추천수:7 220.120.123.244
2023-07-30 13:21:44

주님과 함께 살기(5) 핵심 사고, 관련적 사고방식

사도행전3:16

 

우리 교회 장로님 한 분은 매주마다 한 번씩 90세 넘으신 아버님을 방문하여 식사하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오시는 분이 있습니다. 자식 없는 사람은 있어도 부모 없는 자식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느날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어느 부모의 자식이 되면 죽을 때까지 그 부모를 생각하면서 살게 됩니다. 설령 부모님이 이 땅을 떠나셨다 하여도 문득문득 그 부모님이 생각나는 것이 인간입니다. 아내와 남편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홀로 살다 어느날 배우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고 결혼하게 되면 평생 남편과 아내가 함께 살아가고 이제는 홀로 살 때와는 다른 방법으로 살아갑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영적인 아버지인 하나님을 만나면 평생 하나님과 함께 살아갑니다. 어느 날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게 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면 예수님과 함께 살게 되어 있습니다.

7월에 우리가 주님과 함께 살기 위한 핵심에 대하여 살펴 보았습니다. 주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제자 사역이라는 핵심 가치 붙들고 살아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살기 위한 핵심 감정은 담대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살기 위한 핵심 능력은 성령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살기 위한 핵심 선택은 하나님의 뜻대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주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은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는 것을 살펴보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앤절라 더스워크의 <그릿>이라는 책에 세 벽돌공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건물을 짓고 있는 세 벽돌공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자 첫 번째 벽돌공이 대답했습니다. “벽돌을 쌓고 있습니다

두 번째 벽돌공이 대답했습니다. “교회를 짓고 있습니다마지막으로 세 번째 벽돌공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사람이 무엇을 하는 것은 생각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동물과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동물은 문명을 만들지 못하지만 사람은 생각하기 때문에 그 생각의 결과로 모든 문명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사람은 같은 일을 하는데도 생각의 방식이 다 다릅니다. 같은 벽돌을 쌓고 있지만 어떤 사람은 벽돌을 쌓는 노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벽돌을 쌓고 있고, 어떤 사람은 멋진 교회를 짓고 있다고 생각하며 벽돌을 쌓고 있고, 어떤 사람은 세상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있다고 생각하며 벽돌을 쌓고 있습니다. 저자는 벽돌을 쌓는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벽돌을 쌓고 있다는 벽돌공은 벽돌쌓은 것을 생업으로, 교회를 짓고 있다는 벽돌공은 직업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있다고 한 벽돌공은 천직으로 벽돌을 쌓고 있다고 말합니다. 똑같이 벽돌을 쌓지만 어떤 사람은 생존을 위해, 어떤 사람은 이 땅의 의미를 위해, 어떤 사람은 영원한 초월적 가치를 위해 일을 합니다.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한 한나 아렌트라는 사람은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에 의하면 첫 번째 사람은 노동을 하는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작업하는 사람이라고 분류할 수 있습니다. 나무가 있으면 머리 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통해 탁자나 의자를 만들어 내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 사람은 행위하는 사람이라고 분류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에서 자신의 독특성과 탁월성을 구현하여 공적 행복을 실천하는 활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으로 힘겨운 인생을 살았지만 교수가 되었고 기자로서 12년간 도주하다 잡혀 예루살렘에서 진행된 나치 대표적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는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한 시민인 것을 보며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 합니다. 수많은 학살을 자행한 나치의 아이히만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엄청난 학살을 자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해서 결론을 내린 것이 바로 악의 평범성입니다. ,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은, 부당한 권위에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그 권위에 동조되어 언제든지 악을 저지를 수 있는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을 통해 진정한 삶의 가치란 정치적 행위에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나치를 막지 못한 주된 원인이며 공동체 구성원이 적극적인 정치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먹고 살기 위한 노동만 하고 정치적 무관심으로 행위하는 사람이 없어 세상이 전체주의 사회가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은 어떤 유형의 사람으로 생각됩니까?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과 함께 평생 살았던 베드로는 어떤 사고 유형을 가지고 살았겠습니까?

