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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각본 바꾸기(1) 예수님에 대한 고정관념(마16:16)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66188 추천수:5 220.120.123.244
2023-06-04 21:14:29

인생 각본 바꾸기(1) 예수님에 대한 고정관념

마태복음16:16

 

1. 저마다의 인생 각본

연속극이나 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극중에서 연기를 합니다. 그런데 배우들이 제멋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의 각본대로 연출하는 것입니다. 그와 비슷하게 사람은 저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각본을 써 놓고 자신의 각본대로 살아갑니다.

인생 각본이란 심리학에서 교류 분석 이론으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 에릭 번이 제창한 것입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심층 심리에서 무의식적으로 각자 각본을 쓰고 자신이 전혀 깨닫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각본에 따라 저마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생각 버리기 연습(스즈키 도시아키 저)>라는 책을 보면 어릴 때 공부를 잘해 줄곧 1등을 한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사람을 공부는 잘했지만, 결정적으로 실전에 약했답니다. 대학 시험에서 감기가 걸려 1지망에 실패하고 2지망 대학에 들어갔답니다. 입사 시험에서도 최종 면접에 지각하는 바람에 정말 들어가고 싶은 회사에 취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일을 할 때도 마무리가 좋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들었답니다. 항상 잘 돼가다 마지막이 틀어지고 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렇게 된 것은 그의 인생 각본이 나는 항상 막판에 잘못돼라고 무의식적으로 신념화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 성취적 예언에 따라 그렇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인생 각본이 7-8세에 만들어지는데 부모가 훈육할 때 너는 주의가 산만해, 너는 항상 마무리가 잘 안돼등과 같은 말을 듣고 그것을 수용해 버리면 자신은 그런 사람이라고 인생각본을 무의식 중에 써버린다는 것입니다. “최초의 양육자의 성향-프로그램-순응- 중요한 행동에서 유효성 확인-각본 결정순으로 이러진다고 합니다. 유년기에 부모가 아무것도 하지마, 네 아니어야 했어, 어린애처럼 굴지마등과 같은 금지령을 듣고 완전해져라. 기쁘게 해라, 노력해라, 강해져라. 서둘러라등과 같은 드라이버가 주어지면 사람은 나는 00이고 타인은 00이다라는 기본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고 나는 이런 인생을 살 것이다. 나는 이런 인생을 살아야 한다등과 같은 인생각본을 만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 너는 뭐하든 끝마무리가 좋지 않아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끝마무리를 잘 못하는 자야라고 생각이 프로그램화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순응하며 살았는데 실제 청소년 시절에 중요한 사건에서 보니 끝이 잘 되지 않는 경험을 합니다. 유효성을 확인한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끝 마무리 못하는 자야라고 각본 결정을 해 버리게 되고 그것이 무의식 가운데 작용하여 인생 각본을 그렇게 써나간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교회에 오래 다니신 성도님들은 많이 들어보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가신 곳은 어디입니까? 13절을 보십시오.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입니다. 이곳이 어떤 곳입니까? 이 지방은 헬몬산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풍부한 수자원으로 인해 헬라와 로마 양대 시대에 걸쳐 많은 신전이 지어졌다고 합니다. 본래 작은 마을이었지만 분봉왕 헤롯 빌립이 확장하여 만든 도시인데 로마 황제 디베료 가이사를 기념한다는 의미에서 이곳을 가이샤라라고 하였고 자기 이름을 추가하여 가이사랴 빌립보라 불렀다고 합니다. 헤롯이 로마 황제인 가이사 아구스도에게 아부하기 위해 이곳에 황제 신전을 건립해 놓고 로마 황제 가이사를 숭배하며 주로 고백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을 제자들에게 무슨 질문을 합니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나는 스스로를 인자로 부르는데 사람들은 나를 무엇이라 표현하는가?”

예수님 당시,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 인생 각본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인생 각본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와 타인에 대한 인식인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했습니까?

14절을 보세요.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례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세례 요한은 헤롯에 의해 이미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행하시는 것이 세례 요한과 유사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기적을 행했는데 구약의 엘리야는 많은 기적을 행하였고 성경에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4:5)”라고 했는데 예수님을 약속된 엘리야로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예레미야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애통하는 마음과 열정을 가지고 시대적인 메시지를 전했는데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예수님을 보고 예레미야라고 생각한 것이니다. 또는 선지자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면서 죽은 선지자가 돌아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지성이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습들을 연구하고 분석하며 예수님을 기독교 창시자, 4대 성인 중 한 사람, 위대한 철학가, 위대한 교육자, 위대한 인권운동가, 위대한 최고경영자 등으로 생각합니다.

