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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미래(9) 최소치 높이기(사도행전18:24-28)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22496 추천수:5 112.168.96.71
2015-08-23 10:53:53

 

더 좋은 미래(9) 최소치 높이기

사도행전18:24-28

 

얼마 전에 교회 인터넷을 10배가 빠르다는 기가 인터넷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속도는 바꾸기 전과 똑같았습니다. 기사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 보니까 모뎀, 공유기, 회선, 컴퓨터 성능, 랜 등이 기가 인터넷을 속도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뎀만 바꾼다고 기가 속도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인터넷 속도는 여러 요소 중에 가장 성능이 처지는 요소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최소량의 법칙(最少量─法則, law of minimum)이라고 말합니다. 1843년 독일의 식물학자 리비히(J.Liebig)가 발견한 법칙입니다. 그는 식물의 성장을 눈여겨보다가 특이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얼핏 보기에 아주 좋은 환경에 있는 식물들의 성장이 오히려 뒤처지는 경우가 이었답니다. 그는 식물의 성장은 필요한 요소들의 합이 아니라, 필요한 요소 중 양이 가장 적은 어느 한 요소에 의해 제어된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필수 영양소 중 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넘치는 요소가 아니라 가장 부족한 요소’라는 것입니다. 가령 질소, 인산, 칼륨, 석회 중 어느 하나가 부족하면 다른 것이 아무리 많이 들어있어도 식물은 제대로 자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법칙은 단지 식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적용됩니다. 물통이 아무리 커도 한 귀퉁이가 낮으면 물을 그 이상 담을 수 없습니다. 둑이 아무리 높아도 낮은 곳에 맞춰져 물은 담기게 됩니다.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고시에는 과락이 있어 어떤 한 과목이 과락이면 고시에 합격할 수 없습니다. 요즘 북한과 전쟁 상황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월등한 무기를 가지고 있으니 전쟁을 해서라도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비대칭 무기인 핵을 북한이 가지고 있으면 재래식 무기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어제 신문에 보니까 주가가 폭락했다고 하는데 주가를 움직이는 요인에는 기업의 매출, 순익, 금리, 통화량, 환율, 주식의 수요와 공급량, 유가, 국제 수지, 국제 정치 환경 등 다양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요소들 중에서 어느 한 요소가 최악의 상태에 놓여 있다면 기업의 자산가치가 아무리 높아도 주가는 오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건강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건강한 몸을 유지하려면 적당한 영양 섭취, 적당한 운동, 적당한 수면, 적당한 휴식, 좋은 유전자 등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 중에 한 가지가 최소화되면 그만큼 건강은 좋지 않게 됩니다. 기업도 만찬가지입니다. 기업이 잘 되려면 자금과 경영 능력, 기술, 시장 가능성 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중 최소치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성숙도, 행복한 가정도, 건강한 교회도, 아름다운 세상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우리가 더 좋은 미래에 대한 주제로 주일마다 계속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은 아홉 번째로 우리가 더 좋은 미래를 살려면 우리의 최소치가 무엇인지를 분별하여 그 최소치를 높여야 합니다. 미래에 성공하기를 원하는 청년들이 재능은 뛰어난데 전혀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좋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 최소치를 높여 좀더 좋은 미래를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원리는 간단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환자의 질병을 고치듯 진단-처방-복용의 방법을 택하면 됩니다.

 

1. 우리가 최소치를 높여 더 좋은 미래를 살려면 우리의 최소치를 높여 주는 예수님의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환자가 자신의 질병을 진단 받으려면 전문가인 의사를 만나야 하듯이 우리는 우리의 최소치를 진단받기 위해서는 나를 정확히 진단해 줄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입냄새를 맡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은 자신을 잘 모릅니다.

오늘 성경에 아볼로라는 사람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분의 출신 지역이 어디입니까? 24절을 보십시오. 알렉산드리아 출신입니다. 당시 학문이 발달된 지역입니다. 이 도시는 로마 다음가는 제 2의 도시였습니다. 철학, 문학, 수사학, 교육의 중심지였고 필로, 클레멘트, 오리겐과 같은 대 신학자가 활동하던 곳입니다.

