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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미래(11) 믿음으로 기대하기(마가복음 10:46-52)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9519 추천수:6 112.168.96.71
2015-09-06 17:18:43

 

더 좋은 미래(11) 믿음으로 기대하기

마가복음 10:46-52

 

누구나 다 더 좋은 미래를 기대하고 삽니다. 그러나 세상사는 것은 만만치 않습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희망의 사다리가 끊어졌다고 비관적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앞으로 잘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부 잘할 수 있을 거야(교육),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을 거야(고용), 사업이 성공할 거야(창업),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 거야(주택), 더 건강해질 거야(건강),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거야(가정)” 등의 각종 경로를 통한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악의 취업난과 불황이 지속되면서 ‘인구론(인문계 졸업생의 90%는 논다)’, ‘장미족(장기적으로 취직을 하지 못하는 구직자들), 빨대족(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자녀들)’ 등의 신조어가 등장하였습니다. 7포 세대라고 합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와 인간관계· 내집마련을 포기한 ‘5포 세대’가 나타나고, 최근엔 희망과 꿈마저 놓아야 하는 ‘7포 세대’ 청년층이 급증했다는 것입니다. 통계청 기준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청년 실업자는 44만 9천명이라고 하지만 취업준 비생을 포함한 잠재 구직자와 시간제로 일하고 있지만 취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115만 7천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배부른 기업은 배가 터질 정도로 불러 있다고 합니다.

지금의 우리 사회를 “1000조원:1000조원”으로 표현한 글을 보았습니다. 이것인 오늘 한국 경제의 적나라한 자화상이라는 것입니다. 2015년 현재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쌓아놓은 저축금(사내유보금)이 1,000조원인데 반해, 모든 가계의 빚이 1,000조원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 1,000조 가운데 30대 재벌그룹의 사내유보금은 무려 710조원으로 작년 한국 GDP 총액 1500조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이라고 합니다. 돈이 모이는 곳으로만 몰려 재벌들의 배는 부풀대로 부풀어 오르는데 가계들의 배는 달라붙을 대로 달라붙었다는 말입니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소득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16.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조세연구원은 우리나라 소득 상위 1%가 한 해 버는 돈이 38조 4,790억 원으로, 전체(231조 9,560억 원)의 6분의 1을 차지한다고 밝혔습니다.

국민 중 560만 명이 빈곤층이라고 합니다. 자영업자 720만 명 중 414만 명은 월 100만원도 못 번다고 합니다. 창업한 뒤 3년을 버틴 자영업자는 46.4%에 그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우리 신앙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미래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앞으로 잘 될 거야”라고 믿고 살아야 합니다. “공부 잘할 수 있을 거야(교육),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을 거야(고용), 사업이 성공할 거야(창업),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 거야(주택), 더 건강해질 거야(건강),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거야(가정), 신앙생활 더 잘 할 수 있는 것야(신앙), 우리 교회가 더 부흥될 거야(교회), 우리 성가대가 더 잘 될거야, 우리 유치부가 더 잘 될거야, 직장 생활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부모 노릇 더 잘 할 수 있을 거야, 자식 노릇 더 잘할 수 있을 것야, 부자가 될 수 있을 거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라고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에서 유를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얼마든지 더 좋은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더 좋은 미래를 기대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떤 믿음으로 우리는 더 좋은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있겠습니까?

 

1. 우리는 구원받는 믿음으로 더 좋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47,52)

오늘 성경에 보십시오. 더 좋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전혀 불가능한 사람이 나옵니다. 여리고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화려한 도시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도시에 초라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46절을 보십시오. 바디메오입니다. “바”라는 말이 아들이라는 말이니까 디메오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이름도 없는 것입니다. 가족들은 그를 가족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피해를 주는 짐덩어리로 취급했을 것입니다. 가족에게 불행을 던져주는 그가 차라리 빨리 죽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가족은 차라리 이 아이만 없어지면 자신이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앞 못 보는 맹인이었습니다. 당시 이런 장애인은 저주받은 인생으로 취급받아 사람들이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정상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일가친척으로 부터도 배척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구걸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이 사람 앞에 더 좋은 미래가 펼쳐질 것을 꿈에도 생각을 못했을 것입니다. 7포 정도가 아닙니다. 미래를 완전히 포기하고 살 수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지금처럼 장애인 인권이 보장되던 때가 아닙니다.

