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미래(5) 스트레스 늪 건너기
열왕기상19:1-8
요즈음 제가 신앙인으로 더 좋은 미래를 어떻게 살까에 대한 설교를 시리즈로 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는 인간관계에 있어 더 좋은 미래를 방해하는 오해의 벽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려고 계획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제가 공단에서 시행하는 정기 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가서 몇가지 추가 검진을 받았습니다. 십이지장과 위염이 심하고 위에 궤양이 있다고 처방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잠을 얼마나 자냐고 해서 새벽 3시에 일어난다고 하자 더 자야 한다고 했습니다. 스트레스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 스트레스에 대한 책과 여러 편의 논문을 읽어 보았습니다. 몇 사람의 전문가의 강의도 인터넷을 통해 들어 보았습니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스트레스는 받으면 생리적 변화가 생깁니다. 스트레스로 인하여 심장 박동이 가속되어 혈압이 상승하게 되고 콩팥에도 영향을 주어 비뇨량을 증가시키기도 하며 간의 포도당을 완전히 분해하지 못하고 혈류 속에 흐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오감각이 긴장하게 되고 근육이 수축된다고 합니다. 그려면 육체적 질병이 발생하게 됩니다. 편두통, 위염, 위궤양과 근육통이 일어나고 만성 심장병, 고혈압, 당뇨병, 암, 폐병, 간경화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면역 체계의 변화 및 정서 장애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분노, 우울, 실망, 죄책감, 피곤, 불안장애, 강박 장애, 수면 불능 등을 가져오고 심하면 자살을 한다는 것입니다. 암, 염증, 비만은 말할 것 없고 심장 및 혈관계 질병이나 만성위염 같은 소화기계 질병, 천식 같은 호흡기계 질병, 당뇨 같은 내분비계 질병, 편두통 같은 신경 및 근육계 질병, 피부 질병, 정신과 질병 등이 모두 스트레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임희택 의사 선생님이 스트레스에 관하여 “굿빠이 스트레스” “망각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들을 읽어 보니까 현대 질병의 70%가 스트레스에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더 좋은 미래를 살지 못하게 하는 만병의 근원 1위가 스트레스이고 생명 단축의 가장 큰 요인이 스트레스라는 것입니다. 이무석 교수님은 암의 원인이 스트레스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세포는 60조개가 있는데 매일 세포가 만들어지고 죽는다는 것입니다. 세포 분열 때 세포 핵 속의 DNA가 깨져 돌연 변이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전체 세포 중 20%가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5개 세포 중 1개 암세포가 되는데 건강한 우리는 면역세포가 깨진 세포를 회복시켜주고 병든 세포는 자연살해세포(NK)가 파괴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트레스가 쌓이면 면역세포와 NK 세포가 약화되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여 암 같은 병이 든다는 것입니다. 각종 의학보고서는 암이나 뇌, 심장질환 등의 발병 주요 원인으로 스트레스를 꼽고 있고 실제로 런던 암센터에 입원한 2백 50명의 암환자 중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체험한 적이 없는 환자는 불과 19명뿐이었다고 합니다. 스트레스 없는 세상은 없습니다. 우리는 죽는 날까지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스트레스의 늪에 빠져 불행한 삶을 살지 않고 스트레스의 늪에서 빠져나와 건강한 더 좋은 미래를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저는 성경에서 답을 찾아보려고 말씀을 읽어 보았습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쓴 스트레스와 관한 논문도 살펴보았습니다. 많은 논문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오늘 스트레스를 심각하게 받고 있는 엘리야에게 다가와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받으려고 합니다.
1. 스트레스 해소의 해답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께 하나님 앞에 나와 스트레스의 늪에서 벗어나 더 좋은 미래를 보장받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엘리야는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당시 왕이 아합입니다. 왕비는 이세벨입니다. 왕이 아내에게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 도합 850명을 죽였습니다. 이 사실을 아내에게 이야기 합니다. 그러자 왕비가 어떻게 합니까? 2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엘리야를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권력을 가진 자가 죽이려고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습니까? 부담을 주는 자극을 스트레서(stressor)라고 합니다.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 스트레스를 주는 원인,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입니다.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스트레스 원은 누구입니까? 자신을 적대시하는 이세벨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누구입니까? 나를 괴롭히는 직장 상사, 경쟁자, 불량한 거래처, 술 담배에 취해 있는 남편, 성적 욕구를 거절하는 아내, 오락실에 빠져 있는 자식, 압박감을 주는 부채, 두려움을 주는 질병, 불확실한 미래의 두려움 등 무엇입니까?
