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살기(3) 핵심 능력, 성령의 능력으로
사도행전1:8
우리는 6월 베드로의 삶을 통해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인생 각본을 어떻게 바꾸어 주었는가를 묵상했고 7월에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통해 인생각본을 바꾼 후 예수님과 함께 어떻게 살았는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첫주에는 베드로가 평생 붙들고 산 핵심가치가 무엇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유언의 말씀처럼 남긴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을 평생 가치로 삼고 살았습니다. 베드로가 평생 붙들고 산 핵심 가치는 자신이 예수님이 참제자가 되는 것이고 타인을 예수님의 참제자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평생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삶을 사는데 인생의 참된 가치를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는가? 얼마나 다른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었는가에 핵심 가치를 두고 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세상에 생명만큼 귀중한 것은 없습니다. 생명은 세상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귀중성을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가복음 8장 36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짧게 이 땅에 살다가는 세상인데 이 땅에 사는 동안 생명 구원 사역에 쓰임받은 것이야 말로 무엇과보 바꿀 수 없는 가치 있는 일입니다. 우리의 시간, 우리의 물질, 우리의 재능으로 한 생명이라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12:3에 보면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믿습니까?
두 번째 주일에는 베드로가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가졌던 핵심 감정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 감정을 참으로 중요한데 잘못된 핵심 감정으로 가지면 평생 불행하게 살 수 밖에 없는데 베드로는 두려워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갔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셔 그의 담대함으로 그의 감정을 회복시켜 주신 후 그는 평생 담대하게 살았습니다. 어떤 위협과 어려움 앞에서도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고, 담대하게 문제를 해결해 냈습니다. 적대자들이 감옥에 가두면서까지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는데도 죽음 앞에 서있는데도 예수님이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해주신 약속을 믿고 담대하게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외칩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4:19-20)라고 외칩니다. 평생 예수님과 함께 사는 우리 성도님들도 어떤 위협과 어떤 어려움과 어떤 장애물이 올지라도 베드로처럼 담대한 핵심감정을 가지고 장애물을 뛰어 넘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10)” 이 말씀을 믿습니까?
오늘은 세 번째로 예수님과 평생 함께 살았던 베드로의 핵심 능력이 무엇이었는가를 살펴보며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베드로는 유대교가 수천년 동안 지배한 사회에서 새로운 공동체 교회 공동체를 만들었고, 초대 교회 지도자로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갔고, 40년 동안 앉은 뱅이를 일으켰으며, 설교함으로 3천명, 5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와 예수님을 믿게 만들었습니다. 감옥에 갇혀서도 기적적으로 풀려났고, 심지어는 죽은 자를 살리기까지 했습니다. 인간으로서는 감히 할 수 없는 능력을 행하며 평생 제자화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살았는데 예수님과 함께 평생 살았던 베드로의 핵심 능력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시대마다 한 시대 쓰임받기 위해서는 핵심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핵심 능력이라는 말이 조금 생소할 것입니다. 교육학에서 생애능력(life competencies), 핵심능력(key competencies)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생애능력(life competencies)이란 전 생애를 걸쳐 직업세계 뿐만 아니라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능력을 말합니다. 기초 문해 능력, 수리 능력, 자기 주도 학습 능력, 자기 관리 능력, 대인관계 능력, 리더십, 의사소통 능력, 정보활용 능력, 문제해결 능력, 창의력, 사회적 능력, 시민의식, 직업 특수 능력, 실천 능력 등 다양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유치원때부터 성인 교육까지 이런 능력을 갖추기 위해 교육을 시킵니다. 생애능력의 중심이 되는 것은 4 가지라고 말합니다. 첫째는 기초 문해력, 둘째는 핵심 능력, 셋째는 시민의식, 넷째는 직업특수 능력입니다. 주로 우리가 어릴 때부터 이런 교육을 받았고 자녀들을 어릴 때부터 이런 기본 교육을 시킵니다. 그중에 핵심 능력(key competencies)은 특정 맥락에서 복잡한 요구를 성공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기초 문해력의 바탕 위에 직업생활을 포함하여 개인적 삶과 사회생활의 전반에 걸쳐 모든 사람에게 공동적으로 요구되는 최소 필수 능력으로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첫째는 의사소통 능력, 둘째는 문제해결 능력, 셋째는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말합니다.
