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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선생님
열린교회 (yeolin) 조회수:562 추천수:17 112.168.96.71
2014-11-25 13:37:18
사랑하는 레이크 선생님,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목소리의 미세스 레이크 선생님은 6학년을 가르쳤다. 선생님은 항상 긴 다갈색 머리를 위로 말아 올려 핀으로 고정시키고, 달랑거리는 귀걸이를 달고 있었다. 나는 레이크 선생님의 반이 된 첫 시간부터 선생님을 좋아했다. 나는 모범생이긴 했지만, 다른 급우들 앞에 서서 말할 때 너무 쑥쓰러워해서 내 말이 쉽게 무시되곤 했다. 하지만 레이크 선생님 앞에서는 달랐다. 그 해는 우리집 사정이 아주 어려웠다. 게다가 아버지의 술주정은 갈수록 더 심해졌다. 늦은 밤, 나는 잠자리에 누워 펑하고 맥주병 따는 소리며, 위스키를 따를 때 얼음조각이 유리잔에 부딪 히는 소리를 덜덜 떨며 들어야 했다.

이내, 부엌에선 분명치 않은 큰 목소리가 났고,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린 후 문이 쾅하고 닫혔다. 그럴 때면 나는 잠들기 전에, '하나님, 제발 아버지가 그러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아버지는 변호사였는데, 매일 아침 일을 나가기 전에 구두코가 날개 모양으로 생긴 구두를 세심하게 닦았다. 그래서 나는 아기들을 돌봐 주고 받은 돈을 모아 두었다가, 성탄절이 다가오자 내가 찾을 수 있는 것 중 가장 좋은 구두닦이 상자를 샀다. 성탄절 이브 아버지가 그 선물 상자를 열었을 때, 나는 흥분이 되어 무척이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불끈 화를 내면서 상자를 거실 저쪽으로 내동댕이쳐 부숴 버렸고, 나는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어쨌든 난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레이크 선생님의 수업시간엔 얼마나 마음이 평안했던가. 그 시간은 선생님 특유의 흘림체로 쓴 조언이 가득한 숙제를 돌려 받거나, 별이나 웃는 얼굴 도장이 찍힌 시험지 등으로 내가 잘한 것에 대해 칭찬을 받을 수 있는 피난처와 같은 시간이었다.

반 친구들 앞에 나가서 발표를 할 때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용기를 북돋워 주는 선생님의 파란 눈을 보면 곧 두려움이 가라앉았다. 그해 말, 학부모와 교사간 면담일이 돌아왔다. 그 날은 학생들이 각자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선생님과 마주 앉아 최종평가 및 성적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칠판에는 가정마다 20분씩 할당된 면담 차례가 알파벳 순서로 적혀 있었다. 그런데 내 성이 'B'로 시작하는 데도 명단 맨 끝에 있는 걸 보고는 의아했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부모님은 오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레이크 선생님의 열렬한 칭찬이 적힌 과제물들을 받아 집에 가져가도 부모님은 그것들을 한번도 거들떠보지 않고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다.

학기말 면담이 있다는 통신물들도 물론 그냥 무시해 버렸다. 그 날 보조교사를 맡은 어머니가 학생들을 차례대로 교실 뒷편 문을 통해 데리고 나가는 동안 나는 온종일 과제물을 하면서 분주한 척 하느라고 애를 썼다. 20분마다 다른 이름이 호명되면 학생이 걸어 나갔다. 닫힌 문틈으로 학부형들이 질문을 하는 소리, 몇 가지 제안을 하는 레이크 선생님의 들릴 듯 말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그런 부모님을 갖는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침내, 모두의 이름이 호명된 후에 레이크 선생님은 문을 열고 내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복도에는 서류들과 수업 과제물, 그리고 레이크 선생님의 성적기록부 등이 쌓여 있는 책상과 그 앞에 접는 의자 세 개가 놓여 있었다. 내가 그것들을 보며 서 있는데 선생님이 의자 두 개를 접었다.

그리고는 내게 남은 의자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선생님은 자신의 의자를 내 옆에 옮겨 오더니 내 턱을 살며시 들어 올렸다. "우선, 선생님이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네가 알았으면 좋겠구나." 선생님이 말했다. 나는 지난 일년 내내 지켜봐 왔던 그 아름다운 파란 눈동자에 가득한 온화함과 사랑을 보았다. "둘째로는," 선생님은 계속 말을 이었다. "부모님께서 학교에 오시지 않은 게 네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구나." 누군가가 내게 그런 말을 해준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선생님께서 우리집의 비밀을 알고 계셨다니!' 하지만 동시에 나는 선생님이 모든 걸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부모님께서 오셨든지 오시지 않았든지 너는 면담할 자격이 있는 거야. 네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도 알 자격이 있고 말이다." 선생님이 말했다. 선생님은 내 과제물 뭉치를 꺼내더니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축하해 주면서, 내게 어떤 장점들이 있는지 하나씩 말해 주었다.

선생님은 내 학업진단 시험점수를 보여 주면서 전국순위에서 내가 얼마나 높은 석차를 받았는지도 설명했다. 심지어 선생님은 내가 그렸던 수채화 그림들도 한 쪽에 따로 모아 보관해 두었다. 우리 어머니 같으면 대개 쓰레기통으로 가야할 것들인데 말이다. 선생님과의 상담시간 동안 현실을 보는 나의 안목이 바뀌었다. 나는 비로서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레이크 선생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선생님이 한 말을 모두 믿을 수 있었다. 우리집의 상황은 여전히 그랬지만 나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참 동안 레이크 선생님과 나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선생님은 나를 꼭 안아 주었다. 나중에 선생님은 서류를 정리해서 교실로 들어왔다. 우리반 아이들 중 누구도 선생님이 내게 무슨 말을 했냐고 묻지는 않았다. 설령 아이들이 물었다고 해도 나로서는 뭐라고 답해야 할 지 몰랐을 것이다.

그건 너무나도 소중하고, 너무도 은밀한 그리고 너무나 멋진 일이었다. 이후로 성장하는 몇 년 동안에도 물론 어려운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 때 레이크 선생님이 내게 주셨던 선물은 각별한 것이었다.
처음으로 나도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기에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세로 인해 내 삶의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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