고대에는 장애인들을 공동체의 유지, 존속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추방하거나 유기하는 것을 당연시했습니다. 특히 스파르타 사람들은 리쿠르구스 법전(Lycurgus,B.C 800년경)에서는 장애인과 노약자를 산중에 유기할 것을 명시하였습니다. 로마인들은 장애인을 강물에 던져 익사시키거나 투기장의 주인공으로 삼았으며, 또한 뚜렷한 장애를 보인 아동들은 광장에 목매달아 죽였고 후천적으로 장애를 입게 된 아동들도 살해하는 것을 허용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자신의 장애에 집착하고 살았다면 우울증에 걸리고 자포자기하고 자살을 기도했을지도 모릅니다. 왜 부모님이 장애자로 태어나게 했느냐고 부모를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왜 태어날 때 좀 더 좋은 DNA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게 하지 이렇게 멍청하고 못나게 태어나게 했느냐고 늘 부모를 원망하고 살 수 있는 조건입니다.

요즈음 같으면 이 장애인은 세상이 자신을 죄인처럼 취급하고 걸레처럼 취급한다고 불을 지르고 좋은 차를 극고 다니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구걸하는 바구니에 한 푼도 던져주지 않는 부자들을 보며 돈 있는 놈들이 인색하다고 욕하며 저주를 퍼부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안 되냐며 지극히 열등감에 사로잡혀 방구석에 쳐 박혀 자학하며 인생을 한탄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상상할 수 없는 좋은 미래가 펼쳐졌습니다. 신나는 미래, 건강한 미래, 자유로운 미래, 기뻐 어쩔 줄 모르는 미래, 인생의 장애물이 다 제거된 미래가 펼쳐졌습니다. 어느 날 오랜 세월을 장애와 가난과 소외와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던 그에게 그의 미래가 완전히 달라지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까?

4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자신이 구걸하고 있는 여리고를 길거리를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 무엇이라고 외치고 있습니까?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자신은 불쌍한 존재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합니다. 구원이 필요한 존재인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예수님을 구약에 약속한 메시아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메시아가 이 땅에 오면 질병이 치유될 것을 예언해 주었습니다.

이사야 35장 5절에 보시면 메시야가 오시면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1장을 보시면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혀서 사람을 보내어 '오실 그 분이 당신입니까?' 라고 질문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소경의 눈이 열리고 귀머리가가 듣고 있다"고 말하게 하였습니다. 바로 메시야적 기적 사역의 증거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겔 34:16; 사 33:24; 사 35:6)

나사렛에서 태어난 예수님이 바로 이 땅에 메시아로 오셔서 질병을 치유해 줄 것으로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불쌍히 여겨 주시면 넉넉히 인생의 가장 고질적 문제인 질병을 치료해 주실 줄 믿은 것입니다.

 

이런 그의 마음을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까? 5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어떻게 생겨났습니까? 47절을 보십시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오늘날도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 보면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은혜로 축복으로 믿음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장애 때문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구원받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가난 때문에, 질병 때문에, 자녀의 장애 때문에, 능력의 인간의 한계 때문에, 실패 때문에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고 영생을 누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가장 좋은 미래는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잘 살아도 지옥가면 그것은 불행입니다.

 

미국의 무신론 단체는 "안심하세요. : 지옥은 없습니다. 천국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즐기세요."라고 말합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호킹은 "천국은 동화 속에 나오는 것에 불과하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람은 진화되었고 우주가 빅뱅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원인이 없이 결과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질량불변의 법칙이나 엔트로피 법칙은 진화론이나 빅뱅설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자들을 향하여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14:1)"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시2:4)"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죽음 이후에 또 다른 내세가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신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천국과 지옥은 사람들의 관념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라 실존하는 세계임을 성경은 명백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동화의 세계, 종교의 세계가 아니라 실존하는 세계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지옥이라는 말이 22번 나오는데 예수님이 14번 사용하십니다. 예수님은 사기꾼이거나 정신병자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전해 주신 말씀의 주제가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천국은 죽음도 고통도 눈물도 슬픔도 없는 장소이지만 지옥, 음부, 하데스는 고통의 장소입니다. 지옥은 단 한 방울의 물의 자비도 끊어진 장소입니다. 지옥은 다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장소입니다. 희망이 없는 장소입니다.