그 분의 지적 능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보십시오. 24절 보십시오. “학문이 많고” 라고 되어 있습니다. 웅변이 뛰어난, 학식이 있는, 문화인, 재능있는 웅변가라는 말입니다. 성경에 능한 자(24)라고 했습니다. 표현 능력도 뛰어나고 성경에 대한 지식도 탁월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성경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습니까? 25절을 보십시오. 일찍 주의 도를 배웠습니다(25).

그 분의 열심심도를 보십시오. 25절을 보십시오.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장점이 많았는데 이 분에게는 자신의 미래를 좋지 못하게 하는 아킬레스건이 있었습니다. 이분의 목회에 발목을 잡고 있는 최소치는 무엇입니까?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25절을 보십시오. 요한의 세례만 알았습니다. 예수에 관한 것만 말할 따름이었습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거하지 못한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지 못했습니다(행19:2). 은혜의 능력이 없었습니다. 목회자에게는 치명적인 최소치입니다. 그러니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가르치기는 가르치되 변화가 없습니다.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복음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아무리 오래 교회에 다녀도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도 부흥되지 않습니다. 성숙한 인격자가 되지 못합니다. 가정도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사업도 진척이 되지 않습니다. 직장에서 인정도 받지 못하고 승진도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습니다. 행복해 지지도 않고, 인생이 더 좋아지지도 않고, 사업의 만족도도 좋아지지 않고, 부부 관계도 좋아지지 않고 교회 생활도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미래를 좋지 못하게 만드는 최소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높여야 미래가 좋아집니다. 방치하면 쌓이지 않고 그곳으로 다 세어 나가 버립니다.

 

아볼로가 어떻게 자신의 최소치를 높이게 되었습니까? 26절을 보십시오. 누구를 만났습니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입니다. 이 부부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18장 2,11 절을 보십시오.까? 아주 헌신된 사람들이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갈 때 같이 갑니다. 에베소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합니다. 롬16:3-4을 보면 바울을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 놓은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집을 교회로 사용할 정도로 물질로 헌신한 사람들입니다.(고전 16:19) 나의 최소치를 보며 비난하고 정죄하고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최소치를 보완해 주고, 감싸주고, 품어주고, 높여주는 사람은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대방의 최소치를 보완해주고, 덮어 주고, 품어주고, 높여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신문을 보면 세상에는 다 나쁜 사람들만 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비위를 저지르는 정치인, 성추문에 오르는 사회 지도층, 탐욕의 늪에 갖힌 경제 지도자들, 사기치고 폭력을 휘두르는 악한들, 대남 도발을 시도하는 북한 지도자 등을 보면 다 나쁜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최소치를 높여주는 훈훈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창원 마산역 근처에서 여고생 한명이 승용차에 깔리자 주변에 있던 시민 20여명이 불과 1분만에 승용차를 들어 올려 아래 깔린 여고생을 구조했습니다. 대구에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20대 남성이 5만원권 160여장을 길거리에 뿌렸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주어갔습니다. 평생 고물 수집을 하며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물려준 귀한 돈이었답니다. 습니다. 사연이 알려지자 돈을 반환하였답니다. 그러나 다 돌아오지 않았는데 50대 남성이 대구의 매일신문을 찾아가 5만원짜리 지폐 100장 500만원을 가져다 주고 ‘돌아오지 못한 돈도 사정이 있겠지요 그 돈으로 생각하시고 사용해 주세요’라고 적은 메모지를 남겼답니다. 그래도 다 돌아오지 않았는데 60대 남성이 현금 15만원이 든 봉투를 경찰서 파출소에 전달하며 ‘어르신, 돌아오지 못할 돈이 이제 다 돌아왔지요. 선생님, 이제부터 마음 편히 잡수시고 건강하시고 오래 오래 장수 하십시오. 선생님, 가난은 죄가 아니지요’라는 쪽지를 남겼답니다. 그래서 800만원 모두 수거되었답니다.

