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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거 부모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689 추천수:16 112.168.96.71
2014-11-26 09:40:10
메이저리거 부모 - 에릭 데이비스 -

TV에서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를 보면 경기 도중 카메라가 선수들이 대기하고 있는 자리를 비추면 선수들 몇몇이 손을 흔들며 이렇게 말한다. “안녕하세요, 엄마! 안녕하세요 아빠!.“ 그리 특이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는데는 다들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그분들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자신이 이곳에 올 수 없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지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야구팀의 외야수로 뛰고 있다. 처음 프로 야구에 입문할 때 18세였던 나는 신시내티 레즈팀에서 계약금 2만달러를 받고 프로 선수로 뛰기로 합의했다. 이때 부모님은 “네 마음대로 하거라, 어떤 결정을 내리든 흔들리지 말아라. 우리는 널 전적으로 지지한다”라고 해주셨다. 두 분의 조언에 따라 나는 계약을 했다. 처음 마이너리그 생활은 쉽지 않았다. 감독은 정말 나를 많이 괴롭혔다. 내가 홈런을 쳤을 때도 감독은 내게 와서 “공이 바깥쪽이었으니 오른 쪽 으로 쳤어야 했어. 네가 잘 꺾어 질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다른 쪽으로도 쳐내는 법을 배워야 해”라고 핀잔을 주었다. 힘든 원정경기를 마친 어느 날 다 그만두고 집에 가고
싶다고 전화를 했다. 전에도 가끔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때 아버지는 “감독이 너를 팀 선수로서 적합한 선수인지 테스트하는 중 인 것 같구나. 그러니 포기하지 마라”. 나는 아버지 말에 따랐다. 한번은 동생과 내가 교회에 안 가면 안되냐고 부모님을 졸랐다. 어머니는 “난 불신자를 기른 적 없다”라며 야단을 쳤다. 그러나 아버지는 “안가도 좋다. 그러나 교회를 안가 너희들의 영혼을 살피지 않으면 이번 주 내내 공놀이 할 수 없다”라고 하셨다. 자라면서 나는 아버지의 말이 진리임을 알았다. 영혼 을 잘 가꾸면 그 나머지는 저절로 잘 된다는 사실을. 그 교훈과 노력 덕분에 나는 메이저리그로 진입할 수 있었다. 나는 신시내티에서 9년을 뛰었고, 그 후 L.A와 디트로이트에서도 얼마간 선수 생활을 했다. 그러던 1997년 봄, 볼티모어에서 뛰고 있을 때 하루는 공을 치기 위해 타자석에 들어섰는데 뭔가 좋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내 야구배트가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 대로 스윙은 되었지만 빠른 속력이 붙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타석에 들어섰다. 안타를 치고 마운드에 나가 2루와 3루 사이를 반쯤 달리는데 복부에 날카로운 통증이 왔다. 3루까지 달리는데 성공했지만 그리고서 나는 고꾸라지고 말았다. 숙소에 돌아와 진통제를 먹었다. 다음날 존스홉킨스 병원에 찾아 검사를 해보았더니 릴모라는 담당의사가 결장 부위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악성종양일지 모른다고 하였다. 의사는 당장 대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암 때문에 가족들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전화를 걸었던 사람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충격을 받으신 것 같더니 “아들아 넌 이겨낼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그것이 어머니의 강한 믿음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 역시 어머니가 가르쳐준대로 내 믿음을 가지고 맞서야 할 때였다. “하나님 저와 함께 해주세요”. 나는 기도했다. 1999년 6월 13일 금요일 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실로 가는 순간 어머니는 ‘이 수술은 하나님께서 감당하실 경기라는 것’을 일깨워주셨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 영혼을 살피는 것이었다. 수술이 끝나고 박사가 내게 말했다. “수술을 잘 되었습니다. 하지만 악성종양, 암이었어요”그 순간 나는 도저히 감정을 다스릴 수 가 없었다. 완전히 무너져서 정신없이 울었다. 이때 어머니는 어릴 때처럼 나를 안아주시면서 “그래 이제 다 끝났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 눈물은 없고 오직 믿음만 있을 뿐이야”. 릴모 박사는 가족과 미래를 위해 항암 치료를 계속 받을 것은 권했다. 나는 7월 4일 항암 치료를 시작했고 9월 15일 경기에 참가했다. 나는 경기장에 돌아가야 했다. 우리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도록 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내가 훌륭한 선수임을 구단 매니저에게도 보일 필요가 있었다. 누가 암환자를 지명하겠는가? 암환자를 믿을 리가 만무하다. 아홉 번째 항암 치료를 받은 다음날 나는 경기에 투입되었다. 나는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선수로 뛰기를 원했고, 암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첫 등판에 나는 안타를 쳤다. 두 번째 타석에서도 다시 안타를 쳤다. 세 번째 타석에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코스로 공이 걸렸다고 생각했다. 공은 좌중간 관중석을 깊이 파고드는 홈런이었다. 우리 팀은 그 경기에서 우승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현재 암에서 완치된 나는 결장암 예방 교육과 치료에 관해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고, 세인트루이스 팀에서 맥과이어에 이은 다음 타자로 뛰고 있다. 나는 지금 내 삶을 온전하게 유지되고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해주신 부모님의 교훈과 믿음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이드포스트2003년 12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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