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미래(7) 뛰어난 적응력
사무엘상30:1-10
사람은 누구나 더 좋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삽니다. 그런데 더 좋은 미래를 살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뛰어난 적응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윈은 '살아남는 것은 가장 강하거나 지능이 가장 높은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큰 생물이나 강한 생물이 아니라 변화에 잘 적응하는 생물이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무섭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놈은 강한 놈도, 센 놈도 아니고 변화에 잘 적응하는 놈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같이 변화가 심한 불확실성 시대에서 경쟁 우위의 원천은 적응력이라고 합니다. 성공 기술 중 필요한 것은 적응력이고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어느 분야에서든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회사에서도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이 환영받고, 군대에서도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이 인정받으며 학교에서도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이 성공적인 학교생활을 하게 됩니다. 운동선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인 선수들을 수없이 보았던 김인식 원로 야구 감독은 외국인 선수로서 한국무대에서 성공한 선수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한국 문화와 한국식 야구에 잘 적응한 선수였다고 합니다. 일본도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신화를 써가고 류현진 선수도 물론 뛰어난 실력도 중요하지만 타고난 적응력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적응에 가장 민감한 것은 기업입니다. 적응력이 떨어지면 곧 사망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에는 스위스가 세계 시계 시장의 90% 가까이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여 20년이 지난 후, 스위스는 시계 시장의 8%만를 점유하였습니다. 231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브리태니커는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백과사전으로 정평이 나 있었으나 정보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장에서 밀려났습니다. 131년 전통을 자랑하며 '필름 왕국'을 만들었던 코닥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몰락하였습니다.
일본과 중국이 기독교와 함께 서양 문명을 받아들여 변화를 꾀할 때, 조선은 쇄국정책을 펼다 일본에게 먹혔습니다. 과거 1810년대 영국에 몰아 닥친 산업혁명의 초기에 노동자들이 기계화 물결은 반대하고 방직기를 파괴하였습니다. 결국 기계문명에 적응하지 못한 근로자는 도태되었습니다. 세상은 무섭게 변하고 있습니다. 컴퓨터의 성능은 18개월 마다 두 배로 상승한다고 합니다. 인류의 지식이 연평균 복합성장률로 볼 때 10%씩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8-9년마다 두 배로 증가할 것이고, 2050년이 되면 2010년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45배나 많은 지식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컴퓨터의 저장 용량은 약 12개월 마다 2배씩 향상되고 있습니다. 처음에 킬로바이트로 측정되었던 하드 드라이브는 이제 기가바이트와 테라바이트로 설명되며, 머지않아 페타바이트(1,000 테라바이트)와 엑사바이트(1,000 페타바이트)로 설명될 것입니다. 고도의 지식이 요하는 일자리는 인공 컴퓨터가 자리를 차지하고 단순 노동은 로버트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천국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세상 사는 동안 뛰어난 적응력으로 더 좋은 미래를 만드는 주인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뛰어난 적응력을 가지고 더 좋은 미래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온 한 시대 뛰어난 적응력으로 더 좋은 미래를 만들어 간 다윗의 삶을 통하여 몇 가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우리는 변화에 부적응하여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좋지 않은 미래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은 변화에 적응하는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목동으로 군인으로 정치인으로 살면서 뛰어난 적응력을 발휘한 사람입니다. 