시대마다 능력있는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핵심 능력을 기러야 합니다. 기업은 핵심 인재 전쟁을 하고 있고 핵심 능력이 없으면 환영받지 못합니다. 세계적인 기업인 구글이나 애플, 마이크로 소프트, 삼성전자 등은 핵심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2015년 교육 과정에서는 미래 사회에 필요한 핵심 능력을 갖춘 인재를 6가지 핵심 능력을 제시했습니다. “자기관리 역량, 지식정보 처리 역량, 창의적 사고 역량, 심리적 감정 역량, 의사소통 역량, 공동체 역량” 등입니다. 전경련은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현대자동차 등 국내 굴지의 11개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을 상대로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을 조사했는데 주요 요건의 공통점은 네 가지였답니다. “개인 역량, 국제 감각, 원만한 대인관계, 올바른 가치관”등 이었답니다. 급격히 변화되는 AI 시대에는 핵심 능력은 기계나 로봇, AI가 할 수 없는 유창성, 유연성, 독창성을 갖춘 창의성과 새롭고 독창적인 것을 생각해 내거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능력이 융합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창의융합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창의 융합 교육을 일선 교육 현장에서, STEAM 교육이라 불립니다. STEAM은 과학, 기술, 공학, 인문예술, 수학의 영어 앞자를 따서 만든 신조어입니다. “Science(과학), Technology(기술), Engineering(공학), liberal Arts(인문 예술), Mathematics(수학)” 등을 서로 융합을 함으로써, 더욱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말합니다.
사람에게 육체적인 힘이 있으면 힘든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정신적인 힘이 있으면 어려운 문제도 풀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고 영적인 일을 하는 것은 육체적인 힘이나 정신적인 힘으로 부족합니다. 영적인 힘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제자 삼는 영적인 일을 중심으로 전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초대 교회의 핵심 인재로 쓰임받은 베드로에게 필요한 핵심 능력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첫째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며”입니다. 둘째는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셋째는 권능을 받으면 불가능하게 보이는 제자화 사역이 지역과 인종의 벽을 무너뜨리고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증인으로 직무를 수행하는데 방해하는 장벽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무너뜨렸습니다. 이방 땅, 이방인에게도, 로마에까지 모든 장애물을 타파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이 증거되었습니다. 성령님은 오순절에 내려오심으로써 제자들 그룹과 예루살렘에 있던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는 일에 직접 관여하는 동시에 천하 각국의 언어로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나라와 언어의 경계를 돌파하는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행 2:1-3). 이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두나미스 다이나 마이트입니다. 지식의 능력,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능력이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경제력, 정치력, 군사력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사마리아에 부어짐으로써 유대와 사마리아를 가로막던 울타리를 철폐하였으며(행 8:14-24), 고넬료 가정에 강림함으로써 하나님 백성을 이스라엘 민족으로 제한하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이방인도 포괄하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통치를 천명하였습니다(행 10:44-48). 에베소 제자들에게 내려오심으로써 이방인의 땅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성령의 시대에 속한 백성으로 감싸 안았습니다(행 19:1-7). 성령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유대인으로 제한하는 경계를 무너뜨리고 이방인으로 확장시키는 능력을 보이며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과정에 직접 개입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에서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고(28:14-16),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한 내용이 기록하고 있습니다(행 28:31).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D.L 무디는 비록 그가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성령의 권능을받아 일생 동안 5천만명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능력있는 전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갖추어야 할 핵심 능력은 무엇보다 성령의 권능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권능의 원천인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기적(행 2:22; 8:13; 19:11),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행 3:12;4:7;10:38), 담대하게 변론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행 4:33; 6:8-10)의 원천은 사도들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에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베드로를 중심으로 말씀을 묵상하고 있기 때문에 베드로 측면에서 생각하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미 약속해 주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그들과 함께 하셨던 예수님이 떠난다고 하니까 제자들은 근심 걱정을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14:12)”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14:16)”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인류의 구원 사역을 완성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무엇을 부탁했습니까? 누가복음 24장 49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너희에게 보낸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성령을 받으면 너희가 능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때까지 예루살렘 성에서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대로 그대로 하여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2장 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베드로의 핵심 능력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성령의 권능은 바로 성령 충만에 있었습니다. 그가 성령 충만하여 방언을 말합니다. 그는 다른 나라 말을 배운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1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언어 능력을 어릴 때부터 배우지 않았는데 성령의 능력으로 바벨탑으로 소통이 안되었던 민족들이 자기 나라 말로 알아듣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게 되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시고(눅 4:1),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이겨내신 후, “성령의 능력”(눅 4:14-15)과 “주의 성령이 예수와 함께”(눅4:18)임하심으로 사역을 시작하셨고 이미 제자들에게 그런 능력을 주었습니다. 누가복음 9장 1-2절을 보면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라고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10장 19절에는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이 능력을 경험해 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을 받지 않으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심지어는 저주까지 하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능력을 받은 베드로는 달라졌습니다. 베드로도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을 시작하여 예수님처럼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병을 고치며 귀신을 제어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한 번 설교하실 때 3천명, 5천 명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돌아오지 않았는데 베드로는 성령 충만하여 한 번 설교하자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3천 명, 5천 명이 돌아온 것입니다.