 

1.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일어난 모든 일을 예수님과 관련된 사고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자신이 하는 일을 예수님과 관련시켜 생각하는 관련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6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자신을 통해 일어난 일이 자신 스스로 된 일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된 일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이 사람을 치료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관련하여 생각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를 관련적 사고라고 합니다. 사고의 방식 중에는 관련적 사고(relational thinking)와 최종적 사고(terminal thinking)가 있습니다. 최종적 사고는 그것을 끝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관련적 사고는 늘 궁극적인 것과 관련시켜 생각하는 사고입니다. 혼자 살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사람들은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과 관련시켜 생각합니다. 결혼식 계획, 신혼 계획, 자녀 양육 계획 등 모든 것을 자기 혼자 세우지 않고 다 사랑하는 사람과 관련시켜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예수님과 관계없이 모든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여 신앙인이 되면 모든 것을 예수님과 관련시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던 베드로를 보십시오. 베드로가 40년 동안 걷지 못하는 사람을 걷게 만들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놀란 것입니다. 제가 40년 동안 걷지 못한 사람을 교회에서 걷게 만든다면 놀라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솔로몬의 행각에 모였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무슨 말을 합니까?

사도행전 3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왜 자신의 능력으로 이 사람을 치료시킨 것처럼 자신을 주목하느냐는 것입니다. 자신의 권능이나 경건으로 되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우리가 읽은 16절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그를 치료시켰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제 매사 어떤 일이든지 주님과 관련시켜 사고하는 사람이 된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217절을 찾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헤롯왕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급속히 퍼지마 정치적 위기를 느끼고 야고보를 잡아 죽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야고보를 죽인 것을 기뻐하자 베드로도 죽이려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유월절 후에 죽이려고 했는데 그날 밤 신비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방법으로 감옥에서 나온 것입니다. 베드로가 옥에서 나온 것을 보고 성도들이 놀라자 베드로가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님과 관련한 사고로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주님께서 하신 것이고 바울이 이방인에게 세례를 베푼 것도 주님께서 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님과 관련하여 사고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관련적 사고란 모든 것을 목적과 관련시켜 생각하는 사고입니다. 최종적 사고란 활동이나 지식, 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사고입니다. 공부를 공부하기 위해 하고, 일을 일하기 위해 일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과 관련된 사고를 하게 되면 공부하는 것도 예수님과 관련시키고, 대학을 가는 것도, 취업하는 것도, 결혼하는 것도, 자녀를 낳는 것도, 자녀를 양육하는 것도, 사업도, 직업도, 노후 생활하는 것도, 실패도, 성공도 예수님과 관련하여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실패하고 실수할 때도 실수와 실패 그 자체를 최종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실패과 실수를 예수님과 관련시켜 생각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한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우리나라 성인 4명 중 1명은 평생 한번 이상 정신질환을 겪는다고 합니다. 성인 100명 중 15명이 평생 한번 이상 심각하게 자살 생각한다고 합니다. 이중 하루에 평균 36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다고 합니다. 한국 자살률은 OECD 국가중 1위이고 20대 여성, 10대 남성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2020년 한국의 자살 사망자 수는 총 13195명이라고 합니다. 일어난 사건을 최총적 사건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들입니다. 베드로의 사고방식과 유다의 사고방식이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베드로는 관련적 사고 방식으로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최종적 사고방식로 받아들였습니다. 두 사람 다 실수하고 배신한 사람들입니다. 유다는 자신의 배신을 최종적 사고방식으로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하고 결국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회개하고 그 후로는 모든 것은 주님과 관련된 사고 방식으로 그 모든 고난을 헤치고 1세기 교회 공동체를 만들고 그의 신앙 고백 위해 교회를 세우겠다는 주님의 뜻을 성취해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초대왕 사울과 다윗이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나 현격한 차이가 나는 것이 사고 방식입니다. 사람은 어떤 사고 방식을 가지느냐에 따라 현격한 인생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윤리적으로 볼 때는 사울보다 다윗은 더 큰 실수를 한 사람입니다. 자기 부하의 아내를 간음하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 그의 남편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원수의 나라 블레셋으로 도망가 잠시나마 그 부하 역할을 한 매국적 행위를 한 사람입니다. 사울을 최종적 사고 방식을 가지고 일어난 사건을 받아들이고 회개하지 못하고 자신의 자살과 세 아들의 죽음으로 비극적 인생으로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먼 미래를 보며 하나님과 관련적 사고로 받아들이고 회개하고 마침내 성군이 되었습니다.