시골 목동에 불과했지만 급속한 시대의 변화 속에서 수없는 난관을 뚫고 결국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나오는 내용은 당시 왕 사울이 계속 자신을 죽이려고 하자 이스라엘의 원수의 나라인 블레셋으로 정치적 망명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30대에 가족과 자신을 따르는 600명을 부하를 거느리고 아기스 왕에게 망명한 것입니다. 한 때 블레셋의 최고 명장 골리앗을 죽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살기 위해 당시 강력한 나라인 블레셋에 투항해 버린 것입니다. 지금 말하면 대한민국에서 정치적 핍박을 받는다고 북한으로 도망간 것입니다. 이런 사람 대통령으로 국민들이 지지해 주겠습니까? 이것을 다윗이 살아난 측면을 강조해 보면 뛰어난 다윗의 적응력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사무엘을 통해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인데 살기 위해 자기의 나라를 도피한 것은 적응이 아니라 부적응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부적응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유지 부적응입니다. 자기가 속한 가정이나 학교, 회사, 교회에 있으면서 부적응 행동을 보이는 경우입니다. 학교를 예로 들자면 유지 부적응을 하는 사람들은 학교를 나오기는 나오지만 학교 내의 교육 목표, 철학, 내용, 방법, 규칙 등을 위반하면서 학교를 다닙니다. 복장이나 용모불량, 흡연, 집단 따돌림 주도 등과 같은 청소년 비행 및 일탈을 동반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 개인의 지적능력 저하 및 신체기능 약화로 소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분리 부적응입니다. 자기가 속한 가정이나 학교, 회사, 교회를 떠나 부적응 행동을 보이는 경우입니다. 학교를 예로 들자면 이들은 학교 내의 교육목표, 철학, 내용, 방법, 규칙 등이 자신의 교육적 욕구에 미치지 못하여 학교를 떠나는 경우입니다. 신체적 기능약화, 지적능력 저하로 학교를 떠나는 경우입니다. 부적절한 교우관계, 집단따돌림, 학교폭력 등으로 퇴학, 자퇴 등으로 인해 학교를 떠나 지역사회에서 배회하거나 혼자 칩거하는 경우입니다.
다윗은 분리 부적응을 한 것입니다. 앞으로 왕이 될 사람으로 치명적인 오점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이미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는데 자신이 책임지고 변화시키고 사명을 감당해야 할 나라를 떠나버린 것입니다. 요즈음 말하면 부모님 싫다고 가출한 것과 같습니다. 회사 동료들과 부적응하여 회사를 그만 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학교 선생님이 보기 싫다고 자퇴한 것과 같고 교회 목사 싫다고 아애 교회를 나가지 않는 가나안 교인이 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적응이란 사전적 의미는 “①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 익숙해져 어울림 ② 동식물이 환경에 적합하도록 자기의 형태· 습성을 변화시키는 현상. ③ 개인이 환경에 순응하기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부적응이란 “적응하지 못함”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적응이란 자신이 처해있는 사회· 문화적 환경과 조화를 적절하게 변화시키거나 순응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응하지 못하면 회피하고 퇴행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가지 말아야 할 땅에 간 것이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선 것입니다. 사회에 적응한다고 술집에 가서 2차 3차를 가면 잘 적응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길은 더 좋은 미래가 보장되는 길이 아닙니다. 그가 가나안 땅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블레셋 땅에 도피하여 어떻게 되었는가를 보십시오. 27장 5절을 보십시오. 비굴의 탈을 씁니다. 8절을 보십시오. 위선의 탈을 씁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거짓의 탈을 씁니다. 아기스의 신임을 얻기 위해 속임수를 쓰는 것입니다. 왕의 신임을 받기 위해 그술과 기르스 사람, 아말렉 사람들을 치고 유다 남방과 여라무엘과 겐 지역을 공격하였다고 거짓을 말한 것입니다. 천하의 다윗이 이렇게 밀려가고 추락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납니까?
28장 2절을 보십시오. 왕의 경호원이 되었습니다. 목숨을 건졌을 뿐 아니라 적당한 지위도 얻었습니다. 잘 적응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29장 4절을 보십시오.