단테는 "신곡"에서 지옥의 대문에는 "여기에 들어오는 자여, 모든 소망을 버릴지어다."라고 써 놓았습니다. 토마스 부룩스는 "만일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고통과 슬픔, 비참함과 불행을 한꺼번에 당한다 해도 그것은 지옥의 가장 가벼운 고통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지옥은 끔찍한 곳입니다. 영원한 불 못입니다. 예수님은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마18:8)"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구주로 믿는 자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잘 사는 것 때문에 예수를 믿지 않는 삶보다 못살아도 예수를 구주로 믿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이 땅의 풍요로운 삶 때문에 예수님을 모르고 사는 삶을 살고 싶습니까? 조금 힘들어도 그 힘든 것 때문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삶을 살고 싶습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너무나 인색하여 평생 남에게 밥 한 끼 사지 않는 사람이 죽어 지옥의 문지기 앞에 섰답니다. 문지기와 시비가 붙었답니다. 그러자 천사장이 나타나 "왜 이리 시끄러운고?"라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지옥 문지기가 "이놈이 지은 죄가 많아 지옥에 보내려고 하는데 자기도 착한일 한 가지 했으니 천당엘 가야 한다고 우기지 뭡니까?" 말했답니다. 그러자 천사장이 "그래 네가 어떤 착한 일을 했는냐?"라고 물어보자 왕 구두쇠는 "그게 말이죠, 제가 길을 가다 500원을 주웠거든요. 그래서 말이죠, 제가 그 500원을 거지에게 줬거든요."라고 했답니다. 그 말은 듣고 있던 천사장은 시큰둥해하며 한 마디 했답니다. "야, 쟤 500원 줘서 지옥으로 보내!"

지금 있는 장애를 짐덩어리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그것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도구가 되어 예수님을 나의 메시아로 믿고 영원한 천국이 보장되는 삶을 살게 된다면 그것은 축복의 도구입니다.

 

2. 우리는 능력 있는 믿음으로 더 좋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48-49).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영원한 천국 가장 좋은 미래는 보장됩니다. 그러나 오늘 현실은 바로 천국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지옥처럼 살게 만드는 수없는 문제가 시시 때때로 예측하지 못한 가운데 다가옵니다. 어제 신문에 보니까 연애하다가 매주 애인에게 2명꼴씩 목숨을 잃는다고 합니다. 지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연인 사이에 발생한 살인 사건은 313건으로 집계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해마다 매주 2명씩 애인에게 목숨을 잃는 꼴이라고 합니다. 연애할 때 죽기 위해 연애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뜻하지 않게 불행이 다가오고 지옥같은 삶이 다가옵니다.

바디매오에게 있어서 예수님께 나아갔지만 바로 자신의 지옥같은 장애를 해결받았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이 땅에서 천국처럼 더 좋은 미래를 살아가려고 하는데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바디메오는 어떻게 극복합니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있는 믿음으로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여 더 좋은 미래를 만듭니다. 바디매오의 능력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첫째는 잃은 것이 아니라 있는 것으로 능력을 행하는 믿음입니다.