 

우리는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미래가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과 내용이 달라집니다. 인간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버드 대학생을 통해 추적 조사를 해 보았답니다. 하버드대 생 268명을 72년간 종단 연구를 하였답니다. 1937년 당시 미국 하버드대 2학년인 남학생 268명이 인생사례 연구를 위해 선발된 것입니다. 연구는 "잘 사는 삶에 일정한 공식이 있을까"라는 기본적인 의문에서 출발했답니다. 이 연구를 주도해온 하버드 의대 정신과의 조지 베일런트(Vaillant) 교수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이라고 결론지었답니다. 47세 무렵까지 형성돼 있는 인간관계가 이후 생애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변수였다고 합니다. 성공적인 노후로 이끄는 열쇠는 지성이나 계급이 아니라 사회적 적성, 즉 인간관계였다고 합니다. 65세에 잘 살고 있는 사람의 93%가 이전에 형제· 자매와 원만하게 지낸 사람들이었답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 MBA 과정에서 유수 기업 CEO들을 상대로 '성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조사했답니다. 그 결과 응답자의 85퍼센트가 '원만한 인간관계 및 다른 사람과의 공감 능력'을 꼽았습니다. 美브리검영대 연구진은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먼저 죽을 확률이 50% 낮다고 밝혔습니다. 이 연구를 주도한 줄리안 홀트-룬스타드 교수는 "대인관계가 부족한 것은 하루에 담배를 15개비 피는 것과 같다"며 대인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답니다. 지금은 무엇을 아느냐(Know What), 어떻게 아느냐(Know how)가 아니라 누구를 아느냐(Know Who)가 더욱 중요한 시대입니다. 관계가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준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과 함께 하느냐에 따라, 나를 이끌어줄 멘토를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훌륭한 멘토란 나에 대해 잘 알고 중요한 시기에 객관적이면서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특화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위로해주고 때로는 해결해 주고 때로는 채찍을 해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온화하면서 소통할 수 있는 사람, 감사하며 살아 있음을 소중히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최소치를 가지고 넘어뜨리는 사람이 아니라 최소치를 보완해 주는 사람을 만나야 하고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내의 미래가, 남편의 미래가, 자식의 미래가, 교회의 미래가, 민족의 미래가 좋아집니다.

정휘동 작가는 그의 책 '물은 아래로 흐르고 사람은 위로 달린다.'에서 만남을 네 종류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꽃송이 같은 만남입니다. 처음은 화려하지만 시들면 그만인 만남입니다. 둘째는 지우개 같은 만남입니다. 지워버리고 싶은 만남입니다. 셋째는 생선 같은 만남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썩은 냄새나는 만남입니다. 넷째는 손수건 같은 만남입니다. 땀과 눈물을 닦아주는 만남입니다. 가장 잘못된 경우는 생선과 같은 만남이고, 가장 조심해야할 만남은 꽃송이와 같은 만남이며,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이라고 합니다. 좋은 만남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으로 아름답게 만나서, 힘들 때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 눈물을 닦아주는 남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최소치를 높여주는 좋은 만남은 무엇보다 예수님의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바울의 최소치를 높여주는 바나바 같은 사람을 만나고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의 최소치를 높여주는 요나단 같은 사람을 만나고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 초기 교인 중의 한 분인 서상륜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13살 때 부모님을 여위었습니다. 삶의 여건이 좋은 부모 만나지 못했습니다. 가난합니다. 고아가 된 이 사람은 살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성에서 나는 고려인삼을 사 가지고 만주에 가서 팔았습니다. 인삼장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장사를 하다 31살에 장티푸스에 걸렸습니다. 열이 오르고 쓰러지고, 헛소리를 했습니다. 아무도 그를 돌보아 주지 않았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스코트랜드에서 파송 된 메킨타이어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의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그분은 정성을 다해 치료해 주었습니다. 죽어 가는 그를 살렸습니다. 서상륜에게는 메킨타이어가 생명의 은인이었습니다. 선교사는 그에게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일년만에 세례를 받고 그의 인생은 변했습니다. 이제 가난이나 질병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 번역인 로스 성경을 로스 선교사님과 함께 번역했습니다. 황해도 장면에 있는 송천(솔내, 소래)에 가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전합니다. 최초의 교회인 '송천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를 만나 서울에 새문안 교회를 세웁니다. 처음 14명이 세례를 받습니다. 모두 서상륜이 전도한 사람들입니다. 황해도, 평안도 할 것 없이 부산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평생 평신도로 살며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집을 헌납하여 교회를 지었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가난하였습니다. 그래서 언더우드 선교사님께서 그가 헌납한 집과 똑같은 기와집을 노년에 사주었다고도 합니다. 예수님의 사람을 만나면 인생이 바뀌고 가정이 바뀌며 사회가 바뀝니다. 최소치는 높여주는 예수님의 사람과의 만남은 미래를 더 좋게 만들어 줍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15:13)"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최소치를 높여 더 좋은 미래를 만들려면 우리의 최소치를 높여 주는 사람을 만나고 최소치를 높여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우리가 최소치를 높여 더 좋은 미래를 살려면 우리의 최소치를 높여 주는 처방전인 예수님을 표준으로 삼고 말씀을 거울로 삼아야 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아볼로를 데려다가 최소치를 깨닫게 한 것이 무엇입니까? 2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자세히 풀어 말씀한 것입니다. 아볼로는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를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책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단지 교양서가 아닙니다. 도덕적 지침이 아닙니다. 단순한 처세술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학을 가르치는 책이 아닙니다. 요20:31에 성경을 기록한 목적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 성경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의 미래가 좋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아볼로는 성경에 대해서는 많이 알았지만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지는 못한 것입니다. 목회자로서 가장 중요한 복음이 최소치가 된 것입니다. 더 좋은 미래를 살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나 12해 혈루증을 앓은 여인을 보십시오.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보십시오. 예수님을 만난 후 그들의 미래는 좋아졌습니다. 남편을 여럿을 두고 죄의식과 수치심으로 살아가는 사마리아 여인도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삶으로 변했습니다. 남편도 죽고 아들 하나 의지하며 살던 여인도 예수님을 만나 아들이 살아나고 절망에서 희망으로 일어났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조금도 전진하지 못하게 하는 최소치가 수고의 짐이 있습니까?

