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살기(4) 핵심 선택, 하나님의 뜻대로
사도행전10:15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매일 입을 옷이나 점심 메뉴를 고르는 사소한 일부터 진로를 결정하고 배우자를 선택하는 중대사까지 모두 다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탄생)와 D(Death·죽음) 사이의 C(Choice·선택)다”라고 했는데 선택이 쌓여 인생이 됩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따르면 우리는 하루에도 150여 차례나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고 이 중에서 신중하게 고민하는 것은 30차례 정도에 이며 올바른 선택이라며 미소를 짓는 것은 5차례도 안 된다고 합니다. 이런 선택을 나누어 보면 크게 타율적 선택과 자율적 선택이 있습니다. 아침 밥을 먹을 때 내가 원하는대로 선택해서 먹지 않고 누군가 차려준 음식을 선택하여 먹고 아침에 출근할 때 아내가 챙겨준 옷과 넥타이를 메고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개인의 의지나 판단이 아닌 외부의 규칙, 권위, 사회적 압력 등에 따라 선택이 이루어지는 경우입니다. 타인이나 사회의 기대에 따라 행동하거나 결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율적 선택에는 점심에 짜장면을 먹을까 냉면을 먹을까 선택하는 것처럼 자신의 의지에 의해 선택하는 것입니다.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의 주체가 되어 의도적으로 행동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자율적인 선택은 개인의 가치관, 욕구, 목표 등을 고려하여 이루어집니다.
자율적 선택 가운데는 의식적 선택과 무의식적 선택이 있습니다. 무의식적 선택은 사나운 짐승이 있을 때 자동으로 피하는 것처럼 사나운 개가 달려오면 무의식적으로 안전한 곳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가는 것이나 어떤 음식을 주로 먹는 것처럼 의식적 사고 없이 습관, 직관, 감정 등의 영향으로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것들은 직관적인 빠른 사고에 의한 것으로 시스템 1사고라고도 합니다. 직감적이고 빠른 사고를 합니다. 주의 환경에 영향을 받고, 자기가 본 것을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가집니다. 조금 어려운 말로 휴리스틱 판단을 해 버리는 것입니다. 재빠르게 판단을 하지만 옳지 않을 수 있고 편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학교의 유리창이 깨어져 있으면 불량학생의 소행으로 판단해 버리는 것입니다. 고속으로 자동적으로 행하여 멈출 수 없고, 생각하는 노력이 거의 불필요한 것입니다. 의식적 선택은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 어떤 직장을 가질 것인가 등과 같이 논리적으로 느리게 생각하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주요한 결정을 할 때 대안들을 평가하고 장단점을 고려한 후에 결정하는 것입니다. 시스템 1 사고에서 답이 없을 때 하는 것으로 논리와 통계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일상의 선택 가운데 80-90% 주로 무의식적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적응적 무의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의식적인 생각의 과정을 거쳐서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반사적으로 결정을 내린다고 합니다.
이런 선택들은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친구와 카페에 갔을 때 무슨 커피를 마실 것인가를 자신이 선호하는 대도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데 어떤 커피를 마시든 사는 데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머리 스타일을 할 것인가? 여름철 휴가를 어디에 갈 것인가?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 등과 같은 선택은 잠시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장기적인 미래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학교에 들어갈 것인가? 무엇을 전공할 것인가?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 등과 같은 선택은 인생의 미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런 선택에 있어 우리 신앙인은 어떤 핵심 선택의 원리를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1. 선택의 핵심 원리는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7월달 계속해서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의 삶을 통해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 붙들어야 할 핵심에 대하여 살펴보고 있는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선택의 핵심은 자신의 뜻에 의한 선택으로 살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할 때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자신이 경험한 것 자신의 신념(규제신념, 자료신념)에 따라 선택을 합니다. 기본적으로 생존과 종족 번식이라는 욕구를 가진 인간으로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누구나 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렇게 삽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합니다. 사람이 살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렇게 됩니다. 머리를 감지 않던 사람이 머리를 감고, 향수를 쓰지 않는 사람이 향수를 쓰며, 옷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 옷에 신경을 씁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뜻에 맞추어 모든 것을 선택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상대의 뜻을 헤아려 선택하고 사랑의 정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상대의 뜻을 배려하며 그것을 자신도 보람과 즐거움으로 삼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은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 전하고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어떤 선택을 하려고 합니까?