어떤 일을 당할 때 관련적 사고를 해야 난관을 잘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살다보면 수많은 일들을 겪으며 삽니다. 한 번 대학에 떨어졌다고, 두 번 취업이 되지 않았다고, 사람들에게 비난의 소리를 들었다고, 무시당했다고 그것을 전부로 생각하며 그것을 최종적 사고로 접근하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살다 보면 원하는 일도 일어나지만 자신이 원치 않은 일도 일어나고 정말 극복하기 힘든 일도 일어납니다. 그럴 때 그것을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고 역사의 주인이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 자녀 삼아 주신 주님과 관련하여 생각하는 것입니다. 일어난 사건이 같을 지라도 해석은 각각 다르고 그 해석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과정을 통해 어떻게 되기를 원하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사모님이 암에 걸리 젊으신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딸만 둘이라고 하셨고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는 젊은 목사님이었습니다. 요즈음 교회를 개척하여 사역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일인데 그렇게 사명을 감당하면 좋은 일이 생겨야 하는데 안타까운 일이 생긴 것입니다. 저는 그 목사님을 위로해 드리며 이 기회를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기회로 삼으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매일 매일 다가오는 새로운 상황에서 주님과 함께 하며 일기를 쓰며 기도하고 극복하라고 조언을 해 드렸습니다. 그러면 특별한 경험이 오히려 더 믿음을 크게 만드는 기회가 될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받고 더 성숙한 목사, 더 큰 목회를 하는 사역자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용기를 주고 기도해 드렸습니다. 세상은 확률적 진실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세한 부분까지 잘 알 수 없지만 말씀 한 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따라 진행되는 것입니다. 태풍을 앞에 쓰러지면 거목이 되지 못합니다. 거목일수록 태풍을 많이 겪으며 살아남은 나무입니다. 연은 스스로 오를 수 없지만 바람타고 높이 오르는 것입니다. 꽃씨도 바람타면 강을 건너갈 수 있습니다.

원하는 일이든지 원치 않은 일이든지, 좋은 일이든지 나쁜 일이든지, 힘겨운 일이든지 쉬운 일이든지 주님과 관련을 시켜 사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일어난 일이 디딤돌이 되게 하고 거침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일어난 일이 사약이 아니라 보약이 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최종적 사고가 아니라 모든 것을 예수님과 관련하여 사고하는 관련적 사고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11:36)”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이 사실을 믿습니까? 개인의 삶이나 인류의 역사나, 우주의 종말은 다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15:10)”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2.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어떤 일을 시작하던 예수님과 관련된 사고로 해야 합니다.

40년 동안 일어나지 못한 장애인을 만났을 때 베드로는 어떻게 합니까? 자신의 능력을 생각하면 시도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주어진 조건과 규칙에 따라 최적을 선택하는 최종적 사고를 한다면 그는 시도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을 생각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생각하면 한 번도 이런 일을 해 본 일이 없습니다. 과학적, 논리적, 합리적 사고에 의하면 이 일을 시도하는 것은 미신적이고 만용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예수님과 관련된 사고를 가진 사람은 예수님께서 주신 정보를 바탕으로 생각을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동안 걷지 못한 자를 일으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수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심지어는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40년 된 장애인 앞에서 무슨 말을 합니까? 아마 예수님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라(14:12)”고 예수님이 말씀해 주신 말씀을 자신의 기본 사고의 정보로 삼고 담대하게 예수님이 선포하듯이 선포했을 것입니다. 3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선포적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은과 금은 없어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난관 앞에 장애물 앞에, 과제 앞에, 사명 앞에서 그것이 전부라고 최종적 사고를 하면서 좌절하며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 건강이 없고, 물질이 없고, 지력이 떨어져도 예수님은 아직도 우리 안에 있습니다. 관련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잃어 버린 것에 바탕을 둔 사고보다 지금 남아 있는 자산에 바탕을 두 사고를 합니다. 우리나라 강원도 태백 산골짜기에 예수원이라는 공동체를 세운 분은 아처 토레이입니다. 그의 아버지 루벤 토레이는 중국 선교사였습니다. 그가 1945년 중국 내지로 트럭을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답니다. 병원에 와 보니 중상이어서 오른팔을 잘라 내야 했답니다. 그런 절망적 고통의 현실에서도 토레이 선교사는 원망하지 않았답니다.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두 팔을 주셔서 잘 살았는데, 이제 한 팔을 가져가시니 감사합니다." 그 후 중국이 공산화됨으로 그는 미국으로 귀국했답니다. 그러다 1952년 한국에서 사역하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는 6.25 전쟁 이후 한국에서 팔다리를 잃은 수없는 사람을 목격한 것입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에게 팔이 없도록 하신 것이 한국 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준비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답니다. 그는 팔이 없는 사람들의 괴로움과 불편함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었답니다. 그래서 토레이 선교사는 의수, 의족 만드는 기술을 익혀서 서울, 청주, 대구에 재활 센터를 세우고 팔다리가 없어진 군인들과 사람들에게 팔(의수)과 다리(의족)를 만들어 주었답니다. 심리학자인 크래머 박사는 토레이 선교사가 했던 것처럼 하는 사고를 "자산에 바탕을 둔 사고(Asset based thinking, ABT)"라고 말합니다. 그는 그의 책 <긍정으로 리드하라>에서 성공하는 리더들은 무엇을 보고, 말하고, 행동할 때 이런 사고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골치 아프고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당하면 보통 사람들은 그 순간 지금 나에게 없는 것, 즉 결핍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실패하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 기술이 없어서, 주변 사람의 도움이 없어서라는 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를 그는 "결핍에 바탕을 둔 사고"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결핍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결국 어려운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는 요원해진다는 것입니다.