한 번 밀려가면 인생이라는 것이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밀려가는 것을 봅니다. 당시 블레셋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아기스 왕은 다윗을 이 전쟁에 끌고 갔습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다윗의 충성심을 시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것입니다. 진짜 망명인지 가짜 망명인지를 시험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전쟁에 능한 장수이기 때문에 최전방에 내세워 이용할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다른 방백들이 반대를 합니다. 당시 블레셋은 강력한 왕권을 가진 중앙 집권적인 정치 체계가 아니라 다섯 개의 부족이 연합한 국가 형태로 모든 의사 결정은 다섯 부족의 방백회의에서 결정하였습니다. 다윗이 누구입니까? 적장입니다. 과거 자기 나라 장군 골리앗을 죽인 원수입니다.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기회를 보았다가 결국 자기들의 목을 들고 사울에게 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에게 신임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29장 10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새벽에 일어나 전쟁터에서 쫓겨났습니다. 다윗과 그 군대는 회군하여 자신이 살고 있는 시글락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와 보니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은 불에 다 타버리고 아내와 아이들은 다 포로로 잡혀가 버렸습니다. 30장 2절을 보십시오. 목숨이라고 살겠다고 망명 왔는데 달랑 자기 목숨 남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재산도, 아내도, 자식들도 다 잃어 버렸습니다. 자기 하나 믿고 따르던 부하들의 식구들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한 순간에 이런 일을 당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우리는 살다보면 이런 경우를 당할 수 있습니다. 한 순간 이제 까지 쌓아 놓은 재산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건강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던 명예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권력도, 아름다움도, 인기도, 지식도, 자유도, 용기도, 희망도, 심지어는 자식도, 아내도, 부모도, 남편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밀리고 가정에서도 밀리고, 밀리고 밀리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사명의 땅에서 적응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부적응하고 떠나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더 좋은 미래는 보장되지 않고 더 나쁜 미래도 밀려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적응한다고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서는 아니 됩니다. 사업가는 사업가의 길이 있고, 학생은 학생의 길이 있고, 정치인은 정치인의 길이 있고, 신앙인은 신앙인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과학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과학자가 가야할 길을 가야 합니다.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자는 예술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야 소망의 항구에 이르러 크게 웃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적응력이 뛰어난 다니엘을 보십시오. 사자굴이 있고 풀무불이 있다고 망명하였습니까? 아닙니다. 뛰어난 적응력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를 시켰습니다. 에스더를 보십시오. 죽음의 위기가 있다고 자기 혼자 살겠다고 몰래 야반도주를 하였습니까? 뛰어난 적응력으로 왕비가 되고 결국 자신의 백성을 죽음에서 구원하였습니다.
적응력이 뛰어난 바울을 보십시오. 유대인들이 핍박한다고 유대인들이 사는 곳을 피해 도망 다니기만 했습니까?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전 9:20-23)”
바울은 수많은 어려움에 처했지만 어떻게 적응하였습니까?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2-13)”
우리는 예수 핏값으로 구원받고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변화에 부적응하여 사명의 자리, 책임의 자리, 소명의 자리를 떠나 좋지 않은 미래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 붙들고 뛰어난 적응력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더 좋은 미래,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적응하는 것은 주어진 환경이나 여건에 자기 자신을 맞추어 가는 것입니다. 식물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에 자신을 맞추어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동물이 변화된 환경에 자신을 맞추어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적응을 소극적인 적응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외부 환경에 자신을 맞추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적응은 식물과 동물과 달라 이렇게 소극적으로만 적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자기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주변의 환경 요인을 변화시킵니다. 이런 적응을 적극적인 적응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늘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가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정에서 남아 자신이 적극적으로 가정환경을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전교 일등을 함으로 가정에 기쁨을 주고 종국에는 아버지를 변화시키고 행복한 가정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가난하다고 가정을 떠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출세하여 부유한 가정을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회사에 부족한 것이 있으면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대안자가 되어 회사를 좋은 회사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교회에 부족한 것이 있으면 비판하고 원망하고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헌신하여 좋은 교회를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적극적인 적응입니다.
다윗의 삶이 적국으로 도피하여 부적응로 끝났다면 그의 좋은 미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인생의 밑바닥에서 적극적인 적응력을 발휘하여 더 좋은 미래를 만드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분리부적응으로 도망간 다윗을 보십시오. 4절을 보십시오.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습니다. 목숨 부지하러 도망갔다가 자신 목숨 하나 달랑 살고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6절에 보십시오. 자신을 그렇게도 지지하고 따랐던 사람도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고 합니다. 다윗 때문에 처자를 잃었으니 다윗을 대신 죽이자는 것입니다. 분리 부적응한 다윗의 미래는 바닥까지 밀려갔습니다. 다윗은 여기에서 탁월한 적극적 적응력을 발휘합니다.