베드로가 기도하러 지붕에 올라갔습니다. 그때가 몇시입니까? 9절을 보십시오. 우리 시간으로 낮 12시입니다. 점심 시장할 때입니다. 그때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본 것입니다. 큰 보자기가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습니다. 그 안에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 소리가 들려 옵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베드로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에 따라 속되고 깨끗하지 않는 것을 결코 먹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선택의 자료신념과 규제 신념으로 볼 때 먹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소리가 들려 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이렇게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하늘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왜 베드로가 그 음식을 못 먹겠다고 버텼을까요?
관습적 사고로 선택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1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유대인들 '카샤룻'이라 불리우는 식탁에 관계된 법규들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나 사물, 짐승, 가축 등을 부정한 것, 정한 것, 거룩한 것으로 나누었습니다. 자신을 거룩하게 하려면 부정한 음식을 먹어서는 안되었습니다. 먹기에 합당한 음식을 가리켜 '코셔'라 부르며, 반면에 먹을 수 없는 음식이나 쓸 수 없는 그릇을 가리켜 '트라이프'라 부릅니다. 그 근거는 레위기 11장 1-43절에 두고 있습니다. 어류는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어야 '코셔'입니다. 상어, 고래, 미꾸라지, 오징어, 낙지, 꼴뚜기, 문어, 게, 가재, 새우, 굴 등을 먹을 수 없습니다. 고기의 경우 되새김을 하여야 하고 발굽이 갈라진 것이 '코셔'입니다. 말, 당나귀, 낙타, 돼지 등 못먹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짐승들을 베드로에게 3번이나 보여 주었습니다. 못먹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환상은 궁극적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 것인데 베드로는 이방인에 대하여 잘 못된 자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2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베드로는 인종에 대한 잘못된 선택 기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28). 당시 문화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자료를 자신의 선택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이고 이방인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지옥의 땔감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뜻으로 선택하는 베드로의 선택의 원리를 하나님은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1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택을 합니다(28). 그들에게 세레를 베풀고 그들은 성령을 받았습니다(45,48)
베드로가 이일로 비난을 받습니다. 그 때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11장 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더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적대자들이 예수님을 전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위협할 때 베드로는 어떤 선택을 합니까?(행4:18) 사도행전 4장 19-20절을 찾아 읽겠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담대하게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감옥에 가두면서까지 전하지 못하게 합니다(행5:28) 그 때 어떤 길을 선택합니까? 사도행전 5장 29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베드로의 선택의 원리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어떤 불이익과 위협의 경우에도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보여주신 뜻과 보여주지 않는 뜻이 있습니다. 보여주신 뜻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선택하지 말라하면 선택하지 말고 선택하라고 하면 선택하는 것입니다. 도덕적 선택에서는 명확합니다. 매사 비도적인 것을 선택하면 인생을 고비용을 치루어야 하고 꼬이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할 때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고 그 후손들이 복을 받았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여 결국 민족 지도자가 되어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해방시켰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여 선한 왕이 되었지만 사울을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 뜻을 선택하여 통치하다 결국 자신도 가문도 망해 버렸습니다. 예레미야는 수많은 고난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고 그 뜻을 전했지만 유다는 자신의 뜻을 선택했다가 결국 자살로 인생을 마감해 버렸습니다.
미국 대통령 중에 22대와 24대 대통령이 된 클리블랜드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청소년 시절 방탕과 갈등의 세월을 보냈답니다. 날마다 나쁜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골목을 누볐습니다. 술을 마시고 돈을 내는 적은 한 번도 없고, 걸핏하면 시비를 걸어 닥치는 대로 부수고 파괴하는 것이 그의 일과였습니다. 어느 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2차, 3차를 가던 중에 우연히 교회당 앞을 지나가다가 그 건물 벽의 현수막을 보게 되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순간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말씀이 그의 가슴을 예리하게 찔렀답니다. 마치 자신의 사형선고문 같았답니다. 그는 교회에 들어가고 싶었답니다. 친구에게 교회에 들어가자고 했답니다. 그러나 그의 친구는 그의 제안을 뿌리치고 제 갈 길로 가버렸답니다. 그는 교회당에 들어가 지나간 죄를 눈물로 회개했답니다. 이제 주를 위해 살기로 결심하였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결심했답니다. 술 마시자는 친구의 유혹을 뿌리쳤답니다. 고학 끝에 감옥의 간수장이 되었답니다. 시장이 되었답니다. 주지사가 되었답니다. 드디어 미국 대통령이 되었답니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던 날 알콜 중독자로, 범죄자로, 사형수로 교도소에서 클리블랜드의 대통령 당선 신문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답니다. 바로 30년 전 교회 앞을 지나던 그 친구였답니다. 어떤 선택은 순간의 선택에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내 선택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원리를 가지고 선택해야 합니다.