학자들은 스트레스의 원인은 외부적인 요인과 내부적인 요인이 있다고 말합니다.
외적 요인의 경우 부정적 생활사건과 긍정적 생활사건으로 나눕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상황(죽음ㆍ이별ㆍ별거)은 부정적 생활사건의 대표적인 예로, 이 경우 가장 극심한 '스트레스 반응(증상)'을 보일 수 있다고 합니다. 더러는 합격, 승진, 휴가, 결혼 등과 같은 즐거움을 주는 긍정적 생활사건도 스트레스를 가중시켜 건강을 위협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내적 요인(원인)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그에 못 미치는 능력이나 환경으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자신과 관련한 스트레스 요인으로는 비현실적 자기 기대감, 자신감의 결여, 무능력에 대한 공포, 자기 관리력의 부족 등입니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좋은 결과, 더 좋은 대우, 더 좋은 지위를 누리고 싶지만 욕구가 좌절되면 스트레스 반응의 원인이 됩니다.
그러면 이런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합니까?
엘리야는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고 있습니까?
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도망가는 것입니다. 도피하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을 피해 자신의 사명지를 외면하고 도피해 버리는 것입니다.
부정적으로 해소하면 스트레스를 주는 문제로부터 도피하는 것입니다. 직장, 사명, 공부, 가정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입니다.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직장 상사가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직장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공부가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학교를 자퇴해 버리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가출해 버리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에서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신앙생활을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미래를 좋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천사를 통하여 일어나 먹게 만듭니다. 기력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9절을 읽겠습니다.
도피한 엘리야를 찾아가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물어 보십니다. 지금 이 자리가 네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를 받고 견딜 수 없고 위험이 도사리고 죽음의 위협이 오는 자리지만 그 자리가 네 자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자리에, 자식은 자식의 자리에, 목사는 목사의 자리에, 성가대원의 성가 대원의 자리에, 교사는 교사의 자리에, 학생은 학생의 자리에, 남편은 남편의 자리에, 아내는 아내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곳이 사명의 자리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앞에 서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나 환경으로부터 도피한다고 스트레스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스트레스를 주는 원인을 떠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사명지까지 떠나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사명지를 떠나지 않고 스트레서가 있는 곳에서 스트레스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제 3의 방법이 필요한 것입니다. 늪에서 나오는 것은 자력으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 잡아 주어야 합니다. 제 3자가 있어야 합니다. 늪과 씨름하면 할수록 더 깊이 빠져가는 것입니다. 바로 신앙인에게는 스트레스의 늪에서 건져줄 하나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트레스의 답은 하나님이 가지고 있습니다. 스트레스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죄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은 악과 불신앙, 탐욕이 스트레스를 만드는 것입니다. 살롬이 없는 것입니다. 이세벨이 스트레서가 되는 것도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의 사명은 바로 스트레를 주는 이세벨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세벨과 정면으로 대면하여 그를 변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850명을 죽임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목격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능력을 주어 일곱 번 기도할 때 3년 6개월 동안 오지 않던 비를 내려 가뭄 문제를 해결해 주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스트레스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문제의 답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양해 보십시오. 스트레스는 해결됩니다. 스트레스 해결한다고 술먹고 담배 피우고 오락에 빠지면 결국 중독이 되고 오히려 스트레스로 인하여 이중으로 당하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는 늪과 같은 것입니다. 생각을 하면 계속 더 스트레를 받는 것입니다. 사울을 보십시오. 다윗이 골리앗을 쳐 이겼을 때 여인들이 사울은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이라고 공개적으로 다윗을 띄웁니다. 자신이 왕인데 인기가 다윗에게 갑니다. 백성들이 다윗을 지지합니다. 왕으로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모멸감을 느끼며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겠습니까?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합니까? 다윗을 죽이면 해소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신도 죽고 자식도 죽고 패가망신을 당합니다. 더 좋은 미래가 보장된 것이 아닙니다. 대조적으로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이 인신 매매를 합니다. 자신이 충성했던 직장에서 직장 상사의 부인의 모함에 의해 감옥에 갇힙니다. 죽음의 위기가 찾아 왔습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겠습니까? 그 때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 때 그는 국무총리가 되는 더 좋은 미래가 주어졌습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태장을 맞고 감옥에 갇히고 폭풍을 만다고 배반을 당하고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겠습니까? 그 때 마다 하나님께 나아간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사울에게 쫓겨 다니며 죽을 위기를 만납니다. 자신이 반역합니다. 아들이 딸을 겁탈하고 자신의 첩을 겁탈합니다. 쫓겨다니며 이방나라의 용병으로 나갔을 때 가족이 다 잡혀가 죽을 위기를 당합니다. 그 때마다 그는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시 18:1-3)”
스트레스를 받으면 하나님께 나가야합니다. 하나님께 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스트레스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하고 더 좋은 미래를 보장해 줍니다.