적극적 적응력을 발휘하는 첫 단계가 무엇입니까?
이 위기 앞에서 어떻게 합니까? 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실패의 현장, 위기의 현장, 진퇴양난의 절박한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능력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욕구와 극복할 수 없는 환경을 개선하려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욕구의 좌절이나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삼키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윗은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께 나아간 것입니다. 6절을 직역하면 “다윗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안에서 스스로 강하여졌다”는 말입니다. 사울은 지도력에 위기를 당하자 무당을 찾아갔습니다.(28:15) 사울은 과거에 얽매여 결국 비참한 미래로 밀려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바닥에서 힘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은 타자의 힘이 필요합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은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안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블레셋 왕 안에서는 결국 기력을 다 없어졌는데(4) 하나님 안에서 힘을 얻고 두려움을 물리치고 용기를 얻게 된 것입니다.
힘과 용기를 얻은 후 어떻게 합니까? 밀려가는 삶의 현장에서 적극적인 적응력을 발휘하는 두 번째 단계입니다. 다윗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현장에서 무엇을 합니까? 자신도 성난 군중에게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함 현장에서 무엇을 합니까? 밀리는 현장, 실패의 현장, 절망의 골짜기에서 무엇을 합니까? 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문제의 답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께 문제의 답을 물어 보는 것입니다. 그는 블레셋으로 도망 나올 때 하나님께 물어 보고 도피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합리적 생각으로, 감정적 생각으로 블레셋에 도망 온 것입니다. 그러나 위급한 상황에서 이제 달랐습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장수입니다. 자신 스스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따라 잡을 수 있을지 하나님께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 잡고 도로 찾으리라" 오늘 이 말씀이 저와 우리 성도님들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되시길 바랍니다. "네게 반드시 따라 잡고 도로 찾으리라." 삶의 현장에서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시는 역사가 일어나길 바랍니다. 적극적인 적응에서 중요한 것은 내 의지가 아니라 내 아이디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것입니다. 잃은 것 찾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잃어버린 건강을, 잃어버린 물질을, 잃어버린 열심을, 잃어 벌인 사랑을 찾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말씀을 확신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인이 가져야 할 탁월한 적응력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붙들고 적응해야 합니다. 말씀을 떠난 적응은 변질되기 쉽고 잠깐 좋은 것같지만 결국 인생을 망치는 것입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적응하다 보니 잘 되는 것같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가룟 유다가 로마의 권력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을 팔아 돈도 받고 인생도 보장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자살로 인생을 마감하였습니다. 타락한 세상 문화에 적응하면 잘 될 것 같지만 잠깐 말초적 기쁨이 있고 물질과 적당한 힘이 주어질 것 같지만 결국 수렁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난 주 계속 보도된 성추행 사건들을 보십시오. 미래를 좋게 만드는 뛰어난 적응력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다윗에게 말씀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믿습니까?
지금 주어진 절망적 환경이 무엇입니까? 건강을 잃어 버렸습니까? 재산을 잃어 버렸습니까? 명예를 잃어 버렸습니까? 믿음을 잃어 버졌습니까? 기쁨을 잃어버렸습니까? 행복을 잃어 버렸습니까? 하나님께서 찾아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먼저 마음으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중요합니다. 생각은 창조의 원동력입니다. 더 좋은 미래를 만들었던 세상에 나와 있는 '물건'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누군가의 머릿속의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비행기는 라이트형제의 생각의 산물이고, 자동차는 헨리 포드의 생각의 산물입니다. 필라멘트는 에디슨의 생각의 산물입니다. 생각은 대단한 에너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의 근원을 삼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의 확신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여기에서 미래를 더 좋게 만드는 탁월한 적응력이 발휘되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18절 이하를 보십시오. "빼앗아 갔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도로 찾아왔고... 양 떼와 소 떼를 다 되찾았더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찾고, 찾고, 찾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보십시오. 다윗이 만약 그 전쟁터에서 이스라엘과 싸웠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왕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위기를 통하여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도록 막아 주신 것입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 다윗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다윗은 평생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평생 간증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엄청난 위기 앞에서도 말씀 붙들고 믿음으로 산 욥을 보십시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도로 찾았습니다. 자식들도 또다시 얻게 되었고, 재산은 갑절로 받았습니다.