악의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은 예수님을 사람이 만들어낸 허구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줄 것이라는 과도한 믿음"을 가진 과학주의 자들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댄브라운은 그의 책 <다빈치 코드>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과 결혼해 딸 사라를 낳았고, 사라는 프랑스 메로빙 왕조를 세웠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산 단순히 인간에 불과한데 후대의 사람들에 의해 하나님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오강남 교수도 <예수는 없다>라는 책에서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나 예수님의 신성 등은 단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상징적 의미를 가진 신화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마태복음 1224절을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그 당시도 허구적 인물, 귀신 취급을 했습니다.

마태복음 1119절을 보십시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습니다(5:38). 심지어는 예수님의 가족들도 예수님을 미쳤다고 하며 믿지 않았습니다(7:5; 3:21).

 

왜 예수님에 대한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었겠습니까?

생뚱맞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인생각본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각본을 써놓고 자신의 각본대로 살아가 자신의 각본을 바꾸지 않고는 인생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계속 실패해온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실패할 것이고 소극적으로 살아온 사람은 앞으로도 소극적으로 살것이며, 건강에 대한 걱정이 많은 사람은 계속 건강을 걱정하며 살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생 각본은 출생하면서부터 쓰기 시작하여 부모에 의해 강화되고, 이어지는 사건들에 의해 정당화되어 결국 삶의 한 방식으로 신념화되고 고정관념이 되어 선택된 인생 계획이 된다는 것입니다. 교류분석 학자들에 의하면 4살경에 기존 줄거리 결정되고, 7살 경에 각 부분의 주요 내용 완성되며, 12세경 부수적 내용 추가되고, 청년기에 실생활 맞도록 업데이트, 수정된다고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이 초기 양육자인 부모라고 합니다. 부모는 세 가지 즉 금지와 강요와 허용을 통해 자녀의 인생각본은 밑그림에 영향을 주는데 그것에 따라 자신은 승리자, 비승리자, 패배자 등과 같은 각본신념이 생겨 그에 따라 인생을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예로 들자면 부모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였습니다. 교류분석 상담 이론에 따르면 사람이 어떤 것을 판단하고 선택하는 심리적 자아에는 부모 자아(p), 성인 자아(a), 아동 자아(c)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예수님을 믿으면 안돼, 교회에 나가지 마라고 금지하고 강요를 했다면 그 부모의 스트로크가 자녀에게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스트로크라는 말은 사람들이 대인관계에서 말이나 몸짓, 눈짓, 표정, 감정 등 자신의 반응을 상대에게 알리는 대인 관계의 한 단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언어적 스트로크, 신체적 스트로크, 조건적 스트로크, 무조건적 스트로크, 긍정적 스트로크, 부정적 스트로크가 그대로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을 믿으면 안돼, 교회에 나가면 안돼라는 각본 신념, 고정관념이 생겨 그대로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평생을 그대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인생 각본에는 인식이 중요한데 자신에 대한 인식, 타인에 대한 인식, 세상에 대한 인식이 부모의 영향에 따라 형성되어 정서적, 지적, 관계적 고정관념이 되어 버리면 그 인생 각본이 자신을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인생 각본을 써내려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2. 인생 각본 바꾸기

행복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인생 각본을 바꾸어야 합니다. 어떻게 인생 각본으로 바꾸어야 하겠습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잘못된 생각, 고정관념을 바꾸어야 합니다. 생각을 바꾸어야 감정이 바뀌고 생각과 감정이 바뀌어야 행동도 바꾸어 지고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바꾸어지면 습관도 인생도 바꾸어집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꾸어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우리가 인생의 왕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왕이라고 인생 각본을 바꾸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바꾸어져야 할 잘못된 고정관념, 잘못된 생각, 잘못된 인식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에 대한 인식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인생 각본을 바꾸어 주기 위해 무슨 질문을 합니까?

1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bcad로 나뉘어집니다. 가정도, 역사도, 인류로 이 질문에 따라 엄청난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 질문에 베드로가 어떻게 대답합니까?