2. 스트레스 해소의 해답은 나의 반응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든 스트레스를 말씀으로 반응하여 스트레스의 늪에서 벗어나 더 좋은 미래를 보장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스트레스는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스트레스를 만드는 것입니다. 나의 반응이 중요합니다. 스트레스는 '스트레스 요인(원인)'과 '스트레스 반응(증상)'이 있습니다. 직장 상사가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스트레스 요인입니다. 그것을 다는 것은 스트레스 반응입니다. 내가 안 받으면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위험이 다가 오면 당연히 두려움과 불안이 다가 옵니다.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사슴에게 사자가 덤벼들면 편도체가 위협과 두려움 공포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시상하부에게 아드레날린, 코티졸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하라고 명령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그려면 심장 박동이 증가하고 근육이 강직되어 빨리 도망을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편도체는 위험에 처했을 때 생명을 유지하고 보존하도록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사슴은 사자가 사라지면 언제 위험이 있었냐는 듯 금방 정상으로 돌아와 평화롭게 풀을 뜯어 먹고 잠을 자고 뛰어 놉니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빚을 못 갚을 것같고, 승진에서 누락할 것같고, 질병에 걸릴 것같은 상황이 오면 편도체가 활성화되어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한다는 것입니다. 감정과 느낌이 증폭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각이 늪이 되어 버려 스트레스 호르몬이 계속 분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계속 걱정과 근신 불안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엘리야를 보십시오. 엘리야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어떤 반응을 하였습니까?
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죽여 달라는 것입니다. 절망하는 것입니다. 포기하는 것입니다. 무기력증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조상보다 낫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비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먹여주고 용기를 줍니다. 그런데 음식을 먹고 힘을 얻으니까 어떻게 합니까?
8절을 보십시오.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어디로 갑니까?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갑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던 시내산입니다. 며칠 갑니까? 40일을 갑니다. 40일 동안 금식하며 브엘세바에서 호렙산까지의 대략 350Km정도의 거리로 넉넉잡고도 12-3일이면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거기에 가서 무엇을 합니까? 9절을 보십시오. 굴에 들어갔습니다. 숨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를 주는 이세벨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피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이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고 질문을 던지자 엘리야는 변명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자신이 여호와께 열심히 유별났다는 것입니다. 할만큼 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 사명의 자리를 도피한 이유를 변명합니다.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는 이스라엘 자손은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었고, 둘째는 주의 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자신만 남았는데 자기 생명까지 빼앗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곳에 있어 보았자 그 인간들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 자녀들 내가 그 자리에 있어도 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어도 내 남편, 내 아내, 내 교회, 내 회사, 내 가정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별 변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나만 손해라는 것입니다. 나만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고 말씀하시고 세 가지 기적을 보여 주십니다. 첫째는 강한 바람입니다. 둘째는 지진입니다. 셋째는 불입니다. 그런데 그 기적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12절을 보십시오. 세미한 소리가 있었습니다. 