예수님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지금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만나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참 안식을 누리는 미래를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미래를 불행하게 하는 최소치가 능력 부족이 있습니까?

예수님 말씀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 9:23)" 우리에게 자녀의 권세를 주었습니다.

 

해도 해도 되지 않고 어찌할 수 없는 최소치가 있습니까?

예수님 말씀합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타락한 어거스틴이 성경을 읽다 예수님을 만나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방탕하게 살던 부시가 성경을 읽다 예수님을 만나 새사람이 되어 대통령까지 되었습니다. 깡패 대장이었던 김익두가 성경을 읽다 예수님을 만나 목사가 되었습니다. 존 번연은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만나 천로 역정을 지었습니다. 고아의 아버지 죠지 뮐러(George Muller)는 16살 되던 해에 절도죄로 감옥에 들어갔었고,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술과 여자, 노름 등으로 방탕한 생활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뮐러가 20살 되던 해 성경 속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놀랍게도 그의 삶에는 대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자기 삶에 대한 새로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그의 전 재산 13만 5천 달러의 돈을 모두 이웃을 위해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불쌍한 고아들을 돕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한평생을 고아를 위해서 헌신하였고 고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변화시켰겠습니까? 성경을 읽으면 예수님을 만납니다. 제 2의 인생이 탄생됩니다.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기쁨을 맛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위로를 누리게 됩니다.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은퇴 후 고향을 방문했답니다. 한 소년이 물었답니다. "어릴 때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러자 트루먼은 "나는 너희만 할 때 아주 볼품이 없었단다. 운동도 못하고 안경을 벗으면 책도 보지 못했단다" "그러면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나요" "나는 매일같이 성경을 읽었단다. 그리고 내 뒤에서 밀어주시는 하나님의 힘을 믿었지. '나는 내게 능력 수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4:13)는 말씀을 굳게 믿었단다. 그리고 일단 믿기 시작하면 밀고 나갔단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자 소아시아와 유럽이 변화되었습니다. 이레니우스가 예수님을 만나자 프랑스가 복음화 되었고 영국에서 건너온 보니페이스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독일이 기독교 나라가 되었습니다. 패트릭이라는 16살 난 포로 소년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아일랜드가 복음화 되었으며, 언더우드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한국 땅에 복음의 씨가 뿌려져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아도니람 저드슨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미얀마가, 허드슨 테일러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중국이 변화되었습니다. A.D 313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화 했는데 그것은 그 어머니 헬레나의 신앙적 감화력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 어머니는 자기 집에서 일하는 예수님을 만난 이름 모를 한 하녀로부터 예수님을 소개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 독실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이름 모를 하인도 예수님을 만나면 세상을 변화시켜 더 좋은 미래를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만나면 가장 값진 미래가 펼쳐집니다. 우리 인생 중에 가장 귀중한 만남은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최소치를 높여 더 좋은 미래를 살려면 우리의 최소치를 높여 주는 예수님을 모델로 삼고 말씀을 거울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 삶의 처방전은 예수님과 말씀입니다.

