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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미래(12) 은혜 안에서 풍성한 삶(빌4:10-13)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2051 추천수:12 112.168.96.71
2015-09-13 13:53:18

 

더 좋은 미래(12) 은혜 안에서 풍성한 삶

빌4:10-13(고전15:10)

 

북한에 대한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한 농부가 집단농장에서 일하다 강에서 고기 한 마리를 잡았답니다.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것봐. 우리 오늘 물고기 튀김을 먹을 수 있겠어!"라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아내가 "기름이 없잖아요?"라고 말했답니다. 남편이 "그럼 찜을 하자."하니까 아내는 "솥이 없어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남편이 "그럼 구워 먹자."라고 하니까 아내는 "땔감이 없는데…"라고 말했답니다. 농부는 화가나서 다시 강으로 가서 물고기를 놓아줬답니다. 그러자 물고기는 물에서 원을 그리며 노닐다가 윗몸을 물 밖으로 내밀더니 오른쪽 지느러미를 치켜들고 흥분된 목소리로 크게 외쳤답니다. "김정은 장군님 만세!"

빈궁한 북한의 실상으로 누가 유머로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풍요로운 남한에 사는 우리들은 불평불만 없이 풍성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풍성한 삶으로 이루어질 더 좋은 미래를 기대하고 있습니까?

죽음이 임박한 사도 바울은 오늘 성경을 통해 은혜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교도소에 있을 때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집도 자식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18절을 보십시오. 내가 풍족하다고 합니다. 비록 교도소에 있지만 자신의 삶이 넉넉하고 풍족하다고 말씀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풍성한 열매를 구합니다. 빌립보 교인들의 장부가 풍성한 열매로 채워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풍성한 대로 너희 쓸 것을 채워주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분의 풍성하심을 따라 여러분의 모든 필요를 차고 넘치도록 풍족하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쉬운말 성경)” 인생 말년에 풍족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미래의 삶에 이런 풍성한 삶이 펼쳐지시길 축원합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어떻게 은혜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1. 항상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10).

빌립보서를 쓸 당시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1:7, 13, 14,17).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1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있습니다. 기뻐하기는 기뻐하되 어떻게 기뻐합니까? 살짝 미소짓는 것이 아닙니다. 메가톤 급으로 기뻐하는 것 입니다. 누가 기뻐합니까? 내가입니다. 사도바울이 고난당하는 것을 보며 로마 군인들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고난당하고 있는 바울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기뻐합니까? 주님 안에서입니다. 돈 없어도 병들어도 감옥에 갇혀도 미래가 불확실해도 주님 안에 있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 영원한 천국에 이르도록 보호해 주실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에 기뻐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

은혜로 사는 사람들은 항상 있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세요.