이 음성을 듣고 엘리야가 동굴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아직 사명지로 가지 않고 겉옷을 가리고 동굴 어귀에 서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3절을 보십시오. 그 세미한 음성으로 다시 물어 보십시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붙들고 스트레스의 늪이 있는 사명의 자리로 가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백성의 마음은 강력한 표적이나 능력에 의해 궁극적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세벨이 갈멜산의 기적으로 변화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를 주는 직장 상사가 말씀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이 자식이 말씀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스트레스의 늪인 세상은 말씀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인간을 변화시키고 복음에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는 외부의 압력과 이에 대항하는 긴장에서 나옵니다. 결국 자극에 대한 나의 반응입니다. 내가 안 받으면 그만입니다. 똑같은 스트레스라도 잘 못 반응하면 우리를 파괴하는 디스트레스(Distress)가 되지만 잘 반응하면 우리에게 만족과 행복을 주는 유스트레스(Eustress)가 됩니다. 스트레스가 순기능적 역할을 하여 더 좋은 미래를 만들기도 하고 역기능적 역할을 하여 더 나쁜 미래를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이 때 우리 신앙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 즉 말씀으로 대응해야 더 좋은 미래가 보장되는 것입니다. 욥을 보십시오.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았겠습니까? 자식을 잃고, 건강을 잃고 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그런데 친한 친구들이 와서 위로는 하지 않고 정죄합니다. 이 때 어떻게 대응합니까? 말씀에 의존합니다. 욥은 고백합니다.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욥 6:10)” “그리하시고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내가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 (욥 13:22)” 욥의 미래는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갑절로 축복을 받은 더 좋은 미래가 펼쳐졌습니다.
그러나 혈기 방장한 삼손을 보십시오. 성적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 때 어떻게 합니까? 반응은 자신의 몫입니다. 스트레스의 답은 자신의 반응에입니다. 그 스트레스를 이방 여인을 통해 해소합니다. 그는 나실입니다. 세미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이지 않습니다. 결국 그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잡히고 감옥에 가고 눈을 빼임 당하고 죽었습니다.
스트레스는 나의 반응이 답입니다. 긍정적으로 대처하느냐 부정적으로 대처하느냐는 내게 달려 있습니다. 창조적으로 대처하느냐 파괴적으로 대처하느냐도 나의 반응에 달려 있습니다. 말씀에 의해 반응하면 스트레스는 독약이 아니라 보약이 되고,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될 줄 믿습니다. 나를 더 성숙시키고 더 견고하게 하고 더 훈련시켜 더 좋은 미래를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3. 스트레스 해소의 해답은 생각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떤 스트레스 앞에서도 사명 붙들고 스트레스의 늪에서 벗어나 더 좋은 미래를 보장받아야 합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처방을 합니다. 스트레스원을 제거하고, 스트레스 매체를 회피하고, 스트레스 반응을 완화하는 다양한 방법을 말합니다. 운동 요법, 인지적 치료, 식생활을 통한 스트레스 예방과 극복 등 다양한 처방전을 내 놓고 있습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을 조절하게 하는 의학적 해결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근육이완이나 스트레칭, 유산소 운동, 달리기, 수영과 같은 운동 요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심호흡, 단전 호흡과 같은 명상 요법으로 스트레스를 완화할 수도 있습니다. 감사 일기 쓰기, 불안과 분노 등 감정을 다스리는 마음 훈련으로 스트레스를 잠재울 수도 있습니다. 호르몬을 조절하는 비타민, 미네랄 등을 섭취하는 음식 요법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로버트 슐러 박사의 스트레스 영어 글자를 풀어 'STRESS 풀이법'을 말합니다. STRESS의 S는 영적인 힘(spritual power), T는 긍정적 사고(think positively), R는 휴식(rest), E는 운동(exercise), S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좋은 일을 추구하라(seek good things you can do), S는 성경(scripture)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하나님도 엘리야에게 스트레스의 늪에서 빠져나고하 하기 위해 스트레스를 주는 현상을 떠나도록 하고 잠은 자고 음식을 먹으며 쉬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더 좋은 미래를 위해 엘리야에게 특별한 처방을 합니다.