 

3. 우리가 최소치를 높여 더 좋은 미래를 살려면 우리의 최소치를 높여 주시는 처방전을 복용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충고를 아볼로가 그대로 수용을 합니다. 요즈음 말하면 이 부부 집사가 담임목사인 아볼로를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하고 예수님을 전해 줍니다. 목사에게 “목사님은 성경에 대하여 박식한데 예수님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도, 성령 충만도,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도 믿고 있지 않네요.”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아볼로는 성경에 대하여 박식한 사람입니다. 열심도 있는 사람입니다. 당시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설교를 듣던 성도가 이런 말을 하면 쉽게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런데 이 진리를 아볼로가 받아들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아볼로가 무엇을 전합니까? “예수는 그리스도라”라고 전하는 것입니다. 메시아 되신 예수님을 정확히 전하는 것입니다. 처방전을 그대로 복용한 것입니다. 신앙적인 용어로 말하면 순종한 것입니다. 실행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아볼로의 최소치가 높아지니까 어떤 결과가 발생하였습니까?

27절을 보십시오. 은혜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유대인의 말을 이겼습니다.

아무리 좋은 약도 먹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자신의 견해가 아닙니다. 배우면 배울수록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유대인을 이긴 것은 자신의 학문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에 근거하여 그리스도는 메시아라는 사실을 전할 때 승리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불신과 회의론이 사라지고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사역의 결실이 많아졌습니다. 바울은 아볼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전 3: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고전 4:6)”

 

이렇게 아볼로가 브리스길라와 아볼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고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증언하게 된 것은 어떻게 가능하게 된 것이겠습니까? 27절에 소개 되어 있습니다. “은혜로 말미암아”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은혜 아니면 믿음으로 받을 수도 전할 수도 없습니다.