한 번 실패하였다고, 잃어버린 것이 많다고, 병들었다고 적응력을 잃어버리고 좌절하지 마십시오. 때로 일이 잘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끝없이 밀려가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이 내내 내리막길일 때가 있습니다. 자금은 없고 빚으로 짓눌릴 때도 있습니다. 웃어도 웃음이 없고 울어도 풀리지 않는 슬픔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한숨지어도 풀리지 않는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도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질병에 걸리자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그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는 치유받았습니다. 내 소망 내 욕구 내 바람을 실현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나의 힘으로 안 된다고 포기하고 도피하고 핑계를 댈 것이 아니라 그럴 때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내가 살기에 불가능한 환경을 살기 좋은 환경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떠난 탕자가 지옥같은 인생의 밑바닥에서 자신의 환경을 바꿀 수 있었던 비법은 무엇입니까?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버지께 나아가면 삶의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예수님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7)"라고 말씀합니다.
열두 해나 혈루증을 앓으며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습니다. 자기의 힘으로는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을 만나 치유를 받았습니다.
나인성에서 외아들 의지하며 살던 홀로된 여인이 마지막 희망인 그 외아들이 죽어버렸습니다. 부적응하고 인생을 포기할 환경입니다. 그 때 예수님 만나 죽음의 행렬이 삶의 행렬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병을 치료받기 위해 베데스다 연못에 38년 동안이나 누워 있었습니다. 38년 동안 경쟁에서 밀려나 번번이 실패한 병자입니다. 그는 예수님 만나 완전히 치료되었습니다.
우리는 뛰어난 적응력으로 내 힘으로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함으로 하나임의 힘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더 좋은 미래,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3. 우리는 지치지 않은 말씀을 실행하는 적응력으로 소원을 이루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더 좋은 미래를 만들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한 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합니까?
9절을 보십시오. 바로 6백명을 거느리고 출발합니다. 하나님은 단순하게 "그를 쫓아가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특별한 전략을 말씀해 주시지 않습니다. 그저 쫓아가라는 것입니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침반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요즈음처럼 위치 추적 장치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당시 아말렉 사람들은 반 유랑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일정 지역에 정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때 다윗은 몹시 지쳐 있을 때입니다. 1절에 보면 아벡에서 시글락까지 3일 동안 달려온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길을 보여주시니까 즉각 그 길로 나아갑니다. 망설이지 않습니다. 앞뒤 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우면 참 많은 소리가 들립니다. 병들면 이런 저런 약들을 사람들이 소개합니다. 어려우면 사람들이 마음이 약해집니다. 그래서 다급해지면 실수하기 쉽습니다. 그 때 하나님 말씀에 따라 정도를 실행하는 것입니다. 과감하게 말씀 따라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인만이 가질 수 있는 탁월한 적응력입니다. 그런데 조금가자 문제가 일어납니다.