16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습니까?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아라는 말입니다. 구약에는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이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왕으로 오셔서 우리의 잃어버린 왕적 권위를 회복시킨 분이십니다. 내가 왕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인생의 왕으로 각본을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주신 복이 있습니다. 그것이 영생의 권한이고, 만물 지배권이고 영원한 복을 누리는 지복의 권한입니다. 인간은 범죄하지 않았으면 영생을 누리면 만물을 지배하며 영원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범죄함으로 인간은 이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예수님은 왕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통해 인류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의 왕권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만물을 지배하는 권한을 회복하여 왕같은 제사장으로 이 땅에 살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천지 창조을 할 때 하나님은 물질-식물-동물-사람 순으로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창1:28을 통해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며, 다르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곧 만물 지배권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 권한을 어떻게 합니까? 죄로 말미암아 상실하였습니다. 나무를 섬깁니다. 돌을 섬깁니다. 동물을 섬깁니다. 문명이 발달되니까 이제 무엇을 섬기고 삽니까? 자신을 섬깁니다. 물질, 가장 하급의 것을 섬기고 삽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것을 회복하셨습니다. 바다를 지배합니다. 바람을 꾸짖습니다. 귀신을 내어 쫓았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죄인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2).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이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인생 각본입니다.

 

둘째는 우리는 죄인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용서받은 의인되었다는 인생 각본을 가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 제사장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해 주시고 참 자유를 주었습니다.

인간은 범죄함으로 영생의 축복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래도 자연인으로 살면 저주받은 인간이라는 인생각본을 가지고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단 번에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 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영생의 복을 주시고 죄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9:12)"

이 사실을 믿습니까?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망과 죄의 노예부터 해방된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고 오신 메시아로 믿으면 우리의 인생 각본이 완전히 바꾸어 지는 것입니다.

서울 구치소에서 근무했고 사형 집행장에서도 근무했던 박효진 장로님의 간증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분 말에 의하면 아무리 잔인 무도한 살인범들도 예수를 믿고 거듭나면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는 유두영이라는 사형수는 아주 잔인한 살인범인데, 그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답니다. 사형 집행날이 되었는데 대부분 "난 안가, 죽기 싫어"하며 안 끌려가려고 발버둥치기도 하고 "어머니, 엄마..." 하고 우는 사람, 바지에 변을 보며 벌벌 떠는 사람, 별별 일이 다 많답니다. 그런데 유두영이는 거듭난 후부터는 만나는 죄수들마다 "죽을 준비되어 있어?"하고 전도하곤 했는데 사형집행 날이 되어 끌려가는데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를 외쳤답니다. 장로님은 '유두영이가 겁이나는 모양이다'하고 생각하는데, 장로님 앞을 지나갈 때 "두영아, 잘가. 먼저가"라고 하니까 유두영이는 도리어 "! 장로님, 먼저 갑니다!"하고 힘차게 말을 하더랍니다. 사형장에 도착해서 소장님이 "오늘 법무부 장관님의 명령에 따라 유두영씨의 사형을 집행합니다."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집행 선고하자 두영이는 "아멘" 하더랍니다. 소장이 이름, 생년월일, 인정 신문이 끝나고 끔찍한 죄상을 요약해 읽어 내려가는데 유두영이가 손을 치켜들더니 "소장님, 부탁이 있습니다" 하니까 모두 놀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니까 "소장님 지금 소장님께서 읽으시는 그 죄를 제가 다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죄는 제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지은 죄였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절대로 그런 죄를 짓지도 않았을 것이고, 오늘 이와 같이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늦게나마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제 죄를 다 용서해주셨습니다. 기억도 아니 하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다시 이어서 "이제 예수 믿고 8년 긴 세월을 살다가 아버지 나라로 가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다 용서해 주시고 기억도 아니하시는 그 더러운 죄를 다시 듣고 가기가 싫습니다. 용서받은 깨끗한 몸과 영혼 그대로 하늘 나라에 살 수 있도록 제발 그 부끄러운 죄를 읽지 말아 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단아하면서 당당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의 말에 소장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지만 눈에서 눈물이 흘리더랍니다. 임종 예배를 드리는데 유두영이가 요한 복음 316절을 외우더랍니다. 그 다음 소장이 "여기 안구 기증서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것입니까?" 하니까 "네 그렇습니다.",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까?"하고 물으니 "소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소장님이 일깨워 주지 않았으면 아버지 나라에 가기 바빠서 깜빡 잊어버릴 뻔했습니다. 처음에는 안구만 기증하려고 했지만, 이제는 안구뿐만 아니라 제 몸에서 쓸 수 있는 모든 자기를 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증하겠습니다. 제 시체도 의과대학에 기증해서 해부 실습용으로 사용하게 해주십시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유언을 남기겠습니까?"라고 물으니까 "소장님, 그리고 검사님, 제 마지막 부탁은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다 제가 믿는 예수님을 믿으시는 것,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수건을 씌우고 밧줄을 목에 걸자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해치니.."라고 찬양을 하며 천국에 갔다고 합니다. 지하실로 내려가 박장로님이 시신을 가슴에 끌어안고 통곡을 했습니다. "하나님, 이 세상 사람들은 두영이를 용서할 수 없어서 이렇게 목을 매달아 죽였지만, 이제 이 목에 걸린 사람의 밧줄을 풀어냅니다." 밧줄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울부짖기를 "하나님 어디 두영이만 사형수이겠습니까? 세상 사람이 모두 다 사형수가 아닙니까? 하나님!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사람들의 목에 걸려 있는 이 사람의 밧줄을 풀어내게 해주소서"하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대제사장으로 오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완전히 죄사함받고 자유인이 되었다는 인생 각본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병들고 되는 일이 없다고 죄로 망한 인생, 용서받지 못할 인생, 끝난 인생, 별 볼일 없는 인생, 해도 해도 안되는 인생이라는 인생각본을 가지고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 때문에 용서받은 인생, 참 자유를 누릴 인생, 영생할 인생이라는 인생 각본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셋째는 우리는 자신이나 세상의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생 각본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기름부음을 받은 참 선지자이라는 고백입니다. 선지자는 말씀을 전하는 자입니다.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의 멧세지를 전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을 괴롭히기 위해서입니까? 그들에게 부담을 주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땅에서 지복을 누리며 살기 위해서입니다. 신명기 10:13절을 보세요. 선지자를 통하여 그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10:13)"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의 금지나 강요, 허용의 메시지에 따라 인생 각본을 씁니다. 우리는 선지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인생 각본을 써야 합니다. 예수 안에 참된 지복의 길이 있습니다. 참된 행복이 예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11:28-30)” 우리에게 참 안식을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우리는 각본 신념을 만들어야 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성경을 기록하고 돌아가신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돌아 가시지거나 침묵하거나 외면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오늘 날도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역사하시고, 교훈하시고, 위로하시고,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 인생 각본을 바꿀 수 있는 방법