바디매오는 문제는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천적 요인입니다. 타고난 요인입니다. 능력 문제입니다. 누구나 예수님 만나 좀 더 좋은 미래를 살아가는데 방해하는 선천적 요인이 있습니다. 이슬람이나 불교 집안에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공부를 잘 하고 싶은데 선천적으로 아이큐가 낮을 수 있습니다. 뛰어난 연기자가 되고 싶은데 외모가 부족할 수 있습니다. 설교 잘하는 목사가 되고 싶은데 음색이 좋지 않을 있습니다. 뛰어난 사업가가 되고 싶은데 자금력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포기하고 좌절하고 원망하면 더 좋은 미래는 펼쳐질 수 없습니다. 바디매오는 어떻게 합니까? 47절을 보십시오. 소리를 지릅니다. 예수님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자신에게 관심을 갖게 만들기 위해 절박하면 부르짖는 것입니다. 눈은 볼 수 없지만 입은 있는 것입니다. 다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만한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쓰임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모세에게는 로케트 포탄이나 비행기가 없었지만 능력의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칼이나 창이 없었지만 물매와 물맷돌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 아우성치는 광야에서 아이에게는 큰돈이 없었지만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가 있었습니다. 눈은 못 보아도 있는 입으로 주님께 부르짖으면 눈도 떠지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둘째는 배타적인 사람을 협력자로 만드는 능력을 행하는 믿음입니다.

바디매오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께 소리치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합니까?

48절을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꾸짖어 잠잠하라고 합니다. 장애인 주제에 왜 소리를 지르느냐는 것입니다. 교회에 새로 등록한 주제에 왜 설치느냐는 것입니다. 가난한 주제에 왜 입만 떠드느냐는 것입니다. 헌신도 하지 못하면서 왜 큰 소리로 남의 기도에 방해되게 기도하느냐는 것입니다. 당시 장애인은 죄인 취급했고 같이 어울려 살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적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행복에 방해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너 같은 것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브랜드가 마음을 파고드는가(수잔 피스크, 크리스 말론 지음)”라는 책이 있습니다. 사람이 브랜드를 선택하는 데는 두 가지 요소가 작용한다고 합니다. “따뜻함과 유능함”입니다. 인간은 타인이 얼마나 따뜻하고 유능한가에 따라 예측가능한 감정과 태도를 보인다고 합니다. 따뜻함은 인간의 다양한 성격적 특징으로 다정함, 친절함, 온화함, 진실함, 정직함, 신뢰할 만함 등을 포함한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유능함은 목적한 바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는가를 근거로 판단된다고 합니다. 재능이나 재주, 창의력, 지능 등을 기준으로도 판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들이 있을 때 물건이 잘 팔리고 회사가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요소가 있어야 미래가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이 장애인에게는 두 가지 요소 다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면 낙심하고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어떻게 합니까?

48절 보십시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성경이 수식하고 있는 단어를 주의 깊게 보십시오. 더욱 심히 소리 질렀다고 했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장애물을 뚫고 더 좋은 미래를 만드는 믿음입니다. 비전을 가지면 열정과 끈기로 장애물을 넘어가야 합니다. 쉽게 나를 좋아하지 않고 나를 저주하고 비난하는 사람들 앞에서 포기하는 믿음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포기하면 능력 있는 믿음으로 더 좋은 미래를 만들 수 없습니다. 누가 무슨 비난을 하던, 누가 무슨 조롱을 하든, 사람들이 어떤 오해를 하던 거기서 무릎 꿇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히 12:2)”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분도 예수님이시고 믿음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도 예수님입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누가 무엇이라 말해도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ㅎ입니다. 그러면 더 좋은 미래가 펼쳐지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니까 예수님은 어떻게 해 주십니까?

4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머물렀습니다. 서서 그를 부르라 했습니다. 우리의 신음 소리를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나와 부르짖는다해도 우리는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아무 쓸모 없는 짐짝같은 인간이지만 작은 신음에도 응답해 주십니다. 믿습니까?