실낙원의 저자 밀턴은 1652년 실명하였습니다. 아내는 떠나고, 아들은 죽었습니다. 자신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뻔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핍에 바탕을 둔 사고를 하며 절망의 늪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자산에 바탕을 둔 사고로 실명한 상태에서 서사시를 쓰는 일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말을 받아쓸 딸이 있었습니다. 딸로 하여금 한 구절 한 구절 받아쓰게 하여 <실락원>1667년에 완성하였고, 이어서 1671<복락원><투기사 삼손>을 합본으로 완성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윈스턴 처칠"도 학교 다닐 때에 낙제한 사람이었습니다. 월트 디즈니는 아이디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문사 편집장에게 해고당했고, 디즈니랜드를 세우기 전에 여러 차례 파산을 경험했습니다. '전쟁과 평화'의 작가 레오 톨스토이는 대학생 시절에 성적 불량으로 퇴학을 당했고,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다섯 번이나 실패하였습니다. 링컨은 사업가로서 2번 실패했으며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전까지 주 선거 및 전국 선거에서 6번이나 낙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점은 결핍에 바탕을 둔 사고가 아니라 자산에 바탕을 둔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예수님과 관련하여 시작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결핍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 자산에 의한 사고를 하는데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있는 자산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은 영원토록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은 어느 때나 어떤 곳에서나 주님이 원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권력도, 지위도, 명예도, 물질도 다 잃어 버리고 광야에서 데릴사위가 되어 살고 있을 때 나이 80세에 하나님은 그를 불렀습니다. 그 때 모세는 결핍에 의한 사고로 자신은 할 수 없다고 계속 거절합니다. 하나님은 거절하는 모세에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4:2)"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지팡이를 능력의 지팡이고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손에 남아 있는 지팡이를 쓰겠다는 것입니다. 골리앗 앞에 모든 백성이 절망할 때 다윗이 사용한 것은 박격포가 아니라 물맷돌(삼상17:40)이었습니다. 장정만 5천명이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릴 때 예수님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넉넉히 먹이시고 12 바구니를 거두었습니다. 다 잃었다 할지라도 마지막 남아 있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사랑하는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은 것입니다.

 