“여러분이 다시금 나에 대해 생각하고 관심을 보여 주니, 나는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합니다. 사실 여러분은 예전부터 나를 늘 생각하고 걱정해 왔었지만 그것을 보여 줄 기회가 없었습니다.(쉬운말 성경)”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개척한 교회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선교하는데 선교 후원금을 보내어 주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다른 교회는 선교 후원을 안했지만 빌립보 교회만큼은 선교 후원금을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선교 후원금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에바브로디도 편에 선교 후원금을 보낸 것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그것을 받고 기뻐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에게 안 보내어 주었던 것 보며 괘씸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헌금 보냈다고 투덜거리는 것 아닙니다. 세상은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늘 있습니다. 밝은 면 보고 사는 것이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1장 18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어떤 형편이든 예수님만 증거되면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2장 17절을 보십시오. 자신이 성도를 위해 제물이 된다해도 기뻐하겠다고 합니다. 2장 18절에서 그리고 성도들에게 기뻐하고 기뻐하고 말씀합니다. 3장 1절을 보십시오.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장 4절을 보십시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잘 될 때나 잘 안될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 때나, 성공할 때나 실패할 때나, 젊을 때나 늙을 때나 기뻐하는 것입니다. 한 평생 은혜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려면 어떤 환경에서도 기뻐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TV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뽀빠이 이상용씨가 전남 곡성의 107세 된 할아버지를 만나서 인터뷰를 했답니다. "할아버지, 이렇게 오래 사신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 할아버지가 "할아버지가 뭐야? 그냥 형님이라고 불러!"라고 그러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상용씨가 "아, 형님 죄송합니다. 형님, 오래 사신 비결이 뭐죠"라고 질문했답니다. 그러자 "비결은 무슨......안죽으니까 오래 살았지!"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이상용씨가 웃으면서 계속해서 질문합니다. "형님, 그동안 살아오며 미운 사람도 많았을텐데 스트레스도 없이 어떻게 그런 걸 다 참고 사셨어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응 미운 사람들도 있었지. 하지만 그냥 내버려 뒀어. 그랬더니 지들이 알아서 80~90살이 되니 다 죽던데 뭘. 미운 사람 있어도 그냥 즐겁게 오래 살면 돼! 절대 화 내지마! 화날 때는 그냥 웃어버려! 하하하........이렇게 말야"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웃음과 울음이 없어집니다. 캘리포니아주 로마린다 의대의 심장 전문의 존 코긴 박사는 "어린아이들은 하루에 평균 4백 번을 웃는데 비해 어른은 겨우 열 다섯 번을 웃는다"고 합니다. 사람이 80년 인생을 산다면 26년 잠을 자고 21년 일을 하고 9년 먹고 마시지만 웃는 시간은 겨우 20일 뿐이라고 합니다. 하루 15초만 웃어도 이틀의 수명이 연장되고 하루 45초만 웃어도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웃을수록 행복은 커진다는 것입니다. 웃음은 안전하고 부작용이 없는 훌륭한 약입니다. 면역력 높여주고 여분의 칼로리도 태워줍니다. 억지로 웃어도 90% 이상의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입이 웃으면 인생도 웃는다는 것입니다.

 

신문을 보니까 껄껄 웃으면 임신율도 '쑥' 올라간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아사프 하로페 병원 연구팀은 시험관 시술을 받은 불임 여성 186명을 대상으로 임신 성공률을 조사했답니다. 대상 여성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배아를 자궁에 이식한 직후부터 한 그룹에는 웃음치료를 제공하고 다른 그룹에는 웃음치료를 제공하지 않았답니다. 그 결과 웃음치료를 받지 않은 불임 여성의 임신 성공률은 19.3%에 불과했고, 웃음치료를 받은 여성은 35.5%에 달했답니다.

 

웃으면 암도 치료된다고 합니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주부인데(고순영) 2007년 유방암을 치료한 지 2년 만에 폐로 전이됐답니다. 다시 항암치료가 시작됐고, 통스러운 시기를 보냈답니다. 내성이 생겨 약도 바꿔야 했답니다. 암의 크기는 줄었지만 항암제의 독성에 몸이 망가졌답니다. 체력은 바닥났고 우울한 날이 이어졌답니다. 남편 권유로 웃음치료를 받았답니다. 매일 매일 웃다보니 어느새 몸이 가벼워지고 활기가 생겨 암에서 해방되었답니다.

 

웃은 사람이 보편적으로 장수한다고 합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달스트롬(Dahlst rom) 박사는 의대생 255명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했답니다. 조사 대상을 분노 수치가 높은 그룹과 분노 수치가 낮은 그룹으로 나눈 뒤 25년이 흘러 50대가 됐을 때 사망률을 조사했답니다. 그 결과, 분노 수치가 높은 그룹은 분노 수치가 낮은 그룹에 비해 사망률이 7배나 높았답니다. 심장질환자도 5배나 많았답니다. 118명의 법대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답니다. 분노 수치가 높은 그룹은 이미 20%가 사망한 반면 그렇지 않은 그룹의 사망률은 4%에 불과했답니다.

 

웃음은 면역체계를 강화한다고 합니다. 평상시에도 우리 몸속에 하루 5000~1만 개의 암세포가 발생하지만 암에 걸리지 않는 것이 이 면역체계 덕분이라고 합니다. 바이러스나 암세포가 생기면 NK세포로 알려진 선천성 면역세포가 초기에 진압한답니다. NK세포로 다 해결되지 않으면 D세포(수지상세포)가 남은 세포들을 발견해 림프조직에 정보를 전달하고, 후천성 면역체계를 담당하는 T세포가 이들을 공격해 없앤답니다. 이들 면역세포는 혈액의 백혈구를 구성하는 림프구 안에 있는데, 신경전달물질이 면역세포의 균형을 맞춘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 바로 스트레스인데 스트레스는 NK세포와 T세포의 수를 줄이고 림프구를 적어지게 해 면역력을 약화시킨답니다. 웃으면 신경전달물질인 엔돌핀·엔케팔린·세로토닌·다이돌핀의 분비를 촉진해 면역체계를 다시 최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입니다.