우리가 어떻게 인생 각본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예수님에 대하여 이런 고백을 하며 인생 각본을 새롭게 가질 수 있겠습니까?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사람 즉 아버지 어머니를 통해 안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렇게 인생각본을 바꾸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각본 신념,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처녀가 아이를 낳습니까? 어떻게 모세가 홍해를 가릅니까? 어떻게 불이 하늘에서 떨어집니까? 어떻게 죽은 사람이 부활합니까? 현대인의 유추원리, 비평의 원리, 원인과 결과의 원리에 의하며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어느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를 그리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성경 고린도 전서 123절을 찾아 보세요.

고린도전서 12:3에서 그는 "아무도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를 주라 시인할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생에 대하여 거듭남에 대하여 알수도 이해할 수도 없어 질문하는 니고데모에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3:5)”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물은 말씀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10:17)”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여 믿음을 은혜로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그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부모의 말에 의해, 세상 사람들의 말에 의해 만들어진 인생각본을 바꾸려면 하나님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인생 각본은 어릴 때 중요한 타인인 부모, 가족, 선생님들에 의해 쓰여지는데 이것이 각본 신념, 고정 관념이 되면 잘 바뀌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것을 바꾸어야 합니다. 세상에 대하여, 인간에 대하여, 자신에 대하여, 타인에 대하여, 자신이 미래에 대하여, 결혼에 대하여, 자녀교육에 대하여, 경제 생활에 대하여 등등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으로 잘못된 인생 각본을 바꾸어야 합니다.

 

특히 인생각본의 근본적인 인식인 예수님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에 귀를 기울이고 인생 각본을 바꾸어야 합니다.