3.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우리의 일을 통해 다른 사람도 예수님과 관련시키는 사고를 하게 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40년 동안 걷지 못하는 장애인을 고침으로 궁극적으로 무엇을 합니까?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합니까? 1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그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병이 낳은 사람을 본 사람들에게 예수님과 관련하여 살라고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이니다. 산헤드린 공회 회원들이 베드로를 불러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느냐라고 심문합니다. 그때 베드로가 누구를 소개하고 있습니까? 사도행전 410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예수님이 그를 치유시켰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너희들도 예수님과 관련된 사고를 가지고 살라는 말입니다. 결국 그 사건을 보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421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사람들이 하나님과 관련시켜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사도행전에는 베드로, 스데반, 빌립, 바울이 전하는 총 24편의 설교가 나옵니다. 그 중 베드로의 설교는 7편입니다. 첫째,오순절에 있었던 설교(2:14-41). 둘째, 성전미문의 앉은뱅이 치유사건과관련된 설교(3:15-26). 셋째,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의 1차설교(4:8-12). 넷째,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의 2차 설교(5:29-32). 여섯째, 마술사 시몬에게 행한 설교(8:20-25). 일곱째, 백부장 고넬료에게 행한 설교(10:34-43) 등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건는 구약 예언의 성취이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성취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설교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및 승천과 재림입니다. 설교의 결론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용서함을 받고, 또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며 구원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38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41절을 보십시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첫 번째 설교하니까 3천면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옵니다. 예수님과 관련한 사고를 사는 사람들로 변화됩니다. 가르침을 받고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쓰는 사람들이 됩니다. 서로 물건을 통용하며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으로 핍절한 사람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온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님과 관련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 것입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예수님과 관련하여 사고하는 공동체가 확산됩니다. 44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514절을 보십시오.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942절을 보십시오.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고넬료 가정에 설교하니까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 충만이 임하고 방언을 말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10:44-46).

 

우리에게 주신 일을 하지고 우리가 어떤 사고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을 예수님과 관련된 사고 평생 살게 만들 수 있습니다.

장애인이라는 세상의 편견을 뛰어넘어 세상을 향해 희망과 감동의 팡파르를 울린 트럼펫 주자이자 피아니스트, 패트릭 헨리 휴스라는 사람이 <나는 가능성이다>라는 책을 내었습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양쪽 안구가 없었습니다. 척추가 휘어 앉아있을 수 있기 위해 쇠를 박아넣는 수술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로 인해 무릎 밑으로 몸을 굽힐 수도 없습니다. 키도 자라지 않았습니다. 휠체어가 없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도 없었습니다. 의사들조차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알지 못했을 정도였지만, 9개월 때 아버지가 우연히 그를 피아노 앞에 앉히면서부터 그의 인생은 바뀝니다. 아버지가 건반을 누르면 완벽하게 같은 음을 찾아냈고, 오랫동안 연주해온 사람처럼 피아노 건반을 부드럽게 눌렀던 것입니다. 이후 그는 지금까지 피아노와 함께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점자를 익혀 대학에 진학했고, 마칭밴드에서 사람들과 함께 트럼펫 연주를 했으며, 대학 풋볼경기 중 가장 규모가 큰 오렌지볼(Orange bowl)에서 연주한 것을 계기로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고, 스포츠 선수가 아닌 사람으로는 최초로 2006'디즈니 세계 스포츠 정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물론 여전히 걸을 수 없고, 눈 대신 폴리에틸렌 재질의 구슬이 내 눈자리에 들어있지만, 나는 그 보이지 않는 눈으로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진짜 중요한 것을 봅니다. 삶은 여러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믿지 않는데, 삶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고, 그렇게 믿는다면 모든 일은 좋아질 것입니다. 나를 보세요. 내가 그 완벽한 예라구요!“

"나는 하나님이 내게 앞을 볼 수 없다는 선물을 주신 이유가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내면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믿습니다. 또 내게 음악에 대한 열정을 주신 이유는 내 능력을 알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내게 사랑 많은 가족을 주신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아낌없이 베풀며 축복을 나누게 하기 위해서라고 믿습니다. 당신이 가진 고유한 재능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면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당신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나님이 마련해놓으신 그 계획을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우상 장사의 아들이었지만 하나님을 만나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하나님과 관련된 사고를 함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에스더는 고아였지만 하나님을 만나 민족을 구원한 여인이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과 관련된 사고를 하고 살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관련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여 예수님을 알게 하고 예수님과 함께 살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피해 도망갈 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28:15)”하신 것처럼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20)”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예수님은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면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이 원하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여 그들도 주님과 함께 살며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기 원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신앙인의 핵심 사고 방식은 예수님과 관련된 사고를 하며 평생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일어난 모든 일을 예수님과 관련된 사고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어떤 일을 시작하던 예수님과 관련된 사고로 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우리의 일을 통해 다른 사람도 예수님과 관련시키는 사고를 하게 해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3.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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