 

웃는 사람이 부자로 잘 산다는 것입니다.

“회복탄력성(김주환 저)”이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하커와 켈크너는 30년간 면밀한 추적 연구조사를 했답니다. 1958년과 1960년에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있는 밀즈 칼리지 졸업생 141명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졸업생의 표정을 전문가들이 정밀하게 분석했습니다. 분석 대상 중 50명의 사람은 눈꼬리의 근육이 수축되어 눈이 반달 모양이 되는 환한 뒤센의 미소를 짓고 있었답니다. 나머지는 카메라를 보며 인위적 미소를 짓고 있었답니다. 이 사진의 주인공들이 각각 27세, 43세, 52세 되는 해에 연구자들은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삶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비교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환한 긍정적 미소를 지었던 '뒤센 미소 집단'은 '인위적 미소 집단'에 비해 훨씬 더 건강하였으며 병원에 간 횟수도 적었고 생존률도 높았답니다. 결혼 생활만족도도 높았으며 이혼율은 낮았답니다. 평균 소득수준도 높았답니다. 같은 해에 졸업한 여대생 중에서 뒤센의 미소를 지었던 여성들이 훗날 더 좋은 삶을 살고 있었답니다.

혹 뒤센의 미소를 지은 여성들이 예쁘고 매력이 있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하여 연구하였지만 그러나 예쁘고 안 예쁘냐는 그 사람의 건강이나 행복한 결혼 생활 혹은 소득 수준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고 합니다.

은혜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기 원하신다면 항상 주 안에서 기뻐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2. 어떤 환경에서든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11-12).

1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지금 내가 궁핍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나는 어떤 환경에서든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바울은 어떤 환경에서든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산 것입니다.

은혜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강조점이 “어떤 형편”입니다. 이 형편은 “일이 되어 가는 상태나 경로 또는 결과”입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습니다. 가난하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후원금을 보내다가 끊을 수도 있습니다. 성도들이 설교를 못한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이중인격자라고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태장을 맞기도 하였습니다. 그 어떤 형편에 처해도 자족하기를 배웠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습니까? 이웃집 아저씨가 아닙니다. “나”입니다. 스스로 만족한다는 말입니다. 1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궁핍하면 궁핍한 대로 넉넉하면 넉넉한 대로 사는 법을 잘 압니다. 배부르든 굶주리든 풍족하든 궁핍하든 어떤 상황에 처하든 나는 스스로 만족하면서 사는 비결을 터득했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 받은 사람들의 풍성한 삶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지 하나님만 아십니다. 어떤 미래가 전개되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하면서 삽니다. 마땅히 누려야 할 재물이나 권리, 자격 따위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것이 박탈감입니다. 이런 박탈감은 크게 상대적 박탈과 절대적 박탈감이 있습니다. 절대적 박탈이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최소 수준의 가치충족이 결핍된 상태를 말합니다. 절대적 박탈감은 객관적인 상태에, 상대적 박탈감은 주관적인 느낌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런 상대적 박탈감은 비교하는 준거기준이 중요합니다. 월급 1천만원을 받는 사람일지라도 비교기준을 1억 받는 사람을 잡으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50만원을 받아도 5년 동안 취업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준거집단에 기준을 두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만족한 삶을 살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끝없이 욕구를 채우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조금 고상한 방법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모든 욕심을 물리치고 자신을 비우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도 사체(四諦) 팔정도(八正道)를 말하면서 자아(自我)에 붙은 욕심을 버릴 때 가능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욕심은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고 자아는 비워도 비워도 죽기 전까지는 비워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 인생은 참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상대적 박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제 3의 방법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은혜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바울은 기준은 0을 기준으로 삼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로 사는 사람들의 기준입니다. 본래 우리가 아무것도 없이 적신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말할 때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던 자가 예수님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하며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운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삶이 오직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한 은혜라는 것입니다. 히브리 민족에게서 엄청난 존경을 받던 가말리엘 문하생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사랑을 받은 베냐민 지파의 혈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대단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는 영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와 우리 성도님의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나의 나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의 달려갈 길 다 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한량 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이렇게 은혜를 기준으로 사는 사람은 어떤 경우든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욕구 충족을 통해 만족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으로 주님 안에서 만족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10). 자아를 비움으로 만족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사시는 예수님으로 만족을 누리는 것입니다. 욕구 충족을 통해 만족을 얻으면 결국 그 욕구를 충족시켜줄 대상이나 물건, 소유가 있을 때는 만족하면 즐거워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에 쌓이게 됩니다. 건강이 만족을 준다면 건강할 때는 만족하지만 건강을 잃으면 만족하지 못합니다. 돈이, 명예가, 이성이, 학식이 우리에게 만족을 준다면 그것들이 있으면 만족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불만가운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로 인생을 받아들이면 지금 있는 것으로 만족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1:7,13). 그런데도 그는 만족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는 아내도 없습니다. 자식도 없습니다. 재물도 없습니다. 건강치도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명예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끝없는 복음 증거로 육체는 피곤한 상태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감옥생활입니다. 그런데 그는 무엇을 보며 만족해합니까? 빌립보 교인들의 사랑을 생각하면서입니다. 그를 비난하는 교회도 있었지만 그들을 본 것이 아닙니다. 빌립보 성도들이 그를 생각하여 선물을 보낸데 대해 그는 감사하며 만족해하는 것입니다.