실존하는 신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진리다. 나는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있는 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8:58)"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라고 하셨는데(3:14)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그 분이라고 주장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메시아가 아니다는 사실을 알면서 이렇게 주장했다면 예수님은 인류 최대의 사기꾼일 것입니다. 스스로 모르면서 그런 주장을 했다면 정신병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신병자도 사기꾼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오늘날 성경에 명백하게 예수님은 구세주라고 기록되었는데도 믿지 않는 이유는 성경 기록자의 진실성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화적 기록이고, 역사적 신빙성이 없는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기록된 역사는 시간을 돌려 볼 수 없기 때문에 기록된 역사가 사실이려면 객관성이 필요합니다. 지나간 역사는 과학적 실험을 통해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많은 증거와 증인이 필요합니다. 고증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하여는 수많은 증거와 증인들이 있습니다.

 

증거들을 보십시오.

수많은 기록들이 있습니다. 그 어떤 역사적 인물보다 많은 기록들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 탄생 수백년 전에 메시아와 관련하여 61건의 구체적인 예언과 300개에 가까운 언급이 있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미가5:2), 처녀가 잉태할 것(이사야서7:14), 다윗 왕의 혈통에서 태어날 것(예레미야 23:5), 은화 30냥으로 배신당할 것(스가랴 11:13) 손과 발을 찔릴 것(시편 22:16) 옷을 나눠 가질 것(시편 22:18), 당나귀를 탈 것(스가랴 9:9)" 61개의 상세한 예언이 한 사람에게 실현된 것을 보면 예수님은 확실한 메시아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학 교수인 피터 스토너는 한 사람이 8건의 구체적인 예언을 실현할 수 있는 확률은 지구의 모든 땅에 달러화를 120피트 높이로 쌓아 놓고 이 달러화 중 하나에 표시를 하고 아무 곳에나 묻어두고 찾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새로운 인생각본을 쓰고 한 평생 살았던 제자들을 보면 그 진신성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도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하고 완전히 인생각본을 바꾸었습니다.

베드로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으면 인생은 새롭게 변합니다. 의심한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 이다(20:28)"라고 고백했습니다.

제자들이 순교를 하였습니다. 거짓을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순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미쳤다고 했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완전히 인생 각본을 바꾸고 야고보서를 기록하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예일대 법대 출신의 명 저널리스트였던 리 스트로벨라는 철저한 무신론자였고, 냉소적 회의론자였습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고 믿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이 막연히 희망이나 얻어 보려고 신과 천국을 지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앙은 굳이 시간들여 알아볼 가치조차 없는 말짱 허튼 소리였습니다. 기자로서 최대의 쾌락을 얻는데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살았습니다. 그랬던 그가 신앙인이 된 아내를 따라 교회에 나가 예수님의 실존에 대하여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전공인 언론학과 법학적 지식과 기자 정신으로 21개월 간 추적한 2,200여 편의 자료에서 그는 예수님의 부활은 가능성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후 출현에 대한 증언과 증거의 수량은 압도적으로 많다. 만약 당신이 예수님의 부활 후 출현을 목격한 증인들을 한 사람씩 법정에 세우고서 각 사람마다 15분씩 시간을 들여 반대 심문을 한다고 해보자. 쉬지 않고 종일토록 심문하면 월요일 아침에 시작해서 금요일 저녁때까지 그들의 증언을 들어야 할 것이다. 연이어 129시간 동안 목격자의 증언을 들은 후에도 믿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진리를 위해 죽은 사람은 있지만 거짓을 위해 죽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많은 증인들이 그것을 증거하다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그는 인생각본을 바꾸어 예수님을 전하는 새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아버지의 변화를 보며 다섯 살 딸은 활기가 넘치는 그리스도인으로 여러 권의 기독교 소설을 펴내고 있고 아들은 신학박사가 되어 인생 목표를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도록 사람들을 돕는 데 두고 살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구세주라는 증거를 찾는다면 수없이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증거가 없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잘 몰라서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인생 각본에 예수님을 믿을 수 없도록 쓰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향하여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

베드로처럼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라는 인식으로 인생각본을 새롭게 쓰게 된 베드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신앙 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예수 믿기 전 과거의 인생 각본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설교하니까 3천명, 5천명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옵니다. 40년 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일으킵니다. 기적적으로 옥문을 열고 나오는 경험을 합니다. 역사 속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고 지금도 그 시대를 부러워하는 새로운 공동체 성령 충만한 공동체를 만드는 주인공이 됩니다. 수많은 질병을 고치며 죽은 다비다를 살립니다. 로마 장교 고넬료를 변화시켜 로마 교회의 태동의 모판을 만들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무식한 어부가 베드로 전후서를 기록하여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은혜로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인생각본을 만들어 능력 있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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