그러자 장애물 역할을 했던 그들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부르신다고 말합니다. 비우호적인 그들이 우호적인 사람들로 변합니다. 나를 반대하던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사람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사람 때문에 더 좋은 미래를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 개입하시면 비우호적인 사람도 우호적인 사람으로 변합니다. 나에게 장애물이 되었던 사람도 디딤돌로 역할이 바뀌어 집니다. 나를 낙심하게 했던 사람도 나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어떤 인간의 장애물이 있다고 해도 우리는 장애를 인정하고 내 인생의 장애를 해결해 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는 사실을 믿고 장애물 때문에 오히려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 가지고 나오면 우리는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믿는 사람들의 장애를 치유시키셨습니다. 선천적인 시각 장애인이 치유를 받습니다(요9:1-41). 간질에 걸린 아이가 치유를 받습니다. 중풍으로 누워 있는 자가 치유를 받습니다. 선천적 지체장애인의 치유(행3:1-4:22)를 받습니다. 18년 동안 허리를 펴지 못했던 여인(눅13:10-17)이 치유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시력 장애인 이삭을 축복의 전달자로 사용하였고, 시력 장애를 가진 바울을 세계 선교를 위해 사용하였고, 지체 장애인 야곱에게 축복의 증거를 보여 주었으며, 언어 장애인 모세를 사용하였습니다. 오른손 지체 장애자 에후를 사용하였습니다. 범죄하고 시각장애자가 된 삼손의 기도를 응답해 주었습니다. 메시야의 작곡자 헨델을 아실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발사 겸 의사였습니다. 그는 아들을 법률 공부를 시키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헨델을 음악을 공부하였고 25세에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737년 파산한 뒤에 헨델은 중풍과 건강의 악화로 고통을 당하였고 56세가 되었을 때, 거의 파산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때 23일간 기도하면서 때로는 음식을 전폐하면서 작곡에 몰두하여 "할렐루야"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는 68세 때 완전히 실명하였지만 좌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도하며 위대한 음악을 남기고, 장애에도 불구하고 음악 연주회를 지속하였습니다. 그는 루터교 목사님의 딸인 어머니의 신앙의 영향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중풍과 허약한 육체, 시각 장애를 겪으면서도 "내가 나서 자라난 신앙 안에서 살다가 죽겠노라"고 말하며 끝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정열적으로 감당하였습니다.

실낙원의 저자 밀턴을 아실 것입니다. 밀턴은 1652년 실명하였습니다. 어려움은 계속 닥쳐왔습니다. 아내는 떠나고, 아들은 죽었습니다. 자신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뻔했습니다.

그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실명한 상태에서 서사시를 쓰는 일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딸로 하여금 한 구절 한 구절 받아쓰게 하여 "실락원(Paradise Lost)"을 1667년에 완성하였고, 이어서1671년 복락원(Paradise Regained)과 투기사 삼손(Samson Agonistes)을 합본으로 완성했습니다. 어떤 장애물이 와도 예수님과 함께 하면 모든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능력 있는 믿음으로 이 땅 사는 동안 천국 같은 더 좋은 미래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3. 우리는 실행하는 믿음으로 더 좋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50-52).

지속적으로 더 좋은 미래를 만들려면 한 번 어떤 문제를 해결받았다고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부자가 되어 오히려 더 타락하고 불행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출세하고 감옥에 가고, 교수가 되어 성추행으로 수치를 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사람도 앞이 안보일 때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눈을 떠니 세상이 지랄 같고 힘겨워 불평과 원망을 달고 살고, 잘 보는 눈으로 비교하고,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살 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결코 눈뜨는 것이 더 좋은 미래를 보장받는 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을 선물로 받았으면, 믿음의 성공 경험을 가졌다면 실행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문제를 해결 받고 더 좋은 미래를 보장받는 삶을 살려면 어떤 실행하는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까?

 

첫째 우선순위가 바뀐 삶을 살아가는 실행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머물러 서서 소경을 부르시니까 제자들이 안심하고 일어서라고 합니다. 그 때 맹인은 어떻게 합니까? 50절을 보십시오.

겉옷을 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님께 나아납니다.

겉옷은 그의 전 재산입니다. 소경으로 사는 데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기온차가 심하기 때문에 밤에는 그것을 덮고 자야 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소경인 거지에게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것 벗어던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눈을 뜬다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우선순위가 바뀐 것입니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눈을 뜨게 되면 거리에서 잘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아마 디매오의 아들이라는 말을 볼 때 자기 아버지 디매오라는 사람은 당시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아버지 집에 가서 편안하게 침대에서 잘 수 있는 것입니다. 우선 수위가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이것이 지속적으로 더 좋은 미래를 보장받는 삶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을 인생길에서 따르는 삶을 살아가는 실행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가 겉옷을 벗어던지고 예수님께 나아가자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5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 모습을 보고 네가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질문합니다. 예수님은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물어 보는 것이 아닙니다. 늘 구걸하는 입술이 변하길 원했을 것입니다. 그의 정직한 고백을 듣기 원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만 믿은 것이 아니라 입으로 시인하는 실행하는 믿음을 보기 원한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보기를 원합니다. 구걸하던 입술이 바뀌었습니다.