2. 선택의 핵심 원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받기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전통적인 견해에 따르면 하나님의 뜻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주권적인 뜻은 우주 안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향한 하나님의 작정된 계획입니다. 둘째는 도덕적인 뜻은 인간이 어떻게 믿고 살아야만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도덕적 명령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반적인 뜻입니다. 셋째는 개인적인 뜻은 각 개인에게만 독특하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이상적이고 상세한 삶의 계획입니다.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인 도덕적인 것은 우리가 쉽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결단의 문제이기 때문에 결단만 하면 10분 후 10시간 후 10년 후를 생각해 보면 금방 결단하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은 뜻을 선택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문제는 가치 중림적인 경우는 보여주신 뜻도 정확히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 어느 직장에 갈 것인가? 어느 교회에 다닐 것인가?” 등과 같은 경우입니다. 이런 일은 우리 생활에 다반사로 있습니다. 선택의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이 누구와 결혼하라고 명백하게 말씀해 주시면 쉽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느 대학에 가라고 하면 쉽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해 주시지 않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그 분야의 전문가의 뜻을 반영하여 선택합니다. 그러기 위해 전문가를 만나 돈을 지불하고 상담을 합니다. 워렌버핏과의 점심 식사 한끼 하는데 50억을 지불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언씽커블>의 저자 아만다 리플리는 상상할 수 없는 재난에서 살아난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재난에 직면한 사람들의 행동 양식을 분석했답니다.
그의 분석에 의하면 재난에서 생존하기까지 3단계를 거친다고 합니다.
첫 단계는 거부.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행동입니다. 서둘러 피신하는 사람이 있고 공포에 눌린 듯 발이 땅에 붙어 다가오는 위험을 지켜만 보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재난이 닥쳤을 때 단 몇 초간의 판단과 선택이 그들의 운명을 갈라놓았답니다. 2001년 9·11테러 생존자들이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에 계단으로 달려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굉음이 전해진 뒤 평균 6분이 지나서였답니다. 이 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생사가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숙고, 살길을 생각하는 단계라고 합니다. 공포를 느끼는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재난의 충격을 완화해 주는 회복력이라고 합니다. 회복력이 강하면 공포에 따른 혼란에서 금세 벗어나지만 약할 경우 그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마지막으로 생존 여부를 결정짓는 '결정적 순간'과 맞닥뜨리게 된다고 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정신적 공황이 나타나기도 하고 뻔히 위험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 일시적인 마비 상태가 오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런 공황과 마비는 '판단 착오'의 문제라며 최대한 빨리 합리적인 행동에 나서는 사람이 생존한다고 말합니다. 위기의 순간 사는데는 바른 판단 올바른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의 조사의 의하면 신속하게 합리적 행동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타인과의 교류라고 합니다. 우왕좌왕하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침착하게 관찰하고 공조한 사람들이 재난을 피할 가능성이 더높다는 것입니다. 9ㆍ11 테러 당시 살아서 빌딩을 빠져나온 사람 중에 "누군가와 기억할 만한 교감 없이 건물을 빠져나온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는 게 저자 리플리의 조사 결과입니다. 위기 상황에서 바른 선택을 할 때 주변 사람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바로 바른 선택을 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무엇하다 보여주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까? 9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의 소원을 아뢰는 것도 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과 상의하는 것입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알고 계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가 기도하니까 하나님은 구약의 말씀의 원리가 무엇인지를 알려 줍니다. 점진적 말씀의 계시를 원리로 삼을 수 있도록 실제 삶 속의 원리를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을 만났지만 아직도 구약의 계시의 참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참 의미를 깨닫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하나님 보다 앞서가지 않고 기도하면 실제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수 없이 실현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베드로가 유다 대신 제자를 뽑을 때 보여주지 않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무엇을 합니까?
사도행전 1장 24-25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맡깁니다. 2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을 하는 것입니다. 제비를 뽑습니다. 그러자 맛디아가 뽑힙니다. 기도하면 보여주지 않은 하나님의 뜻이 다양한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광야를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해 주었습니까? 신1장 29-31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선택이 어려운 것은 다양한 옵션과 정보의 과부하, 불확실성과 위험, 개인적 가치, 욕구, 목표의 충돌, 시간과 자원의 제약, 외부의 영향과 압력, 과거 경험과 기억의 영향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무지 때문입니다. 이것을 선택했을 때 어떤 통계와 가치적 결과가 나올 것인가를 다 알고 있으면 선택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대한 선택 앞에서 인간은 개연성에 의해 예측은 하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선택 장애를 가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할 때 앞서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시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바라며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게셋마네 기도를 하실 때 베드로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았던 베드로는 결국 말고의 귀를 베는 선택을 하였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고 도망가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십자가를 앞에 놓고 밤을 새워 기도하실 때 내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셨고 결국 십자가를 지시는 선택을 하시고 인류 구속 사역을 이루었습니다.
