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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하려는 달리기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850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6 10:14:14
꼴찌하려는 달리기

어느 해 가을, 지방의 한 교도소에서 재소자 체육대회가 열렸습니다. 다른 때와는 달리 20년 이상 복역한 수인들은 물론 모범수의 가족까지 초청된 특별행사였습니다. 운동회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운동장 가득 울려퍼졌습니다. "본인은 아무쪼록 오늘 이 행사가 탈없이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오랫동안 가족과 격리됐던 재소자들에게도, 무덤보다 더 깊은 마음의 감옥에 갇혀 살아온 가족들에게도 그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미 지난 며칠 간 예선을 치른 구기종목의 결승전을 시작으로 각 취업 장별 각축전과 열띤 응원전이 벌어졌습니다. 달리기를 할 때도 줄다리기를 할 때도 어찌나 열심인지 마치 초등학교 운동회를 방불케 했습니다. 여기 저기서 응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잘한다. 내 아들... 이겨라! 이겨라!" "여보, 힘내요... 힘내!" 뭐니뭐니해도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부모님을 등에 업고 운동장을 한 바퀴 도는 효도관광 달리기 대회였습니다. 그런데 참가자들이 하나 둘 출발선상에 모이면서 한껏 고조됐던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푸른 수의를 입은 선수들이 그 쓸쓸한 등을 부모님 앞에 내밀었고 마침내 출발신호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 달리는 주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들의 눈물을 훔쳐 주느라 당신 눈가의 눈물을 닦지 못하는 어머니... 아들의 축 처진 등이 안쓰러워 차마 업히지 못하는 아버지... 교도소 운동장은 이내 울음바다로 변해 버렸습니다. 아니, 서로가 골인지점에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가려고 애를 쓰는 듯한 이상한 경주였습니다. 그것은 결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의 레이스였습니다. 그들이 원한 건 1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함께 있는 시간을 단 1초라도 연장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TV 동화 행복한 세상 중에서-


딸의 결혼식

점심도 거른 채 전화를 받자마자 달려간 곳은 어느 산동네.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사는구나 싶을 정도로 허름한 집들이 즐비했습니다. 그런데 택시를 불러놓고선 아무리 크락션을 눌러도 도무지 사람이 안 보이는 거였습니다. 돌아서려는데 뒤쪽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기사양반, 나 여기 있소. 문 안 잠겼으니 들어오슈." "이걸 어쩌나? 내가 삼십 분만 있다가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더니 옆집 애가 그새 불러버렸구먼. 기사양반 조금만 기다려 주면 안 되겠소?“ 그래서 기다리는데, 아 글쎄 이 노인네가 이십 분이 지나도록 나오질 않는 겁니다. 더 기가 막힌 건 그 뒤였습니다. "기사양반, 미안한데 내가 몸이 성치 못하다보니 옷을 제대로 못 입겠구려. 오랜만에 양복을 좀 입으려는데 영~ 나 좀 도와주시오." "아니, 그렇게 차려입고 어딜 가시려구요." "오늘 누가 결혼을 해서‥‥ 시내에 있는 00 예식장으로 갑시다." 한 십오 분쯤 지났을까요? "기사양반, 잠깐 다시 돌아갑시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미쳤지. 거기가 어디라고. 기사양반 미안하지만 나 예식장 안 갈 테니 다시 돌아갑시다." "영감님 지금 누구 놀려요? " "기사양반, 실은 말이오. 오늘 내 딸이 결혼하는 날이거든. 그런데 난 가면 안 돼."
"딸 결혼하는 데 아버지가 가는 게 당연한 거지 왜 안 된다는 거에요?" "내가 애비 노릇을 제대로 못했거든. 젊을 때 다른 여자랑 바람을 펴서 애들 엄마랑 애들이 고생이 많았지. 가난한 살림에 돈 한 푼 보태주지 못하고‥‥ 딸 하나 있어도 클 때까지 들여다보지도 않았어. 그러다 사고를 당해서 몸뚱이가 이렇게 됐어.

그나마 딸애가 신경을 써서 방 한 칸 마련해 준거지. 안 그럼 날 쳐다보지도 않았을거야." 구구절절한 할아버지의 사연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인데, 결혼식도 오지 말라는 건 너무 하네요." "신랑 쪽에선 아버지가 죽은 걸로 알아. 그래도 결혼한다고 혼자서 날 찾아왔는데 울면서 하는 말이 날 죽이고 싶었대. 그 아이가 무슨 잘못이겠소. 날 원망할 밖에‥‥ 다 내 탓이지. 지금에 와서 내가 무슨 염치로 딸 결혼식엘 가겠소. 기사양반 돌아갑시다." "눈에 딸 보고 싶은 게 간절하구만 어딜 간다는 거예요." 떨리는 목소리를 듣자니 더더욱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대로 예식장으로 택시를 몰았습니다. 도착했을 땐 이미 예식이 끝나고 신랑 신부가 식장 밖으로 나온 후더군요. 흩뿌리는 가랑비 사이로 예쁜 신부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저기 보이는 신부가 딸입니까?" "예. 우리 딸 너무 예쁘지 않소? 내가 옆에 있었어야 하는데, 날 얼마나 원망했을고." 신랑 신부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백미러에 비쳤습니다. 그는 딸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떨리는 손을 들어 창문에 대고 그 너머로 보이는 딸의 얼굴을 자꾸만 어루만지고 있었습니다.

-권정호/낮은 울타리 2004년 10월 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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