은혜로 우리가 의롭게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은혜로 죄사함을 받습니다. 은혜로 구원을 받고 은혜로 위로와 소망을 받는 것입니다. “(살후2 : 16)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우리 하나님께서”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에게 각종 영적 선물을 주십니다. “(엡4 :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지식을 초월한 은혜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열심을 초월한 은혜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신분을 초월한 은혜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상황을 초월한 은혜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아야 불가능의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체험 받게 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해 낼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성수대교 참사로 서울교대 3학년인 딸을 잃은 한 어머님의 간증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육사 26기인데 대령으로 육군 군수사령부 작전처장으로 일하던 중 47세의 나이로 부대 내에서 과로로 숨졌답니다. 그런데 1년 만에 딸이 참변을 당한 것입니다. 집사님은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으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고 어떤 말로도 위로 받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딸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딸의 평소 바람대로 시신을 병원에 기증하였다고 합니다. 평소 글쓰기를 좋아했던 딸의 유품을 정리한 어머니는 딸의 유작시 1백 20여편을 모아 <연기는 하늘로>라는 시집으로 출간했답니다. 딸의 비망록에는 '내가 일생 동안 하고 싶은 일’이라는 제목의 ‘14가지 소원'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신앙심을 갖고 봉사하는 인생을 살겠다고 늘 되뇌던 딸은 (1)장학금 제도를 만든다 (2) 이동도서관을 강원도에 만든다 (3)한 명 이상 입양한다 (4)맹인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 (5)재활시설을 포함한 복지마을을 만든다 등이었답니다. 집사님은 딸의 소망을 대신 이루기로 결심했답니다. 집사님은 8평짜리 아파트에 살면서도 당시 국가보상금 2억 5천만원 전액을 기부해 ‘승영 장학회’를 만들었답니다. 봉사의 삶을 살려는 가난한 신학도들을 교단. 교파를 초월해 지원하는 이 장학회의 도움으로 많은 목회자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집사님이 시무하시는 담임 목사님의 글을 보니까 딸의 장례식을 치르고 난 후 그 집사님은 밤에 큰 보따리 하나를 들고 왔더랍니다. “목사님, 이것이 이번의 부의금입니다. 봉투까지 들어서 저는 얼마인지도 모릅니다. 이것을 가장 소중한데 써주세요.”라고 하더랍니다. 그 가정의 비극이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답니다. 몇 달 뒤에 그 아들이 전국을 자전거로 일주하고 돌아왔는데 자기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자동차 사고를 만났답니다. 다리는 부서졌고 머리는 깨졌고 그런데 목숨은 다행히 건졌답니다. 그분은 그 현장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 고난 가운데서도 신앙을 잃지 않고 승리할 수 있을까요? 그분은 자기 사랑하는 딸의 시집을 냈을 때에 그 시집 서문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나는 1년 사이에 남편과 딸을 한꺼번에 잃었습니다. 사람들이 차지했던 자리가 컸던 만큼 내 슬픔과 절망도 컸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슬픔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 계셔서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주신 하나님 때문입니다. 나는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인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나 자신도 놀라고 있습니다.”이것을 우리는 은혜라는 말 이외의 것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지식으로, 인간의 교양으로, 수련으로, 자제력으로, 인간의 능력으로, 인간의 성품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로만 이해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면 어떤 현실적 상황에서도 그 은혜로 넉넉히 최소치를 높여 더 좋은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아볼로가 그렇게 겸손하게 말씀을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잠3 : 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아볼로는 겸손했습니다.

 

아볼로가 그렇게 순종하게 됨으로 하나님의 큰 은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를 사랑하고 계명 지켜야 합니다. “(출20 :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우리의 더 좋은 미래를 이루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고 있는 최소치는 무엇입니까?

탐욕입니까? 중독입니까? 게으름입니까? 불신입니까? 교만입니까? 못된 성격입니까? 회의입니까? 질병입니까? 가난입니까? 장애입니까? 능력 부족입니까? 가정환경입니까? 인맥입니까? 학력입니까? 외모입니까? 재능입니까? 신앙 생활하면서 행복감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말씀을 들으면 지루하고 영화보는 것보다 못하십니까? 사업을 하면서 늘 절망적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까? 가정 생활하면서 즐거움은 없고 의무감으로 어쩔 수 없이 살고 있습니까? 교회 부흥이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면서 신앙생활의 기쁨을 회복하고 있지 못하십니까?

 

나의 최소치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그 최소치를 높여야 합니다. 은혜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도록 높여야 합니다. 삼손은 이성의 유혹이라는 최소치를 높이지 못해 쓰러졌습니다. 예수님께 찾아온 부자는 물질의 욕심이라는 최소치 때문에 예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최소치는 있습니다. 하난는 아이가, 히스기야는 질병이, 요나는 편협한 애국심이, 사울은 자존심과 권력욕이, 베드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유다와 아나니아 삽비라, 아간은 탐욕이, 다윗은 성욕이, 나만은 불신이 최소치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나와 그 최소치를 극복하고 일어선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그 최소치 때문에 비참한 인생을 산 사람도 있습니다. 두 종류입니다. 최소치 때문에 쓰러지는 사람과 최소치 때문에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최소치를 키워 딛고 일어서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최소치를 높여 하나님의 사람답게 풍성한 미래를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 우리가 최소치를 높여 더 좋은 미래를 살려면 우리의 최소치를 높여 주는 예수님의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2. 우리가 최소치를 높여 더 좋은 미래를 살려면 우리의 최소치의 목표를 예수님으로 삼고 말씀을 거울로 삼아야 합니다.

3. 우리가 최소치를 높여 더 좋은 미래를 살려면 우리의 최소치를 높여 주는 약을 복용해야 합니다.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순종이 필요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1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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