베드로가 담대하게 산헤드린 공회 회원들 앞에서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에서 나왔겠습니까? 4장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성령 충만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3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그래서 초대 교회의 집사님을 뽑을 때 어떤 사람을 뽑습니까? 사도행전 6장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핵심 능력은 성령 충만에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놀라운 능력을 행한 것도 성령 충만에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 55절을 보십시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빌립 집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행8:29). 능력의 사람 바나바도 마찬가지입니다(행11:24). 한 시대에 위대한 사역을 감당했던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행전 13장 9절을 찾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바울은 평생 성령의 능력으로 주어진 사역을 감당한 것입니다(골1:29).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당시 의사로 최고의 지성을 가진 사람 중의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통하여 성령 세례, 성령 충만, 성령의 능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조직력을 의지하면 그 조직력으로 할 수 있는 일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성력을 의지하면 그 이성으로 할 수 있는 일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육만 의지하면 그 교육으로 할 수 있는 일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돈을 의지하면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일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지식을 의지하면 그 지식으로 할 수 있는 일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핵심 인재를 사용할 때 무엇보다 핵심 능력인 성령 충만을 주어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들에게 달란트를 주십니다. 이 달란트는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다 받는 것입니다. 자신이 열심히 계발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믿는 사람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십니다. 이것은 믿는 사람에게만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할 때 그 은사가 최대한 쓰임받게 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라고 말씀합니다. 성령 충만은 무엇이겠습니까? 성령 충만을 술 취함과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과 술 취함이 어떤 유사성이 있는 것을 보여 줍니다. 사도행전에 보면(행2:12-16) 성령 충만을 받았을 때 사람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고 했습니다. 마치 성령 충만하여 술 충만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술 충만하면 어떻게 됩니까? 술이 사람을 지배해버립니다. 술은 각성제이기 보다는 억제제입니다. 알콜은 중추신경을 자극하여 자율신경을 제기능을 못하게 하고, 지혜력, 이해력, 판단력, 균형 감각 등을 억제해 버립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못하도록 해 버립니다. 술에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도 성령에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생각이 성령에 지배를 받고, 감정이 성령에 지배를 받고, 의지가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행동이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충만하면 충만할수록 더욱 지배력이 강화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것이 있습니다. 술 충만하면 결과가 방탕하게 됩니다. 무질서하게 하고, 혼돈 상태에 처하게 하고, 이해력과 품위를 잃게 하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게 하고 자제력을 잃게 합니다. 아무리 많이 배워도 술 앞에는 꼼짝을 못합니다. 아무리 권력이 있어도 술 앞에서 실수하고 망신 사는 권력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술 취하면 술이 사람을 지배해 버립니다. 건강한 사람을 환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멀쩡한 사람을 야수로 만듭니다. 지혜로운 사람을 우매자로 만듭니다. 부자를 거지로 만듭니다. 장래가 총망되는 젊은이를 바보로 만들어 버립니다. 행복에 넘치는 가정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돼지같이 더럽게 하고, 원숭이 같이 춤을 추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을 질적으로 다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시고 지혜를 주시는 성령님이 지배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이성과 감성, 의지를 지배하여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일으켜 세워주는 것입니다. 이성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감정을 조절하게 해줍니다. 시기를 잠재웁니다. 분노를 억제해 줍니다. 다툼에 올가미를 씌워 버립니다. 남을 비판하고 욕하는 입술을 닫게 만들어 버립니다. 의지를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해 줍니다. 지혜를 주어 총명하게 합니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선한 양심이 생겨 다른 사람의 의식하고 사는 자제력을 가지게 됩니다. 허랑방탕하게 낭비적 생활을 하던 사람이 절제할 수 있게 됩니다. 게으른 사람을 부지런하게 합니다. 불안하던 사람이 평안해지고, 슬픔에 잠겨 우울하게 살던 사람이 어떤 경우에고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도덕적인 삶이 회복되고, 인생의 목표가 회복됩니다. 창공을 나는 독수리처럼 새 힘을 얻게 합니다. 공동체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고 평강이 넘치게 합니다. 고약한 술 냄새 풍기지 않습니다. 더러운 말을 하지 않습니다. 거룩한 인격을 가진 성령의 지배를 받으니까 바나바처럼 선하게 인격이 변화됩니다. 어둠 가운데 걸어 다니지 않고 방탕함과 온갖 더러운 것들을 취하고 행동하지 않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성령으로 생명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을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가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니까 3천명, 5천명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집니다. 스데반이, 빌립이, 바울이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전할 때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인격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도저히 변하지 않을 것같은 사람들이 변화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인격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로마서 5장 5절에는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서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사도행전 6장 10절에 보면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라고 말씀합니다. 스가랴 4장 6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 세례는 단회적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반복적으로 받아야 합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성령 세례뿐 아니라 성령 충만도 강조하고 있습니다(2:4, 4:8, 5:3,55, 9:17, 11:24). 핵심 능력을 가지고 이 땅에서 주어진 사명을 성공적으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우리의 삶 전 영역에서 성령님께서 지배하고 인도하는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첫째는 예수님을 나의 구원주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8-39)
이미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성령님을 마음에 모셨다면 성령 충만을 위해서 성령 충만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우리들의 삶을 지배해 주기를 원하는 열망을 가져야 합니다. 성령의 존재가 없는 것처럼 사시면 안 됩니다. 성령님을 근심시키고(엡4:30) 성령을 소멸해서는 안됩니다(살전 5:19)
둘째는 성령은 거룩한 영이기 때문에 잘 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 회개하여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을 찾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셋째는 성령 충만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
오순절의 성령도 기도하다 받았습니다(행1:14). 행4:23-31에도 기도하다 받았고, 행8:15-17에도 기도하다 받았습니다. 왕하2:9 엘리사도 구하여 받았습니다.