스트레스도 도망간 엘리야를 찾아 가셔서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세 가지 사명을 말씀합니다. 첫째는 하사엘에게 기름 부어 아람 왕으로 세우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아합을 징계할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징계의 채찍으로 사용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후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이 사람이 아합 가문을 다 진멸시켜 버립니다. 본 절의 예언이 주어진 후 14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시점에 여호와의 심판의 도구로 쓰임을 받아 악한 왕 아합의 가문을 멸망시켰을 뿐 아니라(왕하10:1-17) 바알 숭배에 빠진 자들을 모조리 잡아 죽였습니다(왕하10:18-28).
셋째는 엘리사를 기름 부어 너 대신 선지자로 세우라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스트레스로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도 사명을 회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이 사명 이루라는 것입니다. 세 명은 모두가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합니까?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결국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정을 이루시고, 하나님이 사업을 이루시고, 하나님이 교회를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두려움과 불안으로 걱정 근심하며 스트레스로 사명 회피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불가능할 것 같은 것도 결국 하나님이 하시니 회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참 은혜가 되는 말씀입니다. 네가 아무리 열심히 특심하다고 하고 너 혼자만 남아 무거운 짐을 다 지고 가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7천명을 남겨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네 교회 이룰 7천 명이 남아 있고, 네 사업 이룰 7천 명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남겨 놓은 것입니까? 그들을 하나님이 남겨 놓습니다. 그들은 다 바알에게 무릎 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않습니다. 엘리야 홀로 사역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우리 홀로 사역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트레스는 생각이 만든 늪입니다. 사람은 영혼과 육체로 창조되었습니다. 이 육체는 몸과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에는 생각, 느낌, 반응이 있습니다. 생각은 대뇌피질이 담당합니다. 느낌은 변연계가 담당합니다. 느낌은 욕구, 감정,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충족되어야 합니다. 충족되지 않으면 커지고 충족되면 시드는 것입니다. 반응은 뇌간이 담당합니다. 반응이 몸을 작동시키는 것입니다. 스트레스의 주범은 바로 이 생각입니다. 느낌이나 반응은 현재만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미래 현재 과거가 다 있습니다. 죽어 갈 것을 생각하고 불안해 하고, 병들 것을 생각하고 걱정하고, 부도 날 것을 생각하고 근심합니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이 생각이 늘 마음이 불안하고 걱정에 싸이게 합니다. 패배감, 좌절감, 상실감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우울증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비하하고 비교하여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자꾸 쓸데 없는 잡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큰 문제가 생겨 보십시오. 그 잡 생각은 다 살아져 버립니다. 마음이 답입니다. 본질적 사명을 붙드는 것입니다.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람은 동시에 동전의 양쪽 면을 볼 수 없습니다. 큰 문제가 다가 오면 부수적인 문제는 잃어 버립니다. 정치인들이 전라도 경상도 싸우다가도 우리 나라와 일본이 축구 경기하면 전라도도 경상도도 없습니다. 다 대한 민국을 외칩니다. 성격 갈등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부부도 어느날 아이가 교통사고 당하면 아이 살리는 일이 중요하지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것을 '칵테일 파티 효과'라고 부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칵테일 파티장에서는 음악소리와 시끄러운 잡담들, 현란한 불빛, 여러 가지 냄새와 예쁘게 입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감각은 자극을 받지만 그 중 한 사람과 대화하면 다른 것은 들어오지 않고 그 사람의 목소리만 들리고 그 사람에게만 반응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망각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사명에 붙들리면 다른 요소는 스트레스로 작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난도, 질병도, 미래의 불확실성도, 격변하는 정국도, 불안한 경제 상황도 스트레스도 작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베드로 감옥에 가두고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합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겠습니까? 그 때 베드로는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됩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행 4:19)” 사명을 붙드는 것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자신의 앞길에 결박과 환란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어떤 마음을 가집니까?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스트레스 해소의 해답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께 하나님 앞에 나와 스트레스의 늪에서 벗어나 더 좋은 미래를 보장받아야 합니다.
스트레스 해소의 해답은 나의 반응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든 스트레스를 말씀으로 반응하여 스트레스의 늪에서 벗어나 더 좋은 미래를 보장받아야 합니다.
스트레스 해소의 해답은 나의 생각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떤 스트레스 앞에서도 사명 붙들고 스트레스의 늪에서 벗어나 더 좋은 미래를 보장받아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15.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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