은혜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기 원하신다면 어떤 환경에서든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3. 모든 것을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루어 나누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13).

1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바울의 은혜 안에 풍성한 삶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바울은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자신의 힘이 아닙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입니다. 불만을 쌓게 만드는 모든 것을 극복할 힘을 하나님으로 통해 얻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만족하며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능력을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상상 빈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돈이 있으면서도 거지처럼 사는 것을 말합니다. 빌 리온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로 살았답니다. 극도의 영양결핍상태에 빠진 그는 병원에 실려 와서도 다른 환자들을 상대로 담배나 초콜릿을 구걸하곤 했답니다. 놀라운 건 그가 60만 달러(약 7억)를 지닌 재산가였다는 것입니다. 영국 브링튼의 앤터니 클라크박사는 상상빈곤 환자 30명을 관찰해 보았답니다. "이들 환자들의 대부분은 지적 수준이 매우 높은 사람들"이었답니다. 매우 높고 훌륭한 가정에서 성장했으며, 존경받는 직업을 가졌었다고 밝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이 세상 주인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 43:1)” 우리 위축될 필요 없습니다. 두려워하며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못한다고 불평과 원망을 입에 달고 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면 아무리 많이 있어도 풍성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큰 빌딩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가 아들을 회사에 취직을 시켜 주었답니다. 돌아온 아들이 아버지한테 불평을 늘어놓았답니다. “발바닥이 닳도록 뛰어다녔는데 부장이란 작자가 자기는 회전의자에 앉아서 전화 안 받았다고 화를 내며 잔소리까지… 세상 더러워서 못해 먹겠어요!” 아버지는 아들의 불평에 견디다 못해 죽는 사람들을 보면 인생을 배울 것 같아 아들을 공동묘지 무덤지기로 취직시켜 주었답니다.

퇴근하고 돌아온 아들에게 “하루 종일 앉아서 근무하는 직장 요즘 드물다, 어때 좋았지?” 그러자 아들이 “좋기는요! 더러워서 못해 먹겠어요.” “아니 왜?” “나 혼자 의자에 앉아 있는데… 모두들 누워 있잖아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끝없이 불만을 가지고 원망과 불평만 하면 어떤 환경에서도 은혜로 풍성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로사다 비율(Losada ratio)”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을 할 때 똑 같은 상황인데도 긍정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 있고 반면에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말에 따라 미래가 상당히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바버라는 60개 기업을 방문하여 업무회의에서 주고받는 말을 모조리 기록하게 하였답니다. 20개 기업은 잘 나가는 기업이었고, 20개는 양호한 수준이었고, 20개 기업은 쇠퇴하는 기업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각 단어를 긍정과 부정으로 나누고 비율을 살펴보았습니다. 긍정적 단어 대 부정적 단어의 비율이 2.9대 1보다 높은 기업은 잘되는 중이었고 그보다 낮은 기업은 경제적으로 좋지 않았답니다. 이 비율은 이 사실을 발견한 브라질 출신 마르셀 로사다의 이름을 따서 로사다 비율(Losada ratio)이라고 합니다.