브솔 시내에 오자 2백 명의 낙오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지쳐서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6백 명이다 가도 모자라는 군인입니다. 그 때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멈추지 않습니다. 낙오자들과 싸우지 않습니다. 우리가 좋은 일 하면 모든 사람이 지지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며 교만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모두 지지해 주지 않습니다. 나를 지지해 주지 않는다고 가던 길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안 되는 사람에게 집착하다 지지자까지 상실하면 안 됩니다. 다윗은 따르는 자 4백 명만 거느리고 추격을 합니다. 뛰어난 적응력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적응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실제의 요구에 대한 순응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개인의 욕구와 환경과의 조화를 이루어 욕구를 만족시켜 나가는 행동과정입니다. 즉 욕구의 좌절이나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행동과정입니다.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친구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환경에 적응하면서 성장하고 발달하여야 합니다. 탁월한 적응력을 가지려면 참여도도 좋아야 하고, 노력, 행동 통제 능력, 지속성이 뛰어나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대인관계에 있어서 친 사회적 행동, 책임지는 행동, 훈계를 수용하는 행동도 필요합니다. 자신이 일하는 것에 대한 선호도도 높아야 하고 만족도도 높아야 합니다. 뛰어난 적응력을 위해서는 이런 것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적응의 핵심 원리입니다. 적응의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지난 주에 제가 “적응력”이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부제로 “불확실성의 시대에 필요한 성공의 기술”이라고 붙어 있었습니다. 그 책에서는 적응력 향상 3단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단계가 “적응의 필요성을 인식하라.”입니다.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단계가 “필요한 적응을 이해하라.” 해결 방법을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단계가 “필요한 적응을 실천하라.”입니다. 결국 적응의 마무리는 지속적인 행동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적응하여 성공한 인물과 많은 회사들, 적응하지 못한 인물과 많은 회사들이 소개 되어 있는데 결국 실행력d의 문제입니다. 적응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방법을 안다고 해도 지속적으로 실행하지 않으면 그림의 떡에 불과한 것입니다. 부뚜막에 소금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국물에 넣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다윗이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 붙들고 나아가니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굶주린 그에게 떡과 물을 먹게 해 주었습니다. 밤낮 3일을 굶주린 사람이었습니다. 아말렉 사람 종으로 병들어 주인에게 버림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다윗을 만나지 못했으면 광야에 죽었을 사람입니다. 그런데 16절을 보십시오. 그가 하나님이 보내어준 지도가 되어 준 것입니다. 광야의 나침반이 되어 준 것입니다. 200명의 중도 포기자보다 훨씬 다윗에게 도움을 준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다윗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쓸모없는 사람이었지만 다윗에게는 참으로 도움이 되는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다윗을 아멜렉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인도합니다. 당시 아말렉 사람들은 반 유랑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일정 지역에 정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사정을 잘 아는 안내인이 없으면 찾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16절, 17절을 보십시오. 적은 군인으로 기습 공격하여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미래를 좋게 만드는 뛰어난 적응력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광야 같은 인생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입니다.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망설이며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고 성과가 없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길로 가다보면 어려움도 있지만 진정 내게 꼭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예비해 놓은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길로 가는 사람에게는 오늘날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여 찾고 회복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2백 명의 낙오자들에 대하여 다윗을 따른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4백 명의 용사 중에는 악한 자와 불량배였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우리와 함께 가지 않은 자들에게는 전략물을 주지 말자는 것입니다. 처자만 돌려주자는 것입니다. 이 때 다윗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3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적응하는 참 멋진 다윗의 모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얼마나 하나님의 사람다운 권위가 있습니까? 전쟁에 갔던 자들이나 피곤하여 남아 소유물을 지켰던 자들이나 동일하니 같이 분배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무엇이라 말해도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로 실행하는 것입니다. 원칙을 어기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는 것입니다.
앞길이 보이지 않습니까? 적응력이 뛰어난 신앙인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은 길을 보여 주십니다. 길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을 만나 힘을 입고 용기를 내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아직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포기하거나 주저하시지 마시고 길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반드시 도로 찾으리라'라는 말씀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과 장애물이 있어도 하나님이 길을 보여 주시면 그 길로 나가 포기하지 말고 묵묵히 찾으시길 바랍니다. 찾은 후 내 길로 가지 마시고 그 후에도 생이 마치는 순간까지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길로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삶이되시길 바랍니다. 적응력이 뛰어난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이 인신 매매 해도, 중년 여성이 유혹에 실패하자 누명을 씌워도, 그렇게도 충성했던 주인이 감옥에 가는 것을 방치해도, 꿈을 풀어주었던 사람이 자신의 공을 잃어 버려도 끝까지 말씀 붙들고 적응해 나갑니다. 결국 어떻게 됩니까?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세상을 스펙보다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뛰어난 적응력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나라를 이루길 원하십니다.
1. 우리는 변화에 부적응하여 좋지 않은 미래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 붙들고 뛰어난 적응력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더 좋은 미래,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3. 우리는 지치지 않은 말씀을 실행하는 적응력으로 소원을 이루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더 좋은 미래를 만들어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1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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