넷째는 말씀에 순종해야 성령 충만을 받습니다.
사도행전 5장 32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행 5:32)" 행1:12-14의 행동은 곧 행1:4,5의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상황, 어떤 장애물, 어떤 전쟁에서도 승리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맡겨준 사명을 성공적으로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리 신앙인의 핵심 능력은 성령 충만에 있습니다. 삶의 갖가지 문제를 내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해결하고 극복할 수 있습니다. 호주의 선천성 사지절단 장애인 닉 부이치니(Nick Vujicic)는 “우리가 어떤 한계에 놓여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한계를 극복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온갖 불가항력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가 있습니다. 환경의 한계, 배경의 한계, 학벌의 한계, 건강의 제한, 재력의 한도, 성의 한계, 재능의 한계, 시련과 실패의 극한 상황 등 그야말로 불가항력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씁니다.
가난하다고,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고리타분하다고, 재미가 없다고, 형식적이다고, 교회 다녀보았자 아무 이익이 없다도, 교회 생활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예배드려도 감격도 기쁨도 없다고,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꾸 교회 생활 외면하고 멀리하지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면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하여 성령 충만을 받아 보십시오. 감격과 기쁨과 활기가 생길 것입니다.
내 능력 없다고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성령 충만하면 우리에게 맡겨준 일을 넉넉히 감당할 능력이 생깁니다. 성막을 짓는 브사렐을 보십시오(출31:3).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충만히 임하니까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를 발휘하여 성막을 짓게 됩니다.
지혜 없다고 가방끈 짧다고 패배의식에 사로잡히거나 열등의식의 노예가 되지 마시길 바랍니다.
성령 충만하면 지혜가 생깁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가 되어 안수를 받을 때 지혜의 영이 그에게 충만히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령 충만하여 백성들을 다스리니까 어떻게 됩니까? "(신 34: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집안이 변변치 못하고 과거가 지저분하다고 자꾸 과거의 노예가 우울증과 무기력으로 방구석에만 처박히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성령 충만하면 사람이 이해 못하는 강력한 힘이 생깁니다.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시니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습니다(삿 14:6)" 능력의 한계를 초월하게 합니다.
소심하고 성격이 모났다고 주어진 일을 회피하고 도전도 못하는 못난이가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성령 충만하면 담대해집니다.
성령 충만한 부모 밑에서 낳아 성령 충만한 세례 요한을 보십시오.(눅1:15, 41, 6) 담대하게 천국을 전하고 그 악한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였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한 스데반을 보십시오.(사도행전 6:5절 행7:55)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말씀을 전합니다. 담대하게 사명을 감당하게 합니다.
영적 권세가 없다고 교회를 10년 다녀도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성령 충만하면 강력한 영적 능력이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 충만하여 엘루마를 꾸짖으니까 엘루마는 소경이 되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행13:9)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망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하면 바른 길로 인도를 받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 성령 충만한 바울은 아시아에서 전도하고자 했으나 성령께서 허락하지 않으시자 성령의 인도에 따라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욕심이 너무 강하다고 스스로 자신을 정죄하며 나는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신앙에서 떠나지 마시길 바랍니다. 성령 충만하면 육신의 욕망을 극복하게 합니다.
사도행전 11:24의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여 육신의 욕망을 물리치고 성령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과 평생 함께 사는데 필요한 핵심 능력은 성령을 받고 성령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사랑의 능력이 생깁니다. 성령 충만하면 찬양의 기쁨이 샘솟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기도에 능력이 생깁니다. 성령 충만하면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성령 충만하면 은사를 충분히 개발할 수 있는 지혜가 생깁니다. 성령 충만하며 고전 12장에 말씀하신 갖가지 신비한 은사가 나타납니다.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면 생명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시겠습니다. 성령을 받고 그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성도님의 삶의 현장에 이런 축복이 임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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