다윗도 블레셋 앞에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그 때 삼상 23:2에서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받고 선택합니다. 그러나 사울을 아말렉과 전쟁 앞을 앞두고 사무엘이 더디 오자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제멋대로 번제를 드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잘못된 선택으로 실패한 인생길을 걷게 됩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길을 가면 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9-10절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바울도 골로새서 1장 9-10절에서는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중요한 선택 앞에서 하나님 보다 앞장 서 가지 말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7:7-8)”
3. 선택의 핵심 원리는 사명 붙들고 믿음으로 신앙적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선택에는 선택의 기준에 따라 감정적 선택, 이성적 선택, 신앙적 선택이 있습니다. 이 선택 중 감정적인 선택을 하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쉽게 살아지는 상황에 지배를 받는 선택입니다. 회사에서 누가 기분 나쁜 말을 하면 금방 회사는 그만두는 것은 감정적인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족을 생각하며 현제 경제 상황과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며 꾹 참고 견디는 것은 이성적 선택입니다. 이런 이성적 선택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성적 선택도 자신의 이익, 편리, 기쁨을 기준하여 선택할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이해관계가 끝나면 인간관계도 끝나 버릴 경향이 많습니다. 상대적이고 일시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회사에서 취직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믿고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 어떻게든 자신이 믿고 있는 예수님을 전해야 하겠다고 남아 그리스도인으로 삶의 본을 보여주는 것은 신앙적 선택입니다. 상황이 맞지 않아도 이익이나 편리, 기쁨이 없어도 사명을 붙들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선택의 변수가 아내의 이야기도 중요하고, 자식의 형편도 중요하고, 내 미래도 중요한 변수가 되지만 사명을 우선시하는 선택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역사에 큰 일을 하고 세상을 좀더 나은 세상으로 변화를 시킵니다.
오늘 베드로는 이미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것은 베드로가 일생 붙들어야 할 핵심 가치였고 사명입니다. 사도행전 1:8절을 찾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베드로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이 땅에 존재해야 할 이유였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계속 강조해서 말씀해 주었습니다. 유대인만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서도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실제 하나님의 말씀이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이 없고 고넬료는 로마의 군인 장교로 당시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혐오하는 사람일지라도 기도했으면 사명 붙들고 나아가면 됩니다. 사명 붙들고 선택했으면 그 사명을 어떤 위험과 불리한 조건이 예견된다 해도 믿음으로 지혜롭게 시행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환경도 만들어 주시고 장애물로 제거시켜 주시고 그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미래는 알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명 붙들고 믿고 가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끝까지 사명을 붙들고 신앙적 선택한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베드로가 이방인 세례에 대하여 선택의 기로에 놓인 장면이 나옵니다.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로 예루살렘에 회의가 열렸습니다.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물어 본 것도 아닙니다. 그때 베드로는 어떤 선택을 합니까? 이미 주신 사명을 붙들고 선택합니다. 행15장 7-11절을 보면 끝까지 사명 붙들고 신앙적 선택을 하는 것을 봅니다.
실제 삶의 현장에서 명확하게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고 기도해도 특별하게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지 않는다고 선택을 망설일 필요가 없습니다. 사명 붙들고 신앙적 선택을 하면 됩니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일곱 집사를 세우기로 선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구제하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과부가 구제 빠지는 것에 대하여 문제 제기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지 않습니다.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바로 무엇을 합니까? 2절을 보면 구제하는 일이 자신들의 사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구제하는 일은 성령과 지혜, 믿음이 충만하여 칭창받는 사람을 선택하여 그들에게 맡기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전하는 사명을 집중하자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런 선택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도행전 6장 7절을 찾아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빛은 입자임과 동시에 파동입니다. 빛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입니다.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너지입니다. 생각의 결과인 선택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택도 에너지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말과 행동, 인간관계, 미래가 달라집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수없는 선택을 하며 평생 살아갑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예수님처럼 능력있는 삶, 사명을 이루는 삶, 가치와 보람을 누리는 삶, 마지막 인생을 마감할 때 후회없는 삶, 조금이라도 세상을 변화시켜 하나님이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 삶을 살려면 어떤 선택의 핵심 원리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선택의 핵심 원리는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받기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사명 붙들고 믿음으로 신앙적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3.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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