존 고트먼은 부부들의 주말 대화를 분석한 결과 동일한 비율을 얻었다고 합니다. 긍정과 부정이 2.9대 1의 비율에 이르면 이혼할 가능성이 많다고 합니다. 다정하고 안정된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5대 1 정도의 비율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배우자에게 비난의 말 한 마디 할 때 긍정적인 말 다섯 번은 해야 안정적이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자신의 능력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생각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나에게 주어진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지배하시고 능력주시면 그가 원하시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사신 것을 믿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만족하지 못하는 불가능한 환경을 극복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문제도 해결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안 되지만 전능하신 주님께서 나에게 힘주시고, 불가능한 환경도 극복케 해 주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면 그 삶은 은혜 안에서 풍요로운 삶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결심으로 안 됩니다. 의지로 안 됩니다. 능력으로 안 됩니다. 노력으로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으로는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로 믿고 있는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부족한 가운데 만족하면 이웃과 나누는 삶을 우리도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도움을 준 빌립보 교인들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까? 1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여기서 너희는 누구겠습니까?

빌립보 교인들입니다.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바울을 도와준 이 편지를 받고 있는 빌립보 교회 교인들입니다. 바울과 고통을 함께 나눈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으로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는 것입니까? 15, 16절을 보십시오. 마게도냐를 떠날 때 사도바울을 헌금으로 도와주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도 쓸 것을 보내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① 주님 안에서 기뻐하였습니다(10) ②그들을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기도하였습니다.(17) ③ 바울이 풍족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18) ④하나님이 기쁘시게 받는 제물이 되었습니다.(18)

나눈다고 가난해 지고 불행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쌓아 놓는 다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나누는 것이 풍요로운 삶입니다. 아무리 쌓아 놓아도 나누지 못하면 풍요로운 삶이 되지 못합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너무나 풍요롭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참 풍요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욕심꾸러기인 의류 제조업자인 장로님이 있었답니다. 돈이 많아 어떻게 장로가 되었는데 겨우 하는 것은 교회에서 체면상 할 수 밖에 없는 의무만 했답니다. 어느 날 죽었답니다. 천사 앞에 섰답니다. "어째서 너는 자신이 천국에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하는가?" 라고 물었답니다. "나는 길거리의 불쌍한 장님에게 백 원을 준 적이 있습니다." "그 뿐인가?" "아뇨, 물론 또 있어요. 지난주에 산책 나갔다가 구두닦이 소년을 보았습니다. 그는 얼어 죽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나는 또 백 원을 주었습니다!" 천사는 옆에 있는 기록 담당자에게 물었답니다. "기록되어 있나?" 기록 담당자는 장부를 뒤적여 그런 사실이 있었음을 확인하여 주었답니다.

천사는 질문을 계속하였다. "그 밖에는?" "저, 그게 전부라고 생각합니다만..." 천사가 기록담당자에게 물었답니다. "이 사나이를 어떻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나?" 그러자 기록 담당자가 대답하였답니다. "이 백 원을 돌려주고, '지옥으로 가라!' 고 말씀하십시오!"

세상에 모든 것을 주고 가신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이것이 은혜로 풍요로운 삶입니다.

하나님은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풍성한 공급자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풍성하게 채워주십니다. 풍성히 채워주시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입니다. 우리를 위해 독생자까지도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풍성하신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풍성히 채워 주십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을 위한 축복의 말씀입니다. 풍성하신 하나님은 영광 가운데 풍성히 채워주십니다. 풍성하신 하나님은 그 풍성한 대로 모든 쓸 것을 채워 주십니다.

은혜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기 원하신다면 모든 것을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이루어 나누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오늘 부로 더 좋은 미래에 대한 시리즈 설교를 마감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미래가 더 좋은 미래로 펼쳐지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저와 우리 성도님의 삶 가운데 얼마든지 더 좋은 미래가 다가 올 줄 믿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은혜 안에서 더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면

첫째 항상 주 안에서 기뻐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둘째 어떤 환경에서든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셋째 모든 것을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이루어 나누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15.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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