 

보기를 원한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은 어떻게 합니까?

그에게 예수님 말씀합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의 문제를 완전히 치유시켜 주십니다.

그가 보게 되자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은 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매인은 어떻게 했습니까?

보게 되어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10장 17절 이하에 나오는 부자는 돈 때문에 근심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소경은 이제 과거의 모든 것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삶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지난 과거의 종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조롱할 수 있습니다. "과거 너 소경이었지?" 우리가 주님을 좇는 삶에서 그런 과거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 너 창녀였지" " 거지였지"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인생은 변했습니다. 얼마나 그가 예수님께 충성하며 제 2의 인생을 살았겠습니까? 기적을 체험하였는데 적당히 살았겠습니까? 저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지만 그의 인생은 완전히 변했을 것입니다. 이제 시각 장애인이 아닙니다. 거지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좇으며 주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바로 우리는 주님께 좇는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믿음입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8:34)”

요즘 신조어로 '나토족'(NATO)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어로 No Action, Talking Only인데, 행동은 없고 말뿐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더 좋은 미래를 계속적으로 살려면 실행력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지속적인 더 좋은 미래를 누리려면 지속적인 실천적 순종이 중요합니다.

돌아가신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침묵하시는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방관하시는 하나님처럼 생각하면 너무 하나님 우습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가볍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속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단지 속아주실 뿐입니다. 침묵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단지 침묵하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가끔 언론에 부정적인 목회자들의 모습이 보도되어 목회자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사람들의 말을 너무 가볍게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강단에서 증거되는 말씀은 감상용이 아닙니다. 공연용이 아닙니다. 지루하고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속적으로 더 좋은 미래를 보장받는 말씀입니다. 내 뜻으로 하나님의 뜻 꺾으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좋은 소리 들으려고 하나님의 말씀에 분노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30년 넘게 목회를 했습니다. 열린교회를 개척하여서도 목회한지가 벌써 18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사람들을 만나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이해 못하는 특별한 경우도 있지만 보편적으로 지금까지 결론은 말씀을 지속적으로 실행하면 더 좋은 삶이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지금 16년 째 나오는 어느 집사님은 아버님이 돌아가셨더 저에게 장례를 부탁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지 않는 분이었지만 서울에 가서 장례식을 치러 주었습니다. 그 후 계속 우리 교회를 나와 섬기는데 원룸에서 시작하여 살다가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낳고 집을 마련하고 행복하게 지금까지도 신앙생활 잘하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 교회 17년 째 나오시면서 섬기시는 집사님의 모습을 봅니다. 서울에 이사가도 2시간이 넘은 곳으로 이사 가도 변함없이 교회에 나와 섬기시는 집사님을 봅니다. 그동안 참 물질의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이가 유학을 가고 대학을 다니면서도 올 A을 받아 장학금을 받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 교회 초기부터 18년 동안 참으로 순수하게 실천력 있는 믿음으로 사신 집사님을 봅니다. 처음에는 혼자 교회에 나오셨는데 지금은 온 가족이 교회에 다니고 아들 딸 믿음의 사람 만나 결혼하여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봅니다.

예수 믿고 말씀 붙들고 매일 매일 실천적 믿음으로 사는 삶은 더 좋은 미래를 보장하는 비결입니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믿음으로 더 좋은 미래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한 번 사는 것입니다. 믿음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장애물을 극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다 믿음으로 더 좋은 세상을 맛보았습니다. 모든 난관을 믿음이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 5:4)”

 

1. 우리는 구원받는 믿음으로 더 좋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47,52)

2. 우리는 능력 있는 믿음으로 더 좋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48-49).

3. 우리는 실행하는 믿음으로 더 좋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50-52).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1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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